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정은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 꽃도 한 다발 산 뒤에 허신미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쳤음에도 허신미의 병세에 대해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말할 뿐이다. 몸에도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허신미의 말을 들은 방미정의 눈에 공포심이 가득 들어찼다.허신미와 작당을 하기 전에도 방미정은 송성연에게 좀 무서운 마음을 가졌다.송성연은 정말이지 너무 특이했다.그때 자신이 오줌을 지리는 낯부끄러운 일을 하게 된 것도 송성연 때문이었다.머릿속으로 한참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도대체 송성연, 어떤 방법을 쓴 거야? 무슨 발정제라도 쓴 거야? 아니면 마취젠가? 그게 아니라면 신미가 어떻게 죽은 듯이 정신을 잃을 수가 있어?’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보았다. 방미정 자신의 눈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그리고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허신미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지금 허신미는 크게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방미정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시 사고가 났을 때, 자신은 단지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느꼈다. 결코 무섭지는 않았다.방미정이 자신에게 너무 과장되게 말한다고 생각했다.지금 21세기에서 무슨 귀신 같은 것을 믿겠는가.방미정이 자신의 귓가에 속닥인 그런 일들에 대해서 허신미는 자신의 판단을 더욱 믿었다.분명 송성연에 대한 시기 질투에 눈이 먼 방미정이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자극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송성연, 그냥 한낱 어린 계집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북성에서 오랫동안 구른 자신이 설마 그깟 계집애 하나 혼내 주지 못하겠는가, 하고.허신미는 이를 악물었다. 절대 이렇게 화를 삭일 수는 없었다.“내가 그 계집애에게 반드시 본때를 주고 말 테다!” 지금까지 이렇게 창피한 적은 없었다.‘북성 어디에서든 처리할 수 있어.’‘어떻게 이렇게 억울하게 당할 수 있지?’‘내가 데려온 놈들이 모두 전멸했다고? 정말 하나같이 쓸모 없는 놈들뿐이군!’이번에 퇴원하면 자신의 눈앞에 거슬리지 않도록
그날 저녁, 방미정이 갑자기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누군지 몰라서 그냥 받았다.[안녕.]바로 이 기회를 틈 타 방미정이 말했다.[송성연 맞지? 나 방미정이야. 지난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 이전의 내 행동에 대해서 사과하려고 해. 사실 이미 무진 씨도 포기했어. 다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야. 지금은 너에 대한 감정은 없어. 한 번 나와서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 좋겠어. 내가 사과할 수 있게.]방미정의 이 사과는 마치 진심처럼 들렸다.방미정은 전화로 성연과 이야기하면서 구역질을 느꼈다.‘그러나 어쩔 수 없어. 만약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송성연은 절대 나오지 않았을 거야.’만약 성연이 현장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계획을 실시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그냥 헛수고하고 마는 것이다.방미정이 하는 말을 성연은 전혀 믿지 않았다. 바로 방미정의 초대를 거절하고 냉정하게 수화기 건너편의 방미정에게 말했다.“네가 나한테 감정 있다고 해도 상관 없어.”성연이 허신미의 생각에 신경 쓸 리가 없다. ‘방미정이 나를 미워하면 또 어때?’자신이 방미정을 못 이기는 것도 아닌데, 굳이 방미정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방미정이 사과했다 해도 당연히 성연에게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방미정은 정말 나를 무슨 호구로 아는 거야?’‘그런 몹쓸 짓을 하고도 아직 무진 씨를 빼앗을 생각을 하다니.’‘내가 뭘 믿고 그렇게 쉽게 넘어가?’수화기 저편의 방미정은 하마터면 참지 못할 뻔했다.하마터면 또 다시 성연에게 화를 터트릴 뻔했다.송성연의 말은 정말 사람을 너무 화나게 했다.매번 송성연 때문에 열 받으면서 방미정은 속으로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다.그러나 허신미가 자신에게 지시한 일을 생각하면서 방미정은 그래도 꾹 참았다.방미정이 평소 같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와 태도로 다시 성연에게 말했다.[내 체면을 한 번 세워준다고 생각해 줘. 내가 운전해서 너를 데리러 갈게. 장소는 네가 마음대로 골라. 그렇지 않으면 허신미는 틀림없
