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시계를 보더니 이미 오전 10시가 넘어 있었다. 쇼핑하고 밥 먹으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아 동의했다. “그래, 그럼 쇼핑 다 하고 백수완 레스토랑 가서 밥 먹자. 이곳 저곳 많이 먹어봤지만 거기가 역시 제일 맛있어.” 백화점에 도착한 뒤, 진몽요는 또 가방만 보면 발걸음을 멈추는 병이 도졌다. 처음에 카드를 긁을 땐 살짝 망설였지만 막상 긁고 나니 멈출 수 없었다. 온연은 그녀를 강제로 끌고 나왔다. “그만해, 더 사면 들고 가지도 못 해. 내가 봤을 땐 경소경씨가 너한테 카드를 맡긴 게 잘못이야. 나중에 후회할 거야.” 진몽요는 손에 든 물건들을 보며 아직 흥이 오르지 않았다. “이게 겨우 얼마라고 그래? 그렇게 치사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제 카드 주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그러던데~ 걱정 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다 쓰진 않을 거야. 돈 버는 게 어려운 거 아니까. 단지 오랜만에 쇼핑을 나왔기 때문에 잠깐 이성을 잃었을 뿐이야. 나중에 배 나오면 이럴 기회도 없을 거 아냐.” 온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해, 정말 못 말려. 난 남자 시계 좀 볼래, 목청침씨 하나 사주려고. 온가네 저택 보수 공사 도와주기로 해서 보답은 해야지.” 진몽요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도와주는 거야? 너희 가족이잖아? 이런 것까지 따지면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나랑 경소경씨는 그런 거 안 따져. 너도 나처럼 신경 좀 덜 쓸 줄 알아야해. 그래야 덜 피곤해.” 각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온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때 익숙한 실루엣에 그녀의 시선은 앞쪽 여자 액세서리 가게로 향했다. 목정침, 그가 왜 여기 있지? 회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세히 보니 그는 젊은 여자와 동행했다. 그 여자는 예전에 그녀의 모습과 비슷하게 청순했고 겸손하게 그의 옆에서 웃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내려 앉았다. 설마 아니겠지? 목정침이 그녀에게 미안한 행동을 할까? 그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
진몽요는 가까이 가 자세히 서예령의 명찰을 보았다. “그러네, 서예령씨, 아직 정직원 아닌 인턴 사원이네요. 목정침씨도 대단해요, 자기 와이프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른 사람한테 골라 달라고 하고. 이거 진짜예요?” 온연은 목정침을 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정침은 그녀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긴장을 했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난… 그… 사실이야. 연아 이왕 왔으니까 좋아하는 거 골라 봐.” 온연은 지금 액세서리를 고를 기분이 아니라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살 돈을 주면 되잖아요. 그럼 본인도 덜 귀찮지 않았겠어요? 당신 한가해요? 여기와서 이런 거 고를 시간까지 있을 줄 몰랐네요. 오후에 애 데리고 회사 가 있어요. 어차피 당신이 더 잘 보잖아요.” 서예령은 아이에게 시선을 뺏겼다. “저는 좋아요. 대표님이 바쁘실 때 제가 돌봐도 되거든요. 콩알아~ 아직 나 기억해? 저번에 우리 만났었잖아.” 무의식 중에 한 서예령의 말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목정침은 불안정한 눈빛을 피했다. “서예령씨, 먼저 회사 들어가요.” 서예령은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 했다. “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온연은 이를 꽉 깨물고 아이를 목정침에게 넘겼다. 목정침은 반사적으로 아이를 넘겨 받았고 온연의 눈빛에 해명을 했다. “그런 거 아니야! 저번에 나랑 애 버리고 강남 갔을 때 기억 나지? 내가 콩알이 데리고 회의를 할 수가 없어서 잠깐 맡겼어. 오늘은 정말 네 선물 고르러 온 거지 아무 사이 아니야…” 온연은 직원을 보며 웃었다. “이 쪽에 있는 목걸이랑 팔찌 전부 다 주세요. 저 쪽에 있는 것도요. 이 분이 계산할 거예요.” 직원을 이 상황을 보고만 있다가 고객이 이 많은 걸 다 사겠다고 하니 얼른 미소를 지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목정침은 심란했지만 아이를 안으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뒤졌다. “연아, 내 말 들어 봐. 정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널 두고 그러겠
