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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2화

Author: 고운
“...”

클럽.

잠깐의 틈이 생기자 설윤은 7층 휴게실에서 짧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무전기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윤, 709번 방에 과일 플래터 두 개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설윤은 핸드폰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휴식 시간은 언제나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녀는 서둘러 옆에 있는 작은 주방으로 가 과일 플래터 두 개를 준비해 709번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손님이 한 명뿐이었는데 마스크를 쓴 우아한 귀부인이었다.

설윤은 플래터를 테이블 위에 놓고 귀부인에게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천히 즐기세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설윤은 방을 떠나려 했다.

“설윤 씨.”

귀부인이 그녀를 불렀다.

발걸음을 멈춘 설윤은 놀란 표정으로 귀부인을 바라보았다.

설윤은 귀부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얼굴에 큰 흉터를 입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최 회장의 부인만이 그녀처럼 작은 직원의 이름까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귀부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여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죠.”

귀부인은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따르며 설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르겠죠? 간단히 소개할게요. 나는 리우 그룹 회장, 최국환의 부인이에요.”

그녀가 정체를 드러내자 설윤은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고 당황한 기색으로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최 사모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

임가희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

“앉아요.”

설윤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내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최국환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알고 있겠죠?”

최 사모님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그녀와 최 회장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설윤은 숨기지 않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잘 모릅니다.”

임가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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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1283화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설윤은 경계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좋게 말할 때 듣지 않더니 결국 화를 자초하는군.”임가희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설윤 씨, 그렇게 눈치 없이 굴 거라면 내가 직접 이 애를 없애버릴 수밖에 없겠네요.”그녀는 문 밖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들어와!”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며 두 명의 건장한 남자 보디가드가 들어왔다.한눈에 봐도 위압적인 체격과 기세로 거리에서라면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인상이었다.“저 여자 데려가서 장 의사한테 낙태시켜.”임가희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그리고 경주에서 내쫓아. 최대한 한 멀리.”두 보디가드는 지체 없이 설윤에게 다가갔고 설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하며 방 문 쪽으로 달려갔다.손이 문 손잡이에 닿으려는 찰나, 보디가드 한 명이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아 뒤로 잡아끌었다.곧이어 두 명이 그녀를 양옆에서 제압하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놔요! 이러지 마세요!”설윤은 몸부림쳤지만 그들의 힘 앞에선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임가희의 무자비한 태도와 자신의 처지를 깨닫자 설윤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놓으라고! 이 독한 여자야! 회장님이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임가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이는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지금 최국환은 C시에 있다.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설윤은 이미 이 도시에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적당히 둘러대면 될 일이다. 설마 최국환이 설윤 때문에 자신과 등을 지겠는가?설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외쳤다.“회장님 만나게 해줘요! 회장님께 말할 거예요!”임가희는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끌고 가.”두 보디가드는 그녀의 명령을 따르며 설윤을 강제로 끌고 방을 나섰다.설윤은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애타게 소리쳤다.“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제발!”하지만 그 소리는 곧

  • 위태로운 제안   제1284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때 복도 끝에 있는 룸의 문이 열리고 간하림이 트레이를 들고 나왔다.설윤은 간하림을 보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으으... 으으...”간하림과 그녀는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 간하림이라면 분명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믿었다.구출되기만 한다면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간하림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간하림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다가왔다.“윤아? 무슨 일이야?”보디가드 한 명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가까이 오지 마요. 우리는 최 사모님의 일을 돕는 중입니다. 괜히 참견했다가 곤란해질 테니 물러서요.”“으으...”간하림은 설윤의 애처롭고 무력한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윤아, 혹시 내가 널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설윤은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날 믿어줘서 고맙긴 한데... 미안하지만 널 실망시켜야겠네. 나도 최 사모님을 돕고 있는 입장이거든.”간하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설윤의 마지막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설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충격과 분노로 가득 찼다. 믿었던 간하림이 자신을 배신하다니. 왜? 도대체 왜 그런 거지?분노는 곧 절망으로 바뀌었고 끝이 없는 공포가 다시 그녀를 집어삼켰다.이제 그녀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간하림은 설윤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는 키득거리며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임신한 걸 최 사모님이 어떻게 알게 됐을 것 같아?”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속삭이듯 말했다.“회장님한테 선택받고 그 사람의 아이까지 가졌으니 참 운이 좋더라. 나도 네가 부러울 지경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최 사모님이 일을 끝내고 나면 날 위해 돈을 챙겨준다는데 내가 너를 팔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그녀의 말이 끝나자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했고 보디가드들은 설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간하림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윤아, 잘 가. 아니, 다시는 보지 말자.”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설윤의 공포로 가득 찬 얼굴이 시야에서 사

