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경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너랑 정침이랑은 보는 눈이 같아서 똑같은 걸 선물할 거 같으니까 너가 한 발 빨리 사야 돼.” 물건을 다 사고 진몽요는 안야를 끌고 온연의 병문안을 갔고, 경소경은 하람의 전화가 오자 공관으로 향했다. 임립과 임채미가 단 둘이 남자 임채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립씨… 친구분들이 저 싫어해요?” 임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친구요?” 임채미는 애교스럽게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냥 다요! 오늘 첫 만남인데 같이 식사도 안 하고, 제가 사겠다고 했는데도 거절당했잖아요. 경소경씨는 저를 무안하게 만들기까지 했는데 몰랐어요?” 임립은 정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몰랐어요, 오해한 거 같아요. 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지금 온연씨가 아이를 조산해서 다들 그 일 신경 쓰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내가 밥 살게요, 가요.” 경가네 공관. 경소경이 집에 왔을 때 하람은 정원에서 풀을 정리하고 있었고, 다리가 나은 걸 보자 그는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오늘 기분 좋으신가 봐요.” 하람은 그를 보며 “너는 어떻게 집에 한번도 안 오니? 만약에 우리가 일반 사람들처럼 돈도 없고 집도 없어서 원룸에 다 낑겨 살았으면 너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릴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는 하람이 용건이 있는 걸 알았기에 잔소리는 무시해버렸다. “용건 있으시면 말로 하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저 몽요씨랑 쇼핑하고 있었는데, 방해됐잖아요.” 하람은 가위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와, 네 아빠 지금 집에 없어.” 경소경은 고민하더니 따라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하람은 한심하게 그를 보며 “몽요 요즘 예군작이라는 남자랑 가까이 지낸다며?” 경소경의 표정이 변했다. “엄마… 어떻게 아셨어요? 두 사람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예군작이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거고, 두 사람이 같이 식사 몇 번 한 게 다예요.” 하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이번에 처음으로 하람은 그의 사생활에 끼어 들었고, 경소경은 짜증이 나진 않았지만 하람의 눈에 진몽요가 찍히지 않게 지켜주었다. “외박은 제 집에서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저도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말해준 건지 아직 말 안 해주셨잖아요. 설마 뒷조사하신 거 아니죠? 그렇게 할 일이 없으세요?” 하람은 미심쩍었다. “정말 너 집에서 잤어? 둘이 다시 만나? 이건… 몽요랑 같이 사는 그 아가씨가 알려줬어, 안야라고 있잖아. 그 아가씨는 싹싹하고 참해서 거짓말할 것 같진 않고, 게다가 몽요 친구잖아. 내가 이런 일까지 뒷조사할 정도로 한가하진 않아!” 안야가 말했다고? 경소경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진몽요가 그의 집에서 외박한 걸 안야가몰랐을까? 아니면… 진몽요가 그의 집 말고 다른 사람의 집도 갔었나? 생각할수록 찝찝했다. “엄마, 다른 볼 일 없으시면 저 가 볼게요. 생각하시는 그런 상황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가 발 걸음을 떼자 하람이 당부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네가 받아드려. 괜히 여자애한테 심적 부담감 주지 말고. 사람이 인생 살면서 순탄하게 살 수만은 없어. 힘든 일도 겪고 그런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인생이 불행하라는 법도 없지. 엄마는 네가 걔한테 진심인 거 알아, 그래서 마음이 쓰이는 거야.” 하람의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단번에 알아들은 경소경은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감동을 받았다. “알겠어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녁 먹으러 올게요.” 차로 돌아온 후 그는 망설이다가 안야에게 문자를 보냈다. ‘몽요씨가 우리 집 온 날 말고 다른 날에도 외박한 적 있어요?” 의심병은 만인의 질병이었고, 지금 그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병실에서 안야는 문자를 받은 후 조심스럽게 진몽요와 온연의 눈치를 보다가 답장했다. ‘아니요…아마 그런 적 없을 거예요.’ 그녀는 일부러 숨기는 듯한 말투로 이 대답에 확신을 주지 않았다. 경소경은 그녀의 말을 당연히 오해하고 답장을 하지 않
