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희가 경악으로 인해 전혀 반응을 하지 못하는 순간, 고월영은 손을 뿌려 손에 있는 은침 세 개를 무안희의 심문을 향해 쏘았다."너..."무안희는 어디 생각이나 했겠는가?그녀가 죽음에 맞서더라도 자신을 다치게 하려 하다니!무안희는 놀라서 무의식 간에 장검을 내렸고, 발걸음을 옆으로 옮겨 그 세 개의 은침을 피하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뜻밖에도 다른 세 개가 앞으로 날아왔다.이 죽어도 마땅한 천한 계집!‘틱틱틱’ 세 소리에 무안희는 은침 세 개를 쓸어버렸다!고월영에게 손을 쓰려는 순간 고월영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녀가 은침을 피하는 틈을 타 그녀 앞으로 달려왔다.그리고 단번에 그녀의 몸에 달려들었다."윽-"무안희는 ‘펑’소리와 함께 부딪혀 바닥에 넘어졌고 심문에는 분명히 은침 하나가 꽂혀 있었다.명치가 격렬하게 아팠고 무안희는 입을 벌려 선혈을 토해냈다.그녀의 손바닥은 고월영의 어깨에 닿았고 고월영을 밀어내며 증오의 눈빛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했다."천한 년, 네가 감히 나를 다치게 하다니! 너를 죽일 것이다!"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장검을 휘둘렀고 고월영의 얼굴을 향해 힘껏 찔렀다.고월영은 어깨에 공격을 당해 이미 막아낼 힘이 없었다.실력이 한 차원이 아니다 보니 무안희를 다치게 하는 것에 이미 모든 능력을 쓴 것이다.이 검은 피할 수 없다.시안을 포함한 주위의 시위들도 막을 수 없었다.그저 무안희의 장검이 고월영의 얼굴을 찌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절망에 휩싸일 무렵, ‘탕’소리가 들려왔고 무언가가 무안희의 장검의 칼끝을 때렸다.칼끝은 고월영의 얼굴을 스쳐지났고 검풍이 그녀 귓가의 긴 머리를 조금 베어냈다.그러나 다행히도 얼굴은 다치지 않았다.고월영이 고개를 들어 보니 훤칠한 그림자 하나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연일이다."연일 나리!"그중 한 시위가 그를 보자마자 다급히 말했다."무안희 아가씨가 왕비를 죽이려 했사옵니다, 연일 나리!"연일은 무안희를 쳐다보았다.무안희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건방지다!"무안희는 연일의 이 말에 화가 나 이를 갈았다."네가 감히 이런 태도로 나에게 말을 하다니!"연일은 항상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슉’소리를 내며 허리춤에서 장검을 꺼냈다.칼끝은 무안희를 가리켰다.무안희는 그로 인해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정말 손을 쓰려 하다니!"나와 현왕 전하께서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너희들은 모르는 것이냐? 안비 마마께서 떠나시기 전에 부중의 대소사를 주재하라 친히 말씀하셨다. 나는..."연일은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무안희는 고월영의 은침에 찔린 명치 쪽을 움켜쥐었고 연일의 진기에 의하여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 빌어먹을 녀석이 정말 고월영을 도와 그녀를 괴롭히다니!그녀는 방금 고월영에게 다쳤고 지금 진기를 완전히 모을 수 없었다.다치지 않아도 연일과 손을 대서 이길 자신이 없는데, 다치기까지 했으니 오죽하겠는가!똑똑한 사람은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는다!"기다리거라! 현왕 전하께서 깨어나면 반드시 그에게 너를 처단하라 할 것이다!"무안희는 힘껏 장검을 던지고 몸을 돌려 떠났다.십여 명의 시위들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연일에게 인사를 올린 후 서로 부축하며 떠났다.연일도 돌아섰고, 가려고 했다."연일!"고월영은 두 걸음 쫓아갔다."현왕께서는 지금 무슨 상황인 것입니까?"그러나 연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고, 표정이든 말투든 모두 아주 차가웠다."여왕비! 저희 전하는 당신이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중하십시오!""연일 나리..."시안이 해명을 하려 했다.고월영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연일의 앞으로 걸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연일 나리는 저에게 사황형이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여왕비와는 무관하옵니다!""저는 의술이 좋습니다, 연일 나리도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강현준의 상황을 보지 않고서 그녀는 마음을 놓고 돌아갈 수 없었다.보름이다! 그는 보름 동안이나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지금 생명의 위협이 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연일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화가 났다!"당신들이 전하를 다치게 했다고 해도 전하의 주변 사람들이 언제 당신들을 괴롭힌 적 있느냐?"연일은 말을 하자마자 마음이 괴로웠다!두 전하께서 모두 고월영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염두를 내지 못했다!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감히 전하를 이렇게 다치게 한다면 벌써 죽였을 것이다!