제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하던 성연이 허신미에게 승낙했다.“알았어. 나갈게.”성연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비록 방미정과 허신미가 자신에게 한 약속이 호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해도 성연에게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단지 약간의 잔재주일 뿐이다.이미 두 번이나 두 사람과 맞붙어 본 성연은 저들이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내가 경계해야 할 범위 내에 있지 않아.’‘저 두 여자 모두 정말 행동도 단순하고 생각도 깊지 않아.’성연이 알아서 충분히 대처할 수준이었다.차를 몰고 엠파이어 하우스에 도착한 방미정이 성연을 태우고 바로 떠났다.예전에는 무진을 엄청 귀찮게 쫓아다녔지만 지금은 한 번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마치 자신이 얼마나 결단력이 있는지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물론 방미정이 일부러 성연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사실 마음속으로는 지금도 엠파이어 하우스의 여주인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이 일이 성공한다면 송성연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테지.’‘당연히 내가 가져야 할 것을 되찾는 거야.’아직 집에 있었던 무진은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옆에 서 있던 손건호에게 지시했다.“손 비서, 사람들 데리고 따라가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해.”‘방미정을 보니, 완전히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것 같은 행동이었어.’방미정에게서 호의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성연 또한 당연히 알아차렸을 거라 믿었다그런데도 성연은 방미정을 따라 나갔다.성연이 아주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때로는 예측할 수가 없을 때가 있었다.무진 자신은 반드시 성연을 잘 보호해야 했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따라 나갔다.방미정은 성연에게 장소를 고르라고 했고, 성연도 사양하지 않았다.성연은 엠파이어 하우스 근처의 중국 음식점을 골랐다.그곳의 음식은 정말 맛이 좋았다.만약 잠시 후에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을 터.두 사람은 먼저 종업원이 마련한 룸에 앉았다.30분 후에 허신미도 왔다.성
두 사람은 분명히 사과하러 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방미정이 데려온 삐쩍 마른 남자 하나가 바빠서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주방에 몰래 들어갔다.그 남자는 성연이 주문한 음식들을 확인한 후, 흰색 가루가 든 봉지를 꺼내서 한 음식 위에 뿌렸다. 주위를 살펴보고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것을 살핀 후에 그 남자는 조용히 주방을 떠났다.방미정과 허신미는 계속 성연에게 사과하면서 듣기 좋은 말을 골라 했다.“송성연 씨, 지난 번 일은 우리가 정말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충동이었을 뿐이야.” 허신미가 성연에게 차 한 잔을 따랐다.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볍게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체면을 세워주었다.방미정도 따라서 말했다.“그래, 그리고 우리도 교훈을 얻었어. 앞으로도 우리는 북성에서 계속 지낼 텐데,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당연히 가장 좋을 거야.”성연은 비웃는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송성연 씨는 술집에 가는 것을 좋아해? 내가 당신에게 우리 술집의 VIP 카드를 줄 수 있어. 그러면 언제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 그리고 돈은 일절 내지 않아도 돼.”말을 하면서 허신미가 카드를 꺼냈다.성연이 손사래를 쳤다.“아니, 나는 술집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 넣어둬.”이 두 여자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아직 짐작이 되지 않았다.그러나 저들이 인내심을 보이는 이상 성연도 개의치 않고 두 사람과 어울렸다.“뭐 그렇다면 그만 둘 게. 나도 송성연 씨에게 강요하기는 어렵겠지. 그날의 일은 나와 미정이가 잘못했어. 오늘 식사를 대접하는 김에 사과할 테니 우리 과거의 앙금은 풀자.” 허신미가 대범한 척하며 말했다.“괜찮아.” 성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들이 사과하기를 원하는 이상 성연도 저들의 낯을 봐 줄 생각이 있다.만약 정말 저들이 말한 대로 한다면 성연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어쨌든 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음식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로 주문한 음식이다. 방미정과 허
