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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Author: 류한나
민시후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정말 곽승재랑 이혼하려고요? 홧김에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민시후가 두 사람의 일에 관심을 보이자 고은서는 어이가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은서와 민시후는 차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한 T 국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고은서가 투덜거렸다.

“이럴 거면 T 국에 가서 먹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요?”

“그러게요.”

민시후는 진지하게 물었다.

“여권 가지고 왔으면 바로 T 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 살 수 있어요.”

고은서는 민시후를 흘겨보았다. T 국 요리 식당이 멀기는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기분이 좋았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기이한 꽃과 풀로 가득 찼고 테이블마다 울타리로 둘러싸여 작은 정원에 놀러 온 느낌이었다.

주문을 마친 뒤, 민시후는 전화를 받으러 갔고 고은서는 카톡을 확인했다. 곽승재가 답장하지 않아서 전화를 걸자 받지 않았고 화가 난 고은서는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팽개쳤다. 아래층을 내려다보던 고은서는 익숙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빛으로 도배된 차량의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원지훈이었다. 원지훈은 차 열쇠를 식당 직원한테 건네면서 거만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여자한테 치근덕거렸다. 고은서는 원지훈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원지훈이 계약한 휴대폰 프로젝트는 화제성이 높았고 민시후가 일부러 떠벌렸기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문제가 많아서 곧 파산할 것이고 백유미가 투자한 돈을 날리게 되면서 고소할 것이 뻔했다.

민시후가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올 때 고은서가 웃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불빛 아래에서 더 빛나는 얼굴과 그 위로 피어난 미소는 영락없이 여우의 모습이었다.

“은서 씨, 다른 남자 앞에서 그렇게 웃지 마요.”

민시후는 애틋한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

“웃는 모습을 보는 남자마다 은서 씨한테 반하게 될 테니까요.”

고은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민시후를 쳐다보았다.

“민 도련님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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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282화

    고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했고 전화를 받았다.“곽승재, 오늘 이혼하기로 했으면서 왜 갑자기 출장 간 건지 설명해 봐.”“갑자기 발령받은 거야.”곽승재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고 고은서가 따져 물었다.“그럼 언제 돌아오는데?”“일이 잘 해결되면 아마 열흘에서 두 주일 정도 될 것 같아.”“두 주일?”고은서가 목청을 높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은서를 쳐다보았다. 고은서는 재빨리 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설마 일부러 이혼하지 않으려고 미루는 건 아니지?”곽승재는 하루가 멀다 하게 이혼을 외치는 고은서가 짜증 났다.“고은서, 비행기 열 몇 시간 타고 도착해서 쉬지도 못하고 너한테 바로 전화했어. 나 좀 숨 쉬게 내버려 두면 안 돼?”고은서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누가 너더러 아무 말 없이 가라고 했어? 연락이 되지 않아서 숨 못 쉬고 버틴 건 나야!”“이혼하는 걸 몇 날 좀 미뤘다고 숨 못 쉬어?”곽승재는 비수 같은 말로 고은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럼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숨도 못 쉬고 어떻게 산 거야? 이혼은 어차피 할 거고 출장은 미룰 수 없잖아!”고은서는 화가 나서 되받아치려고 할 때, 민시후가 투덜거렸다.“언제까지 전화하는 거예요? 요리 다 식어요!”“곧 갈게요.”고은서는 눈치를 살피면서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곽승재가 물었다.“지금 어디야?”고은서가 반문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방금 민시후 목소리 같았는데, 너 또 그 사람이랑 밥 먹으러 갔어?”곽승재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은서, 민시후랑 만나는 의도가 도대체 뭐야?”고은서는 물어볼 자격조차 곧 박탈당하게 될 곽승재가 우스워서 일부러 자극했다.“내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민시후는 출신, 얼굴, 몸매 하나라도 빠짐없이 너보다 나아. 몇 번 만나보니 좋은 사람 같아서 너랑 이혼하고 갈아탈 생각이야. 그러니까 빨리 귀국해서 나랑 이혼해. 서로 앞길 막지 말자고!”고은서는 곽승재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

