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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고운
3년 동안 두 사람의 사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느 평범한 부부와 다를 바 없었다.

매일 아침 온하랑은 그의 슈트와 넥타이를 고르고, 함께 집을 나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저녁 약속이 있을 때면 미리 알려주고, 취침 전에 루틴대로 스트레칭하고 샤워도 같이했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굿나잇 키스도 있었다.

결혼기념일이나 밸런타인데이, 생일 선물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부승민은 전부 다 들어줬다.

로맨틱함은 물론 이벤트까지 챙겨주지 않았는가?

그는 완벽한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심지어 앞으로 이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하지만 추서윤이 돌아온 이상 모든 걸 끝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어제 휴대폰에서 들려왔던 여자 목소리의 주인이 추서윤이라는 뜻인가?

둘이 이미 연락을 주고받은 건가?

설마 출장 간 한 달 동안 줄곧 함께 붙어 있었던 건 아니겠지?

어제 같이 귀국해서 밤에 추서윤과 있다가 늦게 돌아왔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온하랑은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부승민 때문에 심장을 후벼파는 고통이 느껴져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온하랑, 걱정하지 마. 설령 이혼한다고 해도 우린 한 가족이야. 내가 제일 아끼는 여동생인 건 변함없어.”

여동생이라니?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같은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을 청했는데, 결국에는 여동생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인 건가?

그녀는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

온하랑은 속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고 대충 얼버무렸다.

부승민이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 아까 무슨 말 하고 싶었던 거야?”

온하랑은 무심하게 손에 든 서류를 넘기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 시즌 뉴컬렉션이 출시할 계획인데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오빠랑 상의하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어떤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알았어, 수고해.”

BX그룹의 브랜드 디렉터로서 온하랑의 업무 능력에 대해 부승민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타고난 능력의 소유자인 만큼 그녀의 손만 거친다고 하면 액세서리든 의류든 게임이든 전자 제품이든 막론하고 전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내 일인데 뭐. 그럼 먼저 출근할게.”

온하랑은 심호흡한 뒤 느긋하게 뒤돌아섰다. 차분한 걸음걸이로 한 발자국씩 걸어가며 겉으로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같이 가자.”

말을 마친 부승민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위층으로 향했다.

온하랑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울컥하는 기분이 치밀어 오르며 눈시울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어떻게 이혼 얘기를 꺼낸 후에도 이처럼 평온하게 그녀와 같이 출근하자고 말할 수 있지?

이런 게 바로 사랑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인가?

“아니야, 어차피 이혼할 텐데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

이 말만 남기고 온하랑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

그녀는 이러다 부승민 앞에서 페이스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사실 그날 밤 이후 부승민은 단지 그녀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는 이유로 결혼한 것이다.

‘아가야, 미안해. 앞으로 넌 엄마랑 둘이 살 거야.’

뒤에서 그녀의 흐트러진 걸음걸이를 바라보던 부승민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

차고에 도착한 그녀는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시동을 거는 대신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를 켰다.

한참을 스크롤 하다가 마침내 단서를 찾게 되었다.

부승민은 물론 그의 친구들도 대부분 인스타 올리는 거 싫어하지만, 꼭 예외인 사람이 한두 명 있었다.

노씨 일가 셋째 도련님 노준형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온하랑은 어젯밤에 그가 올린 게시물을 발견했는데, 술자리 사진과 함께 짧은 멘트를 기재 되었다.

「우리 서윤을 위한 환영회, 다시 돌아온 걸 축하해! 조만간 승민한테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는걸?」

마지막에 축하하는 이모티콘까지 추가했다.

사진에 태그한 위치는 친구들끼리 자주 모이는 클럽이었다.

툭!

휴대폰 화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산란 현상 때문에 기괴한 무지갯빛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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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4화

