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입니까! 아가씨, 아가씨께서는 좋은 마음으로 여왕 전하를 구하셨는데, 어찌하여 마지막에 이렇게 된 것이옵니까? 그들이 대체 아가씨에게 무슨 짓을 하였습니까?"시안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가씨는 여왕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아가씨는 선량하고 열성이 있는데, 왜 마지막에는 이러한 지경에 이르른 것일까?그들은 아가씨를 이용하고 나서 정말 아가씨의 생사를 상관하지 않는 건가?모두가 여왕을 돌보고 있고, 이렇게 반죽음이 된 여왕비를 이곳에 버려둔다는 말인가?이 사람들은 왜 다들 이리도 양심이 없는 것일까?"아가씨...""얘야..."고월영은 시안의 손을 잡았고 온밤 참아온 눈물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흘러내렸다.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 시안도 가슴이 찡하고 따라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아가씨, 송구하옵니다. 다 제가 아가씨를 지켜드리지 못한 탓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시안아,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고월영은 비록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집념 하나가 있었다."나는 살 것이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안비는 그녀의 생사를 상관하지 않았다. 최고의 혈청을 얻어내기 위해 난원에게 독액을 한 번 더 뽑아 주입하라 명했다.직접 보지 않았다면 고월영은 세상에 이리도 악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알고 보니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그녀가 인성을 너무 믿었다."시안아, 아이는... 이미 없다."고월영은 입술을 깨물며 힘껏 눈을 감았다."아이는 이미 맥박이 없다.""아가씨, 흑..."시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울지 말거라."고월영은 다시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울지 말거라 시안아,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그러나, 그들은 제가 의원을 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가씨, 저희는 어찌하옵니까?"아가씨의 얼굴은 여전히 새까맣다. 아가씨가 얼마나 깊이 중독되었는지 알 수 있다.이럴 때 얼른 의원을 찾
강현우는 혈청이 주입된 후 혼수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새벽녘, 안비가 세심히 고른 대열은 이미 앞마당에 모여있었다.마차 안에서 강현우는 두 눈을 꼭 감고 얇은 입술을 계속 벌리며 누구를 부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안비는 난원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어떠하냐?""여왕 전하께서는 큰 문제가 없으시옵니다. 다만 이 혈청의 효과는 확실히 대단하옵니다. 여왕 전하께서 요 며칠 아마 쉽게 깨어나지 않을 것이옵니다."안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편에서 무안희가 말했다."사실 여왕 전하께서 요 며칠 동안 깨어나지 않는 것이 그에게 있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사옵니다."안비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것은 왜인 것이냐?""만약 여왕 전하께서 깨어나시면, 가장 빠른 시간 내로 누구를 찾으러 가겠사옵니까? 전하께서 순순히 마마를 따라 그 극한의 땅으로 가 수양하려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무안희가 이렇게 말하자 안비는 바로 깨우침을 얻는 듯했다.그녀는 난원을 바라보았다."어서 방법을 생각해 현우가 며칠 더 자도록 하거라. 그리고 조금도 현우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난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예.""그럼 마마, 저는 여왕 전하께서 쉬시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 여기서 미리 전하가 일찍이 건강을 회복하시고 하루빨리 돌아오시는 것을 경축 드리옵니다."난원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무안희는 막 따라가려던 참이었다.그러나 안비가 말했다."준이 쪽은...""마마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제가 이미 방법을 생각해 놓았으니 전하께서는 이 일로 마마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옵니다."무안희가 그녀를 향해 웃었다.안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혹이 있었다.강현준이 고월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그녀가 이번에 고월영을 저렇게 만들었고, 지금은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준이는 조금 늦으면 돌아올 것이다.비록 현우를 데리고 극한의 땅으로 가서 수양한다는 구실을 빌어 큰아들의 분노를 피할 수는 있지만 3
강현준은 어젯밤 마음이 편치 않은 게 분명했다.난적을 쫓다가 정신이 팔려 등에 화살을 맞았다.그래도 그는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돌아왔다."전하, 전하의 상처는 먼저 싸매야 하옵니다."지언이 그를 쫓아 침실까지 따라갔다.전하의 관례에 따라 매번 왕부로 돌아갈 때마다 침실로 돌아가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바로 목욕과 탈의이다.그리고 한시도 지체하려 하지 않고 바로 영하각으로 가 왕비와 함께한다.그러나 오늘 화살로 인한 전하의 상처는 심했다.만약 약을 바르고 싸매지 않는다면 짧은 시간 내에 낫기 어려울 것이다.강현준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바로 문을 나서려 했다.지언이 다급히 말했다."전하, 이런 모습으로 왕비를 찾아가시면 왕비를 놀라게 할 것이옵니다."강현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그 계집애는 코가 예민하여 그의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가 정말 그녀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그는 확실히 상처를 처리하고 가야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마음속에 줄곧 불안한 감정이 자라고 있다.