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가로 돌아온 온연은 조용히 아래층에서 샤워를 끝냈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유씨 아주머니가 이미 라면을 다 끓여놓은 뒤였다. "연아, 뭐라도 먹고 배 좀 채워. 이 시간까지 야근해서 힘들 텐데."그녀의 마음에 감동의 파도가 요동쳤다. "유씨 아주머니… 요 며칠 계속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이 시간까지 안 기다리셔도 돼요. 저 배 안 고파요."유씨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도련님이 부탁하셨어.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분명히 너를 걱정하고 계셨어. 얼른 먹어. 얼른 먹고 일찍 쉬어."목정침이 뭐라고 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아파서 쓰러지면 돈을 써야 한다 든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하대한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라면을 다 먹은 온연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 목정침이 잠에서 깰 까봐 감히 불은 켜지 못했다. 침대에 누우려는 그 순간 그가 뒤척이는 바람에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가 미동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편한 자세를 잡은 그녀는 순식간에 꿈나라로 빠져버렸다. 목정침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그의 코끝에 그녀의 향기가 가득 했다.바깥에서 만나는 다른 여자들의 몸에서는 서로 다른 향수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의 맘에 드는 향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만이 제일 독특했다…다음날 온연은 일찍 일어났다. 목정침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걸 확인한 그녀는 대담하게 침대 맡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옷을 벗을 때 그녀는 그래도 침대를 등지는 게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녀가 옷을 가지러 등을 돌렸을 때 갑자기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겠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어젯밤 잘 잔 것 같았다. 적어도 그녀보다는 잘 잤겠지?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곧 시선을 피했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옷을 마저 입었다.
비상 디자인그룹온연은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임립이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눈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 일, 알고 있었어요?"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핸드폰을 살짝 흘겨보았다. 순간 그녀는 얼어버렸다. 핸드폰에는 '목씨 집안의 주인 목정침, 3년 전 자신이 거둬키운 고아 온연과 비밀결혼을 하다!' 라는 제목의 뉴스가 띄워져 있었다. 뉴스는 오직 그녀와 목정침이 결혼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다. 포토샵으로 합성한 그들의 결혼사진도 첨부되었다. 그녀는 목정침과 구청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해서 그녀는 관여한 적이 없었다. 모두 목정침이 혼자 알아서 진행한 것이니 당연히 합성한 사진을 쓸 수밖에 없었겠지. 여러 가지 정황을 따져보니 아무래도 목정침이 일부러 흘린 기사인 것 같았다.온연은 갑자기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씨 집안 안주인으로 삼 년 동안 방치되어 있으면서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었는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이렇게 공개해버린 건지. 그녀는 줄곧…줄곧 자신이 그에게는 내세우기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목정침의 생각을 읽기 어렵긴 했지만…"뭐예요? 설마 몰랐어요?" 그녀의 반응을 본 임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된 거 아닌가요? 임대표님, 한가하신가 봐요? 대표님도 디자인과 나오셨던데, 저희랑 같이 야근하실래요?" 온연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임립은 바로 온몸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아니 아니….할 거 하세요. 전 다른 일이 있어서. 회의 때 내가 한말 잊지 말아요. 모범 시안 보내줬으니까 이번에는 잘못되면 안 돼요. 정침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그리세요."온연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목정침이라면 분명히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대체 뭐 때문에?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리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탕비실로 들어갔다. "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진몽요가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연아, 고마워
진함의 말이 온연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지만 신경 쓰기가 귀찮았던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진함이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있는 걸 본 온연은 마음이 복잡했다. 계속 일 할 정신이 나지 않았다.한바탕의 사건들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하고 있는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었다. 저녁이 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새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이디어는커녕 머릿속에는 목정침이 결혼 사실을 터뜨렸다는 사실 만이 가득 찼다. 지금 회사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옛날 그 경멸과 우스움이 담긴 눈빛들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적어도 다신 그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목정침이 어떤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좋아했더라? 