    온하랑은 휴대폰을 손에 꼭 움켜쥐었다. 가슴이 아픈 나머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부승민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서윤을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니.심지어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며 다들 두 사람을 축복해 주기 바빴지만, 오직 그녀만 감쪽같이 속았을 뿐이었다.지난 3년 동안 부승민이 결혼했다는 건 그의 가족밖에 몰랐다.여태껏 단 한 번도 친구들을 소개해 준 적이 없었던 건 물론이고, 가끔 마주치더라도 사람들은 지레 그녀가 부씨 일가의 양녀인 줄 알았다.“사모님?”차를 빼기 위해 차고를 찾은 기사는 온하랑의 차가 아직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온하랑은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못 들은 척하더니 곧바로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사적인 감정 때문에 업무에 지장 주는 게 제일 싫은 그녀였다.당장은 일에 매진하면서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부승민의 메일 주소를 클릭하고 첨부파일에 계획표를 업로드한 뒤 온하랑은 전송을 눌렀다.곧이어 부승민이 답장을 보냈는데 여느 때처럼 간결했다.「좋아. 앞으로 신경 좀 써 줘.」온하랑은 머뭇거리다가 ‘알겠어’라고 답장하고는 재빨리 업무를 배분했다.퇴근 시간이 되자 부승민이 문자를 보냈다.「저녁에 볼일이 있으니까 먼저 가.」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또다시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겠어’라고 답장했다.어쨌거나 그녀도 BX그룹의 임원에 속하는지라 예전에는 저녁 약속이 생기면 부승민은 무슨 일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줬는데 요즘은 단지 볼 일 있다는 말로 대충 둘러댔다.볼 일이라는 게 아마도 추서윤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이때, 부승민의 문자가 도작했다.「출장 끝나고 돌아오면서 선물을 챙겼는데 깜빡하고 못 줬어. 내 캐리어에 있으니까 직접 가져가.」온하랑이 대답했다.「알았어.」부승민은 휴대폰 화면 속 단답형 문자를 보다가 갑자기 짜증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이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손을 뻗어 미간을 문질

  • 위태로운 제안   제5화

    온하랑은 코끝이 찡하더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씁쓸함과 실망감에 마음이 괴로웠다.이렇게 다정한 부승민의 모습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결혼 3년 동안 시종일관 무심한 태도로 그녀를 대하지 않았는가?결국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늘 스스로 위로했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간이 걸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이제 그녀도 부승민이 부드러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다. 단지 다른 여자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에 불과했을 뿐이다.둘은 차 앞을 지나쳤고, 부승민은 그녀의 차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그런데 어찌 사람 자체를 신경 쓰겠는가?“사모님, 다녀오셨어요? 저녁에 뭘 드시...”도우미는 얼떨결에 온하랑의 눈에 맺힌 눈물을 발견했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자 차마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온몸에 힘이 다 빠진 온하랑은 문에 등을 털썩 기대었고, 울컥한 나머지 목이 메어왔다.종일 참다가 드디어 폭발한 듯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고, 눈가에서 흘러넘쳐 볼을 타고 톡 떨어졌다.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부모님이 일찍이 이혼하고 한부모 가정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그녀의 아이까지 똑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하랑은 아이만큼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하지만 그녀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대체 어디 있을까?한참이 지나서 도우미가 조심스레 안방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식사하세요.”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온하랑은 마지못해 대답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했다.방을 나서기 전 갑자기 부승민의 문자가 떠올랐고, 출장 가서 그녀에게 줄 선물을 챙겼다고 했었다.대체 무슨 선물이지?온하랑은 옷방에 가서 그의 캐리어를 찾아 열어보았다.주얼리나 액세서리 따위 아닌 그녀가 좋아하는 팝 아티스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음반이었다.그녀는 음반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순간, 황폐한 사막 한가운데 새싹이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적어도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 위태로운 제안   제6화

    임리안의 매니저 홍유라는 온하랑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대뜸 화부터 냈다.“전무님, 우리 리안이 BX 그룹과 일할 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툭 까놓고 말해주지, 이 세상에 회사가 BX 그룹만 있어요? 다른 광고를 다 거절했더니 계약까지 파기하면서 모델을 교체하는 걸 대체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죠? 지금 장난해요? 우리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부탁드릴게요.”온하랑이 말했다.“매니저님, 일단 전정해 보세요. 리안 씨 빼고 다른 모델이 없는데 교체가 웬 말이에요? ”“하! 아직 몰라요? BX 그룹 홍보팀 전무가 직접 연락이 와서 모델 교체하겠다고 했어요.”온하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매니저님, 제가 지금 바로 홍보팀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전화를 끊고 온하랑은 어두운 안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홍보팀을 찾아갔고, 하이힐이 바닥과 부딪히면서 또각또각하는 소리가 났다.BX 그룹에 입사한 지난 3년 동안 오미연이 그녀에게 딴죽 건 적이 결코 한두 번이 아니었다.“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기겠네요.”직원들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으며 떠나가는 온하랑을 보자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홍보팀 오 전무님과 우리 전무님은 늘 사이가 안 좋았죠.”온하랑은 곧바로 홍보팀 전무실로 찾아갔다.“오미연! 대체 왜 임리안을 교체하려는 건지 똑바로 설명해 봐.”자신을 찾아온 온하랑을 보자 오미연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무덤덤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걸어갔다.“온 전무, 웬 화가 그렇게 났을까? 일단 앉아서 얘기해.”“모른 척하지 마! 대표님께서 이미 컨펌한 기획안이야. 네가 뭔데 MQ의 일에 참견하는 거지?!”오미연도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참견한들 뭐 어떡하려고?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큰 소리 떵떵거리는 거야? 일찍 돌아간 네 아빠의 덕분이 아니라면 부씨 일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을 텐데, MQ 브랜드 디렉터의 자리가 가당키나 하겠어? 제 주제도 모르고 설치면 안 되지.”온하랑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

