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진몽요는 진작부터 속으로 그를 욕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놀러나 온 주제에 세침을 떨다니. 그녀는 안 그래도 신입이었기에, 이런 차가운 분위기에서 어떻게 작업을 계속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았다.그녀는 곧 마담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눈 앞의 남자는 열정적이며 요염한 여성을 좋아할 것이라 추측하였고, 이어서 자신의 텅 빈 지갑과 강령이 흥청망청 써버린 150만원을 떠올리고는 이를 악 물어 보였다.“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죄송해요, 제가 신입이라 어떻게 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지 잘 몰라요. 아니면, 아가씨를 두 명정도 더 불러서 분위기 좀 띄워볼까요?”남자의 손이 그녀의 가슴팍에 있던 손을 움켜 잡았고, 진몽요는 이 사람이 색마인 것은 아닌지 마음 속으로 잔뜩 긴장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곧바로 그 손을 놓았다.“너 돈이 그렇게 궁해?”진몽요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남자가 경소경일 것 이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을 미행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단순히 재미 있자고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그녀는 조명을 켜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어두운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다.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은 후 진몽요가 입을 열었다.“그래, 나 돈 필요해. 굳이 다시 알려주지 마. 당신 날 미행한 거지, 만약 놀러 온 거라면 아는 사람 돈 벌어준다 생각해, 어색해 하지 말고 이렇게 된 김에 놀자고, 전자라면 돌아가봐도 좋아.”경소경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그 800만원 너한테 갚으라고도 안 할 거고, 네 임금에서 제외하지도 않을게. 이렇게 하면 여기 일 관둘래? 내가 아는 바로는, 너희 아버님도 돌아가셨고, 목정침도 빚 독촉은 안 한다며. 지금 너랑 네 어머님 생활이 좀 힘들다지만, 너가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질 필요는 없어.”진몽요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당신은 사장일 뿐인데, 어째서 내 사생활에 참견하는 거지? 당신 여자친
진몽요의 말 끝에는 흐느낌이 묻어나왔다. 눈물을 참기 위해 술 한잔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사레가 들릴 뻔했지만 원래 놀기를 좋아했고, 술자리도 적지 않았고, 주량도 좋았기에 이런 곳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다.오늘 밤은 경소경 역시 감성적이었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나를 낯선 사람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었던 말들 다 해봐요.”진몽요는 한 편으로 경소경이 돈을 내고 산 술을 마셨고, 또 한 편으로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그래요, 듣고 싶다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우리집은 이제 빚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빈털터리에요. 내 전 남자친구가 헤어지면서 연애 기간동안 내가 써왔던 돈을 돌려줬어요. 거의 4억 가까이 됐는데. 그건 나한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돈을 충분히 모아서 괜찮은 집을 구하는 걸 꿈 꿔 왔어요. 그랬는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엄마한테 화를 당한 거에요.”“우리 엄마는 한 순간도 고생해본 적이 없어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거죠. 난 매일 퇴근해서 피곤해 죽겠는데도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하고, 온갖 청소들은 다 해서 거의 개 꼴이 되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편하게 내 돈으로 마작을 하고, 사치를 부리고, 돈 좀 있는 사람한테 날 시집 보내려고 안달을 내요. 이혼한 남자는 물론, 천박한 깡패에게까지 선을 보라고 할 거에요!”“월급 날만 되면 울며불며 죽을 기세로 돈을 달라고 해요. 안주면 밥을 안 먹어요, 제일 길게는 3일까지 굶었었어요. 내가 이런 알바라도 안 하면, 뭘로 우리 엄마를 먹여 살리겠어요? 또 나는 어떻게 먹고 살고요? 매달 월세도 몇 십만 원씩 나가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끝이 보이지가 않아요… 차라리 우리 아빠랑 같이 죽는 게 나았을 수도 있어요.”경소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말도 안 되는 얘기하지 마.”진몽요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제 말은 우리 엄마가 아빠랑 죽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죽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엄마는 평생 아빠
진몽요는 어딘가 미심쩍었다. 이놈이 뭐 한다고 날 도와주지? 몸을 일으키니, 하늘이 팽팽 도는 듯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조금 격양되었다. 경소경은 재빨리 눈치를 채고는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뻣뻣한 몸짓으로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그는 진몽요가 매일같이 들고 출근하던 검은 쇼핑백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지금 진몽요가 입고 있는 술접대용 옷이었다. 옷은 매우 대담했다.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다 드러낸 것 같았다.바깥으로 나와 찬바람을 쐬자, 진몽요가 길 한 쪽으로 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경소경은 그런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 줄 뿐이었다.“안되겠죠? 방금 생 보드카를 반병이나 마셨는데, 당연히 못 견디죠…”진몽요는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나, 귀는 먹지 않았었다.“일찍 좀 말해주던가요! 난 그런 독한 술 마셔본 적도 없단 말이에요!”경소경은 어딘가 억울 해졌다. 