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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5화

Author: 고운
온하랑은 하루 종일 메이슨과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돌아왔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메이슨은 이미 잠이 들었다.

도착하자 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먼저 할 거냐고 물었다. 온하랑은 메이슨이 잠에서 깨면 같이 먹겠다고 했다.

오후 늦게쯤, 메이슨이 조금 출출해해서 온하랑이 그를 데리고 디저트 가게에 갔고 같이 케이크를 먹었기에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온하랑은 노트북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처리했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온하랑이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확인해 보니 부승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지금 데리러 갈게. 야식 먹자. 거의 다 왔어.]

온하랑은 답장을 보냈다.

[좋아, 나도 아직 저녁 못 먹었어.]

그리고 노트북을 덮고 도우미에게 말했다.

[잠깐 밖에 나갈 건데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 30분 뒤쯤에 메이슨 깨워서 밥 먹여 주세요.]

도우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하랑은 방으로 올라가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방에서 나오며 베란다를 지나칠 때 무심코 밖을 내다봤다.

부승민의 차가 이미 별장 입구에 와 있었다.

차 옆에는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한 손을 차 문 위에 올리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였다. 불빛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

온하랑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부승민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자, 온하랑은 조용히 다가가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서프라이즈!”

남자는 온몸이 움찔했다. 뜨거운 손이 온하랑이 교차한 두 손을 덮었고, 다른 손에서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담배꽁초를 발로 짓눌렀다.

마침 그때, 앞쪽 코너에서 자동차 한 대가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남자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게 꿈인 것 같아.”

낯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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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국환도 낚시하러 간다던데 만약 마주치면 어쩌지? 특히 그 양반이 결혼 얘기라도 꺼내면... 끝장이야.’ 마침 걱정을 마치기가 무섭게 집사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회장님, 최 회장님께서 함께 낚시 가자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차는 이미 문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형일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이런 젠장.’ 결국 낚시 도구를 챙겨 트렁크에 실은 후 그는 묵묵히 뒷좌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국환아,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나야 괜찮지.”운전석에 앉아 있던 최국환이 힐끗 그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형일이 너, 오늘따라 얼굴이 별로다. 무슨 일 있어?” “우리 집 그 망나니 놈 때문에 속 터지겠다.”오형일은 한숨을 쉬며 분을 꾹 삼켰다. “노는 거야 그렇다 쳐도 사고만 안 치면 내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도 없지. 근데 하는 짓마다 골치 아프게 만드니 어쩌겠어?” “재원이야 아직 젊잖아. 결혼하면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최국환은 이미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조용히 본론을 꺼냈다. “형일아, 사실 나도 들었어. 재원이랑 연지 일 말이야. 우리 두 집안은 예전부터 각별했잖아.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재원이랑 연지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야. 그리고 지금 연지가 재원이의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군. 내 생각엔 이참에 그냥 결혼시키는 게 맞지 않나 싶어.”오형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주먹이 저절도 쥐어졌고 차 안의 공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그는 낮게 코웃음을 치며 날카롭게 말했다. “말이 쉽지. 만약 네 아들 동철이가 그랬다면 넌 이 결혼 받아들일 수 있겠냐?” 최국환은 단호하게 답했다. “동철이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 그리고 방금 네가 말했잖아? 재원이는 아직 철이 없다고. 동철이랑 비교할 상대가 아니지.”그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솔직히 이 일이 승혁이한테 벌어졌다면 나도

  • 위태로운 제안   제1367화

    “걱정 마세요. 연지도 이제는 잘못을 깨달았어요.” 최국환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좁혔다. “고은이는 어떻게 할 거야? 재원이가 그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 “재원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우리 최씨 가문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 건 일도 아니야.” 최국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설윤과 몇 마디 나눈 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오씨 가문에서는 지금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 있어야 할 막내아들이 갑자기 집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재원! 네가 정말 내 기대를 저버리는구나.”거실에 울려 퍼지는 노기 어린 외침. “탁!” 오형일이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몰래 귀국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임연지랑 얽혔다고? 네가 정말 나를 잡아먹으려고 작정한 거냐?” 옆에 있던 오승은도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나섰다. “재원아, 네가 왜 집행유예를 받았는지 잊었니? 임연지는 너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 아이는 너와 어울리지 않아. 엄마 말 듣고 다시 해외로 나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거야. 그때 가서 엄마가 좋은 아가씨를 골라줄게.” 그러나 오재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더 이상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전 연지만 사랑합니다. 연지와 결혼할 거예요.” 순간, 거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오기 전에 연지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던 오재원이 비웃듯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부모님이시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근데 아버지, 어머니는요? 말만 하면 연지를 깎아내리고 모욕하잖아요.”“대체 어느 쪽이 더 못된 겁니까?” “너!” 오승은은 충격과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임연지는 우리 집안의 돈과 지위를 탐내니까 네 앞에서 착한 척하는 거야.” “재원아, 아직도 모르겠니?

