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은 지환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1분 1초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가능하다면, 많은 돈을 써서라도 이 두 시간을 무한히 연장하고 싶어.’ 애석하게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지환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금세 두 시간이 흘렀고, 그는 이서가 깨어나기 전에 병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병실을 나선 지환이 어느새 도착한 이상언과 임하나, 그리고... 떠나지 않은 지엽을 바라보았다. 상언의 속뜻을 짐작하고 있던 지엽이 지환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하 대표님, 너그럽지 못하시네요.” “분명 이서를 데려가라고 하셨으면서” “하 대표님의 친구분을 배치하셨으니까요.” 지환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나랑 합작하기 전까지는 이서를 데려갈 수 없다는 걸 잊지 마.”“그때는 제가 하 대표님께서 하은철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몰랐지 않습니까. 만약 그때 대표님의 신분을 알았더라면, 절대 대표님과 합작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환이 지엽을 향해 다가갔다.“얼마면 되겠어?” 지엽의 안색이 변했다.“지금 돈으로 제 진심을 모욕하려는 겁니까?” “아니, 보답하려는 거야, 이서의 남편으로서.” 지엽의 표정이 다소 음울해졌다.“하 대표님, 진심으로 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으신 거라면, 돈으로 저를 모욕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저도 하 대표님과 마찬가지로 이서가 하은철이랑 결혼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서를 돕는 이유는 이서를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서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지엽이 말했다. 지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을 본 상언이 얼른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곧 이서 씨가 깨어날 겁니다. 여기서 계속 싸우다가 이서 씨가 지환이를 보고 또다시 자극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이러는 겁니까?” 두 사람은 상언의 말을 듣자마자 말다툼을 멈추었다. “나 먼저 가볼게.”지환은 이 말을 던지고 문을 향해 무거운 발
“아닌가? 꿈을 꾼 것만 같아.”말하면 할수록 이서의 머릿속은 혼잡해지는 듯했다. 그녀가 고통스럽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나도 몰라... 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 “그래, 괜찮아, 괜찮아.”하나가 이서의 손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이서야, 모든 걸 기억해 내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 이것만 기억해. 누군가가 너를 구했고, 너는 하은철과 결혼하지 않아도 돼.” 하나를 바라보던 이서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럼... 혹시...”하나가 상언을 끌어당겼으나, 그와 눈을 맞추지는 않았다.“이 선생님이랑 외국으로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해?” “이 선생님?”‘분명 본 적이 있는 사람이야.’ “이서야.”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의 시선이 금세 그에게 향했다. 그는 바로 지엽이었다. 지엽은 웃으며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서야, 나 기억해?”이서가 눈을 깜빡거렸다.‘확실히 낯이 익은 사람이야.’“혹시 저를 구하러 오셨던 분이세요?” 난감함을 느낀 지엽이 쓴웃음을 지었다.“나야, 소지엽. 기억 안 나?”이서가 문득 깨달은 기색을 드러냈다.“지엽이었구나, 너... 정말 많이 변했다. 아니, 정말 많이 커버렸어.” ‘이서의 기억 속에 나는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지엽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듯했다. “이서야.”지엽이 갑자기 엄숙해졌다.“나랑 외국으로 갈래, 아니면 이 선생님이랑 외국으로 갈래?” 이서가 물었다.”두 개의 선택지에 무슨 차이가 있는데?” “나랑 외국으로 가면 나의 보살핌을 받게 될 거고, 이 선생님과 외국으로 가면 H선생님의 보살핌을 받게 될 거야.” 지엽이 대답했다. “H선생님?!”이서는 깜짝 놀라 상언을 쳐다보았다.“H선생님의 사람이세요?”“그렇다고 할 수 있죠.”고개를 끄덕인 상언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지엽을 바라보았다. ‘만약 지엽 도련님이 진심으로 이서 아가씨와 함께 외국에 가길 바라셨다면, 굳이 내가 하 대표님의 사람이라는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받은 이서가 이상언과 함께 비행기에 오르기로 결심했다.“하나야, 정말 나랑 같이 안 가는 거야?” 이서가 임하나의 손을 잡고 아쉬워했다. 하나가 상언을 한 번 바라보았지만, 고개를 돌린 상언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서야, 기회가 있으면 널 보러 갈게. 외국에서 잘 치료하고 있어야 해, 알았지?” 하나의 말을 들은 이서는 그녀가 자신과 함께 외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서는 크나큰 실의에 빠진 듯했다.“응, 잘 치료할게. 너도 잘 지내야 해.” “응, 꼭 그럴게.”하나의 아련한 시선이 상언에게 향했다. 잠시 후, 그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선생님, 저랑 따로 이야기 좀 하시죠.” 다른 방법이 없었던 상언은 고개를 돌려 하나를 마주해야 했다.눈빛의 모든 정서를 거둔 그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요.”몸을 일으킨 두 사람이 복도를 따라 다른 방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하나가 상언을 껴안았다. 