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가문의 저택. 화가 난 이상효가 찻잔을 집어 던져서 박살이 나게 만들었다.티테이블 위에는 파산한 연운그룹의 회계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이 티테이블과 연운그룹 빌딩의 임대 보증금을 제외하면, 연운그룹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은 자산은 은행의 대출금을 갚기도 부족했다. 이것들은 이상효가 필사적으로 확보한 것이다.‘그래도 수억 원 밖에 안 돼.’‘지금 연계진은 체포되어 정식으로 조사를 받고 있으니, 경제적 갈등 외에 형사 책임도 지게 되겠지. 적어도 징역 15년 이상의 판결을 받게 될 거야.’‘유럽으로 보낸 화물들은 모두 물거품이 된 거나 마찬가지야.’‘화물의 원가만 해도 60억 원이 넘는데, 결국 이 수억 원만 돌려받을 수 있었어!’운성 전체에서 중간 정도에 불과한 이씨 가문이 이런 큰 손실을 보게 되자, 이상효는 그야말로 살을 베는 듯이 고통스러웠다.요 며칠 가문에서는 자신을 향해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상효도 이 화물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안 되겠어. 유럽에 가서 그 진교철을 찾아야겠어! 그놈이 감히 내 물건을 꿀꺽하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분노가 좀 진정이 되자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소지연은 바닥이 엉망진창인 걸 봤지만, 끽소리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청소만 계속했다.“당신이 그래도 예전에는 WS그룹 유럽 지역의 책임자였는데, 왜 이번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던 거야?”소지연의 배가 이미 불룩해졌지만, 이상효는 여전히 이상한 표정을 하고서 조롱했다.며칠 전만 해도 진교철과의 협력이 잘 되게 하라고 소지연에게 지시했던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이상효를 바라보는 소지연의 눈빛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만약 뱃속의 아이만 아니라면, 투신이라도 해서 삶을 마감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왜? 내가 한마디 했다고 이런 반응을 보여? 우리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이상효는 코웃음을
WS그룹 회장실.손건호가 제출한 보고서의 수치를 보다가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소태경이 2주 동안 재무 보고를 하지 않았는데, 너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손건호는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죄송합니다, 보스.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바로 보고하도록 재촉하겠습니다.”이전에 하던 대로라면 각 지역의 책임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재무 상태와 실적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유럽 지역의 책임자인 소태경이 이미 2주 연속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이 역시 손건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손건호는 당연히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책임을 미루지 않고 바로 소태경에게 재촉하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무진의 안색이 누그러지면서 손사래를 쳤다.“됐어! 소태경이 왜 보고서를 내지 않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번 일은 없던 일로 간주해. 소태경이 곧 다시 보고하면 그때 자세히 대조하면 돼!”손건호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보스가 갑자기 내 업무에서 표본검사를 하더니, 왜 잘못을 발견하고도 시정하지 못하게 하는 거지?’손건호의 표정을 본 무진이 결국 그 이유를 직접 얘기했다.“소태경이 고의로 그런 거니까 책임이 너한테 있는 게 아니야! 됐어, 내가 말한 대로 해. 그리고 적호의 종적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어?”“알아냈습니다. 유럽에서 경찰에 잡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적호의 위협은 없을 겁니다!”손건호는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왜 소태경이 규정을 어겼는지 생각하고 있었다.사실 소태경이 규정을 어기고 자금을 유용했다는 사실은 진상철이 무진에게 알려준 것이다.‘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룹의 자금을 유용하다니! 유럽지역 본부장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지난번에 연계진이 여러 곳을 끌어들였을 때 소태경도 관계가 있었지만, 나중에 자신이 직접 해명했기에 무진도 그 말을 믿었다.‘내가 또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야!” 무진은 속으로 탄식했다.그러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태경이 조용히
성연이 이틀 동안 본가에 머무르는 동안, 할머니와 고모는 줄곧 성연의 몸을 잘 보양해 주겠다고 말했다.매일 세끼 식사에는 찌개가 세 종류나 올라왔고, 과일과 견과류도 충분히 보충해야 했다. 고모가 직접 과일 껍질을 깎아서 먹여 주기도 했다.제비집에다가 전복, 인삼, 해삼 등 온갖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어야 했지만 너무 많았다.그 양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 성연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걸 다 먹다가는 몸에 열이 오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돼지가 될 게 분명해.’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연은 서둘러 거짓말을 꾸밀 수밖에 없었다. 집에 사매가 와 있는데, 낯선 곳에 처음 와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그대로 놔 두는 건 좋지 않다고.물론 요 며칠 동안 무진도 매일 퇴근한 뒤에는 본가로 와서 성연과 함께 지냈다. 주인들은 모두 나가고 손님만 집에 놔 뒀으니 사실 좀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긴 했다.그래서 성연의 뜻을 꺾을 수가 없게 되자, 할머니는 거듭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었다.