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별장 정원에 이르자 부승민은 차에서 내렸다.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보니 안방 등이 꺼져 있었다.거실로 들어온 부승민은 등을 켜고 일부러 서랍 앞으로 가서 확인했다. 안방 비상 열쇠가 도로 들어있었다. 이윽고 부승민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에 몇 가닥의 은은한 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침대 머리에 쏟아져 내리며 베개 위에 가지런히 놓인 그녀의 머리칼이 어렴풋이 보였다.침대 중간에 볼록 튀어나온 작은 몸집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왜소하고 가냘파 보였다.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그녀의 반쪽 얼굴은 이불에 가려져 있었다.조용히 침대 옆으로 가서 앉은 부승민은 천천히 이불 한쪽 끝을 내리고, 희미한 달빛을 빌어 깊게 잠든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부승민은 그제야 그녀의 미간에 나타난 깊은 주름을 발견했다. 머리가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악몽이라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때 꿈속에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타났는지 불현듯 그녀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며 가빠지더니, 꽉 움켜쥔 손가락에 의해 시트에 몇 겹의 주름이 잡혔다.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며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부승민은 몸을 숙이고 간간이 들려오는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야, 아니라고. 난 그런 적 없어...”그녀의 눈가에 서서히 눈물방울이 맺히더니 애처로운 목소리와 함께 주르륵 흘러내려 베개에 스며들었다.순간 부승민의 가슴은 칼로 에는 듯 아팠다. 이윽고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손을 들어 부드럽게 온하랑의 등을 토닥여주던 부승민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자. 너한테 상처 준 사람들 전부 가만두지 않을 거야.”“너무 보고 싶어, 아빠. 제발 날 집에 데려가면 안 돼...”온하랑은 또 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다.어릴 적, 넓고 듬직한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할아버지의 탄식, 동료들의 경멸 어린 시선, 부민재의 위로, 선배의 도움 이 모든 건 그때의 부승민에게는 한없이 무겁게만 다가왔다.그는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 데이터 유출로 뒤따른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한편 추서윤은 사고 후 트라우마를 겪으며 그에게 유난히 의지했다.부승민도 더는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추서윤을 대할 때 그가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마음과 만회하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이었다.한 번도 오늘과 같은 느낌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쿡쿡 쑤시는 것 같은 느낌.계단에서 멈춰 선 부승민은 휴대폰을 꺼내 연민우에게 전화했다.“연 비서.”“네, 대표님. 말씀하세요.”연민우는 부승민이 오늘 밤에 있는 협력안에 대해 추가로 분부하려는 줄 알았다.“전에 경제 채널에서 계속 나에게 특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네?”연민우는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부승민은 항상 매체에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걸 꺼렸기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발표할 때의 동영상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었다. SNS 계정도 없었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대표님, 제대로 생각하신 거 맞으시죠?”온하랑이 안타까워 부승민이 직접 해명에 나서려고 한다는 걸 연민우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 그쪽에 연락해서 시간과 질문을 잘 조정해 봐.”“네, 알겠습니다.”...토요일 오전 부승민과 온하랑은 본가로 향했다.“삼촌! 숙모!”네 살이 된 부윤민은 거실에서 깡충깡충 뛰어나와 그들을 맞이했다.“일찍 왔네, 윤민이.”온하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갔다.부윤민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가 날 데리고 등산하러 갈 거래요. 삼촌이랑 숙모도 같이 갈래요?”부윤민이 말하는 등산은 아마도 성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부씨 일가는 공원 묘원을 소유하고 있
예전의 관례에 따라 그들은 본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교외에 있는 공원 묘원으로 향했다.다함께 테이블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풍성한 점심을 먹었다. 어린 부윤민의 엉뚱한 소리에 그들은 이따금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부유민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눈가에 웃음기가 어렸다.배 속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부윤민처럼 사랑스럽고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아이로 커가길 바랐다.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부승민은 넋 놓고 온하랑의 고운 미소를 바라보았다.얼떨결에 부승민과 눈이 마주친 온하랑은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금세 표정이 굳어버렸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손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누군가 문 앞에 서있었다.