산후조리원 한 달 비용이 몇 백을 넘어간다는 건 안야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또 무리에 어울리지 못 하는 느낌을 받아 옆에서 그저 웃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연이 밥 좀 챙겨올 게. 다들 얘기하고 있어. 금방 다녀올 게.”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세요, 저랑 안야가 여기 있을게요.” 유씨 아주머니가 나가자 절친들의 수다시간이 시작됐다. 진몽요는 막 웃으면서 사온 아동복을 꺼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 이건 아이 태어난 기념으로 산 건데 대충 맞을 거야. 남자 아이인 거 알고 파랑색으로 골랐는데 귀엽지? 나는 아동복은 저렴할 줄 알았는데 은근 비싸더라! 아이는 옷 사이즈가 자주 바뀌니까 몇 벌 사왔어. 안야도 샀는데, 같이 가서 골랐어. 나는 경소경씨처럼 돈이 많진 않아서 별장은 못 해줘. 역시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족할 게 없다니까.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꼭 네 뱃속에서 태어날 거야! 맞다, 임립 연애하더라. 쇼핑할 때 그 여자랑 같이 왔어. 착한 스타일은 아니라 어울리긴 힘들 거 같아.” 온연은 의아했다. “정말이야? 하긴 나이도 있으니까 연애할 때도 됐지. 첫 만남부터 별로였어?” 진몽요는 투덜댔다. “그 여자 이름이 임채미야. 성만 임립이랑 똑같지 완전 딴판이야. 아무한테나 친한 척을 잘해서 네 아들 선물 하나 골라주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더라고. 첫 만남에 그럴 수 있나? 제일 화났던 건 안야를 은근 무시하는 거야. 안야가 한동안 임립이랑 살았었잖아? 안야는 오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뭐라고 말했는 줄 알아? 오해 안 한다면서, 임립이 착해서 길가에 강아지도 구해주는 사람이라고 안야는 친구니까 오죽했겠냐고 말하더라고. 임립만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 마디 했을 거야. 순진한 척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겠더라.” 옆에 있던 안야는 난감했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었는데 진몽요는 그것도 모르고 다시 언급했다. 온연
온연은 고민했다. “우리는 안야랑 다르잖아. 우리 둘은 안지도 오래됐고, 함께한 일이 많았어서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지만 안야는 달라. 앞으로 좀 조심해, 애 기분 좀 잘 살피고. 같이 살 때는 그런 털털한 성격 좀 고쳐야겠어.” 진몽요는 억울했다. “난 너희 둘 다 똑같이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같이 살 정도로 친한데 그런 것도 신경 써야 하나…?” 온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야는 본인처럼 진몽요와 어울릴 수 없다는 걸 방금 눈치챘다. 갑자기 병실 문이 열었고 목정침이 나타났다. “무슨 얘기해요?” 비록 그는 매일 같이 양복을 입지만, 매번 차려 입은 모습은 빛나 보였다. 진몽요는 웃으며 장난을 쳤다. “언제부터 여자들 대화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는 병상 앞에 서서 말했다. “관심 없어요,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예요.” 진몽요는 어이가 없었다. “진짜 말이 안 통하네요. 왔으니까 저는 갈게요. 위가 배고프다고 시위하고 있어서 얼른 배 채우러 가봐야 해요.” 온연은 당부했다. “운전 조심히 해, 덜렁대지 말고.” 병실에 두 사람만 남자 그는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들췄다. “물 흘렸어? 옷이 젖었는데, 갈아 입을래?” 온연은 잠깐 당황했다. “아니요… 이따 아주머니가 도와주실 거예요...” 그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밥 하러 가셔서 좀 지나야 오실 거야. 그냥 내가 도와줄게.”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보며 온연은 도저히 그가 직접 도와주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었다.”됐어요, 아주머니가 할 줄 아시니까 기다리면 돼요. 아이한테 갖다 줄 것도 짜야 돼서요…”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자 목정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아주머니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 아이 이름은 생각해 봤어? 내가 지을까?” 온연은 생각했다. “나는 이름 지을 줄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요. 아이는 보고 왔어요? 좀 어때요? 언제쯤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요?” 목정침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에 넘겨준 뒤 부드럽게 말했다. “너기