  • 위태로운 제안   제7화

    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와 오미연을 번갈아 보더니 온몸으로 싸늘한 냉기를 뿜어냈다.“두 분 취미가 독특하네요. 무려 전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다툼하며 싸울 수 있죠? 정녕 솔선수범이 무슨 뜻인지 몰라요? 회사가 장난 같습니까?”직원들은 황급히 목을 움츠리고 몰래 눈치만 살피기 바빴다.오미연이 당당하게 말했다.“대표님, 전 한창 일하고 있었는데 온 전무가 갑자기 찾아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심지어 다짜고짜 손찌검까지 하고, 이런 사람이 어찌 브랜드 디렉터로서 자격이 있겠어요?”부승민의 시선이 온하랑에게 머물렀고, 어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사과해.”온하랑은 심호흡하더니 양옆에 늘어뜨린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오 전무가 먼저 사과하면 저도 할게요.”무려 한 기업의 전무가 사내에서 손찌검했는데 잘못한 걸 뻔히 알면서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니?결과를 감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는 것이었다.오미연은 억울한 얼굴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제가 대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온하랑이 반박하려는 찰나 부승민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사과해!”단호한 목소리는 거절 따위 허락하지 않았다.온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쌀쌀맞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가가 시큰했다.이제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묻지 않는 건가?부승민의 목젖이 꿀렁거렸다.“다시 한번 말한다. 사과해.”온하랑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내 부루퉁한 얼굴로 오미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오 전무, 미안해.”오미연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다음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다만 왜 모델을 바꿨는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온하랑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미연은 피식 웃으며 부승민을 바라보았다.“당연히 대표님의 지시 아니겠어?”온하랑은 깜짝 놀라며 당황한 표정으로 부승민을 바라봤다.부승민은 부인하지 않

  • 위태로운 제안   제8화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차오르는 씁쓸함을 애써 억눌렀다.“하지만 추서윤의 이미지는 우리 제품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아요.”추서윤은 해외 활동을 이어가면서 대부분 시크하고 도도한 스타일을 고수했다.“그건 네 사정이고 내 알 바 아니야.”부승민이 말했다.“너라면 잘 해내리라 믿어. 이번 광고가 서윤에게 아주 중요하니까 네가 모든 과정을 책임졌으면 좋겠어.”온하랑은 온몸이 무기력하며 얼굴이 점점 굳어졌는데 대체 무슨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자기 첫사랑을 현 와이프에게 맡기는 잔인한 짓을 하다니?정녕 그녀가 슬픔과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감정 없는 사람인 줄 아는 건가?“알았어요, 최선을 다할게요.”온하랑은 목구멍에 생선 가시라도 걸린 듯 따끔거렸고,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화장실.온하랑은 계속해서 헛구역질만 했을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내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배 속의 아이를 달래주었다.벽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시울이 빨갰다.그녀는 찬물로 연거푸 세수했다.‘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추서윤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것쯤이야, 광고 촬영부터 송출까지 담당하는 건 늘 해오던 일인지라 문제없을 거로 확신했다.온하랑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그녀는 어떤 난관에 봉착하든 꿋꿋이 버텨내리라 다짐했었다.하늘에서 지켜보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아이를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그녀는 사무실에 돌아가 임리안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하며 사과했다. 그리고 현재 추진 중인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써주겠다며, 앞으로 괜찮은 광고 건이 있으면 임리안을 최우선 순위로 고려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홍유라는 비로소 한발 물러섰다.전화를 끊고 나서 온하랑은 비서에게 추서윤의 자세한 자료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부서 직원들끼리 긴급회의를 열었다.온종일

