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곤전 안에서 태상황은 명원제, 예친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조금 피로해지자 그들을 물렸다. 그리고 태의들도 모두 밖으로 보냈는데 유독 원경능만 내전에 남겼다.명원제는 나가기 전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전 안은 고요했다. 휘장이 겹겹이 드리워져서 바람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원경능은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침상 옆에 서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태상황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매섭게 말했다.“꿇어 앉아!”원경능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자금탕의 약효가 떨어져서 온몸에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무릎을 꿇는 것이 앉은 자세보다 훨씬 편했다. “너의 죄를 알렸다?”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능은 태상황이 최소한 지금은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태상황이 이 속세에 미련이 있는 한 자신은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원경능은 고개를 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네.”“무슨 죄냐?”“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나선 죄입니다.”원경능은 큰 죄가 아닌 작은 죄를 택했다. 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다니. 너는 어의원의 태의들을 모두 돌팔이로 만들어 버리는구나.”원경능은 이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태상황이 자신의 의술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순조로워질 것이다. 태상황은 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곳에 앉아서 과인의 병을 말해보거라. 죽느냐, 사느냐? 죽는다면 언제 죽고, 산다면 언제까지 사는 것이냐?”원경능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감히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태상황께서 제가 진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아직도 우두커니 서서 무엇 하느냐? 와서 진맥하거라.”태상황은 원경능이 어느 곳에선가 이상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이상한 물건을 귀에 걸더니 웃으며 말했다.“먼저 심장소리를 먼저 들어봅시다….”잠시
저녁이 되어 명원제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 태상황의 병세가 호전된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리를 떴다.원경능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존재감이 없었고, 명원제의 주의를 불러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별일 또한 없었다. 명원제가 떠난 뒤 상공공은 여느 때처럼 태상황의 몸을 닦아주었다. 원경능은 자리를 비켜주려 정전으로 나갔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주사를 한 대 놓았다. 그러나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다시 바꿀 방법이 없었다. 상처부분이 축축해졌다. 다시 핏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주사를 맞은 뒤 원경능은 엎드려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안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공공이 일을 끝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급히 몸을 일으켜서 그런지 심장은 울렁거리고 목구멍에서는 피가 올라왔다. 그녀는 입에 피를 머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피를 나무뿌리에 토해냈다. 나무에 한참을 기대어 몸을 지탱하고서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왕비, 무슨일입니까?”그때 뒤에서 상공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능은 몸을 돌려 손을 저었다.“괜찮아요. 체한것같네요.”“아!”상공공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떠났다. 원경능은 의문을 억누르면서 내전에 들어갔다. 태상황은 침상에 앉아있었는데 예전보다 훨씬 생기가 있어 보였다. 원경능은 그에게 말했다.“태상황 또 수액을 맞으셔야 합니다.”태상황은 손을 뻗으며 담담하게 그녀를 보았다.“과인이 저 영감탱이를 쫓아 내보냈으니 한시름 놓고 그것을 놓거라.”원경능은 먼저 심장 박동수와 호흡을 체크하였다. 호흡은 여전히 썩 순조롭지 않았다. 다시 어느 정도 양의 도파민을 주사하고 수액을 놓았다. 원경능은 설저환 한 병을 꺼내 태상황에게 건넸다. “이것은 구급약입니다. 심장이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혀 아래에 넣으시면 됩니다.”설저환의 라벨과 설명서는 이미 찢어버린 지 오래다. 설저환 약병은 아주 정교했다. 태상황은 약병을 손으로
저명취는 태상황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놓였다. 비록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하고, 또 그 총애로 인해 원경능이 내전에 남아 병시중을 들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원경능은 분수를 모르는 바보였다. 큰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태의는 태상황의 표정이 굳어지자 바삐 약을 들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태상황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어서 빨리 약을 가져오지 못할까? 초왕비가 약을 마셔야 한다고 한 말을 못들은 것이냐?”뭇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모두 원경능을 바라보았다. 저명취의 낯빛은 바로 어두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원경능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사실 입을 열기 싫었었다. 그러나 태상황이 약을 먹지 않고 호전된다면 의심을 살게 분명했다. 명원제는 기뻐하며 말했다.“얼른 탕약을 가져오지 못할까?”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명원제는 한번도 바로 원경능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칭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태상황은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정말로 쓴 것을 싫어하는지, 약을 마신 뒤 얼굴을 찡그렸다. 태후가 재빨리 약과를 건네어주고 나서야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그를 더욱 불안하고 걱정되게 만들었다. 황조부는 정말 원경능의 말에 따랐다. 혹시 그녀는 이미 음모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도 매우 기뻐했다. 태후는 원경능을 가까이로 불러 칭찬했다. 늘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예친왕도 원경능을 칭찬했다.황후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매우 억지스러웠다. 보아하니 저명취의 걱정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명원제는 정무를 제쳐둔 채로 시중을 들려고 온 것이었다. 비록 태상황이 호전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제 어의원의 태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태상황이 수명을 다했다고 하였다.태상황이 그들의 시중을 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명원제와 예친왕더러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떠나기 전에 원경
