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떠나고 예천우의 모습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금 임완유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그는 가슴이 너무 아팠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하지만 방금 그 상황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기만 한다면 그건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 되고 아주 쉽게 발각될 것이다.임완유는 눈물을 흘리며 차로 돌아갔다.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 통곡했는데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핑 돌게 했다.그녀가 너무 오래 울고 있었던 탓인지, 예천우의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인지 예천우는 이미 차 부근까지 와서 임완유의 상태를 보게 되었다.심지어 그는 임국종 일행보다 더 빨랐다. 임국종 일행도 인제야 여기 나타났기 때문이다.임완유는 가족들이 오는 것을 보았는지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차에 시동을 걸고 자리를 떴다. 부모님과 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와중에 임국종 일행은 임완유를 찾아서 잘 설득할 생각이었다. 임완유가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잘해보자고 하면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게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여 어찌 됐든 한번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임완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심지어 핸드폰을 꺼버렸다.유은수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완유가 나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용왕 사위를 잃게 되는 거잖아요.”“닥쳐,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기나 해?”임국종은 화가 났다.“왜요? 그럼 아니에요? 완유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예천우는 영원히 우리 사위가 못 되는 거잖아요.”유은수가 큰 소리로 반박했다.“너, 너는 조금이라도 완유한테 관심을 줄 수는 없어?”“누가 관심을 주지 않는 대요? 저는 항상 완유를 생각했어요. 완유가 무병장수해서 100살까지 살았으면 해요. 아버님, 예천우의 마음을 못 돌렸다고 해서 그 화를 저한테 푸시면 안 되죠.”유은수도 서운했다. 지금 자신은 할 수만 있다면 날아가서 완유를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어떻게 관심하지 않는다고
한참이 지나 임완유는 무슨 생각인지 차에서 내려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장면을 회억하면서 몇 번 방인지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때 그녀가 예약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에 대해서 임완유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임완유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냥 집에 가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예천우라는 이름으로 그날 예약한 방이 어느 방인지 물었다.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건 고객의 개인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임완유는 바로 현금 200만 원을 건넸다. 마침 그날 예천우가 자신의 이름으로 방을 예약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찾지 못했을 것이다.“1006번 방입니다.”“그 방 아직 비어있어요?”임완유가 물었다.“네, 아직 비어있습니다.”직원은 이렇게 아름답고 돈도 많고 완벽해 보이는 여인이 도대체 뭘 하려는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체크인하려고 하는 건지 불륜이라도 잡으러 온 건지 아리송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오늘 밤 그 방에 입주하겠어요.”“알겠습니다.”직원은 빠르게 입주절차를 마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방키를 건넸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름답고 돈 많은 완벽한 여자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임완유는 방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문 앞에 서자 자신이 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 하는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고 방키를 꽂은 뒤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이 방안의 공간은 아주 컸고 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임완유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망연한 표정이었다.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이건, 천우?’캐주얼한 차림의 예천우가 그녀 앞에 꼿꼿하게 서서 절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계속 거기 서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아니야, 천우는 아직 천궐1호별장에 있어.
