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에서 대광 씨로 호칭이 바뀐 건 무척 자연스러웠다.이대광은 멀어지는 장유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유민 씨, 그럼 오늘 저녁은….”“그게 실적 올려야 해서 아마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장유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홀로 남겨진 이대광 혼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장유민은 그렇게 이대광을 지나쳐 아까 그들을 혼냈던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팀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이대광 씨는 회장님 처남이라면서요?”중년 남자가 이대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얼굴에 저 상처 봤지? 회장님 작품이래. 저 인간이 거물을 한 명 건드렸나 봐. 센터장님도 어제 회장님 전화를 받고 무척 놀랐다지 뭐야.”“회장님도 경외할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더라고. 와이프랑 이혼 얘기까지 나왔대.”오너 일가의 이야기는 모두의 화젯거리였고 새어 나가지 않는 소문은 없었다. 그게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라면 더욱 그랬다.“세상에, 저는 그것도 모르고!”장유민이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그럼 이대광 씨는 이제 재기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거네요?”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유민은 속으로 이대광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멍청한 자식!’천도준을 태운 차가 천문동 분양 센터에 도착했다.운전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여기 면접 보러 왔나 봐요? 안목이 좋네요. 택시 기사를 하다 보면 여러 정보를 듣게 되는데 천문동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보너스도 두둑하게 받는다고 하더라고요.”“집 사러 왔는데요.”말을 마친 천도준은 결제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택시 운전기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어린 친구가 허세가 장난이 아니네. 별장 단지를 사러 오는 사람이 택시를 타고 다니겠어? 옷차림만 봐도 부자는 아닌데 허언증인가?”운전기사의 중얼거림이 귓가에 들렸지만 천도준은 그냥 무시하고 앞으로 걸었다.그가 분양 센터에 발을 들였을 때, 장유민을
상대는 그를 구경만 하러 온 진상 손님 취급하고 있었다.그래서 기본적인 예의도 지킬 생각이 없는 듯했다.천도준은 여직원에게 따지는 대신,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리고 자리를 뜨려는 장유민을 불러세웠다.“여기 소개 좀 해주실 수 있나요?”장유민이 티가 나게 인상을 썼다.이대광 믿고 어떻게든 실적을 채워보려고 했는데 믿던 이대광이 추락하면서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팀장이 자신을 이런 고객이나 접대하라고 보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차피 사지도 않을 거면서 소개가 왜 필요한 걸까?하지만 팀장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결국 불쾌한 얼굴로 천도준의 앞으로 다가갔다.“손님의 요구사항을 말씀해 주시면 그에 맞는 상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아주 불쾌했지만 팀장이 보고 있는 데서 손님한테 너무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그랬다가는 당장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좀 큰 집을 원합니다.”천도준이 말했다.장유민은 티 안 나게 그를 흘겨보았다. 천문동 분양 센터까지 와서 큰집을 요구하다니! 대체 주제파악을 모르는 사람인가?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짜증을 참으며 가장 저렴한 단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모델 하우스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300평, 여기서 가장 작은 별장 면적이 300평이에요.”진심으로 접대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 정도 말해줬으면 천도준이 포기하고 물러갈 줄 알았다.매매가를 들으면 일반인은 겁 먹고 도망갈 가격이었다. 빨리 이 손님을 보내버리고 다른 고객을 기다리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천도준은 그녀가 가리킨 모델 하우스를 바라보며 웃음이 나왔다.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장유민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가장 작은 별장이라… 그쪽은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군요.”그의 불만에 장유민도 가소롭다는 그에게 말했다.“3백 평짜리 별장도 최소 수십억은 해요. 구매할 실력도 없으면서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얘기예요.”“지금 뭐라고 했어요?”천도준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
그리고 이때,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이대광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장유민의 확 달라진 태도에 속이 타서 바람 좀 쐬고 온 건데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대광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장유민의 앞에 서 있는 천도준을 알아보았다.이대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어제 그렇게 괴롭히고 부족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팀장님, 이런 진상 손님은 원래 경비 불러서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장유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아침부터 진상 손님이 걸려서 속이 울렁거리고 짜증이 가득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이대광이 흠칫하더니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장유민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짜증이 잔뜩 치민 장유민에게 이대광의 등장은 그녀의 분노 지수만 더 올린 격이었다.“이대광 씨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이제 당신은 팀장도 아니잖아요. 마케팅 직원이라고 아무 손님한테나 굽신거려야 하나요?”이대광이 마케팀 팀장직에 있을 때, 그녀는 실적 한번 올려보겠다고 이대광에게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그의 직위가 강등되면서 온 세상이 자신을 배신한 기분이었다.짝!조급해진 이대광이 그녀의 귀뺨을 때리며 고함쳤다.“제발 그 입 좀 닥쳐!”그는 무능하지만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게다가 매형이 지금 누나랑 이혼을 고민하는 시점에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의 안락한 생활도 끝장이었다.장유민은 매형인 주건희마저 경외심을 갖고 대하는 인물을 진상 손님 취급하고 있었다.장유민이 어떻게 되든 그가 알 바는 아니지만 상대가 천도준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지금 나 쳤어? 이대광 당신이 뭔데 나를 쳐?”장유민이 얼굴을 감싸며 미친 사람처럼 포효했다.마케팅 팀장과 직원들이 달려와서 이대광을 말렸다.팀장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대광은 자신을 잡고 있는 직원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이거 놔!”그리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천도준에게 다가갔다. 그는 천도준