상언은 정신이 멍해졌으나, 공허했던 심장은 서서히 채워지는 듯했다.“이 선생님.”“네.”“선생님도 꼭 잘 지내셔야 해요.”이는 수많은 감정을 대변하는 한마디였다. 상언의 떨리는 손이 하나의 부드러운 머릿결로 향했다. “그래요. 하나 씨, 내가 없어도 잘 지내세요. 그리고...” 상언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하나를 바라보았다.“가끔은 날 생각해 줘요.”하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그럴게요.” 하나의 대답을 들은 상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약속한 거예요.”“네.”하나가 상언의 손을 잡았고, 상언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같은 시각, 비행기 옆.스웨터 한 벌을 품에 안은 심소희가 숨을 헐떡이며 온몸이 피투성이인 임현태의 앞에 서 있었다.그녀의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많이 다친 거예요?소희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현태의 시선이 소희의 품에 안긴 스웨터로 향했다.그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나한테 주
박예솔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 여자, 지금 어디 있어요?] “비행기 안에 있을 겁니다.”하은철이 냉소를 지으며 소파에 대자로 널브러졌다. 그의 심장부는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으며, 가볍게 숨을 내쉬는 것조차 통증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틀림없이 외국으로 갔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하은철 씨와 한배를 탄 이상, 난 반드시 약속을 지킬 테니까요.] [잊지 마세요, 내가 하지환 씨와의 결혼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걸요.] 하지만 은철은 그녀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되찾을 수 없는 듯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겁니까?” [살아있는 한 기회는 있어요. 설마 이렇게 빨리 포기하려는 거예요?] 은철은 서서히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래요, 죽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있겠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실 필요 없어요. 윤이서 씨가 외국으로 간 이상,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하은철 씨의 도움이 필요할 때 다시 연락드리죠.]“네.”짧게 대답한 하은철이 또 갑자기 물었다.“우리도 이제 아는 사이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당신의 정체를 밝힐 때도 되지 않았나요?”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은철이 말을 이어 나갔다.“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습니까?” [박예솔이에요.]예솔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은철은 즉시 멍해졌다. “작은 아빠를 쫓아다닌다는 그 여자라는 겁니까?” 은철은 예솔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지환의 동네에서 예솔은 너무도 유명했다. 심지어 거의 모든 이가 그녀가 지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지환과 몇 번의 만남을 가졌던 은철 역시 예솔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서와 마찬가지로 결과를 따지지 않는 직진형이었기 때문에, 은철은 그녀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여자가 작은 아빠를 쫓고 있을 때, 이서가 날 버리고 떠나버리
이서를 환영하는 목소리와 함께 수많은 꽃잎이 흩날려 땅에 떨어졌다. 너무도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꽃잎을 따라 거실로 들어간 이서는 커다란 케이크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그 케이크에는 이서를 환영한다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이서 씨?” 매우 귀한 옷차림을 한 부인이 다가와 이서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상언을 여러 차례 입을 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와, 정말 아름답네요. 역시 우리 아들의 안목은 훌륭하다니까요. 이서라고 불러도 되겠죠?” 이서는 그제야 눈앞의 부인이 상언의 어머니이고 또 오해한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저는... 이 선생님의 여자 친구가 아니에요.” 이서의 말을 들은 배미희가 즉시 상언을 바라보았다. 상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맞아요, 이서 씨는 제 여자 친구가 아니에요. 그저 여자인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했지, 여자 친구를 데려온다는 건 아니었는데... 오해하셨어요?” 배미희가 한심하다는 듯 상언을 바라보았다.“너, 나이가 곧 서른인데도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잖니. 이런 상황에서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면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 않니?” 곧 배미희가 미소를 지은 채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서 씨, 남자 친구는 있어요? 우리 상언이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이서 씨의 생각에 우리 상언이는...”그녀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상언에 의해 베란다로 끌려갔다. “엄마, 그만하세요. 제 여자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왜? 이 세상의 모든 남녀 관계는 친구로 시작하는 거 아니니?” “이서 씨는 지환이의 아내예요.” 놀란 배미희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말도 안 돼, 이서 씨가 정말 지환이의 아내라면, 지환이의 집에 있어야지, 너랑 우리 집에 있는 게 말이 되니? 네가 엄마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니고?” “엄마, 일이 좀 복잡하게 됐어요. 아무튼 이서 씨 앞에서 절대 지환이를 언급하면 안 돼요, 아시겠죠?”상언의 얼굴에
