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준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왔다.고월영은 당황한 나머지 낮은 목소리로 빌었다.”현왕 전하……이러지 마세요…… 손……손……”“손이 왜?”강현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자기 손이 지금 어디에 놓여있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알고 있기에 목소리가 거칠어졌다.고월영의 큰 눈이 붉어 졌다.헌데 그가 ‘손이 왜?’라고 하다니, 그의 손이 아직도 나의 그곳을 만지고 있는데……이렇게 가까이서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듣다니.그의 심장 역시 그녀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듯 두 사람의 심장은 함께 두근두근했다.덥다, 더워서 미칠 지경이다.“하아…….” 그녀는 단지 그의 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움직이자 바로 그의 손에서 전해 오는 전율을 그녀는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강현준은 그녀의 신음을 듣자 더욱 흥분해 했다. 그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그녀의 입술까지 전해졌다,고월영은 그의 입술이 자기와 아주 가까이 있다는 걸 의식하였다.그가 좀만 얘기만 하면 두 입술이 바로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이러면 안 돼.저분은 현왕 전하야!“현왕…...하아…...”강현준의 손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고월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그에게 맡겼다.강현준이 천천히 키스했다.솜사탕처럼 달콤한 그녀의 입술은 그에게 다 먹힐 것만 같았다.그는 만족을 모르는 짐승같이 자기 입술로 그녀의 입술은 다 막은 후 자신의 혀를 그녀의 입안으로 넣었다.고월영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움직일수록 그녀의 몸은 그의 몸과 더욱 가까워 지는 것을 느꼈다.또한 현황은 그녀를 꽉 안고 있었기에 그녀는 도망갈 틈이 없었다.그녀의 의식마저 점점 혼란해 지고 있었다.이런 느낌…… 도대체 뭘까? 현우가 그녀의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그의 키스는 격렬했다가 점점 다정하게 변해갔다.그리고 그 가볍게 그녀의 입술은 맛보았다.사람의 입술이 이렇게나 달콤하고 말랑할 수 있구나.현우 같아.현우……고월영은 어리둥절
강현준의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의지와 싸우는 중이다.고월영조차도 그가 지금 많이 흔들리고 있고 숨소리는 점점 더 거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곁눈질로만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그의 손바닥으로, 아직도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것이다.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불안해하고 있었다그를 밀쳐내고 싶었지만, 행여나 자신의 행동이 더 그를 자극할까 봐 두려웠다.“움직이지 마!”강현준은 다시 한번 거친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아까보다 더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그의 외침을 듣자, 그녀는 정말로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그가 빨리 의식을 가다듬고 자신의 몸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지금, 이 상황이 정말로 수치스럽게 느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강현준의 숨소리는 평온을 찾았고, 끝내 그녀의 몸에서 머리를 들었다.머리 숙여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의 큰 눈은 이미 겁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현준이 애써 찾은 평온이 또다시 흔들렸다. “눈 감아, 나 보지 마!” 그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그 눈빛은 그를 하여금 다시 욕망을 가지게 했다.고월영은 눈을 감고 그를 차마 보지 못했다.현왕 전하가 평온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너무 무서웠다.시간이 흐르고 잠시 후. 강현준의 몸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으며, 온 몸의 근육은 모두 활성화 되어 있었다.끝내, 그의 큰 손은 그녀의 몸을 놓아 주었다.아쉬움이 남아 있는 채로.고월영의 몸에서 그의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 쉬었고,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했다.강현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그렇게도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냐?”“현왕 전하……”고월영은 놀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조심스레 자신의 옷을 여몄다.“현왕 전하, 고정하시옵소서.”강현준은 눈을 감았다.고월영은 그사이 그에게서 빠져나왔다.손발에 힘이 풀린 나머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왔다.강형준이 눈을 뜨자, 고월영이 같이 허겁지겁
