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60화

Author: 류한나
고은서는 곽승재의 모습을 보고 화내지 않고 말했다

“결혼 선물은 미리 고마워.”

말을 마친 고은서는 팔찌를 잠시 감상하다가 핸드폰을 들고 앨범을 정리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비행기는 해성에 도착했다.

고은서가 착륙하자 민시후에게서 연락이 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곽승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알아본 사람에게 잡혀 한참 인사를 나눴다.

고은서는 그 틈에 먼저 밖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민시후는 정말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몰고 하얀색 바지를 입은 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차 옆에 기대 서 있는 민시후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멋진 모습이었다.

“은서야, 여기!”

그녀를 보자 민시후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손짓했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고은서는 민시후 쪽으로 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큰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따라 나온 곽승재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나 안 기다렸어? 운전기사가 우리 기다리고 있어. 내 차 타.”

고은서가 답하기도 전에 민시후가 이미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곽 대표, 자꾸 나랑 은서가 같이 있는 걸 방해하는데 내가 매번 참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곽승재의 눈빛이 즉시 어두워졌다.

고은서는 공항 라운지에서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원치 않아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고 민시후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은서를 봐서라도 오늘은 그냥 넘어간다.”

민시후는 곽승재를 향해 냉소적으로 말했다.

차에 올라탄 고은서는 안전벨트를 매고 민시후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민시후도 망설이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곽 대표, 먼저 갈게.”

곽승재 옆을 지나갈 때 민시후는 일부러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곽승재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를 본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민시후를 째려보며 말했다.

“민 도련님. 제발 유치하게 굴지 않으면 안 돼?”

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곽승재가 나를 집으로 쫓아낸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561화

    고은서는 단호히 거절했다.민시후도 굳이 고집하지 않고 말했다.“그러면 내일 시간 내서 우리 형 좀 만나줘.”고은서는 어리둥절했다.“내가 왜 너희 형을 만나야 해? 만나서 뭐 하게.”고은서가 놀라서 물었지만 민시후는 느긋하게 답했다.“어떤 여자가 내 마음을 훔쳤는지 궁금해서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거겠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민시후, 너희 형을 만나는 건 절대 안 돼. 네가 적당한 이유 만들어서 거절해.”고은서가 단호히 말했다.“내가 왜 널 도와야 하지?”고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이게 날 돕는 거야?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런데 왜 해명 한마디도 안 하고 직접 거절하지도 않아?”민시후가 귀를 파며 답했다.“우리 스캔들이 퍼지지 않은 건 우리 형 덕분이기도 하거든. 내가 해명하면 믿을 것 같아?”고은서는 기가 막혔다.“그건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굳이 내 방에서 두 시간씩이나 붙어 있었으니 말이야. 민씨 가문 체면이 문제가 아니라 너는 내 체면을 깍고 싶은 거겠지!”“나도 민씨 가문 체면을 좀 깎아내리고 싶은데 그 집 사람들이 원치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민시후가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게다가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네가 무사히 곽승재랑 이혼할 수 있었겠어? 됐어. 이번엔 내가 한 번 도와줄게. 혼자 형 만나러 가면 되지 뭐. 대신 조건이 있어. 내가 너랑 사촌 동생 집까지 바래다줄게.”고은서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민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날 데려다주겠다는 거야? 또 무슨 속셈이 있는 거 아니야?”빨간불 때문에 앞 차가 멈춰서자 민시후도 브레이크를 밟으며 장난스럽게 고은서를 보며 말했다.“그냥 너희 집사람들이 네 옆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어서.”“알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해?”고은서가 물었다.앞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민시후는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고은서, 네 EQ는 외모에 몰빵된 거야? 가족들이 알게 되면 그때 가서 다

