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경은 전화가 연결된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저희가 딱 한 번 본 사이인 거 같은데 어쩐 일로 직접 찾아오셨어요? 용건 말씀해보세요.” 그는 일부러 딱 한번의 만남을 강조했고, 그땐 두 사람이 다 진몽요를 찾으러 갔을 때였기에 기억에서 잊히지 않았다. 아택은 예군작의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고 예군작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님이 손에 있는 땅을 방치해 두고 계신 거 같은데 제가 갖고싶어서요. 가격만 불러주세요.” 경소경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오? 소식이 꽤나 빠르네요. 아직 그 땅으로 뭘 할지 못 정했을 뿐이지 방치해 둔 건 아니에요. 그거 꽤나 가치 있는 땅이거든요. 이미 손에 넣은 땅이 많으신 거 같은데 제도 전체를 사드릴 생각인가요? 마침 제 친구한테 방금 전화가 왔거든요. 이 땅 그 친구한테 주기로 했어요.” 예군작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두배 쳐서 드릴게요, 어떠세요?” 경소경은 살짝 의외라고 생각해 미간을 찌푸렸다. 땅 덩어리 하나가 어느 정도 가격인지는 대충 알고 있을 텐데 막무가내로 사려는 사람은 처음 봤다. 두배를 준다는 제안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는 돈을 밝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 대표님, 제가 돈 때문에 친구를 버릴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나요? 이만 돌아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예군작은 웃었다. “하하, 아무리 정이 깊어도 돈이 제일 큰 힘이니까요. 제가 최대 3배까지 드릴 수 있으니 고민해보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꼭 답변 주시면 좋겠네요.” 예군작이 나간 뒤 경소경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너 들었어? 이거 완전 너 엿 먹이려는 거지? 3배라고 해서 순간 팔겠다고 할 뻔했어. 그때 디자인 대회에서 회사 손실이 좀 컸거든. 이 땅만 팔아도 손실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목정침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렇게 갖고 싶다는데 그냥 3배에 팔아.” 경소경은 목정침이 무슨 생각인지 몰랐다. “농담이지? 넌 내가 정말 돈에 눈 먼 사람처럼 보여? 너가 필요하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어, 깼어? 내가 내려가서 씻을게.” 온연은 눈을 비볐다. “괜찮아요, 그냥 방에서 씻어요. 지금 졸려서 바로 잠들 수 있어요. 당신도 얼른 씻고 자요, 피곤하겠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했어도 그는 방에서 최대한 조용히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그는 그녀의 옆에 누웠고 오늘 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아이를 비켜 누웠다. 아이는 구석 한쪽에서 혼자 담요를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온연은 아직 깊게 잠들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감쌌고 그의 품에 기대었다. “계속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 아이가 당신 얼굴도 못 알아보겠어요. 애기들은 기억력이 안 좋아서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더라도 얼굴을 못 보면 정말 까먹을 수도 있다고요. 아이가 아빠를 못 알아보는 건 웃기니까 시간 좀 내서 놀아줘요.” 목정침은 그녀의 머리 냄새를 맡자 잠이 솔솔 왔다. “응, 알겠어. 내일은 좀 늦게 나가서 일찍 올게. 얼른 자자.” 한편, 경소경은 남쪽으로 출발했고, 저녁에 도착해 휴식을 취한 뒤 아침에 출근할 생각이었다. 그는 이미 목정침의 말 대로 3배의 가격으로 그 땅을 예군작에게 팔았고, 돈 쓰겠다는 사람을 막지 않았다. 솔직히 찝찝했지만 큰 이득을 보긴 했다. 그는 계약서까지 다 쓴 후에 출발을 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예군작은 은근슬쩍 비꼬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는지, 우정이 더 중요한 거 아니였냐며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돈이 급하다고 사실대로 말하지 못 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하게 예군작은 이미 남쪽에 와서 진몽요와 함께 야식을 먹고 있었다. 일 경험이 부족한 진몽요는 요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고 퇴근 후에도 남아서 더 공부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 마침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데 예군작이 야식을 사겠다니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포장마차에는 배를 내놓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양복차림에 휠체어에 탄 그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자 진몽요는 맥주