12명의 말을 탄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밖은 싸움터로 변했다.강현준은 고월영을 자신의 팔에 둘러 안겼다.고월영은 어안이 벙벙해 졌다.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현왕 전하의 팔에 앉다니!그는 한 팔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긴 칼을 들고 있었다. 칼을 지니고 그는 두목의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동생……”두목은 밖의 싸움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 품고 있던 여인을 내팽개치고 재빨리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상황을 살필 생각이었다.이러던 와중에 강현준이 문을 차고 들어온 것이다.두목이 꿈에서도 갖고 싶었던 미인을 안고 말이다!성인 여인을 단 하나의 팔로 안다니! 그것도 그녀를 아주 평온하게 앉아 있게 하다니!그 팔 힘은 정말로 놀라웠다.몇십 년간 산적 두목으로 있었던 그조차도 부럽고 창피할 정도였다.하지만 지금 현왕이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는 건 어떻게 이해하면 될 가.“이놈이 너의 옷을 찢었는데, 넌 어떻게 할 셈이냐?”강현준 손을 들자, 그 긴 칼은 두목의 목을 향했다.그 묻는 상대는 바로 자기 팔에 앉아 있는 고월영이었다.두목은 아직 어안이 벙벙했다“동생, 어찌 고작 이 여인을 위해…… 밖에 사람들은 현왕 사람이더냐?”이럴 수가!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히다니!두목은 쓱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바로 강현준을 향해 돌진했다.강현준이 손목을 한 번 흔들자, 은빛 광채가 지나갔다.‘탕’하는 소리와 함께 두목은 손목에서 전해오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손에 쥐고 있던 칼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말해봐, 저놈의 손목을 원하느냐 아니면 목을 원하느냐?”강현준이 물었다.고월영은 그의 옷자락을 잡고 크게 숨을 쉬고 나서 얘기했다.”현왕 전하, 저놈은 온갖 나쁜 짓을 다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해하였습니다. 저놈의 무공을 없애주시옵소서.”“좋아.”강현준이 긴 칼을 휘둘렀다.“아…아악…!”두목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기 손을 붙잡고 땅에서 뒹굴었다.침대에 있던 여인은 일어나서 앉자마자 이러한
그녀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렇게 무서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아마 그녀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이런 피비린내 나는 장면은 21세기에서, 특히 일반인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현왕 전하…… 저희 이젠……. 더 이상……죽이지 마십시오.”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현준은 “철퇴.”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한 손은 말고삐를 쥐고 한 손으로는 그녀를 안은 채 말을 타고 산속으로 달려갔다.산속 작은 길은 돌아가는 내내 덜컹거렸다.그는 낮은 소리로 얘기를 건넸지만, 그 소리는 저녁 바람보다 차가웠다.“너 계속 전장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전쟁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피로 붉어진 강을 본 적이 있느냐? 온 강물이 모두 붉은색이야. 황토가 모두 붉은색으로 물든 것을 본적이 있느냐? 어딜 가도 어디에 있든 너의 손, 발, 옷은 온통 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들이 죽은 후 시체가 떨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경련을 일으키면서 피를 흘리는 것은? 또한 무수한 사람들이 너의 발밑에 쓰러져 가고,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더 이상 회생할 가망이 없는, 절망에 빠져 고통스레 너를 바라보는 눈을 본 적이 있느냐?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빨리 죽어서 고통을 줄일지언정, 계속 피를 흘리면서 고통 속에서 생명을 며칠씩 부지하다 죽는 것은 원치 않았어.”“그만하십시오!”고월영의 심장은 그의 말로 인해 떨고 있었다.그녀는 알고 있다. 전쟁터는 다 이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하지만 그녀는 전혀 몰랐었다.그 잔인한 정도가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초과하였다는 것을.그녀는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다.측은지심은 누구나 다 있을 수 있다.“아마도 언젠가는 그들 시신 중에 내가 있을 수도 있겠지.”“현왕 전하!”고월영은 머리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이렇게 근거리에서 그의 전체 얼굴은 다 볼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칼날처럼 날렵한