  • 어게인, 비긴   제562화

    “정말 단순한 회사 대표야? 내 눈에는 왜 언니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고은혜가 바로 물었다.“아니야. 원래 장난기 많은 성격이라서 그래.”고은서가 답했다.고은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말도 안 돼. 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유성준이 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랑 비슷해.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반박하려던 고은서의 귓가에 단은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은혜야. 어떻게 같이 왔어?”고개를 돌려 보니 장을 보고 온 단은숙과 가정부가 보였다.고은서와 고은혜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둘이 같이 고국성이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은혜한테 연락했더니 집에 간다길래 마침 외숙모 요리가 먹고 싶어서 같이 왔어요.”고은서가 먼저 답했다.단은숙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따질 기력도 없는지 다른 질문을 했다.“조금 전 스포츠카를 탄 남자는 누구야? 왜 그 차를 타고 온 거야?”‘외숙모도 민시후를 본 건가?’“제가 다니는 회사 대표예요.”“결혼은 안 했지?”단은숙이 묻자 고은혜가 끼어들며 답했다.“당연히 안 했죠. 고은서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고은서는 고은혜를 쏘아보며 말했다.“세상만사 다 아는 척하지.”“사실을 얘기하는 건데 뭐. 아까 얘기한 거 못 들었어? 네가 가족들에게 소개할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오겠다고 했잖아.”고은혜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보기에 집안도 괜찮은 것 같던데. 이혼도 했으니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고 적당한 사람 만나는 게 낫지 않겠니?”단은숙이 말했다.단은숙과 계속 화제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던 고은서가 말을 돌렸다.“왜 혼자 계세요? 삼촌은요?”단은숙은 고은서가 화제를 돌리는 걸 눈치채고는 약간 불쾌해하며 답했다.“성준이랑 일 보러 갔어. 곧 집으로 와서 밥 먹을 거야.”고은혜가 단은숙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채고는 급히 말했다.“와, 엄마! 맛있는 거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저 오늘 많이 먹을 거예요.”“빨리 올라가자. 아주머니 기다리게 하지 말고.”단은숙도 더 이상 말을

  • 어게인, 비긴   제563화

    고은서가 고국성과 유성준에게 인사를 건넸다.고국성은 여전히 그녀와 곽승재의 이혼 문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지 건성으로 인사를 받을 뿐이었다.반면 유성준은 그녀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서운에서 돌아온 거야?”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조금 전에 왔어요.”“인스타에 올린 사진은 봤어. 판다 기지에서 즐겁게 지낸 것 같더라.”유성준이 묻자 고은서가 웃으며 답했다.“맞아요. 아기 판다들 정말 귀엽더라고요.”유성준도 웃으며 말했다.“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틀쯤 시간 내서 같이 갔을 텐데.”“다음에요! 다음에 또 가면 제가 안내해 줄 게요.”“좋아.”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고국성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고은혜는 몰래 두 사람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조금 후 고국성이 다시 거실로 나오자 유성준은 맞춤형 향수 프로젝트 얘기를 꺼내며 고은서에게 도움을 청했다.고국성은 이를 듣고 고은서에 대한 불만이 다소 누그러졌는지 앉아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반 시간 후 단은숙은 주방을 가정부에게 맡기고 과일을 들고 와 테이블에 올려놨다.그리고 고은혜를 베란다로 불러냈다.“고은혜. 대원에서 왜 그렇게 오래 머물다 이제야 돌아온 거야?”고은혜는 핸드폰을 보며 건성으로 답했다.“말했잖아요. 몇몇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려고 좀 더 머물렀어요.”“곽승재랑 자주 연락해서 관계를 돈독히 하라고 했지? 그건 어떻게 됐니?”“바빴어요. 언제 그럴 시간이 있었겠어요.”“대화할 때 핸드폰은 좀 치워!”단은숙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아무리 바빠도 결혼보다 바쁠 수 있겠니? 여자가 가장 예쁜 시기는 몇 년뿐이야. 그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널 선택해 주기를 기다려야 할 거 아니야.”단은숙의 말을 들은 고은혜도 기분 상한 듯한 말투로 답했다.“엄마. 제발 저를 어떤 가문에 시집보낼지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집안도 그렇게 나쁜 조건은 아니잖아요.