  • 어게인, 비긴   제283화

    민시후와 함께 밥을 먹었다면 민시후의 장난에 체할 것 같았다. 민시후가 고른 식당의 음식은 식재료부터 비쌌고 맛은 고급스러웠고 깔끔했다. 고은서는 천천히 음식을 맛보았고 배를 채운 뒤에 결산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실내의 방을 스쳐 지나갈 때, 문이 절반쯤 열린 방 안에서 원지훈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들어올 때는 몇 명 안 되었지만 방에는 이미 열 몇 명이 모여있었고 친구들은 앞다투어 원지훈한테 술을 권하면서 잘 보이려고 애썼다. 고은서는 여자를 품에 안고 술을 마시는 원지훈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가만히 찍었고 고은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보여주려고 했다. 밖으로 나간 고은서가 콜택시를 부르려고 하자 몸이 다부진 남자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사모님, 댁까지 모실게요.”고은서는 사모님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이 남자가 바로 곽승재가 고은서 곁에 붙여준 기사 겸 보디가드 이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고은서는 혼자 외출했기에 이곳에 나타난 이준이 신기하기만 했다.“대표님이 데리러 오라고 하셨어요.”고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본 이준이 대답했다. 곽승재는 고은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이준을 보낸 것이다. 고은서는 갑자기 일이 있다고 간 민시후가 떠올랐다.‘설마 민시후가 갑자기 간 것도 곽승재 짓은 아니겠지? 아, 그럴 리 없어.’고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준을 돌려보낼 수 없기에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예원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되었다. 이미숙이 물을 떠서 건네며 말했다.“사모님, 사모님 방 옆에 있는 객실을 청소했어요. 도련님이 기사 이준 씨를 집에 들이면 사모님이 외출할 때 이준 씨가 동행할 수 있으니 편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알아서 하세요.”고은서는 덤덤하게 말했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커다란 캐리어를 꺼내서 중요한 물건과 옷을 잘 정리해 넣었다. 고은서는 할머니와 한 약속을 지켰기에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예원 별장에서 지낼 이유가 없었다. 그래

  • 어게인, 비긴   제284화

    “네, 곽승재랑 이혼할 건데 여기서 지낼 수는 없죠.”고은서가 미소를 지으면서 제안했다.“아줌마, 제가 새집을 사면 사직하고 저랑 그 집으로 함께 가요.”고은서는 원래 고씨 가문으로 돌아가 외할아버지와 같이 지내려고 했지만 ZY 그룹에 출근해야 하기에 외할아버지 댁에서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 새집을 마련했다. 고은서의 말을 들은 이미숙은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사모님, 이혼이라니 그게 무슨... 도련님과 잘 지내셨던 거 아니에요? 도련님은 사모님이 나가시는 거 아세요?”“제가 직접 말할 거예요.”고은서는 이삿짐센터 직원과 같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예전에 이미숙과 함께 잘 입지 않는 옷을 기부하거나 팔았고 나머지 옷 중에서 산 지 얼마 안 된 옷과 유독 좋아하는 옷, 그에 맞는 쥬얼리와 가방, 화장품을 캐리어에 넣었다. 하지만 다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캐리어 여러 개를 가득 채웠기에 이삿짐센터에 신청한 것이다.두 직원이 캐리어를 들고 내려갔고 그 뒤를 따라가던 고은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결혼할 때 외할아버지는 고은서가 잘 지내지 못할까 봐 옷, 신발, 이불 그리고 각종 생활용품을 차 두 대에 꽉 채워서 보냈지만 더 주지 못해서 마음 아파했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돈으로 쥬얼리와 금을 사두었기에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빈털터리로 내쫓기지는 않았다. 가방을 든 고은서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이미숙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다.“사모님, 도련님이 돌아온 후에 다시 얘기해 보면 안 될까요?”“아줌마, 그동안 저를 보살펴줘서 고마웠어요. 아까 제가 한 제안은 다시 생각해 보고 알려주세요.”말을 마친 고은서는 대문을 나섰고 이삿짐센터 전용 차량에 물건이 꽉 들어찼다. 이 물건들은 잠시 해성시의 어느 한 호텔로 보내질 것이다. 고은서의 외할아버지는 친구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슬퍼했기에 괜히 집에 돌아가서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서는 마세라티를 직접 운전해서 호텔로 가려는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발신자가 곽승재인 것을

  • 어게인, 비긴   제285화

    곽승재는 고은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말을 이었다.“두 시간 내로 다시 돌아가. 그렇지 않으면 아까 말한 돈은 못 줘.”고은서는 곽승재의 거만한 태도가 거슬렸고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안 줘도 돼. 난 돈을 좋아하지만 너랑 부부로 묶여있는 게 조건이라면 절대 안 가질 거야. 나 스스로 벌 수 있으니 굳이 네 돈을 쓰지 않아도 돼.”곽승재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며칠 전에 있었던 사고를 벌써 잊은 거야?”고은서가 잊을 리 없었다.“서인수는 잡혔으니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사고당할까 봐 무서워서 예원 별장에만 있을 수 없잖아?”“고은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두 주일 정도만 집에 있어 주면 돼.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곽승재는 한결 부드럽게 말했지만 고은서는 단호했다.“아니, 하루도 그곳에 있기 싫어.”만약 이사하기 전에 이 조건을 들었다면 며칠 동안 집에 있었겠지만 이미 집을 나와서 자유를 만끽하는데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곽승재는 냉철하고 똑똑한 상인이라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았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위자료에 대해 말할지, 아니면 고은서더러 정신 손해배상금과 고용인 월급을 내놓으라 할지 모르는 일이다. 고은서는 남의 돈을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고은서가 단호하게 말하자 곽승재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그래, 고은서 네 마음대로 해! 내가 귀국하면 그날로 이혼하는 거야. 네가 후회해도 소용없어!”곽승재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잠깐만!”곽승재의 화가 누그러들었지만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아까 한 말 다시 한번 해줄래? 그때 가서 말 바꾸면...”뚝.고은서가 다 말하기도 전에 곽승재가 전화를 끊었고 휴대폰을 사무실 책상에 내리쳤다. 휴대폰 액정이 나갔고 더는 쓸 수 없는 형체가 되었다. 업무 보고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주민기는 수명을 다한 휴대폰이 안쓰러웠다.고은서의 위력은

