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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작가: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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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비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동궁에는 그저 끊임없는 갈등이 계속 발생할 뿐이다. 오늘은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덫을 놓고, 내일은 누군가가 수작을 쓰곤 했었다.

“태자비 마마, 뒷마당 우물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양제께서 놀라 기절하셨습니다. 어의가 진찰하니, 이미 회임하신 지 한 달이라 하시더군요. 아이가 불안한 상황에, 이렇게 놀라셨으니 위험할 뻔했습니다. 지금 난리입니다…”

궁녀가 조심스레 보고했다.

사람이 죽었다니, 이는 큰일이었다.

음모와 갈등은 그렇다 쳐도, 사람의 목숨까지 얽히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가 누구냐?”

“도만이라는 궁녀입니다.”

설경각 안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침대에 누워 있는 백양제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부풀어 오른 우물 속 시신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자줏빛으로 부풀어 오른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긴 머리카락은 우물 속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광경은 그녀도 처음이었다.

“욱…”

“양제, 정말 걱정입니다.”

소금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백씨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소금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 힘이 너무 강해 약간 아플 정도였다.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게 분명하다. 회임 한 달인 것을 아는 사람은 설경각 사람들뿐인데, 어찌…”

백씨는 상황이 석연치 않음을 깨닫고 불안에 휩싸였다. 스스로 회임한 지를 알아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수상하게 평소 자주 가던 곳에서 시체가 발견되었고 깜짝 놀란 바람에 아이가 위태로워졌다.

어의는 앞으로 조심히 몸을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그녀는 평탄한 배를 내려다보며 두려움과 동시에 부드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홍운이가 태어난 이후로 아무 소식이 없던 차에, 태자가 다시 회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백양제는 이내 걱정에 휩싸였다. 이제 겨우 한 달인데, 아이의 상황이 위험하니, 앞으로 남은 아홉 달 동안 침대에서 꼼짝 못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안 되겠다. 몰래 설경각 내에서 이 사실을 아는 궁인을 불러 심문해 보거라. 만약…”

그녀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만약 수상한 자가 있다면, 보고할 필요 없다. 바로 죽이거라. 잘못 잡더라도 괜찮으니 절대 첩자를 놓치지 말거라.”

감히 그녀의 아이를 해치려 하다니, 그녀는 그자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소금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잘 감시하겠습니다.”

소금의 말을 들은 그녀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에게는 친정집에서 데리고 온 소금과 화단이 있다. 이들이 지켜 주는 한 그녀는 마음을 놓고 아이를 지킬 수 있었다.

“태자비께서 오셨습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 태자비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백양제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의가 무엇이라 했느냐?”

백씨는 놀란 상태라 누구를 봐도 의심스러웠다. 특히 태자비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일을 이렇게 은밀히 꾸밀 수 있는 사람이, 태자비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망월각의 천한 여인이겠는가?

백씨가 대답하지 않자, 태자비는 시선을 그녀의 곁에 있던 소금에게 옮겼다.

소금이 답했다.

“태자비 마마, 어의께서 마마의 아이가 위태로우니, 잘 쉬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백양제 마마가 놀라신 상태라 아마 지금은 입을 열기 어려울 것입니다…”

태자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백씨 눈에 깃든 경계의 빛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 없이 말했다.

“알겠다. 네 주인을 잘 돌보아라.”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밤이 되자, 설궁각에서 백씨가 진사형의 품에 안겨 눈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전하, 우리 아이를… 잃을 뻔했습니다.”

진사형은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달래 주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 사람을 보내 반드시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겠다.”

백씨는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번쩍 들며 붉어진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첩은 누군가 회임한 것을 알고 일부러 아이를 해치려 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어찌 이렇게 시기가 맞아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진사형은 그녀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의가 말하지 않았느냐? 회임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고, 맥으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누가 이리 빨리 알아내고 일을 꾸밀 수 있단 말이냐… 더는 생각하지 말고 몸조리에 전념하거라.”

그 말은 백씨는 그가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씨는 순간 너무도 서러워져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금세 진사형의 옷깃을 적셨고, 차가운 기운이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백씨를 달랜 뒤, 진사형의 연가는 곧 여월각 앞에 도착했다.

연가 위에는 늠름한 남자가 문 앞에 나와 예를 올리는 태자비 민씨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어둠 속에서 더욱 깊고 신비로워 보였다.

그에게는 조금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태자이자, 문희조의 미래를 책임지고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미래의 군주였다.

“태자비, 동궁에서 살인 사건이 생겼소. 결론이 나왔는가?”

