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40화

작가: 고운
식사가 끝나고 주현이 차를 운전해 공항으로 갔다. 공항 주차장에 도착하자 온하랑은 이주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잘 가, 오주에서 보자.”

이주혁은 멈칫하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하랑아, 나 안 바래다줘?”

온하랑은 잠시 주춤하다 별생각 없이 반대편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마침 주현을 부르려는데 이주혁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주현 씨, 차에서 잠깐 기다려 줄래요?”

“네!”

주현은 재빠르게 대답하고 웃으며 온하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밖이 추워서 난 안 갈래요, 하랑 씨가 나 대신 이주혁 씨 잘 바래다주고 와요.”

온하랑은 별수 없이 이주혁한테 물었다.

“터미널까지 데려다줘?”

“응.”

이주혁이 배시시 웃었다. 차 안의 김시연과 주현이 서로 의미심장한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온하랑과 이주혁은 나란히 터미널 입구까지 걸었다. 가는 길 내내 온하랑은 의식적으로 화제를 찾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폰세에서의 촬영 스케줄이 이번 년 마지막이야?”

이주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남은 스케줄을 모두 앞당긴 거야. 너희랑 여행 갈 보름 정도 남기려고. 이것도 쉬는 방식이니까.”

“뭘 그렇게까지 서둘러. 그때 가서 몸 다 버려서 병원 갈 생각 말고 워라밸 좀 지켜. 네 직업 특성상 휴일 정하는 거 꽤 자유롭잖아, 굳이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내가 혼자 여행 가는 거 재미없기도 하고 해서 그래. 너랑 같이 가려고.”

이주혁의 깊은 눈이 온하랑을 보고 있었다. 온하랑의 얼굴이 아주 잠시 조금 경직됐으나 이주혁의 암시를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건 그래. 친구가 함께하면 아주 편하긴 할 거야. 됐다, 터미널 도착. 너 얼른 들어가, 나도 차에 들어가게. 밖이 너무 추워.”

“잠깐만, 하랑아.”

이주혁이 롱패딩의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케이스 위에는 영어가 몇 글자 새겨져 있었는데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였다. 이주혁은 조심조심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눈부실 정도로 정교한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341화

    멀지 않은 곳의 검은색 세단 옆, 부승민이 모자에 털 달린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열어젖힌 패딩 안으로 옷이랑 벨트가 보였다. 그는 조수석 문 앞에 서서 온하랑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온하랑이 이리 빨리 여름섬을 떠나는 게 이주혁때문이었단 사실을 안 뒤 부승민의 마음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씁쓸하기도 괴롭기도, 또 이주혁에 대한 질투도 조금 섞인 채.그리고 방금, 이주혁과 온하랑이 껴안고 키스하는 걸 보고 부승민은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주혁은 일하는 시간도 짜내 온하랑을 보러 왔고, 온하랑은 그에 감동받은 건가? 두 사람이 만나기라도 하나? 온하랑이 이주혁의 아내가 되어 보통 부부들처럼 친밀한 사이가 될 것을 생각하면 부승민의 마음은 칼에 갈기갈기 찢기고 뼈저린 고통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온하랑은 그의 것일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는 그저 온하랑이 혼란스러울까 그녀를 보살피느라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었다.온하랑은 여기에 왜 부승민이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승민은 그녀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가 타고 온 차로 걸어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온하랑은 괜스레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바람 피우다 딱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전혀 제 발 저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온하랑과 부승민은 이미 이혼한 사이고 이주혁과도 정상적인 친구 관계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만에 하나 무슨 관계가 있다 해도 부승민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온하랑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부승민이 보는 아래 얼굴에 일말의 동요도 없이 차 옆으로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마침 뒷좌석에 앉으려는데 뒤에서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아.”온하랑의 몸이 경직됐다. 그녀는 차 문을 닫고 몸을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앵두 같은 그 입술이 떨어졌다.“둘째 오빠, 진짜 이런 우연도 있네? 오빠도 여기 출장 온 거야?”며칠 안 봤다고 부승