그도 자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바로 고월영을 만나고 싶었다.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다."전하, 상처를 잘 싸매어 왕비께서 보지 못하게 하면 적어도 왕비께 상처가 깊지 않다고 말할 수 있사옵니다."지언은 전하를 잘 알고 있다. 전하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안다."전하, 제가 지금 난원을 찾아와 먼저 상처를 싸매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강현준은 그의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와 앉았지만 말을 듣고 그를 막았다."난원은 내일 영이를 도와 현우를 치료해야 하니 그를 방해하지 말거라. 약고에 가서 금창약을 조금 가져오거라, 내가 직접 싸맬 것이다.""... 예."지언은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난원을 찾아가지 않았지만 난원 스스로 망월각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혼비백산 그 모습은 어쩐지 지언의 마음을 조여오게 만들었다."왜 여기에 있나? 내일 여왕 전하
강현준이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고월영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 시각 시안은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무엇을 마시는 것이냐?"강형준은 바람처럼 순식간에 침대 옆으로 와서 시안이 들고 있던 그릇을 빼앗았다.시안은 그의 몸에 서린 한기로 인해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쿵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전, 전하..."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입을 벌리자마자 선혈을 뿜어냈다.고월영도 마주 오는 한기로 인해 명치의 혈기가 솟구쳐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도대체 무엇을 마시는 것이냐?"강현준은 약을 든 손을 계속 떨었다.고월영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그는 가슴이 아파 나 저도 몰래 그녀를 부축하러 가려고 했다.그러나 약고 쪽 하인의 말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시안은 낙태약을 가지러 갔다!아무도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시안 스스로 가서 가져간 것이다!"고월영, 나에게 말하거라. 너는 대체 무엇을 마시고 있는 것이냐? 무엇을 마시고 있는 것이냐?"그의 손은 떨렸고 눈빛이 닿은 구석 끝에는 피로 물든 치마가 있었다.그는 그릇을 세게 던지고 치마를 주웠다.그 핏자국은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다 피다!"난원!"강현준이 쉬어라 소리쳤다.난원은 고월영의 앞으로 갔지만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고월영의 맥을 짚으려 했다.고월영은 오히려 자신의 손을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내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무엇 하러 맥까지 짚을 필요가 있는가?""그럼 나한테 말해 보거라. 너는 지금 무슨 상황인 것이냐?"강현준은 침대 옆으로 돌아와 단번에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초조해하며 두 눈을 붉혔다."말해 보거라. 네가 낙태약을 먹지 않았고 우리 아이도 아직 있다고 말해보거라!""현준 씨...""나를 부르지 말거라!"강현준의 목소리를 바퀴에 밟힌 모래처럼 쉬어 있었다.그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월영이 직접 아이가 아직 있다고 한 마디 하는 것을 듣고 싶을 뿐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강현준의 온 세상은 한순간 텅 비어 버렸다.그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시선 속 그의 여자는 심히 허약하여 쓰러졌다.난원이 맥을 짚어주는 것 같았고 그 후 침을 놓는 것 같았다.강현준의 심장은 매우 아팠다. 마치 두 손이 그의 심장을 억지로 찢은 것 같았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의식중에 고월영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기를 보냈다. 그녀의 호흡이 회복될 때까지, 그녀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그 후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고개를 돌려 바닥에 피로 물든 치마를 바라보았다.그의 아이는 이미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이렇게 없어졌다."왜?"강현준의 눈빛은 다시 고월영의 몸에 떨어졌다."너는 왜 직접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이냐? 왜?""현준 씨."고월영은 입술을 깨물고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했다.그러나 그는 피했고 빛을 잃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도대체 왜? 너는 어찌하여... 아이를 원하지 않은 것이냐?""제 잘못이옵니다. 처음부터 잘못을 저질렀사옵니다...""왜 이 아이를 원치 않는 것이냐?"그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알고 싶지 않았다. 그의 세상에는 이미 옳고 그름이 없다.모든 것이 틀렸다.모두가 틀렸다.그 자신을 포함해서.왜 그는 외출했고, 왜 임무를 수행하러 갔어야 했을까? 왜 왕부에 남아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만약 그가 줄곧 그녀의 곁에 있었다면, 그는 반드시 그녀가 낙태약을 마실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다!그가 잘못했다, 그가 잘못한 것이다!"왜...""제가 낙태약을 마시기 전에 아이는 이미... 이미..."고월영은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정말 너무 아프다!그녀는 강현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아이는 이미...""전하의 아이는 멀쩡했사옵니다."난원이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고 강현준을 보며 침울하게 말했다."왕비께서 그 아이를 원치 않으셨사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전하께서... 강제로
