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채연이 고함을 치자 외삼촌은 크게 놀랐다.‘요 몇 년 동안 채연이는 내 앞에서 줄곧 순종했어.’‘지금 뜻밖에도 두 명의 외부인 때문에 감히 말대꾸를 하고 있어.’갑자기 외삼촌이 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보니까 네가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내가 그동안 너를 거뒀는데, 너는 전부 너는 짖어라 라는 식이야?”“나 아니면 누가 너를 신경이나 쓰겠어. 그 사람들은 돈이 있잖아. 진작에 갔다가 왜 이제야 온 거야?”“만약 또 내게 이렇게 말할 거면, 앞으로 너를 상관하지 않아도 탓하지 마.”외삼촌은 유채연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서 심하게 말을 했다.유채연은 그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온통 그래함을 생각하고 있었다.‘예전에 나와 그래함은 죽마고우여서 다른 사람에겐 하지 않았던 일도 많았지.’‘그래함이 병이 났을 때 내가 그래함을 돌보았어.’‘그때 사랑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그래함에게 감정이 생겼어.’‘그래함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내가 맞은편 마을로 가지도 않았을 거야.’‘심지어 그래함은 나중에 나하고 결혼할 거라고 예전에 말하기도 했어.’나중에 일어난 그 일들이 오히려 유채연을 심연 속으로 매섭게 끌고 갔다.만약 유채연의 집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유채연도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걸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래함은 내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럴 리가 없어.’‘그래함은 단지 일시적으로 감정이 복받쳤을 뿐이야.’‘곧 후회할지도 몰라.’그들의 처지가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에.유채연은 감히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었다.일을 너무 좋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빛나는 보석이 된 그래함은 가장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야.’‘그러나 지금 진흙투성이인 유채연은 그저 서민들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지금까지 그렇게 좋지 않았던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어.’‘예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포자기하기도
외삼촌에게 밥을 차려준 뒤 유채연은 혼자 가게를 지켰다.손님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면서.오늘 밤, 유채연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좀 연장했다.외삼촌이 의심할까 봐 유채연도 너무 오래 끌지는 못했다.마침내 작은 슈퍼마켓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유채연은 혼자 길모퉁이까지 걸어가 보았다.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더없이 서글퍼지자, 유채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래함은 납득했겠지.’‘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데, 또 어떻게 그래함을 연루시킬 수 있어?’‘나도 너무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한 거야.’유채연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하긴, 그래함이 왜 내게 반했겠어?’‘지금의 내게 그래함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유채연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잠근 뒤 이불 속에 눕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그때 어머니의 병이 아니었다면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마도 나도 대학에 갔을 거고, 그래함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겠지.’‘어쩌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나와 그래함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이제 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살아가면 돼.’‘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헛된 망상을 할 자격도 없어.’‘현실로 돌아가는 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유채연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똑똑똑- 넓은 방안에 문 밖의 노크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유채연은 이런 장면에 익숙한 듯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외삼촌, 무슨 일이세요?”약간 갈라진 듯한 유채연의 목소리는 특히 표시가 났다.하지만 유채연은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맘대로 하면 돼.’“너 오늘 저녁 안 먹었지?” 밖에서 외삼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먹을래요.” 생각할수록 슬퍼서 유채연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성연이 왔다.성연은 바로 가게에서 유채연과 이야기하고 싶었다.“채연 언니.”어제 두 사람에 대한 유채연의 태도는 좋았다.그러나 오늘 유채연은 냉담하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성연을 보고 정색을 하면서 미소도 전혀 짓지 않았다.“성연아,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가. 우리 가게는 작으니까 여기에 있지 마.” 축객령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그런 유채연을 보면서 성연은 단지 가슴이 아팠을 뿐이다.‘두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미래가 있어.’‘그러나 채연 언니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해.’“채연 언니,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 사이에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잘 이야기하면 오해도 잘 해결될 거예요.” 성연도 두 사람이 잘 지내면서 행복하게 함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무슨 이야기할 만한 게 있겠어. 