  • 위태로운 제안   제342화

    온하랑은 무슨 웃긴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차갑게 부승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나 자유롭게 해준다며 오빠가 그랬잖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우린 이미 이혼했어.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다는 소리야.”부승민은 눈앞이 아찔해 났다. 온하랑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부승민에게 일말의 믿음도 남아있지 않았다.“나 후회해, 하랑아. 널 보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네가 말했다시피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내가 연기할 필요가 뭐 있어. 하랑아, 네가 믿건 안 믿건 난 정말 너 많이 좋아해. 너랑 이혼하기 싫어.”부승민은 이전에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었으나 언제부터였냐 묻는 온하랑의 물음에 항상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진짜 좋아하는 거라 쳐도 온하랑이 꼭 돌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좋아한다 해서 그녀가 지금껏 받아왔던 상처가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온하랑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후회해도 소용없어. 오빠가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말을 하는진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 난 오빠랑 재혼할 일 없어.”온하랑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한테서 무슨 이득을 볼 게 있다고 추서윤을 국내에 버려두고 여기까지 와서 연기를 하는 건지. 설마 할아버지 유언장에 BX 그룹 회장 자리에 앉는 조건이 이혼하지 않는 건가? 아마 이게 가장 납득할 만한 이유인 것 같았다.말을 듣고 난 부승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온하랑의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것이었다. 그녀는 부승민과 재혼할 생각이 없다. 그 한마디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하랑 씨, 얼른 타요.”김시연이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는 온하랑을 밀어 넣었다. 그녀는 부승민을 째려보고는 잽싸게 조수석에 앉았다. 부승민을 볼 때부터 김시연은 그를 온하랑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현이 그녀를 막아 나서서 온하랑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고 온하랑이 해결할 수 없을 때 다시 두 사람이 돕자고 결정

  • 위태로운 제안   제343화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금방 여름섬에서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리 많이 앞당긴 이상 세 사람은 포드타운에 가기로 결정했다.포드타운은 트로토와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협곡과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때마침 마을은 극야상태였다.그들은 마을을 한바퀴 쭉 돌았다. 쭉 뻗은 해안선과 설산의 절경을 느끼며 틈틈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기간 김시연과 주현은 계속 몰래몰래 온하랑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온하랑은 그들의 도둑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걱정 마요. 나 괜찮다니까. 아까 그 사람 본 뒤로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래요, 정상 아닌가요? 어느 사람이 전남편을 보고 기분 좋을 수가 있겠어요.”김시연이 온하랑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하랑 씨, 내려놨으면 됐어요.”그리고 세 사람은 트로토와의 호텔에서 하룻밤 쉬고 이튿날 링와스섬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마 설경을 보는데 조금 질리기는 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링와스섬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당일로 트로토와에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마침 밥을 먹을 시간이어서 세 사람은 바로 김시연이 새로 발견했다는 레스토랑으로 운전해 이동했다.밥을 다 먹고 나서 결제하려는 때에야 온하랑은 늘 가지고 다니던 가죽 가방 안의 지갑이 감쪽같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아? 내 지갑은? 호텔에 놔두고 왔나?”처음에 온하랑은 도난당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김시연이 온하랑의 텅 빈 가방을 보고는 자기 지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자, 내가 결제할게요.”온하랑은 김시연의 지갑을 건네받고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아닌데... 아까 나올 때 다 가방에 넣었는데, 길에서 떨어트린 건 아니겠죠?”“떨어트릴 수는 없다고 보고요, 소매치기를 만났을 수밖에 없겠네요.”김시연이 말했다.온하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떨어트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에 잠금장치가 있었는데 아까 가방을 열 때 잠금장치는 닫힌 상태였다. 지갑은 호텔