  • 위태로운 제안   제9화

    3년 전, 부승민은 추서윤을 본가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아무리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매일 본가에서 학교를 다녔다. 물론 이유는 단지 가끔 찾아오는 부승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그날 비록 그녀의 바람대로 마주쳤지만, 추서윤이 여자 친구라며 가족에게 소개하는 부승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심지어 정원에서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지 않았는가?그녀는 앞으로 평생 멀리서만 부승민을 지켜봐야만 하나 싶었다.부승민과 결혼하는 날까지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물론 꿈이라면 언젠간 깨어나기 마련이다.추서윤이 바로 그녀의 단잠을 깨운 장본인이었다.온하랑은 심장이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랜만이에요. 서윤 씨는 더 예뻐졌네요.”이제 와서 ‘둘째 새언니’라는 호칭은 죽어도 부르지 못할 것이다.추서윤이 생긋 웃었다.“고마워, 너도 예뻐졌네. 참, L.X 친필 사인 음반은 마음에 들어? 네가 예전에 L.X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마침 해외 활동하다가 알게 된 친구거든. 이번에 귀국하기 전에 사인받으면서 특별히 네 이름까지 적어달라고 부탁했어.”온하랑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침착하고 여유 넘치기로 소문난 그녀인데 순간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마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음거리 신세로 전락한 광대처럼 느껴졌다.이내 멍하니 부승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애원하듯 바라보았다.부승민이 추서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이 챙긴 선물이라고, 그가 특별히 부탁한 것이라고 말해주길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부승민은 무심하게 쳐다보며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왜? 서윤이가 준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온하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한참 후,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고 무덤덤하게 말했다.“회포는 나중에 풀고 다들 오전부터 기다렸는데 얼른 앉아서 본론부터 얘기

  • 위태로운 제안   제10화

    이제 BX 그룹 직원뿐만 아니라 추서윤의 스텝까지 안색이 변했다. 그중 한 사람이 테이블 아래로 몰래 안수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하지만 안수빈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매니저님의 뜻은 회장님께서 옛정 따위 안중에도 없이 눈앞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건가요?”온하랑이 차분하게 되물었다.순간, 안수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그런 뜻은 아닙니다.”이때, 문이 열리면서 부승민과 추서윤이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부승민은 잘생기고 명문가 출신에 추서윤은 예쁘고 이미 인정받은 배우로서 둘의 만남은 뭇사람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했다.프로젝트 매니저가 온하랑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대표님과 추서윤 씨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이제 BX 그룹의 안주인이 곧 생기는 건가요?”온하랑은 따끔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내더니 일어나 두 사람을 자리에 안내하려고 했다.“대표님, 와주셔서 고마워요. 자, 여기 앉으세요. 서윤아, 너도 이리 와서 앉아.”안수빈이 온하랑을 앞질러 말하면서 부승민의 옆자리에 추서윤을 앉혔다.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서서 둘을 맞이했다.“다들 앉으시죠.”부승민의 말의 끝나기 무섭게 모두 다시 착석했다.그런대로 화기애애한 시간이 이어졌고, 조금 전 어색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안수빈과 다른 사람들이 대화 주제를 찾아서 리드했고, 이따금 부승민과 추서윤에게 질문도 했다.부승민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 허를 찌르는 대답을 했다.그에 비해 유난히 조용한 사람이 있었으나 부승민과 추서윤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이런저런 말이 오가다 안수빈은 추서윤의 앞접시를 보며 잔소리했다.“서윤아, 음식 조절하는 거 잊지 마.”연예인은 몸매 관리에 엄격했다.“알았어...”추서윤은 입을 삐죽 내밀며 삼겹살을 부승민의 앞접시에 놓았다.“승민아, 나 다 못 먹겠어. 네가 먹어줘.”앞에 마침 매운맛 육수와 기본 육수가 있는데, 이는 매운맛 육수에서 건져낸 삼겹살인지라

