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양은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왜 막으셨어요? 저 사람들이 뒤에서 언니 욕을 하는데 화도 안 나세요? 저는 평소에 나약한 편이지만 언니는 차가워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저랑 같으신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두려우신 거예요?” 온연은 옆에 있던 나무에 기댄 뒤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그냥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뿐이에요. 저 사람들은 내가 목 사모인 걸 아는데, 내가 거기서 따지고 싸우게 되면 얼마나 격 떨어져요. 그럼 내 남편 얼굴에 먹칠하는 거잖아요. 저런 사람들은 원래 저러니까 상대하기도 귀찮아요. 선만 넘지 않으면 마음대로 떠들으라고 해요. 너무 화가 나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예요.” 서양양은 허허 웃었다. “그건 또 그래요. 아예 급이 다른데, 저런 사람들이랑 싸우는 것도 격 떨어지긴 하죠. 언니, 저 먼저 택시 타고 갈게요. 언니는 데리러 올 사람 있어요?” 온연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9시였다. 목정침이 아직 일이 안 끝났을 수 있으니 그녀는 망설이다 말했다. “나도 택시 타고 가야겠어요. 머리만 좀 어지럽지 취한 건 아니라, 귀찮게 여기까지 데리러 오라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빈 택시 한 대가 오자 온연의 집이 더 머니 서양양은 온연을 먼저 보냈다. 온연은 아이 생각이 나 거절하지 않았다. 온연이 막 떠나자 당천이 따라 나왔고 서양양 혼자 있는 걸 보고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온연씨는요?” 서양양은 살짝 중심을 잃어 당천의 팔을 잡았다. “방금 전에 가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저희 이미 매니저님께 간다고 문자 보내놨는데.” 당천은 멀어지는 차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양양은 얼굴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 했고, 빈 차가 오자 팔을 내렸다. “들어가서 더 노세요. 저는 택시 타고 먼저 가 볼게요. 내일 봬요.” 당천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데려다 줄 게요.” 그녀는 거절했지만, 당천은 이미 택시를 보내 버렸다. 한편, 온연은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온
그녀는 대답할 겨를이 없어 황급히 손을 저었다. 목정침은 그녀가 문을 잡으며 들어오자 손에 있던 문서들을 내려놓고 그녀를 부축했다. “누가 술 마시래? 본인 주량도 몰라?”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부비적거렸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안 갈 수가 없어서 좀 마셨어요. 몸이 불편해요. 술 취했을 때랑 다르게 좀 이상해요…” 목정침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뜨거운 이마를 만지고 심장이 철렁했다. “너 혼자 왔어?” 온연은 알아듣기 힘들게 중얼거렸다. “혼자 택시 타고 왔어요. 집까지 못 버틸 것 같아서 바로 회사로 온 거예요. 나 더워요, 사무실 난방이 너무 센 거 같은데…” 그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옷을 풀어헤쳤다. 그녀이 모습을 보고 목정침은 당연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 누군가 약을 탔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살짝 후회했다. 바쁘다고 그녀를 안 데리러 가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무슨 일이라고 생겼다면, 그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너 지금 혹시…” 온연은 정말 조금 정신이 있었고, 더워서 빨개진 줄 알았던 얼굴은 바로 더 빨개졌다. “응… 물어보지 말아요, 미안해요…” 그녀의 대답을 듣자 목정침은 누군가 약을 탔다는 걸 확신했다. 그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를 소파위로 눕혔다. ...... 다음 날 온연은 방 침대 위에서 어리둥절 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보니 퍼즐들이 맞춰지며 그녀가 어제 저녁 하면 안되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야근을 할 때 그의 회사로 가서 엉겨 붙었다… 그녀는 감히 자세히 생각할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목정침이 이미 일어난 걸 알았다. 그녀는 그제서야 잠옷을 입은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 집에 와서 목정침이 씻겨준 것 같다. 콩알이도 이미 깨어 있었고, 아기 침대에서 정신이 멀똥한 채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녀는