그는 연가에서 내리지 않고 절을 한 민씨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겉보기엔 단순히 궁녀가 자살했거나 실수로 떨어져 죽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이라 칭하는 것으로 보아 진사형은 이를 사고로 여기지 않았다.

궁녀가 자살하는 것은, 가문 전체가 벌을 받아야 할 큰 죄였다.

사망한 궁녀 도만의 기록은 이미 여월각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궁 밖에 가족이 있었다. 늙은 어머니와 어린 조카들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겠는가?

더군다나 그녀의 죽음은 너무 의심스러웠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평소 백양제가 가장 즐겨 찾던 곳에서 죽었다.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듯한 살인과 잔혹한 수법은 누구든 소름이 돋게 했다.

태자비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신첩의 잘못입니다. 신첩이 동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태자비는 진사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궁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겼다.

동궁 내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나 추문 따위에 그는 무관심했고, 굳이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동궁의 안정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지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그는 그 어떤 문제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동궁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사뭇 달랐다.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의 명성에 화를 입힐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진사형이 직접 나선 것이다. 누구 때문이든 상관없었다.

아마도 백씨는 지금 속으로 기뻐하며 태자가 자신을 위해 나섰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태자가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일이 앞에 닥치지 않는 한, 그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민씨가 꿇고 있자, 진사형은 연가에서 내려 일어나라고 짧게 말한 뒤, 곧장 여월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자비도 그 뒤를 따랐다.

그날 밤, 검시관과 어의가 밤새 시신을 검사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거처에 머물며 외출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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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사형은 상전에 앉아 있었고, 태자비는 아래 좌석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검시 결과는 나왔느냐?”검시관은 궁녀가 들고 있는 물 대야에 손을 씻은 후, 몸을 돌려 공손히 대답했다.“예, 전하. 이 궁녀는 익사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목 주변에 깊이 눌린 자국이 있습니다. 이는 분명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살해되었다는 증거입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진사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궁녀의 목을 졸라 죽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느냐?”검시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전하, 아마도 천이나 비단 같은 물건일 것입니다. 하지만…”진사형이 손짓으로 말을 잇도록 했다.“괜찮다.”“그렇게 깊은 흔적을 남기려면 범인이 상당한 힘을 가졌으니, 사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궁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몇 가닥의 실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월영사로 보입니다.”동궁에 있는 사내는 대부분 내시이다.다른 사내나 시위는 동궁에 출입할 수 없으며, 후궁까지 들어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그리고 월영사는... 궁의 공물이라 동궁에도 물론 있었다. 월영사를 조사하면 소유자가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진사형은 곧바로 최근 우물 근처를 오간 내시들을 한 명씩 심문하여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라고 명을 내렸다.명을 내린 뒤 그는 조금 피곤해서, 그날 밤 태자비의 처소에서 묵기로 했다.이 소식을 들은 백씨는 크게 화를 냈다. 화를 입고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태자가 어찌 늙은 태자비의 처소에 가신단 말인가?그녀는 따분한 태자비가 무슨 매력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한바탕 화를 낸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서재 안.흰 비취로 만들어진 향로에서 실오라기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사형은 생각에 잠겨 붓을 들고 있던 손을 멈칫하였다. 이내 먹물 한 방울이 반쯤 쓰던 종이에 떨어졌다.그는 먹물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끼익’하고 문이 열리자, 조전이 허리를 굽히며 들어왔다.“전하, 명하신 조사 결과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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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4화

    “그만하거라.”진사형은 차가운 말투로 더 말하려는 그녀를 가로막았다.“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궁녀의 자결은 큰 죄니, 가족도 모두 처형될 것이다. 동궁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만큼, 앞으로 내외의 순찰을 강화하거라. 만약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순찰을 한 병사는 물론 관련된 모든 이들이 처벌받을 것이다.”그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을 마쳤다.추승휘는 더욱 조급해졌다. 모든 증거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태자가 이렇게 가볍게 넘겨버린다면, 앞으로...그녀의 초조한 마음은 곧 진사형의 시선에 의해 끊겼다. 그의 시선이 옆에 있던 유양월에게 향했기 때문이다.유양월은 줄곧 얌전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검시관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색이 창백해졌고, 자리에 앉아 있는 작은 몸은 바람에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모른다.“이 일은 너와 상관없다... 어서 돌아가서 쉬거라. 특별한 일 없이는 처소를 떠나지 말고, 조용히 지내거라.”그는 말을 마친 뒤 태자비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망월각에 시중드는 궁녀가 너무 적네. 조전에게서 들으니, 고작 네 명이라고 하였소. 궁녀 두 명을 더 보내 시중들게 하시오.”태자비는 유양월을 힐끔 보고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불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유양월은 진사형의 배려에 다소 놀란 듯 보였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의 뜻을 표했고, 눈빛에는 기쁨과 수줍음이 가득했다.“감사드립니다.”쑥스러워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다들 다시 한번 감탄했다.옆에 있던 추승휘는 그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넓은 소매 속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평소에도 유양월이 그저 못마땅했다면, 지금은 더욱 참을 수 없이 미웠다. 태자비는 귀한 신분을 가졌고, 백씨도 우월한 집안 출신에 태자와 오래된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유양월은 그저 천한 여인일 뿐인데, 어찌 그녀와 겨룬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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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5화