예천우는 순간 멍해졌다.‘이 바보 같은 애가 이걸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서서 꿈을 꾸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임완유는 아마 이 모든 게 환상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그녀가 다시 눈물을 흘리자 예천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바보야, 울지 마. 꿈이든 아니든 나 여기 있잖아.”“거짓말하지 마. 꿈에서 깨면 넌 사라질 거잖아.” 임완유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눈 좀 떠서 제대로 봐봐. 꿈 아니고 진짜야. 네가 너무 슬퍼 보여서 호텔까지 따라온 거야.”임완유는 예천우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익숙한 얼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 순간, 그녀는 뭔가 깨달은 듯 그의 얼굴을 세게 꼬집었다.“아! 아파! 왜 꼬집어?” 예천우가 어이없어 웃으며 물었다.“진짜네! 너!” 임완유가 비로소 믿는 듯 중얼거렸다.“당연히 진짜지. 내가 왜 널 속이겠어.”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슬퍼하는 게 신경 쓰여서 따라온 거라고. 호텔 방도 너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예천우는 임완유가 호텔 측에 방 번호를 물어 볼 때부터 그녀가 호텔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천우의 능력으로 방 카드 없이도 손쉽게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임완유는 자초지종을 알게 되자 곧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넌 이제 양씨 가문의 딸이랑 결혼할 사람인데. 나한테는 왜 온 건데?”예천우는 한순간 멍해지더니 쓴웃음을 지었다.“그냥... 네가 너무 슬퍼 보여서.”“슬프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임완유가 차갑게 대꾸했다.그러자 예천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사실은 너한테 꼭 말하고 싶었어. 요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 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거라고.”“어쩔 수 없었다고? 넌 용왕님이잖아. 누가 감히 네가 싫다는 일을 강제로 시키겠어?” 사실 임완유도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몰랐다. 지금의 예천우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예천우는 그동안 양체은에게 상처를 줄까 주저했지만 오늘 임완유의 슬픈 모습을 보고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결심했다.‘완유를 이렇게 슬프게 놔둘 순 없지.’“그래도... 괜찮아.” 임완유는 여전히 불안했다. 혹시 자신의 선택이 예천우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예천우와 양체은이 진짜 부부가 되는 건 더 두려웠다.“괜찮아,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 화 풀린 거지.” 예천우는 임완유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보고 농담하듯 말했다.그러자 임완유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아직 화 안 풀렸거든! 아무 말도 안 해서 정말 나 혼자 버려진 줄 알았잖아.”“그럴 리가. 네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괜히 말해서 너한테 해가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알아.” 임완유는 예천우의 말을 자르며 갑자기 용기를 내어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려 하자 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딜 가? 키스해 놓고 도망가려는 거야.”예천우는 완유의 허리를 감싸안고 그녀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다. 완유는 예천우의 품에 안겨 자신도 모르게 그의 넓은 어깨를 붙잡았다.둘은 서로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고 임완유는 예천우의 품에 안겨 서서히 누웠다. 옷은 이리저리 흐트러졌고 어느새 그녀의 하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눴다.그런데 호텔 맞은편 고층 빌딩 창가에선 단아한 여인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사모님, 왜 도련님과 완유 씨가 헤어졌으면 하면서 이렇게 만나게 그냥 두신 건가요?” 그녀 옆에 서 있던 한 여자가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자기 선우서림이야말로 예천우와 어울리는 사람이라 여겼다. 임완유도 양체은도 모두 예천우와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여인은 선우서림을 그윽이 바라보며 조용히 답했다.“임완유를 막는 건 임씨 가문에 주는 경고일 뿐이야. 임씨 가문 따위가 내 아들을 모욕할 자격은 없지. 천우가 완유를
예천우는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몰래 계획했던 일들을 어머니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다음 날 아침, 커튼을 뚫고 들어온 따스한 햇살에 임완유가 살며시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천우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어젯밤 일은 꿈이 아니었다.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는 기억이 흐릿했지만 어젯밤의 순간들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설렘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어젯밤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예천우가 먼저 다가오긴 했지만 결국 자신도 그 상황에서 꽤나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굴던 순간이 떠오르자 임완유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내가 어젯밤에 무슨 짓을...’ 부끄러움이 밀려온 임완유는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그러자 예천우가 다가와 코끝을 살짝 건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바보야, 다 깼으면서 왜 자는 척해?”임완유는 계속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분명 내가 깬 줄은 모를 거야...’“무시하는 거야? 그럼 어젯밤이 부족했나 보네.” 예천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임완유를 끌어안았다.임완유는 깜짝 놀라 얼굴이 더 빨개졌다. 