그러나 성연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바로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방미정과 허신미는 사과조차도 진실하지 않았다.성연은 음식을 막 입에 넣고 몇 번 씹고는 바로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약의 고수였다. 이런 약은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보통 사람은 먹어봐도 재료가 뭔지 알 수가 없다.하지만 성연의 미각은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하다.음식에 약이 섞인 것을 느낀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방미정과 허신미를 노려봤다.이 두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어떻게 이렇게 호의를 품고 나를 불러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어?’‘그래, 목적은 바로 이거였어.’성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방미정이 또 능청스럽게 성연에게 채소를 집어주며 위선적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많이 먹어. 당신은 너무 말랐어. 당신 나이의 여자들은 모두 아직 몸이 자라고 있으니 자신을 좀 더 챙겨야 해.”그들의 생각과 계략은 이미 성연에게 간파되었다.성연은 마음속으로 냉담하게 중얼거렸다. 허신미와 방미정이 자신에게 준 약은 발정제와 흥분제로, 조금 더 먹으면 아무리 청순한 여자라도 이성이 마비되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그때가 되면 그야말로 유린당하고 말 거야.’‘약물에 중독된 상황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누구도 기억 못해.’‘방미정과 허신미, 정말 악독하네.’‘이런 허튼 수작을 쓰다니.’‘지난번에 술을 마시라고 협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이 여자들은 내가 순결을 잃게 하는 게 목적이군.’‘강씨 집안은 고사하고 남자들에게 유린 당한 여자는 어디를 가든 비난의 대상이 될 테니까.’‘허신미와 방미정 저들도 여자면서 어떻게 이런 모진 마음을 먹을 수 있지?’‘일찌감치 내가 왔을 때, 이 두 사람에게 어떠한 기대도 품어서는 안 됐어.’‘그래. 오늘 네 둘 완전히 절망하게 만들어 주지.’‘이 여자들이 어떤 계략을 꾸미든 내게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돼.’성연은 저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성연은 방미정
시간을 계산한 성연은 거의 됐다 싶을 때 중독된 척했다. 먼저 머리를 흔들었다가 책상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성연은 완전히 눈을 감지 않고 실눈을 뜬 채 쓰러지면서 방미정과 허신미의 반응을 관찰했다.과연 방미정과 허신미는 잇달아 알약 하나씩을 꺼내 먹었다.성연은 그것이 틀림없이 해독제라고 생각했다.‘내가 영리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의 꼬임에 걸렸을 거야.’예전에 임무를 수행할 때부터 성연은 해독환을 자신의 몸에 가지고 다녔다.중독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때에 응급처치하기 힘들다.이 알약은 성연이 직접 만든 것으로 어떤 독도 제거할 수 있다.다행히 눈치가 빨랐던 성연은 오늘 잊지 않고 챙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비참했을 것이다.성연이 엎드려 있는 것을 본 허신미와 방미정은 성연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자신들의 목적을 마침내 달성한 셈이다.허신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내 말대로 일을 진행하면 송성연이 달아날 수가 없다고”“신미야, 역시 네 방법이 좋았어. 나 같으면 그렇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을 거야.”방미정도 옆에서 칭찬했다.방미정도 속으로 정말 기뻤다.‘이번에야말로 복수를 할 수 있게 됐어. 송성연이 내게 굴욕을 줬던 것을 모두 돌려줄 수 있어.’‘이번에는 송성연도 그리 운이 좋지는 않은 모양이야?’“그럼 당연하지. 너 내가 누군지 몰라?” 허신미도 득의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참, 신미야. 지금 송성연이 여기서 기절했는데, 우리 어떻게 처리하지.” 방미정은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단순하게 눈을 깜박였다.허신미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나서야 말했다.“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종업원들을 불러와서 걔들이 원하는 대로 놀게 한 다음 그 장면을 촬영하는 거야. 우리 손에 송성연에 대한 치명적인 증거를 있으면 앞으로 송성연을 언제든지 협박할 수 있어. 다시는 우리 앞에서 함부로 나대지 못하게 할 거야!”방미정의 눈도 허신미를 따라 반짝거렸다.자신들이 손에 약점을 잡고 있
