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경원종이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경원종 고수가 쓰는 진법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경원종이 명불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채 종주님, 경원종의 오행 진법을 보니까 정말 눈이 번쩍 트이네요. 우리가 도울 필요도 없어 보여요. 경원종 혼자서도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노윤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와 채지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공로를 빼앗을 수 있을꺼 생각했었는데 사호문 문주가 죽고 나니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유진우도 정말 대단하긴 해요. 오행 진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채지웅은 두 손을 짊어지고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물론입니다. 그래도 오행 진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만할 수 있어요. 그만큼 그자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요.”도금칼과 이화검 모두 유진우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오행 진법이 변화무쌍한 진법이어서 다행이었다. 하늘과 땅의 힘을 빌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채 종주님, 공로를 세우셨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큰 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노윤하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노 교주님 걱정 마세요. 저희 경원종이 상을 받게 된다면 비연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채지웅은 들뜬 마음으로 직접 다짐했다.“채 종주님께 감사드립니다.”노윤하가 공손하게 말했다.두 사람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돌멩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돌멩이들은 온 지면을 뒤덮으며 굉음을 냈다.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돌덩어리가 폭발하는 것이었다.누군가가 돌멩이들 사이로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그는 수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바닥에 착지했다.아니나 다를까 흙을 헤치고 나온 유진우였다.“뭐? 안 죽었다고?”조금도 다치지
펑!여기저기로부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위력이 넘치는 번개들은 유진우의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 속에 빨려 들어갔고 바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칼날은 전부 터져버려 모양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날카로운 얼음덩이들은 순식간에 물로 녹아버렸다.경원종의 모든 공격은 전부 무력화 되고 말았다.그뿐만 아니라 비연교 제자들의 암기들도 반사되어 공중에서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려오며 사방에서 땡그랑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이럴 수가.”오행 진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채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원종의 다른 고수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금방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한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으니 현재 기진맥진한 그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었다.“도망가야 해! 얼른 도망가야 해!”노윤하가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줄행랑을 놓았다.유진우의 손바닥 그림자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강렬한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의 공격은 일반 마스터가 다다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니 유진우는 이미 대 마스터의 문턱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펑!흰색의 손바닥 그림자가 곧장 따라와 사방을 휩쓸자 미처 피하지 못한 경원종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가까이에 있던 사호문 제자들은 상황파악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뒤에 숨어서 암기를 날리던 비연교 제자들도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유진우가 만들어낸 커다란 손바닥 그림자는 도살장의 분쇄기처럼 그곳에 남아있는 적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지금 이곳은 지옥이 다름없었다.이곳저곳에서 피가 튕기고 산산조각이 난 시체들이 떠다녔다.바닥이 새빨간 피에 물들여져 피로 된 길고 긴 길을 만들어냈다.손바닥 그림자가 유유히 사라지자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경원종에서는 채지웅 혼자 살아남고 전멸했다.채지웅은 바닥에