  • 위태로운 제안   제11화

    “아니.”부승민은 의자에 기대앉아 눈썹을 문질렀다. 그는 컴퓨터를 끄고 일어섰다.“가자.”집에 돌아오니 도우미들이 이미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간단하게 저녁 밥을 먹은 뒤 부승민은 서재로 가서 또 일을 했다.온하랑은 거실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았다. 따뜻한 물 한 컵을 받고 약상자에서 약을 꺼내 함께 넘겼다.“무슨 약 먹은 거야? 어디 안 좋아?”뒤에서 갑자기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하랑은 가슴이 철렁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요즘 소화가 잘 안돼서.”부승민은 걸어와서 물 한 컵을 부었다.“병원에는 가 봤어?”그는 오늘 점심 식사에서 따뜻한 음식만 먹겠다고 했던 온하랑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응, 가 봤어.”“그럼 됐어. 이제부터 건강 잘 챙겨.”그의 관심 어린 말에 온하랑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서글펐다.이른 아침, 온하랑은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졸린 두 눈을 겨우 뜨고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온 전무님, 일이 터졌습니다. 지금 실시간 검색어 확인 부탁드립니다.”온하랑이 물었다.“무슨 일인데요?”한편으로 재빠르게 태블릿으로 각 포털 사이트의 뉴스피드를 확인했다.“부 대표님과 추서윤 씨의 사진이 찍혔습니다.”비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온하랑도 기사를 클릭했다.비서는 온하랑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온 전무님, 어떻게 처리할까요?”“먼저 추서윤 씨 소속사에 연락해서 대응하지 말라고 하세요. 내가 회사에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요.”실시간 검색에 두 사람이 함께 레스토랑에 출입하는 사진이 찍혔다. 각 사이트에서 모두 화제가 되었다.두 회사에서 레스토랑에 출입하는 사진을 동시에 올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홍보하면 된다.“알겠습니다.”비서가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온하랑이 말했다.“잠깐만요. 어제 다 같이 찍은 사진 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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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1383화

    “그렇다면 다행이네.”최국환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동림이도 이 병원에 있어. 천식이 재발해서 입원 중인데 같이 가서 보러 갈래?”온하랑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전 또 일이 있어서요.”“바로 아래층인데. 금방이면 돼.”최국환이 설득하듯 덧붙였지만 온하랑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회장님. 제가 좀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맺고 최국환을 지나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내가 필라시에서 메이슨을 낳았다는 얘기...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 하지만 사진도 있었고 메이슨이 다시 내 품에 돌아온 뒤로는 받아들이게 됐어. 그렇다면 메이슨이 유실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온하랑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첫 번째 가능성은 출산한 후 며칠 지나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그 사고로 기억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 갓난아기 메이슨은 집에 혼자 남겨졌고 우는 소리에 놀란 이웃이나 행인이 아이를 구조했다가 연락처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다 양부모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 혹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틈타 누군가 아이를 빼돌렸을 수도 있었다.두 번째는 임신 후반기에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기억을 잃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입원 생활을 이어갔고 아이는 병원의 판단이나 제삼자의 개입으로 다른 곳에 보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특히 병원 측이 메이슨의 혈액형이 특이하다는 걸 알고 그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무엇보다 그때 그녀에게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온하랑은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다.사고로 깨어난 뒤 그녀의 휴대폰에는 최동철이나 벨라, 혹은 진도원 등 사람들의 연락처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사고에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오늘 메이슨의 희귀 혈액형을 알게 된 뒤로

  • 위태로운 제안   제1382화

    온하랑은 조심스럽게 일반 병실 문을 밀어 열었고 문틈 사이로 소독약 특유의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병실 안에서는 운전기사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깁스를 한 채 이마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온하랑이 들어오자 기사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말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움직이지 마세요.”온하랑은 재빨리 다가가 그를 제지하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푹 쉬셔야 해요.”기사는 눈에 띄게 미안한 기색이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그때 반응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기사님 잘못 아니에요.”온하랑은 그의 곁에 앉아 방금 사 온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CCTV 확인해 보니까 상대 차량이 고의로 신호를 어긴 게 맞아요. 경찰이 이미 수사에 들어갔어요.”기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럼... 메이슨 도련님은요?”“아직 중환자실이에요.”온하랑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하...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어서 나아야 할 텐데...”“의사들이 최선을 다해주실 거예요. 기사님께서 필요한 거 있으면 간병인이나 비서한테 바로 말씀하세요. 전 이제 아주머니 병실도 보고 올게요.”“네,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온하랑은 장 선생 병실을 나온 뒤 가정부 아주머니의 병실도 들렀고 마지막으로 메이슨이 있는 중환자실 앞으로 향했다.아직 깨어나지 않은 메이슨을 보기 위해 간호 스테이션에 들러 서류에 서명하고 푸른색 보호복과 마스크, 모자를 착용한 뒤 무거운 격리실 문을 밀었다.침대 위 메이슨은 생각보다 더 창백했다.그의 긴 속눈썹이 병실 조명 아래 거의 투명해 보였고 여러 장비와 관이 그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고 의료 기기에서는 규칙적인 삑삑 소리가 들렸다.온하랑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엄지로 손등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낮게 속삭였다.“메이슨...”그녀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에게 물었다.“언제쯤 깰 수 있나요?”“수술 끝난 지 이제 다섯 시간