이 상황에 두 사람은 감히 모독하다니!"저는 헛소리를 하지 않았사옵니다."시안의 마음속에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억울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연일 나리, 저와 아가씨는 줄곧 영하각에 갇혀 있었사옵니다. 아가씨는 중독에 유산까지, 의원도 약도 없이 하마터면 죽을 뻔 하셨사옵니다.""그것뿐만 아니라 왕부의 사람들은 조금의 음식마저도 주지 않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그것은 저희를 가두어 죽이겠다는 뜻 아니 옵니까?""그런 일 없다!"연일이 그녀를 노려보았다.시안도 그를 노려보았다."있는지 없는지는 나리께서 한 번 조사해 보시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옵니까?""지나간 일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나리와 거래를 하고 싶을 뿐이옵니다."고월영은 시안을 한 번 보았고, 시안은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고월영은 연일을 바라보며 말했다."저의 의술은 스스로 난원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전하를 치료할 수 있다면 연일 나리는 여왕 전하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렇게 굶어 죽을 뻔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보장해 주십시오.""저는..."연일은 여전히 이런 일이 그들 현왕부에서 발생한 것이라 믿으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시안이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이 조사하기만 하면 모두 알아낼 수 있다.그녀들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설마 무안희가 그런 것인가?연일의 눈가에는 포악한 기운이 스쳐 지났다.그 여자가 정녕 자신을 이 왕부의 안주인이라 생각하는구나!"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
연일과 지언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지언은 비록 입으로는 싫어하지만 사실 고월영이 오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다만 난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그러나 난원이 직접 입을 열어 가장 경건한 태도로 왕비에게 전하의 치료를 부탁하고 있다.연일은 말을 하지 않았고 지언도 얼른 입을 다물었다.고월영을 미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월영의 의술에 대해서도 정말 믿고 있다.고월영은 난원을 보지 않고 곧장 침대 옆으로 가서 앉아 강현준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맥을 짚었다.그러나 그녀의 미간은 서서히 찌푸려졌다.지언이 다급히 물었다."전하께서는 어떻사옵니까?"연일도 다가왔고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고월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녀 얼굴의 어떠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난원은 당연히 감히 입을 열지 못하지만, 이러한 상황하에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고월영을 바라보았다.고월영의 미간은 더욱 찌푸려졌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말했다."전하의 내상은... 이미 나았사옵니다."강현준의 체질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 어려서부터 전쟁터에서 다듬어진 좋은 체구는 무슨 부상을 입든 회복하는 속도가 보통 사람보다 빠르다.보름 동안 그의 내상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다."다 나았으면 왜 계속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지언이 다급히 물었다.고월영은 말을 하지 않았다.난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전하 스스로 깨어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우울증으로 심각한 질병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줄곧 자신의 세계에 빠져 정신을 차리려 하지 않는 환자가 있다.현실의 세계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병례는 고월영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연구한 적 있었다.그러나 정신질환은 가장 결론짓기 어려워 연구를 했다고 해도 반드시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지언과 연일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결국 원망의 눈빛은 참다못해 고월영의 몸에 떨어졌다.연일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여왕비께서는 전하의 상황을 아셨으니
