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할머니한테 항공사고 일을 자백했는데도 어떻게 할머니가 용서한 거예요? 아들을 죽인 원수랑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어요? 난 당신이랑 오래 살았는데도 당신을 안 미워할 수가 없었는데…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내가 아는 것도 알고 내가 모르는 것도 아신다고. 내가 모르는 게 뭐에요? 이렇게 됐는데도 나한테 말 못할 일이 있어요?” 목정침의 몸은 살짝 굳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할머니한테 자백한 건 서로를 위해서였어. 할머니가 날 미워하시더라도 내가 너의 여생의 기둥이 될 걸 아시니까. 너가 임신도 했으니 우리 가족이 잘 살길 바라셨어. 할머니는 죽은 사람을 돌아올 수 없으니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야 된다고 하셨어. 그래서 날 미워하지 않으신데. 난 감사했지. 다른 건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너가 아는 게 다라고 생각해줘. 네 고모랑 고모부를 쫓아낼 때 내가 경고했어, 당장은 너한테 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네 고모부는 그걸 무기로 사용했지. 난 내가 양보하면 고모부가 만족할 줄 알았는데 계속 찾아올 줄은 몰랐어… 그래서 사람 시켜서 손지검을 했어. 너한테 쓴 편지는 다 복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내가 준 돈을 다 썼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걸까? 이상해. 어쩌면 뒤에서 누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몰라서 지금 알아보는 중이야. 그러니까 날 한번만 믿어줄 수 있어?” 사실 할머니의 유서와 유물을 봤을 때 온연은 이미 목정침을 믿고 있었다. 만약 온지령의 남편 말대로라면 노부인이 어떻게 유서와 유물을 목정침에게 주었을까? 유서와 유물은 사람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는 것이기에 가장 믿는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온연은 소리 없이 울었다. “미안해요… 나는 그냥…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리셔서 견딜 수 없었어요… 내 유일한 가족이었잖아요. 내가 순간 감정 조절을 못 해서 조산까지 하고… 다 내 탓이에요…” 목
진몽요는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주웠다. “어… 괜찮아, 난 괜찮아. 나 경소경씨랑 밥 먹기로 해서 먼저 갈게. 내일 다시 올게.” 그녀는 혼이 나간 채로 자리를 피했다. 전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도 그녀는 아직 두려움에 떨었다. 깊게 사랑했지만 깊게 미워했던 남자였고, 직접 그녀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남자가… 돌아온 건가?! 온연과 목정침은 눈을 마주쳤고 마음이 무거워져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유씨 아주머니는 디테일한 일을 몰랐기에 손에 든 비닐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냈다. “연아, 의사 선생님이 수유 준비해야 된다는데 가슴은 좀 부풀었어?” 온연은 목정침을 보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아직 안 부풀었어요. 그리고 당분간은 그런 거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아직 아이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씨 아주머니는 웃었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 널 어렸을 때부터 거의 내가 키웠고 도련님은 네 남편인데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어? 의사 선생님이 수유할 때 돼서 모유가 많으면 아이한테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하셨어. 분유보다 훨씬 좋다고 하니까 담아둘 수 있는 만큼 담아두자. 자, 처음에는 좀 아플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 앞으로 아이 젖 먹일 때도 좀 아프겠지만 습관되면 괜찮아.” 아주머니가 온연의 옷을 걷어 올리자 온연은 재빨리 막았다. “잠깐만요… 아직 급한 거 아니잖아요… 저 지금 자고 싶어요!” 목정침은 헛기침을 하며 “그… 저는 아이 좀 보고 올 게요. 두 사람 할 일 해요.” 그는 일어나서 인큐베이터실로 향했고, 결혼한지 한참 지났지만 그녀는 부끄러움을 탔다. 그가 나가자 온연은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고, 아이가 모유를 먹어야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더 지체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은… 정말 아팠고, 괴로웠다… 게다가 매일 이걸 반복해야한다기! 한편, 진몽요는 병원에서 나온 뒤 바로 집으로 향했고 경소경이 아직 전화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잡생각을 안 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주체