상언이 말을 덧붙였다.“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남자 친구로 인정하지는 않았어요.” “?”배미희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더는 묻지 마세요.”상언이 몸을 일으켰다.“복잡한 일이 좀 있었어요. 어찌 됐든 계속 노력해 보려고요.” “그 말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겠구나.” 배미희가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그나저나 지환이랑 저 아가씨는 어떻게 된 거야? 지환이는 왜 저 아가씨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 거야?” 가십거리를 즐기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본 상언이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 씨와 지환이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면, 엄마가 호기심만으로 이상한 소동을 일으킬 수도 있겠어.’상언은 이서와 지환의 일을 간단히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배미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이서 씨 앞에서는 지환이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된다는 거니?” “네.”“어휴, 정말 안됐구나. 그나저나 어릴 때부터 일에만 집중하던 지환이가 사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될 줄이야.” 상언이 대답했다. “그러게요, 지호 형도 꺾지 못한 지환이를 한 여자가 쥐락펴락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배미희가 말했다.“이서 씨도 참 안쓰러워. 하씨 가문도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구나. 왜 굳이 이서 씨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건지…” 배미희는 같은 여자로서 더욱 큰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이서가 자신의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이튿날에 놀러 나가자고 제안했다. 상언은 아무런 반대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가 이서 씨와 함께 놀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바다로 갈까요?”배미희가 물었다.“나도 바다는 오랜만이거든요.” “좋아요.”이서가 얌전히 대답했다.‘어쩜 저렇게 착할 수가!’기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 배미희가 상언을 노려보았다. 상언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이서와 배미희는 차를 타고 해변으로
이서가 고개를 돌리자 곱고 긴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그녀의 옷은 명품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맞춤형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몸에 꼭 맞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서를 알아보았지만 이서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아까 사모님께서 여기에는 사모님의 옛 지인이 아주 많다고 하셨잖아. 이분도 사모님의 지인분이시지 않을까?’ 이서가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심가은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하이먼 스웨이의 일로 이미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은은 지엽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서라는 사실도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그래서 이서가 여기에 있는 것을 본 가은은 매우 놀랐으며, 첫 반응으로 트집을 잡으려던 것이었다. ‘왜 나한테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거지?’ ‘미쳐버린 걸까?’‘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가은이 이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웬일이야?” “배미희 사모님의 초대를 받았어요.”이서가 대답했다. “배미희 사모님?”가은은 이서가 말하는 배미희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그녀가 냉소를 지었다.“허, 우연의 일치라고? 우리 엄마의 심부름으로 온 건 아니고?” 이서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가은을 바라보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우호적이지 않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무슨 말인지 몰라? 멍청한 척이라도 하는 거야?”심가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를 도와 나를 찾아서 그 덕을 보려는 거잖아.” “외국까지 쫓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뭐야.” 이서의 안색이 변했다.“저기요, 아가씨, 도통 무슨 말씀인지…” 가은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아가씨.”그때 한 직원이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유람선이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바다로 나가실 수 있습니다.”
