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자 진몽요는 고민했다. “설마… 데이트는 아니죠?” 경소경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데이면 좀 어때요? 내가 신선한 거 좀 먹여주고 싶어서 그래요. 일 끝나고 전화할 게요.” 그의 차가 멀어지자 진몽요는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헤어졌는데도 사귀는 거처럼 잠도 같이 자고, 그의 차를 타고, 같이… 데이트까지? 문 앞에 올라온 후, 그녀는 문이 살짝 열려 있자 안야가 미리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 뒀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민한 후각으로 두리안 냄새를 맡았다. “와, 안야 너 두리안 샀어?” 안야는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아니요, 하씨 아주머니가 아침에 가져오셨어요. 다른 것도 엄청 많아요.” 하람의 행동이 이제 낯설지 않았다. “알겠어. 난 옷 갈아입고 연이네 병문안 갈 건데 같이 갈래?” 안야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아니요, 오늘 립님도 쉰다고 하셔서 가서 청소 좀 해드리려고요. 남자 혼사 살면 집이 엉망이잖아요. 지금은 제가 그 집에 살진 않지만, 예전에 저를 많이 도와주셨으니 이거라도 해드려야죠.” 진몽요는 어제 저녁 집에 못 들어온 게 생각나 물었다. “어제 너 집에 몇 시에 왔어? 병원 갔다 왔는데 키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왔어. 너한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어쩔 수 없이 경소경씨네 집에서 잤어.” 안야는 찔렸다. 그녀는 어제 저녁 집에서 노크소리도 들었고, 진몽요의 전화도 봤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좀 늦게 들어온 거 같아요… 그래서 핸드폰도 못 봤어요. 어차피 가실 곳 있으니까 제가 걱정 안 했어요.” 진몽요는 의심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먹을 걸 대충 챙겨 나가려 할 때 안야가 가방을 매고 말했다. “사장님 차 있으시니까 저 좀 림닙네 집에 데려다 주세요. 택시 타기 귀찮아서요.” 병원과 임립네 집은 같은 방향이 아니었지만 진몽요는 승낙했다. “그래, 그럼 너 먼저 데려다 주고 병원으로 가지 뭐. 어제 연이 막 수술하고 나온 모습보고 깜짝 놀랐어. 걔가
진몽요는 털털하게 유턴을 하며 말했다. “알겠어, 걱정 말고.” 아파트 단지 주변 사람들은 진몽요의 차를 보며 수근거렸고, 얼마나 비싼 차인지 떠들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안야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안야 마음속엔 허영심이 생겼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구나… 고개를 숙이고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단순히 청소가 아니라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진작이 했어야 되는 일을 그녀가 조금 더 일찍 깨달었다면 임립과 남녀사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 그녀는 빈곤한 일반인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 병원, 온연은 오늘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어제처럼 초췌해 보이지도 않고, 밥 먹을 입맛도 생겼다. 진몽요가 오자마자 온연은 아이를 보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당장 움직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대신 봐 줘야했다. 진몽요는 당연히 기쁘게 그녀를 도왔고, 병실 밖에 경호원이 늘어난 걸 보고 속으로 투덜댔다. 아이 하나 낳은 거 가지고 목정침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아이를 보고 온 후 온연에게 물었다. “밖에 경호원들은 왜 있어? 목정침은 너가 납치라도 당할 까봐 그러는 거야?” 유씨 아주머니는 끼어들었다. “다 도련님이 연이 생각하는 마음이지 뭐…” 진몽요는 너무 억지라고 생각했다. “아니… 경호원 두 명 세워놓는 게 생각해주는 마음이에요? 왜 직접 안 오고요? 아무리 연이가 얼굴보기 싫어해도 그건 다 핑계 아니에요?” 유씨 아주머니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말이 맞았지만 목정침이 어떻게 하든 상관할 수 없었다. 온연은 대화주제를 돌렸다. “괜찮아, 난 그 사람 없어도 돼. 몽요야 나 데리고 화장실 좀 가줘. 의사 선생님이 오늘은 누워있지만 말고 활동 좀 하라고 하셨어.” 진몽요는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아니… 너 배에 흉터가 그렇게 깊은데 걸을 수 있겠어?” 온연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도 장기 꼬임을 방지해주는 거야. 최대한 움직이되 너