    조전이 다급히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내일 궁인을 시켜 물건을 좀 보내겠습니다.”“그래.”진사형이 마침내 만족스럽게 대답했다.조전은 못내 마음속으로 속을 썩였다. 그가 물건을 보내지 않은 것도, 동궁 사람들이 그녀를 막대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태자는... 애초에 유소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셨다. 상전이 신경 쓰지 않으니, 하인들이 어찌 신경을 쓸 수 있겠는가.유양월은 두 사람의 얘기에 신경 쓰지 않고, 얌전히 한쪽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가끔 장난스럽게 고개를 들고 진사형을 몰래 쳐다봤다.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린 진사형은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오라고 했다.“서 있지 말고, 앉거라. 이야기를 좀 나누자꾸나.”“예.”“요즘 망월각 밖에 잘 안 나가는 것 같더구나. 어찌 이렇게 마른 것이냐? 그날 겁을 먹은 것이냐?”진사형의 말은 질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확신에 찬 말이었다.요즘 날이 더워서 그녀는 움직이기도,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무더운 날씨에 입맛을 잃어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그러나 유양월은 이 오해가 오히려 좋았다.“사실... 신첩은 그날 일을 떠올리니, 조금 무서웠습니다.”유양월은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진짜 놀란 것처럼 보였다.진사형은 그녀를 몇 번 쳐다보다 웃었다.그는 그녀가 결국 어린 소녀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내 진사형은 손을 내밀었고 얌전히 앞으로 걸어온 유양월의 손을 잡으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글을 쓸 줄 아느냐?”“그리 많이는 못 씁니다.”“네 이름은 쓸 수 있느냐?”유양월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가르쳐 주셨습니다.”진사형은 한마디 응한 뒤, 유양월의 작은 손을 잡고 내실로 향했다.“양월이라, 네 이름이, 참 좋은 이름이구나. 순수하고 귀여운 성격을 보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걱정 없이 지냈나 보구나. 정말 큰 복이다.”그는 말을 마친 후, 유양월의 눈빛이 잠깐 어두워진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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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6화

    조전은 문밖에서 태자의 웃음소리를 듣고 청유와 다른 사람들을 힐긋 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말했다."잘 모시거라. 네 상전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예."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침대 위, 가림막 안.진사형은 갑자기 명치에 무언가 얹힌 느낌을 받았다. 눈을 뜨고 보니, 깊게 잠든 유양월이 자세가 틀어진 채로 그의 가슴에 한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깊이 잠든 그녀는 분홍색 입술을 살짝 벌여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진사형은 그녀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으나, 완전한 말을 듣지 못했다.그는 유양월의 잠든 얼굴을 보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절대적인 믿음과 그에게 의지하던 그 모습…그녀의 모습이 그를 흔들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그녀가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었고,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절대적인 주동권을 느꼈다.부모를 잃고 동궁에 와서 이미 많은 고생을 겪은 그녀에게 조금의 애정을 주는 것쯤은 큰 일이 아닐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결국 그녀의 손을 떼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새벽, 아직 날이 밝기도 전, 어둠 속에서 진사형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러 겹의 가림막 사이로 궁인들이 다가와 그를 씻겨주고 시중을 들었다.그는 침대 위의 유양월을 힐긋 바라보았다. 가림막 너머로 그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굴곡이 희미하게 보였다.옷을 다 입은 후, 진사형은 태자의 머리 장신구를 쓰고, 다시 전과 같은 고고한 태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도 다시 차가워졌다.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궁인의 주목이 쏟아질 것이다.그는 발걸음을 옮기려다 잠시 멈추고, 입을 열었다.“유소훈을 잘 모시거라. 일찍 일어날 필요 없으니, 좀 더 자도록 하거라. 굳이 문안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히 쉬게 두어라. 태자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청유는 속으로 기뻐하며 허리를 숙였다.“예, 전하.”유양월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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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7화