그녀는 코를 슥 문질렀다. “과장이 심하시네요, 그렇게 한가한 분 아니시잖아요.” 예군작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고백할 게 있는데 오늘 제가 경소경씨의 땅을 하나 샀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저한테 쌓은 게 많은 지 3배나 불려서 팔았어요.” 진몽요는 살짝 눈을 내리 깔았다 “아. 그래서요? 비싸면 안 사면 됐잖아요. 돈이 너무 많아서 쓸데가 없었나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웃었다. “하하, 신경 쓰이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척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나랑 있을 땐 마음 편히 있어도 돼요.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필요 있어서 샀어요. 그 분도 이쪽 계열사에 잠깐 머무를 거 같아요. 미리 말해주는 거예요.” 진몽요는 순간 입맛이 뚝 떨어졌다. “뭐하러 여기까지 온데요? 본사에서 일하면 편하고 얼마나 좋아요. 이 더운 날씨에 이 멀리까지 오는 거 보면 아직 고생을 덜했나 보네요.” 예군작은 눈썹을 움직였다. “그 사람 안 만나고 싶으면 왜 이쪽으로 왔어요? 우리 회사로 오라고 했는데 안 왔잖아요.” 진몽요는 순간 말 문이 막혔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난 뒤 생각을 정리했다. “저는 원래 올 생각이 없었는데, 어머님은 말릴 수 없었어요. 저한테 그동안 잘해주셨거든요. 그래서 거절하지 못 했어요. 헤어지긴 했어도, 어머님한테까지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고, 어차피 제가 말해도 그쪽은 이해 못 해요. 그 쪽은 인간관계에 관심 없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달라요.” 예군작은 대답하지 않고 손에 든 술잔을 응시했다. 이제 보니 하람은 아직도 경소경이 진몽요를 꼬시길 바랐기에 어렵사리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말이다. 그는 왠지 모르게 하람이 싫어졌다… 진몽요는 아택 얼굴에 멍을 보았다. “아택씨, 얼굴 맞았어요? 잘 생긴 얼굴에 흠집 났네.” 아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닙니다, 실수로 긁힌 거예요. 며칠 지나면 괜찮습니다.” 그 멍은 안야 일 때문에 생
위층에 도착한 아택은 같이 들어 가지 않고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진몽요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예군작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갔다. 단둘이 있는 상황이더라도 다리가 아픈 그가 설마 나쁜 짓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이 집에 이사 온지 얼마 안돼서 물건들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조금 난장판이어서 진몽요는 민망해했다. “아직 정리할 시간이 없었어서 이런 모습까지 보이네요. 차 내 올게요.” 정수기 앞으로 가자 그녀의 동작은 서툴었고 하마터면 물에 손을 대일뻔했다. 이때 갑자기 손 하나가 뻗어왔다. “내가 할게요.” 그녀는 몸이 살짝 굳었고, 왜 예군작의 목소리가 머리 윗 쪽에서 들리는지 순간 이해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밑에서 소리가 들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이마가 그의 턱에 부딪혔고 그녀는 입을 막았다. “당신…! 장애인 아니였어요...?” 예군작은 여유만만하게 그녀를 보았다. “아니였어요, 많이 놀랐어요? 내가 예가네에서 약한 척을 안 했더라면 오늘까지 살지 못 했을 거예요. 당신은 제가 믿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장애인 연기를 하고싶지 않아서요.” 진몽요는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다.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너무 놀라서 한 말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예군작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살짝 밀었다. “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갑자기 덩치가 커진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이제서야 조금 위험을 감지했다. 그가 장애인이 아니고 정상적인 남자이니, 늦은 밤 단둘이 있으면 위험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앞으로 그와의 관계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가 준 화분의 꽃이 얼른 피길 바랐고, 예군작 입에서 나올 다른 비밀은 얼마나 더 자신을 놀라게 할지 궁금했다. 그가 장애가 없다는 걸로도 충분히 놀랐다. 