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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화

작가: 빨간 토마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5-01-07 15:57:59
매끄럽고 하얀 다리에 얇고 반투명한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아름다운 라인이 드러났다.

그 순간 박진성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키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박진성을 몇 번 훑어보더니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보라색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요염하고 섹시하면서도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얼굴은 또 어찌나 예쁜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었다. 깨끗하고 맑은 두 눈은 영혼을 홀리듯 매혹적이었다.

“박진성 씨? 안녕하세요, 한지아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이미 말씀하셨죠?”

한지아는 웃으면서 박진성에게 악수를 건넸다.

‘한지아?’

박진성은 잠깐 멈칫했다.

‘한씨 가문의 아가씨였구나. 역시 남다른 미모를 지녔어.’

“안녕하세요. 박진성입니다.”

박진성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이 너무도 좋았다.

“진성 씨, 저희 용성 그룹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어요. 부디 진성 씨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한지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영감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박진성은 옆의 낡은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먼저 집에 다녀오고요.”

‘기다리라고?’

한지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내가 친히 부탁하러 왔는데 기다리라고?’

하지만 박진성은 할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었기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박진성은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그와 임효정의 신혼집이었는데 아주 낡고 허름했다.

그의 도움 덕분에 임효정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2년 전에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이 낡은 집은 박진성에게 주었다.

박진성은 집으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딸을 위해 만든 형형색색의 옷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그는 옷을 정리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슬픔이 극에 달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리더니 유미옥 모자가 들이닥쳤다.

“박진성, 박진성.”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박진성이 차갑게 물었다.

“쓸모없는 놈이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임동우는 씩 웃으며 손에 든 글씨를 가리켰다.

“이거 네가 쓴 거 맞지?”

‘고진감래?’

박진성은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는 서로 얼굴을 보며 기뻐하면서 돈줄을 보듯 박진성을 쳐다보았다.

“서예 솜씨가 좋네. 일자리도 없는 네가 불쌍해서 선심 좀 쓰려고. 매일 글씨를 써 주면 월급으로 40만 원씩 줄게. 어때?”

임동우의 꿍꿍이에 박진성은 코웃음을 쳤다.

‘한 글자에 수천만 원인데 한 달에 고작 40만 원을 준다고?’

“관심 없어. 그만 나가.”

박진성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임동우가 버럭 화를 냈다. 유미옥은 재빨리 그를 말리고는 박진성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성이 너 그래도 우리 사위잖아. 몇 글자 좀 쓰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동우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들어주면 안 돼?”

“사위? 난 임효정과 이미 이혼했고 당신들과도 이젠 남남이에요.”

박진성이 싸늘하게 웃자 유미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은혜도 모르는 놈, 벌써 장모를 잊었어?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써야 해!”

“당장 꺼져!”

박진성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X발, 죽고 싶어?”

임동우는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박진성에게 던졌다. 박진성은 몸을 살짝 피했고 임동우는 중심을 잃은 나머지 넘어질 뻔했다.

그때 눈치 빠른 유미옥이 재빨리 옷 옆으로 달려가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박진성, 오늘 우리한테 글씨 천 자를 써주지 않으면 네 딸 옷을 전부 불태워 버릴 거야.”

임동우는 라이터를 들고 달려가더니 곰돌이 인형을 들고 박진성 앞에서 흔들었다.

“이 자식아, 쓸 거야, 말 거야?”

라이터 불꽃이 곰돌이 인형에 점점 가까워졌다. 곧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곰돌이 인형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짐승만도 못한 놈.”

박진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임동우의 뺨을 후려쳤다.

짝.

그대로 나가떨어진 임동우는 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피가 났다.

박진성은 재빨리 달려가 곰돌이 인형에 붙은 불을 껐다. 하지만 이미 다 타버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순간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겨우 일어선 임동우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

열 대 넘게 맞고 나니 얼굴이 퉁퉁 부었고 이 두 개가 튕겨 나갔다. 코와 입에서 피가 솟구쳐 차마 눈으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감히 우리 동우를 때려? 절대 가만 안 둬!”

유미옥은 소리를 지르며 하이힐을 벗더니 날카로운 뒷굽으로 박진성의 눈을 찌르려 했다.

박진성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밀어버리자 유미옥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꺼져.”

박진성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핏발이 선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악마를 방불케 했다.

“철수 형님, 빨리 올라와요. 나 이놈한테 얻어맞았어요.”

임동우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동네 건달이었던 임동우는 돈이 생기자 더욱 잘난 척하면서 불량배들과 어울렸다.

잠시 후 문신을 한 남자가 불량배 수십 명과 함께 들이닥쳤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이었고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다.

“저 자식을 죽여버려.”

임동우는 박진성을 가리키며 무섭게 소리쳤다. 그러자 불량배들이 흉기를 들고 박진성을 포위했다.

“흥.”

박진성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없이 가슴에 있던 펜던트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펜던트 표면에 있던 구렁이 모양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용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 모양의 펜던트였다.

용 펜던트를 보던 박진성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오랜 친구야, 3년이나 봉인해서 정말 미안해... 이젠 용이 깨어날 때가 됐어. 용주가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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