“네 자신과 아기를 반드시 잘 돌봐야 해. 아기가 하나일 때보다 쌍둥이는 부담이 훨씬 커서 장난이 아니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우리에게 말해야 돼.”“할머니, 알겠어요. 할머니 말씀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성연이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서한기가 차를 가지고 본가 앞에 도착했다. 성연이 본가에서 나올 때, 고모가 성연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너하고 무진이는 당분간 밤일은 참아야 해. 아기를 위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돼!”성연은 얼굴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는 오히려 괜찮아요. 누군가는 좀 괴롭겠지만요.’“고모, 알았어요. 제가 의사인 걸 잊지 마세요.” 성연이 대답하자 고모는 마침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차에 오른 성연은 서한기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혹시나 할머니가 또 쫓아올지 몰라서.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예민주는 1층 거실에서 하인들이 준비한 차를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이미 이런 생활에
무진이 돌아왔을 때, 성연과 예민주는 여전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무진 오빠, 수고 많으셨지요! 자, 제가 차 한 잔 드릴게요!” 예민주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목소리도 아주 달콤했다.무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아, 며칠 더 있지 않고?” 성연을 살펴보던 무진이 씩 웃었다.“흥, 왜 웃어요? 내가 살쪘다고 웃은 거죠?” 무진의 미소가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성연이 곧바로 식식거렸다.“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감히? 내 아내는 전 세계에서 제일 예쁜 걸. 살이 쪄도 제일 예뻐!” 무진은 주위에 다른 하인들이 있다는 것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열심히 아부했다.그 덕에 성연의 기분은 제법 많이 풀렸다.옆에 있던 하인들은 그저 마음속으로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과 사모님은 정말 천생연분이야. 진지하기만 하던 도련님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사모님밖에 없어.’그러나 이런 장면을 보게 되자, 예민주의 마음속에서는 질투의 불길이 솟아올랐다.예민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찻잔을 들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엄지손가락을 찻물에 대고, 몰래 독을 한 방울 넣었다.엄지손가락의 손톱에는 오로지 무진에게 사용하기 위해서 예민주가 만든 독이 들어 있었다.이 독은 성연에게 쓴 독보다 효과가 훨씬 더 강하다.이 독을 일정 기간 먹으면 점차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천천히 하나씩 기억을 잃게 되면서, 결국 기억을 전부 잃게 되는 것이다.물론 예민주는 단번에 효과를 보려고 조급하게 굴지는 않았다. 이런 독은 약간의 냄새가 있어서 무진이 쉽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민주는 인내심은 아주 강하다. 수십 번에 걸쳐서 약을 복용하게 함으로써, 무진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천천히 기억을 잃게 만들 것이다.약을 탄 차를 무진에게 건네주자, 무진은 손을 뻗어 찻잔을 받았다.그러나 미소가 가득하던 무진의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지면서,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뭘 이런 걸 다. 민주 씨가
한 달의 시간이 조용히 지나갔다.성연의 배는 마침내 눈에 띄게 불룩해지기 시작했다.3일마다 병원에 가서 아기들의 심장 박동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했다.매번 예민주가 함께 갔기 때문에 성연은 특히 고맙게 생각했다. 예민주와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음식도 많이 먹고, 구경도 많이 했다.무진은 7명의 임원들을 대체할 인재들을 비밀리에 양성했고, 이미 한 자리는 대체를 마쳤다.공교롭게도 부동산 분야를 책임지고 있던 임원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쓰러진 것이다.그래서 무진은 순조롭게 그 임원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임원들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했다.유럽 쪽에서는 샤넬 가문의 가주가 실혼전에 대한 조사를 돕고 있었다. 한 번은 캐서린이 F국의 어느 술집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며칠이 지나면 샤넬의 출산 예정일이다. 긴장한 목현수가 줄곧 샤넬을 국내로 보내려고 생각했지만, 샤넬의 오빠는 동의하지 않았다.무진은 목현수를 위로했다. 샤넬 가주가 여동생을 위해 잘 준비해줄 것이고, Y국의 의료 수준도 출산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전개되자, 무진은 사업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연운그룹을 쓰러뜨린 후, 분산되어 있던 사업까지 모두 한 곳에 모았다. 그룹 산하의 200여 개 기업 주식은 계속 더 상승했다.단 한 가지, 무진은 최근 기억력이 나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대표 집무실. 손건호는 반기보고서를 종합해서 무진에게 건네주었다.“좋아, 내가 아직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해 놓았네. 요즘 확실히 많이 늘었어!” 무진이 담담하게 칭찬했다.오히려 손건호가 깜짝 놀라서 움찔하는 표정이었다.‘이건 보스가 엊그제 시킨 거잖아? 바빠서 보스가 깜빡하신 모양이네.’손건호는 그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여쭤봤던 서한기의 일은 생각해 보셨습니까?”“무슨 일?” 무진은 보고서를 바라보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깜짝 놀란 손건호가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보스에게