백화점에서 걸어 나오자 온연과 진몽요의 기분은 한 층 나아졌다. 두 사람은 원래 계획대로 백수완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고 바로 샵으로 향했다. 서예령이 목정침의 옆에 있는 걸 보고 온연은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아무리 두 사람이 매일 한 침대에서 자면서 사이가 좋아도 어느 날 그녀가 성에 차지 않는 다면 목정침도 바람 필 여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혼 생활을 망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그녀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나이에는 커리어에 집중해야 하지만 일찍 아이를 낳았고 목정침이 만들어준 온실 안에서만 살면거 모든 걸 포기하며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았다. 회사. 아이는 이제 몸을 뒤집는 법을 배웠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목정침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혼자 소파에 올려 두기가 불안해 어쩔 수 없이 안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의 컴퓨터와 펜을 건들였고 계약서 서류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머리가 아프던 찰나에 서예령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목 대표님, 도와드릴 거 있으신가요?” 온연이 백화점에서 자신을 보던 눈빛이 생각나 당연히 거절했다. “아니요, 가서 일 봐요.” 서예령은 피곤해 보이는 그를 보고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 게요. 딱 이때쯤 아이들이 사물에 관심을 보일 때라 뭐든 만지면 입으로 집어넣고 그래서 대표님 일 하는데 방해되실 거예요. 아이는 제가 안고 있다가 일 끝나시면 가 볼게요.” 목정침은 살짝 망설이다 “알겠어요… 일 금방 하니까 사무실에서 잠깐만 안고 있으면 돼요.” 서예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아이를 안았다. “대표님, 사모님 정말 예쁘시던데요. 청초하시지만 눈에 딱 띄었어요. 아까 백화점에서 저희한테 걸어오실 때 뵌 적은 없지만 바로 알아봤어요… 아이 얼굴은 물론 기억하고 있었지만요~” 목정침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서류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
전화를 받고 온연과 진몽요는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온연은 임립의 생명이 이제 거의 다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쯤 돼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건 거의 저승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고,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다들 병원 앞에서 모였고 임립은 아직 사경을 헤메는 중이었다. 온연은 아이를 안고 있는 서예령을 보았고 서예령도 자신이 아이를 안고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온연에게 다가갔다. “사모님, 아까 대표님이 급하게 오시느라 저도 같이 왔어요. 회사에 아직 일이 있어서 저는 가보겠습니다.” 온연은 아이를 안았다. “네, 고마워요.” 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약간 불편했다. 목정침은 데이비드와 함께 올 수 있었는데 서예령과 왔다. 임립의 소식을 듣기 전부터 서예령이랑 있었다는 말인데… 지금 제일 급한 건 임립의 일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다들 기분이 안 좋은 만큼 어떤 일들은 우선 제쳐두어야 했다. 응급 처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임립의 가족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임립이 살아있을 땐 임립의 가족들은 그를 미워했지만 이제 죽을 때 되니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이상한 건 임채미도 임립네 가족과 동행했다. 경소경은 어두운 표정으로 가족들을 막았다. “여기 왜 오셨어요?” 임가네 사람들은 경소경을 무서워했기에 차마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못 하고 임립의 아버지는 침착한 척했다. “뭐하자는 거야? 감히 네가 우릴 막아? 내 아들이 지금 위독한데 우리가 오면 안되는 거니? 너희들은 그저 친구야. 이건 우리 집안 일이니까 너흰 들어가 봐!” 경소경은 이를 꽉 물었다. “얘는 이미 임가네를 떠났어요. 당신들이랑 상관없다고요. 마무리일들도 저희한테 맡겼으니 가족분들께서 가셔야죠. 안정을 취해야할 때 방해하지 마시고 꺼지세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살짝 쫄았다. 평소에 성질도 안 내고 웃기만 하는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니 그녀는 그가 싸울까 봐 무서웠지만 차마 다가가서 말리지 못 했다. 임립네 아