우문호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 여인이 방금 죽더라도 초왕비로 죽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인가?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녀가 온갖 궁리와 계략을 다 짜내어 얻은 것이 바로 초왕비라는 자리가 아니었던가?“얼른 정신차리고 제대로 설명하거라!”우문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려 한번 ‘툭’ 쳤다.희씨 어멈은 화를 내며 원경능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막아 섰다.“어찌 이리도 모진 것입니까? 왕야, 어찌 이리도 잔인해지셨습니까? 부부의 정은커녕, 남들끼리도 이렇게 까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박정하십니다.”우문호는 귀신처럼 하얗게 질린 원경능의 낯빛을 슬쩍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이 차올라 그렁그렁했지만, 끝내 울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은 냉담하기까지 했다.뜻밖에도 그는 그녀의 이런 고집스러움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는 곧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우문호는 측전(侧殿) 밖 홰나무 아래에 서서 바람 따라 회전하는 누런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음속에도 거센 바람이 한차례 일고 지나간 듯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초왕!”뒤에서 제왕비 저명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문호는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를 향해 돌아봤다.복도 앞에서 긴 치맛자락을 뒤로 늘어뜨리고, 우아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선녀가 강림한 듯싶었다.그녀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평범 그 이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죽마고우인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어버렸다. 그의 가슴 한쪽이 아련하게 아파왔다.저명취는 그의 눈에 서린 우울함을 발견하고, 자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조금 의기양양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눈가에 웃음을 띠고 기쁨과 안도의 목소리를 담아 말을 걸었다.“태상황의 병세도 호전되었고, 아바마마께서도 당신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 저도 무척 기쁘네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가냘픈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신 건가요?”우문호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
자금단을 먹은 원경능은 또 다시 한시진 정도 잠에 빠졌다. 깨어나보니 정말로 상처의 아픔이 많이 가셔져 있었고 더는 진물이 배어 나오지도 않았다.그녀는 땅에 발을 딛고 몇 발짝 걸어보았다. 확실히 통증이 많이 줄었다. 적어도 걸을 때 상처가 쓸려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문을 밀고 들어온 희씨 어멈이 그녀가 일어난 것을 보고 말을 건넸다.“일어나셨으니 다행입니다, 왕비. 밖에 나가서 좀 걸으시는 건 어떤가요? 자금단을 드셨으니 운동으로 기혈을 순환시켜야 합니다.”원경능이 대답했다.“알겠네, 마침 걸으려던 참이었네.”“소인이 모시겠습니다.”두 사람이 막 정원을 나서는데 젊은 환관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왕비, 초왕께서 급히 건곤전(乾坤殿)으로 들라 하십니다.”희씨 어멈이 그를 잡아당겼다.“무슨 일인 게야? 이렇게 조급해하다니.”환관은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복보가 문창탑(文昌塔)에서 떨어졌는데 지금 겨우 숨이 붙어 있습니다. 태상황께서는 이 소식을 듣고 그대로 혼절하셨고요. 지금 궁전에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이미 사람을 보내 황제 폐하도 모셔오게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희씨 어멈은 너무 놀라 허둥댔다. 태상황은 당신 손자처럼 복보를 아끼셨다. 그런 복보가 해코지를 당했으니 태상황께선 매우 상심하시고 격노하실 것이다.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려 원경능을 부르려 하였으나, 그녀는 이미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출발하고 있었다.원경능은 빠른 걸음으로 건곤전에 이르렀다. 궁전은 정말로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황후와 저명취는 초조하게 옆에 서 있었고, 우문호와 제왕은 침대 가에 몰려서 서있었으며 어의도 몹시 허둥거리며 진맥하고 있었다.명원제와 태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원경능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우문호를 잡아 끌며 그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두어 마디 속삭였다. 우문호는 그녀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
