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씨 저택. 진몽요는 하람과 즐겁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찌나 즐거워 보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모녀 사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경소경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서 하람의 개를 만지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탄탄한 몸에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개를 안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눈길을 끌었다. 진몽요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쳐다볼 정도였다. 갑자기 하람이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진몽요에게 말했다. "몽요야, 이번이 두 번째지? 우리 집에 온 거 말이야. 오늘 밤에는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때? 밤도 늦었고, 이렇게 둘이서 얘기나 하자. 소경이도 집에 묵은지 오래고, 오늘은 나랑 같이 있자." 진몽요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님, 저희 엄마가 뭐라 하실거에요. 워낙 엄격한 분이시라 외박은 절대 안 되거든요. 그게 남자친구 집이라면 더더욱 안되고요." 하람이 실망한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집이 엄한 건 좋은 일이지. 이를 어쩐다. 난 네가 오늘 꼭 자고 갔으면 하는데. 이렇게 하자. 네 엄마 전화번호 좀 알려줘. 내가 전화해서 말해볼게. 내 잘못이야. 벌써 만나 뵀어야 하는데. 한집 식구 될 사이끼리, 내가 신경을 못 썼어." 강령한테 전화를 한다고? 진몽요는 긴장감에 손이 땀범벅이 되었다. 자기가 지금 경씨 저택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여기로 온다고 발 벗고 나설 것이다. 경소경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강령이 알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어머님, 됐어요. 저희 엄마가 일찍 주무셔서… 아마 지금쯤 주무시고 계실거에요. 벌써 열두 시가 넘었는걸요. 피부관리 하신다고 일찍 주무시거든요. 잘때는 핸드폰도 꺼놔서 아마 못 받으실 거에요." 마음이 너무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쯤 강령은 아직도 포커나 치고 있을것이다. 진몽요의 말을 듣자마자 하람이 말했다. "그럼 내가 내일 너희 엄마 찾아뵐게. 그 김에 오늘 일에 대
그녀는 그가 욕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가운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배개에서는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상쾌한 냄새가 났다. 갑자기 그와 처음 만난 그날이 떠올랐다. 처음 본 그의 얼굴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땐 전지랑 만나고 있어서 그의 얼굴에 설레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잠겨 그녀는 잠이 들었다. 편안한 침대, 높낮이가 딱 맞는 배게, 부드러운 이불.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잠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아늑한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불편함에 잠에서 깼다. 저녁에 하람과 얘기하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는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화장실로 걸어가려던 그 순간 그녀는 뭘 밟았는지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경소경의 신음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배가 경소경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그녀를 확 밀어버렸다. 그러다가 그만 침대맡에 몸을 박고 말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에 부딪혀서 그런지 몸이 너무 아팠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경소경에게 투정을 부렸다. "뭐야? 왜 침대 옆에서 자고 그래? 아… 아파죽겠네…" 방안의 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경소경은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 어디서 자라는 건데? 너 대체 몸무게가 얼마야? 뇌진탕 온줄 알았네. " 그녀가 바닥에 앉아 허리를 펴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 그냥 나도 모르게 그런 건데… 어디 부딪친 거야?" 그녀는 화장실이 너무 급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허리를 짚으며 화장실로 돌진했다. 볼일을 다 보고 나온 그녀는 침대맡에 꽁해 있는 경소경을 보았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당한 듯 억울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침대
그녀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여러 번 떨렸다. 이 모든 게 우연이길 바랄 뿐이었다… 전화를 끝낸 하람이 계단에서 머뭇대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리로 와서 밥 먹자, 몽요야. 방금 너희 엄마랑 통화했어. 우리 소경이랑 만난다고 말씀드렸더니 엄청나게 좋아하시던데? 오늘 오후에 같이 차 한잔하기로 했어."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머님, 저희 엄마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진몽요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말이지… 알려고 노력만 하면 알 수 있는 거지.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왜, 무슨 일 있어? 기분 나빠 보이는데. 설마… 너 몰래 너희 엄마랑 연락해서 그런 거니? 난 그냥 좋은 일이라, 말씀드려도 상관없겠다 싶었지." 하람이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뭐 어떡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님, 기분 나쁜 게 아니라요.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빨리 아침 먹어요. 저 곧 출근해야 할 시간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하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경소경의 여자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더라도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침을 절반이나 먹었을까, 경소경은 그때서야 멀쩡한 정신으로 위층에서 내려왔다.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왼손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진몽요를 무척이나 놀라게 했다. "당신 왼손잡이였어요? 근데 평소에는 오른손으로 밥 먹던데…" 경소경이 꽁하게 대답했다. "어젯밤에 돼지한테 밟혀서 오른손을 못 들게 됐거든요." 그의 대답이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녀의 얼굴이 데친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살짝 밟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심각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 하람의 자기