임채미는 살짝 울먹였고 이게 진심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랐다. “그런 말 그만해요. 나한테 일부를 준다니요? 4천만원으로 밥 값 하라고요? 난 정말 저 사람을 사랑했는데 나중에 나한테 그런 대우를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 이유를 묻고 싶었어요! 난 그저 이 사람의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고 마지막 순간만큼은 가족들이 모였으면 했던 건데 잘못됐어요? 괜히 트집 잡지 말아요.” 온연은 임립 때문에 속상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임립은 가족들에게 알리는 걸 제일 싫어했는데 임채미가 가족들을 다 데리고 왔고 그건 결국 재산분할 때문이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 마셨다. “임채미씨, 난 임립씨가 다 죽어가는데 당신이랑 입씨름하기 싫으니까 얌전이 있어요. 아니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요!” 임채미는 옆에 있던 가족들을 보며 자신을 대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자 묵묵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온연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아이를 안고 조용히 기다렸다. 약 1시간 정도 지나자 응급실 문이 열렸다.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일어나 의사 주변을 둘러 쌌고 의사는 이 광경에 깜짝 놀랐다. “다들… 뭐하시는 거예요?” 목정침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나요?” 의사는 정신을 차렸다. “환자분은 원래부터 위암 말기셔서 예전 결과를 저희가 검토를 해봤지만 다들 대충 상황은 아실겁니다. 이건 단순히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병이에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선 지금은 응급처치를 했지만 일시적이에요. 최대한 병원에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제때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요. 더 미뤄봤자… 며칠 안 남으셨기 때문에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저희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병원에서 제일 듣기 무서운 말이 “최선을 다 했다” 라는 말이다. 목정침은 임립의 운명이 이렇게 정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돈은 상관없으니까… 제발 뭐라도 해주세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유감스럽게 말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임립은 빠르게
경소경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 너가 싫으면 아무도 여기 못 들어와.” 임립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누나 들어오라고 해. 그나마 가족 중에는 누나가 제일 사람 같거든.” 경소경은 임립의 누나를 부르러 나갔다. 임가네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있었고 병원인 걸 개의치 않아했다. 병신 문이 열리자 냄새 맡은 파리들처럼 달려 들었다. 경소경은 반감이 들어 인상을 찌푸렸고,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임립의 누나에게 고정됐다. 그는 그제서야 임립의 누나가 계속 조용히 있었던 걸 발견했고 그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역시 임립의 말처럼 그녀는 사람다웠다. “누나, 립이가 들어 오래요.” 그는 임립을 생각해서 누나라고 불렀다. 임립의 누나는 벙쪘다. “알겠어요.” 병실에 들어오자 임립은 누나를 보며 웃었다. “누나, 왔네.” 그의 누나는 눈물을 훔치며 같이 웃었다. “미안해, 내가 계속 네 신경을 못 써서 결혼하고 나서는 더 무관심했어… 너도 이 집이 싫겠지만 나도 싫어. 너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오늘 저 사람들이랑 만날 일 없었을 거야. 난 그냥 너의 임종만 보고 싶었지 다른 생각 없으니까 오해하지 마. 난 저 사람들이랑 달라…” 임립은 당연히 알았다. “나도 알아, 오해한 적 없어. 저 사람들한테 전해줘. 내 재산 절대 못 가져갈 거니까 미련 갖지 말라고. 돌려줄 건 이미 다 돌려줬으니 서로 신세진 게 없어. 이런 순간까지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 망치고 싶지 않아. 보기도 싫어.” 그의 누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임립은 눈을 감았고 숨소리도 작아졌다. “난 이제 미련이 없어… 다들 미안해, 속상하게 만들어서…” 의료기기에서 급박한 경고음이 들렸고, 화면에 있던 선도 점점 직선으로 변하고 있었다. 진몽요는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고 경소경도 창문을 보며 그를 등지고 있었다. 그가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의 어둠이 다 가려주었다. 목정침도 의사나 간호사를 부르지