옷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어젯밤처럼 계속하려고. 네가 좋다고 했잖아.” 예천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임완유의 긴 두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걸쳤다.“안 돼! 아...”임완유는 예천우의 품에서 더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두 사람은 다시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한편 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임완유가 집에 돌아오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만 돌아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임완유는 연락도 닿지 않고 계속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다.그 와중에 임선호가 외출했다가 예쁜 여자 친구와 함께 돌아왔다. 그 여자는 동성시에 있는 허씨 가문의 딸, 허가연이었다. 허씨 가문은 평범한 가문이 아니었다.허씨 가문은 비록 4대 가문에 미치지 못했지만 수천억에 달하는
“그건 아닐걸? 요즘 형부한테 잘해주고 있잖아. 혹시 형부도 이제는 너를 다르게 볼지도 모르지.”“됐어요. 제가 처음 형부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기억도 안 나세요?”“아이구, 우리도 그때 잠시 눈이 멀어서 네 말을 안 믿었잖니. 그래서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거지.”임국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할아버지, 이제 와서 그 얘기해 봐야 소용없어요. 제가 뭐랬어요? 분명 후회한다고 했잖아요.”임선호는 답답한 듯 말했다. 예천우가 아직 가문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았을 텐데, 예천우는 그 용국의 예씨 가문조차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손씨 가문 쯤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오빠, 안 되면 그냥 돌아가도 괜찮아요. 제가 가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허가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작고 귀여운 인상에 사랑스러운 분위기와 날씬한 몸매까지 갖추고 있어 임씨 가문에서도 그녀의 집안과 외모를 무척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안 돼, 이런 건 남자가 나서야지.”임선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쩔 수 없으면 형부한테 부탁해 볼게요. 누나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 도와줄지도 모르니까.”여자친구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었다. 바로 떠날 준비를 하던 그는 문득 무언가 떠올라 물었다.“참, 누나는 어디 있어요?”“그게...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유은수가 어젯밤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일부는 생략했다.“뭐라고요?”임선호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전혀 몰랐기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예천우가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한다니!“아직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얼른 누나부터 찾아야죠!“임선호는 다급하게 외쳤다.“우리도 찾고 있어, 전화도 안 받아.”임국종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임선호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임완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 좋게도 전화가 바로 연결되었다.임완유는 마침 예천우와 행복한 시간을 마치고 가족들이 걱정할 수도 있다는 생
“엄마!”임선호가 다급하게 외쳤다.“지금 누나까지 귀찮게 할 순 없잖아.”“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네 누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러면서 가연이를 네가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야?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할 생각이야?”유은수는 일부러 큰 소리로 꾸짖었다.임선호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임완유에게 말했다.“선호야, 무슨 일인데 그래?”“누나가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그래도 지금은 정말 방법이 없어.”임선호는 허가연의 집안 문제를 간략히 설명했다.얘기를 다 들은 임완유는 슬쩍 예천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예천우가 자신의 가슴 쪽을 보고 있는 걸 느끼고 얼굴이 확 붉어졌다.“뭐 하는 거야.”임선호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세히 들을 틈은 없었다.“누나, 괜찮아?”“응, 괜찮아. 걱정 말고 이건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볼게.”임완유가 말했다.“응, 고마워, 누나!”임선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갑자기 허가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큰일 났어요! 오빠가 천해시에서 직접 오고 있어요. 저를 데려가려고!”임선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예상 밖이었다.“걱정하지 마. 일단 숨어.”“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 오빠 성격 알잖아요. 제가 임씨 집안에 있는 걸 알면... 저를 못 찾으면 온 집안을 뒤집어 놓을 텐데.”허가연은 고개를 저었다.그 말을 들은 유은수는 서둘러 말했다.“괜찮아. 우리가 그 사람이랑 말다툼할 필요는 없어. 선호야, 어서 가연이 데리고 나가.”유은수는 미래의 며느리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지켜주려는 모습이었다.임선호는 잠시 고민했지만 유은수가 상황을 잘 처리할 거라 믿고 말했다.“그럼 부탁할게. 엄마. 가연아, 우리 가자.”어떤 일이 있어도 허가연을 손씨 가문에 보낼 순 없었다.임선호가 그렇게 말하자 허가연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하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는 곳에 숨었다. 일이 커지면 바로 대응할 준비를 하기 위해 근처에 남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이해해 주니 임완유는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천우야, 예전에 내가 얼마나 철없었는지 몰라. 