이어서 주방에서 음식에 약을 탔던 키다리가 들어왔다.송성연의 모습을 보고 비쩍 마른 키다리가 군침을 삼키며 눈이 가늘어졌다.성연은 아주 예쁘게 생겼다. 불빛 아래에 있는 얼굴은 콜라겐 덩어리가 가득 찬 듯 불면 터질 것처럼 너무 예뻤다.키다리는 송성연을 보고 눈도 한 번 돌리지 않았다.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본 허신미가 바로 맞이했다.“헤이, 키다리 오빠, 오빠 약 효과가 너무 좋아.”이번에 이 키다리 오빠의 약이 없었다면 허신미는 이처럼 빨리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이 약은 효과가 빨라서 송성연을 빨리 쓰러뜨렸어.’송성연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그러나 허신미의 말에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이 반응은 아니야. 이 약은 미약이지만 사람을 혼미하게 하지는 않아.”‘만약 약효가 발작했다면 송성연은 지금 옷을 벗어 제치고 있어야 해. 조용히 여기에 기대어 있는 게 아니라.’허신미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쨌든 지금 쟤는 움직일 수 없어. 키다리 오빠가 놀고 싶으면 괜찮아.”‘누군가가 송성연을 망칠 수만 있다면 동영상을 녹화할 거야.’송성연을 망치고 나면 그들은 강무진에게 파일을 전송하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그에게 방미정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할 거야.’방미정은 옆에서 허신미를 끌어당겼다.“좀 봐 줘. 얘 강무진의 약혼녀야. 다른 사람이 데리고 놀다가 죽게 하지는 마.”방미정은 방금 북성에 돌아왔지만 알아낸 정보는 적지 않았다.상류 사회에서는 모두 알고 있다.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 송성연을 좋아한다는 걸.‘지난번에는 송성연의 생일파티를 열고 신분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어.’‘이를 통해서 송성연이 강씨 집안에서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지금은 상관없지만, 그때 가서 강씨 집안에서 추궁을 하면, 아마 끝에는 책임을 져야 할 거야.’“뭐가 무서워? 아직 결혼식도 안 올려서 아무것도 아니야. 스캔들이 나기만 하면 강씨 집안에서 어떻게 이런 약혼녀를 데리고 있겠
책상에 엎드린 성연은 그들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저 두 사람이 정말 교활한 마음씨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저들이 진짜 내게 손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성연이 막 일어나서 저 두 사람에게 겁을 주려고 할 때였다.성연이 막 눈을 뜨려는 순간, 문밖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룸의 문을 누군가 발로 차서 열었다.손건호가 이미 사람을 데리고 돌진해 들어왔다.성연의 앞으로 달려간 손건호가 친절하게 물었다.“사모님, 사모님, 정신 차리세요. 괜찮으세요?”말하면서도 계속 성연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무진이 데려온 사람이 키다리를 붙잡고 한바탕 때렸다.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방미정과 허신미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생각하지 못해 놀랐다.그러나 방미정은 손건호가 무진의 비서라는 건 알고 있었다.예전 강무진의 곁을 떠날 때, 손건호가 이미 무진의 곁에 있었다.무진의 유능한 비서로.방미정은 옆에서 입을 열려고 했다.“손 비서, 너는 나와 무진 씨와의 관계를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무진 씨 앞에 가서 말할 때 어떻게 설명할 거야?”그녀는 손건호가 자신의 신분을 의식해서 놓아줄 거라고 도박하는 심정으로 말했다.손건호는 방미정의 말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냉소를 지었다.“방미정씨, 나는 보스의 지시만 듣습니다. 당신은 내가 왜 여기에 나타난 줄 압니까? 당연히 보스가 지시하셨지요. 독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보스가 마음에 두신 분을 건드렸는데, 당신을 가만 놔둘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방미정은 손건호의 말에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만약 강무진이 자신이 벌인 이 일을 정말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무진씨가 정말 송성연 때문에 내게 벌을 주는 건 아니겠지?’어쨌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정혼 관계였던 사이다.그러나 지난번 성연을 세심하게 보살피던 무진의 모습이 시시각각 머릿속에서 떠올랐다.창백해진 안색의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