    소금은 백양제의 눈치를 살핀 뒤, 사나운 표정으로 꾸짖었다."추승휘, 마마께서는 몸조리 중이십니다. 어찌 이런 일까지 신경 쓴다는 말입니까?"추승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들고 백씨의 창백해진 안색을 보니, 무슨 일인지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쁨이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과거 태자가 가장 총애하던 사람은 백씨였다. 백씨는 그의 총애를 내세워 고고하게 지내며 다른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안았다. 지금 그 대우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니…게다가 백씨의 아이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그런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괴롭고 속상했고, 배 속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소... 소금아, 어의를 부르거라… 배가 너무 아프구나..."추승휘는 백씨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한 걸 보고 순간 당황하였다. 그녀는 백씨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고, 백씨의 힘을 이용하여 유씨를 혼내고 싶었지만 백씨의 목숨을 해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설궁각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저녁."태자비 마마, 설궁각 백씨의 아이가 잘못된 것 같다고 합니다..."마마가 낮게 속삭였다.이 말에 태자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날 태자비는 마마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그녀는 태자비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황후이기도 하다. 후궁들 여인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은 품위를 잃는 일이다.게다가 백씨의 아이가 남자일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 아이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찌 갑자기 이런 소동이 일어난 것인가?""들은 바로는, 추승휘가 문안을 마치고 설궁각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의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쿵!’그녀는 옆에 놓인 작은 탁자에 손바닥을 내려쳤다."어리석네!"아이를 지키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시기 질투를 부린다니. 아이도 제대로 낳지 못할 상황에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태자비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명했다."설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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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8화

    유양월은 손에 들고 있던 값비싼 비녀를 바라보았다. 꽃잎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만들어져 있었고 꽃줄기 부분도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 보기만 해도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그 옆에 있는 붉은 보석 귀걸이도 작지만 선명한 붉은 색을 뽐내고 있었다.크기는 일단 둘째 치고 선명한 붉은색만 봐도 찾기 힘든 귀한 것이라 알 수 있었다.부를 누리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유양월은 청유의 말에 무심히 응하고 있었다.청유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청유는 그녀가 진목의 이용을 당하고 힘들게 지내다 태자의 총애를 받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자가 준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태자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청유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유양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마마께서 태자에게 이렇게 빠지셨다니… 동궁에서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일까?태자의 후궁에는 여인이 점점 많아질 테고, 그럼 그녀는…청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녀를 경고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문 앞에 놓인 우미인 꽃은 어느새 다른 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화려하게 핀 석류꽃이었다.화분마다 풍성하게 피어나 있었고, 붉고 화려한 꽃들이 잎 속에 숨어 있었고 한눈에 보기만 해도 마음에 쏙 들었다.유양월은 미소를 지으며 그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핀 석류꽃을 뽑아 손에 들고는 만지작거렸다.그녀는 추씨, 백씨와의 지난 생의 원한을 제대로 정리할 셈이었다.촛불이 흔들리는 병풍 앞.눈을 반쯤 감고 있는 준수한 소년이 탁자 위에 놓인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 앞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가 들렸다."전하.""들어오거라."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차갑게 명령했다."예."들어온 사람은 그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동궁의 도만이... 죽었다는 소식을 오늘 전해 들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그는 책을 잡고 있던 손을 세게 쥐었다. 그는 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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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19화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아랫사람은 의아해했다. 유씨가 동궁에서 총애받고 있다는 것은 주인에게 아주 좋은 일이다. 그들의 계획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텐데, 왜 주인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의 기운이 느껴졌을까?"그럼 유씨에게 소식을 전할까요? 폐하가 보내신 구호금이 상당히 많은데, 그 구호금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동궁에서 아무리 신임받고 있다고 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번 구호금을 책임지는 사람은 태자였다. 만약 유씨가 동궁에서 손을 써서 구호금 운송 경로를 알게 된다면, 이를 이용해 계획을 세울 수 있다."아니다. 따로 계획이 있으니, 일단 움직이지 말거라."진목은 이마를 짚고 손을 흔들어 그를 물러가게 했다.보고를 마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서재의 문을 닫고 두 걸음도 나가지 않아, 안에서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그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평온한 다른 곳에 비해, 설궁각의 분위기는 무거웠다.대황손은 침대 옆에서 괴로워하는 백씨를 보며, 초조한 말투로 말했다."어마마마. 어서 어의를 청하거라. 어마마마께서 이렇게 아프신데, 어서 어의를 부르거라."소금이 다가가 공손히 대답했다."이미 궁인을 보내 어의를 청하러 갔습니다. 곧 도착할 것입니다."진홍운은 시선을 돌려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속으로 초조해했다. 그리고 태자비에 대한 증오가 더욱 깊어졌다.우물 속 그 시체 사건에 대해, 그의 어머니는 줄곧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동궁 내에서 추씨는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유양월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동궁 내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런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태자비라 생각했다.어의가 급히 도착해 진맥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양제의 아이가 위태롭습니다. 전부터 위험한 데다 회임하신 지 첫 달이라 더 상황이 어렵습니다. 혹 낳는다고 해도... 마마께서 심한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백씨는 이 말을 듣고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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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첩   제20화