원경능은 그의 표정만 보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상대방의 목적이 당신이라는 거예요? 문창탑에 계셨어요?”우문호는 아무 대답도 없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복보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다.“황조부도 해하고, 본왕도 꺾어버릴 수 있으니 상대방에겐 일석이조나 다름이 없겠군.”우문호는 냉소했다.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원경능이 그를 보며 말했다.“설령 태상황께 해를 끼치진 못하더라도, 왕야는 무조건 연루되게 만들 셈이었던 거죠.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니, 황제 폐하께서는 꼭 이 일을 조사하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왕야께서는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거에요. 백 번 양보해서, 폐하께서 왕야를 벌하지는 않으시더라도 태상황께서는 분명 왕야에게 실망하실 겁니다.”원경능은 차마 그가 앞으로 태자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내뱉지 못했다.우문호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채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눈빛을 유지했다.그의 모습을 본 원경능은 소름이 끼쳐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이런 못된 음모와 계략에 대해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결국 초왕비와도 관련된 일이었기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당신 말고 또 누가 문창탑에 있었나요?”우문호가 번쩍 고개를 들며 화난 소리로 반문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저명취!”원경능이 저도 모르게 말을 뱉어버렸다.“입 닥쳐!”우문호의 눈에 분노가 일었다. “누가 함부로 넘겨짚어도 좋다고 했나?”원경능은 그의 분노와 정면으로 부딪칠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복보의 곁에 앉아 손을 뻗어 복보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담담히 말을 꺼냈다.“왕야는 빨리 가서 태상황 곁을 지키세요. 태상황께서 깨어나시면 황제 폐하는 반드시 이 사태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는 황명을 내릴 것입니다. 왕야께서도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 좋겠어요.”우문호는 차가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원경능도 복보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복보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 그
모든 사람이 건곤전에서 물러나자, 태상황은 상공공을 언짢게 바라보았다. 이 자는 왜 나무토막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눈치가 없는 것인가?상공공은 서러운 눈길로 원경능을 바라보았다. 초왕비가 입궐하여 병시중을 든 후로 자신은 태상황 앞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와 초왕이 복보를 구했는데, 이런 걸 따져 무엇 하겠는가?상공공은 물러가면서 밖의 시중드는 궁인들도 함께 물렸다. 궁전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태상황은 원경능을 한번 훑어보고는 물었다.“복보의 배 위에 저건 무엇이냐?”“지네…가 아닐까요?”원경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전 사람들은 온몸이 피로 흥건한 복보의 배를 주시하지 않았었다. 오직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인만이 그것을 발견했다.“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다섯째에게 죄를 물어야만 입을 열 참이냐?”태상황이 차가운 목소리로 문책했다.우문호에게 죄를 묻는 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왕이면 곤장 서른 대 정도 쳐주길 바랐다. 그러면 원한이 조금은 풀릴 것만 같았다.그러나 그녀는 감히 이런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태상황의 매서운 눈초리 아래 그녀가 대답했다.“복보의 비장이 찢어졌기에 개복해서 그곳을 봉합했습니다. 지네 같이 생긴 것은 꿰맨 자국입니다.”태상황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어떻게 했는지 더 묻고 싶었지만, 그의 체면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치료 방법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자금단은 누가 먹었느냐?”태상황의 이어진 질문에 원경능이 대답했다.“제가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네게 잘 해주는 모양이구나.”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능은 결코 이 말에 수긍하지 못했다. 걸핏하면 곤장을 치고, 뺨도 때리는 사람인데, 어딜 봐서 잘해주는 것인가?“너는 어째서 다친 것이냐?”태상황이 다시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원경능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정말 넘어진 것입니다.”“고집도 세고, 거짓말도 잘하니 참으로 매를 버는구나. 아직도 매가 모
그러나 원경능은 조용히 서있기만 했다. 화가 난 표정도 아니었다. 심지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명취는 그녀가 정말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여 계속 도발했다.“그분이 왜 제게 그런 말들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이때 원경능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그녀를 끌고 안으로 걸어갔다.“궁금해요. 하지만 저는 네 사람이 앉아서 못 나눌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해요.”원경능은 우문호와 제왕이 안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제왕 부부가 우문호를 찾은 목적을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랬기에 저명취는 문 밖에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그녀는 원경능을 만난 뒤로 계속해서 도발하고 끊임없이 모욕하며 원경능을 분노하게 했다. 저명취는 그녀가 더는 궁에 머물지 못하게 함으로써 태상황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이 손 놓으세요!”그러나 저명취는 그녀의 이런 행동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대경실색하며 새끼 손가락으로 원경능을 그어 버렸다. 뾰족한 새끼 손가락의 끝이 원경능의 팔목을 할퀴었다. 그녀는 강제로 원경능의 손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했다.원경능은 어려서부터 집요한 구석이 있었는데, 할 일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저명취를 끌고 들어가다가 피가 떨어져 바닥은 어느새 석류꽃 모양의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초왕, 제왕!”원경능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굳이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았기에 저명취를 질질 끌어와 의자 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상처를 싸맸다. 그녀는 잊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제왕비가 할 말이 있다고 하네요.”우문호는 저명취를 거칠게 대하는 그녀를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게 무슨 짓이지?”방금 전까지 낭패를 보았던 저명취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차림새를 가다듬고는 차분한 얼굴로 원경능을 쳐다봤다.저명취는 그녀가 민망함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