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1억짜리 시계가 4억까지 불리다니, 정말 놀랍네.”“호가한 사람이 누군지 봐봐. 최하연이잖아. 돈이 넘쳐날 정도로 많은 최씨 집안 아가씨잖아.”“하긴, 4억이 뭐 돈으로 보이겠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설아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번호판을 들었다.“6억!”경매사는 흥분한 듯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었다.“자, 6억 나왔습니다!”그때 하연이 다시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10억!”“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시계 하나에 10억? 이게 말이 돼?”“아무리 돈이 넘쳐 흘러도 그렇지.”“너희가 뭘 알아? 이건 어디까지나 자선 경매이니 기부하고 싶은 만큼 가격 부르는 거겠지.”“...”그때 상혁이 이해되지 않는 듯 하연에게 속삭였다.“이제 그만해.”하연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격은 손목시계의 원래 가격을 훨씬 초월하는 가격이었다.하지만 하연은 상혁을 위로하듯 말했다.“괜찮아요.”하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설아가 다시 가격을 불렀다.“12억!”심지어 가격을 부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마치 12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16억!”하연이 곧바로 따라 가격을 덧붙이자 설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발을 굴렀다.“20억!”이 가격은 단연 최고가라고 말할 수 있었다.심지어 앞서 나온 경매품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최고가이기도 하기에 현장 분위기는 단번에 끓어올랐다.“한설아 마친 거 아니야? 20억을 주고 시계 하나를 산다고?”“뭐 돈이 넘쳐흘러 쓸 곳이 없나 보지.”“설마 눈치 못 챘어? 한설아와 최하연 경쟁하는 거 같지 않아?”“부자들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우린 그냥 구경이나 하자고.”“...”하지만 이번에 설아는 가격을 부르자마자 하연이 뒤따르기를 기다렸다.20억은 이미 설아의 예산을 초과한 금액이라 하연이 가격을 더 부르면 포기할 생각이었다.“네, 20억 나왔습니다!”경매사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자, 다음으로 소개할 경매품은 청자를 주제로 한 조선시대 한복입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1억부터 호가 시작하겠습니다.”“1억 1천만!”“1억 2천만!”“1억 4천만!”“...”얼마 지나지 않아 한복의 가격은 단번에 2억으로 치솟았다.그때 하연이 때마침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3억!”주위 사람들은 하연이 경매에 참가하자 하나 둘 번호판을 내려놓으며 자진 포기했다.하지만 그때, 서준이 갑자기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3억 6천만!”이건 오늘 밤 서준이 처음으로 호가한 가격이었지만,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한복 한 벌을 두고 하연과 경쟁해야 했다.“헐, 이건 또 무슨 명장면이래? 한 대표님과 최하연이 붙었는데?”“전처와 전남편의 싸움이라, 과연 누가 이길까?”“갑자기 기대되는데?”“...”서준이 갑자기 경매에 뛰어들 줄 몰랐던 하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뒤따랐다.“4억 4천만!”그러자 서준 역시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6억!”가격을 외치는 서준의 모습은 마치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오늘 서준이 경매에 참석한 목적은 사실 이 한복 때문이다.그도 그럴 게, 이 한복은 한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이니까.심지어 강영숙이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왔던 가보인데, HT그룹 창립 초기 회사 상황이 어려워 경매에 내놓았었다.나중에 HT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서준은 줄곧 이 한복을 다시 사들이려고 했으니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면서 비매품으로 전해진 터라 어찌할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 그 한복이 경매로 나왔으니 서준은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8억!”물론 하연 역시 이 한복이 필요했다.이번 패션쇼에 이 한복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거니까.“12억!”엎치락뒤치락 가격을 부르는 두 사람은 그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몇억, 몇십억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16억!”“20억!”“28억!”“...”그러다 가격이 40억까지 치솟았을 때, 서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하연을
하연은 설아를 가볍게 무시한 채 제 은행 카드를 꺼내 들었다.하지만 그 카드를 직원에게 건네주려 할 때, 뒤에 있던 상혁이 가로막았다.“이거로 계산해 줘요.”“아니에요. 제 거로 계산하면 돼요.”하연이 다급히 거절하자 상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사양할 거 없어.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사업이 번창하고 이번 패션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단번에 유명해져.”“네?”하연은 놀란 듯 상혁을 보며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상혁은 하연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얼른 제 카드를 건넸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40억이라는 가격으로 하연은 한복을 손에 넣었다.‘상혁 오빠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하연이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직원은 어느새 한복을 포장하여 하연에게 건넸다.방금 무대에 있는 걸 볼 때보다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니 더욱 놀라웠다.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바느질과 고풍스러운 디자인만 봐도 예술품이 따로 없었다.이토록 예쁜 한복을 하연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상혁 오빠, 고마워요.”상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꿀이 뚝뚝 떨어지는 상혁의 눈빛에 서준은 화가 치밀었다.“최하연!”곧이어 서준은 성큼성큼 걸어와 두 사람 앞에 막아서더니 하연의 손에 들린 한복을 빤히 바라봤다.서준을 본 순간, 미소를 띠고 있던 하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무슨 일이야?”이렇듯 소원한 태도는 상혁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그 순간 서준은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불타올랐다.“40억짜리 선물을 그렇게 덜컥 받는다고? 조심성 너무 없는 거 아니야?하연은 어이없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게 한 대표님이랑 무슨 상관이지?”“남자가 여자를 위해 돈 쓰는 건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이야. 속지 않도록 조심해.”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상혁이 하연의 앞을 막아서며 바로 맞받아쳤다.“그게 무슨 뜻이죠?”“내가 무슨 뜻인지는 부상혁 대표님도 잘 아실