목정침은 무언가 떠올라 표정이 진지해졌다. “술을 많이 마신 게 아니라, 누가 약을 탄 거야. 지금 깼으니까 잘 생각해 봐, 누가 그랬는지. 너 주변에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 생겼으니 난 이제 마음 놓고 너 회사 못 보내.” 그의 말에 온연도 더 자세히 어젯밤 상황들이 생각났다. 그러게, 술만 마셨으면 온 몸이 뜨거워지진 않고, 이상한 느낌도 없었을 텐데. 그 이상한 느낌에 이끌려 그녀는 회사까지 목정침을 찾으러 갔다… 그녀는 당천이 자신에게 준 그 샴페인이 떠올랐다. 그는 특별히 그녀에게 줘야한다고 강조했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걸 막았다. 다른 술은 다른 사람들도 마셨고, 모든 사람에게 다 문제가 생겼을 수는 없으니 만약 그 샴페인 문제라면 그럼 당천의 짓인가? 그녀는 바로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만약 오해라면? 그녀의 당천 사이에는 원한도 없었고, 두 사람은 안지 얼마 안된데다가 상대가 그녀를 점 찍었어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방식은 비열했다. 그래도 유명한 디자이너이니 당천 같은 사람에게는 명예가 중요했다. 잠시 생각을 한 뒤 그녀가 말했다. “회사는 가봐야 해요. 가봐야 누가 그랬는지 알죠. 준비 좀할 테니까, 콩알이 아주머니한테 맡겨서 밥 좀 먹어요. 술 마셨으니까 당분간은 수유 안 하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회사를 가야했다. 샴페인은 서양양도 마셨고, 정말 샴페인의 문제라면 서양양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테다. 목정침은 그녀를 응시하며 “회사엔 내가 데려다줄게. 앞으로 내가 아무리 바빠도 다른 사람 보내서 픽업할 거야. 사실… 콩알이 이제 수유 그만할 때도 됐어. 분유 먹이자. 이렇게 컸는데 모유 먹을 필요 없을 것 같아.” 온연은 그가 왜 갑자기 수유를 끊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요? 나 아직 모유 남아서 계속 수유할 수 있는데, 분유로 바꿀 필요 없지 않아요?” 그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너는 잠깐이라도 자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거야? 난 너가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생각해. 임신했을
그녀는 대담하게 까치발을 들고 그의 목을 잡은 뒤, 볼에 입을 맞추고 황급히 도망쳤다. “퇴근 시간에 꼭 데리러 와요! 야근할 거면 내가 같이 있어 줄게요!”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목정침은 손을 들고 그녀가 뽀뽀한 곳을 만지며 입꼬리는 서서히 올라갔다. 오늘은 태양이 서쪽에서 뜬 것 같았다… 차에 돌아온 뒤 어젯밤 누군가 그녀에게 약을 탄 게 생각나 그는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혼자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 잘못되면 어차피 내가 처리해요 되고, 그럼 나만 더 귀찮아져.’ 문자를 받은 온연은 스마일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평소엔 서양양은 그녀보다 일찍 출근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출근시간이 다 되어도 서양양은 오지 않았다. 당천은 당연히 일찍 출근하지 않았고, 그녀는 마음에 일을 담아두고 있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책상에 엎드려 멍을 때렸다.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자 당천과 서양양은 그제서야 앞 뒤로 출근을 했다. 온연은 서양양을 한쪽으로 불러냈다. “어제 무슨 일 없었어요?” 서양양은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어… 무슨 일이요? 잘 모르겠어요…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나요.” 온연은 그녀의 목에 있던 키스마크를 보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줘요. 어제 저녁에 누가 술에 약을 탔는데, 그 샴페인이 문제였던 거 같아요. 그 샴페인은 나랑 양양씨만 마셨잖아요.” 서양양은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했다. “언니… 저 어제 사실 집에 안 들어갔어요. 아직도 무서워서 부모님 전화를 못 받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외박한 적이 없었거든요. 어제 언니가 가고 나서 원래 택시 타고 바로 집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당천씨가 나와서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가는 길에…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분이랑… 자연스럽게 저질러 버렸어요. 제가 깨어났을