그녀의 반응을 눈치채고 예군작은 집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살짝 회의실 문을 열자 그녀는 주목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녀가 들어가자 마자 경소경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딱 2초간 보다가 다시 시선을 피했다. 이게 뭐지…? 조용한 분위기를 예상하진 못했는데, 다들 일을 안 하는 건가? 이때 에이미가 입을 열었다. “부이사님, 지각하셨네요… 그것도 20분이나.” 경소경의 표정은 이상해졌고, 진몽요가 들어왔을 때 살짝 놀랐지만 하람의 계획이었던 걸 눈치챈 후 더 놀라지 않았다. 하람이 그녀에게 높은 직책을 줄 줄 몰랐고 이사가 아닌것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는 헛기침을 했다. “큼큼, 그, 앉으세요. 회의 이어서 하겠습니다. 지각 관련된 건 끝나고 얘기하시죠.” 진몽요는 입술을 내밀고 일부러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사람이 많은 자리이니 그가 모르는 척을 하는 건 나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눈도 더 안 마주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왔다는 사실에 긴장까지 했는데… 제일 중요한 건 그녀가 지각한 걸 기억하고 있으려는 그의 모습이 낯설었다. 회의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회사에 온지 얼마 안돼서 아는 것도 없었다. 지루한 회의시간에 그녀가 발견한 건 경소경 외에 이 현장에 있는 직원들은 다 여자였고 그가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다 나갔고 에이미와 진몽요 그리고 경소경만 남았다. 경소경과 에이미는 아직도 일 얘기를 하고 있었고 진몽요는 자신이 대화에 쓸모 없다고 생각해 나가려 하자 그가 말했다. “기다리세요, 에이미씨랑 대화 끝나고 따로 할 얘기 있어요.” 진몽요는 가까운 자리에 다시 앉아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20분동안 듣고 있었다. 에이미가 나가자 그녀는 바로 물었다. “무슨 얘기요? 할 말 있으면 빨리해요, 나 바빠요.” 경소경은 예전처럼 그녀에게 상냥한 표정을 짓지 않고 상사와 직원처럼 진지하게 대했다. ”부이사가 돼서… 지각하면 되겠어요?” 게다가 그의 진지한 모습은 꽤나
그녀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말했다. “저는 어디앉죠?” 경소경은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 “의자 하나 가져오면 되잖아요. 그 머리로 부이사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두 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제가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저는 낙하산이니까 부장이나 시켜주실 줄 알았지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에이미는 그녀의 말투에 놀랐는지 기침을 했다. “그… 부이사님, 의자 하나 가져와서 우선 저랑 앉아요.” 진몽요는 씩씩거리며 의자를 가져와 에이미 옆에 앉았고, 경소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손버릇이 안 좋으신가 봐요? 남에 장난감에 함부로 손 대지 마세요!” 경소경은 장난감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거 꽤나 재밌네요, 그쪽처럼…” 에이미는 경소경 뒤에 서랍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이사님, 뒤에 문서 좀 가져다주세요. 경대표님은 회사 일 검토하러 오신거니까 회사 관련된 중요한 파일들은 다 그 서랍장 안에 있어요. 맨 위에서부터가 제일 최선 거예요. 중간에 두 칸까지 다 꺼내 드리세요.” 진몽요는 서랍장의 높이를 보더니 다시 의자를 끌고 갔다. 다행이 의자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 그녀가 신발을 벗고 올라서자 의자 바퀴가 돌아가면서 중심을 잃었고, 비명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지는 순간 경소경의 품에 안겼다. 그는 바로 그녀의 뒤에서 안정적으로 받쳐주었다. 그는 딱 두 사람만 들릴 수 있게 귓가에 대고 말했다. “살 빠졌네요…” 그의 입김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고 허둥지둥 그를 밀쳤다. “키가 그렇게 크시면서 왜 제가 꺼내 드려야 하죠? 직접 꺼내서 보세요.” 경소경은 대답하지 않고 가뿐히 두꺼운 문서 두개를 꺼내어 자리에 앉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열심히 검토했다. 진몽요는 한숨을 내쉬었고 한참이 지나도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며칠만 있을 예정이니 그가 가면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목가네. 목정침은 오늘 일부러 2시간정도 늦게 출근을 했고, 그도 아들이