서준은 애써 감정을 억제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돌렸다.“이 한복 좋은 거야.”하연은 서준이 한복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눈치채고 되물었다.“이 한복에 관심 있어?”하지만 서준은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가볍게 대답했다.“좋은 건 모두가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하연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포기해줘서 고마워.”이윽고 말을 마친 뒤 경매장을 떠나려 했다.서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멀어지는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런데, 다음 순간.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설아가 뻔뻔스럽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한 대표님, 혹시 6억만 빌려줄 수 있나요?”서준은 고개를 돌려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설아를 바라보더니 비아냥거리듯 말했다.“내가 누구한테 돈 빌려주는 습관이 없는지라.”명백한 거절에 설아는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결국 20이라는 거금을 내지 못한 설아는 경비원에게 쫓겨났다.한편, 경매장을 나선 서준은 기분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 운전석에 앉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그렇게 담배꽁초가 쌓여감에 따라 차 안도 점점 담배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찼다.바닥에 널린 담배꽁초를 한참 바라보던 서준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동후에게 전화했다.“최하연이 DS그룹에서 책임진 프로젝트 뭐가 있는지 모두 알아 와. 최근에 뭘 하고 있는지까지.”“네, 대표님.”동후는 서준의 명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그때 서준이 말을 보탰다.“한 시간 내로 알아 와.”그 말을 마친 서준은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더니 곧장 경매장 주위를 벗어났다.역시나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동후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하연이 최근 책임진 모든 프로젝트를 알아내서 서준의 핸드폰으로 전송했다.최근의 프로젝트와 일부 F국의 프로젝트를 확인하던 서준은 문뜩 나운석이라는 세 글자에 시선을 멈추었다. 서준은 솔직히 운석이 DS그룹에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중요한 프로젝트
그러다 패션쇼 전날 리허설하는 와중에 하연은 예나의 입에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하연, 너 이번 행사장 HT에서 협찬해 준 거 알고 있어? 한서준도 내일 패션쇼에 참석할 거래, 심지어 오프닝 연설까지 한다더라.”하연은 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HT에서 언제부터 공익 활동을 시작했대?”예나가 그 물음에 곧바로 정곡을 찔렀다.“딱 봐도 답 나오잖아. 한서영 때문에 바닥 친 기업 이미지 되돌리려고 용쓰는 거지 뭐.”“아.”하연은 대충 대답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도 그럴 게, 하연은 메인 디자이너로서 내일의 패션쇼를 순조롭게 끝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있잖아. 혹시 한서준이 네가 이번 패션쇼 메인 디자이너인 걸 알고 일부러 행사장 협찬해 준 건 아니겠지?”그때 예나가 무의식중에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너무 간 것 같은데?”하지만 하연은 곧바로 부인했다. 한서준이 어떤 사람인지는 하연이 가장 잘 안다.이제껏 하연의 편 한 번 들어준 적 없는 사람이 이제 와서 하연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더군다나...“한서준의 일은 이젠 나와는 상관없어. 우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접점이 없을 거야.”“문제는 상대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지.”“한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한서준 일이야.”‘난 내 일만 상관하면 그만이야.’...그 시각, DS그룹.하연과의 내기 때문에 호현욱은 최근 하연의 동향을 살피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이사님, 최근 회사의 큰 프로젝트는 모두 나운석이 도맡아 하고 있고 작은 프로젝트는 정태훈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 사장님은 패션쇼 때문에 좀처럼 회사 밖을 나서는 일이 없고요. 하지만 이번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몇억이라는 실적을 올렸더라고요.”“듣기로는 패션쇼에서 선보일 모든 의상을 회사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답니다. 내일 패션쇼가 끝나면 아마 더 많은 주문을 받을 거고요. 그렇다면 적어도 패션 업계 쪽만 해도 5배가량의 실적을 내게 될 겁니다.”성진호의 보고에
B시의 패션쇼는 매우 성대하게 열렸다.현장에는 수많은 국제 패션업계 디자이너들이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업계의 유명 인사, 심지어는 국내외 유명 언론사 기자들까지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모든 사람이 이번 패션쇼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듯했다.하연은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하여 무대 뒤에서 패션쇼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예나도 하연을 도와 메이크업 상태를 확인하는가 하면 모든 모델의 의상을 체크했다.매우 중요한 패션쇼인 만큼 모든 세부 사항에 주의해야 하고, 조그마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하연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옆에서 바빠 움직이는 하연을 본 예나가 다급히 물 한 컵을 건넸다.“물 좀 마시면서 해.”