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성연과 무진은 리조트로 향했다.두 사람이 리조트에 도착하니, 소지연이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소지연은 마치 자신이 리조트의 주인인 듯 신경 써서 무진과 성연을 접대했다.“무진 오빠, 성연 씨, 두 사람 왔군요. 두 사람을 위해 룸을 미리 준비해 뒀어요. 자연친화적 휴양지인 이곳은 시골밥상이 특징이에요. 나오는 음식들 전부 이곳 농원에서 직접 수확한 친환경 재료들만 사용해요. 맛도 좋고 아주 색달라요.”소지연은 기획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일이 결정되자 마자 바로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준비했다.원래 이런 사람과 함께하면 편안하게 느껴져야 할 테지만, 성연은 왠지 모르게 오히려 좀 불편함을 느꼈다.소지연은 너무 잘해 주었다. 좀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너 제법 신경 썼구나. 우리 두 사람이 놀러 와서 너를 귀찮게 하는 건 아냐?” 무진이 성연과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손은 여기 도착한 이후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힐끗 그 모습을 보는 소지연의 눈에 일순 어두운 빛이 지나갔다. 하지만 소지연은 웃으며 대꾸했다.“무진 오빠잖아요. 성연 씨는 또 제 언니이고. 여기는 내가 잘 아는 곳이어서 오라고 한 거니, 두 사람이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당연히 내가 신경 써야지요.”“고마워요.” 성연도 옆에서 감사인사를 했다.줄곧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무진의 행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언제 어느 때든 무진은 성연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진의 곁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뭘요. 무진 오빠, 요즘 많이 피곤했을 텐데 옆에서 좀 쉬세요. 제가 성연 씨 데리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올게요.”소지연은 성연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바로 끌고 갔다.좀 떨어진 곳에 이러서야 소지연이 성연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웃으며 성연에게 말했다.“성연 씨, 무진 오빠와 난 늘 사이가 좋았어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만약 나 때문에 질투라도 한다면 너무 미안할 거예요.”성연도 소지연의 웃음에 답하
점심으로 나온 메뉴를 보니 확실히 소지연이 말한 그대로 유기농 시골밥상 차림이었다.모두 이곳 사람들이 직접 재배한 것들이었고, 뒤에는 둘러볼 수 있는 농원도 있었다. 먹어보니 입에 잘 맞았다.평소 집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먹다가 가끔 이런 음식을 먹으니 식욕이 더 당기는 것 같았다.그 때문에 성연은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무진은 옆에서 수시로 물잔을 채워주고 반찬을 집어주는 등 식사하는 내내 성연을 신경 썼다.옆에서 지켜보던 소지연, 젓가락을 꼭 쥔 손끝이 새하얗게 변했다.그것도 잠시, 소지연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점심 식사 후, 소지연은 성연과 무진에게 함께 수영하자고 권했다.소지연은 친절하게 성연을 위해 수영복도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옅은 블루의 수영복은 괜찮아 보였다.수영복을 받은 성연은 오랜 직업병 탓에 수영복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 지 세세히 검사한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수영복을 입었다.수영복을 입은 성연이 밖으로 나가자, 마침 소지연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소지연의 수영복에 비교해서 성연의 수영복은 스커트 모양의 비교적 단정한 스타일이었다.그에 반해 소지연의 수영복은 그녀의 몸매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소지연의 몸매를 본 성연 또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성연의 수하들 중에도 미남, 미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소지연처럼 뛰어난 몸매를 가진 이는 정말 극소수였다.소지연과 비교하면 성연은 마치 어린 여자아이 같았다.지금까지 성연은 자신의 몸매를 의식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소지연을 눈앞에 두자 마음속에 옅은 열등감이 생겼다.수영복 차림의 소지연이 손에 들고 있던 디저트 접시를 무진 앞에 내려놓았다.“무진 오빠, 여기 디저트도 맛있어요. 심심하면 한 번 맛봐요.”무진은 매너 있게 정면으로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고마워, 난 신경 쓰지 말고 두 사람 재미있게 놀아.” 무진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소지연과는 비록 좋은 친구 사이이지만, 어쨌든 그는 남자이고 소지연은 여자였다.그러니 선
