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진우는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윤하,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난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어. 그런데 결국 이렇게 나온다고?” 오윤하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적게 해. 넌 이미 나에게 위협을 줬어. 우리 오씨 가문에 너 같은 사람은 친구 아니면 적이야. 네가 선택해.” 그녀는 위무연이 충분히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위무연을 순식간에 처리한 종두사 가야가 나타났고 그 가야는 결국 엄진우에게 패배당했다. 엄진우의 실력은 완전히 그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험한 인물이다. 게다가 아주 위험하다. “선택하기 싫다면?” 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다른 선택이 또 있겠어?” 오윤하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지금 네 꼴 좀 보고 얘기해.” 역시 남자란 하체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녀의 유혹에 바로 넘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이 얼음 얘기하는 거야?” 엄진우가 대충 손발을 뻗었더니 몸을 감싸고 있던 얼음이 순식간에 쩍 갈라져 버렸다. “뭐야?” 오윤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오씨 가문의 필살기인 현명한기이다! 심지어 불도 얼려버릴 수 있는 대단한 수법인데 전에 오씨 가문 강자는 이 수법으로 한꺼번에 아홉 명의 지존 종사를 얼렸다고 한다.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마. 네 미인계에 넘어가서 경계를 늦춘 게 아니라 네 앞에서 경계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넌 너무 약해서 날 다치게 할 수 없어.” 엄진우의 말에 오윤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날 무시해? 촌놈 주제에 정말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씩씩거리며 엄진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엄진우는 그녀의 몸을 가볍게 쿡 찔렀고 이내 그녀는 온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 엄진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것 봐.” 으아아악! 이 나쁜 놈! 오윤하는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패배했으면 그냥 인정해. 전쟁터에서는
“하여 몰래 엄씨 가문 사람들과 결탁하여 그 사고를 만들었어.” 오윤하의 말에 그제야 엄진우는 깨닫게 되었다. 당시 엄비왕은 특별히 엄혜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생년월일을 바꿨었는데 지금 보니 바로 그 재앙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엄혜우는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타지에 있는 친척 집으로 보내져 일 년에 고작 한 번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렇다면 이 일과 관련됐다는 걸까? 엄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그 권력자가 대체 누구야?” 오윤하는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이 일도 내가 북강에 있을 때 제경에서 온 친척들이 술에 취해 무심코 말한 걸 들은 거야.” 오래 전 사건을 다시 뒤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것이다. 엄진우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 혈 자리는 두 시간이면 풀릴 거야. 난 이만 간다.” 엄진우는 보는 사람이 없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조용히 떠날 계획이었다. “잠깐만!” 이때 오윤하가 갑자기 엄진우에게 애원했다.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제발 나에게 명왕의 행적을 알려줘. 그 사람은 내 약혼자야. 그런데 이 작은 도시에 숨어서 날 만나려고 하지 않아.” 이 순간 그녀는 북강 공주의 거만한 아우라를 벗어던진 채 마치 사랑에 미친 여자처럼 간절하게 말했다. 엄진우는 잠시 멈칫하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넌 그 사람을 본 적 없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미련을 가지는 거지? 네 정도면 그만한 남자는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니! 세상에는 오직 명왕뿐이야. 그 어떤 남자도 그와 비교할 수 없어!” 오윤하는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5년 전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이미 사랑에 빠졌어. 이건 사랑이야. 너 같은 냉혈 동물은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엄진우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사랑이라... 만약 명왕이 돼지처
순간 공무성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뭐라고? 엄진우를 죽이라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지? 가야 이 쓸모없는 자식! 대체 뭐 하는 짓이야!” “하하! 가주, 뒤에서 욕하는 건 그리 좋은 것이 아니지요.” 가야는 엄진우와 함께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엄진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공씨 가문 사람들을 또 만났네요? 내가 뭐라고 했어?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고 했지?” 멀쩡한 엄진우의 모습에 공무성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가야! 내가 극진히 모셨건만 어찌 이럴 수 있어? 감히 날 배신해?” “공무성, 탓하려거든 네 부족한 안목을 탓해. 감히 엄진우 님을 상대하려고 하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군.” 이때 엄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들 입 다물어. 난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가야, 당신에게 20분의 시간을 줄 테니 저놈의 입을 열어서 모든 진상을 털어놓게 해.” “네!” 가야는 이내 흉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이미 공씨 가문 전체에 종두술을 내렸어. 공씨 가문 사람들은 곧 죽는 것만도 못할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공무성은 안색이 변하며 소리를 질렀다. “개자식, 가만두지 않을 거야!” 반항하려는 그때, 공무성은 갑자기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지더니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콧구멍에서도 수많은 미꾸라지 같은 검은 날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공무성은 너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종두술이다!” 가야는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공씨 저택은 인간 지옥이 되어버렸다. 종두술에 걸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닥을 뒹굴며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엄진우 님, 공무성이 입을 열었습니다.” 가야가 보고했다. “라인의 거처를 이미 알아냈습니다.” “좋아.” 엄진우는 흥분에 겨워서 말했다. “가자.” 긴 시간을 거쳐 드디어 뷔젠트의 조직원을 만나게 된다. 라인, 네가 어떤 요물