  • 위태로운 제안   제1285화

    운전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변명하려 했으나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그를 막으며 맞은편의 블랙 차 운전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봐요, 진정하세요. 별일 아니니까 금액 말씀해 주시면 바로 이체할게요. 저희도 급한 일이 있어서 굳이 교통경찰 부를 필요 없잖아요. 번거롭기만 하고.”블랙 차 운전사는 그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운전석 경호원을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잘 봐두고 다음부턴 이렇게 해요. 이 차는 막 출고한 새 차야. 100만원이면 되겠네.”운전석 경호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사이드미러 하나가 100만원이라니?이건 사기 아닌가!옆자리에 있던 동료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결국 말했다.“결제할 테니 계좌 번호 주세요.”“줄 순 있는데...” 블랙 차 운전사는 말을 이으며 덧붙였다.“우선 사고 현장을 기록하고 계약서를 작성해요. 나중에 당신들이 저를 공갈죄로 신고하지 않게 말이죠.”“...”“빨리 할 수 없어요?”“뭐 그렇게 급해요?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게?”블랙 차 운전사가 퉁명스럽게 받아쳤고 그의 한 친구가 휴대폰을 꺼내 사건 관계자들과 두 차량의 상태를 이리저리 촬영하기 시작했다.“계약서 누가 작성할 줄 알아?”블랙 차 운전사가 옆의 친구들에게 묻자 왼쪽에 있던 키 큰 남자가 대답했다.“그거야 간단하지. 인터넷에서 아무거나 하나 다운받아서 수정하면 돼.”말을 마친 그는 휴대폰을 꺼내 작업에 들어갔다.운전석 경호원과 동료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약간의 짜증과 초조함을 느꼈다.이때 동료가 말했다.“저희가 나중에 공갈 신고 같은 건 안 할 테니 굳이 계약서까지 작성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도 급한 일이 있어서요.”키 큰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수정 끝납니다. 끝나면 공유해 드릴 테니 이름 쓰고 서명만 하세요.”“그러면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알았어요, 알았어. 재촉할수록 더 느려진다니까.”“...”몇 분 후 키 큰 남자가 한숨을 쉬며

  • 위태로운 제안   제1286화

    “어쩔 수 없지.”임가희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 그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하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설윤이 도중에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분노와 충격이 동시에 몰려와 눈앞이 새까매지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설윤이 최국환에게 달려가 모든 걸 고자질이라도 하면 최국환이 바로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그녀가 최국환의 마음속에서 쌓아온 신뢰와 이미지는 크게 손상될 것이 뻔했고 설윤의 아이가 최동림의 재산과 사랑을 차지하려는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내가 경찰서에 연락해 둘 테니 너희는 CCTV를 확보해서 최대한 빨리 설윤을 찾아와!”“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명령을 받고 관련 부서로 향해 CCTV 영상을 확보했고 곧 블랙 차와 충돌한 시간대를 찾아냈다.영상은 차량 뒤쪽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마침 트렁크가 찍혀 있었다.영상 속에서 그들이 차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블랙 차 운전자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동안 트렁크가 조용히 열렸다. 설윤이 신중하게 트렁크에서 빠져나와 뚜껑을 닫고 몸을 낮춘 채 빠른 걸음으로 골목 끝으로 사라졌고 곧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설윤은 이미 차 안에서 밧줄을 잘라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단지 탈출할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택시는 경호원들 바로 옆을 지나갔다.하지만 그들은 블랙 차 운전자 일행에게 주의를 빼앗겨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경호원들은 택시의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경로를 따라 CCTV를 추적하기 시작했다.택시는 고속도로를 따라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경호원의 마음속엔 불길한 예감이 자리 잡았다.“택시가 아직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 내가 차로 쫓아갈 테니 너는 여기서 CCTV를 계속 확인하면서 연락을 유지해.”한 경호원은 서둘러 차를 몰고 고속도로 방향으로 떠났고 다른 경호원은 CCTV 앞에서 택시의 위치를 주시했다.조금 뒤, 택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멈췄고 설윤은 차에서 내려 휴게소 안의 슈퍼에 들어갔다.CCTV를 보고 있던 경호원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 위태로운 제안   제1287화