  • 위태로운 제안   제1381화

    온하랑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예전에 강남시에서 마주친 소년이 떠올랐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그들은 비록 이복남매 사이지만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게다가 지금 최동림이 입원 중이라면 보호자는 거의 확실하게 임가희일 것이고 온하랑은 그 여자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그래. 그럼 내가 잠깐 내려갔다 올게.”“네.”최동철은 조용히 병실로 내려가 잠시 임가희와 인사를 나누고 최동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수술실 앞으로 돌아왔다.보모가 먼저 수술을 마쳤고 이어 병원에서 혈장을 수급해 수술이 이어졌으며 결국 메이슨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그는 현재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사는 메이슨이 깨어나려면 대략 4~6시간 정도 걸릴 거라 설명했다.최동철은 곧장 비서 김지환과 간병인 두 명을 병동에 상주시키도록 지시했다.한편, 메이슨과 같은 희귀 혈액형을 가진 친구도 병원에 도착했다.비록 실제 수혈은 필요 없었지만 최동철과 온하랑은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고 고급 담배와 술도 선물했고 연락처도 서로 교환했다.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레 희귀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그 친구는 자신의 혈액형이 확인된 후 가족 전체가 무료 혈액형 검사를 받았고 그중 동생도 같은 혈액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현재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 도움 단체에 가입해 있으며 메이슨도 가입해 두라고 권했다.지금은 어린 나이라 헌혈이 안 되지만 이후 혹시 모를 수혈 상황에 대비해 혈액 공급망을 넓혀 두는 게 좋다는 것이다.메이슨이 성인이 되면 직접 헌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식사를 마친 뒤 온하랑은 협력사 미팅에 가야 했기에 최동철은 그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자신의 업무로 향했다.협력사 미팅을 마친 온하랑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고 택시에서 막 내린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부승민이었다.온하랑은 병원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어때? 장 대표님은 만났어?”수화기 너머에서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80화

    온하랑은 지금 경주 출장을 온 상태였다.그는 오늘 막 도착해 협력사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 체크인했지만 아직 현지 담당자와는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원래는 저녁에 메이슨을 잠깐 보러 갈지 생각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최동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메이슨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고 그래서 온하랑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입구에는 최동철이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를 보자 온하랑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다급히 물었다.“동철 오빠, 메이슨은 어때요?”그러자 최동철은 깊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과다 출혈이 있어서 수혈이 필요해.”그 말에 온하랑은 아까 전화로 자신에게 혈액형을 물어본 이유가 떠올랐고 마음속 불안이 더욱 커졌다.“메이슨 혈액형이...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검사 결과, 메이슨은 Kidd 혈액형 중 Jk(a-b-)형이래. Rh 음성보다 더 희귀한 혈액형이야.”최동철의 목소리에는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고 온하랑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그런 혈액이... 혈액은행에 있긴 있어요?”“응. 병원에서 이미 확보 요청했어.”그래도 온하랑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메이슨이 어쩌다 그런 희귀 혈액형을 갖게 된 거지? 혹시 혈액이 부족하면 어쩌지...’그러자 최동철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예전에 경주에서 같은 혈액형 가진 사람 중 헌혈 계약을 맺은 분들이 있어서 지금 연락 중이야. 메이슨 상태도 많이 안정됐고 잘 버틸 수 있을 거야.”만약 사고가 메이슨이 처음 귀국했을 때 터졌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병실로 가는 길에 최동철은 메이슨의 혈액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Kidd 혈액형은 ABO 혈액형과는 별개 체계로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ABO 혈액형상으로 메이슨은 O형이다.하지만 Kidd 혈액형 시스템에서는 적혈구 표면 항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Jk(a+b-), Jk(a-b+), Jk(a+b+), Jk(a-b-)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뉜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79화