  • 어게인, 비긴   제564화

    단은숙뿐만 아니라 고은서도 곽승재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여긴 어떻게 왔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가 대답하려는 찰나 그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고은혜가 먼저 말했다.“사진 한 장 보냈을 뿐인데 알아서 찾아오더라고.”고은서는 묻지 않아도 고은혜가 보낸 사진이 자신과 유성준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일 거라고 짐작했다.곽승재도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단순히 삼촌과 외숙모에게 인사드리러 온 거예요. 외숙모, 은서는 제 아내예요. 은서가 아니면 저는 그 누구랑도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단은숙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외숙모가 네가 은서 좋아하는 거 모르겠니? 방금 한 말은 그냥 농담이었어. 예전에 은혜를 네 회사에서 인턴 생활시킨 것도 단지 다양한 환경에서 경험을 쌓게 하려던 거지 다른 뜻은 없었어. 은서야, 승재도 왔는데 얼른 데리고 가서 얘기 좀 나눠. 나는 요리 좀 더 준비해야겠다.”단은숙은 고은서에게 말하고는 고은혜를 끌고 주방으로 사라졌다.이제 베란다에는 고은서와 곽승재만 남아있었다.곽승재가 먼저 물었다.“민시후랑 같이 간 거 아니었어? 왜 삼촌 댁에 있어?”“너랑 무슨 상관인데? 곽승재, 우린 이미 이혼했어.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곽승재는 담담히 답했다.“우리가 이혼했어도 이분들은 어른들이야. 찾아뵐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고은서는 지금 상황이 황당했다.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곽승재는 곽씨 가문 본가도 몇 번 가지 않았는데 그녀의 삼촌 집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아무도 반기는 사람 없으니 당장 나가요.”고은서는 참지 않고 다그쳤다.“승재야, 왔어?”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국성이 방에서 나와 곽승재를 반기며 말했다.“성준이랑 서재에서 일 좀 보고 있었는데 네가 왔다고 해서 나왔어. 얼른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해.”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곽승재는 인사 왔다는 말에 걸맞게 두 손 무겁게 고급 선물 상자를 몇 개 들고 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고국성

  • 어게인, 비긴   제565화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곽승재에게 쏠렸다.“가도 제가 같이 가요.”곽승재가 고은서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냈다.유성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무시하고 고은서에게 물었다.“은서야, 내려갈 거야?”곽승재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원래 내려갈 생각이었던 고은서는 그 생각을 버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차 마시죠.”그 모습을 본 유성준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하지만 곽승재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말했다.“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고은서는 곽승재에게 눈을 흘기며 유성준을 향해 말했다.“성준 오빠, 차 좀 더 주세요.”“그래.”유성준은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찻잔에 차를 채워주었다.곽승재는 입술을 짓이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소 디테일은 신경 쓰지 않았던 고국성마저 세 사람 사이의 신경전을 눈치챘다.단은숙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단은숙은 조금 짜증 섞인 눈빛으로 유성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준아, 은서랑 승재는 한순간의 치기로 이혼한 거야. 은서가 화 풀리면 다시 승재랑 재결합할 거니 그 사이에 끼어들지 마.”“외숙모!”유성준이 답하기도 전에 고은서가 한발 빠르게 답했다.“곽승재랑 재혼 안 해요.”“너!”화가 난 단은숙이 말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왜 아직도 어리광을 부려! 승재가 너한테 접어주고 있는데 더 이상 뭘 원하는 거야.”“어리광 부리는 거 아니고 억지 부리는 것도 아니에요. 곽승재랑 이혼한 것도 한순간의 치기가 아니에요. 그러니 제 결정을 존중해 주세요.”고은서가 차분히 자기 뜻을 피력했다.“고은서!”고국성이 경고성 어린 목소리로 다그쳤다.“아빠, 엄마. 이건 언니와 형부 사이의 문제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언니도 생각이 있겠죠.”옆에서 지켜보던 고은혜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너는 조용히 해!”단은숙이 고은혜를 꾸짖었다.“어른들 일에 끼어들지 마.”“저도 21살인데...”고은혜는 단은숙의 눈치를 보다 입을