연일은 결국 타협했다.그러나 고월영을 방에 남겨두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문밖을 지키며 조금도 멀리하려 하지 않았다.그리고 지언은 고월영이 그에게 일을 좀 부탁했다.비록 백방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가서 처리하였다.난원은 마지막으로 나갔다.고월영은 일부러 그를 남겨 두었다.그러나 난원은 고월영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한발 앞서 말했다."여왕비, 저는 여왕비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의 말은 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왕비께서는 더 이상 물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고월영은 그를 바라보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감정하나 없이 담담한 눈빛과 잔잔한 물결 하나도 없는 눈동자가 난원의 고개를 더욱 낮게 숙이게 만들었다.여전히 그녀의 눈빛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나는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네. 그저 한 마디만 묻고 싶네. 난 선생은 매일 밤 안심하고 잘 수 있는가?""왕비, 소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니 자연히 편히 잘 수 있사옵니다."난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고월영은 오히려 천천히 얇은 입술을 잡아당기며 담담하게 웃었다."편하다고 했는데, 왜 내가 이리 오래 들어와 있는 동안 난 선생은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못하는 것인가?""저는 왕비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사옵니다."난원은 일어나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왕비, 저는 문밖에 있을 것이옵니다. 만약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부르십시오."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모든 사람이 떠나고 방문이 닫힌 후에야 물처럼 고요했던 고월영의 두 눈동자에 슬픈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왜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이 모습은, 그녀를 벌하기 위해서인가?고월영은 강현준의 차가운 손을 잡고 그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얹고 가볍게 어루만졌다."나는 정말 고의로 우리의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 옵니다. 나를 한 번만 믿어 줄 수 없사옵니까?"강현준의 그 창백한 눈꺼풀은 시종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무런 반
시안은 지언이 문을 걷어차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지금까지도 반응을 하지 못했다.입안의 죽도 미처 삼키지 못했다.지금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아주 초라하다!"도대체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이냐?"지언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단번에 시안이 들고 있던 솥을 빼앗아 코끝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아, 아직 상하지 않았사옵니다."시안은 비록 초라했지만 그래도 쉰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겨우 입안의 죽을 삼키고 그제야 말을 했다."이건... 아가씨께서 저녁에 드시고 남기신 것이옵니다...""왕비께서 저녁 식사로 이것을 먹는단 말이냐?"흰죽 덩어리에 고기 한 점도 없다!"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육포는 점심에 죽으로 끓여 다 먹었사옵니다."사실 영하각의 식량은 정말 많지 않다. 그녀는 아가씨에게 저녁을 해주었을 때 아가씨에게 이미 먹었다고 말했다.사실 그녀는 점심도 아가씨가 먹다 남은 죽을 몇 모금 마셨을 뿐이다.지금 상처를 입고 중독되어 체력이 부족하니 갑자기 음식에 대한 욕구가 많아졌다.그녀는 정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렇게 아프고 피곤할 때 이곳으로 와서 먹을 것을 찾겠는가?지언은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믿지 않았다.그는 혼자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한참을 뒤졌더니 그저 조금의 밀가루만 찾아냈을 뿐이다.이 죽 덩어리는 밀가루로 만든 것인가?하지만 그저 보기에는 솥을 깨끗이 씻지 않아 남은 것으로 보였다!이렇게까지 불쌍하단 말인가?"지언 나리, 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싶으신 것이옵니까?"시안은 문가에 기대었고 그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빛이 없었으며 온몸에도 힘이 없었다.지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보지 않으면 모를까, 한 번 보고 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어떻게 자신을 저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너... 넌 중독되었다...""아가씨께서 은침으로 혈을 봉하셨습니다. 조금 늦게 돌아와 저에게 해독을 해 줄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셔서
