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립이한테 문제가 생겼어. 위가 아프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단 가볼게.” 온연은 머리가 울렸고, 그 순간 임립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성격도 좋고 잘 웃는 사람이 목정침과 경소경 옆에 같이 서있으니 더 빛나보였다. 가족을 포기하고 혼자 살아가더라도 그의 노력하는 모습은 별처럼 빛나 보였었다… 목정침의 표정을 보니 임립은 아마… “나도 같이 갈래요! 임립은 당신 친구이기도 하지만 내 친구이기도 해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목정침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물었다. “애가 우리 없다고 계속 울면 어떡해? 지금 가면 언제 올지 몰라. 내일 아침에 돌아올 수도 있어.” 온연은 그가 생각을 바꿀까 봐 얼른 옷을 갈아 입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임립은 집 나와서 친구도 우리 밖에 없을 텐데 아이가 울면 그냥 둬야지 뭐 어떡해요. 큰 일 아니잖아요. 정 안되면 나만 좀 일찍 올게요. 이러지 말고 얼른 가요.” 한편, 해산물 포장마차에서 에이미와 진몽요랑 같이 야식을 먹던 경소경도 전화를 받았고 목정침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려면 운전해도 몇 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그는 당장은 도착하지 못 하기에 우선 목정침에게 맡겼다. 전화를 끊고 진몽요는 경소경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왜 그래요?” 경소경은 숨을 들이 마셨다. “립이한테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두 사람은 좋겠네요. 내가 오늘 저녁에 돌아가면 감시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둘이 먹어요, 난 가야겠어요.” 진몽요는 손에 들고 있던 대하를 내려놓았다. “저도… 같이 갈까요? 어차피 대표님이니 이틀만 월차 내주시면…” 경소경은 살짝 고민했다. “정말 갈 거예요?”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임립은 저희의 친구잖아요. 무슨 일이 생겼는데 제가 어떻게 모른 척해요? 운전해서 갈 거면 저도 태워주세요. 혼자 운전해서 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그래도 되죠?” 경소경은 허락했
병원. 목정침과 온연이 도착했을 때 임립은 수술실에 있었다. 수술실 밖에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걸 보고 왠지 마음이 아파왔다. 온연은 복도 벤치에 앉았다. “누가 전화 한 거예요? 어떻게 아무도 안 왔어요?” 목정침은 고개 돌려 그녀를 보았다. “안야.” 온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걔가 어떻게 전화했데요? 그럼… 전화만 하고 갔나 보네요, 우리랑 마주치기 껄끄러우니까요.” 목정침이 추측했다. “립이네 회사 맞은 편 아파트에 사니까, 아마 우연히 마주쳤겠지. 그래서 병원으로 이송하고 우리한테 전화했나 봐, 소경이도 이쪽으로 오고있데.” 온연은 적어도 안야가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라 임립이 잘해준 은혜는 잊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 수술은 장장 5시간이나 걸렸고, 수술실 불이 꺼지는 순간 목정침은 얼른 일어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집도 의사는 나올 때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환자분 가족이신가요?” 목정침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됐나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위암 말기입니다. 아직 젊으셔서 일찍 발견했으면 치료할 수 있었지만 피를 토한 뒤에 오셨으니, 우선 긴급 수술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시다시피 얼마 안남았습니다, 아마 길어야 한 달일 거예요. 병원에 있으면 좀 더 살 수 있겠지만 힘들거예요. 지금이라도 나가서 남은 시간동안 하고싶은 걸 남은 하시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이제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어서 수술 부위만 회복 되는대로 퇴원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목정침은 호흡이 가빠졌고 눈시울은 점점 붉어지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온연은 그처럼 강인하지 못 해서 이미 눈물을 얼굴을 덮었다. 간호사가 임립을 병실로 옮긴 뒤 그들은 옆에서 단 한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경소경과 진몽요도 금방 도착했고, 큰 일이 아닌 줄 알았던 진몽요는 산호호흡기를 낀 임립을 가까이 가서 보자 임립 입가에 마른 핏자국을 발견했다. 