가은은 처음 그 유람선을 보자마자 바로 매료되었으나, 애석하게도 그 유람선에 올라 진면목을 볼 기회는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번이고 하이먼 스웨이에게 애원했었다.하이먼 스웨이는 기회가 된다면 가은과 함께 그 유람선에 오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녀의 애원을 잦아들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가은의 억지에 화가 난 하이먼 스웨이는 그녀를 크게 꾸짖었었다. 물질적인 것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이먼 스웨이는 매우 완곡하게 말했으나, 가은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허영을 꿈꾸지 말라는 하이먼 스웨이의 분명한 뜻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은은 하이먼 스웨이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모든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하이먼 스웨이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왜 저는 올라가면 안 된다는 거죠?” 짜증이 난 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이상한 분이시네요. 비켜주시겠어요?” “허, 내 앞에서 허풍이라도 떨어보려는 거야? 거기 올라갔다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는 전혀 두렵지 않은가 봐?” ‘이씨 가문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이서가 가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무슨 말씀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네요.”말을 마친 이서가 유람선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가은은 팔짱을 낀 채 이서가 당할 망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람선의 직원들은 이서를 쫓아내기는커녕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가 유람선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가은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은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 또한 빠르게 달려가 유람선에 오르려 했지만 직원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가씨, 아가씨는 이 유람선에 오르실 수 없습니다.” 가은이 이서를 가리켰다. “그럼 저 여자는 왜 된다는 거예요?” “이서 아가씨는 저희 가문의 사모님의 지인이십니다.” “뭐, 뭐라고요?”가은이 웅얼거렸다. “이서 아가씨는 저희 가문의 사모님의 지인이십니다.”다시 한번 반복한 직원이 예의 바르게 말했
그것은 지환이 이서에게 보낸 고이서에 관한 자료였다.‘이게 왜 열린 거지?’이서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왜 그래?]이서의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자, 지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의 시선은 시종일관 고이서의 자료에 머물러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고이서의 자료를 보는 중인데, 다 보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요.”이서는 전화를 끊고 자료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 자료의 내용은 고이서가 제공한 이력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이서는 5살 때 화재 사고를 겪은 후 해외로 보내졌다.하지만 지환이 보내온 자료에는 더욱 상세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당시 겨우 5살이던 고이서는 하룻밤 사이에 해외로 보내졌고, 병원에 도착한 후에는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차례로 퇴원하게 되었다. 딸의 치료 기간 동안, 성지영과 윤재하는 각기 다른 시점에 귀국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귀국한 후 처음으로 향한 목적지가 모두 보육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번.보육원 쪽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이 고이서를 대신할 아이를 구하러 간 것임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이서였다. ‘그때 윤수정이 내가 윤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게 전부 사실이었구나.’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처음에 하은철이 이서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의 신장을 위한 것이었는데, 윤재하와 성지영은 하은철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서와 하은철이 결혼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도우려 했다. ‘하긴, 나는 윤씨 가문에 있어서 시집을 통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게 할 도구일 뿐이었어. 누가 그런 도구한테 큰 관심을 쏟으려 했겠어?’‘윤재하가 그렇게 막대한 자금을 횡령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하씨 가문은 윤씨 가문에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윤씨 가문은 줄곧 재기하지 못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내가 윤씨 가문 사람들한테 배신당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어제, 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환과 지엽이 보낸 자료를 동시에 받았다. 이서는 어떤 자료를 먼저 열어야 할지 심란해졌고, 아예 두 자료 모두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환 씨를 골라야 할까, 아니면 지엽이를 골라야 할까?’이서는 서류봉투에 있는 전화번호를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이서는 갑자기 동전 던지기를 떠올렸다.‘그래,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를 때는 동전을 던지라고 했어!’사실, 동전을 던지는 최종 목적은 선택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전을 던지는 순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에 있었다.하지만 이서는 동전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잔돈을 바꿨고, 끝내 50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게 되었다.