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엉망진창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왜 손을 놓지 않느냐고요?] [왜 그런 것 같으세요?] 배미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설마, 이서 씨 때문에?” [맞아요, 이서 씨가 혼자 여기 있는데 어떻게 지환이가 안심할 수 있겠어요.] 배미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지환이의 인생에 꽃이 피었구나.”“아들아, 언제쯤이면 엄마도 네 인생에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겠니?” 결혼을 재촉하는 배미희의 말을 들은 상언은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곧 다시 전화가 걸려 왔으나, 그 전화는 배미희가 아닌 지환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 “너구나.”상언이 전화를 받았다.“이서 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지? 이서 씨는 잘 지내. 오늘은 우리 엄마랑 바다도 갔어.” 지환이 대답했다.[고마워.]“고맙긴 뭘. 누군가가 그러더라? 우리가 형제 같다고.” 상언이 물었다.“정확히 언제 올 생각이야?”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좀 있어서 이틀 정도 늦어질 것 같아.]지환이 말했다. “아, 맞다. 너한테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는데, 지엽 도련님이 이서 씨가 외국에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너한테는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전하라고 하셨어.” 지환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내일 바로 갈게.] “이틀 더 걸린다면서?”[중요한 일은 아니거든.]말을 마친 지환이 곧장 전화를 끊었다. 상언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엽 도련님이 이서 씨를 빼앗아 갈까 봐 두려운 게 분명해.’ 같은 시각.해변에서 쫓겨난 가은은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윤이서라는 여자를 좀 알아봐 주세요.”가은이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이서의 상세한 상황을 알렸다.“그 여자가 왜 갑자기 외국으로 나온 건지 알고 싶어요.” ‘분명 며칠 전에 하은철이랑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거지? 아무리 생
그렇다. 지엽은 이씨 가문의 고택에 있었다. 다만, 그의 방문 목적은 이씨 가문의 가족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서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상언을 마주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서는요?”상언이 소파를 가리켰다.“그렇지 않아도 방금 물어보니까 바다로 나갔다더군요. 오후는 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지엽이 소파에 앉자, 상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엽의 물 한 잔을 따르게 했다. “오후에 다시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지엽이 미소를 지었다.“오후에 다시 왔는데, 또 저녁에 오라고 하실까 봐 두려워서요.”상언이 물었다.“제가 도련님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지엽이 하인이 들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이 선생님은 하 대표님의 친구시잖아요. 마냥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상언이 차분히 대답했다.“마음대로 하시죠. 저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기다리세요.” “네.”상황을 지켜본 상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위층으로 올라가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그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앉은 지엽의 모습이 보였다. 지엽의 끈기에 탄복한 상언이 말했다. “이서 씨가 도련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찾아오시다니, 왜 본인을 궁지로 모시는 겁니까?” 상언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지엽에게 물었다. 지엽이 고개를 들어 상언을 보며 웃었다.“기억을 잃은 이서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상언이 대답했다. “하은철이 아주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엽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저는 은철이랑 달라요. 은철이는 이서에게 큰 상처를 줬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지엽이 자신 있게 말했다.“저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요.”“이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이씨 가문은 모든 식사 준비를 집에서 하는 편이에요.” 말을 마친 배미희가 이서에게 물었다.“이서 씨, 이서 씨의 요리 솜씨는 좀 어때요?”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이서가 겸손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갖췄나 보군요. 이서 씨, 이서 씨가 직접 지엽 씨에게 밥을 한 끼 해주면 어떻겠어요? 나도 이서 씨의 요리 솜씨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배미희가 이서의 귓가에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셰프들이 준비한 식사는 질렸거든요.” 배미희가 이렇게 말하니, 이서는 그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제가 내일 모두에게 밥을 대접해 드릴게요. 하지만 맛은 보장할 수 없어요.” 배미희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감히 싫은 소리를 하겠어요. 한 달 동안 같은 셰프가 같은 방식으로 만든 식사는 징벌, 그 자체였다고요.”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지엽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서야 이씨 가문의 고택을 떠나려 했고, 이서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특별히 그를 문어귀까지 데려다주었다. “여기까지 발걸음해 줘서 정말 고마워.” 지엽이 손을 내저었다.“이서야, 오늘 저녁에만 해도 이미 10번 이상 고맙다고 했잖아. 내가 널 위한 선물을 준비한 건 너의 감사를 얻기 위한 게 아니었어.” “그럼?”이서의 맑고 청아한 눈동자를 본 지엽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만 같았다. “왜 그래,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거야?”이서가 이해되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지엽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인제 그만 가볼게. 너도 어서 들어가.” “그래, 알았어.”이서는 곧장 몸을 돌려 장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엽은 제 자리에 선 채 그녀의 뒷모습이 검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고서야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바로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미친 듯이 달려온 차 한 대가 그의 차를 들이받았다. ‘음주 운전인가?’안색이 변한 지엽이 사고 운전자를 확인하려던 찰나, 차에서 내린 묘령의 여인이 자신을