누군가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녀는 안야와 경소경의 소리를 들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안겨진 이후에 기억은 잃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그녀는 병원에 있었고 온연과 같은 병원이었다. 온연은 산부인과에 있었고 그녀는 감기로 인한 발열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경소경과 안야는 병실에서 있어주었고, 그녀가 깨어나자 경소경이 잔소리를 했다. “아침까지 만해도 괜찮던 사람이 갑자기 왜 열이 났어요? 원래도 똑똑하지 않은 건 알았지만 내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녀는 힘 없이 대답했다.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요.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된 줄 모르겠어요… 컨디션이 안 좋네요.” 이때 안야가 다가와서 말했다. “별 일 없으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비록 그녀는 표정에서 티 나지 않았지만 속으로 불평했다. 원래 그녀의 계획은 임립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임립과 함께 쇼핑을 가려했는데, 경소경이 전화를 해서 아파트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다. 그녀가 진몽요를 향한 증오는 갈수록 커져갔고, 왜 진몽요는 열 좀 난 것 가지고 주위 사람을 귀찮게 하는걸까?!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가, 여긴 경소경씨만 있어줘도 돼.” 경소경은 불만 있는 척하면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이제서야 내가 보고싶어진 거예요? 문을 한참 두드렸는데도 안 열어주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문 부실 뻔했어요.” 이 상황이 안야는 눈꼴시려웠다. 앞으로 자기한테도 이렇게 마음써 줄 남자가 나타날까? 그녀는 뒤돌아 나갔고, 마음속의 계획은 더 확고해졌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고, 흙탕물 속에서 남을 올려다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진몽요는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기에, 열이 내려가자 링겔만 맞고 바로 퇴원했다. 퇴원하려 하니 저녁 7가 넘었고, 갑자기 어떤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혹시 진씨 아가씨 맞으세요?” 진몽요는 의심스럽
진몽요 “…” 집으로 가는 내내 경소경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진몽요가 그 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군작에게 빚을 졌다면서 다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그는 차마 꽃을 버릴 수 없어 뒷좌석에 던져놓았다. 아파트. 진몽요는 성질을 죽이고 말했다. “집에 도착했으니까 먼저 들어 갈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내일 밥 살 게요.” 경소경은 기분이 살짝 풀렸다. “들어가서 잘 쉬어요, 그 꽃은 나한테 줘요. 우리집에 허전해서 꽃이라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진몽요는 어이가 없었다. “그… 그래요, 버리지만 말아요. 그래도 아까우니까 집에 가서 꽃병안에 꽂아 놔요.” 집으로 돌아온 후, 안야는 티비를 보면서 하람이 가져온 수입산 과일을 먹고 있었고 진몽요는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늘 네가 문 열러 와줘서 다행이야. 내가 열이 나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못 일어났어.” 안야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운이 참 좋으신 거 같아요. 아플 때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경소경씨가 엄청 걱정하시던 데요. 그렇게 좋은 분이신데, 소중하게 생각하셔야죠.” 진몽요는 안야 옆에 앉아 안야의 어깨를 감쌌다. “아이고, 네가 아파도 내가 똑같이 걱정할 거야. 다같이 오래오래 살아야지.” 안야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웃지 않았다. “저는 여기 사람들만큼 운이 좋지 못한 거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돈이 없어서 그렇게 열이 나도 병원에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지금은 익숙해요. 식사하셨어요? 면이라도 삶아 드릴까요?” 진몽요는 안야가 마지막에 한 걱정 섞인 말만 아니었다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고민에 빠질 뻔했다. “아직 안 먹었어. 그럼 부탁 좀 할 게. 고마워. 아직도 몸에 기운이 없네, 한숨자면 나아지겠지 뭐.” 안야는 주방으로 걸어가 무표정으로 면을 삶았고, 보글보글 끓는 물이 그녀의 심정과 비슷했다. 가끔은 그녀도 갈등했다. 만약 진몽