분양 센터에 무서운 정적이 감돌았다.모두가 머릿속이 하얘지고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250억을 무슨 시장에서 장을 보듯이 아무렇지 않게 일시불로 결제하는 구매자가 나타나다니!“네. 절차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이대광이 환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평사원으로 강등된 뒤에 첫 실적이 단지의 최고가 별장이었다.천문동 별장단지는 분양이 시작된 뒤로 가격이 떨어진 적 없었다.산기슭에 위치한 최고급 별장은 신분과 지위의 상징으로 평가 받았지만 가격대가 너무 비싸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매물이었다.장유민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온몸에서 힘이 쫙 빠지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그녀가 진상 손님이라고 비웃던 손님이 250억을 일시불로 구매할 실력을 가진 자였다니!그녀의 판단 착오로 실적은 이대광에게 돌아가게 생겼다.장유민은 원망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스스로 귀뺨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저 정도 실적이면 마케팅 직원이 가져가는 보너스만 해도 어마어마했다.부족한 실적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천문동 분양 센터의 연봉은 업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사실 그만큼 경쟁도 심했다.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구조였다.그리고 이번 달 그녀의 실적은 꼴찌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대광에게 빌붙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며칠만 있으면 이번 달이 다 지나가는데 남은 시간 안에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녀는 해고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장유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마케팅 팀장과 동료들은 그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지만 다가와서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별장의 구매 절차는 아주 복잡했지만 이대광의 도움이 있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계약서에 사인한 뒤, 천도준은 집 키를 받았다. 이제 그 집은 그의 소유가 된 것이다.분양 센터를 떠날 때, 천도준은 팀장에게 혼나고 있는 장유민을 힐끗 보았다. 어렴풋이 해고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이난희는 박유리가 오해할까 봐 다급히 말했다.“유리 씨는 정말 잘하고 있어요. 덕분에 내가 요즘 정말 편해요. 그런데 쉬지 않고 일하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안 좋네요.”박유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울먹이며 이난희에게 말했다.“저는 아주머니가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한테 그만두라고 말씀하신 줄 알았어요. 사실 이 일, 저한테는 정말 중요하거든요.”이난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박유리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말아요. 아니면 우리 아들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할까요? 그래야 유리 씨도 집에 가서 편히 쉴 거 아니에요.”박유리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아주머니, 대표님도 일하느라 바빠서 저를 고용한 건데 어떻게 저 힘들다고 대표님을 오라가라 하겠어요?”“알았아요. 그럼 저녁에는 푹 자둬요. 어제처럼 밤을 꼴딱 새면 곤란해요.”박유리가 머뭇거리자 이난희가 정색하며 말했다.“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해요. 예쁜 얼굴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았잖아요. 그 얼굴로 남자친구가 도망가겠어요. 여자는 스스로 자신을 챙길 줄 알아야 해요.”박유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이난희의 말이 따뜻한 온풍처럼 그녀의 시린 마음을 녹여주었다.이렇게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녀는 이난희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주머니.”한편, 또 다른 병실.얼굴이 창백한 장수지가 병상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약혼식장에서 심장병이 발작하며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다행히 조치가 빨리 이루어져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오덕화는 조용히 아내의 옆에서 사과를 깎아 아내의 입에 넣어주었다.“조금이라도 먹어.”하지만 장수지는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성대한 약혼식을 고집했다.하지만 약혼식에서 임설아의 행동은 그녀가 친척들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게 만들었다.장수지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오남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보았다.“엄마, 약혼식 전날 나 진짜 임설아랑 잘 얘기했었어! 그애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고!”그녀는 몹시 억울했다.약혼식 날 그들 일가가 창피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며칠 동안 장수지의 거센 비난에 몇 번이고 해명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다.“아직도 거짓말이야?”장수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반박했다.“설아 걔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거짓말을 약혼식에서 하겠니?”“누나 대체 왜 그래?”오남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큰소리로 말했다.