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보니 온연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왜 아이랑 같이 씻었어요? 애는 오늘 아침에 이미 씻었는데.” 목정침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너가 우릴 버리고 갔잖아. 애가 계속 나보고 안아 달라는데 어떡해 그럼? 한번 더 씻으면 좋은 거지. 얼른 밥 먹어. 네 표정을 보니까 어떻게 됐는지 딱 알겠네. 어떤 일들은 너무 억지로 하면 안돼. 흘러가듯이 내버려 둬도 된다고.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놀랄 일들이 많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는 거지.” 아직 젊어서 그런지 온연은 그렇게 깊이 알지 못 했다. “난 익숙해지지 못하는 거 같아요. 몽요한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어요. 생각할수록 심란해서 밥 안 먹을래요. 혼자 먹어요. 아이는 내가 안고 있을게요.” 목정침은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얌전히 앉아서 밥 먹어. 네가 밥을 안 먹으면 애는 뭘 먹고크겠어? 이제 넌 혼자가 아니야. 아이도 봐야된다고. 일단 먹어. 유씨 아주머니가 만드신 국은 좀 먹어야지. 얼른.” ...... 둘째 날, 안야는 회사로 직접 와서 임립에게 사직서를 냈다. 임립은 예상했기에 이유도 묻지 않고 수리했다. 안야는 입을 꿈틀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임립에게 왜 이유를 안 묻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초반에 임립이 그녀에게 잘 해준 것도 결국 온연과 진몽요의 부탁 때문이었다. 임립도 사정을 알았을 테니, 그녀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인정하기 싫어도 현실적으로 오늘의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진몽요와 온연 덕분이었다. 그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작은 도시에서 발버둥치며 생계를 가까스로 이어가며,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절대 자신이 편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돈 벌게 될 줄 몰랐다. 그녀가 뒤돌아 문 앞으로 가자 임립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야씨, 할아버지 부탁을 들어드린다 치고 조언 하나 해줄게요. 악행을 많이 하면 결국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말이 있죠. 소경이는 그런 식으로 갖을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에요. 이
임립 무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만약 그쪽이 피해자이거나 얼떨결에 생긴 일이라면 소경이가 책임을 졌겠죠. 그런데 그쪽은 피해자가 아니에요. 이제 어린애 아니잖아요, 여자가 다른 이성 집에 저녁에 찾아가서 술을 마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어요. 게다가 상대방은 친구가 미련을 갖고 있는 전 애인인데, 이런 부적절한 행동에는 꿍꿍이가 있지 않았겠어요? 나랑 소경이랑 알고 지낸 시간이 있는데 내가 걔를 모를까요? 술을 토할 때까지 마셔도 사람을 못 알아볼 애가 아니에요. 그쪽한테 조금의 마음도 없었을 거예요!” 안야는 뒤돌아 웃었다. “그러네요. 맞는 말이세요. 저는 고의였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임립은 아무 말없이 떠나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에 립님이라고 부르던 그 순진한 소녀가 맞나? 가끔씩 환경은 사람의 본색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는다. 그 이후로 한 달 넘게 아무도 경소경와 안야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진몽요아 안야도 임립의 회사를 떠나고 진몽요는 집에서 쉬고 있었고 많은 좋은 회사에서 그녀에게 입사제안을 했지만 그녀는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예군작도 있었는데 예군작네 기업 일은 그녀와 맞지 않았기에 거절을 했고 무엇보다 그녀는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정리가 안 되었다. 진몽요와 경소경의 관계가 냉정해진 이후로 예군작은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듯이 더 뜨거워졌다. 이 점은 진몽요도 알고 있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예군작이 그녀의 몸에 눈을 달아 놓은 것처럼 그가 알고싶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직을 하고 아파트까지 뺀 걸 알자 하람은 음식을 강령네 집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배달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진몽요도 묵묵히 받아드렸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경소경이랑 왕래하지 않아도 강령과 하람의 관계는 좋았다. 가끔 쇼핑도 가고 마작도 하는 사이였다. 그녀가 백수처럼 집에만 있자 하람이 떠봤