급히 그녀를 따라가 아무거나 주문한 것이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마실 줄은 몰랐다. 차에 탔을 때, 진몽요는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경소경이 그녀에게 주소를 물어봐도 진몽요는 웅얼거릴 뿐이었다.“돌아가기 싫어……”경소경은 망설였다. 핸드폰을 꺼내 온연에게 전화를 하려다 관두고는 기사에게 말했다.“백수완 별장으로 가지.”목가네 저택.목정침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었고, 모닝이 그런 그의 곁을 서성거리다 말했다.“이 집 귀염둥이가 아직도 집에 안 왔는데, 걱정 안돼요? 그 순둥이를 누가 채 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목정침은 손을 슬쩍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순둥이?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모닝이 입술을 삐죽거렸다.“제가 대신 물어봤는데, 아홉시 반에 퇴근이래요. 직접 마중 나가는 거 어때요? 요 몇일 기온도 많이 떨어졌고, 특히 밤에…”목정침은 노트북을 덮더니 위층으로 향했고, 곧 옷을 갈아입고는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에 모닝이 비아냥거렸다.“아무래도 데리러 가야겠죠
임립은 쫓아오는 목정침에 신난 듯했다. 두 사람은 앞뒤로 폭주하다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러나 목정침의 운전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고, 온연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안전벨트를 꼭 붙잡았다.“뭐 하는 거예요? 무서워요… 길도 어두운데 천천히 갈 수 없어요?”목정침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차는 이미 저택가에 들어섰고, 다른 차들도 없었으며, 과태료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온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제서야 정신을 되찾았다.“어떻게 절 데리러 올 생각을 하셨어요? 저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혼자서도? 임립이 데려다 주는 게 아니라?”그의 말투에는 시샘이 가득했다.“야근을 안 하면 택시를 타고, 야근할 때만 대표님이 데려다 주세요. 왜요? 제가 기분 안 좋게 했다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 겁주지 마시고요, 안전하지 않아요…”온연은 방금 그의 행동을 상당히 원망하는 듯했다.“다른 남자한테 웃어주지 마.”그는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리며 말을 하였다.온연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하였고, 이상하다고 느낄 뿐이었다.“제가… 임립에게 웃어주는 것도 안 되나요? 당신 친구 아닌가요? 그 사람에게까지 냉담 하라니, 게다가 제 사장님이시잖아요.”그는 대답이 없었다. 가슴이 뛰는 빈도로 보아 무언가 꾹 참는 듯했다. 온연은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주변은 새까맣고, 밤이 아주 깊었다. 온연은 조금 두려워졌다.“좋아요, 알았어요. 기억할게요. 이제 돌아가요. 여기 멈춰서 뭐 해요?”목정침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어두워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밝게 빛났다. 짧은 몇 초가 흐르며 온연의 심장이 다시금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얼마 안 있어 차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고, 목정침
유씨 아주머니가 모닝을 노려보았다.“어린 아가씨가 잘못 배워서는, 하루 종일 남의 일에나 간섭하고, 안 부끄러우세요?! 할 일 하러 가보세요!”유씨 아주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저희 사모님 몸 안 좋으신 거 모르시지 않잖아요! 도련님도 사람 아끼는 거 모르시는 분 아니세요! 여기서 또 사람 놀리고 계신 걸 보니, 오늘 또 하루 종일 빈둥거리셨군요!”욕실 안에서 유씨 아주머니와 모닝의 대화를 들은 온연은 어딘가 면목이 없었다. 모두 목정침 탓이었다. 왜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그녀를 위층으로 이끌었을까? 그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것은 눈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온연은 욕실에서 잠시동안 더 꾸물거리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목정침은 이미 잠든 상태였고,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온연은 조심스레 눕고는 조명마저 꺼버렸다. 목정침은 곧 그녀의 허리를 감싸왔고, 목 언저리에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평소에는 같이 잠을 잤더라도 친밀히 몸을 맞대고 잔 적은 없었기에, 돌연 몸을 맞닿아오니 온연은 어색할 뿐이었다. 한참을 잠들지 못하였고, 눈꺼풀이 감겨와도 머릿속의 정신줄은 팽팽하였다.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목정침이 잠을 설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시로 자세를 가다듬어왔고, 그녀에게 닿아오는 그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한 소녀가 아니었다. 이러다 가는 둘 다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온연은 얼마 후 용기를 내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저… 저 이제 거의 회복된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문제없을 거예요……”목정침의 몸이 약간 경직되었다.“나 그렇게 악질은 아니야. 어서 자.”온연은 의외라고 느꼈다. 마음 속에 따뜻한 기류가 몰려왔고, 이어서 꾸는 꿈 마저도 행복하였다.……다음 날 아침, 백수완 별장.별장 지구에 하늘을 가를 듯한 비명이 울려 펴졌다진몽요는 침대에 앉아 입고 있던 흰 셔츠를 필사적으로 쥐어 보였다. 한 편으로는 놀란 눈으로 경