"전하!"지언이 달려와 강현준을 일으켜 세웠다.전하의 안색은 창백했고 입가에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온몸에 생기를 잃었다.지언과 난원은 놀라서 간담이 서늘해졌다.연일도 뛰어들어 강현준을 껴안고 황급히 달려나갔다."난원, 어서! 어서 전하를 치료해 주십시오!"지언이 쫓아갔다.난원도 일어나 막 쫓아가려던 참이었다.뒤에서 고월영의 쉬어있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려왔다."왜... 나를 모함하려는 것이냐?"난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돌아본 순간 난원은 놀라움으로 온몸이 떨려왔다!고월영은 침대 옆에 쓰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으며 조금의 빛도 없는 눈동자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치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남아 있는 힘을 다해 그녀 마음속의 마지막 의문을 물었다."왜... 이렇게... 나를 해치는 것이냐?"난원은 가슴이 찡해졌고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송구하옵니다 왕비, 송구하옵니다..."그는 잠신 목으로 말을 마치고 결국 몸을 돌려 쫓아나갔다."여봐라, 왕비께서 위중하시니 의원을 부르거라!"...다른 의원은 없다.난원은 자신이 간 후 이 정원이 봉쇄되었다는 것을 모른다.시안은 하루 종일 쓰러져 있다 깨어났고, 깨어났을 때 마치 한 번 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강현준이 그녀를 날려버린 장풍은 그녀의 심맥을 상하게 했다.깨어난 후에도 그녀는 바닥에서 한참 동안 쓰러져 있다, 겨우 힘을 내어 일어섰다."아가씨..."시안의 목은 심하게 쉬어, 목소리가 목구멍 깊은 곳에 뭉쳐 하마터면 소리를 내지 못할 뻔했다.침대 위에는 한 여자가 생기 없이 누워있었고 보기에 마치... 죽은 것 같았다.시안은 온몸이 심하게 아팠지만 여전히 이를 악물고 열심히 기어갔다.고월영의 몸을 만져보니 여전히 뜨거웠다!꼬박 하루다!아가씨는 아직도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시안은 쉬어 있는 목소리로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여봐라, 여봐라
시안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방으로 돌아왔다.그러나 아가씨가 쓰러져 깨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애써 힘을 내려고 노력했다.뒷마당에 있는 우물에 가서 물 한 대야를 뜨고 왔고, 너무 허약한 자신 때문에 도중에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그래도 수건 하나를 비틀 힘은 있어 고월영의 이마에 붙여 온도를 낮추어 주었다.그녀는 약을 쓸 줄 모른다. 이 영하각에는 아가씨의 약상자 외에는 다른 약이 없다.이 고난을 아가씨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중독에 아이를 잃고 고열까지..."아가씨, 꼭 강해져야 하옵니다, 꼭 나으셔야 하옵니다."시안은 고월영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잡고 기침을 두어 번 했다. 기침을 한 후 입가에는 모두 피비린내였다.그녀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고월영의 손을 꼭 잡았다."아가씨, 이 왕부에서 두 전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사옵니다.""그러나 그들은 감히 우리를 직접 죽이지는 못하옵니다. 그들은 우리를 가두어놓고 스스로 죽어가게 하려 하옵니다.""아가씨, 꼭 나으셔야 하옵니다. 반드시 저 자들이 뜻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되옵니다!""아가씨, 일어나십시오. 제발, 아가씨..."... 고월영은 꼬박 이틀간 쓰러져 있다 깨어났다.깨어났을 때 시안은 여전히 곁에 있었고, 침대맡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물..."그녀는 시안을 가볍게 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손을 들 힘조차 없을 정도로 연약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건조하고 목이 마르며 너무 괴로웠다.몸은 여전히 힘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나른하지만 고열의 느낌은 가신 것 같았다."시안아...""아... 가씨, 아가씨..."시안이 유유히 깨어났다. 시선 속에서 고월영이 반쯤 눈을 뜨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아가씨, 드디어... 깨어나셨사옵니까..."시안은 흥분해서 바로 일어나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일어서고 나서 하늘이 노래지더니 ‘쿵’하고 바닥에 넘어졌다.다시 일어났을 때 입가에는 핏자국이 생겼다."시안
그녀들은 보름 동안 갇혀있었다.시위는 그녀들이 밖으로 반걸음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아무도 물자를 보내지 않았다.이 영하각은 죽은 성과도 같았다.커다란 정원에는 가끔 나가서 움직이는 두 주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아가씨, 제가 오늘 밤 나가 보겠사옵니다. 대체 현왕 전하께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오겠사옵니다!"보름이 지났는데도 아가씨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다니!시안은 화가 치밀었다."설마 전하께서 정녕 난원의 말을 믿고, 아가씨가 일부러... 일부러..."시안의 시선은 고월영의 아랫배에 떨어졌다.뒤의 말을 그녀는 계속할 염두가 나지 않았다.아이가 아가씨의 몸을 떠난 지 벌써 보름이 되었다.그 피로 물든 치마를 그녀는 뒷마당에 묻었다. 마치 아가씨의 아이를 직접 묻는 것 같았다.그녀는 아가씨가 아직까지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고월영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나약하지 않다.이미 결정된 일이니,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몸으로 독을 시험해 아현을 위해 혈청을 제련하는 것은 확실히 내가 스스로 원한 일이다. 아현을 치료하기 위한 기구들도 확실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이다.""그러나 아가씨께서는 그때 회임을 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사옵니다!"시안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만약 아가씨가 알았다면 그렇게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아가씨는 자신의 피로 혈청을 제련하면 자신의 몸 상태로 기껏해 보름 동안 허약할 것이라고 계산을 했었다.그 후 그녀는 자신을 치료할 것이고 완전히 좋아질 것이다.아이는 사고였다."하지만 그 자들은 모든 것을 아가씨에게 덮어 씌웠습니다, 현왕 전하께서 어찌 알겠사옵니까? 전하께서는 아가씨께서 정말 여왕 전하를 위해 그의 아이를 희생했다고 생각할 것이옵니다!"현왕 전하는 틀림없이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지금이 되어서도 아가씨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을 수 있을까?고월영은 그저 그녀