산에서 내려온 후 고월영은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현왕 전하…… 저를 내려가게 해주십시오. 이젠 저 혼자도 걸을 수 있습니다.”“너 걸어서 운조까지 갈 셈이냐?”강현준은 눈썹을 올리더니 얘기했다.”뭐, 혼자서 못 가는 것도 아니지, 그럼 운조에서 만나지.”그러고는 그녀의 허리를 훌쩍 들어 내려주던 찰나, 그녀는 그의 옷깃을 재빨리 잡고, 애원하듯 얘기했다:”저는 이대로가 더 좋을 듯싶습니다. 네,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억지웃음은 그만.”강현준은 비꼬았다.고월영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현왕 전하가 함께 운조에 가는 것만 해도 이미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현왕 전하만 있으면 그녀는 꼭 오라버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오라버니의 생사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그들의 가문 생사가 갈린 일이기도 하기에 한 치의 착오도 없어야 한다.고월영은 자기 몸을 최대한 그의 몸에 닿지 않게 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이리 6일이나 지났다.졸리고 힘들고, 항상 몸을 곧게 펴고 앉아 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미리 앞에서 길의 상황을 살피러 갔던 무사가 돌아왔다.”전하, 이 길은 운조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난기 수림을 지나야 하다 보니 저희 무사들은 괜찮으나, 왕비님은 좀 힘드실 것 같습니다.”“전 괜찮습니다, 해독약을 먹으면 됩니다.”고월영은 하품했고, 그녀의 눈까풀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굳게 펴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그 모습은 실로 우스웠다.무사는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현왕만 바라보았다.“운조의 무고지술은 유명합니다. 소인 추측하건대, 고용기는 그들에게 발목 잡힌 것이 분명합니다.”고월영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당신들 오라버니를 보셨습니까? 그는 지금 어떻습니까?”무사는 약간 의아했다.왕비는 분명 아까 거의 잠든 모습이었는데, 고용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하긴 왕궁에
키스라는 건 너무 신기했다.처음엔 그냥 살짝 맛만 볼 생각이었지만, 키스하다 보니 그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이 깊어져만 갔다.키스하다 보니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너무 더웠다. 마치 단련 받지 않는 야수처럼, 천천히 그것이 불타오르고 있었다.정신 차리고 그녀 역시 참지 못하고 같이 응대하고 있었다.이 키스는 부드럽던 데로부터 차츰 거칠게 변해갔다.마치 현우가 그녀를 가질 때처럼.처음엔 부드럽다가 마지막엔 그녀가 진땀이 다 빠질 정도였다.현우……고월영은 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그의 목을 감쌌다.현우의 숨소리야.현우가 드디어 그녀의 옆에 돌아왔다.의식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그녀는 그를 즐겁게 하려고, 조심스레 혀를 그의 입 속으로 넣었다.그녀가 같이 호응해 주자, 그의 몸은 더 뜨거워졌다.그의 큰손은 그녀의 옷을 열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천천히 키스해 내려갔다.고월영의 심장은 떨렸다. 이런 일은 그녀는 아직 다소 두려웠다.매번 현우는 자신을 자제하지 못한다.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매번 아팠다.남자의 입술은 내려갔다.가슴을 애무하면서.고월영은 고개를 들어 긴 손으론 그의 머리를 감쌌고, 그를 밀어내기는커녕 그를 더 꽉 안았다.“덥다……”강가의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두 다리는 시원함을 느꼈다.고월영은 지그시 눈을 떴다.다리는 그를 인해 벌려졌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부끄러워 다리를 붙였다.밀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불안해했다.“현우……”그 소리를 듣자, 남자가 멈추었다. 고월영의 숨소리는 고르지 않았고, 점점 밝아져 오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그들은 어디에 있지?멀지 않은 곳에 강물이 흐르고 있고,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했다.그는 그녀의 품속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그의 몸은 너무 무거웠고, 그녀 어깨의 상처는 아직도 아팠다.조금만 힘을 써도 그녀는 어깨가 아플 정도였다. 고월영은 눈썹을 찌푸린 채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움직이지 마!” 그녀의 몸 위의 남자는