이서는 차로 돌아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동전 던지기를 시작했다.짤랑.이서의 머리가 하얘지던 찰나, 동전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됐어, 한 번 더 해보자.’생각을 정리한 이서는 곧장 동전을 던지지 않고, 깊게 한숨을 내쉬며 머릿속이 맑아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동전을 위로 던졌다.동전은 다시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이서의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이서는 어이가 없어서 동전을 다시 주워 들었다.‘이 방법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 같아.’ ‘그래, 차라리 숫자나 그림으로 고르는 게 좋겠어.’ 이서는 다시 동전을 집어 들었다.‘숫자는 하지환 씨를, 그림은 지엽이를 가리키는 걸로 하자.’마음을 확실히 정한 이서는 다시 동전을 던졌다. 이번에는 동전이 그녀에게 확실한 답을 주었다.‘그림이구나.’하지만 이서는 명확한 답을 얻고도 기쁘지 않았다. 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지엽이 건넨 서류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얇은 서류 더미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이서는 손을 들어 어렵사리 서류봉투를 열었는데, 서류를 꺼내려는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환에게서
“그럼 이번 일은 구태우 씨에게 조사를 맡기를 걸로 하겠습니다.”이서가 몸을 일으키며 소지엽을 바라보았다.“세부적인 내용은 심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하면 돼. 나는 돌아가서 회사 일부터 처리해야겠어.”소지엽은 이서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바래다줄게.”“괜찮아.”이서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몸을 돌려 떠났다. 그 단호한 뒷모습과 깔끔한 마무리, 소지엽은 이서의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달갑지 않은 게 분명해.’“소지엽 씨?”지엽은 심근영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심근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한편, 아래층에 도착한 이서는 주동적으로 소희 모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서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지숙은 꽤 의아해했다.“이렇게 빨리?” “네, 구체적인 사항은 지엽이가 대표님과 상의할 거예요. 저는 여기 있어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소희가 이서의 팔을 붙잡았다.“언니, 제가 데려다줄게요.”이지숙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는 소희와 이서의 관계가 더 좋아져서 지환이라는 큰 나무에 기댈 수 있기를 바랐다. “언니, 오늘 소지엽 씨와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렇지 않았다면, 유인이 언니의 만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이서가 말했다.“그러게,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아.”“참, 소희 씨의 양부모가 아직도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 “조금 이상하긴 해요. 꽤 오랫동안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았거든요.”이서가 말했다. “심태윤도?”“네.”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소희 씨에게 게임 회사의 기밀문서를 훔쳤다는 누명을 씌운 사람이 심태윤일 가능성은 없을까?”소희는 고개를 저었다.“걔가 벌인 짓이었다면 심씨 가문 사람들이 벌써 잡아냈을 거예요.” “심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조사했는데도 못 찾아내는 걸 보면, 심태윤이 벌인 짓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심태윤이 심씨 가문 사람들과 협력해서 벌인 일인 건 아닐
‘소희 씨의 심씨 가문 생활, 꽤 재미있는 것 같은데?’ “우리... 2층에 가서 얘기 좀 할까?”심근영이 2층 방향을 가리켰다. 이서는 소지엽을 한 번 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대답했다.“네.”세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용인이 차와 음료를 내려놓고 떠나자, 심근영이 입을 열었다.“윤 대표는 어떤 생각을 했길래, 소지엽 씨한테 우리 소희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한 거지?” 이서가 대답했다.“말하자면 깁니다.”시간은 주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이서는 고이서와 성지영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회사로 돌아갔고, 지환은 이서에게 구태우와 자신 중에 누가 먼저 고이서의 자료를 찾는지 비교해 보라고 했다.이서는 일요일 하루 종일 지환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가 분명히 고이서를 조사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환 씨... 꽤 진지한 것 같아.’이서는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서도 자신이 왜 긴장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지환이 구태우보다 더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환이 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환이 이기기를 바라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복잡한 마음에 시달리던 이서는 오후 3시쯤 구태우의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를 보는 순간, 이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는데, 그제야 자신이 지환이 이기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때, 이서는 구태우의 전화를 받았다.[회사로 가겠습니다.]“그냥 자료를 보내주시면 되잖아요.” 구태우의 말투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자료를 원하신다면 가져가겠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시죠.]이서는 자신이 구태우를 화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오직 고이서를 생각하면서 카페로 향했다.몇 분 후.카페에서 소지엽을 만난 이서의 구태우의 말투가 어두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서는 잠시 생각한 후, 소지엽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왜 네가 온 거야?” “내가 구태우한테 자료를 달라고 했어. 왜, 불편하기라도 한 거야?” 이서는 소지엽의