무진의 집. 예민주는 3층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멀리서 벤틀리가 정원으로 들어오는 걸 보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재빨리 나가 맞이했다.2층에 있던 성연도 차 소리를 듣고 내려가려고 했지만, 배를 내민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은 이미 다른 집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해변의 5층 별장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훨씬 편리했다.그러나 성연은 좀 더 있겠다고 버텼다. 지금 사는 집은 WS그룹 본사와 가까운데, 그렇게 멀리 옮긴다면 남편이 매일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걸 고려한 것이다. 성연은 이제 겨우 임신 다섯 달 정도라서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고, 또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다리를 단련하면 몸을 더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무진을 달랬다. “언니, 언니도 무진 오빠를 맞이하려는 거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제가 먼저 내려갈게요. 마침 커피를 탔는데 무진 오빠 피로가 풀리게 드려야겠어요!”2층을 지나면서 예민주가 성연에게 말했다.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도, 성연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부축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아래층으로 달려갔다.성연은 마음이 다소 언짢아서 눈살을 찌푸렸다.‘내 남편인데 왜 나보다 자기가 더 좋아하면서 설치는 거야?’요즘 성연은 확실히 걱정이 좀 생겼다. ‘예민주는 대수롭지 않게 늘 남편에게 사업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했어. 또 자기도 회사를 하나 차리고 싶다고 하면서.’‘남편도 고심하면서 거리를 두지 않았다면, 예민주를 집에서 내보내고 밖에서 살게 했을 거야.’‘아마 내가 걱정이 많은 모양이야. 임신 중 여자들은 감상적이 되고 일희일비하면서 끙끙 앓는다고 하던데.’‘예민주는 줄곧 어린 여학생처럼 순수하게 행동했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정도는 아닐 거야!’성연은 이렇게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해변의 별장으로 옮기는 결정을 다시 생각했다.1층 거실로 온 예민주는 무진이 들어오자 쏜살같이
“언니, 제가 무진 오빠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러 갈 건데, 화난 건 아니죠?”예민주는 목소리는 끈적끈적했다. 이전에는 어린 여자애의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성연의 귀에는 혐오감이 드는 소리였다.애초에 왜 굳이 예민주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지 후회하기도 했다. ‘바깥에 따로 머물 곳을 마련해야 했어.’불쾌해진 성연은 더 이상 좋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꽤 냉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사매,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 이제 모두 저녁을 먹을 때인데, 식사 전에 커피를 마시는 건 적합하지 않아!”이런 대답을 듣고도 예민주는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러나 한 달 동안 긴박하게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예민주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원래 차에 독약을 섞던 방식은 무진이 마실 수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러나 무진이 정신을 깨기 위해서 블랙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블랙커피의 향은 진하기 때문에 독의 맛을 충분히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원두커피를 우려내고 커피 맛을 본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을 여러 차례 초대해서 커피를 마시게 했다.지금까지 무려 13번이나 독을 넣었다!13번이나 되는 독약은 이미 좋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진은 자주 뭔가 잊어버리곤 했다. 심지어 며칠 전에 정 이사가 집에 왔을 때, 무진은 정 이사의 신분도 좀처럼 기억하지 못했다.그래서 예민주는 성연을 대체한다는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가급적 무진에게 접근하고 무진이 자신에게 익숙해지도록 해야 했다. 무진의 머리속에 무진의 곁에는 예민주 자신이 있다는 기억이 천천히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아직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예민주는 성연과 철저하게 반목하지 못하고 여전히 참아야 했다. “알겠어요, 언니 말대로 할게요. 식사 전은 확실히 커피를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지요! 언니, 요즘 저한테 무슨 불만이 있으세요?” 예민주는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성연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싸늘하게 대답했다.“그렇진
밥을 먹고 또 졸리자, 성연은 무진의 부축을 받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성연은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성연은 어떤 방에 뛰어들었다가, 깊이 잠들어 있는 무진과 그 곁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 있는 막내 사매를 보았다. 깜짝 놀란 성연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막내 사매에게 ‘천한 X’이라고 화를 냈다. 막내 사매에게 자신이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도,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막내 사매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오히려 득의양양하게 비웃더니, 갑자기 성연의 아랫배를 칼로 쿡 찔렀다.아파서 혼절한 성연은 자신이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놀라서 깨어나자 성연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헐떡거리면서 거친 숨을 내쉬던 성연은 그제서야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침대 옆을 보자 무진이 보이지 않았다. 