  • 위태로운 제안   제1366화

    최동림은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굳어버렸다. 순진한 초등학생의 머릿속이 처음으로 거대한 충격이 받았다. 형이 하는 말은 그동안 책에서 읽고 선생님에게 배운 것과 전혀 달랐다. 하지만 거짓이 아니었다. 그저 현실일 뿐. 그리고 그 현실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동화 속에서 왕자와 공주는 사랑으로 맺어지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악당이 벌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보스’는 아버지였다. 권력, 재력, 사회적 지위.아버지는 모든 걸 가졌고 온 가족이 그의 뜻에 따라야 했다. 옳고 그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중요한 건 아버지의 기분.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설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는 설윤에게 어떤 위협도 가해서는 안 됐다. 최동림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최동철은 동생이 충격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조용히 책상으로 가서 업무를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최동림은 멍한 얼굴로 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 만약 내가 좀 더 똑똑하고 건강했다면... 아빠는 설윤 아줌마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을까?” “아니.” 최동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동림은 형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 부족한가?’ ‘형이 건강하지 않은가?’ 전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태어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모아둔 용돈을 전부 설윤 아줌마에게 주고 아이를 지우고 떠나달라고 하면... 아줌마께서 동의할까?” “아니.”최동철은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은 이미 설윤 아줌마가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상황이야. 아줌마가 동의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거고. 만약 네가 그런 행동을 하면 아버지는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심할 거야. 심지어 임 여사님이 시켰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면 임 여사님께

  • 위태로운 제안   제1365화

    “동림아, 네가 임 여사님을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어머니는 스스로 잘 해결하실 거야.” 최동림은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엄마의 태도가 이상했다. 친구네 아빠가 바람을 피웠을 때 친구 엄마는 크게 분노하고 난리를 쳤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적도 있다. 아내가 남편의 내연녀를 공격하는 영상 그리고 그 영상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 ‘저런 여자들은 가만두면 안 돼.’ ‘원래 저런 건 맞아야 정신 차리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연녀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너무도 평온했다. 심지어 그 여자, 설윤에게까지 온화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형, 그런데 엄마는 왜 그러시는 거야?” “너한테는 아직 좀 어려운 얘기야. 그냥 엄마 말 잘 따르기만 하면 돼.” “나도 알고 싶어. 형, 알려줘.” 최동림은 형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이의 눈빛은 맑고 어렸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것은 단순한 호기심만이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최동철은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림아, 너 이익이 뭔지 알아?” “알지. 돈!”최동림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자 최동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사람과의 관계, 사업 기회, 사회적 지위, 더 나은 생활. 이 모든 게 다 이익이 될 수 있어.”“음...” 최동림은 이해가 되는 듯 안 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최동철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정략결혼도 결국 이익과 이익이 맞물린 관계야.” “정략결혼?”“그래. 두 집안이 서로 협력하면서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맺는 거지. 남자가 신분이 낮다면 여자 집안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도 있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배경 덕을 볼 수도 있어.”“임 여사님도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더 나은 생활을 했고 더 많은 인맥과 사회적 지위를 얻었어.”“그게 바로 결혼이 임 여사님에게 가져다준 이익이야.” 최동림은 조금 헷갈린

  • 위태로운 제안   제1364화

    “형이야 당연히 막아보려고 했지. 하지만...”최동철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소용없었어. 아버지가 결정한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 그리고...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아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최국환은 언제나 강하고 존경할 만한 존재였다. 그런데 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반사적으로 반박했다. “그건 혹시 설윤 아줌마가 아버지를 유혹한 거 아닐까요?”“유혹?”최동철은 피식 웃으며 동생을 내려다봤다. “유혹이라는 단어 뜻은 제대로 알고 쓰는 거야?” “들었어요. 아빠 같은 사람한테는 붙으려는 여자가 많대요. 그러니까 설윤 아줌마도 그랬을 수도 있잖아요.” 최동림은 사립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비가 비싼 만큼 친구들도 하나같이 부잣집 자식들이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집안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와 가정을 차린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안도했다. ‘우리 집은 달라.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니까.’하지만 지금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동림아, 형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대단한 사람이요.” 최동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이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형을 바라봤다. 그들은 나이 차가 많아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형에 대한 동경은 항상 있었다.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이 형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형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새삼 깨닫곤 했다. 형이 해외 명문대에 진학할 때도 집안 도움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합격했고 지금도 모든 걸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 “외모로 보면 형이랑 아버지 중에 누가 더 잘생겼어?” “당연히 형이죠.” ‘아빠는 이미 늙었으니까.’ “몸매는?” “그것도 당연히 형이죠.” “재산은?” 최동림은 이번엔 조금 고민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더 많겠지만... 형도 결코 부족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363화