예우림은 정색해서 말했다. “너 함부로 굴면 나 너 가만 안 둬!” 하지만 엄진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바로 사무실 문을 잠그고 히쭉 웃으며 말했다. “나 함부로 구는 거 아닌데? 이건 중요한 생활 요구 사항이야. 해결을 위해 내가 도움을 청하는 거지. 물론 이건 비밀이지. 오직 우리 두 사람만 아는 인생 이야기... 바로... 우리의 2세 만들기 프로젝트.” 낮잠을 자던 예우림은 검은 코트를 벗은 채 몸에 딱 달라붙는 흰 셔츠만 입고 있었는데 단추가 하나 열려있어 더 볼륨감 있는 몸매를 구현했다. 그리고 열린 셔츠 사이로 보이는 하얀 레이스 브래지어는 엄진우에게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엄진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려고 했지만 예우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너 컸다? 이젠 내 말도 안 들어? 당장 나가!” 하지만 엄진우의 행동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는 아예 예우림을 번쩍 들어 자기 다리에 앉혔고 그녀의 엉덩이는 그의 허벅지에 닿았다. 예우림은 더는 참을 수 없어 귀뿌리가 빨개졌다. “집에 가서 얘기해. 여긴 사무실이야. 기껏해야 난 손으로...” “하하! 예우림,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엄진우는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 “난 그저 단순히 당신을 품에 안고 당신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고 싶었던 것뿐이야.” 예우림 사무실에 들어온 엄진우는 모든 음모와 계략을 잊은 채 마치 자기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우림은 상대의 팔을 꼬집으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난 네 상사야. 날 상사로 보기나 해?” 엄진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사에서 당신은 내 상사지만 집에서는 내 마누라고 보호자야. 근데 안아보는 것도 안 돼” 엄진우의 노골적인 눈빛에 예우림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입만 살았어. 더는 따지기 귀찮으니까 충분히 안았다면 빨리 나가! 나 할 일 엄청 많아!” 엄진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것 없어. 당신한테 좋
“빨리!” 예우림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곧 마그마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자 엄진우는 다급히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미안. 당장 보고할게요.” 엄진우는 예우림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예우림으 몸을 움찔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확실해?” “확실해.”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예우림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회사 보안팀을 모두 너에게 맡길게.” 엄진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한테 짐 맡기는 거야? 나 혼자면 돼.” 예우림은 할 말을 잃었다. 점심시간, 마케팅 부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낮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은 엄진우의 등장에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야!” “엄진우 씨!” 예전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제7팀 안 바빠?” 과장 유청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갔다. “우리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건가? 여긴 영원히 진우 씨를 환영하니까 언제든지 찾아와.” 엄진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저 과장님 엄청 보고 싶었어요.” 엄진우는 그녀의 요염한 몸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유청아는 이내 얼굴이 붉어지더니 수줍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진우가 말했다. “과장님, 부대표님이 아주 중요한 일을 전하라고 해서 그러는데 다른 사람은 자리를 비켜줘야겠어요.” 그 말에 다른 동료들은 눈치껏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유청아와 엄진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유청아는 앞으로 다가가 엄진우의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멋있어졌네? 역시 젊음이 좋아. 오늘 밤 우리 집에 갈래? 나 요리 꽤 잘하는데.” 엄진우는 상대의 손목을 잡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난 과장님이 만든 요리뿐만 아니라 과장님도 먹고 싶어요.” 갑자기 야한 말을? 유청아는 삽시간에 얼굴이 붉어져 엄진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며 수줍게 말했다. “꺄악, 미워. 아프니까 이