    경호원의 머릿속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설윤은 애초에 클럽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클럽 내부는 난방이 잘 되어 있어 얇은 옷을 입고도 문제가 없지만 바깥에서는 추위에 몸이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설윤은 아마도 슈퍼마켓 사장에게 두꺼운 외투를 구매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경호원은 다시 CCTV를 되감아 슈퍼마켓에 들어가고 나온 사람들을 대조했다. 그러다 파란색 롱패딩을 입은 사람이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장면만 있고 들어가는 장면은 없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대형버스 쪽으로 걸어갔는데 설윤일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휴게소내 혼잡을 피하기 위해 두 대의 대형버스가 나란히 정차해 있었고 CCTV 각도상 그녀가 어느 버스를 탔는지 정확히 볼 수 없었다!그 시점에서 동료 경호원이 휴게소 슈퍼에 들어가 사장에게 설윤에 대해 물었다.예상대로 슈퍼 사장은 설윤이 자신에게 두꺼운 외투를 사고 싶다며 손목시계로 바꾸자고 말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녀가 얇은 옷을 입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자신의 낡은 롱패딩을 그냥 줬고 돈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그럼에도 설윤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사장에게 주고 대신 몇 만원의 현금을 받았다.다만 그녀가 어느 대형버스를 탔는지는 사장도 보지 못했다.경호원은 주유소 CCTV가 그녀가 탄 버스를 포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유소 CCTV는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결국 경호원은 임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임가희는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느낌에 더 많은 인원을 지원했다.몇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주유소 CCTV를 확보한 경호원은 설윤이 탑승한 버스의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운행 시간표를 통해 버스 기사와 연결했다.하지만 버스가 고속도로를 주행 중이라 기사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경호원이 전화를 걸자마자 바로 거절당했다.어쩔 수 없이 그는 대형버스의 운행 경로를 따라 추적하기로 했다.임가희가 보낸 지원 인력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몇 시간을 추적

  • 위태로운 제안   제1288화

    다행히도 한 보안요원이 친절하게도 이렇게 말했다.“대형버스를 탄 것 같아요.”대형버스라니...또 대형버스라니...경호원은 멘붕 직전이었다.설윤이 그들 코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경호원들은 이틀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임가희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다.“설윤은 고속도로에서 중간정차가 가능한 대형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불규칙하게 하차했습니다. 의도적인 움직임에 저희는 혼란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힌 설윤의 모습은 한 휴게소에서 내리는 장면이었어요. 그 이후, 설윤은 CCTV 사각지대로 사라졌으나 현장을 뒤졌음에도 별다른 유용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임가희의 마음은 깊은 절망으로 가라앉았다.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별빛이 반짝이는 듯한 환각 속에서 중심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임연지가 그녀를 부축해 쓰러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고모, 몸조심하셔야 하셔야죠.” 임연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경호원들은 그 광경을 보고 죄책감과 후회에 휩싸였다.‘우리가 일을 제대로 못한 탓이야.'임가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진정한 뒤 물었다.“설윤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휴게소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어디야?”“H시입니다.” 경호원이 답했다.“그럼 H시로 가서 계속 찾아봐. 특히 버스 정류장, 호텔 같은 곳들을 중심으로.”“...알겠습니다.” 경호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하지만 만약 그래도 찾지 못한다면?임가희의 몸 상태를 고려해 경호원은 그 질문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경호원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연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고모, 만약 그래도 설윤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죠? 나중에 그 여자가 고모부에게 연락이라도 하면...”“네 우려도 일리가 있어. 우리가 먼저 준비를 해야겠구나. 네 고모부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임가희는 고심 끝에 말했다.“그럼...”“우리가 선수를 쳐야 한다. 네 고모부 앞에서 연극이라도 해야 해.