  • 위태로운 제안   제344화

    “소매치기범 보통내기가 아니던데요. 링와스섬에서 사진 찍을 때 지갑을 슬쩍해가는 걸 내가 봤거든요.”온하랑은 그를 쳐다봤다.“링와스섬에 갔었어요?”아주 잠깐 온하랑은 지갑을 육광태가 훔쳐 간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았다.“네, 어제 갔거든요.”“그래요? 고마워요.”온하랑과 나머지 두 사람은 오늘 간 거였는데, 정말 그냥 우연인 건가.“별말씀을. 해외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났는데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거죠.”육광태가 지갑을 건넸다. 온하랑은 지갑을 건네받고 고개를 들어 육광태에게 말했다.“좀만 늦었어도 오베니아에 가는 티켓을 끊었을 거예요. 이렇게 하죠, 내일 제가 밥 살게요, 어때요? 당신 친구만 괜찮다면 같이 와도 되고요.”육광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때 가서 보죠. 돌아가서 친구랑 물어볼게요.”“친구가 너무 엄하게 관리하는 거 아니에요? 친구라기보단 와이프에 가까운 것 같네요. 밖에서 딴짓 못하게 말이에요, 하하.”온하랑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광태의 뇌리에는 먹구름이 어둡게 깔린 부승민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썹을 치켜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아 걘 진짜 여자 친구보다 더 까탈스러워요. 이제 보면 알 걸요.”온하랑의 눈이 반짝이며 입가엔 부드러운 곡선이 그려졌다.“농담이에요. 어차피 절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제가 당연히 밥 한 끼 사야죠. 만약 친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말해볼게요.”육광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었다.“그래요, 먼저 가볼게요. 이따가 소식 있으면 문자 보낼게요.”“네.”온하랑은 문을 닫은 뒤 등을 붙이고 섰다. 그녀는 손안의 지갑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그저 우연의 일치인 걸까?...육광태는 바로 부승민의 방으로 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지갑 돌려줬어.”“응.”부승민은 소파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손에 라이터와 담뱃갑을 쥔 채 팔꿈치를 무릎에 지탱하고 있었다.“어제 만났다

  • 위태로운 제안   제345화

    그래서 온하랑은 육광태와의 식사 시간을 저녁으로 정했다. 육광태가 자기가 레스토랑을 예약한다고 했을 때, 온하랑은 또다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육광태더러 결정한 뒤에 그녀에게 알리라 했다....이튿날 아침 일곱 시 반, 온하랑 삼인방은 지정된 부두에 왔다. 그 시각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부두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딱 보면 패키지여행으로 고래 구경을 하러 나온 게 틀림없었다. 개중에 아시안들도 심심찮게 보였다.온하랑 삼인방이 예약한 건 쌍동선이었는데 가이드는 백인이었고 함께 패키지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전부 영어로 교류했다.7시 40분쯤 돼서야 배에 오를 수 있었는데 8시가 다 돼서 출발할 때 배에는 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배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씩 부두와 멀어졌다.온하랑은 갑판 위에 서 있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녀가 머리를 돌렸을 때 부두는 점점 멀어져 흐릿해지다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사방을 둘러봤을 때 주변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고 푸른 바다의 끝에 설산이 보이는 듯 마는 듯해 땅과 하늘이 그대로 맞닿아 어우러진 느낌이었다.고래 출몰 지역과는 아직 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온하랑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휴게실로 돌아왔다. 배에는 조그마한 휴게실이 있었는데 이미 열몇 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나머지 열몇 명의 사람들은 추위에 굴하지 않고 밖에서 버티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래 출몰 지역에 도착해 가이드가 알리고 나서야 온하랑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 시각, 부두는 진작 안 보인 지 오래였고 조그만 배 한 척만이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었다. 온하랑은 세상은 너무나도 크고 인간은 티끌만 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고래 구경은 사실 오로라처럼 상당한 운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유람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해서 자세히 해수면을 살폈다. 그