거의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회사에는 보는 눈도 많으니 온연은 회사에서 당천과 얘기하지 않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당천은 통쾌히 승낙했고, 자발적으로 괜찮은 중식 레스토랑을 소개했다.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자 온연은 본론을 꺼냈다. “어제 저랑 양양씨 술에 누가 약을 탔어요. 그 샴페인 문제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천은 웃는듯 안 웃는듯 그녀를 보았다.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제가 무슨 의도로요? 샴페인을 제가 드린 건 맞고, 온연씨랑 서양양씨만 드셨으니 두 분만 증상이 있었던 것도 맞겠네요. 하지만 샴페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을 거치지 않았고, 저도 의심스럽지만 제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지 않나요?” 온연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당천의 태도를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또 물었다. “서양양씨랑은 그럼 왜 그러신 거예요? 양양씨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보수적이라 남자도 안 사귀어 봤고, 외박도 처음이었는데, 이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당천은 웃기다고 생각했다. “설명이 필요하다고요? 다들 성인인데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강제로 그런 것도 아니고, 여자도 많이 만나봤는데, 그 모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집에 남는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온연씨를 생각해서 양양씨랑 사귀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도 연애일 뿐 결혼할 생각을 없어요.” 온연은 살짝 화가 났다. “양양씨 상태가 이상한 걸 알았을 텐데 그런 행동을 해놓고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가요? 이런 태도는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당천은 신경 안 쓴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제가 강조하지만 어제 저녁은 다들 술을 마셨고, 저도 남자라서 자제력에 한계가 있어요. 저랑 양양씨는 서로 원해서 그랬고, 저 혼자 강제로 한 게 아니니까 제대로 알고 말하세요. 저는 그런 누명쓰기 싫거든요. 그때는 그 사람이 약 탄 술을 마신 것도 몰랐고,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만약 제가 어제 양양씨를 데려다 주
서양양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그 사람이랑 안 어울리는 거 알아요. 매일 그 사람주변을 맴도는 여자가 많을 텐데, 저는 눈에 띄지도 않으니 딱히 기대하지 않았어요.” 온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양양씨가 아무리 눈에 안 띄어도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고 제2의 양양씨는 없어요. 모든 사람은 다 특별하고, 그 존재에 의의가 있는데 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잔소리 좀 더 하자면, 양양씨는 집안 배경도 깨끗하고 사람도 순진하고 좋으니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거예요. 당천씨는 비록 각 방면에서 조건이 좋은 남자지만, 사생활 쪽에서는 좀 별로죠. 너무 가벼워요. 안 어울리는 걸로 따지면 그 사람이 양양씨한테 어울리지 못 하는 거예요. 저는 일하러 갈게요. 아마 당천씨가 만나자고 할 거예요.” 서양양이 온연을 보는 눈빛은 더더욱 반짝였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다는 건 좋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사소한 의식주부터 대학교 전공까지 모두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했지 그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졸업을 하고 나서 비록 부모님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며 엄격하게 관리하진 않았지만, 오랜시간 감시를 받았던 탓에 그녀는 이제 자신이 주관도 없고 거절할 줄도 모르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연은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고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며 그녀에게 충분한 확신을 주었다. 어제 일 때문에 서양양은 어떻게 당천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고, 은근슬쩍 그를 피했다. 그녀는 당천과 확실이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어색하고 민망해도 당천은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회사에서 할 일을 하고 여직원들과 자발적으로 어울리며, 늘 거절하지 않고 가끔은 야릇한 주제를 던지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 것과 함께 온연의 차를 타서 책상 앞으로 걸어가자 당천이 갑자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으면 제 것도 한 잔 타주세요.” 서양양은 당천의 눈을