그녀는 놀라서 눈물이 맺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임립은 아직 몸이 허약한 상태라 천천히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처음부터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발견했을 때도 이미 늦어서 어차피 치료 못 했어.” 경소경은 살짝 흐느끼는 목소리였다. “왜 의미가 없어? 너 여자친구도 생겼잖아. 그 임채미씨 말이야. 사는 게 의미가 없으면 여자친구는 왜 사귀었어? 너 분명 살고 싶었잖아…” 임립은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랑 만나기 전에는 모든 게 좋았지. 미래도 그려보고. 근데 결혼할 상대는 아니야. 그 사람은 놀기만 하고, 놀 생각만 하고, 아직 철이 안 들었어. 나랑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나는 놀만큼 놀아서 이제 의미있는 걸 하고싶은데, 그 사람은 이제 노는데 맛들였으니 나랑 완전 반대야.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사람은 어제 저녁에도 분명 술 취해서 집에 안 들어 갔을 거야. 상관없어, 어차피 헤어질 생각이었으니까. 맞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은 다 기부해줘. 나도 정침이처럼 좋은 일 좀 하고싶어. 그럼 다음생은 좀 편하겠지…” 목정침은 눈물을 참으려고 눈을 비볐다. “너 이거… 가족들한테 말해줄까?” 임립은 거절했다. “말해서 뭐해? 내가 자기들보다 일찍 죽었다고 축하라도 받으라고? 됐어, 너희만으로도 충분해. 이번생은 이정도면 됐어, 다 누려봤으니.” 이때, 병실 문이 힘껏 열렸다. 임채미는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와 침대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립씨,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렇게 됐어요? 괜찮아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녀를 무시했다. 아무도 그녀를 쫓아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임림은 임채미를 보며 “까먹고 말 안 했는데… 우리 헤어져요. 나 오래 못 살고, 당신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 임채미는 그대로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왜 말을 그렇게 해요? 당신이 죽으면 난 어쩌라고요? 난 당신을 위해서 귀국한 건데, 혼자서 모든 걸 다 당신한테 걸었는데, 당신이 헤어지자고 하면 나 혼자 어쩌라고요?” 임립은 몸
온연과 진몽요는 처음엔 임립이 제일 먼저 임채미에게 전화 건 줄 몰랐고, 생사가 달려 있는 중요한 순간에 노느라 전화를 안 받았음에도 임립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제일 웃긴 건, 임립이 이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건 결국 임채미가 싫어하는 안야 덕이었다. 임채미는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 제정신 아니죠? 그건 다 당신 망상이지 난 당신 유산에 관심 없어요! 어제 저녁에는 나한테 전화한 줄 몰랐어요. 내가 화장실 간 사리에 친구가 이루러 전화를 끊고 나한테 말 안 한 거예요. 오늘 아침에 당신이 전화를 안 받길래 위치 뜬 거 보고 병원에 있는 거 알았어요. 들어올 때 간호사한테… 병실 호수랑 당신 상황 들었어요. 난 정말 고의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날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안되요? 마지막까지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 제발요… 내가 곁에 있게 해줘요.” 진몽요는 임립이 상대할 기운이 없는 걸 보자 나지막이 말했다. “임채미씨, 술이 아직 덜 깼어요? 계획에 당신이 없다는데 왜 아직고 버티고 있어요? 처음부터 거짓말해서 얻어낸 사랑이니 애초부터 굳건하지 않았잖아요. 처음 볼 때부터 알았어요. 임립을 돈 나무로 생각하고 있던 거. 이제 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어떻게든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은 집을 나온 거지 고아가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은 애초에 상속권이 없어요! 연기하는 꼴 나도 못 보겠네요. 유산 다 기부한다는 말 들었죠? 도움 필요한 사람들 말고 아무도 이 돈 못 가져요. 알겠어요?” 임채미는 힘껏 진몽요를 밀었다. “저랑 제 남자친구랑 얘기 중인데 왜 끼어들어요? 당신이 뭔데 흥분하냐고요?” 경소경은 임채미의 손목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 “나가세요, 같은 말 반복 안 해요.” 임채미는 경소경의 표정에 놀라 손목을 빼냈다. “임립씨, 보고만 있을 거예요? 다른 건 그렇다 치고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임립은 고개를 돌렸다. “