    내시들이 다급히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고, 다른 내시가 강아지를 잡았다.평안 군주는 조급한 마음에 궁녀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왔다."분명 네가 강아지한테 다가가다 부딪힌 것이다! 어서 놓거라."군주가 급해할수록, 진홍운은 기분은 통쾌했다. 어머니의 고통과,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던 모습을 떠올린 그는 내시 옆으로 가서, 그 강아지를 들고 온 힘을 다해 땅에 내리쳤다.내시들과 궁녀들이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강아지를 바닥에 내리치자, 군주는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를 향해 뛰어갔다.강아지는 이제야 몇 달 정도 된 듯 작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내리치자, 강아지는 계속 아픈 듯 낑낑거리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진평안은 눈시울을 붉히고 진홍운을 꾸짖었다."설이야, 지금 설이를 죽이려는 것이냐."진홍운도 겁먹은 척 눈물을 흘리며 설이를 가리켰다."저 짐승이 먼저 저를 덮쳐 넘어지게 했습니다."두 아이는 이 일로 싸우기 시작했고 궁녀들과 내시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무엇을 하고 있느냐? 군주의 강아지가 다친 것을 보지 못한 것이냐? 지금이라도 치료한다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멀리서 유양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방금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이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지만,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태자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에 생각을 바꾸었다.다들 유양월이 오는 걸 보고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궁인들을 일으켰고 명을 내렸다. 진홍운은 설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쫓아가서 괴롭히려 했지만, 화려한 자수가 수 놓인 신발이 그를 가로막았다.그가 화를 내기도 전, 유양월의 말이 들렸다."멀리서 보니, 황손이 넘어졌더구나. 다쳤는지 모를 일이니, 어서 황손을 데리고 가거라."내시들이 그 말을 듣고 걱정되어 진홍운에게 다가갔다.진홍운은 진평안과 일행이 강아지를 데리고 멀리 떠나는 모습에 내키지 않았지만,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유양월을 노려보다 귀찮은 듯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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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왕의 첩   제40화

    “예.”청유의 답에 돌아온 것은 유양월의 고른 숨소리뿐이었다.여자가 많은 곳은 항상 말썽도 많다. 겉으론 다들 친한 자매처럼 행동하며 화목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서로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었다.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일은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소식은 들었느냐? 대체 어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냐!”진목은 탁자 앞에 앉아 어두운 분위기로 말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의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무릎 꿇고 있던 책사는 몸을 떨고 있었고, 굵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자는 원래... 부인과 관계가 몹시 나빴으며, 심지어는… 혐오하고 증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의 아내를 인질로 잡았을 때,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저희 요구와 계획을 파악한 뒤, 수작을 부리며 저희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진목은 유양월에게서 정보를 얻은 뒤, 즉시 움직였다.그는 그 인물을 이용해 태자의 운송 계획을 방해하고, 심지어 중간에서 빼앗으려 했다.그 구호금은 적은 편이 아니었다. 진목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그의 외가는 평범한 집안이었고, 어머니의 신분 또한 높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지금까지 그는 홀로 힘들게 기반을 마련해 왔다.조정의 신하들은 그를 우습게 보며 그의 손을 거절했고, 허황한 꿈을 꾸는 사람으로 여겼다.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태자는 그동안 거대한 산처럼 그와 다른 황자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태자는 태어나자마자 황후의 곁에서 자랐고 게다가 황후의 외가는 전적으로 그를 지지했다.그는 이런 행운이 정말 부러웠고 질투를 느꼈다!진목은 손에 들린 부채를 꽉 쥐어 손잡이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이번 기회가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힘들게 끌어들인 장군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그 장군은 관직은 높지 않았지만 충직하고 유용한 인물이었다.그런 인물을 이렇게 잃다니!만약 그를 가족으로 협박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은 황제의 귀에 전해져 동궁의 서재에도 전달되

