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해는 복잡한 얼굴을 하더니 대답했다.“그래, 그 사고가 나기 전에 너희 아버지가 날 찾아 왔었어. 그리고 그 얘기를 했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엄청 놀랐었어. 분명 너희 아버지랑 어머니는 관계가 무척 좋았거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다만 만약에 너희 형제가 대립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가 손을 써 주기를 바랬지. 지금 와서 생각 해보니, 자기가 그때까지 못 살 걸 알았나 봐. 사고도 예상했겠지. 물론 이건 너희 목가 일이니까. 난 잘 모르긴 해.”목정침은 눈을 내리깔고는 자신의 감정을 완벽히 숨겨냈다. 그저 꽉 쥐고 있던 두 주먹만이 그의 감정을 표현해냈다.“그 사람을 어머니와 같이 논할 수는 없어요. 삼촌께서는 임종 유언에 따라서 일 처리 해주시면 돼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죽을 짓을 사서 한 거지, 저는 죽일 마음 없었어요.”모창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잘게 떨었다.“그… 에이… 그래도 형제잖니. 이렇게나 오랜 시간동안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았으니, 앞으로도 조용히 지내면 되지. 네가 열 여덟 살 때부터 목가네의 모든 것을 짊어진 건 사실이야. 네 동생과는 관련 없어. 돈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주고 안주고는 네 자유지…”그의 말이 끝날 무렵, 목정침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모창해는 그에게 손짓을 하며 전화를 받으라는 눈치를 주었다.전화는 임집사에게서 온 것이였다. 보통 임집사는 중요한 일이 아니면 자신을 찾지 않았기에, 그의 미간은 벌써부터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네, 여보세요.”“도련님, 부인께서 병원에 계십니다.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임집사의 말투는 매우 가라 앉아있었고, 그것이 온연의 일이라는 것을 들은 순간 벌떡 일어나 나갈 수밖에 없었다.“삼촌, 저 먼저 가볼게요. 계산은 다 했어요, 급한 일이라서 먼저 가볼게요.”급히 도착한 병원의 깊고 긴 복도는 그를 어지럽게 하였다. 머리 위 흰 조명들은 저번에 그녀가 입원했을 때를 떠오르게 하였다. 급한 걸음이
병실 안의 밤은 고요하고도 길었다. 목정침은 단 한순간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다음날 아침, 온연은 느지막이 눈을 떴고, 독한 약 떄문에 안색은 하얬으며, 식은땀이 스며 나왔다. 목정침을 보는 순간에도 어리둥절한 듯 보였다.“아기는…”“괜찮아, 우리 아이 갖지 말자. 네가 괜찮으면 됐어.”온연은 천천히 한숨을 뱉어냈다. 어제 저녁 사고가 났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나 갑자기 앗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왜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괜찮았잖아요… 멋대로 먹지도 않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은 철저히 하지 않았는데…”넋을 잃고 혼잣말을 하는 온연의 눈은 혼이 없는 인형과도 같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네 몸이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상태였어. 내 부주의이기도 해. 네가 처음 유산했을 때…”여기까지 말이 나왔으나, 그는 온연의 앞에서 강연연의 이름을 꺼내지 않으려 하였다.이내 온연의 고개가 푹 숙여지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강연연, 내가 너한테 뭘 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는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할 거야, 그치? 나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온연의 말이 맞았다. 온연은 처음부터 강연연에게 아무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온연의 잘못은 없었다.목정침은 일어나 그녀에게 따듯한 물을 한 잔 건네 주었다.“물 좀 마셔.”그러나 온연은 움직임이 없었다.“아이는 여자아이였나요? 아이들 보셨어요? 누구를 닮았나요?”여기까지 말하자 온연은 무언가 의문이 들었다.“DNA검사…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신 아이인 건 확인 해야죠.”밤새 잠을 못 잔 탓에 눈가가 시큰거려왔다.“응, 아이 봤어. 너를 닮았어… 아주 예뻐. 그런 말은 하지 마. 무슨 검사를 해, 아이는 내 아이가 맞아…”온연은 돌연 웃기 시작했다.“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왜 니들은 나를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이야? 당신한테는 빚진 게 있다고 쳐, 그런데 강
