전기섭의 일로 큰 비바람이 몰아칠 줄 알았으나 국내에서는 조용했다. 하지만 소찬식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성문 경호원은 소은정의 옆에서 경계를 놓치지 않은 채 어딜 가던 따라붙었다. 며칠 후.실리 쪽에서 잡지의 표지를 다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러 가지 다른 컨셉으로 찍은 사진은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여러 가지 사진 중 메인으로 쓸 한 장만 뽑는 것이었다. 이 일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실리는 몇 장의 사진을 소은정에게 보낸 후 선택해달라고 했다. 소은정 덕에 세미를 불러올 수 있었고 손호영의 앞길도 이 표지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본 소은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레드와 블루톤의 보색대비에 맞게 세미와 손호영은 서로 등을 대고 서 있었는데 두 가지 문화의 만남과 어우러짐 같았다. 역시 세계에서 제일가는 촬영작가들의 사진이라 그런지 명불허전 이였다. 자세히 보니 세미와 손호영은 보정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세미 눈 아래에 있는 작은 점이 선명하게 보였고 손호영 미간 사이로 강한 의지가 나타났다. 다른 씬에서 찍은 다른 사진은 방금 레드 블루보다 더 이목을 집중시켰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역시 전 세계에서 출판량이 제일 많은 VJ잡지답다. 소은정이 생각하기에는 여기서 아무 사진이나 골라도 다른 연예인들의 에이 컷보다는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쪽에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니 실리 보고 결정을 내리라고 전달했다. 실리는 직원들과의 의논 끝에 레드톤과 블루톤 보색대비 바탕의 사진을 선택했고 전체 잡지 테마 컬러로 정했다. 삼 일 뒤. 해외에서 잡지가 먼저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인터넷에서만 떠돌고 있었다. 먼저 패션계에서 이 잡지 표지에 대해 주목하였고 다음으로는 인터넷에서 작지 않은 파동이 일었다. “미친, 손호영은 언제 이 잡지를 찍은 거야? 너무 섹시하다…”“바이올렛이 없어도 VJ는 건재하네. 역시 같은 레벨이 아니야. 바이올렛은 대체
해외 화보 촬영 덕분에 손호영의 몸값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소은정은 전동하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요즘 전동하는 꽤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낮에는 거의 실종 상태고 저녁 늦게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듯했다.다행인지 바쁜 걸로 치면 소은정도 만만치 않았고 그 덕분에 단둘이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이 오늘 특별히 전동하를 부른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며칠 전부터 전동하와 연락이 안 된다며 잔뜩 불만을 표하던 실리아의 말 때문이었다.흠, 나더러 대신 불만을 전해 달라는 건가?뭐, 딱히 큰 부탁도 아니고 이걸 핑계로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소은정도 흥쾌히 응했다.약속 시간 10분 전, 소은정은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하지만 레스토랑 문을 연 순간, 이미 테이블에 앉아있는 전동하를 발견한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아이고, 전 대표님, 왜 이렇게 일찍 도착했어요?”소은정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전동하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정 씨와의 약속인데 늦으면 안 되죠.”“우리 12시에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지금 11시 50분인데요?”시간을 다시 확인한 소은정이 대답했다.“30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풉, 어지간히 보고 싶었나 보네.한편 전동하는 익숙하게 그녀의 코트와 핸드백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두고 그녀를 위해 의자까지 빼주었다.“앉아요. 음식은 은정 씨가 좋아할 만한 걸로 이미 주문했어요.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어요?”메뉴를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어차피 우리 둘이 먹을 건데요 뭐. 아 참, 요즘 실리아 전화는 왜 안 받아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어깨를 으쓱했다.“아, 안 받아도 괜찮아요. 은정 씨도 귀찮으면 그냥 차단해 버려요.”무덤덤한 전동하의 말투에 소은정의 눈이 동그래졌다.하, 이래도 되는 거야?“실리아 덕분에 손호영 씨 화보 촬영이 진행되긴 했지만 이제 은정 씨도 VJ 이사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문에 가려져 여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왠지 보통 사람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소은정이었다.“전 대표님, 여기서 만나네요. 너무 오랜만이에요.”이에 전동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박수아 씨.”박씨?비록 대한민국에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왠지 모르게 박수혁이 생각나며 소은정도 유심히 룸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게다가 박수아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다음 순간, 미소를 지은 박수아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그제야 전동하 맞은 편에 앉은 여자의 존재를 확인한 박수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합석할까요? 일적으로 드릴 얘기도 있고요.”딱 봐도 그녀를 견제하는 듯한 모습에 소은정은 여자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오히려, 소은정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전동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동하 씨가 여자랑 따로 있는 걸 본 적이 없네? 항상 마이크 그리고... 단둘이 만나는 이성은 나뿐인가?전동하가 워낙 지고지순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소은정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키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능력 좋고 돈까지 많은 남자.여자들이 이런 남자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겠지.최근 사교계에서는 거의 박수혁과 투 톱으로 거론이 되는것 같기도 한데...