유씨 아주머니에 말에 진몽요는 온연이 안쓰러웠다. “연아, 아주머니 말이 맞아. 아이는 어차피 지금은 아이 못 만지니까 급할 거 없어. 오늘 뭐 먹고 싶어? 내가 경소경씨한테 말해 놓을 게. 많이 먹어야 힘도 생기고 회복도 빨리하지. 아니면 전화해서 목정침씨 오라고 하는 거 어때? 너가 아이를 낳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그 사람도 직접 봐야지. 아니면 너가 얼마나 안쓰러운지 모를 거야.” 온연은 숨을 쉬며 유씨 아주머니와 진몽요의 도움 하에 천천히 허리를 폈고, 너무 아파서 숨을 깊게 쉴 수도 없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는 게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한참 후 그녀는 겨우 말을 했다. “경소경씨…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아주머니… 목정침한테 전화해서… 지금… 오라고 하세요…” 아직 그들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으니 그는 당연히 와야했다. 지금 그는 회피하고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목정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사모님이 오시랍니다.” 전화 너머, 그는 알겠다고 했지만 온연이 자신을 만나면 싸울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 온지령네 부부가 쓴 그 편지는 그에게 심하게 타격을 주었고, 어렵에 얻어온 평화가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고 그는 잠시 고민했다. 먼저 회사에 가서 노부인이 떠나기 전에 쓴 유서와 집 문서를 챙겼고, 이 물건들이 어쩌면 그를 지켜줄 수도 있었다… 막 아이를 낳은 여자의 성질을 감히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병원. 그는 병실로 들어오자 마자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고 진몽요는 그를 원망했다. “와이프가 아이를 낳고 불쌍하게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 와요?” 그는 온연을 보며 진몽요의 원망을 그저 듣고 있었다. 온연은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었고, 그가 일부러 안 온 게 아닌 걸 알았기에 그가 욕먹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유씨 아주머니는 두 사람이 할 얘기가 있는 걸 알고, 진몽요를 끌고 물건을 사러 나갔다. 지금은 모유수유를 할
온연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할머니한테 항공사고 일을 자백했는데도 어떻게 할머니가 용서한 거예요? 아들을 죽인 원수랑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어요? 난 당신이랑 오래 살았는데도 당신을 안 미워할 수가 없었는데…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내가 아는 것도 알고 내가 모르는 것도 아신다고. 내가 모르는 게 뭐에요? 이렇게 됐는데도 나한테 말 못할 일이 있어요?” 목정침의 몸은 살짝 굳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할머니한테 자백한 건 서로를 위해서였어. 할머니가 날 미워하시더라도 내가 너의 여생의 기둥이 될 걸 아시니까. 너가 임신도 했으니 우리 가족이 잘 살길 바라셨어. 할머니는 죽은 사람을 돌아올 수 없으니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야 된다고 하셨어. 그래서 날 미워하지 않으신데. 난 감사했지. 다른 건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너가 아는 게 다라고 생각해줘. 네 고모랑 고모부를 쫓아낼 때 내가 경고했어, 당장은 너한테 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네 고모부는 그걸 무기로 사용했지. 난 내가 양보하면 고모부가 만족할 줄 알았는데 계속 찾아올 줄은 몰랐어… 그래서 사람 시켜서 손지검을 했어. 너한테 쓴 편지는 다 복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내가 준 돈을 다 썼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걸까? 이상해. 어쩌면 뒤에서 누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몰라서 지금 알아보는 중이야. 그러니까 날 한번만 믿어줄 수 있어?” 사실 할머니의 유서와 유물을 봤을 때 온연은 이미 목정침을 믿고 있었다. 만약 온지령의 남편 말대로라면 노부인이 어떻게 유서와 유물을 목정침에게 주었을까? 유서와 유물은 사람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는 것이기에 가장 믿는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온연은 소리 없이 울었다. “미안해요… 나는 그냥…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리셔서 견딜 수 없었어요… 내 유일한 가족이었잖아요. 내가 순간 감정 조절을 못 해서 조산까지 하고… 다 내 탓이에요…” 목