    아침이 밝고서야 최국환이 병원에서 돌아왔다.설윤은 그의 눈 밑이 시커멓게 팬 걸 보고 곧바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조심스레 물었다.“동림이는요?”“원래 있던 증상이지. 의사 말론 어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했어. 당분간 입원해서 안정 취해야 한대. 지금 병원에 동림이 엄마랑 하인이 같이 있어.” 최국환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가 몰려와 그는 이제 더 이상 밤새우는 게 버겁다고 느꼈다.알레르기 유발성 천식과 감정 기복으로 인한 천식 발작은 증상이 조금 달랐다.경험 많은 의사가 문진과 혈액 검사 끝에 감정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큰일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회장님도 아주 피곤해 보이세요. 아침 드시고 바로 좀 쉬시는 게 어때요?”설윤이 조용히 말하자 최국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는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했고 임연지는 외출해 오재원을 만나러 나갔다.집에 혼자 남은 설윤은 심심하던 차에 기사에게 부탁해 병원으로 향했다.명분은 최동림의 병문안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임가희의 신경을 긁어놓는 데 있었다.병원에 도착해 입원실 방향으로 걷던 중 그녀는 익숙한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그 사람은 통화 중이었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설윤보다 먼저 병동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최동철? 설마 동림이를 보러 온 걸까?’설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동림의 병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창밖으로 병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최동림은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었고 곁의 보호자 침대엔 임가희가 쉬고 있었다.설윤은 병실 문을 똑똑똑 세 번 두드렸다.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 소리에 임가희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고 그녀의 눈빛은 곧장 경계심으로 바뀌었다.“설윤 씨, 여긴 무슨 일이죠?”임가희는 빠르게 몸을 돌려 병상 앞을 가로막았고 설윤은 손에 든 과일 바구니를 살짝 흔들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연히 동

  • 위태로운 제안   제1378화

    임연지는 설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분에 겨워 발을 굴렀다.‘진짜 싸가지 없는 여자야. 예전에 백화점에서 따귀 한 대 맞았을 땐 개처럼 쫄아서는 말도 못 하더니 지금은 고모부가 뒤를 봐준다고 어디 감히 자기를 상대로 맞불을 놓다니.’설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고 금세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 억지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한편, 임연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들어 한진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을 죄다 털어놓았다.[이 년은 진짜 너무 교활해. 내가 못 봤으면 동림이는 완전히 넘어갔을 걸? 아무도 몰랐을 거야. 아까는 대놓고 동림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뭐냐고 묻더라니까? 고모부는 갑자기 노망이 났는지 그냥 다 알려주라고 하질 않나.]그러자 한진의 답장도 빠르게 도착했다.[이 여자 수위가 장난 아닌데.] [그렇지. 내 말 맞지!] [너네는 못 이겨. 이런 애 상대하려면 그냥 권력으로 찍어 눌러야 해. 지금처럼 고모부가 뒷배 봐주니까 애가 깝치는 거지. 그러니까 넌 빨리 오재원이랑 결혼하는 게 답이야.][곧 할 거야. 오씨 집안에서도 이번 주 안에 날짜 잡자고 올라온다고 했어.][근데 결혼했다고 끝난 건 아니야. 오재원이 예전처럼 아무 능력 없는 철부지라면 권한도 없고 집안에서 힘도 없을걸.]임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오재원네 집안 권력은 오형일, 큰아들 오하운, 그리고 작은아버지 오정우에게 집중돼 있었다.사실 그녀도 예전엔 오재원의 형 오하운에게 접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워낙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간신히 만나도 말도 안 섞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근데 솔직히 오재원은 회사에서 일할 깜냥도 안 돼.][그럼 그냥 가르치면 되지. 저 정도 집안이면 선생 몇 명 붙이는 거 일도 아니잖아. 회사 나가서 일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개과천선은 못 해도 적어도 모양새는 갖춰야지. 부모님 눈에도 달라졌다고 보이게 말이야. 연지야, 지금은 오