  • 위태로운 제안   제1289화

    최동철이 며칠째 회사에 출근하지 않자 그룹 내부 이사들 사이에서 이미 소문이 퍼져 각자 몰래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C시에 머물 수 없었고 즉시 본사로 돌아가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알겠습니다.”바로 그때, 차 안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비서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발신자는 임연지였다.그는 임연지와 번호를 교환한 적은 있었지만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왜 안 받나?” 최국환이 계속 울리는 벨소리를 보고 물었다.“임연지 씨입니다. 처음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비서가 답하며 전화를 받았다.“임연지 씨?”수화기 너머에서 임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최 비서님, 고모부께서 언제 돌아오신다고 하셨나요?”“이틀 더 걸릴 겁니다. 왜 그러시죠?”“별일 아니에요.”“별일 아니면 이만...”“비서님, 설윤 건은 비서님께서 맡고 있죠?” 임연지가 갑자기 이렇게 묻자 비서는 잠시 당황하며 옆에 앉은 최국환을 힐끗 보고는 급히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설윤 씨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설윤 씨가 경주를 떠나면 어디로 갈지 짐작이 가십니까?”“그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그분이 경주를 떠났습니까?”임연지는 코웃음을 치듯 ‘흥’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도망쳤어요.”“도망쳤다고요?” 비서는 깜짝 놀라며 최국환과 눈을 마주쳤고 최국환이 살짝 찌푸린 눈썹을 보고 그는 급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지난번에 제가 백화점에서 설윤 씨를 한 대 때린 일 때문에 고모가 마음에 걸렸는지 설윤 씨를 따로 만나 사과하려 했어요. 그래서 저를 끌고 억지로 따라가게 했죠. 그런데 설윤 씨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모가 불순한 의도로 자신을 찾아왔고 일부러 잘난 척을 하려는 거라고 몰아세웠어요. 그러다 결국 고모를 찌르고 도망쳤지 뭐예요.”“사모님께서 다치셨다고요? 상처는 많이 심하

  • 위태로운 제안   제1290화

    “저는 설윤의 동료인 간하림이에요. 설윤이... 하아...”간하림이 말을 멈추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설윤 씨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아까 누군가를 다치게 한 것 같더니 서둘러 떠났어요. 핸드폰은 탈의실에 두고 갔고요.”“다치게 하다니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 음, 그만두죠. 최국환 씨, 설윤의 친구분 맞으시죠? 차라리 직접 와서 핸드폰을 가져가시는 게 좋겠어요. 계속 클럽에 두는 것도 곤란하니까요.”간하림은 설윤이 최국환을 저장한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최국환의 시선을 받은 비서가 말을 이어갔다.“괜찮으니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그럼 말씀드릴게요. 설윤이 돈 많은 남자에게 후원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얼마 전 저희가 함께 쇼핑할 때 그 남자의 본처 조카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설윤이 그때 맞았어요. 이번엔 본처와 그 조카가 직접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설윤이 본처를 다치게 했다던데 제 생각엔 아마 또 맞아서 반격한 거겠죠. 그런데 이상한 건 설윤이가 떠날 때 아무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본처가 설윤에게 계속 사과를 했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설윤은 이틀째 출근하지 않았고 연락도 안 되고 있어요.”“아, 그렇군요. 상황은 알겠습니다.”“설윤이 핸드폰은 언제 가져가실 건가요?”“시간이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비서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최국환에게 건네며 물었다.“회장님...”“응.”최국환은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받아 챙기며 말했다.“호수 별장 쪽에 물어봐. 설윤이 돌아간 적 있는지.”“알겠습니다.”비서는 호수 별장의 관리인과 연락을 시도했고 관리인은 설윤이 이틀 동안 돌아온 적 없다고 답했다.차 안은 무겁고 긴장된 침묵에 휩싸였다. 비서는 최국환의 어두운 표정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겉보기에는 유순하고 상냥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미 떠났