자꾸 널 의심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하고... 정말 나한테 화 안 나?”“화났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이혼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거 다 알아.”그 말을 들은 임완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고마워!”“계속 칭찬해 줘. 난 체력도 정말 좋잖아.”“뭐야? 이런 사람이었어?”“왜? 난 그냥 체력 좋다고 한 건데. 설마 딴생각한 거 아니지?”임완유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워했다. 오늘만큼은 회사 대표다운 모습이 아니라 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수줍어 보였다.오해를 풀고 나서 예천우는 외부에 그들의 관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당부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헤어진 사이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한편, 그 시각 임씨 저택에는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앞장선 청년은 건장한 체격에 기세가 매서웠다.“임선호! 그 멍청한 놈 당장 끌고 나와!”화가 잔뜩 난 허광이 소리치며 저택으로 들어섰다.임선호를 모욕하는 소리에 유은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허씨 집안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 섣불리 대응할 수도 없었다.“선호는 지금 집에 없어요. 내가 그의 어머니인데 무슨 일이죠?”“너 같은 사람이 알아서 뭐 하게?”허광은 비웃으며 말했다.“경고하는데 당장 임선호와 허가연을 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거야.”유은수는 모욕을 당하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아들을 위해 침착하게 말했다.“도련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동생분 가연 씨는 여기 없어요.”“가연이가 없다고? 내가 가연이 오빠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그건... 그게... 그냥 추측한 거예요.”“추측? 웃기지 마! 우리 허씨 집안이 강해서 네 아들이 내 동생한테 빌붙은 거 아니야? 하지만 너희 집안 수준으로 그럴 자격이 있을 것 같아?”허광은 조롱 가득한 표정으로 침을 튀기며 유은수를
진은수의 강렬하고 압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순간 멍해졌다.자연스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 위풍당당한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의 움직임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을 보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손승우는 그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과연 위무권관의 관장 진은수였다. 진은수는 일반 권관의 관장이 아니었다.그의 문하 제자 중에서도 보통 신분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각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조차 그에게 자녀를 맡길 만큼 그의 권위는 대단했다. 허광호 역시 그의 제자 중 하나였으나 다른 진정한 고수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그렇다고 해서 손씨 가문이 진은수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손승우가 그에게 깍듯하게 대했던 건 어느 정도의 존경심 때문이었지 손씨 가문이 진은수에게 굴복할 정도는 아니었다.손승우는 그저 진은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약간의 예의를 지켰을 뿐이었다.지금 진은수가 예천우를 위해 나섰다는 상황에 허씨 가문 사람들 또한 놀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허광호는 경외의 눈빛으로 나서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고개를 숙였다.“사부님, 오셨군요!”진은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을 뿐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예천우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허성태도 공손하게 그에게 인사했다.“진 관장님, 안녕하세요!”그는 허성태의 인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마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인 듯 무시하는 태도로 곧장 예천우에게 다가갔다.이 모습을 본 임완유와 임선호 남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진은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정체와 위압감에 놀란 두 사람은 진은수가 자신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손대우의 얼굴이 확연히 변해 있었다.허씨 가문 사람들 또한 존경의 눈빛으로 진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보니 진은수는 확실히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임이 틀림없
“아까 했던 말씀 기억 안 나세요? 분명 사모님은 우리 허씨 가문을 순식간에 없앨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강한 가문도 상대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보고 어쩌라는 말씀이죠?”“너!”강지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주성한이 더 이상 손승우를 때리지 않고 멈췄다. 예천우가 멈추라고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더 때렸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때 손승우의 얼굴은 이미 맞아서 본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형체가 망가졌다. 그나마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였다. 주성훈이 완전히 제어하지 않고 때렸다면 그 실력으로 두어 번만 더 때렸어도 손승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손승우는 자신이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왜 고작 몇 사람만 데려와서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됐을까? 