심유인이 말하지 않자, 심근영은 소민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민찬은 선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터라, 값싼 선물들을 보고 당황하여 얼른 설명했다.“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선물들은 제가 산 게 아니라, 전부 유인이가 산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애초에 유인이는 저한테 몸만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여러분,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소민찬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답례 선물은 안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소민찬은 이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심씨 가문의 저택을 떠났다. 심유인은 그의 뒤를 쫓아가려다가 심근영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유인아, 우리가 알아듣게끔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니?”심유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촌, 숙모, 저... 저는...”“차마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네요.”소희가 심유인의 곁으로 다가가 냉소하며 말했다.“제가 대신 말씀해 드릴게요.” “제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는 걸 알고, 일부러 소민찬 씨를 찾아가서 남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한 거죠?” “소민찬 씨는 남자 친구인 척만 하면 되니까, 이 선물들도 소민찬 씨가 샀을 리 없어요.”“전부 다 언니 사비로 사신 거죠?” 심유인의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그런 거 아니야...!”심유인은 아직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소민찬 씨가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난 거니?”이지숙이 물었다. ‘다른 세 가지 선물은 전혀 가짜가 아니었어. 확실히 수십억은 되는 것들이었다고.’‘회사에서 근무하지도 않는 유인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겠어?’심유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심근영은 심유인의 반응을 살피다가 집사를 불렀다.“당장 조사해, 당장!”심유인은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아 ‘털썩’ 소리를 내며 심근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삼촌, 제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 선물들은... 전부
심유인과 소민찬은 그제야 제자리에 얌전히 섰다.“유인아, 네가 먼저 말해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심유인은 소민찬의 핸드폰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더 많은 비밀이 폭로되는 건 막아야 해!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겠어.’ “사, 사실 민찬 씨는 제 남자 친구가 아니에요. 하지만 민찬 씨가 제 남자 친구가 되길 바랐고, 제가 먼저 그 말을 꺼내기는 부끄러워서 제 남자 친구인 척해달라고 한 거예요. 이번 일로 잘 지내면서 감정을 키우고 싶었거든요.” “절대 다른 뜻은 없었어요. 맹세할게요!” 심유인이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다면, 소희는 심유인을 믿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심유인의 마지막 말은 소희의 의심을 더욱 확고히 했다.‘심유인, 일부러 그런 거구나?’ ‘소민찬을 남자 친구인 척 데려온 건, 현태 오빠에게 망신을 주기 위한 거였어.’ “감정을 키우고 싶었다면서, 왜 저렇게 많은 선물을 사 오라고 한 거예요?”소희는 일부러 모르는척하며 물었고, 단번에 덜미를 잡힌 심유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주방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소민찬과 심유인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소민찬은 특히 소지엽의 시선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 그건...”“민찬 씨는 저를 좋아하지 않지만, 소씨 가문은 아무래도 명문가 집안이잖아요. 그런 분들을 뵈러 오려면 선물 정도는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요?”심유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정 교육이 잘 되어 있어서 남의 집에 방문할 때 선물을 챙기는 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2억도 아닌 몇십억짜리 선물을 준비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소희는 비웃으며 선물 더미 옆으로 향했고, 상자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에도 아주 비싼 게 들었겠죠?” 심유인은 곧장 소희를 막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소희는 선물 상자를 뜯기 시작했고, 이내 안에 있던 선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그 선물을 확인한 소희는 놀라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형, 안녕.”소민찬은 소지엽의 질문을 피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지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소민찬을 바라보았다.“민찬아,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 네가 왜 여기 있냐니까?” 소민찬은 이제 마냥 대답을 회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분명히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어...’소희는 소민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의문을 제기했다.“모르셨어요? 소민찬 씨는 유인 언니의 남자 친구예요. 오늘 여기 온 이유도 사실상 저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거죠.” “심유인 씨랑 사귄다고?”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잖아?” 