  • 위태로운 제안   제346화

    온하랑은 오늘 오베니아에 가지 않은 것과 육광태가 지갑을 돌려준 사실을 주현과 김시연에게 얘기했다. 김시연은 어깨를 온하랑과 부딪히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정말 우리가 안 가도 돼요?”“나 혼자 가보면 돼요.”온하랑이 입술을 앙다물고 웃었다. 만약 그저 육광태에게 감사한 뜻으로 밥을 사는 자리라면 당연히 김시연과 주현을 불러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가고 싶었다. 김시연은 온하랑이 육광태한테 뜻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향해 눈썹을 찡그렸다.“알았어요. 파이팅! 오늘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주현도 온하랑이 육광태를 좋아하는 줄 알고 이주혁을 대신해 아쉬워하며 말했다.“하랑 씨, 신중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육광태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잖아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알고 있어요, 안심해요.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녀는 그저 육광태가 이상하다고 여겨져 그녀의 짐작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김시연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해명은 숨기려는 의도죠.”“...”육광태가 예약한 음식점은 온하랑 삼인방이 가보지 못한 일식집이었다. 음식점의 제일 우측에는 작은 방들이 일렬로 벽에 붙어있었는데 앞뒤로 파티션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좌측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주렴이 걸려있어 어느 정도 사적인 공간이었다. 육광태에 의하면 그들이 오늘 식사할 방은 끝으로 두 번째 방이었다. 온하랑이 도착했을 때 육광태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온하랑이 들어오며 주렴이 촤라락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육광태는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왔어요? 얼른 앉아요. 고래 봤어요?”온하랑은 가방을 식탁 모서리에 벗어두고 육광태 맞은 쪽에 앉았다.“봤어요. 오늘 운이 좋았죠. 고래 떼도 보고 점프하는 것도 봤다니까요? 정말 예뻤어요! 볼래요? 사진이랑 영상 보내줄까요?”“급해 말아요.”육광태는 메뉴를 온하랑 앞에 내밀었다.“먼저 주문부터 하죠. 제가 먼저 몇 개 주문하긴 했는데 더 먹고 싶은 거 있나 봐봐요

  • 위태로운 제안   제347화

    온하랑은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지탱하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감탄하는 얼굴로 육광태를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난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해요!”“컥-”옆방에서 또 무슨 소리가 들려왔으나 온하랑은 신경 쓰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제가 가정적 원인으로 조금 신중하고 절제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늘 뭔가를 하고 싶으면 하는, 세속적인 안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한다면 하는 그 박력, 자유를 위해서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나한테 없는 거거든요.”온하랑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계속 말했다.“그리고 광태 씨는 정의롭잖아요. 저 대신 지갑을 찾아 돌려줬고 여자분들한테 해가 될까 조심하는 것도 말이에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얼굴로 수많은 여자 울렸을걸요.”“...과찬이시네요.”온하랑의 사뭇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육광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진짜 날 좋아하나? 육광태는 등 뒤가 시간이 갈수록 서늘해짐을 느꼈다.“내가 한 말 모두 진심이에요.”“...”육광태는 말이 없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주문했던 음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육광태는 직원의 손에서 그릇들을 건네받으며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온하랑에게 말했다.“우리 얘기만 하지 말고 밥 먹어요.”“그래요.”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런데 왜 여기로 예약한 거예요? 별실까지 따로 잡고?”육광태가 변명을 찾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때, 온하랑의 아름다운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다른 사람이 우리를 방해할까 봐서요?”“...”이 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했다. 마치 데이트하는 것 같달까.옆방에서 또 귀를 찌르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칼로 스테이크를 써는 듯한 소리였는데 칼과 접시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특별히 듣기 싫었다. 육광태는 심지어 부승민의 화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도 몰랐다, 일이 이렇게 예상 밖으로 흘러갈 줄은.온하랑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

  • 위태로운 제안   제348화

    짤라당.옆방에서는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이 부랴부랴 달려가 어렴풋이 수습하는 게 보였다. 육광태는 이젠 부승민의 감정을 고려할 새도 없었다. 그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온하랑이 날 좋아한다고? 온하랑이 왜 날? 그는 커다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고는 복잡한 심경으로 온하랑에게 물었다.“하랑 씨, 그 말 진심입니까?”“당연하죠. 아니면 오늘 왜 혼자 왔겠어요.”온하랑은 입꼬리를 올리며 길고 긴 속눈썹을 깜빡였다. 육광태는 한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하... 하랑 씨, 신중하게 생각해 봐요. 제 어디가 끌렸는지는 몰라도 아무튼...”“혹시 제가 결혼한 적 있는 게 걸려서 그래요?”온하랑이 그의 말을 잘랐다.“그게 아니라...”“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부승민 그 사람 그 쪽으로 아예 안 되거든요.”육광태는 경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믿기지 않죠? 나도 제일 처음에는 안 믿었거든요. 겉으로 봤을 때는 건장해 보였는데 진짜 허수아비가 따로 없었다니까요. 수술도 해봤고 약도 먹여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와 결혼생활 한 이 3년 동안 저 진짜 매일 밤 혼자 독수공방했다니까요.”육광태의 입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다. 옆방의 부승민은 이미 온하랑 때문에 화가 나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부승민은 자신이 괜히 친구를 불러들여 돌로 제 발등을 깠다고 생각했다. 온하랑이 이리도 빨리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육광태를 좋아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건 그렇다 쳐도 육광태의 인정을 받아내고자 육광태앞에서 거짓을 꾸며내 그를 욕보이다니! 간땡이가 부어도 제대로 부은 온하랑이였다.육광태가 사실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부승민이었다. 아마도 화가 나 거의 이성을 잃기 직전이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꽤 좋긴 했다. 아니면 이 상황에서 육광태는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을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276화