Pinakabagong kabanata

  • 위태로운 제안   제1357화

    그때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의 무관심이 좋기만 했는데 클수록 오재원은 그게 다 기대가 없어서였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주위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신과 형을 비교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집안의 무게는 형이 다 짊어지니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오기도 했다.모두가 내놓은 자식이라 해서 정말 그렇게 사니 부모님은 또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고 타박했다.그런 사람들 속에서 오직 임연지만이 오재원을 인정해주었다.오재원의 우수함을 발견하지 못한 건 오승은과 오형일이 부모 노릇을 잘 못 했기 때문이라며, 오재원이 이렇게 된 것도 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모 때문에 엇나간 거라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노력만 하면 절대 형한테 뒤지지 않을 거라는 그 한마디가 오재원의 가슴을 울렸고 오재원은 그때부터 임연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오재원도 자신이 형보다 못 한 게 아니라 형이 받았던 교육을 못 받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재원아,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결혼생활은 오래갈 수 없는 거야. 넌 아주머니, 아저씨 자식이니까 너를 탓하진 않겠지만 나한테 그 화살이 올 거야. 그러면 날 더 싫어하시겠지.”“나도... 떳떳하게 너랑 결혼하고 싶은데...”임연지가 얼굴까지 붉히며 말하자 오재원은 그녀를 향해 무턱대고 약속부터 했다.“걱정 마 연지야. 내가 부모님 설득해볼게. 네가 내 아이까지 임신했으니까 부모님도 어쩌진 못하실 거야.”“고마워 재원아...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 너무 든든하다.”오재원은 눈물을 글썽이는 임연지를 꼭 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연한 일인데 뭐. 넌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내가 너만은 꼭 지킬 거야.”“우리 부모님은 아직 내가 귀국한 거 모르셔. 내일 집에 가서 너랑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너희 집 가서 의논할 거니까 너도 고모랑 고모부한테 미리 말해놔.”“응. 아주머니, 아저씨랑 싸우지 마.”“알겠어.”...리우그룹 대표 사무실.“나가 봐.”보고도 끝난 마당에 최동철

  • 위태로운 제안   제1356화

    소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임연지는 이튿날 아침 바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청초함이 돋보일 수 있게 화장도 연하게 한 뒤 오재원에게 문자를 보냈다.[재원아,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우리 자주 보던 카페에서 볼까?]역시나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오재원이 답장을 보내왔다.[알겠어, 바로 갈게.]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임연지는 그의 답장에 입꼬리를 올렸다.30분 뒤, 카페에 도착한 오재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구석에 앉아있는 임연지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어딘가 불안하면서도 초조해 보이는 모습에 오재원은 걱정스레 물었다.“연지야,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어?”오재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임연지는 빨개진 눈시울을 하고 천천히 말했다.“재원아, 나... 나 임신 한 것 같아.”“진짜? 연지야, 이거 진짜야?”잠시 당황하던 오재원이 펄쩍 뛰며 좋아하자 임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생리가 5일이나 밀려서 아침에 테스트기 해봤는데... 두 줄이더라.”두 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재원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임연지의 손을 맞잡았다.“너무 잘됐다! 우리한테 드디어 아이가 생긴 거잖아!”그에 똑같이 기뻐하며 손을 맞잡던 임연지는 이내 울상을 지었다.너무 기쁜 마음에 임연지의 이마와 볼에 뽀뽀를 하며 희열을 만끽하던 오재원도 그제야 그녀의 굳은 표정을 발견하고 물었다.“연지야, 표정이 왜 그래? 우리한테 아이가 생긴 건데 너는 안 기뻐?”“기쁘지.”임연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그냥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감금 피하려고 임신한 애를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는 게...”“너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잖아. 네 탓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만 하면 미혼모 가정도 아니잖아. 나랑 결혼하자 연지야.”“싫어.”임연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재원을 외면했다.“왜 싫은데?”임연지가 침묵만 유지하자 조급해 난 오재원은 자리까지 옮기며 물었다.“연지야,