그녀는 두려워 또 울기 시작했다.이 시각 그들은 강가에 앉아 있고, 몸엔 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조용히 울고 있었다.울음소리 하나 없이 그냥 묵묵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강현준은 태양혈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시끄러웠다.“너 스스로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그래서 난 너도 나를 원하는 줄 알았다.” 그도 고의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었다.물론 그는 그녀를 원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잠든 사이 갖고 싶지는 않았다.잠들어 있는 여인을 갖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는 그녀가 깨어 있을 때 그녀를 갖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거짓말로 그녀를 갖는 것이 아니라!“전 현우 전하 이신 줄 알았습니다.” 고월영은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목소리는 지쳐 쉰듯했다. 그녀는 현우가 자신을 안고 있는 줄만 알았다.그들 둘은 왜 이렇게도 닮았을까?가끔은 미인점은 그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느낌이었다. 숨소리마저 똑같았다.하지만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랴!“그것 역시 너의 문제다. 그놈이 나랑 무슨 관련이 있느냐, 대체 왜 우는 것이냐?”그녀가 우는 것을 보면 그는 시끄러웠다.심장은 답답했다. 차라리 칼에 베이는 편이 그녀가 우는 것을 보는 것보다 편했다.그녀는 현우에게 미안했다.그녀가 다른 사내를 품고 같이 호응하다니……“울지마라.” 강현준의 목소리는 갑자기 낮아졌다.고월영은 놀라서 자기 무릎을 꼭 안았다.그녀는 정말 절망적이었다.미안하고, 불안하고, 그리고 앞으로 현우를 어떻게 보지?강현준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울지 말라고 하니까 왜 더 서럽게 울지?고의적인 것인가?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는 단칼에 베고 떠났을 것이다.다른 사람이 그의 앞에서 이렇게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지만, 이 여자는 벨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울지마라.”강현준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졌다.하지만 고월영은 계속 그를 모른 척했다.그녀가 울면 그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강현준은
강현준은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고 가슴은 이상하게도 아팠다. 그는 강가에 가서 강물로 얼굴을 씻었다.고월영은 눈빛은 그의 손에 머물렀다.그 긴 손이 아까……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직도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녀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모았다.마음은 무거웠다.비록 그들이 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현왕 전하의 손이…… 이미 자신을 다 만졌는데, 이것이 몸을 섞지 않은 것과 뭐가 다른 것이 있느냐?이후에 현우를 만나도 그녀가 이렇게 방탕할 수 있을까?고월영도 가까이에 있는 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강처럼 평온할 수 없었다.그녀는 돌아가서 현우에게 다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현우가 그녀를 용서해 주든 안 해주든, 그녀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이 먼저 그에게 미안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 모든 건 오라버니를 구한 뒤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그녀도 손을 뻗어 강물로 얼굴을 씻으려고 했다.측면으로 강현준의 얼굴을 보았을 때 눈길은 그의 얼굴에 있는 상처에 머물렀다.이 상처는 분명 가짜인데, 왜 강물에 씻겨지지 않지?정말로 진짜 같이 느껴졌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갔다.”현왕 전하……”“나한테 다가올 용기도 다 있네?”강현준의 언짢은 감정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고월영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이없이 말했다.”현왕 전하께서만 절 속상하게 하지 않으시면, 예전에 일은 모두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차후 현우 전하께 모두 진실대로 얘기하겠습니다. 만약 현우 전하께서 저를 버리신다면 저는 장군부에 돌아가서 다시는 당신들의 생활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강현준은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그녀는 진심이었다. 이미 버려질 준비까지 마친 듯했다.그런 모습에 그는 속상함을 참지 못했다.“현우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평생 안 버릴 것이다. 넌 이미 현왕부의 사람인데, 감히 어딜 가려고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