오히려 10m 정도만 다가가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박수혁과 달리 웬만한 사람에게는 젠틀하고 친절한 전동하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이 많은 듯했다.그러고 보면 윤시라도 처음 만났을 때 동하 씨한테 들러붙었었지?하지만 윤시라의 타깃은 나였고 이 여자는 달라... 사랑의 라이벌의 등장인 건가?변태 같지만 왠지 가슴이 콩닥이는 소은정이었다.어떻게 대응하는지 두고 볼 거야. 합석하겠다고 말해 봐... 바로 나갈 거야.하지만 전동하는 친절하지만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아, 그건 좀 불편할 것 같은데요.”냉정한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하더라니. 박 회장 칠순 잔치에서 딱 한 번 봤었나? 그것도 살짝 얼굴만 비추고 갔었지?박수아는 해외 유학파로 아이비리거라는 신분에 꽤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말끝마다 자신의 독립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학비와 생활비는 전부 박씨 일가의 돈이었지만 말이다.대충 시간을 계산해 본 소은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올해쯤에 졸업이든가?여자친구라고??한편, 박수아도 소은정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차가운 분위기에 자기주장 확실한 이목구비, 질투 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모였다.그런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익숙하지?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 떠올린 박수아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더니 눈이 커다래져서는 물었다.“혹시 새언니?”그래 이름이 소은정이었나? 예리가 오빠랑 같이 찍힌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었지. 사진 속 소은정은 박수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보낸 박예리는 소은정을 항상 촌닭이라며 무시했고 결혼으로 신분 상승한 천박한 계집이라며 모욕까지 서슴치 않았다.그리고 딱 한 번 큰할아버지 칠순 잔치에서 만났을 때도 소은정은 가족들 앞에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그런 여자였다.할아버지도, 고모도... 다들 싫어했었지. 아예 존재감이 없는 여자였는데 왜 이렇게 많이 바뀐 거지?비록 그녀가 등장하고부터 소은정은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미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과 당당한 시선에 오히려 왠지 그녀가 고개를 숙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새언니라는 호칭에 전동하의 입가에 걸려있던 형식적인 미소마저 자취를 감추었다.그제야 가만히 있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박수아 씨. 아무리 해외에 있었다지만 그쪽에서도 기사는 볼 수 있지 않나요? 나랑 박수혁 대표 이혼 기사가 한동안 포털 사이트 화면을 가득 채웠던 걸로 아는데... 새언니라는 호칭 좀 불편하네요.”소은정의 깔끔한 선긋기에 전동하의 표정을 힐끗 살핀 박수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전동하의 말에 박수아, 소은정 모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박수아는 모욕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박수혁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박대한의 손녀로서 어딜 가나 대접 받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저딴 이혼녀 때문에 지금 나한테 망신을 주는 거야?전동하에게 품었던 조금의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입술을 꽉 깨문 박수아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두 분 즐거운 식사 되세요.”말을 마친 박수아는 바로 레스토랑을 나가버렸다.입맛 다 버렸네...하이힐 굽으로 바닥을 쾅 내리친 박수아는 뭔가 생각난 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어? 기섭 선배 번호 아니에요? 저 기섭 선배 학교 후배 박수아예요...”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많이 지친 듯한 전인국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아... 기섭이가 지금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라. 무슨 일이죠?”그의 질문에 박수아가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다시 레스토랑을 올려다 보았다.전동하, 소은정... 날 그딴 식으로 모욕했다 이거지?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뭔가 다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아가 입을 열었다.“아, 전 회장님이시군요. 저도 선배 상황...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누가 선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제가 알아낸 것 같은데요...”한편, 홱 돌아서서 룸을 나가는 박수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박예리보다는 많이 낫네. 그래 봤자 표정을 숨기는 건 아직 많이 서툰 것 같지만... 그런데 혹시... 에이, 설마.고개를 살짝 저은 소은정은 다시 전동하를 바라보았다.식어버린 차를 쏟아버리고 따뜻한 차를 따라주던 전동하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두 사람... 뭐 진행 중인 프로젝트 있는 거 아니에요? 나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그녀의 질문에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 다른 차로 움직이고 있어요. 차까지 같이 타는 건 내가 불편해서... 항상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제야 전동하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SC그룹 건물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잠시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은정은 마침 1층으로 내려온 한시연과 마주친다.묘한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능글맞게 농담을 건넸다.“설마... 우리 오빠 도시락 챙겨주려고 온 거예요?”소은정을 만날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라던 한시연이 미소를 지었다.“오늘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실력 발휘 좀 해봤어요.”“오빠도 오랜만에 과식했겠네요. 그릇까지 다 먹어버린 건 아니죠?”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던 한시연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소은정,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오전에 말했던 보고서나 올려.”