  • 어게인, 비긴   제566화

    딸의 속셈을 알아차린 단은숙은 몰래 그녀를 째려보고는 곽승재에게 말했다.“젊은이들 일은 젊은이들끼리 알아서 해. 계속 차 마시고 있어. 난 부엌에 가볼게.”고국성은 고은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곽승재를 보면서 눈치 있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이렇게 이 일은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곽승재와 유승준은 계속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고 그들 옆에 앉아 있던 고은서는 점점 피곤해져만 갔다.그녀는 밥을 먹자마자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먼저 돌아가려고 했다.유승준이 데려다주겠다고 나서자 곽승재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녀가 거절하려고 할 때 폰 벨 소리가 울렸다.“민 대표님.”“아직도 삼촌 집이야? 나 지금 근처에 있는데 마침 네 짐도 아직 내 차에 있고 한 데 내가 데리러 갈게.”“알겠어!”고은서가 큰소리로 응했다.그녀는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빨리 도망가고 싶었다.민시후가 도착한 후 고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뭐야? 호랑이한테 쫓기기라도 하는 거야?”민시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그러나 그는 이내 밖으로 나오는 곽승재를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또 곽승재 때문이야? 진짜 질기게 따라다니네. 이젠 네 삼촌 집까지 쫓아다니는 거야?”고은서는 그를 쏘아보았다.“그만 말하고 얼른 떠나기나 해.”민시후는 도발하는 듯 경적소리를 한 번 내고는 이내 액셀을 밟고 쌩하고 떠났다.그가 일부러 자신을 약 올리는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곽승재는 속이 더 답답해졌다.‘유승준 하나로도 모자라서 이젠 민시후까지 끼어들고 난리야!’고은서가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를 태도와 확연히 달랐다.곽승재는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집 밑에 도착하자마자 고은서는 잔말하지 않고 민시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박지연이 청소를 해놓은 덕분에 집안은 아주 깨끗했다.고은서는 그녀

  • 어게인, 비긴   제567화

    전에 서인수에게 납치되었을 때 도아름은 그가 곽승재가 그녀를 아끼는 걸 알면서도 모험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그러나 당시 스캔들에 휩싸인 그가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게 무서워 일부러 앙심을 품고 복수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별로 중히 여기지 않았었다.지금 도아름이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고은서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이제 또 연락해요. 혹시 새로운 소식 있으면 알려주세요.”“그래요.”이튿날, 고은서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박지연은 그녀를 위해 아침을 준비해두고 메모지를 남겼다.[어제 너무 늦게 들어와서 깨우지 않았어. 오늘 저녁 같이 수다 떨면서 놀자.]고은서는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카톡으로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아침을 먹은 후 고은서는 곧장 회사로 출근했다.그녀보다 먼저 도착한 송민아는 열심히 프로젝트 서류를 보고 있었다.“제인 제약 쪽에 투자 계획서 주러 가야 하지? 나도 같이 가.”그녀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아침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고은서가 서운에서 이삼일 동안 휴가를 보냈다고 회사 일을 전부 뒷전으로 미룬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완성된 계획서를 민시후에게 검토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이 마침 면담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일에 몰두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송민아의 제안을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제인 제약과 거의 반나절 동안 면담하는 바람에 나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갔다.다행히도 쌍방이 다 협력할 의향이 강했는지라 계획서를 크게 고칠 필요가 없었다.“고은서, 우리 오빠가 내 카드 한도 풀어줬어. 우리 쇼핑몰에 가서 밥 먹고 쇼핑하자.”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요청을 보냈다.그러나 고은서는 요즘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겠다면서 사양했다.“알겠어.”송민아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엄청 들떠 보였다.“우리 오빠가 왜 이리 빨리 내 카드 한도 풀어줬는지 알아?”“왜?”“당연히 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해서 그런 거지. 요즘 열심히 일하느

