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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민혜경의 부탁

Author: 손라떼
한서준의 약혼자?

최하연과 한서준은 비밀 결혼을 했기에 회사 사람들은 그녀가 서준의 비서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럼 민혜경을 가리키는 건가?’

하연의 이혼협의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혜경은 HT그룹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나중에 그녀는 한때 하연이 잤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서준과 잠자리를 가지기도 할 것이다.

이 생각에 하연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겉으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인사팀 사무실을 나갔다.

제이슨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이고, 최 비서가 대표님을 좋아하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다 알 수 있는데, 해고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그는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아, 또 재밌는 일이 생기겠네~”

대표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 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구동후를 만났다.

“최 비서님, 오셨네요.”

그녀의 캐리어를 본 동후는 틀림없이 하연이 신분증을 찾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신분증이 있는 회의실을 가리켰다.

“비서님 신분증은 대표님께 드렸어요. 아직 회의 중이신데, 아직 세 번째 회의예요. 급하시면 제가 말씀드릴까요?”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하연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커피 한 잔 갖다 드릴까요?”

동후는 서준이 그녀를 해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연은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었고, 중요한 프로젝트가 많아 그녀를 해고하면 당장 적당한 직원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K국식 핸드드립 커피예요, 배운지 얼마 안 됐지만요.”

“전 정말 괜찮아요.”

서준과 깔끔하게 헤어지고 싶었던 하연은 주위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동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가 서준에게 서류를 건넸다.

하연은 대표실 앞을 지나가다 회의실 쪽을 힐끗 쳐다봤다.

문틈사이로 보인 회의실 내부에는 여러 사람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서준의 뒷모습과 정장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넓은 그의 어깨를 봤다.

그는 양쪽에 있는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고, 조금씩 보이는 서준의 얼굴은 차가웠으며 한 번씩 입술이 움직였다.

서준은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린 하연은 자신의 손에 들린 캐리어와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회의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대표실을 바라보았다. 불투명한 유리였지만 어렴풋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여자는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혜경이 분명했다.

지금 들어가는 건 자신의 부끄러움을 더할 뿐이었다.

이런 생각에 하연은 짐을 잠시 보관한 후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하며 서준에게 어떻게 돌려달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최 비서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손을 씻으러 온 인턴 비서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됐네.”

하연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인턴 비서가 떠난 후 휴지로 얼굴을 닦으며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 번에 D국에서 큰오빠가 살이 빠졌다고 하길래 다이어트 한다고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거였어.’

‘그래,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야.’

그때 갑자기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우아한 자태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고 투명했으며 살짝 불룩한 배를 제외하고는 온몸에서 고귀함과 우아함이 물씬 풍겼다.

혜경을 본 하연은 왠지 모르게 열등감이 생겼다.

그녀는 재빨리 남은 물기를 닦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잠시만요.”

그러나 옆에서 혜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사람들이 최 비서님이라고 부르던데, 서준 씨 비서 맞죠?”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하연의 몸은 그대로 굳어졌다.

혜경은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서준 씨 회의가 곧 끝날 것 같은데 커피 한 잔만 대표실로 가져다 주시겠어요? 현호 씨가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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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1. 09. AM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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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연이, 집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너는 항상 우리 하연이만 생각하는구나.” 최동신은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집안 가정부들은 어릴 때부터 하연이를 봐왔으니, 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고 이곳이 하연이가 편하긴 할 거야.” “아침부터 나갔다던데, 너랑 같이 있던 게 아니었어? 그럼 얘가 어디 간 거지?” 최동신은 가정부를 불러 말했다. “하연 아가씨한테 전화 좀 걸어보게.” “어르신, 이미 전화드렸는데 받지 않으십니다.” 최동신은 미간을 좁혔다. “무음으로 해놔서 못 들었나...” 하지만 최동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상혁은 화면을 열어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짙어졌다. 최동신은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상혁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야?” 상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금 평정을 찾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업무 관련한 일이라서요.” 최동신은 배려 깊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지. 얼른 가봐라.” 최씨 가문의 본가를 나서며, 상혁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문자 메시지 하단에 찍힌 ‘TW카페’ 네 글자가 유독 선명했다. ...평일 오전의 TW 카페는 한산했다. 한 시간 전. 다시 ‘한명준’이 된 손이현은 급히 카페로 향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창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여자에게 내려앉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냈다. 이현의 발걸음도 순간 멈췄다. 그는 한동안 하연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숨을 고르던 중,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님, 몇 분이세요?” 이현은 가볍게 손짓했다.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하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게 했나요?” 하연은 시선을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60화 과정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어