    어두운 조명과 검은색 자동차가 어우러져 최동철의 실루엣이 희미해졌고, 거기에 부승민이 거의 다 왔다고 메시지를 보낸 터라, 온하랑은 무심코 그가 부승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하필 이때 최동철이 올 줄은 말이다.“너 내 차가 온 걸 보고서도 그 사람한테서 안 떨어지고 오히려 머리를 돌려서 못 본 척하더라.”그는 최동철이 일부러 그와 비슷한 차를 몰고,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에 온 걸 보면 내일 출장을 핑계로 별장에 묵으려는 게 뻔했다.“...!”온하랑은 난감해서 울상 지었다.“못 본 척한 게 아니라 진짜 못 봤어...”눈 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쫙 비친 순간 온하랑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이웃 차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내가 경적 안 울렸으면, 넌 내가 온 줄도 모르고 계속 그 사람이랑 얘기했겠네?”“아니거든.... 사람 잘못 본 걸 발견하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네 차를 알아봤어.”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변명하듯 말했다.부승민이 말없이 그녀만 지그시 바라보자 온하랑은 눈을 깜빡였다.“왜 그렇게 쳐다봐? 혹시 내가 그 사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렇다면?”온하랑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바로 널 차버렸지. 뭐 하러 여기 앉아서 연기하겠어?”“...”온하랑은 문득 차창 밖을 보다가 여전히 차 옆에 서 있는 최동철을 발견했다. 그를 보는 순간 다시 민망해져서 부승민 팔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우리 이제 가자.”부승민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온하랑 뺨에 입을 맞췄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투명한 창문 너머로 최동철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가속 페달을 밟아 단지 밖으로 차를 몰았다.차 안에는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서 훈훈했다.온하랑은 얼굴이 달아올라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뒷자리에 던졌다. 그러곤 바깥 풍경을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우리 어디 가서 밥 먹을 거야?”부승민은 대답 대신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왜 멈춰?”

  • 위태로운 제안   제1275화

    온하랑은 하루 종일 메이슨과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메이슨은 이미 잠이 들었다.도착하자 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먼저 할 거냐고 물었다. 온하랑은 메이슨이 잠에서 깨면 같이 먹겠다고 했다.오후 늦게쯤, 메이슨이 조금 출출해해서 온하랑이 그를 데리고 디저트 가게에 갔고 같이 케이크를 먹었기에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온하랑은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처리했다.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온하랑이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확인해 보니 부승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지금 데리러 갈게. 야식 먹자. 거의 다 왔어.]온하랑은 답장을 보냈다.[좋아, 나도 아직 저녁 못 먹었어.]그리고 노트북을 덮고 도우미에게 말했다.[잠깐 밖에 나갈 건데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 30분 뒤쯤에 메이슨 깨워서 밥 먹여 주세요.]도우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방으로 올라가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방에서 나오며 베란다를 지나칠 때 무심코 밖을 내다봤다.부승민의 차가 이미 별장 입구에 와 있었다.차 옆에는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한 손을 차 문 위에 올리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였다. 불빛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온하랑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부승민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자, 온하랑은 조용히 다가가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서프라이즈!”남자는 온몸이 움찔했다. 뜨거운 손이 온하랑이 교차한 두 손을 덮었고, 다른 손에서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담배꽁초를 발로 짓눌렀다.마침 그때, 앞쪽 코너에서 자동차 한 대가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남자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게 꿈인 것 같아.”낯설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4화