  • 왕의 첩   제39화

    “유소훈.”“지승휘께 문안드립니다.”유양월이 미소 지으며 예를 올렸다.지추연은 다정하게 손짓하며 시녀에게 부축하라 명한 뒤, 급히 말했다.“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동궁에 갓 들어와, 모르는 것이 많소. 앞으로 유소훈께 많이 의지해야 할 것 같소.”유양월은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품계가 저보다 높고, 가문도 훌륭하시니,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실 것이 분명합니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지추연의 부탁을 거절했다.지추연은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겸손하실 필요는 없소. 동궁에 들어온 순간부터 태자께 총애받고 계신다고 들었소. 우리는 전하를 한 번 모신 후, 다시는 뵙지 못했네.”지추연은 말하며 약간 슬픔 표정을 지었다.“전하가 누구를 찾으실지, 저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승휘, 지금 좀 피곤해서 먼저 처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유양월은 말을 마치고, 지추연이 더 이야기를 이어갈 틈조차 주지 않고 몸을 돌렸다.지추연은 여전히 지난 생처럼, 선한 인상으로 수를 쓰려고 했다.하지만 이번 생의 유양월은 그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유양월의 가냘픈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지추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멀어지는 그림자를 차갑게 응시할 뿐이었다.곁에 있던 단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마마, 유씨는 지위가 낮은 데다 무례합니다. 어찌 마마에게 저렇게 대꾸할 수 있습니까?”“지위가 낮다고? 지위가 낮더라도 전하의 총애만 있다면 누가 그녀를 얕볼 수 있겠느냐? 태자비 마마에게 아무리 다가가도 냉정하셨지만, 유소훈에게는 따뜻한 태도를 보였다.”지추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단계는 상전의 매서운 말에 이내 입을 닫았다.곁에 있던 빙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마마, 총애를 받는 유씨가 저희 유상각도 가까우니 유씨와 친밀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총애하시니, 그곳에서 전하를 마주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똑똑하구나.

  • 왕의 첩   제38화

    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사형은 곧장 설궁각으로 향했다. 그를 보자 백씨는 슬픔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고, 애처롭게 눈물을 흘렸다.한때 자신이 아끼던 여인이 슬퍼하고, 그도 아이를 잃은 슬픔이 컸기에 진사형은 한참 동안 그녀를 위로하며 그녀의 처소에서 머물렀다.그 이후 며칠 동안, 그는 매일 밤 그녀의 처소에서 묵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쓸하기만 했던 설궁각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한편, 여월각.태자비는 손에 든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는 자리에, 백씨는 여전히 자리를 비웠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참석한 상태였다.태자비는 별다른 내색 없었다. 유양월은 조용히 새로 들어온 두 명의 여인을 살펴보았다.한 사람은 성이 육이고, 이름은 육함향이었다. 그녀는 이름처럼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겼으며, 외모는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여월각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그녀의 경멸이 담긴 태도를 유양월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다른 한 사람은…“태자비 마마께서 저희를 참으로 너그럽게 대해 주십니다. 집을 떠나 동궁으로 온 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 저희를 잘 챙겨 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이제는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이 사람은 지추연으로, 경성의 종2품 우보사 가문의 딸이다. 육함향의 차갑고 자존감 강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태자비에게 극도로 공손하며 아부를 늘어놓았다.심지어 태자비의 총애를 얻으려는 다른 이들조차 그녀의 재치에 감탄할 정도였다.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가진 그녀는 지추연이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태자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대신 유양월에게 말을 걸었다.“요 며칠 전하께서 바쁘신 데다 백씨를 돌보느라 너의 처소에 가지 못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말거라.”유양월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자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었지만

  • 왕의 첩   제37화

    화단은 완전히 얼어붙은 듯 넋을 잃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교훈 덕분에 그녀는 곧 침착함을 되찾고 서둘러 물 한 잔을 떠와 백씨에게 건넸다.“양제, 물 한 모금 드십시오! 좀 나아지실 것입니다. 어의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으니, 기운도 없잖습니까?”백씨는 화를 내려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어 단숨에 물을 마셨다.물을 마시고 그녀는 긴 기다림을 참아야 했다.지금 그녀의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어의가 분명 편히 쉬며 감정을 격하게 하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했었다.하지만 지금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에서 선명한 핏빛이 넓게 피어났다. 붉은 피를 본 화단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이 마치 목숨을 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여봐라! 큰일이다! 마마께서 위험하시다!”그녀는 체면을 잊은 채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머리에 꽂힌 비녀도 헝클어진 채로 문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우르르 달려왔고, 어의를 재촉하러 뛰어간 하인도 있었다.설궁각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어의가 도착했을 때, 백씨는 이미 창백한 얼굴로 침상 위에 앉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평소 화려하던 그녀의 뺨은 생기를 잃고 창백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은 이전의 거만하고 당당했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어의, 저희 마마께서 갑자기 피를 보이셨습니다. 어서 살펴주세요.”소금이 어의를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어의는 맥을 짚고 상황을 살핀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양제의 유산은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저도 이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아이를 깨끗이 정리하는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문제가...”“뭐라! 아이를 잃는다니! 어의지 않느냐? 어찌 아이가 없어질 수 있단 말이야!”백씨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어의의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손으로 이불을 힘껏 틀어쥐었다.“저는 어의일 뿐