남녀 힘의 차이는 대단히 컸기에, 가은은 지엽이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지엽의 차량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앞을 휙 지나쳐 버렸다. 가은은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차의 후미등 불빛이 사라지자, 가은이 원망스럽다는 듯 눈앞의 장원을 바라보았다. ‘너무 짜증 나.’‘윤이서가 어떻게 이씨 가문을 꼬드긴 거지?’ ‘그 여자, 운도 좋다니까.’ 장원 안.배미희와 잠시 대화를 나눈 이서는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위층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기 전, 상언을 흘끗 바라보았다. 배미희가 이 디테일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서가 방에 들어서자 배미희가 지체 없이 상언에게 말했다.“상언아, 이서 씨가 너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더구나.” 상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받침대를 내려놓았다. “됐어요.”“가서 한번 물어봐, 방금 보니까 이서 씨가 너를 여러 번 쳐다보더라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상언이 몸을 일으켰다. “아마 지환이의 일을 묻고 싶은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올라가 볼게요.” 상언이 예상이 적중했다.이서는 지환의 일을 너무도 알고 싶어 했다. 다만, 지금의 그녀에게 지환은 ‘H선생님’이었다. “H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이서가 긴장한 듯 물었다. “그건...”상언 역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H선생님께서 저를 만나는 걸 원치 않으시는 거죠, 그렇죠?” 이서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상언이 급히 부인했다.“그런 건 아니에요. H선생님도 이서 씨를 정말 만나고 싶어 하세요.” “정말요?”이서가 물었다.“그러면 왜 저를 보러 오지 않으시는 거예요?” “일이 좀 복잡해서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서 씨,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이곳의 생활을 좀 더 즐기는 건 어떨까요?” 실망한 이서가 대답했다.“네, 알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차린 이서가 상언에게 말했다.“정말 감사해요, 이 선생
시간이 늦지만 않았더라면, 이상언은 곧바로 시작하려는 듯했다. “네.”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굿나잇 인사를 나누었고, 상언은 그제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아래층에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배미희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지엽 도련님이 오셨다는 걸 지환이한테 알려야 할까?’방으로 들어간 상언이 고민을 하던 바로 그때,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지환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전화를 거는구나.’상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서 씨를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까 봐 정말 두려운가 봐.’상언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으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왜 말이 없어?”졸고 있던 지환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이서는 집에 돌아왔어?]“응, 진작에 왔지. 근데 이서 씨만 온 게 아니라, 지엽 도련님도...” 수화기 너머의 숨죽인 호흡을 느낀 상언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욱 짙어져 갔다.“지엽 도련님도 오셨어. 이서 씨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오셨더라고.” [그거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지환은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으나, 전혀 졸리지 않은 듯했다. “내일 이서 씨가 직접 준비하는 요리를 먹으러 또 오신다더라. 지환아, 너도 긴장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지환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는 이 상황이 즐거운가 봐?]“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네가 무슨 긴장할 필요가 있겠어. 너는 목소리만으로 이서 씨를 구했잖아.” ‘하나 씨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지환은 상언처럼 낙관할 수 없는 듯했다. “너 지금 어디야? 왜 이렇게 조용해?”상언은 처음부터 묻고 싶었다.[비행기 안이야.]지환이 눈을 감았다. “정말 오는 거야?”상언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응.]“아니, 그쪽 일은 아직 다 처리하지도 않았잖아?” [이천이 있잖아.]지환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아무래도 피곤한 것 같아. 더는 방해하지 말자.’“그래, 좀 쉬어