  • 위태로운 제안   제1377화

    “회장님! 동림 도련님이 천식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모시려는 중이에요. 어서 내려와 보세요.”복도에서 다급한 하인의 외침이 들려왔다.최국환은 눈을 번쩍 뜨고 곧장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 조명을 켠 뒤 겉옷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를 따라 일어난 설윤이 몸을 일으키자 그는 말했다. “그냥 자. 내가 가볼게.”하지만 설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동림이 천식이 있어요?”“응.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그럼 저도 같이 가볼게요.”설윤은 외투를 꺼내 입고 최국환과 함께 급히 방을 나섰다.1층 거실로 내려가 보니 최동림은 이미 약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곁에서 지키고 있던 임가희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도대체 왜 갑자기 발작이 난 거야?” 최국환이 조급하게 묻자 임가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확실하진 않은데 혹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된 게 아닐까 싶어요... 다만 의사 말로는 감정적인 변화 특히 슬픔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이런 감정이 심할 경우 몸속 자율신경 중 미주신경이 자극돼 기관지가 수축하고 천식 발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최동림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천식 판정을 받았고 그 뒤로 집안은 온통 방역과 청소, 위생 관리에 신경 써 왔다.최동림이 자라면서 체질도 좋아져 요즘엔 거의 발작이 없었고 학교에도 특이 사항을 알려 기숙사 생활을 하게 했던 터였다.“알레르기 때문은 아닐 거야. 아마 낮에 너무 놀랐던 것 같아.”최국환은 최동림 옆에 앉아 등을 두드리며 숨을 고르게 도와주었다.“동림아, 아빠가 너무 심했어. 미안해.”그때 임연지가 옆에서 코웃음을 치며 설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글쎄요, 고모부. 오늘 오후에 설윤 씨가 동림이 방에 다녀갔는데 혹시 몸에 뭐 안 좋은 걸 묻히고 온 건 아닐까요? 동림이 건강 생각하면 확인

  • 위태로운 제안   제1376화

    방금까지 부모에게 혼나 속이 뒤집힌 상태였던 최동림은 설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그 순간 그녀에 대한 인상이 한껏 좋아졌다.그녀는 확실히 임가희가 지금껏 상대해 온 사람 중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다.최동철 쪽과도 특별히 친하지 않고 이 집에서 그녀가 기대고 있는 건 허공에 떠 있는 최국환의 사랑 말고는 오직 최동림이라는 아들뿐이었다.그리고 설윤은 단번에 그 약점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임가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조용히 말했다.“연지야, 넌 먼저 나가 있어.”임연지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최동림을 노려보다가 억지로 돌아섰고, 문을 쿵 하고 세게 닫고 나갔다.그러자 방 안에는 모자 단둘만 남았다.짙은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임가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들 앞에 앉았다.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최동림은 피하듯 몸을 틀었다.허공에 멈춘 임가희의 손끝이 서글프게 떨리다가 조용히 내려왔다.“동림아.”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게임기... 엄마한테 줄래?”최동림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꼭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이건 제 거예요!”임가희는 눈빛을 거두며 일어섰다.“동림아, 엄마 정말 실망했어.”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 새 옷 사주고 장난감 사주고 아프면 병원에서 밤새 지켜봐 주고 늘 네 곁에 있었잖아. 그런데 네가 이런 식으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해?”그 말에 최동림의 눈이 붉어지며 금세 눈물이 고였고, 그는 와락 게임기를 내려놓고 임가희를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게임기 필요 없어요. 제발 화 풀어요...”임가희는 아들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말했다.“그래야 우리 동림이지.”그는 흐느끼며 품에 안겼고 임가희는 조용히 속삭였다.“아직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속셈이 오가는 거야. 설윤이란 여자는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은 달라. 그러니까 절대로 설윤한테 선물 받지 마. 가까이하

  • 위태로운 제안   제1375화

    “누나, 무슨 일이에요?”최동림은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물었다.“방금... 설윤이 여기 왔었지?”“네...”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던 최동림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안 왔어요.”임연지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고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 건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려다 문득 책상 위의 선물 포장 상자와 그가 들고 있는 게임기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이 게임기는... 누가 사준 거야?”최동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엄마가... 사줬어. 왜?”“정말?”임연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럼 고모한테 물어볼게.”최동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아, 잠깐만! 누나, 그게…”그의 말을 끊고 임연지는 단단히 다그쳤다. “동림아, 솔직히 말해. 이 게임기는 진짜 누가 사준 거야?” 최동림은 두 손으로 게임기를 꼭 쥐었고 손등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말이 없다가 결국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설윤... 아줌마가 줬어.”“설윤... 아줌마?” 임연지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지금 그 여자를 아줌마라고 불러? 이렇게 비싼 걸 받았다고? 동림아, 설윤이 어떤 여자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갑작스러운 고함에 최동림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설... 설윤 아줌마는 착한 사람이야. 그냥...” “착하다고?”임연지는 분노에 찬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착한 여자가 남의 가정을 깨뜨리냐? 넌 그런 사람한테 선물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는 거야?”그녀는 그대로 손을 뻗어 최동림의 품에 있던 게임기를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리꽂았다.“쾅!”새 게임기는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화면은 깨지고 기계 외관도 부서져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졌다.최동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곧장 무릎을 꿇고 깨진 게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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