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윤이건은 눈쌀을 찌프리고 그의 눈빛은 날카로워진다.아니나 다를까, 당시의 그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만이 아니다.“다시 찾아낼 수 있어?”“대표님, 시간이 필요합니다.”윤이건 밑에 사람도 그의 성격을 닮아 일처리가 깔끔하다.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도 분명하여 공을 세우기 위해 함부로 임무를 받지 않는다.“가능한 빨리 처리해.”윤이건은 가볍게 입을 열고 말한다. 전화쪽에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다음에야 전화를 끊는다.인터넷 정보뿐만 아니라 메일로 받은 내용까지 모두 삭제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윤이건은 자기도 모르게 냉소를 짓는다. 재주가 많은 놈은 참 많기도 하다.몸을 살짝 구부려 테이블 아래 서랍에서 겹층을 열고 종이 몇 장을 꺼낸다.이 종이에 담긴 내용이 바로 전에 조사한 자료들이다.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윤이건은 사전 프린트하였다.나머지는 프린트하기도 전에 바로 지워졌다.일부 부족한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윤이건은 두 손으로 턱을 바치고 침묵에 빠진다.머릿속에는 이진의 모습과 그녀 허리의 흉터가 떠올랐다.지금 그는 이진의 흉터가 틀림없이 화상인 것을 단정할 수 있다.‘근데 낮에 그 이상한 모습은 또 뭐지?” 다음날, YS 그룹 회의실.회의실에는 지금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때 천천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윤이건, 그의 뒤에 비서도 같이 따라 들어온다.비서인 유연서도 당연히 이번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다만 그녀는 회의보고를 해야 하기에 앞당겨 도착했다.회의가 시작되기전, 윤이건은 이번 회의의 목적이 바로 모진호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라는것을 아주 잘 알고있었다.이전 마케팅팀에서 이미 개발 모델을 준비하였는데, 그에 의해 취소되었다.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제기한 재료 공급에 관하여 결책을 내리는 것이다.윤이건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시선이 닿는 대로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았다.지금 그의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아 그 누가 닿아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인다.그리고 윤이건이 입을
윤이건 말투가 변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히 알아들었다.아까 침묵했던 사람도 지금은 머리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있다.비록 회의에서 일어나는 이 일들이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라고는 하지만 만약 불꽃이 자기한테 튄다면 그건 재미로 끝날 일이 아니다.그렇다. 그들의 생각은 맞았다.윤이건은 확실히 불쾌하다.그러나 이런 불쾌함은 아랫사람들과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 자가 이진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YS 그룹이 여러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오늘의 성과를 이룬 것은 윤이건 때문이다.그는 회사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다. 설령 상대방이 청소 아줌마라도 마찬가지이다.하지만 오늘 장 과장이 사적인 감정으로 회사 앞길을 막은 것은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윤이건의 갑자기 전환된 카리스마에 대해 장 과장도 멍해졌고 마음도 따라서 떨린다. 그는 이미 윤이건과 싸운지 오래됬다. 하여 이런 당황함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그는 가볍게 목소리를 다듬고 비웃는 눈빛으로 말한다.“대표님, 대표님도 사적인 개인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개인사를 기업과 함께 하는 것이 도리는 아니지 않습니까?”주위 사람들 모두 침묵한다. 장 과장은 경멸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고, 이 모든 것은 윤이건의 눈에 보였다.몇 초 동안 침묵한 윤이건은 이제가 입을 연다.마치 다른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마냥 차갑고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장 과장은 지금 자신이 공적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공적인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곁에 앉은 유연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말끝마다 이진 그년을 위해 하는 말이다.“현재, 우리 회사 입장에서 보면 AMC와 GN 그룹 대표와 함께 하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예요?”장 과장은 이진의 신분과 그 뒤의 세력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다.단지 윤이건의 협력 대상이자 아내라는 것밖에 모른다.하여 이 말을 들은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어쩔바를 몰라한다. “물론 장 과장이 경솔한 결정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럼