진몽요는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그렇고, 또 정말 가기도 싫었기에 하람이 난감해진 그녀를 보고 물었다. “또 소경이가 너 화나게 했지? 이건 걔랑 상관없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어. 내가 너한테 잘해주는 것도 걔랑 상관없어. 그러니까 너무 부담갖지마. 일단 계열사에 가서 일 좀 해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이직해도 돼. 그렇게 하자.” 하람의 진심을 느낀 그녀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그녀는 더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어서 말했다. “저… 그 사람이랑 별 일 없어요. 그저 번거롭게 해드리기 싫었을 뿐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제일 먼 회사가 어디에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하람은 눈썹을 찌푸렸다. “제일 먼데? 여기서는 강남구 쪽 계열사지. 남쪽이라 왕복 6시간은 걸릴 텐데, 그것도 차가 안 막혀야지 말이야. 차가 막히면 더 오래 걸려서 여기 올 것도 없이 거기서 집 얻는 게 나아. 우리 집에서 그쪽에 갖고 있는 집 있는데 방 하나 내줄까? 혼자 그쪽에서 살 수 있겠어?” 거리가 멀다는 걸 듣고 진몽요는 안도했다. “네,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어요. 집은 제가 할 수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일자리도 도움받았는데, 어떻게 집까지 신세질 수 있겠어요? 그러시면 제가 더 부담스러워요, 그럴바엔 일을 안 하는 게 나아요.” 하람이 웃었다. “하여튼 나보다 고집이 세다니깐. 그래, 집은 그럼 혼자 해결하고 내가 미리 계열사 쪽에 잘 말해 둘 테니까 나중에 몸만 오면 돼. 내가주소 보내줄 테니까 주변에 집부터 알아봐봐. 미리미리 찾아봐야 바로 가서 입주하지. 그럼 난 가볼 게, 내가 챙겨온 과일 꼭 먹어. 과일을 많이 먹어야 피부가 좋아져!”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람을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경소경의 차 키를 꺼냈다. “어머니, 이거 경소경씨한테 전해주세요. 차는 아래 주차장에 있으니까 알아서 가져가라고 해주세요. 저는 이제 필요 없어요…” 하람은 조용히 그녀를 보며 무슨 생각인지 몰랐지만 차 키를 받았다. “그
방으로 돌아온 진몽요는 온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까 경소경씨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셔서 먹을 거 왕창 주시고, 그 집 계열사에 취직까지 시켜주셨어. 남쪽에 강남구 계열사인데 여기랑 거리가 멀어서 당분간 이쪽에 안 있을 거 같아. 왕복 몇 시간은 걸리거든. 아마 별 일 없으면 며칠 이따가 바로 갈 거야. 원래는 안 가고 싶었는데 정말 잘 해 주셔서 거절할 수 없었거든.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온연은 바로 답장했다. ‘거절을 못 했으면 받아드려야지. 이건 너랑 그 어머님의 일이니까 그사람이랑 딱히 상관없는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가서 일 열심히 하고 실력으로 널 증명해. 어머님 실망시키면 안되잖아. 말 나온 김에 말인데 너가 임립네 회사 그만 둔 이후로 안야도 그만뒀어. 근데 그 아파트에 아직 살고 있나 봐. 따로 일자리 안 구한 거 같은데 어떻게 먹고사는지 이해가 안돼서.’ 온연의 답장을 보고 진몽요의 기분은 더 바닥을 쳤다. 안야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좋지 않았다. ‘걔 얘기 나한테 하지 마. 어떻게 살든 이제 나랑 상관없어. 걔가 죽어도 난 보러 가지 않을 거야.’ 비록 답장을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온연과 똑같이 궁금했다. 안야는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 걸까? 안야가 저축해둔 돈만으로 이렇게 오래 백수 생활을 할 수 없을 텐데, 이미 한달이나 지났다… 설마 뒤에서 누가 도와주고 있는 건가? 그게 혹시 경소경일까? 여기까지 생각한 후 그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았고 그 둘사이를 알게 된다면 마음만 복잡해지는 걸 알지만 가끔은 상상을 주체할 수 없었다… 10분 후, 온연의 답장이 오지 않자 그녀는 다시 문자를 보내서 물었다. ‘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걔랑 경소경씨랑 만나고 있지? 경소경씨가 돈 주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럼 진짜 잘됐네. 드디어 경소경씨를 얻었으니 인생 성공한 거잖아. 앞으로 돈 걱정 안 해도 되고 내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겠어.’ 약 5분후에 온연이 답장했다. ‘나