    “이게 뭐야?” 송혜선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솔직했다. 하지만 사진 속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사진을 낚아채고 하나하나 넘겨봤다. 사진마다 담긴 장면이 송혜선을 점점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 최씨 가문의 귀한 딸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니,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사진 속 남자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고고한 분위기, 남다른 기품까지...비록 사진에는 전부 뒷모습만 담겨 있었지만, 남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송혜선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모든 사진을 훑어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그냥 친한 남녀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선을 넘은 정황은 없잖아.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정다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그녀는 오래전부터 하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설 탐정을 통해 추적해왔다. 그리고 사진 속 ‘한명준’이라는 남자와 하연 이 둘 사이에는 단순한 친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님, 이 남자가 누군지 아세요?” 다영의 목소리는 은근한 흥분을 담고 있었다. “바로 B시 한씨 가문의 사람이란다.” “B시 한씨 가문?” 송혜선은 순간적으로 하연의 전 남편이 한씨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분명 들은 바에 따르면 한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최하연의 전남편은 감옥에 간 걸로 아는데, 또 다른 한씨 가문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하여튼 복잡한 사연이 많았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단다.” 다영은 하연과 ‘한명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 일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우리가 부상혁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겁니다.” ‘남자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9화 기회

    배가 항구에 서서히 가까워질 때, 허징인은 저 멀리 보이는 부두를 응시하면서 머릿속에서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비명, 피 냄새, 그리고 민찬의 얼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난간을 꽉 잡은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허징인의 떨리는 손끝은 마음속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조용히 허징인 곁에 다가왔다. 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배에서 내리면, 제 부하들이 안전한 곳으로 허징인 씨를 모실 겁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마세요.” 허징인은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차가운 눈빛과 함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 대표님,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웠다. “제 남편이 부남준 밑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어요. 물론, 제 남편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와 민찬이를 지키기 위해 부남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적도 많았어요.” 잠시 말을 멈춘 허징인은 숨을 고르며 상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제 남편은 민찬이의 죽음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자신과 부남준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부정한 거래를 실토할 겁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 대표님께서 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징인의 목적은 단순했다. ‘정규인을 이용해 부남준을 무너뜨릴 단서를 만들어야 해. 민찬이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상혁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8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상혁의 원래 무심하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가 감정적으로 흔들렸다는 건 분명했다.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길고 날렵한 손가락이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는 정확히 입술 끝에 물었다. 그다음엔 상혁은 침착하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신 뒤, 한순간 숨을 멈췄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이 판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 그러나 허징인은 자신의 분노에 사로잡혀, 상혁의 변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부남준은 제가 가진 증거를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죠. 그래서 절 죽이고 모든 걸 덮으려 했던 거고요. 정말 어리석은 꿈을 꾼 거죠.” 허징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녀는 마치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부남준도 설마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 못 했겠죠. 제가 이런 처지에 놓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증거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전 모든 걸 철저히 준비해 뒀어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말이에요.” 상혁은 담배를 쥔 손을 잠시 멈추고, 허징인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빛엔 전에 없던 흥미와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었다. “허징인 씨, 오늘 정말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허징인은 상혁의 반응에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스스로를 비웃듯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그저 제 아들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제가 가진 증거는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녀는 한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징인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며,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놈이 제 아들을... 민찬이를 죽였어요! 제 손으로 지켜야 했던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7화 진짜 범인

    금발 남자의 얼굴엔 잔인한 기색이 스쳤다. 허징인과 민찬에게 단 한 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저년의 입과 코를 꽁꽁 막아. 빈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허징인은 절망에 빠진 눈으로 민찬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 우리 민찬이...!’ 울부짖는 어린 민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거대한 배의 20미터 높이의 갑판에서 차갑고 무자비하게 바다로 내던져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감싸고,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허징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의식은 멀어지고, 그녀의 몸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러나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허징인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겁게 아파왔다. ‘아... 여긴 어디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눌러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는 바다에 던져졌는데... 대체 여긴 어디지?’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민찬. ‘민찬? 설마... 설마 내 아들...!’ 그 순간, 절망감이 몰려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허징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누구야? 또다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부상혁 대표님...?”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허징인 씨, 오랜만이네요.” 상혁 곁에 있던 원신민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허징인은 불신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부 대표님,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불안감이 가득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허징인은 곧 머리를 굴렸다. ‘설마... 나를 구한 사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6화 바다로 던져버려

    “조사가 끝났습니다.” 원신민은 망설임 없이 지도를 꺼내 상혁의 앞에 펼쳐 놓았다. “이 배는 F국 항구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항해한 후, 이 항로를 통해 태평양을 건너 L국의 T시 항구에 도착...” 원신민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천천히 움직이며 항로를 또렷하게 그려냈다. “대표님, 우리가 이 사람을 빼돌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오늘 밤입니다. 배가 F국 영해를 벗어나면 일이 훨씬 까다로워질 겁니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긴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 특정 지점을 톡 건드렸다. ‘역시 냉철해.’ 원신민은 눈치를 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굵직한 뱃고동 소리가 항구를 울렸다. 거대한 배는 서서히 항구를 떠나 물결을 헤치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 배는 15층짜리 대형 크루즈로, 가장 아래층은 화물칸으로 쓰이고, 그 위로는 승객의 숙소, 식당, 그리고 각종 오락 시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징인과 아들 민찬은 가장 아래층의 음침하고 습한 방에 배치되었다. 방에는 좁은 창문 하나만 달려 있어 바깥의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엄마, 무서워요!” 민찬은 허징인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허징인은 아들을 꼭 끌어안으며 본능적으로 달랬다. “괜찮아, 민찬아. 엄마가 있잖아.”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낯선 남자들이 순식간에 방으로 들이닥치며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허징인은 경악하며 외쳤다. “당신들 누구야? 뭐 하려는 거야?” 이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그는 거대한 체구와 빽빽이 자란 턱수염을 가졌고, 강렬한 눈빛으로 허징인을 꿰뚫듯 쳐다보았다. 이어서 다소 서툴지만 알아듣기 쉬운 F국말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남준이 말한 여자인가?” 그는 허징인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5화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을 겁니다