유청아는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고 크게 웃었다. “널 처음 봤을 때 난 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굳이 탓하자면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널 미처 죽이지 못한 게 잘못이지.” 상대가 쿨하게 인정하자 엄진우는 오히려 마음이 괴로웠다. “과장님, 난 과장님을 정말 친구로 생각했어요. 용국의 사람이 왜 악인을 도와 뷔젠트에 가입한 거죠?” 엄진우 마음속의 이해심 많고 착한 유청아가 진짜 유청아가 아니었다니. 유청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세뇌당한 용국 놈들과는 할 말 없어. 뷔젠트가 용국을 멸망시키는 건 시간문제야. 네가 누구든 간에 지금은 고작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뿐이지.” 유청아의 광기 가득한 모습에 엄진우는 더는 말로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 옛정을 생각해서 죽이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자수하고 뷔젠트의 음모를 밝힌다면 가벼운 처벌로 끝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유청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진우, 너 지금 나랑 농담하는 거야? 날 죽인다고? 확실해? 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는 두 팔을 쩍 벌렸다. 그랬더니 사방의 창문이 순식간에 와장장 깨져버렸고 건물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진우는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 “지존종사?” 대종사의 위가 바로 지존종사이다. 지존종사는 북강에서 중급 전력으로 쓸 수 있지만 다른 작은 지역 군부에서는 장군으로도 진급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수련을 달성한 사람은 산천을 부수고 비바람을 부를 수 있는데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강남에서도 지존종사는 고작 스무 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고작 뷔젠트 창해시의 책임자가 실력이 이 정도라니, 그렇다면 그 위에는 더 강력한 무도종사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엄진우의 표정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가서 붙지.” 그는 회사가 망가질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유청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바요야? 여기서 싸워야 네 실력을 최대한 줄이게 만들지.” 말을 끝낸 유청
그제야 엄진우는 상대의 목표가 예우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눈을 가늘게 떴다. 뷔젠트는 왜 갖은 수단을 이용해 예우림을 죽이려고 하는 걸까? 그들에겐 도대체 어떤 말 못 할 비밀이 있는 걸까? “엄진우! 귀먹었어? 당장 예우림 불러와!” 예정명이 다급히 성질을 부렸다. “이건 이사회의 명령이야! 잊지 마! 이사회야말로 회사의 핵심이야!” 예정국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가 다 죽으면 앞으로 누구한테서 월급 받을래?” 이때 유청아가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지성그룹에서 근무하는 동안, 난 당신 예씨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한지 알게 됐어. 죽을까 봐 늘 전전긍긍, 벌벌 떠는 겁쟁이들. 하지만 나한테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바로 겁쟁이들이야.” “유 과장! 우리 예씨 가문, 지성그룹이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우릴 위협할 수 있어!” 한 예씨 가문 이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배은망덕한 것!” 유청아는 순간 손을 들어 상대의 머리를 깨부수더니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당신들은 내 애완동물일 뿐이야. 알겠어?” 예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 다급히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유 과장! 그래도 그동안 함께 일했던 정이 있으니 우릴 놓아줘.” “5분 줄 테니 당장 예우림 데려와. 아니면 다들 죽는 거야!” 유청아의 마지막 경고에 예씨 가문 사람들은 창백한 안색으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예우림, 재수 없는 년. 분명 예우림이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거야.” “내가 그년 그럴 줄 알았어. 그년은 우리 가문과 상극이야!” “이건 가문의 불행이야.” 그러자 예정명이 소리를 질렀다. “엄진우, 뭐 하고 있어? 당장 가서 예우림 불러 와!” “당신 엄마나 불러!” 엄진우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당신들 다 죽어도 나랑 상관없어. 유청아, 나도 당신한테 5분 줄게. 모든 사람을 풀어주고 항복해. 아니면 당신은 오늘... 비참하게 죽을 거야.” 엄진우의 덤덤
대신 죽어 줄 사람이 나타나자 예씨 가문 사람들은 예우림의 생사를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유청아는 싸늘하게 웃었다. “순순히 내 앞으로 걸어와. 그렇다면 모두를 놓아준다.” 예우림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엄진우는 다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부대표님, 가면 안 돼요. 진짜 유청아는 사이코라고요. 지금 가면 부대표님은 반드시 죽어요.” 예우림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난 반드시 가야 해. 내가 물러서면 저 여자는 계속 살인을 저지를 거야. 소중한 내 직원들을 난 절대 잃고 싶지 않아! 내 죽음으로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난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말을 끝낸 그녀는 엄진우가 멍해 있는 틈을 타 이미 유청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유청아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예우림, 여전히 착하구나? 저런 인간쓰레기들을 위해 네 목숨까지 버릴 만큼. 내가 전에 충고한 적 있지? 사람은 너무 착해도 안 돼. 남 좋은 노릇만 하다가 결국 손해 보는 쪽은 네가 될 테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네 얼굴을 봐서라도 더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거야.” 유청아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지금 넌 날따라 옥상에 올라간다. 너 혼자만 와야 해.” “다들 제자리에서 조용히 대기하세요. 제 명령 없인 아무도 올라오면 안 됩니다.” 예우림은 하는 수 없이 예씨 가문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예씨 가문 사람들은 미안하기는커녕,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들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린 살았어.” “예우림이 죽으면 오히려 우리에겐 이득이야. 말이 부대표지, 사실 실권을 전부 들고 있었잖아. 이젠 그 권력도 우리 이사회에 다시 돌아오는 거지.” “하하하! 이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어? 먹고 즐기는 날이 곧 돌아오는군!” 예씨 가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그때, 참다못한 직원들이 쳐들어와 그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부대표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자기를 버렸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