보통 신생아의 장폐색 증상은 3개월차 즘에 나타나는데 아이는 곧 3개월이 되는데도 불구라고 그런 증상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아이의 모든 게 정상이어서 더 어이가 없었다. 목정침은 옆에서 가만히 앉아 역시 시끄러운 아이 울음소리에 지쳐 있었다. 온연은 초보 엄마로써 더 방법을 몰랐다. “어떡하죠? 유씨 아주머니가 안고 있어도 그렇고 내가 안고 있어도 우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목정침은 두통 때문에 미간을 문질렀다. “나한테 줘, 내가 정원에서 안고 산책 좀 할게.” 그녀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비록 목정침이라고 다를 거 없었겠지만 그녀는 도저히 힘들어서 잠깐의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잠시 일자리 찾을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갈수록 심각하게 울어서 그녀도 일자리 찾을 힘이 없었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가면서 낳은 아이부터 잘 돌보지 못하면 꿈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역시 인생은 뭘 하든 순조롭지 않았다. 정원. 아이의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목정침은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움직이며 달랬다. 한30분 정도 지나가 드디어 조용해졌다. 목정침은 도둑처럼 슬금슬금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고 유씨 아주머니에게 넘겨주었다. “잠 들었어요… 쉿, 깨우면 안되요.”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아이는 칭얼거리며 눈을 떴고 다른 사람이 안고 있자 또 크게 울기시작했다. 목정침은 정신을 못 차리며 아이를 다시 안았다. “그래, 아빠가 안아줄게. 엄마 힘들게 하지 말자. 너 때문에 이미 힘들어하잖아. 얼른 자, 아빠가 재워줄게.” 아이는 그의 품에서 또 서서히 잠들기 시작했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안고 있을까 봐 중간에 가끔 눈을 떴다. 유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작은 도련님이 이제 사람을 알아보시나 봐요. 지금은 도련님이랑 사모님만 찾아요. 평소에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사모님이 집에서 엄청 고생이세요. 저도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낮에 작은 도련님 기분 좋으실 때만 거둘 뿐 저녁에는 아예 가까이도 못 가요. 사
그 날 저녁, 의외로 아이는 아침 6시까지 얌전히 잠에 들었고 새벽에도 밥 달라고 칭얼거리지 않았다. 아이의 인기척에 온연은 잠에서 깼고 옆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영문을 몰랐지만 우선 아이가 배고플까 봐 수유부터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함께 자서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요즘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어제 저녁에 자기도 모르게 깊이 잠들었는데도 아이는 울지 않았고… 방금 일어났는데도 울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가 맞나? 목정침이 뒤척였고 에어컨 바람이 추웠는지 이불을 끌어당겼다. 온연은 그제서야 그가 저녁내내 이불을 못 덮었다는 걸 발견했다… 게다가 거의 침대 끝에서 잤다. 이전 까지만 해도 침대가 크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있으니 침대가 작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에게 살짝 이불을 덮어주었고 품 속에 있는 아이에게 작게 말했다. “너 또 말썽부렸어? 이러다 아빠 너 미워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힘껏 젖을 먹었다. 꼭 며칠 굶은 사람처럼 열심히 먹는 모습에 그녀는 웃었다. “하하,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 이때 그녀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고 목정침이 젖 먹는 아이를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소리 때문에 깬 거예요? 아직 시간 있는데 좀 더 자요. 어제 혼자 아이 재웠죠? 오늘 컨디션 안 좋으면 오전에 집에 있을래요?” 목정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어제 잠든 이후로 한 번도 안 깨서 괜찮아. 앞으로 우리랑 같이 재우자. 그래야 다들 편하니까. 난 깼으니까 일어날게. 이따가 내가 회사에 데리고 출근할 거야. 유씨 아주머니도 같이. 넌 집에서 좀 쉬어. 심심하면 쇼핑도 가고. 오늘 하루 휴가야.” 회사에 같이 간다? 온연은 그의 결정을 의심했다. “확실해요? 난 집에서 돌보는 것도 힘들던데 회사까지 데리고 가면 아무것도 못 할지 몰라요.” 목정침은 자신만만했다. “걱정 마, 내가 다 방법이 있어. 넌 그냥 마음 편히