황족들 사이의 암투는 예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황족과 혼인한 여자는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몸에 익혀야 했다.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다른 여자보다 더 많이 총애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황족 남자들이 황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들의 싸움은 피를 흘리지만 여자들 사이의 암투는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몸에 긴장을 풀었다.주변을 돌던 호위 무사들은 둘을 보고 멀리 피해서 도망갔다.남령국에서 여왕비의 명성은 아마 눈앞의 이 남자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였다.“황족으로 사는 삶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그래도 나를 위해서….”“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삶의 방식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셨잖습니까.”지금 하는 모든 말은 의미가 없었다.고월영은 원망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전하의 이 현왕부에서 저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전하의 세력 범위 안에서요. 벌써 잊으셨나요?”잊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 왕부의 상공에 얼마나 거대한 먹구름이 끼었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더 이상 현왕부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월영은 그를 부드럽게 밀치고 갈 길을 가버렸다.그는 홀로 정원에 남아 고독을 달랬다.고월영이 영하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무아린이었다.“어머니께서는 무안희를 버리셨습니다. 저에게 돌아가서 성녀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하더군요.”무아린은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그래서 떠나려고요?”고월영은 무아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다.“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요.”어머니가 그녀를 마음먹고 찾으면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었다.며칠 돌아가는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무안희마저 백단교 사람들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무아린은 자신이 없었다.“오라버니랑은 이
말을 마친 강현준은 뒤돌아섰다.“현준아!”안비가 다급히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강현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현준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너와 현우가 너무 보고 싶어서….”안타깝게도 그 말은 이미 멀리 가버린 강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안비는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희망을 강현우에게 걸었다.그녀는 달려가서 강현우의 손을 잡으려 했다.“현우….”강현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현우 너마저 이 어미를 버리는 것이냐!”안비가 울며 울부짖었다.강현우는 그 모습을 낯선 눈빛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자식을 아끼던 어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걸까?약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쥐고 있던 약병이 그의 손 안에서 깨졌다.“현우야!”안비는 아들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강현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치고 가버렸다.두 아들이 모두 그녀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현우야!”여왕마저 떠난 뒤,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아 흐느꼈다.고월영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등 뒤에서 안비의 외침이 들려왔다.“고월영, 이 악랄한 년!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걸음을 멈춘 고월영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세상에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은 없어요, 마마. 무슨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양심도 없는 년! 어찌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안비는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모든 원인이 고월영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어찌 이렇듯 매정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단 말인가!고월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안비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안비의 처절한 저주가 들려왔다.“언젠가 넌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야!”“모두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모두가 널 혐오할 것이야!”“고월영, 이 죽일