차라리 경찰이나 다른 고수를 데려왔다면 이렇게 어린 녀석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주성한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서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천우 씨, 말씀하신 대로 다 처리했습니다.”“아주 잘했어요.”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죠. 이 정도면 주성한 씨의 실수는 없었던 걸로 해줄게."“감사합니다. 예천우 씨!”주성한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대인배답게 용서해 주는 예천우의 아량에 그는 깊이 감동했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주성한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손씨 가문의 보복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래요. 가보세요.”예천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허씨 가문의 사람들은 예천우가 주성한을 쉽게 보내는 것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순순히 따르는 주성한을 왜 그냥 놓아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천우가 주성한을 이용해 손씨 가문을 상대하지 않으니 예천우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주성한이 남아 있다면
이 말에 모든 사람이 다시 멍하니 얼어붙었다.허광호와 허종우는 입을 떡 벌린 채 예천우가 곧 손씨 가문의 주성한에게 혼쭐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성한이 예천우에게 사과할 줄은 전혀 몰랐다.허가연의 부모들도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허성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설마 주성한이 예천우의 실력을 알아차린 걸까?’손동욱과 강지혜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얼굴이 새파래진 손승우는 주성한을 향해 소리쳤다.“주성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하지만 주성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예천우의 지시를 기다렸다. 예천우는 미소를 띠며 손승우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래도 눈치는 빠른 편이네요. 저 노인네를 심하게 혼내주시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할게요.”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한순간 멍해졌다. 손동욱과 강지혜에게 손을 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손승우까지 두들겨 패라니 정말로 세상을 뒤집겠다는 소리였다.이제 모두의 시선이 주성한에게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과연 주성한이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주성한은 속으로 몹시 난처했다. 그는 손씨 가문의 재력과 권세가 만만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손씨 가문의 재력과 인맥이면 나보다도 훨씬 대단한 고수들을 불러서 날 죽일 거겠지.’하지만 눈앞의 예천우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을 완전히 제압한 이 상대에게 주성한은 지금 예천우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주성한은 이를 악물고 결심을 내렸다. 결국 손씨 가문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그들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었다.주성한이 예천우의 지시에 따라 손승우에게 다가가자 그제야 손승우는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천우가 말한 노인네는 바로 손승우였다.손동욱과 강지혜는 주성한이 예천우의 지시를 따르는 걸 보고 혼란에 빠졌다. 손씨 가문의 권세를 잘 알고 있는 주성한마저 이렇게 나서는 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손승우는 허둥지둥하며 외쳤다.“
임완유는 예천우 덕분에 완전히 달라진 동생을 보며 감동에 젖어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천우야, 정말 고마워.”만약 예천우의 꾸짖음과 조언이 없었다면 동생이 이렇게 책임감 있고 당당하게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다.임선호가 열심히 무술을 연습한 것도 분명 예천우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다.비록 싸움 도중 몇 번 다치기는 했지만 임선호는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상대와 끝까지 맞섰고 치열한 싸움 끝에 마침내 그들 모두를 물리쳤다.예천우가 직접 나섰다면 이 정도 상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임선호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듯 가만히 지켜보았다.그 모습에 임완유뿐만 아니라 허가연의 부모들도 속으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임선호의 실력이 아직 부족할지라도 그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고 그런 끈기와 단호함이 허가연의 부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허가연의 부모는 속으로 어쩌면 임선호가 정말로 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전에 임선호에 대한 정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이제 손씨 가문의 일만 잘 넘어간다면 더는 임선호와 허가연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싸움이 끝나자마자 허가연은 달려가 임선호를 걱정하며 연신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다.임선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이 정도 상처쯤이야.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그 말에 허가연은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반면 임선호가 뿌듯해하는 모습에 손씨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강지혜와 손동욱은 주성한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허씨 가문 사람들이 뿌듯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성한이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주성한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고 분노와 불만이 치밀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고 위로는커녕 비난만 받으니 정말 못마땅했다.오히려 손승우가 황급히 주