전화너머 경소경이 대답했다. “늦었는데 저녁 안 먹을 거 같아서요. 내가 만들어 줄 시간은 없으니까 집 가는 길에 시켰어요. 벌써 도착했어요? 얼른 먹고 일찍 자요.” 그녀는 자상한 그의 모습의 마음이 따듯해졌다. “고마워요… 그럼 먼저 먹을게요.” 전화를 끊고 그제서야 안야가 면을 삶고 있던 게 생각나 주방으로 들어가 말했다. “안야, 그만 삶아. 경소경씨가 배달 음식 보냈어. 양 많은 거 같은데 넌 저녁 먹었어? 같이 먹을까?” 안야는 가스불을 끄자 보글보글 끓던 물은 잠잠해졌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 먹었어요, 혼자 드세요.” 거실을 지나가면서 진몽요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자 진몽요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야, 같이 조금만 먹자? 경소경씨가 배달시킨 줄 몰랐어, 미안해…” 안야는 고개를 돌리고 억지로 웃었다. “전 배가 안 고파서요, 혼자 다 드세요.” 둘째 날 아침, 진몽요는 일어나서 아침밥을 할 때 어제 안야가 삶다가 두고 간 면을 발견했다. 비록 그녀는 털털한 성격이지만 마음이 여려 안야에게 미안했다. 안야는 그녀를 위해서 면을 삶았는데 그녀는 배달음식을 우선으로 먹었다니… 사죄하는 마음에 그녀는 맛있는 아침밥을 만들었고, 안야가 일어나가 저번에 쇼핑하면서 산 새 립스틱을 건넸다. “자, 선물이야.” 안야는 자연스럽게 립스틱을 받았다. “감사해요, 마침 이 색상 좋아하는데.” 밥을 먹으면서 진몽요가 물었다. “나 쇼핑하고 싶은데 같이 갈래? 연이 아들이 이미 태어났는데 아직까지 선물을 안 해서 새 옷 몇 벌 사주게.” 안야는 거절했다. “전 안 갈래요. 그냥 집에서 티비나 볼 게요. 주말에 겨우 이틀 쉬는데 잘 쉬어야 내일 또 일하죠. 저는 사장님처럼 순위에도 못 들었잖아요. 열심히 살아야죠.” 진몽요는 안야를 꼬득였다. “에이, 같이 가자. 너도 이모잖아, 같이 골라주면 좋지.” 안야는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그녀는 그저 진몽요와 같이 쇼핑하는 게 싫었다. 진몽요는 물건 살 때 가격을 안 보고
안야는 창피해서 고개를 숙였다. “아이 또 그러시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진몽요는 이해했다. “그래그래, 알겠어, 이건 좋은 일이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너희가 잘 되게 도와줄게. 다른 사람이랑 잘되면 안되잖아. 내가 지금 전화해 볼 게.” 네 사람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고, 안야는 기분이 좋아서 예쁘게 꾸미고 갔다. 임립은 제일 늦게 도착했는데… 혼자 온 게 아니라 어떤 여자랑 함께 왔다. 그 여자는 임립 곁에 잘 어울려 보였고, 예뻤지만 눈엣가시였다… 안야는 표정관리가 안 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진몽요는 임립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안야의 표정을 보고 애써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옆에는 누구예요? 소개는 해줘야죠.” 임립은 여자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내 여차친구예요, 이름은 임채미. 처음으로 다른 사람한테 소개 시켜주네요. 6개월정도 알아가다가 이 사람이 귀국하자마자 만났어요. 같이 동거하려고요.” 임채미는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우아해 보였고, 흰색 울 코트 안에 흰색 티셔츠와 회색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큰 키가 그녀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고,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 같은 아우라를 품고 있었으며 화장을 연하게 하고 왔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긴 검정 생머리를 한 그녀는 꽤나 훌륭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귀국 한지 얼마 안됐지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녁에 식사 같이할까요? 제가 살게요.” 진몽요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고, 임채미는 딱 봐도 괜찮은 집안에 아가씨 같았다. 몸매도 모델 같고, 얼굴도 예뻤으며 안야 보다 기도 세보여서 어디 하나 비교할 수 없이 안야는 완패였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더 난처했고, 진몽요는 안야가 속상할까 봐 경소경 옆에 서지 않고 그녀에게 팔짱을 꼈다. “상황보고요… 저녁에 일이 있을 수도 있어서요.” 임채미는 진몽요와 안야를 보고 살짝 동공이 흔들렸다.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다른 일