그가 보는 자료는 진가와 관련된 자료였다. 보석 원재료가 도난당해 결국 파산되었다는 그런 자료. 이 모든 일이 전지가 꾸민 일이라는 걸 알게된 진몽요가 어떤 반응을 지을지 그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의 전지는 진가를 밟으며 일어선 것이다. 전지의 회사도 매입한 건물도 보석 원재료를 판돈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것은 목정침과 진씨 집안이다. 하지만 목정침이 손해를 본 것은 돈뿐이지 진씨 집안은 아예 풍비박산이 났다.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진몽요가 화를 내며 성큼성큼 들어왔다. "당신네 어머니가 오늘 우리 엄마랑 만나는 거 알고 있어? 두 사람 벌써 만나서 쇼핑 중이래. 어머님이 나한테 문자도 보내셨어." 경소경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노트북을 덮었다. "뭘 그렇게 조급해 해. 만나고 싶으시면 만나시라 그래." 진몽요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우린 연극이잖아. 우리 엄마까지 알게 할 생각은 없었단 말이야. 당신은 하나도 걱정 안되나 봐? 나중에 일 커지면 어떻게 해결할 건데? 미리 말하는데, 우리 엄마, 당신이랑 사귀는 거 알게 되면 아마 절대로 못 헤어지게 할 거야. 우리 엄마는 다시 옛날처럼 부유하게 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거든. 돈 많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결혼시키고 싶어 해. 재혼이든 뭐든 신경도 안 써. 듣기 싫은 말로 하면 흡혈귀 같은 존재라고, 알아듣겠어? 난 당신이랑 거래를 하고 싶었던 거지, 이렇게 바닥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녀에게는 이제 아무런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았다. 절망감과 무력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복잡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심정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걸 그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그렇게 심각한 일 아니야. 우리 집에는 아들이 나 하나라 아마 너네 집에 얼마를 쓰던 신경 안 쓸거야. 자존심 같은 건 아무 상관없어.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 서로 조심하면 문제 될 일 없어.
진몽요는 백수완 레스토랑의 음식이 그리웠다. 하지만 온연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던 그녀는 온연의 제안을 거절했다. "너 밖에 나가도 괜찮은 거야? 그냥 다음에 가자…" 온연은 집에서만 생활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괜찮아. 지금 가자. 근데 백수완 레스토랑에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경소경한테 전화 한번 해봐야겠어. 걱정 마. 네 얘긴 안 꺼낼게." 경소경과 레스토랑의 상태를 확인한 후 그들은 목씨 저택을 나섰다. 집을 나설 때 보디가드와 유씨 아주머니의 '관심'어린 눈길이 느껴졌다. 그녀가 캐리어를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눈길을 거두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그녀가 진짜로 도망가고 싶다면 캐리어 따위 아무 상관없이 그냥 사라지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목정침은 분명히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그녀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도착한 진몽요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몇 개를 시켰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온연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더 많이 시켜도 되는데. 목정침이 사는 거라고 경소경이 그랬거든." 진몽요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비싼 음식 두 가지를 더 시켰다. "그럼 사양은 안 할게. 이젠 네 덕분에 비싼 밥도 먹고. 연아, 앞으로 나 많이 챙겨줘." 온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목씨 집안 안주인이라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거지. 나중에 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면 아마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즐기는 존재니 참 아이러니하다. 갑자기 진몽요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한통 왔다. 문자를 확인한 진몽요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연아, 전지가 여기 있다는데. 잠깐 얼굴 좀 보자고." 온연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귀빈실에 있는 것 같았다. "너… 가봐. 헤어진 사
경소경이 보낸 문자를 보던 온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난 모르는 일이야… 평소엔 여기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어떡하지?" 진몽요의 손가락이 빠르게 화면에서 움직였다. 그녀의 얼굴색이 점점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떡해. 이제 망했어. 여기 자리 없다고 우리랑 같이 밥 먹겠다는데. 어떡해? 벌써 상견례 하는 건가? 앞으로 그만하겠다고 했는데, 또 해줘야 하나 봐. 이제 곧 도착한다는데, 나 어떡해? 그냥 도망칠까?" 온연은 직원에게 테이블을 치워달라 부탁했다. "긴장하지 마. 내가 있잖아. 어쩔 수 없잖아. 그 연극 계속하는 수밖에. 근데… 전지도 여기 있는데. 괜찮겠어?" 온연의 말에 진몽요는 멍해졌다. "아마… 괜찮겠지…?"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사람들한테 전지의 여자친구라고 말했는데…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온연은 그렇게까지 긴장되지 않았다. 진몽요의 일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목정침과 경소경이 하람, 강령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오는 걸 보자 온연은 당황했다. 목정침과 냉전 한 거 며칠째인데,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남의 상견례 자리에 왜 끼는 거지? "몽요야~ 엄마 여깄어!"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강령은 오랜만이었다. 진몽요를 대하는 태도까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진몽요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사실을 말해버리다면 아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이다. 목정침은 손을 양복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선이 온연의 머리에 닿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말도 없이 뛰쳐나온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더운 날에 유산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경소경은 얌전한 모습이었다. 평소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웃는 모습마저 옆집의 모범생같이 느껴졌다. 얼굴에 착하다고 쓰여있는 것만 같았다.