주변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전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손씨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허성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 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예천우가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성한이 갑자기 넘어지게 된 것도 어쩌면 예천우가 한 짓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그때 허광호의 전화가 울렸고 사부님이었다. 주성한과 강지혜의 다툼을 뒤로 한 채 그는 서둘러 전화기를 들고 한쪽으로 물러나 전화를 받았다.“사부님!”“그래. 네 아버지가 지금 집에 계셔?”위무권관의 관장인 진은수는 마침 허씨 저택 근처에 있었고 얼마 전에 허성태의 몸 상태를 진단해 주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리며 들를 겸 전화를 걸었다.“계십니다!”허광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서둘러 물었다.“사부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뭐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사부님은 아주 높으신 분이니 사부님 곁에 머물 기회만 주어져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허씨 가문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에 이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 앞으로 좋은 점이 많았다.“별일 아니야. 근처에 있어서 그냥 네 아버지 보러 들르려고.”진은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허광호는 집안에서 난리가 난 걸 언급할지 생각하다가 이내 말을 삼켰다. 사부님의 어마어마한 무공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번에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만약 손씨 가문이 허씨 가문을 공격하려 든다면 사부님이 눈앞에 계시는데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은 동성 4대 가문들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한 인물이었다.위무권관 관장은 동성에서 명망 높은 사람이었다.진은수는 무공이 절정에 달해 언제든 종사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실력자였고 그의 부하 중에는 뛰어난 강자들도 많았다.그래서 누구든지 진은수의 체면을 챙겨줘야 했다.허광호는 지금
허성태는 이 광경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정말 끝났어. 살아남기 힘들 거야.’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심지어 허가연조차 그런 분위기였다.하지만 임선호와 임완유는 달랐다. 특히 임완유는 예천우의 실력을 여러 번 목격했기에 이 정도로는 그를 위협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게다가 예천우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어 더 안심할 수 있었다.예상대로 예천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견과류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 주성한의 다리에 명중했고 주성한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쓰러졌다.원래라면 손이라도 짚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손마저 힘이 빠져 바닥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주변 사람들은 이 광경에 멍해졌다.주성한이 대단한 기세로 예천우에게 돌진했는데 결과는 그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이게 무슨 자세인가요? 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굳이 이렇게 엎드려 절할 필요는 없잖아요?”“이, 이 자식이...”주성한은 속이 뒤집히는 듯했고 뭔가에 당한 게 분명했다.손승우도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 사부님,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일어나서 저 녀석을 박살 내세요!”자신이 돈을 들여 고용한 무술 고수가 이렇게 바닥에 나가떨어지는 꼴을 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주성한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다리와 손의 통증도 마다하고 다시 예천우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그는 예천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러다 예천우가 다시 무언가를 던지는 것을 포착했는데 그게 고작 견과류라는 걸 알고는 경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해도 피할 수 없었다.결국 주성한은 무릎에 다시 견과류를 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새가 되었다.주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아까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꼴이 되니 다들 어이없어했다.손승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
강지혜는 허겁지겁 피하려고 했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걸 다 피할 수가 없었고 결국 머리가 헝클어져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얼굴도 맞아서 약간 고통이 안겨 왔다.강지혜는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소리쳤다.“이 자식아, 두고 보자. 내가 반드시 너를 지옥에 떨어뜨려 줄 거야.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그러자 예천우는 비웃는 얼굴로 대꾸했다.“또 그 소리네요. 역시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더니 쓰레기는 역시 쓰레기네요.”예천우는 강지혜의 협박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주변의 허씨 집안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심지어 허광호마저도 예천우가 어떻게 비참한 결말을 맞을지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예천우를 혼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말았다.그때 누군가 들어와서 소식을 전했다. 