까닭 없이 불안해진 성연이 얼른 무진을 불렀다.“무진 씨, 무진 씨!”목소리가 커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문득 3층에서 무진의 대답이 들려왔다.“나는 위층에 있어. 당신 일어났어?”성연은 잠시 멍해졌다. ‘왜 남편이 위층에 올라갔지? 설마 막내 사매 방에 있는 거야?’영문도 모르게 불안해진 성연은 서둘러 일어났다. 비록 발걸음은 무겁지만 재빨리 계단을 올라서 3층으로 갔다.“무진 씨, 뭐 하고 있어요?”예민주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르륵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여기 있어. 민주 방의 욕실 샤워기가 고장난 것 같아서 보고 있어.”무진이 대답했다. 사실 무진도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 욕실에서 예민주는 얇은 목욕가운만 입고 있었고,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떨어졌다.성연이 도착한 걸 눈치챈 예민주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 얼른 소리쳤다.“언니, 제가 무진 오빠에게 이 샤워기를 좀 봐 달라고 했어요. 반쯤 씻었는데 갑자기 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재빨리 욕실로 다가간 성연은, S라인 몸매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
그렇게 친했던 두 사람이기에, 낯선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 수 있었다....손건호는 지난 5년 동안 여전히 무진의 곁을 따랐다.당연히 무진의 성질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만약 아이들이 여기에 더 오래 머무른다면, 일을 수습하기가 곤란해질 거야.’결국 손건호는 서한기의 눈빛을 피해서 다른 곳을 보면서, 그들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빨리 가지 않고 뭐 해? 잠시 후에 경비원이 오면 처리하기 곤란하단 말이야.”약간 떨어져 있는 무진을 바라보는 서한기의 그윽한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과 더불어 여전한 존경심도 담겨 있었다.‘지금은 일을 크게 해서는 안 돼. 지금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여전히 억울한 표정의 두 아이를 바라보자, 서한기는 자책감이 들었다.그러나 결국 감정을 억누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위로했다.“사진아, 사무야, 우리 가자.”세 사람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무진 오빠, 저 두 아이는 누구에요?”바로 그때, 서한기와 아이들이 막 떠나려고 했을 때, 다른 한쪽에서 한 여자가 이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무진의 곁에 와서 서한기를 바라보면서, 아리따운 여자는 자연스럽게 무진의 팔짱을 꼈다.요염한 눈길로 두 아이를 바라보던 여자는, 두 아이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변의 공기마저 순식간에 싸늘해진 듯했다.‘저, 저 두 새끼는 무진 씨하고 똑같이 생겼어. 완전히 무진 씨 판박이야!’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예민주의 머릿속도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지금 예민주는 표정을 전혀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분노와 당황스러움, 증오와 초조함이 교차했다.‘왜?’‘송성연은 그렇게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왜 여전히 이 두 아이를 낳는 걸 선택했지?’‘강무진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포기한 뒤로는 더 이상 아무 접촉도 없었던 게 분명해.’‘애초에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졌기 때문에, 송성연은 당연히 절망 속에 빠졌어야 해. 더 이상 강무진에게
말을 마친 사무는 옆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뚱뚱한 남자를 재빠르게 발견했다.“아저씨, 바로 저 사람이 사진이를 이렇게 다치게 했어요!”사무는 우렁찬 목소리로 방금 엘리베이터를 나온 남자를 가리켰다.팍!쿵!서한기가 재빨리 깔끔하게 손을 쓰자, 남자의 커다란 몸은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심지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남자는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들은 네가 감히 건드릴 수도 감당할 수도 없어! 꺼져!”피에 굶주린 듯 핏발선 눈으로 쏘아보면서, 서한기가 나지막하게 외쳤다.쓰러져 있던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통증을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막 일어나려던 남자는 등줄기의 시큰한 통증에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다시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결국 주저앉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다른 쪽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무진은 자연스럽게 이쪽의 소동에 시선이 향했다.사람들 속에서 처참한 모습의 마케팅팀 팀장과, 그 앞에 서서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뒤를 바라보았다.“아이들이 아직 안 갔어?”그리고 무진이 엘리베이터 문을 나설 때, 손건호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서한기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그들 두 사람은 예전 진성 조직의 공동 대장이었다. 여러 해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인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지난 일 때문에 서로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느낌도 그들 두 사람만 알 수 있을 뿐...왜인지는 모르지만 서한기의 망설임이 느껴지자,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보고 뭐 해?”‘저 두 아이는 뭔가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머릿속에서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