    “그러면 이젠...”“네가 기회를 봐서 사모님을 도발해 봐. 사모님이 열받아서 너를 미워하게 만들어야 해.”간하림이 말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전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간하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설윤이 내 의도를 알아챈 거 아니야?’“내가 임신한 척해서 사모님을 자극하고 사모님이 열받아서 나를 밀면 유산한 척한다... 이런 걸 말하는 거야?”“맞아.”간하림이 한숨을 내쉬며 맞장구쳤다.“바로 그거야!”‘때가 되면 사모님이 널 밀기는커녕 오히려 네 거짓 임신을 들춰내 버릴걸.’“근데...”“왜?”“나, 진짜 임신했어.”“진짜 임... 뭐라고? 네가 진짜로 임신했다고?”간하림이 깜짝 놀랐다.“응.”설윤 목소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어제 집에 돌아왔는데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매스꺼워서 문득 생리가 밀린 게 떠올라 임신 테스트기를 사 봤거든. 근데... 정말로 임신이라고 나오더라.”간하림은 속이 쓰린 듯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나이도 많은 최국환이 그녀를 임신시킬 줄도 몰랐다.‘운도 참 좋지.’만약 아이를 낳아서 최씨 가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면 설윤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늦둥이는 더 귀여움을 받기 마련이다.“맞다.”설윤은 혼잣말하듯 계속했다.“아직 병원에는 안 가 봤어. 언제 가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너 임신한 거 회장님한테 말했어?”간하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 병원에서 검사받은 다음에 보고서 들고 가서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그렇구나... 음, 윤아. 네가 임신했다면 아까 그 방법은 쓰면 안 돼. 네 몸 상하면 안 되지. 내가 좀 더 고민해 볼게.”‘사모님께 한번 물어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야겠다.’“하림아, 만약 내가 아이를 낳으면 회장님한테도 양육 의무가 생기지 않아? 그럼 사모님도 날 쉽게 쫓아내지 못할 텐데 굳이 지금 상대할 필요가 있나?”“...”전화를 끊고 나서, 간하림의 마음속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견딜

  • 위태로운 제안   제1273화

    임연지도 임가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임가희는 그녀가 너무 성급했다고 나무랐다.임연지는 입으로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녀는 일부러 설윤의 정체를 드러내서 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자, 임연지는 예상대로 점원에게서 설윤이 환불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가방을 예약하고 직접 가게에 가서 찾아왔다.가방을 손에 넣은 임연지는 후련한 기분으로 예쁜 사진을 찍어 한진에게 보냈다.[나 가방 받았어.]시간을 보니 이때쯤 한진은 막 일어났을 것 같았다.잠시 후 한진이 답장을 보냈다.[진짜 예쁘네! 처음 나왔을 때부터 딱 꽂혔는데 네가 준다니까 사양 안 할게.][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쪽에 맡겨뒀다가 네가 귀국할 때 가져갈래, 아니면 누가 대신 가져다주게 할까?][며칠 뒤에 우리 오빠가 갈 거야. 나 대신 가져다줄 수 있어. 너 언제 시간 돼? 시간 맞춰서 오빠를 보낼게.][난 지금도 괜찮아. 나 센트럴 백화점 4층 커피숍에 있어.][좋아,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 볼게.]몇 분 뒤, 한진이 다시 연락했다.[오빠가 지금은 바쁘대. 그래서 오빠 비서가 대신 갈 거야. 거기서 좀 기다려 줘. 곧 도착할 거야.][알겠어.]임연지는 커피를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한진과 채팅을 이어갔다.[진아, 근데 네 방법 진짜 효과 좋아. 내가 이틀 정도 오재*을 냉대했더니 바로 전처럼 나한테 잘하려고 해.][그 사람 몰래 귀국해서 부모나 친구들한테도 알리지 못하고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결국 너밖에 연락할 데가 없잖아? 계속 차갑게만 대하면 안 돼. 가끔 잘해주기도 하면서 밀당해 봐. 그래야 헷갈릴 거야.][알겠어.]카페에서 20분쯤 기다리자,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깔끔한 청년이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장 임연지에게 다가왔다.임연지는 그 청년이 비서임을 확인한 뒤 가방을 건네주고 커피숍을 나왔다....간하림은 임가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졌

  • 위태로운 제안   제1272화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