목정침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응, 아직은 못 찾았어. 그래서 뒤에 누군가 있다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들어. 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온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떠봤다. “그럼… 만약에 찾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녀가 걱정하는 걸 알자 목정침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고모랑 고모부가 돼서 분명 네가 임신 말기 때 조심해야하는 거 알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어떻게 됐든 용서하지 않을 거야. 고모네 가족도, 그 뒤에 있는 사람도 절대 안 놓아줄 거야. 너가 걱정하는 건 알아. 지금까지 봤을 땐 고모는 아마 누군가의 의해 협박을 당했거나 조종을 당했겠지. 선택권이 있었다면 이렇게 안 하셨을 거야. 고모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만. 내가 상황을 보고 결정할 거야. 너무 잔인하게는 안 해.” 온연은 목정침이 그때 가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보는 그의 모습은 그녀가 원하는 그의 모습이었고, 그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사람도 못 찾았으니 우선 기다려 봐야 했다. 병원도 산후조리원도 시간이 느리게만 흘러갔다. 목정침은 그녀에게 42일동안 산후조리를 하라고 했고 그건 유씨 아주머니가 알려준 정보였다. 요즘엔 산후조리를 안 하는 여성들도 많았지만 목정침은 유씨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다. 아이의 출생 1개월 파티는 온연이 목가네로 돌아올 때까지 늦춰졌고, 목가네는 엄청난 경사인만큼 성대하게 치렀다. 이 날 온연은 처음으로 아이와 만났고, 아이도 막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장기간 인큐베이터 안에 있어서, 빛 때문에 피부가 살짝 탄 것 같았지만, 피부는 좀 지나면 다시 하얘질 수 있었고 얼굴은 막 태어났을 때보다 훨씬 또렷해져 있었다. 처음으로 뱃속에 있던 아이를 마주하니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한 번 안으니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에 비하면 목정침의 태도는 덤덤했다. 그녀가 아이를 아껴줄 때도 그는 그저
호텔에 도착한 후 온연은 어쩔 수 없이 유씨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목정침과 함께 연회장을 돌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산후조리를 잘해서 오늘은 하얀 바탕에 검은색 디자인이 그려진 치파오를 입었고, 완벽한 몸매를 뽐냈다. 만약 유씨 아주머니가 옆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녀가 출산한 걸 몰랐을 것이다. 손님들은 대부분 사업가들이어서 그녀는 누군지 잘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목정침과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리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왜 목가네 사모님은 주목받지 않고 아이의 출생을 더 중요하게 챙기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고, 목정침과 팔짱을 끼며 한 바퀴 인사를 돌리고 진몽요를 찾으러 갔다. 진몽요와 안야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경소경과 임립도 도착했다. 임립은 자연스럽게 여자친구 임채미를 데려왔고, 보통 남자들은 한쪽에서 일 얘기를 하고 여자들은 한 쪽에서 요즘 트렌드 얘기를 하지만 임채미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임립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온연은 본 진몽요는 얼른 다가갔고 유씨 아주머니 품에 있던 아이를 안았다. “내가 좀 크면 잘 생겨질 거라고 말했지? 피부는 좀 탔는데 이목구비가 완전 목정침씨네. 이름은 지었어? 이름이 뭐야?” 이름 얘기가 나오자 온연은 어이가 없었다. 출산을 하고 병원에서 입원중일 때 목정침이 그녀에게 이름을 지을 거냐고 물어봤었지만 사실 아이를 낳았을 때 출생증명을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신생아 이름을 적어야 했었다. 그래서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녀가 지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는 혹시라도 그녀가 이름을 잘 못 지었다고 할까 봐 예의상 물어본 것이었다. 그때 그녀가 이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그에게 맡겼고, 오늘에서야 자기 아들의 이름이 목성언이라는 걸 알았다. 아빠의 성과 엄마의 이름, 그리고 중간에 별 성자. 잡을 수 없이 높이 떠 있는 반짝이는 별이라는 의미였다. 역시 의미는 목정침 다웠다. “목성언, 목