유연서는 회의가 언제 끝났는지, 또 자신이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의자에 혼자 앉아서 노트에 적힌 엉망진창인 기록을 보고 있다. 마치 넋이 나간 것 같다.그녀는 윤이건 옆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이 자의 이혼을 간신히 기다렸다.그때 그녀는 매일 같이 윤이건이 어떻게 자신에게 프로포즈할가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윤이건의 눈안에도 들지 않았던 이진이가 그녀의 눈엣가시로 되었다.원래 그 당시 화재 사건 기록을 지우고 이진을 떠나보내면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역시 너무 유치한 생각이다.입을 깨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호진이니?”전화 저쪽은 몇 초 동안의 침묵이 지속되더니 갑자기 흥분에 넘친 목소리가 들린다. “연서니? 너 연서 맞지?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전화까지 하고?”저쪽 소리를 들으며 전화 이쪽에 있는 유연서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에는 온통 하찮게 여기는 표정이다.어쩌면 혐오라고 말해야 더욱 맞는 것 같다.유호진, 이 바닥에서 유명한 재벌 2세이다.바람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남자는 하필 오랫동안 유연서에 빠져있었다.몇 년 동안 바꾼 여자들은 많지만 이 여자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였다.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참 어쩔 수 없는 것이다.반대로 유연서는 이 사람을 그냥 이용하려고 한다.윤이건 옆에 있던 몇 년 사이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유호진을 찾는다.유호진도 유연서가 자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런 불평과 원망도 없다.“응, 오랫만이야. 잘 지냈어?”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전화 한편의 들뜬 소리를 듣으며 조금도 마음속에 두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몇 마디 답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호진아, 너 시간있어? 한 번 만나고 싶은데, 사실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이 전화 뒤에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유호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신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응한다.마치 당장이라도 전화
당시의 윤이건은 이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하지만 다친 유호진은 잘 기억해 두었다. 이 또한 유연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이 일 때문에 그녀는 이 사람의 깊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연서아, 걱정하지마. 내가 가만두지 않을거야.”유연서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말이다.“이 여자가 너에게 한 짓, 내가 열배로 갚아주지!”“아니야…….”이 말을 듣고 유연서는 얼른 그자를 말리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주 득의양양했다.“호진아, 너무 지나치면 안돼, 목숨까지 잃을 만한 일은 아니야.”유호진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유연서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사실, 이진은 자신이 아주 깨끗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도도한 것이고…….”말이 끝나고 유연서는 유호진에게 뜻있는 눈길은 주었고 유호진은 바로 알아차렸다.“그럼 내가 사람불러 그 결백을 망치면 되넸게. 더는 건방질 수 없게.”‘머리는 나쁘지 않네.’속으로 가볍게 웃는 유연서, 손수건으로 눈을 닦은 척 한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 한 방울도 없다.윤이건은 심한 결벽증을 갖고 있다. 몸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말이다.‘만약 이진의 몸이 더 이상 깨끗하지 않는다면 윤이건은 그녀를 받아줄가?’가볍게 숨을 쉬고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이와 동시, GN 그룹 대표 사무실.전화를 든 이진은 전화기 저쪽편에서 케빈의 울부짖음이 들었다.“보스, 일은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이젠 돈까지 빼앗아 갑니까?”“한 시간 내로 가져올 수 있어?”이진은 손가락으로 귀를 비비며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보스, 이러시면 안되죠. 차별이 너무 심하십니다.”“뭐라고?”케빈이 말에 이진은 웃음만 나온다.만약 더 이상 AMC를 그렇게 놔버려 둔다면 아마 케빈도 미쳐버릴 직전일 것이다.“그렇잖아요.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좋아하는거, 편애가 너무 심하십니다!”“한 시간 뒤, GN 그룹.”