시안이 자결했을 때 방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진심으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절대 방해 받지 않을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행한다. 일부러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고 행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내 궁에서 그딴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안비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고월영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제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강현우에게 건넸다.“현우 오라버니, 이걸 마마께 드리세요. 멍자국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멍자국?”강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안비는 아무리 봐도 어디 다친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고월영이 말했다.“목을 매달았다면 온몸의 중량이 저 천으로 쏠립니다. 그 과정에서 목덜미에 압박흔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이 약을 발라드리면 멍이 사라질 겁니다. 약을 안 바르면 나중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요.”모두의 시선이 안비의 목덜미로 향했다.안비는 밤중이라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얗고 긴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다.안비는 당황한 얼굴로 목덜미를 가렸다.“어머니….”강현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갑자기 실망감이 몰려왔다.“나… 난 괜찮다. 사실 바로 발견돼서….”“참. 너는 이 밤중에 마마께서 나쁜 생각을 하실 줄 어떻게 알고 침소로 뛰어들어왔느냐?”고월영은 어린 궁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겁에 질린 어린 궁녀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안비의 눈치를 보려고 했는데 고월영이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가렸다.“설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네 이년, 무슨 망언을 하는 것이냐!”안비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고월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말해 보거라! 너는 어쩌다가 마마의 침소로 들어오게 된 것이냐!”“너 이….”강현준이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안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그는 고
강현준은 손에 힘을 풀었다.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어쩌다가 온기를 찾은 심장이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월영은 그가 정신을 판 사이에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전하!”밖에서 지언이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전하, 안비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그날 밤 현왕부 사람들은 모두 궁으로 몰려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부탁으로 함께 궁으로 갔다.다행히 안비는 자결 시도만 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안비는 고월영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저년이 내 궁에 어쩐 일이야? 누가 저년을 들여보냈어? 여봐라! 당장 저년을 밖으로 끌고 나가!”궁녀와 태감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하지만 현장에는 현왕과 여왕도 함께 있었다.강현준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홀로 궁을 나갈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따분한 얼굴로 안비 궁 안의 시설들을 구경했다.방 안에는 안비의 울음소리만 들렸다.두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한참을 울던 안비는 아들들이 반응이 없자 목청을 높였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강현우가 말했다.“어머니, 형님도 너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않습니까. 며칠만 참고 기다리면 금족령은 금방 풀릴 겁니다.”안비는 조심스럽게 강현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구슬피 울며 말했다.“그래도 이 어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현우밖에 없구나. 아들이라고 둘밖에 없는데 현준이는….”강현준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현왕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안비는 더 큰소리로 통곡했다.이 왕조에는 귀비가 없었다. 황후 다음으로 귀한 위치가 비였다. 현왕이 공훈을 많이 세웠기에 안비도 궁 안에서 모두에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되었다.그런 존재가 통곡하고 있자 안비 궁 궁인들의 눈에도
“대체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고월영은 점점 강현준의 처소랑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그녀는 이 시점에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떠날 건데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이따가 알게 될 거야.”강현우는 이번에 작정하고 둘을 화해시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현왕의 정원으로 들어왔다.강현준은 정원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그날 밤 술을 먹고 자신을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이 사람이랑 영원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강현우는 그녀를 끌고 정원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뒤, 그녀의 등을 밀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월영은 발을 헛디뎌 그대로 강현준의 품에 무너졌다.‘저런 사람도 부군이라고!’