진몽요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임립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임립씨, 여자친구 이제 막 귀국했으니까 시간 나면 데리고 놀아줘야죠. 차도남 컨셉은 버리고요.” 임립이 대답을 하기전에 임채미는 그의 옆으로 가 애교스럽게 그의 팔을 감싸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였다. “우리 립씨는 다른 이성한테는 차도남이지만 저한테는 엄청 자상해요! 친구 선물사러 온 거라고 했죠? 가요, 내가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대신 골라줄게요!” 백화점 2층. 안야는 못 견디겠어서 화장실에 갔고, 진몽요는 얼른 따라갔다. 세면대 앞에서 안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진몽요는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임립한테 여자친구가 생긴지 몰랐어. 난 너희 두 사람이 같이 살면서 왜 아무 일도 없었나 했는데, 여자친구가 이미 있었구나… 괜찮아, 좋은 남자는 많으니까 또 찾으면 그만이야.” 안야는 심호흡을 하고 애써 침착했다. “괜찮아요, 그냥 생각지 못한 상황이라서 좀 난감했어요. 게다가… 임채미씨는 저 보다 예쁘고 몸매도 좋고, 가방도 몇 백만원 자린데 저는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잖아요.” 진몽요는 바로 반박했다. “네가 모자란 게 뭐있어? 그냥 너랑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거지 네가 안 어울리는 건 아니야. 불편하면 우린 먼저 가자. 괜히 너한테 쇼핑하자고 했네 내가.” 안야는 고개를 돌려 진몽요를 보았다. 역시, 그녀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낄 수 없었기에 떠나야 했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왜 그녀가 이 무리를 떠나야 할까? 그녀는 웃으며 “괜찮아요, 없었던 일로 하면 그만이에요.” 웃는 그녀를 보며 진몽요는 속으로 안도했다. “괜찮으면 다행이야. 난 너가 충격 받은 줄 알고. 그럼 가자, 가서 쇼핑해야지.” 그녀들과 경소경, 임립 그리고 임채미가 다시 만났을 때 임채미는 선물을 같이 고르고 있었고, 아이 선물로는 역시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물쇠와 작은 옥팔찌가 좋다고 생각했다. 임채미는 즐겁게 고르고 있었고, 순금으로 만든 평화 자물
경소경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너랑 정침이랑은 보는 눈이 같아서 똑같은 걸 선물할 거 같으니까 너가 한 발 빨리 사야 돼.” 물건을 다 사고 진몽요는 안야를 끌고 온연의 병문안을 갔고, 경소경은 하람의 전화가 오자 공관으로 향했다. 임립과 임채미가 단 둘이 남자 임채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립씨… 친구분들이 저 싫어해요?” 임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친구요?” 임채미는 애교스럽게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냥 다요! 오늘 첫 만남인데 같이 식사도 안 하고, 제가 사겠다고 했는데도 거절당했잖아요. 경소경씨는 저를 무안하게 만들기까지 했는데 몰랐어요?” 임립은 정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몰랐어요, 오해한 거 같아요. 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지금 온연씨가 아이를 조산해서 다들 그 일 신경 쓰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내가 밥 살게요, 가요.” 경가네 공관. 경소경이 집에 왔을 때 하람은 정원에서 풀을 정리하고 있었고, 다리가 나은 걸 보자 그는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오늘 기분 좋으신가 봐요.” 하람은 그를 보며 “너는 어떻게 집에 한번도 안 오니? 만약에 우리가 일반 사람들처럼 돈도 없고 집도 없어서 원룸에 다 낑겨 살았으면 너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릴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는 하람이 용건이 있는 걸 알았기에 잔소리는 무시해버렸다. “용건 있으시면 말로 하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저 몽요씨랑 쇼핑하고 있었는데, 방해됐잖아요.” 하람은 가위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와, 네 아빠 지금 집에 없어.” 경소경은 고민하더니 따라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하람은 한심하게 그를 보며 “몽요 요즘 예군작이라는 남자랑 가까이 지낸다며?” 경소경의 표정이 변했다. “엄마… 어떻게 아셨어요?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예군작이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거고, 두 사람이 같이 식사 몇 번 한 게 다예요.” 하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