이진은 전화를 끊었고, 케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웃기시네.이 말을 들은 이진은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반면 케빈은 이상한 눈빛으로 앞에 있는 50대 남성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GN 그룹의 이사들인데 돈 얘기를 꺼내자 모두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시작했다.“그래요? 이사님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네요.”이진은 간사한 눈빛을 하며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트렁크를 가리켰는데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제가 사실은 여러분들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비서더러 자금을 다시 차출하라고 할 생각이었거든요.”“그건 안 돼!”이번에 이진의 말을 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기태였다.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와 오랫동안 말을 섞지 않았던 아버지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지켜보았다.“이 대표님…….”이기태가 이렇게 자신을 부르자 이진은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들어 그더러 계속 말하라고 했다.“지금 자금이 이미 차출되었는데 다시 실랑이를 벌인다면 양쪽의 장부가 모두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요?”“맞아요, 더군다나 이 대표님께서 저희 GN 그룹을 위해 자금을 차출하신 걸 저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어찌 동의하지 않겠어요.”그러자 몇몇 이사들이 또 재잘재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결국 이 돈은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사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이진은 잘 알 수 있었다.모진호의 투자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 AMC에서 차출해온 돈들도 모두 휘말릴 것이다.게다가 이들의 말대로 계속 진행해 나간다면 그녀는 반드시 밑천을 잃고 모든 돈들을 그들에게 빼앗길 것이다.이 늙은이들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자 이진의 미소는 점차 수그러들었다.그들을 상대할 때 이전에는 가소롭기 짝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뜻밖에도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어머니께서 피 땀을 흘려가며 세운 회사가 이기태 때문에 지금 어떤 화를 입게 된 건지.그 후 GN 그룹의 직원들은 모두 그들 대표의 곁에 또 다른 비서가 한 명 생겼다는 것을 발견할 수
이영이 말을 마치자 임만만은 고개를 들고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만 씨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방금 졸업한 대학생들이 직장에서 혼나는 건 흔한 일이긴 한데 방금 상황에서 그러는 건 이 대표가 너무 한거 아니야? 난 만만 씨가 혼나는 게 너무 마음 아팠어.” 이영은 말하면서 임만만의 팔을 붙잡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친한 친구 같았다.“이영 씨, 그렇게 말하진 마세요. 이 대표님께선 저한테 충분히 잘해주세요…….”말을 하던 임만만의 목은 점점 메었다.“잘해준다고? 진짜 만만 씨한테 잘해준다면 만만 씨가 비서인 걸 뻔히 알면서 밖에 나가 업무를 보라고 하겠어?”이영의 목소리는 하마터면 복도 밖의 사람들에게 들릴 뻔했다. 그녀는 마치 울분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이영의 이런 모습에 임만만의 정서는 그제야 조금 가라앉았다. 임만만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도 좀 이해가 안 갔거든요. 전 단지 펜을 검사하지 않은 것뿐인데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있으신지…….”임만만이 속마음을 얘기하자 이영의 입꼬리는 순식간에 올라갔다.‘역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계집애라 그런지 빨리 넘어오네.’그러나 아직 임만만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에는 이르기에 천천히 꼬드겨야 한다.이영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두 마디 얼버무린 뒤 비상계단을 떠났다. 임만만과 대화를 마친 후 분명 또 계기가 있어야 임만만이 그녀에게 마음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이 계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이날 오후 점심시간에 이영은 GN 그룹의 탕비실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그 구역은 공개된 구역이라 고객들이 쉬러 오는 김에 업무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몇 개의 룸도 설치되었다.이영이 매일 그중의 한 개 룸을 차지하고 휴식하는 건 모든 직원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결국 이영은 매니저에서 직원으로 바뀌었지만 신분은 그대로였다. 이영은 여전히 이기태의 딸이고 이진의 동생이다.