멀어지는 그를 보며 온연의 입꼬리는 슬슬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인가? 이제는 세 가족이서 기쁨을 나누며 누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나 자신이 버려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바라온 것이었다… 시간이 아직 일러 그녀는 임집사님에게 운전을 부탁해 온가네 저택으로 향했다. 아직 온가네 저택을 본 적이 없으니 이제 가볼 때가 됐다. 집문서에 적힌 주소에 도착한 후 그녀는 온가네 저택이 목가네와 가깝다는 걸 발견했다. 단지 온가네 저택은 조금 시끄러운 동네 쪽이었고 목가네 주변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저택은 많이 낡아 있었다. 딱 봐도 세월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꼭 오래된 조상님이 앉아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리모델링도 안되어 있어서 낙후되어 보였다. 녹슨 철문을 열면 잡초가 가득한 정원이 보였다. 그리고 정원에는 생명력이 강한 큰 나무가 자리잡고 있었고, 또 알 수 없는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무가지는 길게 뻗어 이미 집 밖까지 자라 있었다. 아마 과거에 이곳도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부잣집 아니었을까? 그녀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서 자랐고 할머니도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사셨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만약 당시에 자신의 아버지가 진함을 좋아하지 않아서 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온가네도 지금쯤 꽤 잘 나가는 집안에다가 이곳도 이렇게 황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번의 결정으로 인해 정말 인생이 뒤바뀔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었다. 임집사가 이때 당부했다. “사모님, 날씨가 더워서 작은 도련님이 불편하신 모양이에요. 오늘은 별다른 준비 없이 오셨으니 우선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나중에 도련님이 시간 있으실 때 다시 같이 오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 저택을 보수하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되고요.” 보수? 온연은 이 집의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지키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
경소경은 책상에 앉아 오전내내 서류만 검토했고, 에이미가 허락해서 진몽요는 오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경소경에게 찻물만 따라주었다. 그녀는 일을 하기 싫었고 할 줄도 모르는 부이사지만, 에이미가 보기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낙하산에 월급만 받고 밥 그릇만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상사여서 다행이었다. 어렵사리 점심시간까지 버틴 후, 그녀는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벌써 두 시간 버텼으니 점심시간만 되면 그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됐었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가방을 맸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갈 준비를 했다. 그녀가 사무실 입구까지 걸어가기도 전에 에이미가 불렀다. “부 이사님 어디 가세요? 점심은 경대표님이 사신데요, 저희 다 같이 가야해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저는 안 가면 안되나요? 사주시는 데 꼭 가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에이미는 바보를 보듯 그녀를 보며 “단순히 밥 얻어먹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자리만 바꿔서 회의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생각이에요?” 그녀는 도망가기에 글렀고, 은은하게 신난 경소경의 표정을 보자 확 열이 받았다. “네, 제가 가면 되는거죠?” 경소경은 일어나서 말했다. “부이사님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아침에 지각하신 걸로 제가 월급도 안 까드렸는데.” 진몽요는 웃는 척했다. “아니요, 경대표님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신데 불만 있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저도 도리는 있는 사람이라서요. 월급도 안 까시고 말 몇 마디로 끝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불만을 갖겠어요? 가죠, 일찍 갔다 일찍 오고싶네요. 오후 출근 늦으면 안되니까요.” 회사 근처 식당. 에이미는 경소경의 옆에 비서처럼 딱 붙어서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했다. 에이미와 진몽요 외에 다른 고위직 직원들이 함께했고 진몽요는 아무도 모르는데다 경소경과 얘기를 나눌 수도 없으니 화장실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화장실에 있을 생각이었고 사람들이 일 얘기하는 걸 듣고 싶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