진몽요는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주웠다. “어… 괜찮아, 난 괜찮아. 나 경소경씨랑 밥 먹기로 해서 먼저 갈게. 내일 다시 올게.” 그녀는 혼이 나간 채로 자리를 피했다. 전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도 그녀는 아직 두려움에 떨었다. 깊게 사랑했지만 깊게 미워했던 남자였고, 직접 그녀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남자가… 돌아온 건가?! 온연과 목정침은 눈을 마주쳤고 마음이 무거워져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유씨 아주머니는 디테일한 일을 몰랐기에 손에 든 비닐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냈다. “연아, 의사 선생님이 수유 준비해야 된다는데 가슴은 좀 부풀었어?” 온연은 목정침을 보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아직 안 부풀었어요. 그리고 당분간은 그런 거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아직 아이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씨 아주머니는 웃었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 널 어렸을 때부터 거의 내가 키웠고 도련님은 네 남편인데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어? 의사 선생님이 수유할 때 돼서 모유가 많으면 아이한테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하셨어. 분유보다 훨씬 좋다고 하니까 담아둘 수 있는 만큼 담아두자. 자, 처음에는 좀 아플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 앞으로 아이 젖 먹일 때도 좀 아프겠지만 습관되면 괜찮아.” 아주머니가 온연의 옷을 걷어 올리자 온연은 재빨리 막았다. “잠깐만요… 아직 급한 거 아니잖아요… 저 지금 자고 싶어요!” 목정침은 헛기침을 하며 “그… 저는 아이 좀 보고 올 게요. 두 사람 할 일 해요.” 그는 일어나서 인큐베이터실로 향했고, 결혼한지 한참 지났지만 그녀는 부끄러움을 탔다. 그가 나가자 온연은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고, 아이가 모유를 먹어야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더 지체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은… 정말 아팠고, 괴로웠다… 게다가 매일 이걸 반복해야한다기! 한편, 진몽요는 병원에서 나온 뒤 바로 집으로 향했고 경소경이 아직 전화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잡생각을 안 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주체
누군가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녀는 안야와 경소경의 소리를 들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안겨진 이후에 기억은 잃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그녀는 병원에 있었고 온연과 같은 병원이었다. 온연은 산부인과에 있었고 그녀는 감기로 인한 발열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경소경과 안야는 병실에서 있어주었고, 그녀가 깨어나자 경소경이 잔소리를 했다. “아침까지 만해도 괜찮던 사람이 갑자기 왜 열이 났어요? 원래도 똑똑하지 않은 건 알았지만 내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녀는 힘 없이 대답했다.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요.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된 줄 모르겠어요… 컨디션이 안 좋네요.” 이때 안야가 다가와서 말했다. “별 일 없으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비록 그녀는 표정에서 티 나지 않았지만 속으로 불평했다. 원래 그녀의 계획은 임립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임립과 함께 쇼핑을 가려했는데, 경소경이 전화를 해서 아파트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다. 그녀가 진몽요를 향한 증오는 갈수록 커져갔고, 왜 진몽요는 열 좀 난 것 가지고 주위 사람을 귀찮게 하는걸까?!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가, 여긴 경소경씨만 있어줘도 돼.” 경소경은 불만 있는 척하면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이제서야 내가 보고싶어진 거예요? 문을 한참 두드렸는데도 안 열어주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문 부실 뻔했어요.” 이 상황이 안야는 눈꼴시려웠다. 앞으로 자기한테도 이렇게 마음써 줄 남자가 나타날까? 그녀는 뒤돌아 나갔고, 마음속의 계획은 더 확고해졌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고, 흙탕물 속에서 남을 올려다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진몽요는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기에, 열이 내려가자 링겔만 맞고 바로 퇴원했다. 퇴원하려 하니 저녁 7가 넘었고, 갑자기 어떤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혹시 진씨 아가씨 맞으세요?” 진몽요는 의심스럽