강균성은 애초부터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조금의 희망도 비춰지지 않았다.“그래… 온연에게 아직 돈이 있으니까. 그 집이랑 돈들 합치면 10억 정도 가치는 될 거야. 가, 어서 가봐!”강연연은 조사를 했고, 온연이 어젯밤 입원했다는 것을 알았다. 강연연은 화가 치밀어 병원으로 곧장 쫓아갔으나 병원의 경호원들에게 가로 막혀 버렸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부잣집 자재의 이미지는 버린 상태였다.“들어가게 둬! 그 천한 것 찾아야한다고!”병실에 있던 유씨 아주머니에게 바깥의 소란이 나지막이 들려왔고, 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고는 표정이 일순간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뭐 하러 온 거죠?”강연연의 꼴을 보아하니 정말 사람을 찾아온 것은 절대 아니었고, 마치 사람을 죽이러 온 듯하였다. 유씨 아주머니가 그런 그녀를 들여보낼 리는 절대 없었다.“부인은 지금 누굴 만날 상황이 아니에요. 돌아가요. 계속 소란 피우면 가만 안 있어요.”강연연은 일순간 손을 들어 유씨 아주머니의 얼굴을 내리쳤고, 그녀의 얼굴에는 곧 붉은 자국이 생겼다. 강연연은 미친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저리 꺼져! 목가네 개 주제에!”유씨 아주머니는 얼굴을 감싸 가리고는 분노에 몸을 떨며 말했다.“이 여자 멀리 내쫓고 우리 도련님께 전화 걸어서 나 줘요.”두 경호원은 그녀를 끌어냈고, 병원 건물 밖으로 아예 내보내 버렸다.유씨 아주머니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목정침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도련님, 강연연이 방금 병원에 와서 소란을 피웠어요. 제 뺨까지 때리는데, 완전 미친 사람 같았어요.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데, 부인이 어떻게 편히 쉬겠어요? 지금은 병원 밖으로 내보내긴 했는데 언제 또 올지 몰라요.”목정침은 회의 중 이였고, 부하 직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눈 밑에는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알겠어요. 제가 처리할게요. 안심하시고 자리 잘 지켜주세요.”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가 평범한 전화 통화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회
그녀의 말을 들은 목정침의 눈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움켜 쥐고는 낮게 내리 깐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도전한다는 뜻이지.”강연연은 잡힌 턱이 아팠고, 놀라기도 했다. 눈물이 순식간에 흘렀고,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다.“뭘 하고 싶은 건데…?”목정침은 그녀를 밀쳐냈다.“난 여자한테 손 대는 습관은 없어, 그런데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또 모르지. 그래도 내가 손 댈 일은 없어. 경호원들이 대신할 테니까.”강연연은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른 하이힐이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애를 쓰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절뚝이며 걸었으나,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경호원들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당황한 강연연은 아무 소리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서야 알았다. 목정침의 온화한 모습은 단지 표면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가 웃을 때면 세상이 봄인 듯하였으나, 그가 화가 났을 때는 마치 폭설이 내리는 듯하였다.“다시는 온연 안 찾아 갈게, 그냥 보내줘…”강연연은 스스로 타협하였다. 자신의 한은 눈 안 깊숙이 숨겼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를 수락하지 않는 한,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목정침은 경호원들에게 손짓을 하였고, 경호원들은 길을 비켜주었다. “한 번만 믿어줄게. 내 믿음 저버릴 생각 마.”병원, 눈을 뜬 온연은 첫마디로 누군가 왔냐는 질문을 하였다. 온연은 잠결에 어렴풋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듯하였으나 너무 졸렸던 탓에 잠에서 깨지는 못하였었다.유씨 아주머니는 원통하다는 듯 말했다.“강연연이었어. 내가 못 들어오게 경호원을 불러서 내쫓았어. 안심해, 내가 도련님께 얘기했어. 다시는 못 오게 하실거래.”온연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몸을 일으켜 앉자 아랫배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한참이나 숨을 들이켜고는 간신히 말을 꺼냈다.“아주머니… 너무 아픈데 의사 찾아서 진통제 좀 놓아 달라 해주실래요?”유씨 아주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고, 아이를 갖지 않는 것까지 같이 하자고 한다. 진몽요는 친구끼리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같이 하고 싶었다.