“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가장 잘 알아. 걔는 절대 그런 거짓말을 할 애가 아니야!”오남미는 온몸이 덜덜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그녀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왜 다들 내 말을 안 믿어줘? 엄마, 나 엄마 딸이야!”장수지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뻔히 보이는 거짓말인데 내가 어떻게 널 믿어? 설아도 결혼하면 우리 식구야. 어떻게 설아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엄마….”오남미가 뭐라고 하려는데 오덕화가 땅을 치며 버럭 소리질렀다.“그만해, 오남미! 엄마 또 쓰러지는 거 보고 싶어?”그 말에 오남미는 변명을 포기했다.“엄마, 쉬고 있어. 난 출근하러 가볼게.”그녀는 도시락통을 내려놓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그거 얼마나 번다고 맨날 바쁜 척이야? 엄마가 입원했는데 옆에서 간호는 못해줄 망정!”등 뒤에서 장수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말을 들은 오남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복도를 돌아 비상계단으로 가서 울음을 터뜨렸다.“왜 다들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왜 나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해?”최근 벌어진 일들은 이미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엄마가 입원한 뒤로 병실에 찾아올 때마다 욕을 들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가족들을 위해 도시락을 나르고 출근까지 해야 했다.하지만 돌아온 건 엄마의 불신과 맹비난뿐이었다.임설아한테 찾아가서 왜 약
장수지가 고개를 돌려 애틋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들, 약혼식 끝나고 설아는 만나봤어?”“엄마, 설아 걔 요즘 만나주지도 않아. 아침 일찍 출근하기 전에 데리러 가도 내 차도 안 타고 나랑 말도 하지 않아.”오남준이 절망한 얼굴로 말했다.“세상에….”장수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남미 그 계집애가 거짓말을 안 했으면 어떻게든 빌려서라도 2천만 원은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이런 상황도 없었을 거 아니야!”오남준은 갑자기 통화에서 천도준이 돈이 많다고 하던 임설아의 말이 떠올랐다.그 뒤로 오남미에게 죽는다고 협박해서 천도준에게 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오남미가 왜 갑자기 임설아를 찾아갔는지 의문이 들었다.생각할수록 화가 난 오남준은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아빠, 엄마, 천도준 엄마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지?”오덕화 부부는 의아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오덕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누나한테 들은 것 같아.”사실 그 역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난희의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한 뒤로 딱 한번 문안 차 병실을 찾은 적 있었는데 아주 오래 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나 그 아줌마 좀 만나고 올게.”그 말을 끝으로 오남준은 병실을 나갔다.그는 천도준이 정말 부자인지 확인이 꼭 필요했다.임설아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만약 천도준에게 치료비를 감당할 돈이 있다면 분명 그 돈으로 엄마 병치료부터 했을 것이다.‘그럼 그 자식이 누나랑 이혼한 것도 실은….’오남준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한편, 박유리는 병실에서 이난희의 팔 다리를 닦아주고 있었다.이난희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유리 너 손에 굳은살이 많네.”“죄송해요. 제가 아프게 해드렸나요?”박유리가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아니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이난희가 다급히 말했다.“어린 여자애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으면 손에 굳은살까지 생겼을까? 안타까워서 그래.”박유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
박유리는 그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전직 프로 격투기 선수가 저런 솜주먹 하나 무서워할 리 없었다.게다가 그녀와 오남준은 체형으로도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젖혀 공격을 피한 뒤, 그대로 오남준의 복부에 주먹을 쫒았다.쾅!오남준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박유리는 손을 툭툭 털며 비웃음을 날렸다.“너 같은 인간은 열 명이 동시에 덤벼도 날려버릴 수 있어.”“이런 미친….”오남준은 배를 끌어안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에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난희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박유리처럼 참한 여자애가 한 주먹에 남자를 쓰러뜨릴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당장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꺼져!”박유리는 오남준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병실 밖으로 향했다.“다시는 여기 찾아와서 아줌마 자극하지 마. 안 그러면 병신을 만들어 줄 테니까.”“이거 안 놔?”오남준은 거칠게 몸부림치며 박유리를 뿌리쳤다. 그리고 험악한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너 뭔데? 나 천도준 그 자식 처남이라고!”처남?박유리가 잠깐 당황했다. 천도준에게 그의 가족 사항에 대해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말했다.“대표님이 아줌마를 돌보라고 날 고용했어.”“뭐야? 간병인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을 들은 오남준은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깨닫고 목청을 높였다.“전에는 그 4천만 원이 마지막 치료비였다면서 누나랑 이혼한다고 난리를 부리더니 언제 돈이 그렇게 많아서 간병인까지 고용했대? 돈이 있으면서 누나랑 이혼하기 위해 일부러 쇼한 거잖아! 그게 아니면 이게 다 뭔데?”박유리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이난희가 울며 소리쳤다.“닥쳐! 내 아들은 그런 사람 아니야!”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아들이 갑자기 돈이 많아졌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억울해? 내가 틀린 말 했어? 우리 누나가 더 억울하지!”오남준이 이를 갈며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