문관옥의 무기는 빙화검이라는 칼이었는데 전설적인 3대 검 중 하나였다.이 칼은 위력이 셀 뿐 아니라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론 한기가 엄습하고 때론 화염이 치솟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두 속성 모두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력이 강할 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문관옥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빙화검을 칼집에서 꺼냈 다.뜨거운 붉은 불꽃이 순식간에 칼날 전체를 뒤덮었다. 불길이 마치 짐승처럼 포효하는 듯했고 칼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의 화초들이 검게 타들어갔다.“화염 첫 번째 기술!”문관옥이 손목을 살짝 움직이더니 화염을 내뿜는 긴 칼을 높이 쳐들고 허공을 가르며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굉음이 울려퍼졌다.화염에 휩싸인 긴 칼이 갑자기 폭발하여 거대한 칼날이 허공에 떠서 형성되었다.칼자루는 길이가 십여미터쯤 돼 보였고 너비는 3미터 쯤인 것 같았다. 주위에는 불꽃이 감돌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언뜻 보기에는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칼날이 유진우을 향해 이렇게 무겁게 내리꽂히는 듯했다.“너무 무서운데요? 이게 문 도련님의 실력이였군요. 역시 강하세요.”“맞아요, 역시 도련님이세요. 거의 마스터 수준아닌가요?”“문 도련님 같은 분만이 유진우와 겨룰 수 있죠.”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칼날을 보고 있자니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을 나타냈다.비교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지만 경원종 고수들의 공격과 비교해 보면 문관옥의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이게 바로 일반 고수들과 천교의 차이였다.“검!”유진우가 이렇게 말하자 땅에 떨어졌던 청하검이 그대로 10여 미터 거리를 날아오더니 유진우의 손에 쏙 들어왔다.유진우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머리 위에 꽂혀지는 불꽃을 살짝 건드렸다.그러자 하얀 빛이 순식간에 검을 뚫고 나와 빙화검의 불꽃에 세게 부딪쳤다.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두 칼날이 마주쳤다. 그 찰나, 땅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에너지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마다 온통 난장판이었
문관옥의 맹렬한 기세에 유진우는 그저 검으로 막아내기만 했다. 그리고는 그저 문관옥이 마음껏 공격하게 내버려두었다.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눈에는 문관옥이 계속 유진우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보였다.계속해서 공격한다면 문관옥이 곧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문 도련님께서 익힌 기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격하면 할수록 위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이 싸움을 보니 유장혁이 더 이상 당해 내지 못할 것 같네요...”“천재라고 하길래 뭐 얼마나 대단하나 했는데... 결국 문 도련님 같은 천교를 당해낼 수 없잖아요!”“문 도련님 파이팅입니다! 유진우를 죽여버려요!”기세등등하게 공격을 이어 나가는 문관옥을 보며 그들은 놀라워 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일부 사호문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죽여라! 죽여라!”문관옥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손에 든 칼을 점점 더 빨리 휘둘렀다. 그러면서 기세도 점점 더 거세졌다. 그의 공격은 마치 바람에 소나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유장혁, 아까는 그렇게 건방지더니... 왜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막지만 말고 반격해 봐! 공격해 보라고!”“왜 방어만 하고 있어?”“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전에는 그렇게 멋있고 대단하던 사람이었잖아. 지금은? 겨우 내 공격을 버티고 있는 주제에!”“그러면서도 천재라고? 웃기지도 않아!”“너한테 그럴 자격 따위 없어!”“어때? 내 실력이 느껴져? 많이 무섭지? 절망적이지?”“안타깝지만 오늘은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문관옥은 공격하면서도 계속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댔고 유진우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려 했다.하지만 그의 꼼수에 유진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사실 그는 문관옥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문관옥은 대단하지만 유진우보다는 약했다.다른 조직이 아닌 호룡각이었기에 유진우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들만 보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분명 다른 고수
“대 마스터...문 도련님의 한 방은 분명 대 마스터에 버금 가는 실력입니다!”채지웅은 그를 올려다보며 놀라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유진우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문관옥이 더 강할 줄은 몰랐다.‘마스터의 경지로 대 마스터의 실력을 발휘하다니... 말도 안 돼. 역시 천교는 다르다는 건가?’“이런 기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온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노윤하는 입을 딱 벌린 채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고수라고 생각했지만 문관옥 같은 고수 앞에서 자기는 정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너무 대단하시네요. 제 실력이 문 도련님 절반이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사호문 제자들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경외심을 느꼈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문관옥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인제야 그들은 마침내 천교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깨달았다.“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문관옥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스텝을 밟고는 칼을 들어 앞으로 찌를 뿐이었다.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지만 화려한 테크닉도 없는 그저 단순한 공격이었다.그러나 문관옥이 들고 있는 거대한 칼날에 비하면 유진우는 코끼리 앞에 선 개미처럼 작고 약해 보였다. 입김만 불어도 부서질 듯이 말이다.