온연은 냉랭했던 마음이 녹아 내리는 듯했다.“몽요… 고마워. 난 괜찮아. 조금 힘들 뿐이야. 네가 와 준 것만으로도 좋아. 너랑 얘기하면 기분도 좋아질 거야. 몽요, 나 이혼하고 싶어. 그런데 목정침이 안 해준다 하면, 어떻게 내가 여기서 떠날 수 있을까?”온연은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녀의 마음으로는 이 일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에 더 이상 목가의 자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이는 목가와 같은 커다란 기업에 상속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온연은 앞으로 있을 머리 아픈 일들을 겪느니 이 곳을 떠나는 것이 백배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온연은 목가에 평생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목가는 그녀에게 그저 화려한 속박일 뿐이었다.진몽요는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빠지고는 대답했다.“먼저 목정침이랑 얘기 잘 해둬. 얘기가 잘 안 통하면 법적 절차 밟아서 강제로 이혼해. 이혼하면, 넌 뭐 하고 싶어?”온연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아무것도. 재산도 필요 없어. 난 어쨌든 입양된 사람이니까, 난 이미 목가에 많은 빚을 졌어. 목가네 몫은 한 푼도 가져 갈 생각 없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그 사람한테는 별 소용도 없을 것 같아. 됐어, 일단 얘기 먼저 나눠야겠어.”진몽요는 온연의 생각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왜 소용이 없어? 바람을 피웠잖아, 강연연이랑. 이건 악질이라고. 네가 아이를 못 가지게 된 것도 강연연 때문이잖아. 난 너희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는 게 아니라 정말 네가 피곤해 보여서 말 해주는 거야. 결혼 생활 중 외도를 했다는 증거만 있어도 법적 이혼은 수월할 거야.”온연은 그녀의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난 사법 절차가 제일 머리 아파. 네 말대로 그 사람의 외도 증거를 찾는 것도 싫고. 그냥 이혼만 하고 싶
온연은 긴장되는 듯 옷자락을 움켜쥐었으나,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였다.“아뇨, 전 이혼 해야겠어요. 제 뜻은 바뀔 일 없어요. 이번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가 나오기만을 바라보고 살았어요. 모든 게 좋았는데, 운명이 저한테 떠나라 말하고 있어요. 저를 사랑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런데 저는 당신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저는 당신 앞이라면 평생을 긴장하며 영원히 죄의식 안에서 살아야 할 거에요. 사랑조차 없는데, 어떻게 계속 같이 살 수 있겠어요? 힘들지 않아요?”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넥타이를 느슨히 풀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부수고 싶었으나, 온연이 놀랄까 두려웠다.“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이혼은 동의할 수 없어. 알아서 잘 해봐! 난 나가봐야 해. 무슨 일 있으면 아주머니 찾아 얘기해.”말을 마치고 그는 곧장 외투를 챙겨 저택을 벗어났다. 차에 올라타니 진락이 물어왔다.“도련님, 어디로 모실까요?”그는 아무 약속도 없었다. 오늘 하루는 비워 두고 그녀 곁에 있으려 한 것인데, 자신을 찾아와 이혼을 제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방금 저택을 벗어나는 것이 마치 도망치는 것과 같다고 느껴졌다. 당연히 그는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몰랐고, 잠시 침묵하고는 말했다.“회사로 가.”대화는 중단되었다. 온연의 예상에서 빗난 것 이라고는 그가 화내지 않았다는 것과 무어라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목정침은 그녀가 어떤 짓을 하던지 이혼만은 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온연은 순식간에 피곤해 졌고, 이 커다란 저택을 보고 있자니 아득해지기까지 했다.수많은 생각을 거치고, 온연은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번과 같이 탕위엔을 데리고, 모든 살림살이들을 챙겼다.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부부는 2년 이상 별거를 하게 된다면, 단지 감정 문제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했다. 다른 길이 없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여행 가방과 탕위엔을 데리고 현관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목가의 경호원, 유씨 아주머니와