손씨 가문의 가주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허성태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고 서둘러 문 쪽으로 향했다.마침내 문이 열리더니 허씨 집안 하인 둘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그 뒤로 험상궂은 얼굴에 강렬한 위엄을 풍기는 한 50대 중반의 남성이 들어왔다.그의 옆에는 날렵한 걸음걸이로 따라오는 노인이 있었는데 걸음 모양새만 봐도 상당한 실력의 고수임이 느껴졌다.그리고 그들 뒤로는 경호원들이 줄지어 들어왔는데 동일한 복장에 강한 기운을 뿜어내며 위압감을 자아냈다.허성태는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손 가주님께서 오셨군요.”“비켜!”손승우는 손동욱과 전화했을 때 이미 허씨 가문이 돕기는커녕 예천우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데리고 허씨 저택으로 쳐들어왔다.예전 같았으면 허성태에게 몇 마디 예의를 차렸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런 모습 없이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러자 허성태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만 곁에서 임선호가 빠르게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허성태는 임선호를 잠시 쏘아보며 손을 뿌리쳤다. 순간적으
“겁먹은 얼굴로 그렇게 초조해하는 것 좀 봐. 그래서 감히 가연이랑 결혼하겠다고 나설 생각을 한 거야?”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네 아버지는 언제쯤 오는데?”“그게... 아마 30분 정도 걸릴 거야.”손동욱의 아버지가 있는 곳은 너무 멀진 않지만 당장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시간이 좀 필요했다.손동욱의 아버지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즉시 오겠다고 했고 그는 다른 고수들을 부르지 않고 직접 와서 예천우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아직도 그렇게 오래 걸려? 너무 느린 거 아냐.”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주변 사람들은 예천우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까지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곧 손씨 가문의 가주인 손승우가 오면 예천우는 분명히 참담하게 당할 게 뻔해 보였다.하지만 예천우는 그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 위의 과일을 보고는 말했다.“시간이 좀 남는 것 같은데... 여기 과일이 꽤 잘 익었네.”“자, 다 같이 앉아서 천천히 먹으면서 기다려요!”예천우는 자리에 앉아 차를 따르고 견과류를 하나씩 천천히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유롭게 임선호와 임완유에게도 자리를 권하며 함께 먹자고 했다. 임선호는 허가연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고 그들은 진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이를 지켜보던 허성태는 깜짝 놀랐다. 왠지 임선호의 매부 예천우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연기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손씨 가문에 감히 대적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예천우가 정말로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허가연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임선호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임완유는 부러운 눈빛으로 허가연을 바라보았다.허가연은 자기 부모와는 달리 진정으로 딸을 위해 생각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하지만 임완유의 부모는 오히려 그녀를 끝없는 위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예천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비참한 결말을
허성태는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결국 여기는 허씨 가문의 집이었으니 말이다.허씨네 저택에서 손동욱과 강지혜가 뺨을 맞았으니 어쩌면 허씨 가문도 역시 연루될 가능성이 컸다.허종우와 허광호도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아서 말문이 막혔다.분노에 찬 강지혜와 손동욱은 벌써 불같이 화가 났다. 특히 손동욱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으르렁댔다.“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어. 그 누구도 너희를 구하지 못할 거야. 나 손동욱이 분명히 말했어!”말을 마친 손동욱은 서둘러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상황을 본 허종우는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너희들은 정말 간탱이가 부었구나. 감히 사모님과 동욱 도련님을 때리다니! 광호야, 뭐 하고 있어? 빨리 저놈들을 잡아!”허종우는 자기가 이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손씨 가문의 고수들이 도착했을 때 불똥이 자신한테 튕길까 봐 두려웠다.허광호도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는 예천우에게 으르렁댔다.“이건 네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 날 탓하지 마!”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사납게 예천우에게 달려들었다.허광호는 위무권관의 관주 진은수에게서 오랫동안 배워 온 무술로 인해 비록 재능은 부족했으나 상당히 강한 내공을 가진 고수였고 지금은 명경 절정의 경지였다. 그는 평범한 상대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였기에 예천우 같은 이 정도 상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안 돼요!”그때 허가연이 재빨리 나서서 허광호를 막으려 했다.그러자 허광호는 더욱 분노에 휩싸였다.바로 그때 허성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광호야, 그만해.”“하지만...”“이 일은 손씨 가문과 임선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야. 우리 허씨 가문 사람은 끼어들지 마.”허성태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지혜와 손동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이미 약속을 한 상태라 부득이하게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그러자 강지혜는 매섭게 허성태를 노려보며 비웃었다.“허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