    최동철의 입술이 설윤의 쇄골을 스쳤다. “아무도 모를 거야.”“그만해요. 저... 임신 중이에요. 안 돼요.”“알아.”“회장님은 최동림 공부 봐주시러 가셨으니까 곧 돌아오실 거예요.”“아버지는 오늘 서재에서 밤새 일할 거야.”“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계속 방에 없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문 잠갔어. 그리고 다들 내가 방해받기 싫어하는 거 알잖아.”“그럼 어떻게 나왔어요?”“테라스로.”설윤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조용히 말했다. “흔적 남기지 않게 조심해요.”“응.”잠시 후, 최동철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윤은 입술을 꼭 다문 채 빠르게 손을 닦아내고 일어났다. 그녀는 서둘러 창문과 테라스 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켰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옷을 단정히 여민 최동철이 테라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간다.”“잠깐만요.” 설윤이 그의 팔을 잡았다. 최동철이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그 순간, 설윤은 커다란 종이티슈 덩어리를 그의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최동철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건 당신 거예요. 가져가세요. 회장님이 보면 제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최동철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윤은 그가 창문을 넘어 테라스로 이동하는 걸 지켜봤다. 본가의 방들은 각자 테라스를 가지고 있었고 서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최동철의 방은 설윤의 방 바로 옆은 아니었지만 중간에 빈 객실 하나만 두고 가까운 편이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기 전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설윤은 곧장 방을 점검했다. 이상한 흔적은 없는지, 냄새가 남아 있지 않은지. 모든 걸 확인한 뒤에야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편, 최동철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종이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책상 앞으로 갔다. “똑똑.”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최동철은

  • 위태로운 제안   제1362화

    그녀는 어딘가 쑥스러운 듯 손끝으로 옷자락의 끈을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붉어진 귀 끝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민박에 머무는 며칠 동안 그들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그날 밤이 너무 격정적이어서 그럴 겨를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둘 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최동철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시선을 고정하더니 혀끝으로 어금니를 굴리며 낮게 물었다. “내 거야?” 설윤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네.”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최동철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감정을 지운 듯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네가 임 여사한테 쫓겨나기 전부터 이미 임신했다고 하던데?” 설윤의 손끝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건 거짓말이에요.”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가희가 절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덫을 놓았어요.” 임가희의 수법은 너무나도 조악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유나영이 임가희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반대로 그녀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만약 다움시에서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최동철이 천천히 물었다. “낙태 수술 기록이라도 위조해서 아버지한테 가서 울었겠지?” “네...” 그녀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임신할 줄은 몰랐다. 최국환에게 보낸 자료에는 임신 9주 차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5주 남짓이었다. 최동철은 낮게 웃었다. 그러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니까 네 원래 계획대로라면 결국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거네.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면서 왜 내 제안은 거절했던 거야?” ‘이 인간은 아직도 그걸 따지고 있는 거야?’설윤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잠시 침묵하더니 등을 꼿꼿이 세우고 발끝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그때 생각이 바뀌었어요.”그녀는 조용히 숨을

  • 위태로운 제안   제1361화

    최동림이 이렇게 쉬운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걸 보자 최국환은 순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둘째 아들은 원해부터 몸이 약했고 공부에서도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몸이 약하니 학업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한 거겠지.’그렇게 스스로 납득한 후 차분하게 문제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최동림은 금세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제 알겠어요! 아빠, 감사합니다.” 사실 그는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그랬다. 이렇게 하면 아빠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최국환은 한 번만 듣고도 문제를 이해하는 아들이 기특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앞으로 모르는 문제 있으면 언제든 아빠한테 물어보렴.” “네!” 최동림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설윤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자마자 불을 켜기도 전에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강하게 벽으로 밀쳤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놀라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거친 손이 빠르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딸깍.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천장의 조명이 켜지며 은은한 불빛이 방 안을 환히 밝혔다. 설윤은 순간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빛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애 눈앞의 인물을 또렷이 마주했다. 최동철. 그는 문 앞에 서서 한쪽 손으로 그녀를 벽에 가둔 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한 달 만에 봤다고 날 못 알아보는 거야?” 낮고 서늘한 목소리. “설마요.” 설윤은 그의 손을 가볍게 치우고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나지막이 되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신데요. 최 대표님?” 최동철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탐색하는 듯한 어딘가 날카로운 시선. 설윤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어쩐지 불안했다. 그녀는 눈길을 피하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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