  • 위태로운 제안   제1355화

    한진이 답장을 하지 않아도 임연지는 혼자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설윤과 최씨 집안의 원한 관계를 짤막하게 설명해준 임연지는 설윤에게 파렴치하고 가증스럽다는 수식어를 갖다 붙였다.[나 그 여자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꼴 못 보겠어. 무슨 방법 없을까?]계속 답장이 없는 한진에 임연지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그녀가 머리까지 다 말리고 나니 한진이 그제야 답장을 보내왔다.[네 고모가 이런 수모를 당한 게 아무래도 집안에서 발언권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사촌 동생도 많이 어리니까 더 그렇지.][그럼 어떻게 해야 발언권이 좀 생길까?][옛날 역사를 보면 말이야 그때도 과거제도가 있었거든. 뭐 정시, 별시, 식년 아무튼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때도 힘 있는 사람들이 좋은 자리는 다 꿰찼었어. 왕조가 망해도 권세가들은 그 부귀영화를 계속 이어갔지. 그런 집안들이 좀 되는데 나열하자면 많아.][...][그런 권세가들이 세력이 전부 다 조상들 덕분만은 아니거든. 중요한 건 혼인이야. 지금으로 말하면 정략결혼을 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늘려나간 거지.][결혼을 시키라고? 그러기엔 동림이가 너무 어리잖아. 그리고 걔 결혼문제는 고모부가 나설 텐데 고모가 어떻게 끼어들어.][너 바보냐? 너 말하는 거잖아 너!][나?][그래.][그런데... 내 상황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랑 결혼을 하고 싶어 하겠어?][오재원 있잖아. 너만 바라보는 놈.][!]생각해보니 오재원이라는 좋은 신랑감이 있긴 했다.한진의 말대로 오재원을 휘어잡다 보니 그는 이미 임연지 말에 따라 움직이는 개가 되어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걸림돌은 있기 마련이었다.[그런데 그 집에서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그게 무슨 상관이야. 오재원이 너 아니면 죽는다는데.][네가 오씨 집안 사람이 돼서 고모 도와주면 고모부도 이런 일로 이혼하자고 하지는 못할걸.][그리고 정말 백만 번 양보해서 이혼한다고 해도 넌 오씨 집안 사람이니까 당당하게 네 동생 만나러 갈 수 있는 거잖아

  • 위태로운 제안   제1354화

    “...”최동철이 생각보다 쉽게 동의하자 최국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경계했다.“나중에 말 바꾸지 마.”“당연하죠. 설윤 씨 배속에... 제 동생이 있는 건데.”“다른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먼저 나가볼게요.”웃으며 방을 나선 최동철은 문을 닫자마자 미소를 싹 지웠다.이어서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넓은 복도에 울려 퍼졌다.임가희도 없는 거실을 지나 최동철은 밖으로 나갔다.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차에 탄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특유의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설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핸드폰을 내려놓을 때 어두운 상사의 표정에 안절부절못하던 기사가 조심스레 물어왔다.“저택으로 모실까요 대표님?”“네.”...최씨 집안 방.임연지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임가희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고모, 진짜 그년 집에 들일 거예요?”“응.”“하지만!”이미 모든 걸 받아들인 임가희는 체념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임연지는 그 더러운 내연녀의 얼굴을 집안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파렴치하게 최씨 집안에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고모가 상간녀가 남편의 자식을 낳는 것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더 이상 방법이 없어 연지야.”“일을 좀 더 철저하게 못 한 내 잘못이지. 내가 설윤 그 년한테 도망갈 기회를 준 거야.”임연지는 한숨만 푹푹 내쉬는 고모를 보며 조급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면 너도 괜히 시비 걸지 마.”짜증 난다는 듯 대충 대답하던 임연지는 갑자기 무슨 수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였다.“고모, 일단 집에 들이고 그다음에 다시 처리...”“아니, 난 이제 아무 짓도 안 할 거야.”임가희는 임연지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답했다.“그럼 진짜 그 년이 아이를 낳는 걸 지켜보겠다는 거예요?”“애 낳아봤자 재산 조금 받는 것뿐이야. 그런데 난 이혼하면 아무것도 못 가지는 거잖아.”아직 어린 동림이를 두고 이혼한다면 최씨 집