    “그저 여자일 뿐인데, 너무 똑똑하면 손해만 볼 뿐이에요.” 남준이 허징인에게 다가가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원하는 걸 이제 줘야 하지 않겠어요?” 허징인은 차갑게 비웃으며 얼굴을 굳혔다. “뭐가 그렇게 겁나십니까, 상무님? 제가 약속을 어길까 봐요? 아니면... 그 물건들이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갈까 봐요?” “그건 사모님이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죠.” 남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허징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고, 속으로는 분이 차올랐지만, 상황을 감안해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어. 지금은 일단 물러서는 게 최선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상무님. 이미 약속한 이상, 전 제 말을 반드시 지킬 겁니다.” 허징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남준과 눈을 맞췄다. “상무님도 본인의 약속을 지키길 바랍니다.” 남준은 가볍게 손을 펼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허징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작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제가 반은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드릴게요.” “안 돼요!” 남준이 단호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사모님한테는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래요?” 허징인은 눈을 감고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차라리 지금 절 죽이세요. 하지만 제가 죽으면 그 물건들이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아두세요.” “엄마!” 곁에 있던 민찬이 울먹이며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무서워요!” 허징인은 민찬을 꼭 안으며 남준을 노려보았다. ‘이 상황에서 물러서면 끝장이야. 적어도 내 아이는 지켜야 해.’ “상무님,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남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묵했다. 남자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어금니를 악물더니 잠시 후 말했다. “죽음도 불사하다니, 사모님의 배짱은 보통이 아니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4화 참 행복해

    집에 돌아온 하연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침실 안.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에서, 하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가정부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레 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상혁은 문틈 사이로 방 안의 하연을 흘깃 바라보며 손으로 가정부를 막았다. “내가 할게요.” 가정부가 물러난 뒤, 상혁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상혁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는데, 원신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그 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상혁은 짧은 문장을 확인한 뒤, 입가에 가볍게 조소를 띄우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마치 모든 걸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이내 천천히 방의 문을 열었다. “하연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하연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상혁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하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따뜻할 때 마셔.”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우유를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컵이 바닥을 드러냈다. “잠깐 회사에 좀 다녀올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상혁은 하연이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이 밤중에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하연은 살짝 의아해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마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남자는 고개를 숙여 하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금 이 순간이 난 참 행복해.” 상혁의 눈에는 하연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이 행복이 오래가길,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길...’ 하연은 상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품에 안기며 살짝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도요. 정말 행복해

  • 이혼 후 갑부의 외손녀가 되었다   제1053화 왜 갑자기 포기했을까?

    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혁의 얼굴에 잠시 스치는 한 줄기 차가운 빛... 하지만 그것은 곧 부드러운 미소로 가려졌다. “지석 도련님 말씀대로, 형제간에는 서로 도와야 하는 법이죠.” “다만, 부씨 가문의 일을 굳이 외부인이 나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상혁의 말에는 분명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의 기운에 압도된 지석은 잠시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석이 변명을 하려는 찰나, 슬기가 먼저 나섰다. “하연 씨, 여기 메뉴 중에서 어떤 게 제일 맛이 괜찮아요? 추천 좀 해주세요.” 슬기의 말에 하연은 조용히 상혁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자, 상혁의 눈가에 웃음이 스쳤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너무 날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별일도 아닌 걸로 걱정하는 하연을 안심시키려는 듯, 상혁은 눈빛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연이 그제야 안심이 되어 바로 슬기에게 메뉴를 추천했다.“오리지널 맛도 괜찮고, 여러가지가 섞인 맛도 좋을 것 같아요. 둘 다 드셔보세요.” “그럼 두 가지 맛으로 각각 한 그릇씩 주세요!” 슬기는 메뉴를 탁 닫으며 밝게 말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석은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그가 나가는 것을 슬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석이 자리를 떠나 자, 슬기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두 분의 오붓한 자리를 불편하게 해서요. 집안에서 주선한 선 자리를 억지로 나온 거라...” 여자의 말투에서 묘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슬기는 문득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보았지만, 상혁은 그녀를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온전히 하연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슬기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 눈빛을 외면했다. “그나저나, 하연 씨.” 슬기가 화제를 돌렸다. “최근 하연 씨가 뒤로 물러나고 회사를 최하성 씨에게 맡겼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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