진몽요의 케이스 안에는 작은 금팔찌가 있었고, 안야의 케이스 안에는 빨간색 실로 감겨진 금색 12간지 모양이 딱 아이에 띠에 맞는 동물이었다. 온연은 선물을 보고 아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모들 감사합니다, 나중에 커서도 이모들 기억해줘야 해. 널 이렇게 좋아하잖아.” 임채미는 이 장면을 보고 실룩거리며 걸어왔다. 오늘 그녀는 과하게 꾸몄고 지난번 진몽요와 안야와의 첫 만남 때보다 수수함이 적어졌고 화려함이 가득했다. “다들 오셨네요? 이 분이 목가네 사모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임립씨 여자친구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건 제가 립씨랑 같이 고른 아이 선물이에요. 아이가 너무 귀엽네요~” 온연은 이미 진몽요로부터 임채미 얘기를 들었어서 그저 예의상 웃었고 선물은 유씨 아주머니가 받았다. 임채미는 안야를 스캔하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안야씨는 어떻게 이렇게 입고 여길 오셨어요? 여기가 재래시장도 아니고.” 안야는 얼굴이 빨개졌고 옷깃을 꽉 잡았다. 맞다, 그녀는 예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반 원피스를 입었다. 이런 상류사회 사람들 사이에 껴 있으니 봉황 무리 안에 있는 꿩 같아서 촌스러운 자신이 부끄러웠다. 온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저희 목가네 호텔이니까 제가 신경 안 쓰면 그만이에요. 아무 옷이나 입고 와도 되죠. 옷은 그저 입는 거지 명함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오늘은 사업 모임이 아니라 저희 아이 파티인데요. 아가씨가 말을 안 가려서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소문이 맞네요…” 임채미는 당황했다. “저… 저는 그냥 장닌친건데… 여러분들이 립씨 친구면 제 친구나 마찬가지요. 안야씨 제가 장난도 못 치는 거 아니죠?” 안야는 억지로 웃었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진몽요는 혐오하는 눈빛으로 임채미를 보며 비꼬았다. “그쪽이 입은 예복도 2년 전 디자인 같은데, 심지어 그때도 유행을 못 타서 이제 거의 아무도 안 입는 걸 입고 오셨네요? 저도 장난이에요. 제가 디자인 일을 해서, 그쪽이 입은 옷이 몇 년도 상
넓은 목가네는 사람이 많아졌어도 시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분위기가 축 쳐져 있었다. 진몽요는 안야를 임채미로부터 지키고 있었고 경소경도 있어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임채미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남자들 사이에 껴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무리의 ‘인싸’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은 쉽게 호감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임채미는 아이를 안고 있는 유씨 아주머니를 막 대했다. “아줌마, 주스 한 잔만 가져다주세요. 홍차는 못 마셔서요.” 유씨 아주머니는 임립의 체면을 생각해서 화 내지 않았다. “저는 지금 아이를 안고 있어서요. 주방에 다른 사람들 있으니 다른 분께 부탁해주세요. 직접 하셔도 되고요. 냉장고 안에 다 있으니 드시고 싶은 걸로 고르세요.” 임채미는 고개를 돌려 임립에게 애교를 부렸다. “립씨… 나 주스 먹고싶어요~” 진몽요는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임립은 아무 말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가져올게요, 어떤 주스 마실래요?” 임채미는 달콤하게 웃었다. “석류주스요~” 석류주스… 는 없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석류주스는 없어요.” 임립은 어깨를 들썩였다. “없다네요, 다른 거 마셔요.” 임채미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됐어요, 그냥 홍차 마실게요.” 이때 임집사가 걸어와 목정침에 귓가에 속삭였고 목정침은 인상을 찌푸리며 임집사와 위층으로 올라갔다. 임집사는 오늘 연회 게스트 목록을 보며 말했다. “예군작씨라고, 저희랑 아무런 왕래도 없고 오늘 파티에 오지도 않았는데 선물을 보내셨어요, 큰 걸로요. 모든 사람들중에 경 도련님이 제일 고가의 선물로 별장을 주셨는데, 이 예군작도….” 목정침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공짜로 집을 선물하지는 않았을 테고 나랑 사업한 적도 없는 거 같은데, 선물 보낸 사람이 아무 말없었어요?” 임집사는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선물 받은 저희 직원 말로는, 예군작 대신 온 사람은 젊은 사람었어요. 아마 밑에서 일하는 직원 같은데, 사모님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