  • 위태로운 제안   제1353화

    최동철은 차분한 표정으로 무릎에 올린 손가락을 움직였다.“네. 얼마 전에 경주 떴다고 알고 있습니다.”‘어디 보기만 했을까, 잠도 잤는데.’“가희가 연지 데리고 사과하러 갔는데 설윤이 거절하고 가희를 다치게 했대. 그리고 그 책임을 물을까 봐 도망갔다던데 그때는 가희 몸에 상처도 나 있어서 그 말을 믿었거든.”여기까지는 최동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래서...”“그런데 오늘 설윤이가 초라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알아보니까 설윤이 임신 사실을 가희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내쫓은 거더라고.”최국환의 말을 듣다 보니 혼란스러워진 최동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설윤... 설윤 씨가 혼자 경주로 돌아왔다고요?”임가희한테 쫓겨나기 전에 임신을 했다는 것 못지않게 다움시에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도 놀라웠다.하지만 최국환은 설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최동철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응... 회사 주위를 맴돌다가 직원한테 발견된 거야. 울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려주는데 얼마나 짠하던지. 애도 유산될뻔했대.”그 말에 최동철은 입꼬리를 올렸다.돌아오기 전에 최동철이 같이 가겠냐고 물었을 때도 거절하던 설윤이었다.다움시에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인터넷쇼핑까지 하던 사람이 힘들게 살았다니.최동철도 떠나기 전 설윤에게 몇억을 주고 왔었는데 수중에 돈이 남으면 남았지 모자랄 리는 없었을 것이다.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노인네에게 달라붙은 것도, 아이를 잃을뻔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두 우스워서 최동철은 냉소를 흘렸다.매일 밤 잠자리를 가질 때는 신경도 안 쓰던 아이가 갑자기 아쉬워진 건가.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낯부끄러웠던 최국환은 그만 말을 멈추었다.“가희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설윤이 다시 데려오겠대. 아이 낳을 때까지 잘 보살펴주겠다고 해서 나도 동의했고.”이익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재벌가에서 첩을 들이는 건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어떤 본처는 첩을 데리고 쇼핑도 하면서 아이

  • 위태로운 제안   제1352화

    최동철은 사색에 잠긴 듯 한동안 임가희를 바라보았다.빨갛게 부어오른 눈과 눈물이 말라붙은 볼 때문에 사람이 유독 초췌해 보였다.설윤을 쫓아낸 일이 들통난 건지 임가희는 최국환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넌 서재로 가 있어.”“... 제가 들으면 안 될 얘기라도 하시게요?”최동철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하자 최국환의 눈치를 보던 임가희는 이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옷자락을 꼭 쥐는 임가희와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최국환을 번갈아 보던 최동철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전 서재에 가 있을게요.”최동철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온 거실을 가득 채웠다.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내며 집안의 장식들을 더욱 화려하게 빛냈지만 그럼에도 어두운 분위기는 감춰지지 않았다.최동철을 올려보낸 최국환은 금세 표정을 굳히더니 임가희를 보며 말했다.“당신 입으로 뱉은 말 지켜. 당장 다시 데려와서 치료부터 음식까지 당신이 다 책임져. 가희야, 넌 똑똑하니까 알 거야. 설윤이랑 걔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임가희는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 설윤 씨 아이 낳을 때까지 내가 잘 보살필게요.”설윤이 도망가버린 뒤로 임가희는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지만 사실 매일 밤을 불안 속에서 지새우고 있었다.사람을 시켜 알아보던 설윤의 행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됐을 때는 그 불안이 가시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찌르고 할퀴었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경계심을 내려놓고 있었는데 하필 이때 최국환이 모든 걸 알게 된 것이다.모든 거리의 CCTV, 간하림을 포함한 직원들의 증언 그리고 설윤의 임신 검사결과보고서까지 수많은 증거를 들이미니 임가희도 차마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최국환 앞에서는 설윤의 존재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본처 연기를 하며 임연지 더러 사과까지 하게 하고 선물도 전해줬었는데 뒤에서 이런 모진 짓을 했다는 게 들켜버리는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다.임신 사실을 뻔히 알