위에는 진회색 코트를 걸치고 그 안에는 셔츠를, 아래에는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은 뒷모습은 아주 곧고 듬직해 보였다.만약 남자가 손에 피다 만 담배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온하랑은 그 사람을 부승민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부민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아주버니.”온하랑은 웃으며 부민재에게 인사했다.“숨어서 담배 피우시는 거예요?”부민재는 힘없이 웃으며 담배를 꺼버렸다.“집에서는 와이프가 못 피게 하니까.”“형님도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그래. 나도 어쩌다 가끔 한 대 피우는 거니까, 절대 말해면 안 돼.”“네, 못 본 척 해드릴게요.”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부민재 부부 사이에 온하랑은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그럼 전 먼저 돌아가 볼게요.”“잠시만!”부민재가 온하랑을 불러세웠다.“왜 그러세요, 아주버니?”“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소식을 봤어.”이 말을 들은 온하랑은 마음이 불편해져 눈을 내리깔았다.김정숙과 소청하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그녀도 괜찮은 척하며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지만, 결국 부민재가 찔러 버리고 말았다.“네 잘못이 아닌 거 알아. 이건 승민이 잘
부영훈 부부가 부승민 때문에 다투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갔으니, 그는 그 책임을 전부 자신 탓으로 돌린 건 아닐까. 그들을 간접적으로 살해했다고 생각하며 부민재가 하룻밤 사이에 부모를 잃게 만든 범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이어진 부민재의 말은 그녀의 생각을 증명해 주었다.“그때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승민이 탓으로 돌렸어. 뒤에서 몰래 승민이를 괴롭히고 할아버지에게 이르지 말라고 협박했어.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무섭고 두려웠지만 나중에야 승민이가 나를 도와 일부러 할아버지 앞에서 숨긴다는 걸 알았어. 그러다가 할아버지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거야... 다른 집에는 보통 형이 동생한테 양보하는데, 반대로 승민이는 항상 나에게 양보했거든. 승민이가 부모님 일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보상하려고 한다는 걸, 나도 그때야 알았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마음속에 강박 관념으로 자리 잡았을 거야. 추서윤한테도 마찬가지일 테고.”“그래요?”온하랑이 중얼거렸다“승민이가 너한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어?”부민재가 추서윤에게 발생한 일을 말한다는 걸 온하랑은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녀는 강민에게서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확한 사정은 몰랐다.부민재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창밖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그때 승민이가 회사로 들어와 인턴으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야. 학업과 업무로 바쁘다 보니 추서윤을 소홀히 했었나 봐. 둘은 말다툼을 했고 화가 난 추서윤이 울며 뛰쳐나갔거든. 승민이는 쫓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추서윤 친구의 전화를 받고서야 추서윤이 실종된 사실을 알았어. 곧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납치범들은 원래 승민이를 겨냥했기 때문에 순순히 몸값만 줬다면 추서윤은 무사했을 테지만, 너도 승민이의 성격을 알다시피 다른 사람에게 협박당하는 게 싫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어. 납치범들이 어떻게 알았는지...”그래서 납치범들은 추
온하랑은 밑으로 떨어트린 손을 꼭 움켜쥐었다.부민재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았다.“걱정 마, 할아버지께서는 고집스러운 분이 아니셔. 무엇보다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실 거야. 나도 할아버지를 설득할게...”“난...”온하랑이 말하려고 할 때 뒤에서 발소리와 함께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아,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어, 형도 있었네요.”부민재는 부승민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처제랑 좀 얘기하고 있었어.”부민재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온하랑은 본가에서 살 때 오히려 부민재와 사이가 더 좋았다.부승민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온하랑에게 말했다.“아까 많이 안 먹었잖아. 가서 좀 더 먹어.”“네.”온하랑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부민재의 시선이 그들 사이에서 몇 초간 맴돌다가 입을 열었다.“나도 돌아갈게. 아니면 너희 형수가 내가 또 밖에서 담배 피웠다고 의심할 거야.”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보고 부승민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부민재는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절대 형수에게 말하지 마.”“몸에서 담배 냄새나요.”부승민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부민재는 발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이며 힘없이 말했다.“밖에 나가서 한바퀴 돌다가 와야겠다.”...