“죽어!”유진우가 정면으로 맞서자 문관옥은 칼을 든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그리고는 양손에 칼을 꼭 쥐고 아래로 내리쳤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의 칼끝이 무관옥의 칼날을 정확하게 찔렀다.순간, 공포스러운 파동이 하늘 높이 치밀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에 있던 꽃과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버렸고 바닥마저도 한층 벗겨져 버렸다.관전하는 무사들도 쓰러져서 곤두박질쳤다.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서야 무사들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 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구덩이 안에는 흑백의 그림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흰색은 유진우였고 검은색은
“윽...”그때 문관옥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피를 내뿜었다.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손에 든 빙화검을 바닥에 꽂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마지막 공격에서 문관옥이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뭐라고요?”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문관옥이 졌다고? 말도 안 돼!’문관옥은 4대 군신들의 우두머리였고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과 싸워왔었다.방금 공격에서 보여준 건 대 마스터가 되어야만 쓸만한 기술들이었다.‘그런 고수가 어떻게 질 수 있어? 유진우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문관옥도 이길 수 없을 만큼?’“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문관옥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그가 전력을 쓴 공격도 쉽게 막아냈으니 말이다.문관옥은 유진우를 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다쳐버렸다.‘정말 말도 안 돼!’‘어떻게 된 거지? 유진우는 분명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어. 서경왕부의 도움이 없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갖춘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내가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약한 거야. 제대로 된 싸움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문관옥은 이를 악물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 피를 뿜었다.“4대 도련님 중에서 네가 최약체 아니야?”유진우가 말했다.실력으로만 봐서는 천하회의 한비영이 문관옥보다 훨씬 나았다.“날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니야?”화가 난 문관옥이 명령했다.“백호랑! 내 명을 들어. 당장 이놈을 죽여!”“돌진!”명령을 받은 백호랑들은 칼을 들고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이 백호랑들은 모두 문관옥이 정성껏 길러낸 호위무사들로 충성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강했다.물론 그도 백호랑이 정말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 시간을 끌면서 유진우의 기력을 소모하기 위해서였다.이번 작전에 참여한 세력들은
“응?”유진우의 시선이 느껴지자 문관옥은 밀려오는 불안함에 눈꺼풀이 떨렸다.조금 전, 백호랑이 시간을 끄는 틈을 타 그는 이미 단약을 삼켜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체력 역시 회복하고 있었다.몇 분 정도 지나자 상처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금세 사라졌고 체력도 빠르게 돌아왔다.그 반면, 유진우는 계속 이어지는 전투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이제 역전된 기세에 문관옥은 어쩌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문관옥은 더 자신감을 얻었다.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겁한 방식일지라도 단독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영웅 여러분, 유진우의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을 겁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분명 죽일 수 있을 겁니다.”문관옥이 큰 소리로 외쳤다.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의 모습은 문관옥의 말처럼 체력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유진우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백호랑이 데리고 온 군사들의 시신은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은 피로 새겨진 교훈이었다. 그 누가 감히 선뜻 나설 수 있을까?“오늘의 임무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스크가 있어야만 성공이 따르는 겁니다. 저놈만 죽이면 여러분들은 평생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문관옥이 차분한 말투로 사람들을 유혹했다.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얼굴에 의욕이 넘쳤다.유진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일 뿐이었고 방금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해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을 것이다.그들이 힘을 모아 공격하기만 한다면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어디 한 번 앞으로 나와 봐.”유진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사람들은 놀란 기색으로 뒷걸음질 쳤다.조금 전의 혈투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려움으
