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건 적진 선생님의 글씨인데 진품인가요?”글씨를 힐끗 보던 한지아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저 여자가 적진 선생님의 작품을 갖고 있었어요?”“내 거예요.”박진성이 손을 내밀었다.“못 줘요.”한지아는 바로 작품을 품에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 냉철하고 기가 세던 여장부는 한순간에 어린 소녀로 변했다.“진성 씨, 이거 나한테 주면 안 돼요? 할아버지께서 적진 선생님의 서예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거든요. 이거 선물로 드리면 너무 좋아서 펄쩍 뛰실 거예요. 제발요.”한지아의 매혹적인 눈빛은 남자의 마
“뭐 하는 짓입니까?”남자 두 명이 달려들어 박진성을 막았다.“건드리지 마.”한지아는 그들을 노려보더니 박진성을 보며 물었다.“자신 있어요?”박진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번째 환자의 은침을 뽑았다.열한 번째 환자의 은침을 뽑던 그때 회색 도포를 입은 흰 수염 노인이 급히 달려왔다.“당장 멈춰. 이 망할 놈아,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노인은 버럭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호통쳤다. 그러고는 앞으로 다가와 박진성을 확 밀쳤다.“이 사람들을 싹 다 죽일 셈이야?”박진성의 시선이 노인에게 닿았다.“당신이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침을 꽂은 두 환자가 갑자기 고통스럽게 몸을 떨기 시작했고 가슴의 검은 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환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기계도 다급하게 울렸다.“이게 대체...”홍준섭과 한문원의 낯빛이 잿빛이 되었다. 증상이 악화됐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반면 박진성이 침을 뽑은 열한 명의 환자는 매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명의님, 대체 어떻게 된 거죠?”한문원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이...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중독된 게 맞고 저의 해독 침술은 최고란 말이에요. 근
박진성이 병원에 있는 동안 유미옥과 임동우는 구급차에 탔다.유미옥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평소 그녀에게 고분고분 순종하던 박진성이 그녀를 때린 건 물론이고 임동우까지 만신창이가 되도록 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는 임효정에게 전화를 걸어 고자질했다.“엄마, 무슨 일 있어요? 지금 회의 중인데 나중에 다시 전화 주세요.”임효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유미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롭게 소리쳤다.“이 상황에 무슨 회의를 해. 큰일 났어. 박진성 그 망할 놈이 완전히 미쳤어.”“엄마, 대
한지아는 잠깐 멈칫하다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통화를 마친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박진성 씨, 할아버지께서 혈영지를 바로 보내 주겠으니 이번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리고 한 달 안에 용린초도 보내 주시겠대요.”‘용린초?’박진성의 두 눈이 반짝였다. 용린초는 영약으로 몸을 튼튼하게 만들고 수련의 기초를 다지는 데 도움을 주는 약초였다.한태산은 박진성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박진성이 용인을 풀었으니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건 수련을 통해 예전 실
“하하하하...”한지아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홍준섭은 박진성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바람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렸는데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한문원의 낯빛이 잿빛이 되었다.어쨌거나 홍준섭은 한문원이 데려온 사람이었고 박진성은 그녀가 데려온 사람이라 서로 체면을 내걸고 싸운 셈이었다.이번에는 한문원이 그녀 앞에서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이봐요. 그 늙은이를 살려줄 필요가 있었나요? 병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허세만 부렸
“하하, 효정아. 드디어 그 못난 놈이랑 이혼했구나. 너무 잘됐어.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듣다니...”오피스룩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한 여자가 기뻐하며 웃었다.그녀가 바로 노은빈이었는데 임효정의 외사촌 언니이자 효정 제약의 부장이었다.임효정이 성공한 후 유미옥은 노은빈을 회사에 넣어 임효정을 도와주도록 했다.“언니, 사실은...”임효정은 노은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유미옥의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기에 그냥 삼켰다.노은빈은 임효정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내 말대로 하는 게 좋
임효정이 차에서 내렸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목도 가늘고 길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 같았다.“와, 너무 예뻐. 정말 절세미인이야.”“저 여자가 바로 최근에 가장 잘나가는 효정 제약 대표 임효정이야. 미모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상업계 신예래. 이미 자산이 2천억 가까이 된다고 들었어.”“용성 그룹 산하의 하성 제약에서 효정 제약과 협력한다던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거래. 임효정의 기세가 더 대단해지겠어. 상업 잡지에도 이미 도배를 했더라고.”...사람들의 뜨거운 시선과 감탄에 노은빈은 득의양