경씨 저택. 진몽요는 하람과 즐겁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즐거워 보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모녀 사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경소경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서 하람의 개를 만지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탄탄한 몸에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개를 안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눈길을 끌었다. 진몽요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쳐다볼 정도였다. 갑자기 하람이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진몽요에게 말했다. "몽요야, 이번이 두 번째지? 우리 집에 온 거 말이야. 오늘 밤에는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때? 밤도 늦었고, 이렇게 둘이서 얘기나 하자. 소경이도 집에 묵은지 오래고, 오늘은 나랑 같이 있자." 진몽요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님, 저희 엄마가 뭐라 하실거에요. 워낙 엄격한 분이시라 외박은 절대 안 되거든요. 그게 남자친구 집이라면 더더욱 안되고요." 하람이 실망한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집이 엄한 건 좋은 일이지. 이를 어쩐다. 난 네가 오늘 꼭 자고 갔으면 하는데. 이렇게 하자. 네 엄마 전화번호 좀 알려줘. 내가 전화해서 말해볼게. 내 잘못이야. 벌써 만나 뵀어야 하는데. 한집 식구 될 사이끼리, 내가 신경을 못 썼어." 강령한테 전화를 한다고? 진몽요는 긴장감에 손이 땀범벅이 되었다. 자기가 지금 경씨 저택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여기로 온다고 발 벗고 나설 것이다. 경소경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강령이 알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어머님, 됐어요. 저희 엄마가 일찍 주무셔서… 아마 지금쯤 주무시고 계실거에요. 벌써 열두 시가 넘었는걸요. 피부관리 하신다고 일찍 주무시거든요. 잘때는 핸드폰도 꺼놔서 아마 못 받으실 거에요." 마음이 너무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쯤 강령은 아직도 포커나 치고 있을것이다. 진몽요의 말을 듣자마자 하람이 말했다. "그럼 내가 내일 너희 엄마 찾아뵐게. 그 김에 오늘 일에 대
그녀는 그가 욕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가운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배개에서는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상쾌한 냄새가 났다. 갑자기 그와 처음 만난 그날이 떠올랐다. 처음 본 그의 얼굴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땐 전지랑 만나고 있어서 그의 얼굴에 설레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잠겨 그녀는 잠이 들었다. 편안한 침대, 높낮이가 딱 맞는 배게, 부드러운 이불.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잠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아늑한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불편함에 잠에서 깼다. 저녁에 하람과 얘기하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는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화장실로 걸어가려던 그 순간 그녀는 뭘 밟았는지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경소경의 신음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배가 경소경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그녀를 확 밀어버렸다. 그러다가 그만 침대맡에 몸을 박고 말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에 부딪혀서 그런지 몸이 너무 아팠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경소경에게 투정을 부렸다. "뭐야? 왜 침대 옆에서 자고 그래? 아… 아파죽겠네…" 방안의 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경소경은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 어디서 자라는 건데? 너 대체 몸무게가 얼마야? 뇌진탕 온줄 알았네. " 그녀가 바닥에 앉아 허리를 펴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 그냥 나도 모르게 그런 건데… 어디 부딪친 거야?" 그녀는 화장실이 너무 급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허리를 짚으며 화장실로 돌진했다. 볼일을 다 보고 나온 그녀는 침대맡에 꽁해 있는 경소경을 보았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당한 듯 억울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