백발의 노인은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경원종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천하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이미 2년 전부터 한비영이 대 마스터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이런 절세의 천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였다.“한비영 도련님이 나서주셨으니 이제 유진우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미모의 부인은 기쁨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한비영이 와주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한비영 도련님을 뵙습니다!”한비영이 땅으로 착지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존경을 표했다.“다들 물러나 계십시오. 이제 전투는 제가 맡습니다.”한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사람들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양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내어주었다.위험을 피하면서도 공로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에 사람들은 기꺼이 옆으로 물러나 한비영의 실력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도련님, 유진우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혼자서 상대하시기엔 무리일 수도 있으니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관옥 도련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싸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니 도련님께선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하지만 비영 도련님, 이번 일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께 싸우시는 편이 어떠신지요.”문관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그러십니까, 도련님께선 이 한비영을 못 믿으신다는 겁니까? 설마 제가 유진우 하나 상대 못 할 것 같나요?”한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도련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니라 임무가 우선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도련님 혼자 책임을 지시기 버거울 겁니다.”문관옥이 경고하듯 말했다.“저는 무림인으로서 무림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이봐요!”문관
“내 실력이 백준 아저씨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너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유진우가 말했다.“날 상대하겠다고? 네까짓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채원진이 가볍게 비웃었다.채원진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장혁은 이제 막 대 마스터에 올라선 수준이었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고 해도 그의 최선은 중기 대 마스터 수준이었다.그 반면에 채원진은 대원만에 가까웠다.두 사람의 차이는 두 단계 정도였지만 그 두 단계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차이를 보여주었다.유장혁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봐야 아는 거잖아?”유진우는 손가락 끝으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등 뒤에서 푸른 창궁검이 빠져나와 가볍게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좋아! 그렇게나 자신 있다고 하니, 나한테 직접 덤빌 기회는 주도록 하지.”채원진이 손을 휘두르자 빨간 불길을 머금은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그 창은 다름 아닌 이원무의 유품이자 신병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용담적염창이었다.“너희는 절대 끼어들지 마. 오늘만큼은 내 실력으로 저 녀석의 콧대를 제대로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창을 휘두르는 채원진의 몸에서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그의 몸에서 나온 붉은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구름 위에서 천둥이 치고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수백 미터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었다.보이지 않는 기세가 천지의 이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응?”채원진의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유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유진우는 이때까지 무도계에서 줄곧 순조롭게 나아가며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채원진에게서 전에 없던 압박감을 느꼈다.오늘 이 싸움이 고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유장혁! 어서 덤벼, 네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고 싶네!”채원진이 한 손을 내밀더니 이내 도발