“효정아, 도련님 말씀이 맞아. 돈방석에 앉으려면 우리가 먼저 앉아야 하지 않겠니?”“비공개로 주식 발행해. 우리가 바로 살 테니까!”...친척들은 어떻게든 효정 제약의 주식을 손에 넣고 싶어 했고 임효정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들 돈을 벌자는 생각이었고 친척과 친구들도 같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효정 씨, 지금 자금이 얼마나 더 필요한 거야?”안영재가 물었다.“대략 2400억이요.”“2400억?”금액을 들은 임씨 가문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그래, 좋아!”임씨 가문 사람들이 한둘씩 일어나며 안영재에게 건배를 했다.유독 박진성만이 가만히 앉아 있었기에 더욱 이방인 같았다.“박진성, 너는 왜 가만히 앉아 있는 거지? 얼른 일어나서 도련님께 건배해!”유미옥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박진성은 담담하게 안영재를 힐끗 볼 뿐이다.“저 사람을 위해 건배를 하라고요. 저 사람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효정 제약이 한씨 가문과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진성 덕분이었다. 그런데 안영재는 그의 공로를 가로채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너무도 가소로웠다.탁!유미옥은 테이블
“역시 좋은 술이군, 아주 귀한 술이야!”조금만 먹었을 뿐인데 애주가 임창호는 도취한 표정을 지었다.“서방님, 이미지... 이미지 관리 좀 하세요.”유미옥은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술을 핥아먹고 있는 임창호를 보며 미간을 확 구겼다.그러나 이내 임씨 가문의 셋째도 달려가 바닥에 엎드려 핥기 시작했다.이렇게 귀한 술 앞에서 이미지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술 한 방울이 황금보다 10배 이상은 비쌌기에 지금이라도 핥지 않는 사람이 멍청한 것이다.게다가 살면서 이런 귀한 술을 맛볼 기회는 오늘뿐이다.곧이어 임효정의 사촌 오
술병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지고 오렌지빛을 내던 액체가 바닥에 쏟아지며 짙은 술 냄새를 풍겼다.안영재는 일부러 술병을 깨버린 것이다.이 두 숙성주는 꽤나 오랜 시간 숙성된 것이었던지라 가치가 무한했고 그도 구할 수 없는 술이었다.비록 박진성이 이 술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만약 정말로 이 술을 임세풍에게 선물로 준다면 아주 기뻐할 것이 분명했고 박진성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이었다.심지어 임세풍이 다시 박진성과 임효정을 이어주려고 할 가능성도 아주 컸다.“이런. 손이 미끄러졌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박진성은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진성아, 요즘 계속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 거야?”임효정은 본론을 끝내고 갑자기 물었지만 사생활이라고 생각한 박진성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다음 날이 되자 그는 어제 받은 숙성주를 두 병 들고 임세풍의 거처로 찾아갔다. 임세풍은 술을 좋아했기에 마침 한태산이 준 선물을 임세풍에게 줄 수 있었다.이 숙성주는 최소 50년 이상 숙성되어 만든 것이었기에 애주가에겐 가치가 엄청난 보물이기도 했다.임세풍의 집으로 오자 박진성은 임효정을 발견하게 되었다.임효정은 파란색 전통 느낌이 물씬 나는
“진성 씨, 저 임신했어요. 박진성 씨 아기를 가졌다고요.”아침부터 한지아의 연락을 받은 박진성은 미칠 듯한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한지아 씨! 제가 몇 번이나 말했나요! 전 한지아 씨를 건들지 않았다니까요? 그 피도 제가 낸 게 아니에요. 전 그냥 한지아 씨를 살려줬을 뿐인데 한지아 씨를 건드렸으니 지금 저더러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가요? 양심이 있어요? 사람 맞아요? 앞으로 나한테 이딴 말을 할 거면 연락하지...”“애 아빠가 될 준비 하세요!”한지아는 그의 말을 자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젠장!'박진성은 막무
다음날이 되자 임효정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박진성의 모습이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빠르게 들려오는 기쁜 소식에 기분이 바뀌어버렸다.그녀는 예전에 하성 제약 본사에 찾아가 금액이 2조에 달하는 협력 계약서를 받아낸 적 있었다.그 말인즉슨 그녀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제약 회사 효성 제약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고 더 큰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였다.이 기쁜 소식을 집안에 알리자 많은 친척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었지만 유독 깁스를 한 임동우만이 표정을 한껏 찌푸리
박진성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회의실에서 나왔지만 한지아의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분명 그 피는 한지아가 제 몸 관리 하나 못해서 나온 피였지만 그의 탓이라고 하면서 책임지라며 억지를 부리지 않는가.다만 조금 의외였던 것은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한지아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남자를 휩쓸고 다니게 생겼지만 사실은 순정녀였다.그러나 임효정은...겉모습은 도도하고 시크한 사람이었지만 침대에선...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역시 여자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모습
비록 이건 박진성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기 연마의 세 번째 경지까지 다다른 실력이라면 이 정도는 껌이었지만 그 과정이 복잡했다.게다가 그의 의지력을 테스트하는 일이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박진성의 얼굴엔 땀으로 가득했다.그의 얼굴과 목, 팔에는 손톱에 할퀸 자국이 아주 많았다. 그것은 전부 한지아가 할퀸 것이었다.다만 독소가 조금씩 빠져나오면서 한지아는 저항도 점차 잦아들었고 그를 잡는 손톱에 힘도 풀려가고 있었다....황씨 가문 정원.같은 시각 황명훈은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안색이 좋지 못했다.이를 빠득 갈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