  • 위태로운 제안   제1351화

    “알겠어요.” 부시아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연도진은 부시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병원 병실.연도진이 부시아를 데리고 도착했을 때 이엘리아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오빠.” 이엘리아는 연도진 뒤에 서 있는 부시아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시아 왔구나. 엄마한테 와 봐.”부시아는 다가가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삼촌이 말한 대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아요?”“천천히 회복 중이야.”“그렇군요.” 부시아는 고개를 돌려 연도진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삼촌, 저 하루 종일 비행기만 타고 있었더니 너무 피곤해요. 이제 집에 가요.”이엘리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연도진은 이엘리아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그럼 시아 데리고 먼저 갈게.”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엘리아의 눈빛 속에는 어딘지 모를 음산한 기운이 스쳤다.경주. 밤이 깊어가며 화려한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거리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네온사인 불빛이 창문에 비쳐 그 빛과 그림자가 뒤엉켰다.최동철은 하루의 바쁜 일정을 마친 뒤 차 뒷좌석에 앉아 피곤에 지쳐 좌석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고 있었다.기사는 익숙하게 차를 시동 걸고 천천히 차들 사이로 움직였다.최동철은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비비고 무심코 창밖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익숙한 인물을 보았다그 인물은 바로 한 여인이었고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놓은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최동철은 본능적으로 몸을 바로 세운 뒤 그 방향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러나 그 여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그는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까?’‘설윤 씨가 여기 있을 리 없잖아.’그는 다시 좌석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머릿속엔 설윤의 얼굴과 민박집에서 일어난 일들이 떠올랐다.다움시에서 돌아온 이후 두 사람은 더

  • 위태로운 제안   제1350화

    필라시 국제공항.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방송에서는 항공편 정보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연도진은 도착 대기 구역에서 사람들 속을 살피며 부승민과 부시아를 찾고 있었다.그는 잘 맞춘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차분한 표정으로 가끔씩 시계를 확인하며 여유 있게 서 있었다.잠시 후, 부승민이 짐 수레를 밀고 통로를 지나 나오고 부시아는 짐 수레 위에 앉아 손에 봉제 인형을 안고 신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어린 소녀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두 개의 작은 땋은 머리를 한 채로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삼촌!” 부시아는 멀리서 연도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짐 수레에서 뛰어내리며 작은 발걸음으로 달려왔다.연도진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맞아 안았다. 드물게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시아야, 돌아온 거 환영해.”부시아는 연도진의 품에 안겨 목을 감싸며 맑고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 정말 보고 싶었어요.”부승민은 부시아를 보고 잠시 말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네.’부시아는 혀를 내밀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연도진은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도 너 정말 보고 싶었어. 이번에 삼촌이랑 많이 놀자.”부승민은 짐 수레를 밀고 다가오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연도진 씨, 오랜만입니다.” 연도진은 일어난 후 부승민과 악수를 나누며 차분하면서도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시아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연도진은 눈길을 부시아에게 돌리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시아야, 피곤하지 않아?” 부시아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안 피곤해요. 비행기에서 만화도 보고 잠도 자고 왔어요.” 연도진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부승민에게 말했다. “이엘리아가 며칠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직 병원에 있어요. 시아를 데리고 이엘리아를 보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실래요? 그

  • 위태로운 제안   제1349화

    이엘리아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무심한 듯 말했다. “엘리샤, 우리 집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엘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벌써 6년이 되었어요. 아가씨.” “6년이라...”이엘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감탄했다. “시간 참 빠르네. 처음 왔을 때는 수줍음 많던 소녀였는데 이제는 제법 어른스러워졌구나.” 엘리샤는 감사의 마음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아가씨.” “고마워할 것까진 없어. 넌 요 며칠 동안 날 성심껏 돌봐줬잖아. 그 보답으로 네게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하려고 해.” 엘리샤는 순간 귀를 의심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 정말인가요?” “물론이지. 아치 거리 쪽에 있는 곳이야. 내가 아직 병원에 있어서 당장 처리하긴 어렵지만 퇴원하면 함께 소유권 이전을 하러 가자.” 이엘리아는 엘리샤의 놀란 표정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흘러나왔지만 그 속에는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너는 우리 집을 위해 정말 많은 걸 해줬어. 이건 당연히 네가 받을 자격이 있는 보상이야.” 엘리샤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목소리가 떨리며 말했다. “아가씨... 너무 과분한 선물이에요. 어떻게 받아야 할지...”이엘리아는 부드럽게 손을 흔들며 안심시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담 갖지 마. 내겐 그저 작은 선물일 뿐이지만 네겐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잖아. 난 늘 너한테 감사하고 있었어.” 엘리샤는 두 손을 꼭 모으며 감정이 북받친 듯 말했다.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해서 아가씨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이엘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똑똑한 아이야. 난 항상 널 높이 평가해왔어. 앞으로도 내 곁에서 충성심을 잃지 않는다면 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엘리샤는 감동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 평생 윌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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