왕부의 병력은 모두 정예병들이었고, 호룡각은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두 쪽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상황은 더욱더 참혹해져만 갔다.왕부 쪽에서는 유천우가 이끌고 있었고 호룡각 쪽은 사철수가 이끌고 있었다.유진우와 채원진은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두 병력이 격렬한 혼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유진우도 포메이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안개 포메이션과 팔괘양의진이 두 포메이션은 모두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는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주변에 설치해두었던 폭탄들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정말 궁지에 몰려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게 아닌 이상, 자폭할 생각은 없었다.“천우야! 계획이 틀어졌어. 얼른 사람들 데리고 빠져나가!”잠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진우가 과감히 명령을 내렸다.왕부의 정예병들도 절대 밀리는 쪽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얻는 이득은 별로 없어 보였다.왕부의 병사 한 명이 세 명에서 다섯 명까지 상대해본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호룡각의 병력은 왕부의 열 배에 달했고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만 끌었다가는 체력만 고갈되어 전멸하고 말 것이다.아직 정예병들의 체력이 충분할 때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어찌 됐든 정예병들이 이런 곳에서 헛되이 희생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대형으로 서도록! 다 같이 여길 빠져나가는 거다!”명령을 받은 유천우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곧바로 부하들을 지휘해 대형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병력이 약해 보이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고수들로 이루어진 왕부 정예병들의 실력은 호룡각 병력보다 훨씬 뛰어났고 훈련도 잘됐던 덕에 팀워크까지 좋았다.그들은 아주 신속하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다.호룡각의 포위망은 순식간에 뚫려버렸다.“얼른 뒤를 쫓아! 절대 놓쳐서는 안 돼!”유태범은 마음이 급해진 건지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쫓아가!”사철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바로 엄청난 병력을 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거야. 그리고 채원진은 유태범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이런 부대를 보낸 거고.”“그럼 두 번째는요?”유천우가 계속해서 물었다.“두 번째는 유태범이 배신했다는 건데, 이건 분명 호룡각이 파놓은 함정일 거야. 대타들만 보내서 우릴 유인해놓고 한 번에 죽이려는 거겠지.”유진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전자라면 유태범만 위험에 빠지고 말겠지만 후자라면 우리 모두가 함정에 빠진 거나 다름없어.”“다들 똑바로 들어! 언제든 방어할 수 있도록 준비해!”유천우는 유진우의 말에 곧바로 몸을 돌려 명령을 내렸고 그와 동시에 왕부의 정예병들은 즉시 흩어져 경계태세를 갖추었다.“하하하... 지금 방어 해봤자 이미 늦었어.”갑자기 하늘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엄청난 병력이 사방에서 몰려왔다.눈에 보이는 곳마다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유진우가 데리고 온 정예병은 천 명가량이었지만 호룡각에서 파견된 인력은 열 배가 넘어 보였다.사방에서 몰려온 병력을 보아하니 갑자기 등장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큰일이에요! 아무래도 저희가 당한 것 같습니다!”유천우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친위대를 지휘해 방어 포메이션을 구축했다.그들은 자신들이 호룡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호랑이가 집 앞까지 찾아온 격이나 다름없었다.“포위해!”수천 명이 넘는 호룡각의 병력은 곧바로 왕부의 정예병들을 완전히 포위했다.왕부와 호룡각 모두 정예병 중의 엘리트만 선별해서 출동시켰다.다만 호룡각 쪽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할 뿐이었다.“이런 망할! 유태범 이 개자식이 감히 배신을 해!”유천우는 분노에 가득 찬 채 이를 악물었다.그들의 이번 작전은 호룡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적은 병력의 최정예병들만 데려왔다.하지만 유태범이 감히 왕부를 배
“이런 미친! 이 새끼들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많은 거야?”“이대론 끝이 없겠어! 아무리 죽여도 끝이 안 보인다고! 한 무리 죽이면 또 한 무리 몰려오고, 끝이 안 나.”“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안 그러면 계속 싸우기만 하다가 다 죽을 거야!”“다 안개로 덮여 있어서 방향도 제대로 안 보이고, 그림자들도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뚫어?”호룡각 일원들은 이미 갈피를 잃어가고 있었다.초반에는 얕잡아봤던 그림자들이었지만 이내 그림자들은 점점 쇼크와 공포로 변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탓에 사람들은 서서히 절망 속에 빠져들어 갔다.그림자들을 이길 수는 있었지만 그림자들을 처리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림자 하나를 죽이면 둘이 되고, 둘을 죽이면 넷이 되었다.그들이 얼마나 죽이던 그림자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많아지기만 했다.그 반면에 호룡각 일원들은 그림자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목숨을 잃어갔고 그럴수록 아군의 수는 줄어만 갔다.이런 상황에 계속해서 소모전을 벌인다면 결국 전멸하고 말 것이다.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한시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어르신,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검은 옷의 남자가 노인의 옆에서 그림자를 해치우며 조언을 구했다.그들은 그림자의 공격뿐만 아니라 발밑의 늪도 경계해야 했다.자칫했다간 늪에 빠져 땅속에서부터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움직임이 제한될 것이 뻔했고, 그렇게 되면 그림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이전에 죽은 동료들도 대부분은 이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그걸 나한테 물으면, 난 누구한테 물어야 하냐?”노인은 화난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단순한 안개 포메이션뿐이었다면 그의 통술로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문제는 안개 포메이션 위에 그보다 더 강력한 포메이션이 추가되어 두 포메이션이 하나로 합쳐진 상태라