고월영은 속으로 강현우를 욕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강현준은 팔을 뻗어 품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전하!”“네가 먼저 품에 달려들었다. 뭐가 불만이지?”강현준은 홀린 듯한 눈으로 탐스럽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눈빛에서도 다정함이 넘쳤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눈빛이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순간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전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해서 넘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 강현준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전하, 자중하십시오!”“언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데?”궁에서 처음 그가 그녀를 껴안았을 때 했던 말이었다.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월영아, 우리 화해하면 안 될까?”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그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화해?그게 가능할까?고월영은 한참을 반복적으로 생각했다.화해할까?하지만 이미 잃은 사람과 전에 입었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결국 그녀는 그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전하, 제가
강현우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나중은 못 보았습니다.”단지 강현준이 뜨겁게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보았을 뿐이었다.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생 살면서 남녀 사이의 일을 겪어보지 않은 강현우였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형님께서… 저고리 고름을 풀 때 돌아왔습니다. 나중은… 정말 못 보았어요.”강현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끝까지 가지는 않았다.”적어도 그날 밤은 그랬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현우 앞에만 서면 자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방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형제였지만 이 순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한참이 지났을 때, 강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또 할 말이 남았느냐?”강현우는 긴 한숨을 내쉬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형님과 월영이 사이에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것을 압니다. 그날 밤 월영이는 진심으로 형님을 밀쳐내지 않았어요.”강현준은 말없이 붓대만 놀릴 뿐이었다.강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정말 형님께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아는 월영이는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거절했을 겁니다.”붓대를 잡은 강현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그가 아는 고월영이라면 죽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적어도 그날 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역시 쌍둥이라서 그런지 강현우보다 강현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시안의 죽음이 월영이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안겨서 아마 잠시는 잊어버릴 수 없을 거예요.”“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나중에 상처가 아물고 옅어지면 형님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고 믿어요.”“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했지?”강현준은 붓을 내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말하느라 목도 말랐을 텐데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강현우는 찻잔을 받아 한숨에 삼켜버렸다.형님이
운조와 서령 대군이 연합하여 청성이 함락될 위기라는 전보였다. 청성과 가까운 수성도 민심이 흔들리고 성 안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황제는 여왕 강현우를 선봉 장군으로 봉하고 내일 즉시 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아침에 가신다고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큰 오라버니는 길을 떠나도 문제없지만 심각하게 다친 고월영은 지금 길을 떠나기엔 무리였다.적어도 반 달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용기도 장군으로써 수성으로 복귀하는데 언니만 혼자 여기 남게 된 상황이 조금 안타까웠다.“알겠습니다. 저도 전하랑 같이 가겠습니다.”고월영이 말했다.강현우의 두 눈에 희열이 스쳤다.“나는… 네가 여기 남겠다고 할 줄 알고….”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어차피 네 언니도 돌봄이 필요하니까.”“전하, 제가 현왕 전하 곁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신 거지요?”고월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제 오해도 풀렸으니….”“전하, 전장에 나가 보신 적은 있으세요? 현왕 전하 없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신 적 있냐고요?”“월영아,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강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의 지시가 내려진 후 그는 줄곧 긴장한 상태였다.강현우의 가장 큰 약점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주견이 없다는 점이었다.전에는 형의 말을 들었고 지금은 고월영의 의사에 따랐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저와 현왕 전하는 이제 끝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뒤돌아서려던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아직도 저를 전하의 왕비로 생각하신다면 조금만 더 전하의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 저를 시종으로 부려도 좋아요.”“난 한 번도 너를 내치려는 생각을 한 적 없다!”그가 두려운 건 그녀가 명의뿐인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한동안만 내 곁을 지킨다고 하는 거냐? 평생 내 옆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전하께서도 진짜 혼인을 하