"무안희가 너를 이렇게 다치게 하다니!"지언의 눈가에는 분노가 있었다.시안 이 계집애는 영리하고 평소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했다.지언은 그녀의 경공이 아주 좋지만 무공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이렇게 연약한 여자를 상대로 무안희가 정말 손을 쓸 수 있다니!시안의 입은 납작해졌다."연일 나리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저와 아가씨는 오늘 밤 모두 목숨을 잃을 것이옵니다...""내 앞에서 불쌍한 척하지 말거라!"지언은 지금 아직도 고월영을 매우 원망하고 있다!시안은 그를 노려 보았다."저는 불쌍한 척하지 않았고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아니 옵니다. 나리와는 할 말이 없으니 약을 주시지요. 혼자서도 약을 바를 수 있사옵니다."아가씨가 보내준 약이니 시안은 쓰기도 마음이 편했다.이 사람 앞에서 불쌍한 척 할 리가 없다!이 녀석은 아가씨를 싫어하니 그녀도 그를 싫어하고 할 말이 없다."지언 나리, 가십시오. 여기는 별로 볼 게 없사옵니다."지언은 그녀가 자신에게 적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냥 훌쩍 가버리고 싶었지만, 이 계집애의 상처는 정말 너무 심각하다!"이 일은 전하께서 깨어나시면 당연히 사실대로 말씀드릴 것이다. 그러나..."지언은 약병을 들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내가 전하 앞에서 너희들의 좋은 말을 해 줄 것이라고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거라. 너희 아가씨는 정말 밉다 못해...""나가십시오! 나리가 약을 발라줄 필요가 없사옵니다! 나가십시오!"시안은 다치지 않은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몸을 걷어찼다.지언은 원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손에 금창약을 들고 그녀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조금의 경계도 없었다.시안이 온 힘을 다해 걷어차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지언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래졌다!"네가 감히! 이 미친 계집아!""나리가 저희 아가씨를 욕하시는데 제가 왜 이러질 못하옵니까?"시안은 그를 노려보며 화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언이 망월각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마음이 텅 비었고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영하각 전체를 뒤져보았지만 정말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하인조차도 없었다.정원 입구를 지키는 네 명의 시위도 그는 조사한 적 있었다.그날 확실히 시위가 와서 여왕비가 황실의 자손을 해친 죄인이니 그들에게 문을 지키고 왕비와 노복의 출입을 허락하지 말라고 통보했다.그리고 다른 하인들은 그날 현왕이 쓰러져 옮겨진 뒤 모두 해산되었다.그러나 대체 어느 시위가 말을 전하러 온 것인지 캐물으니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현왕이 쓰러져 실려나간 그날 밤부터 영하각은 봉쇄되었다는 것만 유일한 사실이다.안에는 그저 고월영과 시안 두 사람뿐이었다.그날 밤 고월영의 상황도 아주 엉망이었다. 지언은 떠나기 전 적어도 그녀를 두어 번 쳐다보았다.유산과 중독 그리고 병약은 모두 사실이다.의사도 없고 약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었다.그리고 시안도 전하로 인해 다쳐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지언은 이제 와서야 조금 두려웠다.만약 두 사람이 충분히 완강하지 못했다면, 지금 아마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그는 문밖으로 돌아와 연일과 함께 문밖에 서서 지키고 있다.연일도 계속 말을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멀지 않은 곳에서 난원도 한쪽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지언은 그를 힐긋 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는 갑자기 난원에게 가서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그러나 그는 반걸음만 내디디고 다시 발걸음을 거두었다.말도 안 된다!난원이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예전에 난원은 전하를 따라 전쟁터에 나갔고 전하를 위해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그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고, 전하를 속일 리가 없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갑자기 조용한 방 안에서 조금의 인기척이 들려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렸고 고월영이 나왔다."전하는 당분간 큰 문제는 없사옵니다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