점심을 먹고 두 대의 차가 본가를 빠져나와 공원묘원 산 아래에 가서 멈춰 섰다.공원묘원으로 출발할 때부터 부승민은 계속 침묵했다. 예년에도 마찬가지였다.예전 온하랑은 몹시 의아했었다. 부승민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와의 유대감도 깊지 않을 테고, 게다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이렇게 그리워한다는 사실이.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모든 게 이해됐다.“아버지, 어머니, 저희가 뵈러 왔어요. 윤민아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려.”부윤민은 눈앞에 비석을 보며 어리둥절했지만, 순순히 따랐다.“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그러나 부승민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며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감정이 없어서 차가운
부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오늘 밤에도 바빠?”온하랑이 돌연 물었다.“왜?”“할말이 있어서.”“지금 말하면 안돼?”온하랑은 눈앞에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그냥 집에 가서 말할게.”그녀는 부영훈 부부와 같은 참극이 벌어질까 두려웠다.더윈파크힐로 돌아 와 차 키를 테이블에 올려둔 부승민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두고 물 두 잔을 따르며 물었다.“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오빠, 우리 이혼하자.”온하랑은 차분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부승민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물을 따르며 어안이 벙벙해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뭐라고?”잔이 채워진 줄도 모르고 물을 계속 따랐다.“우리 이혼 하자고.”온하랑은 부승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그 순간 부승민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바라보며 눈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물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흘러넘쳐 나온 뜨거운 물이 그의 손가락을 빨갛게 데우고 옷소매를 적셨다.그가 말이 없자 온하랑이 이어서 말했다.“일단 할아버지께는 비밀로 하고 이혼신청서부터 발급받자. 이혼 사실은 감출 수 있을 때까지 감추고.”부승민은 온하랑은 바라보며 여전히 침묵했다.“어머, 대표님. 물이 흘러넘쳐요.”도우미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오며 부승민이 바닥에 물을 붓는 걸 보고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잔과 주전자를 빼앗았다.“데인 거 아니예요? 가서 연고를 가져올게요.”“괜찮습니다! 들어 가세요.”부승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 싸늘했다.부승민의 분노를 눈치챈 안씨 아주머니는 흠칫 놀라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온하랑이 임신한 사실을 아는 아주머니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대표님,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하세요. 절대 손대지 마시고.”안씨 아주머니의 방문이 닫히자 부승민은 어두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인터뷰 영상이 대중에게 공개된 건 일요일 경제 채널 오전 뉴스에서였다. 그리고 동일 시간대에 공식 사이트와 앱 계정, 공식 블로그에도 발표했다.일요일 온하랑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부승민과 온하랑이 다툰 이유를 알고 있는 안씨 아주머니는 노파심에 온하랑더러 임신 사실을 부승민에게 알려주라고 말했지만, 온하랑은 한사코 거부했다.온하랑은 문득 어젯밤 부승민이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만약 여기에 우리 아이가 있어도, 이혼할 거야?”그녀는 부승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전에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오빠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 안 나?”그때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에게 애가 있대도 오빠는 끝까지 이혼할 생각이야?”이제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의 대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만약이란 건 없어. 있다고 해도 그 아이가 태어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부승민도 그 일이 생각났는지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온하랑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오빠 말이 맞아. 만약이란 건 없어. 있다고 해도 안 낳을 거야.”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지고 가빠지더니, 부승민은 온하랑을 똑바로 응시했다. 얼굴이 굳은 채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말하려던 부승민은 결국 말을 잊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오늘 점심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온하랑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관심이 없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자고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안씨 아주머니가 떠보듯이 물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 하실래요? 전화해서 여쭤보실래요?”“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밖에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니까요.”안씨 아주머니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대표님, 행운을 빌어요. 저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온하랑이 한참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김시연에게서 카톡이 왔다.캔디