아무도 무안희가 어떻게 속박을 풀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모두의 시선이 안비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그녀는 어느새 밧줄을 풀었다.그리고 손에 칼을 빼들고 고여추의 목에 겨누었다.강현준은 음침한 얼굴로 기를 모았지만 입에서 또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형님!”강현우는 다가가서 그를 부축하고 고월영의 손을 잡아당겼다.고용기는 무안희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힘들었다.연일이 무안희를 쫓아갔다.“오지 마!”무안희는 비수를 고여추의 목에 들이댔다. 하얗고 가는 목에서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안 돼!”결국 고용기는 밖으로 쫓아 나갔다.고월영도 강현우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무안희, 그만해!”“고월영, 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언니의 목숨을 취해도 넌 할 말 없잖아?”고여추의 목에서는 점점 많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숨이 끊어질 것이다.“안 돼!”고월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강현우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무안희, 인질 풀어주면 오늘 무사히 왕부를 떠나게 해주겠다!”“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무안희는 고여추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로 후문을 향해 뒷걸음질쳤다.고여추는 안비에 의해 섭혼술이 중단된 이후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그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안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아무도 무안희를 막지 못했다.연일은 여러 번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미동이 없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왕부의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안 그래도 고월영은 강현준을 사무치게 증오하는데 이 왕부에서 언니마저 잃으면 아마 현왕에게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었다.무안희는 그렇게 고여추를 끌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쫓아!”연일은 그제야 부하들을 호령하여 쫓아 나갔다.고월영과 강현우도 뒤따라갔다. 무안희는 뒷산의 방향으로 도망쳤다.고월영 일행이 도착했을 때, 연일이 고여추를 안고 되돌아오고
강현준의 시선이 안비에게 닿았다.안비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아들에게서 저런 시선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처음은 심복이 고월영에게 독을 먹였을 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겁에 질린 안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무안희는 강현준을 똑바로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모두 안비의 짓이었습니다. 난원을 압박해서 고월영의 체내에 독을 주입했어요. 고월영은 그때까지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고 애원했어요.”무안희는 안비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마마는 한 번에 실패하자 난원에게 한 번 더 독을 주입하라고 명령했지요.”“그때 아무도 고월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독을 두 번이나 주입했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전하, 이게 당신 어머니의 본 모습이에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아들 사랑인가요!”무안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두 번의 독 주입, 그건 고월영의 목숨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강현우는 어느새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현준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안비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섰다.“그런 거 아니야. 난원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어. 태어나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현준아, 어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정상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면 현왕부는…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강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아무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강현준 본인도 포함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여자가 죽어 가는 장면이 펼쳐졌다.그녀는 이미 복 중에서 숨이 끊어진 아이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이기적인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헐떡이는 고월영을 붙잡고 재차 독을 주입했다.푸흡!강현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