”아무 일 없었다면서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한 침대에서 자게 된 건데요?! 거짓말도 적당히 해요. 난 어른이니까, 내가 한 일에는 책임 질 수 있는데, 스스로 자신이 한 행동 인정 못하는 당신같은 사람은 봐줄 수 없어요!”진몽요는 끈질기게 생각 해보았으나, 세부적인 상황을 따져봤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어이구. 당신이 죽어도 집에 안 가겠다 했고, 집 주소를 알려주지도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데려온 거라고요. 다른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여기에서 재웠어야 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소파에 가서 자요? 안 그래도 밤새 뒤척거려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어 놓고, 침대 아니면 어디서 자라는 거에요?”경소경이 양치질을 하며 화장실 문에서 얼굴만 내민 채, 지난 밤 동안 그녀의 행실을 고발 해댔다.경소경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진몽요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녀는 술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셨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박이 불가능했다.진몽요는 저번 식당에서 대머리 남자와 함께 있을 때, 경소경과 같이 있던 여자를 떠올렸고, 자신의 행동들이 수치스러워졌다. 그 여자는 분명 애인이었을 것이다. 둘은 그렇게나 친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본인 이야말로 숨겨놓은 애인이 되는 것이었다.심사숙고 끝에, 그녀는 결국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제 옷은 어딨어요? 저 먼저 갈게요. 당신은 좀 이따가 늦게 나와요.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경소경이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무서운 거에요? 당신 옷들은 못 입을 것 같아서 진작 버렸어요. 사람 시켜서 옷 좀 사오라고 할게요.”진몽요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겉옷은 살 수 있겠는데, 다른 건 어쩔 건데요? 속옷은 어쩔 거냐고요!”경소경은 빨래통에서 그녀가 말한 ‘그 옷’을 집어 들었다.“이거 말하는 건가? 이것도 더러워졌어요. 이것도 사오라고 할게요. 걱정 말아요, 내 비서도 여자니
진몽요는 두피까지 저려오는 듯했다. 경소경 이 사람, 바보였던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할수록 그는 더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었다.점심 시간이 다 되어 갈쯤, 디자인팀으로 경소경의 전화가 걸려왔고, 이를 받은 주임이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진몽요, 경대표님이 찾으신다. 빨리 사무실로 가봐!”진몽요는 경소경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 해졌다.“알겠습니다!”사무실로 향하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경소경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설마 어젯밤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자신을 찾아서 뭘 하려는 거지?꾸물거리며 사무실 문 앞에 다다랐고,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만일 그가 무언가 요구해온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들어와.”사무실안에서 경소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가다듬고는 문을 열고 들어섰고, 가까이는 다가가지 못한 채, 문 앞에 서있었다.“무슨 일이신데요……?”경소경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이거 ‘비상’에 전달해줘요, 온연도 마침 거기에 있으니 같이 점심이나 먹고 오던지요. 또 잊어버리지 말고.”진몽요는 어리둥절했다.“절 부른 게 고작 이거 때문이라고요?”경소경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그러면?”그녀는 곧 긴장이 풀렸고, 서류를 받아 들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 때, 경소경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시만.”그녀가 놓았던 정신줄을 바로잡았다.“또 무슨 일……?”“그… 오전에 회사에 왔던 사람, 당신 어머님 맞죠? 두 사람 사이가 꽤나 안 좋아 보였거든요. 어제 클럽에서 내가 했던 말, 책임질 테니까 나랑 같이 퇴근하고 우리 집에서 일 해줘요. 일당은 바로 줄게요. 안 그래도 어제 당신이 들쑤셔 놨으니까, 오늘 청소 잘 해야 할 거에요.”경소경은 꽤나
진몽요는 어딘가 회의감이 들었다.“진짜로? 그럼 나 왜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을까?”온연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너 지금… 너……? 너 이전에 전지랑 엄청 오래 됐었잖아? 이따금 같이 살기도 했고. 근데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해? 이런 쪽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전지가 언급되자, 진몽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나랑 전지…… 애초에 그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어. 결혼할 때까지 미루겠다고 하더라, 누가 알았겠어… 하하. 걔는 나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네. 나를 만나는 동시에, 나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였던 거 잖아.”이 얘기를 듣던 온연이 무언가 실마리를 알아냈다.“너랑 전지가 그걸 겪지 않았는데, 왜 질문한 거야? 몽요, 나한테 솔직히 말해봐.”진몽요는 긴장이 되었는지, 컵을 들더니 담겨있던 물을 반 컵이나 들이켰다.“연아, 물어보지 마. 얘기해줄 수 없으니까… 괜찮아.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네가 보기에도 나 문제없어 보이잖아?”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단정지은 후에야 마음을 편히 내려놓았고, 웃음까지 지어 보일 수 있었다. 전날 밤 경소경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설명되었고, 그녀는 더 이상 맘 졸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었다. 어찌됐건 부끄러운 일이었다.온연은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질문하지는 않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서씨 일은 진전이 좀 있어?”진몽요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내가 고용한 사람은 그래도 업계에서 명성도 있는 편인데, 몇 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 말은 금방이래, 매일같이 금방이라고 하는데, 날 놀려먹는건지 의심까지 들어. 그래도 명성이 자자하다니까 맡겨보려고. 게다가 계약금만 냈고, 잔금은 아직 우리 손에 있는 걸. 무서울 게 뭐 있어? 기껏 해봐야 계약금만 날리게 될 거고, 손해 볼 일도 없을 거야. 이틀만 더 기다려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