온연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고 교양을 지키느라 차마 욕은 하지 못 하고 따귀를 때렸다. “꺼져.” 임채미는 화가 났지만 온연을 상대할 수 없어 그렇게 병실을 떠났다. 온연은 너무 화가 나서 따귀를 세게 때렸더니 병실에 들어올 때까지 손바닥이 얼얼했다. 목정침은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우리가 여기 지키고 있을테니까, 넌 집에 가 봐. 애기는 너 없으면 안되잖아.” 온연은 진몽요도 피곤해 보이자 그녀를 잡았다. “가자, 너도 일단 나랑 집에 들렀다가 잠 좀 깨면 다시 와. 나도 아이 보러 집에 가야 해.” 진몽요는 경소경과 목정침이 절대 다른데 안 가고 여길 지키고 있을 걸 알고 배달음식만 시켜준 뒤 온연과 함께 목가네로 향했다. 병원에서 나올 때 해가 쨍쨍했는데, 한숨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도 길었고, 오늘이 지나가지 않길 다들 바라고 있었다. 그럼 임립이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진몽요는 갈수록 목이 메어왔다. “난 정말 임립이 그렇게 무너질 줄 몰랐어… 이번생은 누구보다 행복하지 못 했는데 왜 신은 가만두지 않으시는 걸까?” 온연은 아이를 안고 침묵했다. 원래 이런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죽음은 거대한 그물처럼 온 세계를, 이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뒤덮고 있었다. 매일 죽는 사람이 생기고, 주변은 슬픔으로 잠긴다. 그 슬픔은 자신에게 다가와야 비로소 느낄 수 있고, 결국 아무도 그 그물을 피해갈 수 없다. 그저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진몽요는 입맛이 없어서 국을 두 입정도 마신 뒤 수저를 내려놓았다. “난 병원에 좀 가볼게. 어차피 여기 있어도 할 거 없잖아. 넌 애도 있으니까 병원 일은 목정침씨한테 맡겨.”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음은 안 좋지만 컨디션이 안 따라주니까 너희한테 부탁 좀 할게. 시간 나면 또 보러 갈 거야. 목정침씨랑 경소경씨한테 컨디션 조절 잘 하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줘. 아마 두
그녀는 임립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예전에는 호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경소경에게 향했던 감정과는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임립에게 느낀 감정은 오빠 같은, 가족 같은 감정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있고 싶었지만 온연과 그들을 마주치면 어색할까 봐 지금까지 집에 와서 되새기고 있었다. 그녀가 좌불안석하던 중, 문에서 열쇠소리가 들렸고, 이곳의 열쇠를 갖고 있는 건 아택뿐이었다. 이전에 아택이 예군작이랑 강남에 간다고 얘기를 했었다. 일주일 정도 있을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왔을 줄은 모르고 그녀는 일어나서 말했다. “밥 먹었어요?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모르고 밥도 안 했는데.” 아택은 덤덤히 말했다. “난 괜찮아요. 나가려고요?” 안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핸드폰과 열쇠를 들고 있는 걸 발견했고 누가 봐도 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병원에 갔다 올 생각이었어요. 임립씨가 입원했거든요. 어제 피 토하고 기절한 걸 제가 목격해서 병원으로 옮겨줬어요.” 아택은 벙 쪘고 그제서야 왜 예군작이 일찍 돌아왔는지 알았다. 임립에게 일이 생겼으니 당연히 경소경과 진몽요가 같이 돌아온 걸 알았을 테다. “가고싶으면… 갔다와요. 당부하지만, 말 조심하고요. 그리고… 예군작이 알면 좋아하지 않을 테니 빨리 갔다 빨리 와요.” 안야는 내심 감동했다. 분명 그녀가 갔다 오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지만 그는 그녀를 보내주었다. ”네, 금방 올게요.” 병원에 도착한 후, 그녀는 임립의 병실을 물어본 후 바로 들어가지는 못 하고 복도 멀리에서 누가 있는지 지켜보았다. 지금 임립 곁에는 분명 누군가 지키고 있을 테니 말이다. 비록 그녀는 마음먹고 왔지만, 아직 진몽요와 그 일행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고 특히 온연을 제일 무서워했다. 갑자기, 임립의 병실문이 열려며 진몽요가 걸어 나왔다. 안야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려 했지만 주변에 다른 병실 외에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허둥대는 찰나에 진몽