  • 왕의 첩   제36화

    “예, 알겠습니다.”조전은 태자 뒤를 따라가며 마음속 놀라움을 애써 억누르고,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태자는 여인을 탐닉한 적이 없었고, 게다가 여인에게 이토록 신경 쓰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겨우 몇 번 시중을 든 유소훈이 이렇게 빨리 태자의 총애를 받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러나 이것은 유소훈의 비범한 심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그 옥은 태상황이 남긴 물건으로, 폐하에게 하사되었고, 폐하께서 또 전하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을 유소훈에게 주셨다니. 그녀에게 마음을 준 것이 틀림없구나.”태자비는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보다가 멈칫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태자비는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백씨는 항상 교만하고 거만했다. 그녀의 집안 배경뿐만 아니라, 태자의 총애를 받고 황태손을 낳았기 때문이었다.유씨는 출신도, 조건도 백씨와 비교할 수 없었다.그런데도 보아하니, 백씨가 동궁에 금방 왔을 때보다도 더 많은 총애를 받는 것 같았다.태자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는 허 마마에게 눈짓했다.“동궁에 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네.”그러더니 다시 한번 말을 돌리며 말했다.“전하께서 그녀를 좋아하시니, 우리 여월각에서도 무엇인가 준비해야겠네.”허 마마는 이를 듣고 찬사를 보냈다.“마마는 슬기롭고 마음이 넓으십니다. 전하께서 좋아하는 것을 품어주시다니,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전하께서도 그 마음을 감사히 여기실 것입니다.”태자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눈가에 웃음을 담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양제, 조금만 더 드십시오. 하루 종일 식사를 안 하셨습니다.”“배가 아파서 먹을 수 없다!”백양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녀가 들고 온 연유죽을 보더니 짜증스럽게 손을 휘저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녀들이 한데 모여 낮은 소리로 속닥거리며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시끄럽구나!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이냐!”그녀는 크게 소리쳤다.시녀들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었다. 앞장선 시녀가 대답했다.

  • 왕의 첩   제35화

    그는 손을 뻗어 유양월의 가냘픈 허리를 끌어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히며 가볍게 웃었다."네가 동궁에 온 지도 꽤 되었구나. 듣자 하니 태자비를 아주 공경한다고 하더군."총애를 받으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건 분명 장점이었다.유양월은 저녁이 되어 머리의 화려한 장신구를 모두 빼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자연스럽게 풀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녀의 쇄골 위로 흘러내렸고, 이를 본 진사형의 시선이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태자비 마마는 늘 저에게 인자하셨습니다. 당연히 공경해야 하지요."그녀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내 대담하게 하얀 팔을 뻗어 태자의 목을 감싸 안으며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진사형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흐뭇해하며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쓰다듬었다."참하구나. 내가 더 아껴주마."유양월은 그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마음에 들 때면, 무슨 짓을 하든 용납될 것이다.하지만 미움을 받으면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먼지는 적어도 누군가가 쓸어주기라도 하지만, 지난 생 그녀는 사랑받지 못해 모두에게 짓밟혔다.유양월은 진사형의 가슴에 기대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눈빛을 감추었다. 청유와 조전에게 그 모습은 사랑이 넘치는 부부 같았다.진사형은 품에 안긴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양월의 존재를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고, 그는 목이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향했다.이내 또 두사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그날 밤, 망월각은 늦은 시각까지 불빛이 사라지지 않았다.동궁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넘쳐났지만, 미모와 지혜를 겸비하고 게다가 마음마저 맞는 여인은 아마 유양월이 유일할 것이다.다음 날 아침, 진사형은 양팔을 벌려 태감과 궁녀들에게 시중을 맡겼다. 침대에 누운 여인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두어 마디 중얼거리고는 다시 잠들었다.그녀는 방 안의 상황과 다른 이들의 시선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왕의 첩   제34화