온연이 억지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어머님은 모르시잖아요. 저 아이 못 낳아요. 유산을 두 번이나 해서 이제 못 낳는데요." 하람이 경소경을 째려보았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못 할 말했잖아. 정침아, 연아, 미안하게 됐어. 괜찮을 거야. 너네 아직 젊잖아. 몸조리 잘하면 다 잘될 거야. 음식이 하나둘씩서빙 되고 나서야 분위기가 조금 괜찮아졌다. 방금 밥을 먹어서 그런지 온연과 진몽요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들은 서로 눈짓을 하더니 사이좋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진몽요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 정말 미치겠어. 우리 엄마 연기 너무 잘하지 않니? 집에서는 맨날 닥달하면서 남들 앞에서는 아껴주는 척. 정말 우습지도 않아." 온연이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체면이 중요하긴 하잖아. 화내지 말고. 기분 좋게 밥 먹으러 나왔는데 쓸데없는 일 신경 쓰지 마." "연아, 경소경네 엄마. 엄청 좋으신 분이야.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닐거야. 모르는 게 죄라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진몽요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 난 괜찮으니까 걱정 마.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야 내가. 이 정도 일에 무너지겠어? 됐어. 이제 다 털어버리고 밥이나 마저 먹으러 가자. 내가 널 몰라? 아직 덜먹었잖아. 가자." 진몽요는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래. 정신 차리자. 진몽요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끼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귀빈실에서 걸어 나오는 전지를 보자 진몽요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뭐라 반응 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그녀를 발견했다. 특별히 전지에게 알려주기 까지 했다. "여자친구 저기 있네! 그럼 우린 방해되니까 먼저 갈게." 전지는 진몽요를 향해 웃어 보였다. 손을 휘적이며 그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진몽요는 계속 그
목정침의 말이 온연을 경악하게 했다. "뭐라고요?" 그는 한참을 침묵하고 나서야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모삼촌이 한 말 기억해? 저번에 서재에서 목가경이랑 한말 너도 들었지? 그 숨겨진 애가 바로 전지야. 걔, 위험한 사람이야. 너도 진몽요도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대학교 때 있었던 일 아직 기억하려나? 식당 아주머니 아들이 나 찌르려고 했던 거. 그것도 전지가 시켜서 그런 거야.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진씨 집안에 보석 원재료 도난 사건. 그 사건 배후에도 전지가 있어. 불에 타 죽은 사람은 그냥 방패막이 일뿐이야. 진몽요랑 헤어지고 나서 바로 회사 차리고, 땅도 사고 그랬는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을것 같아? 그냥 이 정도만 알고 있어. 더 이상은 나도 말 못 해줘. 모든 일의 타깃은 나야. 근데 이거 하나는 알아둬. 전지는 목적 없이 움직이지 않아. 보통 사람처럼 대하면 안돼." 진실들이 온연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 뜻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몽요한테 접근했단 말이에요? 몽요를 디딤돌 삼아 삼 년 동안 이용한 것도 모자라서 진씨 집안을 망가뜨리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정말 너무 해요. 몽요가 전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단지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 모든 짓을 벌였단 말이에요? 목씨 집안의 숨겨진 아들이라면서요. 재산이 탐났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도 됐잖아요. 당당하게 신분을 밝히든지! 이런 졸렬한 방법보다는 훨씬 낫네요! 설마… 삼년전 심개랑 그 사진도…? 심개랑 호텔에서의 일도.. 그 사람이랑 상관있는 거죠? 전지 말고는 의심 가는 사람이 없어요. 처음에는 강연연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아요." 그녀가 생각한 일들 모두 크게 작게 목정침에게 영향을 준 일들이었다. 전지는 목정침을 상대하기 위해서 진몽요만 이용한 게 아니었다. 온연도 이용했다. 전지가 그랬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소름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