나를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 만약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여기서 즐기면서 나한테는 더 이상 오지 마.”이렇게 말하면서, 유채연은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그래함과 성연만 여기서 나가면 돼.’‘이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거야.’‘예전의 꿈만 기억하면 돼.’‘나는 다시 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언니, 언니는 지금 사형에게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성연은 유채연이 그래함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걸 믿지 않았다. 유채연의 눈빛이 반짝거렸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권유했다.“채연 언니, 언니의 생각이 어떤 지를 떠나서 나는 단지 언니가 사형하고 잘 얘기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유채연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자신과 맺어질 수 없는 그 사람을 지나치게 원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생각을 끊으려는 것이다.“나는 여기에 남아서 가게를 봐야 해. 성연아, 네
이때 산책하고 돌아오던 외삼촌이 성연을 보고는 불만을 표시했다.“걔가 원하지 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왜 또 강요하는 거야? 나는 성질 좋은 사람이 아니야. 채연이를 괴롭히지 마.”외삼촌의 말을 들은 성연은 유채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중재자일 뿐이기에 유채연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었다.지금 유채연의 외삼촌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더 불편했기에, 돌아가서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나간 뒤 외삼촌을 보면서 유채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그 자리에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더없이 가슴 아프게 했다.유채연의 이런 모습을 본 외삼촌은 크게 화를 냈다.바로 유채연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너 왜 그래? 아까 그 남자가 바로 네 사진 속에 있던 걔가 맞지? 그 사진을 몇 년이나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 그럼 나가. 이 작은 가게는 나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어.”예쁘고 부지런한 유채연이 요 몇 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유채연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채연은 응하지 않았다.맞선을 볼 때마다 유채연은 자기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언젠가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을 때, 외삼촌이 무심코 유채연의 손에 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유채연은 마치 보물을 대하듯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그때 외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 사람이 정말 나타났는데 조건도 아주 좋아 보여.’‘채연이가 그 남자와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외삼촌의 말에 유채연은 순간 멍해졌다.유채연은 자신이 나간다고 하면 외삼촌이 제일 먼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떠나면 외삼촌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유채연의 눈에 외삼촌은 줄곧 나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래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삼촌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다.‘외삼촌이 가끔씩 말을 거칠게 해도 속마음은 부드러워.’
저녁 무렵에 성연이 다시 왔다.두 사람이 이번에 온 목적이 유채연을 데려가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그래함도 오고 싶었지만, 유채연의 감정이 너무 격해질까 봐 성연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메로나 두 개요.” 카운터 앞으로 바로 간 성연이 유채연을 향해 말했다.성연의 출현에 유채연의 마음도 흔들렸다.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동요하는 모습을 본 성연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유채연은 말없이 묵묵히 냉장고에서 메로나 두 개를 꺼냈다.“여기 있어. 돈은 필요 없어.”성연은 미소를 지었다. ‘채연 언니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든 언니 마음은 항상 착해.’성연도 계산을 하지 않고 포장을 뜯고 먹으면서 나머지 한 개는 유채연에게 주었다.“채연 언니, 여기요.”성연이 자신에게 줄 줄은 몰랐기에 유채연은 놀라서 성연을 바라보았다. 성연이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 언니도 우리에게 하드를 많이 사줬잖아요.”유채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과거의 기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사람이든 일이든 다 똑같아.’유채연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성연이 주는 하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유채연을 보면서 감탄했다.“채연 언니, 언니는 이전보다 더 예뻐졌어요.”‘채연 언니는 정말 예뻐.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여전히 부드럽고 아름다워.’‘이전과 달리 언니의 미모가 세월 속에 쌓였어.’유채연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이렇게 거친 얼굴이 어디가 예쁘겠어.”‘내가 좀 더 나은 모습이라면 그래함과 함께 할 용기가 있을 텐데.’‘그러나 세상 일은 종종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피부 관리만 잘하면 돼요. 화장만 하면 천상의 선녀보다 더 예뻐요.” 성연은 유채연의 바로 옆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때때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거나 손님이 많은데 유채연이 바쁠 때면, 성연도 옆에서 도와주었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