그녀의 머릿속엔 진몽요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임립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니… 병원의 하얀 벽을 보며 그녀는 이렇게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어떤 이유로 다시 들어가야할지 몰라 갈등하던 순간, 그녀는 길가에 검은 승용차를 보았고, 창문이 열리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아택이 그녀를 향해 턱을 움직였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차에 탔다. “어떻게 왔어요?” 아택은 무표정이었다. “걱정돼서요. 이따가 예군작한테 가봐야 해서 먼저 집으로 데려다줄게요.” 안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죄송해요, 사실 병실 안에는 못 들어갔어요. 병원에서도 진몽요씨 밖에 안 마주쳤고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으니 걱정 마세요.” 아택은 아무 말없이 약국 비닐봉지를 그녀에게 주었고, 안에는 작은 약병 두개가 들어있어 꺼내 보니 비타민이었다. “이거… 저한테 주는 거예요?” 아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안야의 마음은 따듯해졌다. 부부관계는 가짜여도 뱃속에 아이는 진짜였다. 아택은 아이를 신경썼기에 이 비타민을 준 것이다. 한편, 진몽요는 틈을 타 산부인과로 향했고, 경소경과 목정침은 눈치채지 못 했다. 그녀는 최근에 생리를 안 해서 이상하다고 여겨 검사를 받으러 갔다. 특히 임립이 갑자기 쓰러진 걸 보니 그녀도 왠지 모르게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초음파 검사할 때가 되자 그녀는 누워서 긴장된 목소리로 의사에게 말했다. “만약에 제가 어디가 안 좋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저는 멘탈이 강해서, 굳이 가족한테 말 안 하셔도 돼요.” 의사는 불그스름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혈색이 좋은 그녀가 어디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볍게 넘겼다. “네, 긴장푸세요.” 갑자기 의사는 화면에 집중을 하면서 기계로 천천히 진몽요의 배를 문질렀고 진몽요는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정말 어디가 안 좋은 거 아니죠? 저는 그저 생리를 두 달 동안 안 해서 온 것뿐인데, 뭐 자궁암 이런 건
인생은 늘 기묘한 것 같다. 죽음을 바랄 땐 오지 않지만 바라지 않을 때 다가온다. 경소경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왜 자꾸 쳐다봐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녀는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아니요, 밖에 풍경 본 건데요. 자뻑이 심하네요.” 경소경은 그녀와 장난칠 기분이 아니라 아무 말없이 아파트에 내려주었다. “도착했어요.” 그녀는 차에서 내린 후 또 발걸음을 멈췄다. “만약에 임신한 사람이 안야가 아니고 나였으면, 책임졌을 거예요?” 경소경은 그녀를 보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진짜 임신할 수 있는지부터 증명해 봐요. 닭도 지금쯤이면 계란을 낳았겠네요.” 진몽요는 입술을 삐죽였다. “정말… 말도 못 섞겠네요. 됐어요, 얼른 가서 쉬어요. 운전 조심하고요.” 그의 차가 사라지는 걸 보며 그녀는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로 들어갔다. 인생은 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집에 들어가자 강령은 흥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어쩐 일이야? 기분은 좋아 보이네, 뭐 좋은 일 있어?” 진몽요는 강령이 비밀을 지키지 못 할까 봐 임신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요, 휴가 내서 잠깐 들렸어요. 피곤하니까 먼저 잘게요. 얘기는 내일 해요.” 강령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잔소리를 했다. “잘 거면 샤워는 하고 자야지. 너 방에 있는 침대 시트랑 다 빨아 놔서 깨끗해. 그러니까 오자마자 더럽히고 가지마.” 진몽요는 어떤 잔소리에도 화가 나지 않았고 기분이 좋아서 강령을 안고 뽀뽀를 했다. “알겠어요, 엄마. 자기 자식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어딨어요? 꼭 깨끗하게 씻고 잘게요.” 목가네. 목정침은 집에 오자마자 너무 피곤했는지 샤워를 하자마자 잠들었다. 온연은 낮에 낮잠을 자서 컨디션이 괜찮았고, 목정침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아이를 다른 방에서 재웠다. 아이가 우는 걸 방지하고자 그녀도 함께 잤다. 다음 날 그녀가 일어나고 보니 목정침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아마 병원에 간 것 같다. 오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