“슈욱!”빨간 신호탄이 긴 불꽃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하지만 중간쯤 올라가자 팔괘양의진의 반투명한 장막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밖으로 나가려던 신호탄을 그대로 막아냈다.“펑!”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신호탄이 터져버렸지만 장막에 흡수된 불빛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포메이션 안에 있던 노인과 그 일행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스쳐 지나가는 빨간 빛뿐이었다.그것 외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신호도 못 보낸다는 건, 이 포메이션이 우릴 완전히 이곳에 가둬버렸다는 뜻이 되겠구나.”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지금 이 포메이션의 약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알 수 없는 포메이션이 안개 포메이션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두 포메이션이 겹쳐져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준 덕에 그 위력은 배가 되었다.“큰일이다! 공격이 들어오고 있어!”노인이 포메이션을 분석하고 있던 그때, 갑작스러운 경고 소리가 들려왔다.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아 마치 연기처럼 느껴졌다.실체가 없는 그림자들의 움직임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가까이 다가온 그림자의 손은 곧장 칼날로 변해 호룡각의 멤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죽여!”더 생각할 틈도 없이 호룡각 일행들은 곧장 칼을 빼 들어 싸움에 나섰다.늪으로 변해버린 땅 때문에 행동이 제약을 받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림자들의 실력이 후천 무사 수준이었고 그중 일부만이 선천 초기 단계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반면, 호룡각 멤버들은 거의 모두가 선천 고수들이었던 데다가 훈련까지 잘되어 있던 덕에 호흡까지 완벽했다.그들은 빠른 속도로 그림자들을 하나둘씩 처리하며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결국,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몇 명이 중상을 입는 정도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호룡각의 엘리트 멤버들은 그림자를 완전히 해치울 수 있었다.“하하하... 대단한
유진우의 지휘 아래, 팔괘양의진이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짙은 안개가 감도는 구역의 가장자리인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의 여덟 방향에서부터 하얀빛들이 솟아올랐다.하늘로 높이 치솟은 그 하얀 빛은 마침내 하늘에서 모여 거대한 빛의 장막으로 안개 전체를 덮어버렸다.반투명한 빛의 장막은 겉보기엔 거대한 달걀 껍데기처럼 느껴졌다.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계속 달리던 호룡각 일행들은 갑자기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던 땅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더니 이내 늪 같은 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게다가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엄청난 힘이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늪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땅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갑작스러운 변화에 호룡각 일행은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실력으로 따지자면 그들 역시 어디 가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은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어딜 밟아도 이미 늪으로 변해버린 땅은 그들은 아래로 강하게 끌어내렸다.발버둥 칠수록 끌어당기는 힘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진기를 모두 끌어내 이 끔찍할 정도로 강한 중력에 저항해야 했다.하지만 그럴수록 체력 소모만 커질 뿐, 별 소용은 없었다.일정한 시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들의 진기는 모두 소진될 게 뻔했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늪 속에 빨려 들어가 질식사하고 말 것이다.“어르신, 설마 안개 포메이션이 땅까지 바꿀 수 있는 겁니까?”검은 옷의 남자가 물었다,“당연히 안개 포메이션만으로는 못 바꾸지. 이건 또 다른 포메이션일 거야.”빨간 옷의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 포메이션 속에 있는 또 다른 포메이션에 갇힌 거야. 안개 포메이션 위에 더 강력하고 기묘
문제는 그들은 지금까지 쭉 앞으로 직진만 했고 방향을 틀거나 뒤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렇다면 답은 하나, 그들은 이미 갇힌 상태에서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는 걸 설명해 준다.“알았다. 이건 덫이야.”오선우는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일단 혼미 덫에 걸린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방향감을 잃는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전투력을 잃고 그냥 죽게 된다고 했어.”“이런 덫을 사용 안 한지가 꽤 오래된 거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쓰는 걸 보면 분명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아.”선두에 서 있던 윤종수가 엄숙하게 말했다.“윤 대장, 이제 우리 어떡하죠?”이때, 한현오가 물었다.“당연히 기회를 봐서 이곳을 빠져나가야지. 이대로 갇히게 되면 죽는 길밖에 없어.”윤종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순간 눈에서 빛이 번쩍거렸다.호룡각의 베테랑 임원중 한 명으로서 그는 무술도 무술이지만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동공술이었다.