    이후 그가 진실을 알아낸다 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누가 감옥에 갇힌 죄수의 말을 믿겠는가? 죄수가 하는 미친 소리를 믿는 자야말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유양월은 가볍게 웃으며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발을 흔들며 얼음 다과를 단숨에 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조금은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청유야, 이게 이렇게 빨리 없어지다니... 수라간에 가서 한 그릇 더 가져오거라.”그녀는 이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청유가 답했다.“마마, 마마께 정해진 몫은 한 그릇뿐입니다. 다 드셨으니 더는 안 됩니다.”유양월은 속지 않았다. 다시 부탁하려던 찰나, 문밖에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말투가 즉시 바뀌었다.“전하께서 나를 총애하시니, 한 그릇 더 먹는다 해도 괜찮다! 전하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데, 어찌 다과 한 그릇을 신경 쓴다는 말이냐?”“맞는 말이다. 다과 몇 그릇으로 빈털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구나.”진사형이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옅은 미소가 서려 있는 표정을 보아, 기분이 좋은 듯했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그것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말이다.하지만 낚인 사람이 그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생각을 마친 그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그는 유양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칭찬했다.“머릿결이 참 좋구나.”미인은 머리카락조차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그리고 유양월이 바로 그런 미인이었다.유양월은 오늘 태자가 다시 망월각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매번 그와 만남을 위해 신중히 준비했다.이제 저녁 식사 시간도 지난 뒤였다. 진사형은 연한 하늘빛이 도는 비단옷을 입고 흰 옥관으로 머리를 묶고 있어 외모가 한층 더 돋보였다. 그의 모습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유양월은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상냥하고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그녀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색상의 옷이 아닌, 헐렁하고 연한 하얀색 치마를 입고

  • 왕의 첩   제33화

    청유가 넘긴 정보는 결국 진목에게 전해졌다. 그는 서신에 적힌 이름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이 사람의 배경을 조사했느냐?"아래에 있던 책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예. 조사해 본 결과, 이 일은 태자 전하께서 계속 관할해 온 일이었습니다. 그가 곡물 운송대에 있으니, 이 정보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진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날카로운 턱선에 냉혹한 미소를 드리웠다. 그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었고, 어두운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유씨는 동궁에서 잘 지내고 있느냐?"책사는 몰래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잘 지내옵니다."그 말을 들은 진목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그의 탁자 위에는 한 폭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 속 여인은 절세의 미모를 지녔고, 얼굴은 선녀와도 같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은 영롱했고 눈가에는 요염함이 넘쳐 흘렸다.진목은 손을 들어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그림 속 여인의 뺨을 쓰다듬었다. 한참 후, 어두운 방 안에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너는 나의 것이다... 유양월.""마마, 우유죽을 드셔보십시오."소금은 뜨거운 우유죽을 들고 침대에 누워 있는 백양제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권했다.요즘 날이 이렇게 더운데도 백양제는 창백한 얼굴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늘 붉던 입술도 창백한 색을 띠었다.백양제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우유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넘어가지 않는구나.""마마,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마마께서 견딜 수 있다 해도 뱃속의 아이는 그렇지 못합니다..."소금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백양제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지더니, 곧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소금아, 이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다들 어미와 아이가 마음이 통한다고 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를 어루만졌다.

  • 왕의 첩   제32화

    청유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말이 많으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니, 최대한 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진사형은 바로 알아차렸다. 동궁은 이번 달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고, 그에게 의지하던 유양월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추측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니,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쳤다.이런 기분은 그가 조회에 나간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다.조회를 마치고 동궁으로 돌아온 진사형은 조전의 시중을 받으며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밖에서 시녀가 찾아왔다. 백양제가 계속 토하고 있어, 태자께 봐달라는 전갈을 전했다.이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구토라니. 백양제는 회임한 지 이제 막 한 달을 넘겼으니 아직 이런 증상이 나타날 단계는 아니다. 게다가 회임 시 구토를 한다면 냄새 때문이거나 먹은 음식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또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었다.조전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사형은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만지며 말했다.“어의를 불러 그녀를 잘 진찰하거라. 곧 보러 갈 테니, 잘 쉬라고 전하거라.”조전은 역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내 시녀에게 말을 전하고 방으로 돌아왔다.어쨌든 진사형은 자기 친자식에 대해 여전히 기대와 연민을 품고 있었다.이전에 백씨를 냉대했으니, 아마 백양제도 그동안 충분히 반성했을 것이다.그날 저녁, 진사형은 백씨의 처소에서 머물렀다.유양월도 이 소식을 접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다른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청유가 말했다.“마마, 그쪽에서 마마께 몰래 구호금을 운송하는 인원의 명단을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용도가 있으시다고...“유양월의 미소가 굳어졌다. 역시나 진목이 요구를 제시헸다.그녀는 지난 생, 진목이 그 명단을 이용해 승승장구를 시작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진사형도 이 일로 황제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과거의 그녀는 애를 써서 이름 하나를 알아냈고, 진목은 그자를 협박하여 구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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