리조트 내 수영장 역시 자연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옆으로 흐르는 강과 연결된 것이 상당히 이색적이었다.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수영장 내에는 소지연과 성연 두 사람만 들어와 있었다.성연은 이리저리 수영장을 가로지르며 몹시 신이 나서 수영했다. 이렇게 시원하게 헤엄친 게 얼마만인지.조직 안에서 수영은 누구도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소양이었다.그 중에서도 성연은 프로 수영선수에 버금갈 정도의 실력을 자랑했다.다만 소지연 앞이라 그대로 드러낼 생각이 없었지만, 성연의 수영은 꽤 능숙해 보였다.소지연은 성연의 수영 실력이 상당해 보이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성연 씨, 수영을 잘하네요, 따로 배운 적 있어요?” 소지연은 일부러 옆으로 헤엄쳐 와서 성연과 나란히 물을 갈랐다. 그렇지 않으면 이따가 화제를 이어가기 어려울 터였다.“아뇨, 옛날에 시골에 살 때, 외할머니와 냇가에 가서 헤엄치며 많이 연습해서 그래요.”성연은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지연 앞에서도 솔직하게 그대로 드러냈다.소지연 역시 의외로 그 사실에 대해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성연의 출신을 경멸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다.어찌 되었든 강무진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이 그냥 만만한 인물이겠는가?“아, 그렇구나. 성연 씨가 살던 곳은 분명 아름다울 테죠?” 소지연의 말투는 옅은 동경의 빛을 담고 있었다.“음, 네, 아름다운 건 확실해요. 시간이 있으면 내가 위치를 가르쳐 줄게요. 그쪽에도 관광지가 많아서 놀러 가기에 괜찮을 거예요.”성연은 작은 시골마을에 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 또렸했다.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곳은 이미 성연에게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그리고 소지연과는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터라 아직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성연의 표정이 좀 불편해 보이자 소지연이 눈치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성연 씨, 우리 둘만 여기서 수영하고 있으니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 아니면 우리
그 동안 성연도 이미 수영장 바깥쪽으로 헤엄쳐 왔다. 재빨리 수영장 위로 올라와 무진과 소지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소지연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도 백지장처럼 창백한 것이 진짜 같았다.소지연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려던 무진.하지만 양손으로 가슴 부위를 선뜻 누를 수가 없었다. 무진은 순간 어쩔 줄을 몰라 망설였다.소지연과는 아직 이같이 친밀한 동작을 한 적이 없었다.친구라 해도 성연 이외의 이성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었다.옆에서 무진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던 성연이 먼저 옆으로 가서 말했다.“내가 할게요.”성연은 소지연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소지연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성연이 힘을 다해 누르자, 더 이상 가장할 수가 없었던 소지연이 능청스럽게 입으로 물을 토하며 콜록거렸다.“콜록, 콜록.”그리고 눈을 뜨며 깨어난 척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듯이 무진을 보며 말했다.“다리에 쥐가 난 것까지 기억해요. 무진 오빠가 나를 구했어요?”사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성연에게 공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사실 소지연은 무진이 자신에게 인공호흡을 해주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그런데 결국 끝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송성연이 자신의 모든 바램을 깨트려버렸다. 성연을 바라보는 소지연의 눈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쳤다.무진은 소지연이 깨어난 것을 보고 안심하며 말했다.“내가 아니라 성연이 너를 구했어. 좀 어때?”“성연 씨가 구해줬구나, 고마워요.” 파리한 안색의 소지연이 팔을 가슴에 얹으며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가슴이 좀 아픈 것 같아. 머리도 어지럽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무진의 관심을 받고 싶어 일부러 자신의 상황을 좀 더 심각하게 말했다.그러나 무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연이 옆에서 말했다.“소지연 씨, 걱정하지 말아요. 물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예요. 시간이 좀 지나면 좋아질 거예요.”소지연은 두어 차례 억지웃음을 지었다. 속으로 성연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지만, 좀 더 가장