인터뷰가 진행된 지 20분이 지났다.진행자는 잠시 줄거리를 요약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사실 시청자분들 모두가 부승민 씨의 연애사에 관심이 아주 많으실 텐데요. 부승민 씨도 아시다시피 최근 인터넷에 당신과 온하랑 씨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온하랑 씨와의 관계에 대해 공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솔직히 경제 채널 관계자도 부승민이 인터뷰에 응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방송국 경영진은 이를 중시하고 특별히 베테랑 진행자를 파견해 사회를 보게 했다. 그리고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불쾌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민우에게 미리 질문 목록을 보내 가능한 질문들을 추리도록 했다.최근 부승민의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방송국 측에서도 이슈몰이를 하기 위해 질문 목록에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포함했다.애당초 부승민 측에서 부결할 줄 알았는데 연민우가 돌려보내온 질문 목록에 사적인 질문을 그대로 보류했을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뜻밖의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부승민은 카메라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사실 저는 사람들이 제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과거 여러 루머에 대해서도 여론이 확산되는 게 싫어 굳이 해명에 나서지 않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지나친 행동을 서슴지 않았어요. 인터넷에 제 와이프의 개인 정보를 유출해 심각한 사이버 폭력까지 당하게 만들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저 부승민은 인터넷에 루머를 퍼뜨리고 여론을 선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변호사가 이미 증거를 확보하고 고소장을 작성했으니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인터넷은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니니, 시청자 여러분도 현명하게 판단하시고 유언비어를 믿지도 퍼뜨리지도 마시고 다함께 청정한 네트워크 환경을 유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진행자는 깜짝 놀랐다.“온하랑 씨가 대표님의 부인이라는 말씀이세요?”고개를 끄덕인 부승민은 카메라를 굳건히 쳐다보며 말했
최국환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멈칫했다.“최 회장님,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메이슨은 상황이 특별하기에 반드시 진심으로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동철 씨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 회장님은 정성껏 메이슨을 보살필 수 있을까?’게다가 최씨 가문에는 임가희가 있기 때문에 온하랑은 그녀가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최동림의 후계자 계승을 위하여 걸림돌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메이슨은 최동림보다 두세 살 어렸다.“동철이가 현재 실종되었기에 나의 손자인 메이슨을 내가 반드시 잘 돌볼 거야. 이미 결정된 일이야. 하랑이 너랑 상의하려고 온 거 아니야.”최국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온하랑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해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아니면 경호원더러 메이슨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온하랑은 최국환이 끝까지 막으면 그와 메이슨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최 회장님께서 메이슨을 위하여 저의 몇 가지 조건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말해봐.”“첫째, 제가 떠난 후 메이슨을 최씨 가문에 데려가서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이 계속 돌보게 해주세요. 최 회장님께서는 매일 시간을 내셔서 메이슨의 학습 상황을 물어봐 주세요.”온하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국환은 메이슨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언젠가 임가희는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기에 최국환의 옆에 둔다면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메이슨이 계속 별장에 머물면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은 권력과 힘이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를 노릴 기회를 줄 수 있다.온하랑의 말을 들은 최국환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는 메이슨을 옆에 두고 잘 가르칠 생각이었다. 만약 좋은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그가 자질이 평범해도 최국환은 그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잠시 후 최국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잠깐만. 먼저 통화 좀 할게.”“네, 최 회장님. 편안한 대로 하세요.”통화 중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