결국 디자인 시안은 그의 눈에 들어야 하는 건데, 그럼 그의 취향대로 하면 되지!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도 그녀는 그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목가로 돌아오자 목정침은 벌써 자고 있었다.온연은 샤워를 끝내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복잡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를 그녀의 뒤척임에 목정침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할 말 있으면 해."그녀의 몸이 얼어버렸다. 그녀의 숨 마저도 같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비록 화가 난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2초 뒤 그녀가 정신을 차렸는지 기회를 잡아 그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에 완벽한 웨딩드레스는 어떤 건가요?'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그가 입을 열었다. "소녀의 풋풋함,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수줍음, 자신을 한 남자에게 바친다는 용기, 미래에 대한 동경, 이런 것들. 사람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한 벌의 옷, 한 벌의 웨딩드레스도 말을 할 수 있지."온연은
이리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말했다.“별 다른 문제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이리가 회사로 돌아오자 디자인부 사원들이 그녀를 둘러싸듯 모였다.“어떻게 됐어요? 통과됐어요?”이리는 아무 말도 없이 곧장 화장실로 향했고, 임립을 마주친 후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통과됐어요. 임대표님…”임립은 조금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바로 대꾸하였다.“좋아, 그럼 회사 깨끗이 청소하고 일찍이 휴가 시작하자. 퇴근 시간 기다릴 필요도 없겠어.”그 소식이 들려오자 온 디자인부 사원들이 기뻐하며 펄쩍 뛰었다. 오직 온연만이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을 뿐 이였다. 그녀는 묵묵히 물건들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고, 거울을 바라보며 창백한 입술에 립스틱을 덧발랐다. 목정침이 속상해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그 순간, 한 화장실 칸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연이 목정침에게 결혼을 발표하라며 몰아붙인 걸로 보이지? 애초에 아무런 교제도 없던데다가, 온연이 원고를 전달했을 때는 부결되기까지 했잖아? 난 원고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해, 온연이 일을 망친거지. 오죽하면 이번에는 이주임이 직접 나서서 원고를 전달했겠어?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목정침의 침대에 몸을 들인건지…”또 다른 이가 이에 대꾸했다.“그러니까말야. 그 둘 관계 알고서 깜짝 놀랐다니까? 검색해봤는데, 이상할 것도 없더라. 입양된지가 수년째라며, 같은 지붕 아래 살던 온연이 제일 먼저 이득을 가로채낸거지. 수를 써서 협박하면 목정침 같이 착한 사람은 꼼짝없이 잡히는 수밖에 없잖아? 그 애 심가 셋째랑도 잤었다며, 근데 목정침은 왜 온연한테 잘해주는 거야?”“내 말이, 그런 애가 목정침이랑 결혼이라니… 애초에, 그런 애가 짝이 있다니!”“지금 잘나가는 것도 금방 망하게될거야. 두고 보자고, 저런 애는 좋은 결과가 있을 수가 없어. 야근까지 해서 피곤해 미치겠네. 휴가 아니였으면 진작 불러다가 손 좀 봐줬을거야. 평소에는 말도 없고 사람들이랑 따로놀더만, 아주 꽃뱀이였
목정침은 얼떨떨한 채로 얕게 한모금을 들이켰다. 그윽한 단내가 입안에 퍼지며 그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어릴 때부터 단 것을 싫어하던 그는 괴로울 뿐 이였다.온연은 번뜩,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마시던 밀크티를 목정침에게 준거야? 게다가 이걸 정말 마시기까지 하다니?!빨대위에 자신이 남겼던 립스틱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밀크티를 품에 안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창밖을 내다보았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남은 밀크티를 마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긴가민가했다.목정침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밀크티를 품에 꼭 안은 모습이 우스웠다. 그저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아깝나?곧 저택에 다다를 무렵, 목정침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화면의 착신표시를 보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온연이 나긋한 말투로 말했다.“전화 받아요. 저는 신경쓰지 마요.”목정침은 온연을 힐끗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온연이 함께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나 전화 내용을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온연은 성난 듯 입을 꾹 다문 채 저택에 다다랐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습관적으로 뒷문 쪽으로 향했고 목정침은 걸음을 멈추더니 다소 냉소적인 말투로 물었다.“대문이 익숙하지 않은 가봐?”온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걸음을 돌려 대문으로 향했고, 시선을 내린 채 대문에 들어서자 경호원이 공손한 태도로 온연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을 붙였다.“사모님.”온연은 고개를 더욱 숙이며 유씨 아주머니를 찾아 주방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오직 유씨 아주머니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편안함을 느꼈다. 반찬을 고르던 유씨 아주머니는 온연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아주 일찍 왔네?”온연은 밀크티를 내려놓고는 익숙한 듯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일을 거들려 들었다.“회사 휴가거든요. 오는 길에 목정침을 만나서 같이 왔죠.”“그럼 도련님이랑 같