성연은 소지연을 부축해서 주변을 한바퀴 걸었다. 또 음료수를 사러 가기도 했다.연못가에 왔을 때, 무진을 본 소지연이 곧바로 무진 곁으로 달려가 아양을 떨었다.“무진 오빠, 목마르지? 오빠 주려고 물을 한 병 가져왔어요.”“고마워.” 무진은 소지연의 손에 있던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사실 성연도 무진에게 줄 물을 샀지만, 소지연이 무진에게 주는 것을 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몰래 뒤로 숨겼다.무진이 이미 물을 마셨으니 자신이 다시 건네기도 어색했다.무진이 난처하지 않도록, 자신이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성연은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무진 오빠, 또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리조트의 날씨는 아주 더웠다. 소지연은 부채질을 했지만,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마에도 땀이 흥건하니 맺혔다.“너, 조금 전에 물에 빠졌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해.” 무진도 지금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소지연 뒤에 서 있는 성연을 보았다. 그리고 자연히 몰래 뒤에 숨긴 물병이 보이며 성연의 마음이 읽혔다.무진이 성연의 옆으로 다가가자, 소지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지독히 더운 날씨에 안 그래도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소지연은 보고 열이 더 뻗치지 않게 성연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무진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성연의 손에 있던 물병을 잡으려 무진이 손을 뻗었다.그러나 성연이 주지 않았다.“뭐 해요?”성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앞에 있는 소지연이 마음에 걸려 목소리를 낮추었다.“이거 나한테 주려고 산 거 아니야?” 무진이 성연의 손에 있는 물병을 가리켰다.성연이 일부러 말했다.“누가 무진 씨 준다고 했어요? 나 혼자 두 병 다 마실 건데, 왜 안 돼요?”무진이 귀엽다는 듯이 검지로 성연의 콧등을 쓸어내렸다.“고집은.”성연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지만, 눈에 웃음기가 비쳤다.성연이 화가 나지 않았다는 눈치 챈 무진도 성연의 손에서 물병을 가져가
소지연이 세심하게 고른 차단제를 손에 들고 무진 앞으로 걸어왔다.“무진 오빠, 이따가 우리 또 나가 놀아야지. 자외선 차단제를 가져왔는데, 내가 오빠 대신 발라줄게. 이렇게 하면 이따가 놀러 나가도 피부가 상하지 않을 거야.”“됐어.” 무진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행동은 사실 너무 애매하다.스킨십은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할 수 있는 것이다.자신과 소지연은 이런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무진 오빠, 내가 발라줄게요. 오빠 혼자서는 바르기 불편해요.” 옆에 있는 소지연의 끈적끈적한 음성에 유혹의 느낌이 물씬했다.하지만 여전히 거절하고 싶었던 무진은 결국 성연을 바라보며 입술 끝을 올렸다.“그럼 성연이 바르면 돼.”자신 또한 알고 싶었다. 성연이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면 어떤 느낌일지.무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지연은 견디지 못하고 바로 얼굴이 굳었다. 마음도 반송장처럼 얼어붙었다.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일은 무진과 스킨십을 하기 위해 자신이 어렵게 생각해낸 기회였다.그런데? 또 송성연만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다. 도대체 왜!‘언젠가는 꼭 송성연을 쫓아내고 말 거야. 그러니 지금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돼.’‘무진 씨가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멀리하지 않게 조심해야 돼.’성연이 무진의 말을 듣고 옆으로 다가왔다.소지연은 어쩔 수 없이 자외선 차단제를 성연에게 건네며 결국 속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무진 오빠와 성연 씨 정말 사이가 좋네요. 정말 부럽네요.”그 말을 한 소지연은 더 이상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자외선차단제를 한쪽에 놓고 바로 자리를 떴다.성연이 자외선차단제를 손에 들고 짜자, 성연이 자신의 등에 바르기 쉽도록 무진이 자진해서 엎드렸다. 털털한 성격의 성연은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그러나 손이 무진의 피부에 닿았을 때, 비로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손 아래의 피부는 아주 매끄러웠다. 넓고 하얀 무진의 등은 무척 아름다웠다.성연의 볼이 점점 붉어지면서