온연은 콩알이를 데리고 놀다가 서양양이 걱정되어 문자를 보내 상황을 물었다. 이내 서양양이 빠르게 답장했다. ‘저한테 예상치 못 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어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재요. 저한테 사과도 하고 밥도 사주시면서 앞으로 회사에서 언니랑 같이 저를 챙겨주시겠데요. 잘 된 것 같아요, 서로 부담 갖지 않고요. 안 그래도 안지 얼마 안됐는데 사귀는 것도 적절하지 않잖아요. 아까 집에서 어제 외박한 것 때문에 부모님이랑 싸우고 엄청 욕 먹었어요. 사실 말이 싸운거지 저만 일방적으로 혼난 거예요. 걱정 마세요 언니, 전 괜찮아요.’ 온연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쩌면 최고의 결과이기도 했다. 목정침이 돌아오고 보니 시간은 이미 저녁 11시였다. 온연은 비몽사몽한 채로 잠 들어 있다가 그의 샤워소리에 깼다. 그가 나오자 두 사람은 침대에 기대어 대화를 나눴고, 낮에는 만날 시간이 없으니 이 시간밖에 없었다. 당천 얘기가 나오자 목정침은 의아했다. “당천? 걔가 너네 회사로 갔어? 어떻게 그러지?” 온연은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회사에서 돈만 잘 주면 안될 것도 없지 않아요?” 목정침은 확신하며 말했다. “그런 작은 회사에서 얼마나 주겠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이상해.” 그녀는 대충 얘기를 꺼낸 거였고 당천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알겠어요. 신경 안 쓸래요. 난 계속 잘게요, 또 졸려서요.” 무의식적으로 꺼낸 말 이어도 듣는 사람은 달랐다. 목정침은 이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당천이 온연의 회사에 입사한 시간이 의심스러웠다. 설날에 그가 출장을 갔던 이유가 제시카가 복수심리로 그를 건드려서 해외지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고, 제시카 성격상 이 일은 이렇게 끝내지 않을 것 같았다. 하필 이럴 때 갑자기 당천이 튀어나와서, 고급 디자이너가 수입도 적은 작은 회사에 들어가다니, 웃긴 거 아닌가? 게다가 온연이 약 탄 술을 마신 걸 생각할수록 당천과 제시카가 관련되었다고 생각
회사에서 문서를 챙긴 뒤 서양양은 재빨리 택시를 잡고 당천의 집으로 향했다. 당천의 집을 한 번 가본 적이 있으니 익숙하진 않아도 낯선 건 아니었다. 당천의 집 문 앞에 도착한 뒤 그녀는 심장이 뛰어서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당천의 집은 독채 별장이었다. 그녀가 알기론 그는 집에 가정부 따로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지금은 겨우 오전 10시 정도였고 대문 앞에서 한참동안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당천은 방탕한 야간생활이 있는 사람이니 이 시간에 안 일어나 있는 게 납득이 됐다.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가 받은 뒤 그녀가 문 앞에 있는 걸 알고 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역시 잠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서양양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당천이 마음대로 대문 비밀번호까지 공유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된 건가? 이 자식은 걱정도 없이 비밀번호를 그녀에게 알려주다니… 대문을 열고 들어가, 집 문 앞에 서서 그녀는 망설이다가 같은 비밀번호를 눌렀고, 정확하게 입력이 됐는지 문이 열렸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저번에 왔을 땐 어색하고 정신이 없어서 당천의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볼 틈이 없었지만, 오늘 보니 화려한 것 말고도 인테리어가 엄청 특색 있었고 색다른 느낌이 당천과 잘 어울렸다. 당천의 안방 앞까지 걸어와 그녀는 문을 두들겼다. “문서는 어디에 두면 될까요? 매니저님이 직접 전해주라고 하셨는데…” 당천의 비몽사몽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들어와요.” 서양양은 인상을 찌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는 당천이 보였고, 따뜻한 햇빛이 창문을 너머 그를 비추고 있었다. 금색 빛 줄기가 그를 비추고 있으니 잘 생긴 얼굴이 한층 더 몽환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문서를 그의 침대 옆 서랍 위에 올려놨다. “문서는 여기 둘게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뒤를 돈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