”안심하셔도 돼요. 사모님 깨어나시면 식사 챙겨 드릴께요.”유씨 아주머니는 신발을 꺼내어 진열해주며 목정침에게 말했다. 그는 묵묵히 저택을 나섰고, 그의 차가 저택을 완전히 나설 무렵 온연이 유유히 깨어났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듯 하더니 이내 씁쓸한 듯 말했다.“아주머니? 왜 저 안 깨우셨어요?”“도련님이 며칠 많이 피곤 했을 거라고 깨우지 말라 하시더라. 저녁 데워서 갖다 줄게. 얼마나 피곤했으면 밥도 먹지 않고 잠들었겠니. 참, 도련님은 방금 외출하셨어.”웃으며 말을 건네는 유씨 아주머니에 온연은 어리둥절 한 채 식탁으로 몸을 옮겼다. 식탁 위에는 핸드폰이 놓여있었다. 목정침이 두고 간 듯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에 결국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강연연이였다. “도련님 대신해서 받지 그래?”온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됐어요. 이따가 휴대폰 안 챙긴 걸 눈치채면 돌아와서 가져가겠죠.”유씨 아주머니는 온연을 못났다는 듯 한번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잡아들고는 단번에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실례지만 누구신가요?”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까칠한 강연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은 누군데요? 오빠 핸드폰이 왜 그쪽한테 있어요?”온연은 놀란 듯 유씨 아주머니에게 끊으라 손짓했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뿐 이였다.“저는 도련님 저택 가정부입니다. 우리 도련님은 지금 부인이랑 목욕하고 계시고요. 무슨 일 있으시면 도련님 나오신 후에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온연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아주머니의 그 말에는 너무 많은 뜻을 담고 있었다. 온연은 한동안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연연도 마찬가지인 듯했으나 곧 다시 쏘아붙였다.“당신 지금 뭐라고, 같이 목욕을 해? 그럴 리가 없잖아, 오빠가 방금 분명히 지금 나간다고 했어!”유씨 아주머니는 퉁명스레 대꾸했다.“믿거나 말거나,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아주머니는 전화를
”주소 불러줘.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전지는 바로 대꾸했다. 반시간쯤 지났을까, 전지의 차가 저택 문 앞에 다다랐다. 온연은 몸에 두른 외투로 다시 한번 몸을 감싸 안으며 차에 올랐다. 늦은 밤의 기온이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 듯했다. 입구에서 밤을 새우던 경호원은 들어선 차가 목정침의 차가 아님을 파악하고는 조심스레 번호판을 외웠다. 온언은 너무 멀리 나서기 싫었던 탓에 전지에게 길목에 차를 세우게 하였다.“우리 차 안에서 얘기 나누자. 오늘은 정말 너무 늦은 것 같아.” 마주본 전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내가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일단 내가 묵는 호텔로 가자. 얘기 끝나면 차 불러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혹시나 그때 가서 계획이 틀어질까봐… 자세한 거 하나하나 상의해보고 싶어. 몽요의 가장 친한 친구는 너 하나뿐이라 너 의외에 다른 누가 날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번 딱 한 번만 부탁할게.”온연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전지를 따라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해 방에 들어서자 미리 주문해 두었던 배달음식이 뒤따랐다.“뭐 좀 먹을래?’“난 괜찮아. 근데 너 이제서야 저녁 먹는거야?”“몽요를 도와서 보석 재료를 훔친 사람 행방을 찾고 있거든. 그래서 요 며칠 잠을 설쳤어.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네……”늦은 식사를 하며 대꾸하던 전지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부주의로 국물을 쏟았고 그의 옷이 물들었다. 전지의 찌푸려진 눈살을 보니 기분이 최악에 다다른 듯했다.“아…… 미안해. 얼른 씻고올게. 조금만 기다려줘.”“괜찮아, 괜찮아. 씻어내고 와. 기다릴게.”온연이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대답하자 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가만히 그를 기다리는데, 반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화장실의 벽과 문에 습기가 차오르자 안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였다. 이를 발견한 온연은 당황스러웠고 밖에서 그를 기다릴 심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가기 위해서는 욕실을 지나쳐가야만 했기에 잠시
욕실은 방음이라도 되는지, 전지는 소리를 듣지못한 채 계속해서 샤워를 이어갔다. 곧이어 진몽요의 방카드를 빼앗은 경호원들에 의해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며 마주한 목정침의 눈은 설원과도 같았다. 잘못한 일은 없었으나 그의 눈빛에 겁먹은 온연은 뒷걸음질 칠수밖에 없었다. 막 경호원의 견제에서 벗어난 진몽요가 온연의 앞에 서 그를 막아섰다.“목정침, 나도 당신처럼 급하니까 할 말 있으면 좋게 말하고 끝내요. 그 전에, 이 상황에 대해서는 전지가 나오면 차근차근 들어보는 걸로 하죠? 연이는 이런 행동할 사람이 아니고, 전지 또한 그럴 사람 아니에요!”“…… 무슨 일이야?”전지가 마침내 바깥의 상황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문 밖으로 나왔고, 방 안에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에 당황한듯 말을 했다. 목정침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식었고, 진몽요는 퉁명스레 대꾸했다.“나한테 묻는 거야? 누구한테 묻는 건데 지금?”전지는 급히 설명한다.“내가, 일이 있어서… 온연을 찾았어. 호텔에 막 도착해 저녁을 먹다가 옷에 음식을 쏟아버려서, 그래서 샤워를……”“적당히 하지? 핑계가 지나치네.”전지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목정침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입이 아픈 듯 전지는 진몽요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너를 속이고 있다고?”진몽요는 그를 한번, 온연을 한번 쳐다보고서는 몇 초간을 망설였다. 이내 무슨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전지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됐어, 그만하자. 네 뜻대로 생각해.”목정침은 온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무언가 손짓을 하더니 그대로 돌아 나갔다. 곧이어 두명의 경호원이 온연에게 다가와 그녀를 밖으로 이끌었다. 굳이 그녀를 거칠게 끌어내지 않았다. 마치 목정침은 원래도 이렇게나 온연을 믿지 않아왔다는 듯, 그녀가 원래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여자인 것 마냥. 돌아가는 길, 목정침의 얼굴은 무섭도록 어두웠다. 온연은 눈을 내리깔고는 침묵 한 채였다. 굳이 이를 해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