진몽요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연아, 이따가 나랑 같이 가줘야 할 곳이 있어. 경소경씨 어머니가 사 주신 그 큰 냉장고 예전 아파트에서 다시 가져오려고. 작은 냉장고도 있으니까 안야 혼자 쓰기엔 그걸로 충분할 거야. 나중에 안야가 거기서 안 살게 되면 그 냉장고는 팔거나 버릴 거잖아? 어머님의 호의를 생각해서 우리 엄마 집으로 가져오려고. 마침 여기 냉장고가 작아서.” 온연을 승낙했고 집에서 혼자 택시를 타고 나왔다. 두 사람이 만난 후, 진몽요는 이미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했고, 그녀가 앞에서 운전을 하면 이삿짐센터 차가 뒤에서 따라왔다. 온연은 조수석에서 바람을 만끽했다. “덥다, 에어컨 더 세게 틀어줘.” 진몽요는 웃었다. “이미 제일 세게 틀었어. 조금 있으면 시원해질 거야. 이제 막 차에 탔잖아.안야한테는 미리 문자 보내 놨는데, ‘네’ 라고만 답장했더라고. 어이가 없어 진짜. 내가 꼭 잘못한 사람 같아.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개한테는 절대 잘못할 거 없어!” 온연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얼굴 붉혔는데 뭐 어쩌겠어? 물건만 옮기면 말 섞지 말자. 그럴 이유도 없어. 날도 더운데 열 받으면 안되지.” 진몽요는 콧방귀를 뀌었다. “걱정 마, 나 손찌검 안 해. 예전에 그 현장 목격했을 때도 난 가만히 있었는데 이제 와서 손지검을 왜 해?” 온연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고개 돌려 그녀를 보았다. “너 손찌검 안했어? 너 이마는 걔가 그랬던 거지? 걔 손에도 상처 났던데. 난 너 탓 안 해.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그랬을 거야. 때렸으면 서로 퉁치는 거지.” 진몽요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걔 때렸다고? 내 이마는 걔가 경소경씨 재떨이 던져서 그렇게 된 거야. 피를 철철 흘렸는데도 난 안 때렸어! 때리고 싶었는데 순간 걔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이 이곳에 와서 우리만 의지했던 게 생각나서 때리면 또 괜히 내가 얌전한 애 괴롭히는 거 같잖아. 그래서 참았는데 내가 걔 때렸다고 누가 그래?” 온연은 이마를 긁적였다. “내가 예전에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은 후 아무렇지 않은 듯 나왔다. 냉장고는 이미 문 앞까지 옮겼고 그녀는 안야와 얘기할 기회도 없이 진몽요와 함께 나왔다. 가는 길, 임신 테스트기를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안야가 임신을 했다면 그건 경소경의 아이인가? 그렇게 많은 임신 테스트기를 쓴 거면 결과를 기다렸다는 건데 임신을 바란 게 아니었을까? 한번에 임신이 된 거라면 경소경에겐 골치 아플 수도 있었다… 진몽요네 집 아래까지 냉장고를 옮긴 후 온연은 차에서 쉬겠다고 한 뒤 같이 올라가지 않았다. 진몽요가 올라가자 그녀는 안야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임신했어? 누구 애야?’ 답장은 빠르게 왔다. ‘쓰레기통 뒤지셨어요? 그렇게 똑똑하시면 누구 앤지 아시겠네요. 전 딱 경소경씨랑만 했으니까요.’ 답장을 보고 온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 건데?’ 안야의 태도는 매정했다. ‘무슨 상관이세요? 그 쪽이 힘 있고 권력 있는 건 알지만 이런 일까지 신경 쓸 필요 없지 않나요? 제 뱃속에 아이를 제가 어떻게 하든 알아서 뭐하시게요? 온연씨, 저를 너무 업신여기지 마세요.’ 온연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가 안야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 일을 경소경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다시 고민한 뒤 결국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안야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싶었다. 왔다 갔다 했더니 벌써 오전 11시였다. 진몽요는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가자, 우리끼리 밥 먹어야지 오랜만에. 뭐 먹고 싶어? 내가 사줄게. 사양하지 마. 내가 남쪽으로 가면 자주 안 올 텐데 그럼 같이 밥 먹을 시간도 많이 없잖아.” 온연은 웃었다. “딱히 먹고 싶은 거 없는데 너는? 너가 결정해. 네가 일하러 가는 건데 밥은 내가사야지. 장소는 너가 골라. 그… 만약에 말이야, 정만 만약에 안야가 경소경씨 아이를 임신했으면 어떨 것 같아?” 진몽요는 표정과 온 몸이 굳었지만 또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때 나랑 경소경씨랑 그렇게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