“모진호 프로젝트요? 그게 제가 퇴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임만만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영은 흔쾌히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만만 씨, 솔직히 말해서 이진이 막 GN 그룹의 대표를 선임했는데 혼자서 모진호 프로젝트를 맡는다는 게 가능해 보여?”이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녀는 임만만을 가능한 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 써먹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만약 이진이 계속 이렇게 혼자서 큰 프로젝트들을 맡는다면 GN 그룹은 반드시 큰 손해를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녀를 도와주는 게 어때?”“어떻게 도와줘요?”임만만은 그녀의 말을 듣자 바로 반문했다.“당연히 우리에게 이진의 계획을 알려주는 거지. 그렇게 되면 보장과 수익이 있으니 만만 씨의 생활도 더 좋아질 거야.”임만만이 고개를 숙이고 궁리하는 모습을 보자 이영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웨이터가 요리를 올릴 때도 임만만은 계속 생각에 잠겼다. 요리가 모두 준비되고 웨이터가 물러서자 임만만은 고개를 들었다.“이영 씨, 고마워요. 제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겠어요.”“만만 씨는 똑똑한 사람이니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이영은 말을 하면서 임만만을 향해 술잔을 들고 기세를 몰아 술 한 잔을 권했다. 이영은 와인을 반 잔 마셨고 임만만은 한 모금 맛보았을 뿐이다. 술잔을 다시 내려놓은 후에도 임만만의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었다.“이영 씨, 제가 아직 이런 걸 묻기에는 이르다는 걸 알지만, 만약 이쪽이 성공한다면…….”“만만 씨는 여전히 비서일 거야.”이영은 와인을 삼키고는 도도하게 입을 열었다.그녀의 오만한 태도에 임만만은 남몰래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당연히 내 비서 혹은 우리 아버지의 비서가 될 거야.”“그럼 이 대표님, 이진 씨는…….”임만만은 그녀의 말을 듣자 긴장되어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는 기대하는 것 같았다.예상했던 질문이라
이진의 차가운 말투로 비꼬자 이영이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이 대표님, 좀 너그럽게 말씀하시지 그래요? 계속 그렇게 엄하신다면 비서들이 모조리 도망가겠어요.”두 사람은 몇 초 동안 눈을 마주친 뒤 어깨를 부딪히고는 자리를 떠났다.이영은 이를 악물며 악의에 찬 모습을 하고 있었고, 반면 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이처럼 평화로운 이틀이 지나자 이영은 그녀를 매우 현혹시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임만만이 다시 비서로 일한다는 게 진짜야?”이영은 앞에 있는 인사부 직원을 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영 씨, 제가 이런 일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임만만 씨의 인사이동은 제가 직접 맡았어요.”인사부 직원은 그녀한테 잘 보이려고 온갖 애를 썼다. 이영이 매니저를 맡았을 때부터 그녀는 이영의 온갖 비위를 맞추었다. 더군다나 이영이 직원이 되어버리자 그녀를 아부하기는 더욱 편리했다.이 말을 듣자 이영은 직접 인사부문을 찾아 사실을 확인한 후 임만만을 불러냈다.“이영 씨, 무슨 일 있어요?”“만만 씨가 다시 이진의 비서로 일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임만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이영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임만만은 별 불만 없어 보였고 심지어 기뻐하며 흔쾌히 받아들인 것 같았다.“예전에 이진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만만 씨를 강직시켰는데, 갑자기 왜…….”“아마도 제가 이틀 동안 업무를 뛰어다니면서 몇 건을 따내 대표님께서 제 능력을 인정하신 게 아닐까요?”임만만은 어깨를 으쓱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렇게 된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대표님의 곁에 있다면 더 많은 소식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원래 좀 걱정스러웠던 이영은 임만만의 말을 듣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이날 저녁, GN 그룹 대표 사무실.임만만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요 며칠 이기태한테서 얻은 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일 내용을 다시 검사한 후 이메일로 누군가에게 보냈다.이 이메일 주소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