  • 어게인, 비긴   제568화

    고은서는 이 말을 처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간 쓸쓸하게 웃어 보이며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그 후로 두 사람은 회사 일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민시후에 관한 말은 더는 꺼내지 않았다.고은서가 송민아를 회사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도아름한테서 연락이 왔다.“시은 씨, 같이 밥 먹을 시간 되나요? 할 말이 있어서요.”어젯밤 서인수를 만나러 간다던 그녀의 말을 떠올린 고은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시간 돼요. 장소 알려주면 제가 그곳으로 갈게요.”도아름은 아주 조용한 프라이빗 키친으로 골랐다.고은서가 도착했을 때 도아름은 이미 룸 안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한 후 앉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아름 언니, 서인수가 오늘 뭐라고 하던가요? 혹시 저랑 관련된 일인가요?”고은서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맞아요.”도아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인수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그녀를 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눈살을 찌푸렸다.“백유미인가요?”도아름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았다.“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정말 백유미였어!’“백유미 외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요.”고은서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도아름도 고은서와 백유미 사이의 원한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은서 씨가 저를 도와준 일로 오래전부터 앙심을 품고 있었대요. 그런데 곽승재 씨 아내라는 걸 알고 차마 손을 댈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백유미가 은서 씨랑 곽승재 씨 사이가 안 좋다고 귀띔해줬다고 해요. 그래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고 사람 시켜 은서 씨를 납치한 거라고 하더군요.”서인수가 곽승재 때문에 모든 걸 잃고 또 감옥에서 나와서까지 곽승재한테 당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가 한창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을 때 백유미가 그의 앞에 나타난 거라고 한다.백유미는 이 모든 게 다 고은서 탓이라고 하면서 곽승재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088화

    “곽 대표님은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병뚜껑 열어주는 것조차 꺼릴 만큼?”여시은의 말투에는 약간의 유감과 억지로 짜낸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곽승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시은 씨가 원하는 건 물을 마시는 결과가 아닌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되지, 누가 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왜 중요하지 않아요?”여시은은 눈을 깜박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저는 곽 대표님이 열어준 병의 물만 마시고 싶은데요.”노골적인 애정 공세에 곽승재는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여시은은 전혀 민망한 기색이 없이 여전히 공세를 이어갔다.“솔직히 말할게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집안 어른의 뜻대로 조금씩 알아가면 안 될까요?”곽승재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우리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정략결혼을 반대하세요. 아버지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죠.”“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재혼 계획이 없습니다.”여시은은 여전히 달콤한 미소를 유지했다.“당장 결혼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만나다가 전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잖아요?”“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시은 씨와 맞지 않아요.”곽승재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는 원래 활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와 결혼한 후 시들어버렸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 저한테서 도망쳤어요. 이혼한 후 그 여자는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됐죠. 그러니 저는 남편으로 자격 미달이에요.”“시은 씨는 여 회장님께서 애지중지하는 따님이고 조건이 우월하니 더 나은 남자를 만나셔야죠.”여시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저는 고은서와 달라요. 고은서는 완전한 사랑을 원했지만 저는 조건이 맞는 파트너면 돼요.”“사랑이 있으면 금상첨화이고 없어도 상관없어요.”그녀는 돌직구를 날렸다.“제가 고은서보다 승재 씨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고은서 만큼 똑똑하거나 유능하지는 않지만, 이게 남자들에게는 장

  • 어게인, 비긴   제1087화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