진몽요 “…” 집으로 가는 내내 경소경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진몽요가 그 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군작에게 빚을 졌다면서 다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그는 차마 꽃을 버릴 수 없어 뒷좌석에 던져놓았다. 아파트. 진몽요는 성질을 죽이고 말했다. “집에 도착했으니까 먼저 들어 갈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내일 밥 살 게요.” 경소경은 기분이 살짝 풀렸다. “들어가서 잘 쉬어요, 그 꽃은 나한테 줘요. 우리집에 허전해서 꽃이라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진몽요는 어이가 없었다. “그… 그래요, 버리지만 말아요. 그래도 아까우니까 집에 가서 꽃병안에 꽂아 놔요.” 집으로 돌아온 후, 안야는 티비를 보면서 하람이 가져온 수입산 과일을 먹고 있었고 진몽요는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늘 네가 문 열러 와줘서 다행이야. 내가 열이 나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못 일어났어.” 안야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운이 참 좋으신 거 같아요. 아플 때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경소경씨가 엄청 걱정하시던 데요. 그렇게 좋은 분이신데, 소중하게 생각하셔야죠.” 진몽요는 안야 옆에 앉아 안야의 어깨를 감쌌다. “아이고, 네가 아파도 내가 똑같이 걱정할 거야. 다같이 오래오래 살아야지.” 안야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웃지 않았다. “저는 여기 사람들만큼 운이 좋지 못한 거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돈이 없어서 그렇게 열이 나도 병원에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지금은 익숙해요. 식사하셨어요? 면이라도 삶아 드릴까요?” 진몽요는 안야가 마지막에 한 걱정 섞인 말만 아니었다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고민에 빠질 뻔했다. “아직 안 먹었어. 그럼 부탁 좀 할 게. 고마워. 아직도 몸에 기운이 없네, 한숨자면 나아지겠지 뭐.” 안야는 주방으로 걸어가 무표정으로 면을 삶았고, 보글보글 끓는 물이 그녀의 심정과 비슷했다. 가끔은 그녀도 갈등했다. 만약 진몽
전화너머 경소경이 대답했다. “늦었는데 저녁 안 먹을 거 같아서요. 내가 만들어 줄 시간은 없으니까 집 가는 길에 시켰어요. 벌써 도착했어요? 얼른 먹고 일찍 자요.” 그녀는 자상한 그의 모습의 마음이 따듯해졌다. “고마워요… 그럼 먼저 먹을게요.” 전화를 끊고 그제서야 안야가 면을 삶고 있던 게 생각나 주방으로 들어가 말했다. “안야, 그만 삶아. 경소경씨가 배달 음식 보냈어. 양 많은 거 같은데 넌 저녁 먹었어? 같이 먹을까?” 안야는 가스불을 끄자 보글보글 끓던 물은 잠잠해졌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 먹었어요, 혼자 드세요.” 거실을 지나가면서 진몽요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자 진몽요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야, 같이 조금만 먹자? 경소경씨가 배달시킨 줄 몰랐어, 미안해…” 안야는 고개를 돌리고 억지로 웃었다. “전 배가 안 고파서요, 혼자 다 드세요.” 둘째 날 아침, 진몽요는 일어나서 아침밥을 할 때 어제 안야가 삶다가 두고 간 면을 발견했다. 비록 그녀는 털털한 성격이지만 마음이 여려 안야에게 미안했다. 안야는 그녀를 위해서 면을 삶았는데 그녀는 배달음식을 우선으로 먹었다니… 사죄하는 마음에 그녀는 맛있는 아침밥을 만들었고, 안야가 일어나가 저번에 쇼핑하면서 산 새 립스틱을 건넸다. “자, 선물이야.” 안야는 자연스럽게 립스틱을 받았다. “감사해요, 마침 이 색상 좋아하는데.” 밥을 먹으면서 진몽요가 물었다. “나 쇼핑하고 싶은데 같이 갈래? 연이 아들이 이미 태어났는데 아직까지 선물을 안 해서 새 옷 몇 벌 사주게.” 안야는 거절했다. “전 안 갈래요. 그냥 집에서 티비나 볼 게요. 주말에 겨우 이틀 쉬는데 잘 쉬어야 내일 또 일하죠. 저는 사장님처럼 순위에도 못 들었잖아요. 열심히 살아야죠.” 진몽요는 안야를 꼬득였다. “에이, 같이 가자. 너도 이모잖아, 같이 골라주면 좋지.” 안야는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 그녀는 그저 진몽요와 같이 쇼핑하는 게 싫었다. 진몽요는 물건 살 때 가격을 안 보고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