소은호의 목소리에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설마... 통화 중이었어요?”한시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은정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윽, 다 들었겠네.“그럼 힘내요, 아가씨...”소은정의 어깨를 두드리던 한시연이 자리를 뜨고 혼자 남겨진 소은정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천사 같던 새언니가 변했어!!밍기적대며 엘리베이터에 탄 소은정이 사무실로 향하려던 그때 그녀를 기다리던 소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아, 밀린 업무가 많아서.”뻔뻔한 대답에 피식 웃던 소은호의 표정이 곧 진지하게 굳었다.“S시 프로젝트 말이야. 전체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긴 한데 방금 전에 원자재에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네. 무슨 상황인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긴 한데...”“내가 갈게!”소은정이 눈동자를 반짝였다.“네가 가도 되긴 한데... 조심해. 난 오후에 바로 프랑스로 출장가봐야 해. 프랑스 지사 회계 감사에 문제가 좀 생겨서...”소은호가 건넨 파일을 받은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장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 어휴, 골치 좀 아프겠네. 오빠가 일부러
“나랑 같이 가요. 은정 씨 혼자 보내려니까 마음이 안 놓여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참나. 내가 뭐 놀러가요? 일 때문에 가는 건데 남자친구랑 같이 가면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말은 안 해도 다들 비웃을 걸요? 그러니까 얌전히 집에서 기다려요. 내가 문자도 전화도 자주 할게요...”두 사람의 달콤한 통화에 우연준은 귀라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연애를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그게 우리 대표님에게도 적용이 될 줄이야. 일적으로는 어찌 보면 냉정하기까지 한 소은정의 부드러운 모습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 우연준이었다.한편 “남자친구”라는 단어에 기분이 좋아진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풉, 그래요. 그럼 내가 데려다주는 건 괜찮죠?”“됐거든요? 이제 곧 떠나야 해요...”그녀가 통화를 끝냈을 땐 우연준은 이미 짐 정리를 마친 뒤였다.사무실에 준비된 휴식실에서 옷 몇 벌과 필요한 파일, 노트북까지 깔끔하게 챙긴 우연준을 향해 소은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수고하셨어요, 우 비서님.”어휴, 기분이 많이 좋으신가 보네. 우리 대표님.“별말씀을요. 차량 대기 중입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거죠?”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잠시 후, 이미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성문이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고 우연준은 바로 이건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팀장님, 대표님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우연준의 질문에 이건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 분명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1기 건설은 끝났고 2기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저희 원자재가 포름알데히드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뉴스가 터졌지 뭡니까...?”이건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소은정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팀장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원자재 자체에 정말 문제 없는 거 맞나요?”그녀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쉰 이건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맹세코 원자재 자체에는 문제가
“아니요. 지금은 저희 쪽 연락은 일체 받지 않고 있습니다.”이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어찌 되었든 십여 년간 기업을 위해 일한 몸, 단순히 경력으로 치면 소은정의 대선배급인데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얼굴이 화끈거렸다.하지만 이런 상황을 숨길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소은정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빌미를 제공했다는 그 일용직 노동자는요?”소은정의 목소리가 확연히 차가워졌다.“아, 그 사람 신변은 확보한 상태입니다. 사건 발생 후 공사를 중단하고 바로 그 노동자의 행방부터 찾았거든요.”“알겠습니다.”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어쩌면 하루도 속 편할 때가 없냐...한편, 태블릿으로 메일을 확인하던 우연준이 그녀에게 뭔가를 보여주었다.“폭로 글에 첨부된 사진입니다. 정식 기사가 아니라 SNS 계정에 폭로글과 사진을 게시했는데 지금 조회수가 20만을 넘어가고 있습니다...”조잡하게 제작된 영상에는 건축 자재의 사진과 함께 “SC그룹, 이런 건축 자재 정말 괜찮은 겁니까?”라는 글이 첨부되어 있었다.그리고 현장 노동자와의 대화가 담긴 영상이 이어졌다.“이런 게 싸니까 뭐... 대기업이라고 별수 있나? SC 말고 다른 기업들도 다 써...”짧은 영상이었지만 파장을 일으키기엔 충분했고 댓글창은 더더욱 가관이었다.“하,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그깟 돈 좀 아끼겠다고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쳐?”“SC그룹도 이런 짓을 한단 말이야? 하, 내가 산 아파트에도 문제 있는 거 아니야?”“평생 집 하나 장만하는 게 꿈인 서민들에겐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네요. 애들 키우는 집도 많을 텐데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거죠?”“하, 집 살 돈 없어서 다행이다...”댓글을 확인하던 소은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유독물질 기준치 초과”,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논란이니 말 한, 두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원자재들 전부 재점검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