“길고양이? 대체 언제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러 간다는 거니?” 이상함을 감지한 배미희가 물었다. 하지만 상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려는 듯했다.“엄마, 신경 쓰지 마시고 5인분을 준비해 주세요.” 아들의 요구를 들은 배미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1인분은 많은 양도 아니니까.’ 오히려 이서는 흥미를 느낀 듯했다.“이 선생님께서 이렇게 정이 많으신 분인 줄은 몰랐네요.” 상언이 무슨 우스운 일이 생각난 듯했다.“길고양이를 잘 먹이지 않으면 우리 집 지붕을 뒤집어 놓을지도 모르거든요.” 놀란 이서가 물었다.“그렇게 사나운 고양이예요?”미소를 지어 보인 상언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떠났다. 이서는 오후가 되어서야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아요?”“괜찮습니다, 사모님.”이서의 대답을 들은 배미희가 부엌을 떠났다. 부엌을 나선 그녀는 목을 길게 뺀 상언이 문 앞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안이 벙벙했던 그녀는 상언의 뒤로 걸어가 그를 따라 목을 길게 빼고 밖을 보았다.“아들아, 뭘 보는 거니?” “길고양이요.”상언이 대답했다. 지금쯤이면 지환이 비행기에서 내리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나, 그는 시간을 질질 끌며 나타나지 않았다. 상언은 지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서 씨에 관한 일이라면 평소의 지환이를 생각해서는 안 돼.’ 그러나 지환은 이서가 요리를 완성할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식탁에 앉은 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야.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설마... 이서 씨가 자극받을까 봐 참고 있는 걸까?’ “이 선생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맞은편에 앉은 지엽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제가 이서를 빼앗아 갈까 봐 걱정되시는 거예요?”상언은 고개를 들어 다소 악랄하게 웃는 지엽을 바라보았으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엽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이미 말씀드렸지만, 하 대표님은 쉽게 이서 앞에 나타날 수
이서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던 배미희가 이내 식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들 왜 그래요?”“잠시 나갔다 올게요.”상언은 문밖의 지환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마중 나올 필요 없어.” 바로 이때, 문어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이서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려 문어귀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문어귀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지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 사람은 바로 지환이었다. 다만, 그의 얼굴에는 은색 가면이 씌워져 있었으며, 정교한 그 가면 위에는 생동감 넘치는 용이 조각되어 있었다. 지환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과 같은 고귀함과 신비로움을 내뿜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이서를 본 그는 인내심을 잃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자석과 같아서, 지환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서를 끌어당길 수 있는 듯했다. ‘이럴 수가!’지엽의 심장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됐다. “H 선생님? H 선생님 맞죠?”지환의 앞에 선 이서는 온몸의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내가 왜 이러지?’ 지환은 마음이 복잡해졌다.‘드디어 이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이서를 쓰다듬으려 했으나, 이내 마이클 천의 경고를 떠올렸고 손을 거두었다. “그래요, 나예요.”그의 낮은 목소리는 아주 섹시했다. “정말 H선생님이세요? 제가 상상했던 모습이랑... 정말 똑같으세요.” 이서가 떨리는 손으로 지환의 가면을 벗겨 얼굴을 확인하려 했으나, 그가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어머, 내가 무슨 짓을!’이서는 난감해졌다.“죄송해요, 얼굴이 너무 궁금해서 그만...” “내가 더 미안해요. 난 아직 Y양에게 내 얼굴을 보여줄 수 없어요.” “왜요?”“Y양은 아직 내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요.”“저 때문이라는 거예요?”지환이 이서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그럼 언제쯤 얼굴을 보여주실 수 있는 거예요?
배미희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기에, 상언이 아침에 말한 길고양이가 지환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잔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상언은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수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그가 얼른 지환을 향해 말했다. ”형님, 형님,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식사를 마친 후에 사죄드리겠습니다.”“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보세요, 이서 씨가 정성껏 요리한 음식인데, 어서 드셔보고 싶지 않으세요?” ‘역시 이서를 빼돌리는 건 명확한 해결 방법이 아니었나 봐.’ 지환은 걸음을 옮겨 식탁으로 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지엽을 쳐다보지 않았다.무시당한 지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지환과 경쟁 관계였으나, 은철처럼 이서가 보는 앞에서 지환을 언급할 사람이 아니었으며, 이서를 부추겨 지환의 가면을 벗기는 일을 더더욱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것만이 지환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그 덕에 저녁 식사는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끝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지엽이 SNS를 게시했다. [식사를 대접해 줘서 고마워, 이서야.]게시한 사진은 이서가 준비한 풍성한 만찬을 찍은 것이었다.지엽은 하은철의 절친한 친구 중의 하나였다.‘어차피 은철이도 이 게시글을 보게 될 거야.’ 그가 일부러 은철에게 게시글을 공유했다. ‘어차피 M국까지 쫓아오지도 못할 텐데, 뭐.’ ‘설령 온다고 하더라도 하 대표님이면 은철이를 상대할 수 있으실 거야.’“H선생님.”이서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나왔다. “과일 좀 드세요.”이 장면을 본 지엽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지환이 나타난 후, 이서의 시선이 줄곧 그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배려한다고 할지라도, 지환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더욱 다정했다. 그녀의 두 눈은 별이 박히기라도 한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질투하시는 겁니까?” 상언이 갑자기 다가와 지엽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엽은 즉시 눈길을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