소민찬과 심유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형, 아무래도 잘못 기억하는 것 같아. 그날 같이 밥을 먹은 사람도 유인이었어.” 소지엽은 지난번에 집에서 함께 식사한 여자가 심유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성이 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나.’‘그 여자는 절대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아니, 그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소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그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잖아. 지금은 왜 또 심유인 씨와 사귄다는 거지?” 소민찬은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소 역정을 내며 말했다.“형,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 형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부모님도 내가 여자 친구를 몇 명을 사귀는지 신경 쓰지 않으시는데, 형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그래, 나는 네 사적인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계속 본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본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절대 스캔들을 만들면 안 돼! 그런 일은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소민찬은 당황하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
소민찬이 비웃으며 말했다.“허, 천재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심근영이 말했다.“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군요.” “천재답게 생긴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런 규칙은 누가 정한 거죠?” “어차피 임현태 씨는 허풍을 떠는 거지 않습니까? 시험에 합격에서 하버드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두 사람, 문맹이거나 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소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현태 오빠의 소개란에 당시 오빠의 성적을 적어둔 게 있잖아요. 클릭해서 좀 보세요. 현태 오빠는 수석으로 하버드에 들어갔다고요.”“그리고 오빠에게 추천서를 써준 사람은 하버드에서 공정하기로 유명한 물리학 교수라고요.”“설마 그 교수님보다 두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소민찬과 심유인은 그제야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가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확인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큰소리를 친 것을 후회했다.‘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했다면, 임현태를 다른 방식으로 비웃을 수 있었을 텐데.’“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잖아. 하지만 우리 민찬 씨는 달라. 단순히 해외 유학파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도 할 줄 안다니까?” “소희야, 네 남자 친구는 그렇게 고상한 취미는 즐길 줄 모르지?” 현태가 말했다.“하 대표님의 곁에 있는 경호원에겐 기본인 것들입니다. 만약 그것도 할 줄 모른다면, 하 대표님은 저를 곁에 두지 않으시겠죠.”‘기본’이라는 말은 소민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완전히 짓밟는 것이었다.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이런 것들은 흔히 ‘재산을 낭비하며 점차 타락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기본 패키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현태에게는 그저 기본일 뿐이었다.‘감히 날 모욕해?’소민찬이 일어서서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하려던 참에 고용인이 뛰어와 말했다.“윤 대표님
심유인과 소민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가까스로 하버드에 합격했다고?’‘허풍 떠는 거 아니야?’ “정말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라고요? 하버드 학원 출신이 아니고요?” 현태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저는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 맞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조사해 보셔도 되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 하버드 대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했다.두 사람은 약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홈페이지 링크를 누르자마자 우수한 동문의 행렬에 있는 현태의 얼굴을 발견했다.이를 믿을 수 없는 것은 이지숙도 마찬가지였다.‘정말... 사진 속의 사람이 현태 씨라고?!’ ‘말도 안 돼!’‘소민찬이 어느 대학교에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Y국에 있는 대학교 출신일 거야. 학문도, 능력도 없는 재벌 2세들이 어디서 신분 세탁을 하는지는 불 보듯 뻔한 거니까.’ Y국의 학위는 이수하기가 가장 수월해서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 사람은 분명히 알지 못해서 겁을 먹기 일쑤였다.심유인은 원래 소민찬의 학력을 빌미로 현태를 놀라게 하려 했다.하지만 놀래키기는커녕 본인이 놀라게 된 셈이었다. 심유인은 곧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버드 대학교에 체육생으로 입학한 게 아니네요? 전공은 물리학이랑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임현태 씨는 체육에 타고난 거 아니었나요? 왜 물리학을 전공한 거죠?”“아, 시험 봐서 들어간 게 아니라, 부정 입학이었나 보네요, 그렇죠?” 소민찬은 심유인의 말을 듣고, 혈색을 띠며 현태의 학력을 비웃었다.“하하, 유인아, 그런 건 부정 입학이나 비리가 아니라 기부라고 하는 거야.”“임현태 씨, 입학하는 데 얼마가 필요하던가요?”“하하, 하 대표님과 대체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아낌없이 돈을 쓰는 거죠?” “저는 학력을 산 적도, 학력을 위해서 돈을 쏟아부은 적도 없습니다. 정당하게 시험으로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