하연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얼른 컵을 받아 들었다.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초대 손님들도 어느 정도 다 모인 것 같아. 패션쇼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쉬어.”“응.”예나의 말에 하연이 가볍게 대답했다.그때, 호주머니에 있던 하연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발신번호를 확인하니 한동안 연락하지 못한 셋째 오빠 최하성이었다.‘오늘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하지?’하연은 조금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하연, 왜 이렇게 늦게 받아?”하연은 스크린에 나타난 하성의 얼굴을 보며 농담 섞인 말투로 물었다.“그러는 오빠야말로 오늘 웬일로 저한테 전화할 생각을 다 했대요?”“에이, 나야 우리 동생 항상 생각하지. 네가 요즘 바쁜 것 같아 방해하지 않은 것뿐이야.”“아.”하연은 그 대답이 못마땅한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때 하성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오늘 패션쇼 연다면서? 축하해.”하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우리 사이에 뭘. 내가 선물 준비했는데,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받으면 잊지 말고 말해줘.”하연은 그 말에 바로 호기심이 발동했다.“뭔데요?”하지만 하성은 뜸을 들
하지만 그런 말에도 하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나를 볼 게 아니라 민헤경을 봐야지. 민혜경이 아직 감옥에 있는데, 시간 나면 자주 가서 봐.”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서준은 낯빛이 어두워졌다.“민혜경 얘기는 하지 마!”서준의 그런 반응에 하연은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연인도 이젠 싫어졌나 봐?”서준은 애써 화를 내리눌렀다.“최하연, 나랑 민혜경 그런 사이 아니야. 왜 내 말을 믿지 않아?”“그만! 오늘 같은 날에 과거사 들먹이고 싶지 않아. 재수 없으면 어떡해.”하연은 서준과 혜경이 무슨 사이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든 손톱만큼도 관심 없었다.“난 이만 가봐야 하니 편할 대로 해.”그 말을 끝으로 하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하지만 하연이 무대 뒤편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하연, 왜 이제야 왔어? 큰일 났어.”예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저를 잡아당기자 하연이 놀란 듯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인데?”“옷이 망가졌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연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간 가위에 갈기갈기 찢긴 메인 의상 몇 벌을 발견했다.원래 모습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의상들을 보면서 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최 사장님, 저희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의상이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이제 어떡해? 패션쇼가 시작하려면 반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하필 모두 메인 의상들만 문제가 생겼으니, 오늘 패션쇼 망했네.”“...”모델들은 서로서로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예나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대체 어떤 개X식이 이랬어? 나한테 잡히기만 해 봐, 내가 그 자식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그때 무대 담당자가 재촉했다.“최 사장님, 이제 준비해 주세요. 모델분들도 나와 주시고요.”하연은 눈앞에 닥친 상황에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아직 얼마나 남았어?”그 물음에 예나
“어떡해?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어. 그사이에 끝낼 수 있어?”예나는 무대 뒤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면서 다급한 말투로 물었다.하연의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옷은 여전히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아니면 주최 측에 시간 좀 연기해달라고 부탁할까?”“안돼. 이번 쇼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잖아. 시간을 끌면 파장이 엄청 날 거야.”“그럼 어떡해?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예나의 말에 하연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심지어 바느질을 시작한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멈추지 않더니 문득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그런데 이 시간에 합당한 이유를 어떻게 찾아?”이에 스태프들도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할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정 안 되면 첫 번째 모델들 한 바퀴 더 워킹하라면 어떨까요? 그러면 적어도 10분 정도는 벌 수 있을 거예요.”“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같은 모델이 한 번 더 워킹하면 문제가 생겼다는 걸 금방 알아챌걸요.”“이번 쇼에 참석한 사람이 많아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 힘들 거예요.”“...”사람들은 각자 한마디씩 제 의견을 냈다.그 시각, 하연의 이마에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지만 하연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옷 수선에 몰두했다.어느덧 시간이 되자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개막사를 시작했다.“시작했나 봐. 이제 곧 HT그룹 대표 연설이 있을 거야. 1조 모델들 준비시켜야 할 것 같아.”예나는 걱정스레 말하면서 얼른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장 뾰족한 수가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델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자 예나는 다급하게 물었다.“하연아, 얼마나 더 필요해?”“15분 정도.”예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델들에게 분부했다.“여러분, 이따 워킹할 때 속도 좀만 늦춰줘요. 결과가 어떻든 우리 함께 노력하여 시간 조금이라도 더 벌어 보자고요.”“알았어요, 예나 언니.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