저녁 시간, 소지연이 예약한 룸은 세 개.세 사람 모두 각자의 룸에서 자게 됐다.무진과 성연도 이런 상황에 함께 잔다면 자연히 쑥스러웠을 터.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누고 룸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그런데 돌연 천둥번개가 치더니, 창밖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이어 간간이 천둥소리가 울리며 사람이 겁먹게 만들었다.소지연은 자신의 룸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소지연이 입은 와인색 나이트 드레스 앞섶은 깊게 파인 브이넥으로 그녀의 몸매가 더 볼륨감 있게 했다.이런 자태의 그녀를 보고 과연 가슴이 뛰지 않는 남자가 있기나 할까?소지연은 입꼬리를 당긴 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갑자기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한 채 자신의 룸을 뛰쳐나가 무진의 룸 앞에 서서 힘껏 문을 두드렸다.무진의 룸은 자신의 룸 바로 옆, 역시 자신이 특별히 배정한 것.성연의 룸은 맨 왼쪽에 있었다. 소지연은 두 사람의 거리를 가장 멀리 떨어뜨렸다.쾅쾅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무진이 문을 열자 소지연이 앞에 서 있었다.무진을 보자마자 소지연이 바로 달려들었다.“무진 오빠, 밖에 천둥번개가 쳐요. 무서워 죽겠어요.”하지만 무진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바람에 소지연은 허공에 뛰어든 셈이 되었다.잠시 표정이 굳었던 소지연은 일부러 어깨를 움츠리며 나이트 가운이 어깨에서 미끄러지게 했다.음성에는 울음기가 잔뜩 섞여 있었다.“무진 오빠, 나 여기 있어도 돼요? 혼자 있으려니 정말 무서워요.”소지연의 모습은 진짜 겁을 먹고 몸을 떨고 있는 듯 보였다.무진으로서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결국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 무진.“들어와.”소지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룸 중앙의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 가운 자락이 활짝 펼쳐지며 길고 하얀 다리가 그 사이로 드러났다.“무진 오빠, 정말 고마워요.” 소지연이 기쁜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천만에.”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소지연이 룸 안을 한 바
무진이 손을 들어 성연이 머무는 룸의 문을 노크했다.아직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성연은 낯선 환경에서 즉시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서 고양이 눈을 한 채 노크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좁은 구멍으로 무진이 보이자 성연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방금 목욕을 마친 성연은 샤워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좀 부끄러워 무진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없었던 성연이 문을 살짝만 열었다.“무슨 일이에요?” 문틈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성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동시에 이상했다. ‘이 한밤중에 자신의 룸에서 쉬어야 할 무진 씨가 여기에 왜 온 거지?’방금 목욕을 마친 성연의 피부가 터질 듯이 팽팽하니 탄력이 넘쳤다. 겨우 드러낸 자그마한 얼굴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것이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였다.무진의 목젖이 한 차례 위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입에서 나오는 음성도 약간 쉬어 있었다.“밖에 천둥번개가 치고 있어서, 너 혼자 방에서 무서울까 걱정이 돼서 왔어.”성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무섭지 않아요.”‘무서워해야 하는 사람은 무진 씨 아냐? 지난번 천둥번개가 쳤을 때, 무진 씨 발병했잖아.’하지만 건강에 신경 쓰고 회복하면서 무진이 악몽을 꾸는 일이 드물어졌다.이것은 신체 호르몬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당시 천둥번개가 칠 때, 성연이 무진을 구하러 들어갔었다. 그런데 어떻게 천둥번개를 무서워하겠는가?성연의 단호한 모습을 보며 무진은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하지만 성연이 목욕하고 나온 모습을 모처럼 본 무진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문에 손을 댄 무진이 성연이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았다.“나 들어가도 돼?”성연은 몸에 걸친 목욕가운을 여미며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내일 또 놀러 가야잖아요. 지금 쉬지 않으면 기운이 딸려서 안돼요.”지금처럼 늦은 시간, 또 이런 장소에서 남녀가 같이 있다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면 어떡한다는 말인가.성연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