이 기술은 주로 사람을 통제할 때 많이 사용했는데 최면술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보조 역할은 시력이 좋고 세심함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하여 일단 이 기술을 발휘하기만 하면 주변의 세부 사항이나 이상한 점은 모두 그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된다.“찾았다!”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던 윤종수는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곧바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가 출구야. 날 따라 와!”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달려갔다.달리면서도 그의 눈빛은 마치 전구처럼 유난히 밝게 빛났다.아까까지도 짙게 피어오르던 안개는 순간 능력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이 시각, 유진우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나침반 한가운데 노란빛이 발사되면서 순식간에 그 위로 빛과 그림자가 형성되었다.이 빛과 그림자는 혼미 덫을 의미했고 빛과 그림자 속의 수십 개의 작은 빛은 호룡각 사람들을 대표했는데 유진우는 이 빛의 움직임을 통해 사람들의 구체적인 위치를 판단할
“타겟 발견. 행동 개시!”호룡각 사람을 발견한 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재빨리 뽑았다.“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저 사람들이 포위망에 들어올 때가지 기다려보자.”유진우는 유천우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를 진정시켰다.전방 100미터 지점에 두 개의 덫을 파뒀는데 일단 호룡각 쪽의 사람들이 들어가면 바로 갇히게 된다.첫 번째 덫은 일명 혼미 덫이라고 불리는데 공격 범위가 몇 킬로미터로서 가장 넓었고 일단 진입하면 현기증이 나면서 방향감을 잃게 된다.두 번째 덫은 음양 덫이라고 서로 다른 모드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공격 모드이고 다른 하나는 방어 모드라 공격과 방어를 마음대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이었다.유진우는 공격모드로 바꾼 뒤 여덟 명의 무술 고수들을 곳곳에 배치해 뒀다.이 여덟 명은 이 안에서 끊임없이 환영으로 변해 일단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을 전부 환영으로 공격할 수 있다.이 상태로 만약 적을 계속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곳에 갇혀 공격 한 번을 못 하고 그대로 죽게 된다.두 개 덫 외에 유진우는 또 근처에 많은 폭탄을 설치하라고 시켰다.아무리 호룡각 사람들이 운 좋게 덫에서 빠져나와 그곳을 탈출한다고 해도 결국 폭탄으로 전부 죽일 심산이었다.이렇게 되면 실제로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상대방은 이미 절반 정도가 죽게 될 것이다.“포위망 안에 들어왔어. 작전 개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유진우는 재빨리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했다.“작전 개시!”유천우도 따라 외치자 왕부 쪽의 사람들이 잇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첫째 덫이 개장되자 갑자기 하얀 연기가 바닥에서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 반경을 뒤덮으면서 범위를 넓혀갔다.“왜 이래? 뜬금없이 웬 안개야?”“산속에서 아침 안개가 끼는 게 정상이지. 호들갑 떨지 마.”“아니야. 안개가 왠지 이상하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갑자기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고 호룡각 사람들은 곧 경계심을 가지고 저마다 무기를 꺼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러나 한참
유진우는 유태범과 다시 한번 계획을 짠 뒤 호룡각 기지에서 떠났다.그의 말대로 오래 머물면 위험한 곳이었고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런 모험은 할 필요가 없다.역시나 바람처럼 왔다가 갈 때도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그러나 유진우가 떠나자마자 유태범은 테이블 위의 유선 전화를 들더니 곧바로 통제실 번호를 눌렀다.5분 뒤.채원진이 몇 명의 병사를 데리고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유 장군, 급하게 저를 찾았다면서요?”“채 각주, 방금 호룡각 기지에 서경왕부 쪽의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던데요?”유태범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 진짜요?”채원진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되물었다.“유 장군, 확실한가요?”“당연하죠. 방금까지 제 눈앞에 있었는데요.”“누구예요? 왜 유 장군을 만나러 왔대요?”“그 사람이 바로 서경왕부의 세자, 유장혁입니다!”유태범은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몰래 여기에 온 목적도 저랑 손을 잡고 채 각주를 살해하기 위함이었고요.”“유장혁?”채원진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만약 그 사람이라면 우리 쪽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네요.”필경 경천 랭킹 10위의 고수라면 당연히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채원진조차도 100미터 이내에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채 각주, 유장혁은 아직 제가 호룡각에 합류한 사실을 모르고 저랑 작전을 논의하고 갔어요.”유태범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내일, 채 각주께서 기지를 떠나 왕성으로 갈 계획이니 사람들을 데리고 도중에 잠복해 있으라고 했는데 진짜 제 말을 믿더라고요. 게다가 저랑 같이 채 각주를 살해하자고 제안했어요.”“이렇게 직접 저를 죽이러 온 걸 보면 이제 제가 진짜로 서경왕부의 눈엣가시가 된 것 같네요. ”채원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채 각주, 우리는 이번 기회에 작전을 잘 짜서 한 방에 유장혁을 없애야 합니다. 유만수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고 오래 살지도 못할 겁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