임립의 누나는 바로 발걸음을 멈추기 눈 앞에 있는 가족들의 태도를 믿을 수 없었다. “다들 뭐 하자는 거예요? 네? 아빠, 아들이 죽었어요, 오빠들, 동생이 죽었다고요! 쟤가 빚진 거 있어요? 아무한테도 빚진 거 없으니까 나눠 갖을 이유도 없다고요! 진짜 하는 짓마다 역겨운 사람들이 있는데 난 당신들이랑 가족이라는 거 자체가 창피해요!” 임가네 형제는 아직도 어떻게 임립의 재산을 손에 넣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임립의 아빠만 깊은 생각에 빠져 한숨을 쉬었다. “다 입 다 물어! 됐어, 오늘 우리가 여기 왔으면 안됐었어. 무사히 보내줬어야 하는데…” 임채미는 분위기를 보고 그제서야 임립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로 벤치에 앉아 몸을 떨고 있었고,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그녀랑 웃으며 밥을 먹고 잠을 자던 남자가 정말 죽었다… 앞으로 이 세상에 그는 없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계속 원하던 건 재산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그와의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가 관계를 정리했다. 그녀는 그가 마지막 순간을 자신과 함께 하고싶다는 말을 하길 계속 바래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왜 그가 그녀를 차버렸는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과 배경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를 향한 감정은 진심이었다. 이 순간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사실에 기분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임립의 아빠와 누나가 자리를 떠나고 임가네 형제만 남았다. 그들은 임채미를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임립이랑 헤어진지 얼마나 됐어요? 임신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애만 있으면 재산을 분명히 분할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임채미는 그들을 보며 역겨워서 입맛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 말이 없었다. 이때 온연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고 방금 한 대화를 다 들었다. “아이디어는 좋네요. 근데 이거 어쩌죠, 제가 다 들어버
두 사람은 말대꾸를 하려던 찰나에 병실에서 걸어 나오는 경소경을 보고 쫄았는지 줄행랑을 쳤다. 임채미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 때리셨죠? 그럼 저도 가 볼게요… 절 만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죠…” 온연은 뺨을 때렸을 때부터 이미 분이 풀렸고, 임채미가 태도가 누그러진 걸 보고 계속 놓아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임립씨가 4천만원 주기로 한 것도 어쨌든 마음이니까 계좌 알려주세요. 나중에 이체 해드릴게요.” 임채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제가 애초에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 걸요.” 온연도 고집 부리지 않았다. “필요 없으면 말고요. 그냥 그것도 같이 기부할게요 그럼.” 진몽요가 임신중이라 목정침은 경소경에게 진몽요를 데리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온연도 콩알이를 돌봐야 하니 돌아갔고, 그 혼자 병원에 남아 일처리를 했다. 함께 좋은 날들을 보냈던 형제가 이렇게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고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참았던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렸다. 이 날 밤, 그 누구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온연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운 뒤 안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립씨 떠났어.” 그녀는 자신이 왜 이 일을 안야에게 말해주는지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안야가 알아야할 것 같았다. 전화 너머, 안야는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입을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이 세상에서 그녀와 그나마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임립은 그녀의 할아버지 유언을 받아드려, 그녀에게 늘 잘해주었다. 그녀는 그를 오빠처럼 따랐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를 만나지 못 했다. 그녀는 지금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전화가 끊기고 안야는 계속해서 채소를 썰었다. 오늘은 아택이 집에 있는 날이라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이 눈 앞을 가렸고, 손에서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살짝 소리를 내며 자신이 베였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