  • 어게인, 비긴   제286화

    민시후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호텔로 드나드는 여자들은 고은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평범한 옷차림의 여자가 왜 이런 남자 곁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부러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은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민시후의 차에 타기 싫었기에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서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은서 씨!”민시후가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여기예요!”고은서는 어이가 없었고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민시후 곁으로 다가가 차에 올라탔다. 민시후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차 문을 닫아주었고 운전석에 앉았다. 두 사람이 떠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고은서가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민 도련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술집에 가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차려입고 왔어요?”민시후가 반문했다.“이 정도는 입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꾸며도 뭐라고 하네요.”고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민 도련님, 잘 차려입은 도련님과 같이 가려니까 민망해요. 다음부터 편한 차림으로 오면 안 돼요?”민시후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연히 안 되죠. 비록 은서 씨는 보는 눈이 없지만 예쁘잖아요. 예쁜 여자를 만나러 가는데 응당 잘 차려입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죠.”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쪽팔리는 것 말고는 하나도 모르겠는데요.”민시후는 고은서를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은서 씨 T예요? 다른 여자들은 남자가 신경 쓴 티가 나면 좋아하던데, 은서 씨는 어쩐지 더 싫어하네요.”고은서는 민시후의 말을 무뚝뚝하게 받아쳤다.“그렇게 생각하시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번에 우리 별로 친하지 않다면서요, 그러니까 굳이 꾸미지 않아도 돼요.”고은서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설마 이거 수작 부리는 건가요?”“저는 은서 씨 재능을 높게 사서 직접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제 마음을 의심하세요? 제가 일말의 믿음조차 저버린 건가요?”민시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말하자

  • 어게인, 비긴   제287화

    사람들이 박수치자 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은서가 테이블로 돌아왔고 민시후는 박수치면서 말했다.“조회수가 높게 나올 만했네요! 원래부터 실력자인 건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들어보니 더 벅차요.”고은서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그럼요!”고은서는 드럼 선생님이 특별히 아끼던 제자였다. 이때 민시후가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자, 은서 씨를 위해서 건배!”마침 술집 매니저가 고은서한테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다.“고은서 씨 연주 잘 봤어요. 이건 가게 새 메뉴인데 고은서 씨께 드리고 싶어서요.”고은서는 칵테일 잔을 건네받고 말했다.“고마워요.”칵테일은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서 알코올 향이 나지 않았다. 칵테일을 마신 뒤, 고은서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민시후한테 물었다.“민 도련님, 임무도 완성했고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봐도 될까요?”민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럼요, 같이 가요.”민시후는 고은서에게 차 열쇠를 건네면서 말했다.“난 많이 마셨으니 은서 씨가 운전해요.”고은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기사님을 부르세요, 저는 콜택시를 부를 거니까요.”민시후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은서 씨를 데려온 사람이 저니까 호텔까지 데려다주어야죠. 저는 신사다운 남자잖아요.”고은서는 더 이상 말싸움하기 싫었고 빨리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차 열쇠를 가지고 민시후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호텔 앞에 도착한 뒤, 고은서는 민시후더러 기사를 불러라고 재촉하면서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자 민시후도 안전벨트를 풀면서 미간을 주물렀다.“어지러워서 저도 오늘 여기서 자야겠어요.”고은서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민시후 도련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민시후는 고은서를 흘겨보더니 입을 열었다.“오해한 것 같은데, 저는 유부녀한테 관심 없어요.”고은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요즘 따라 왜 이러는 거죠?”어제 식당에 갈 때부터 어딘가 이상했고 오늘은 지나치게

  • 어게인, 비긴   제288화

    사진을 확인한 백유미는 하얀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민시후라는 것을 눈치챘다. 고은서가 민시후한테 기대서 호텔로 들어서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민시후는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원수처럼 싫어했던 곽승재의 아내 고은서와 가까이 지낼 줄 몰랐다. 민시후는 곽승재의 지인들과 말도 섞지 않는 사람이었다.백유미는 예전에 고은서가 민시후의 병문안을 간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명운과 연관된 일로 합작한 건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이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될 줄 몰랐다.‘고은서가 화가 나서 곽승재한테 복수하려고 일부러 민시후를 유혹한 거야, 아니면 민시후가 고은서를 유혹해서 곽승재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거야?’[백유미: 잘했어, 호텔 안으로 들어가지 마. 오늘 지훈 씨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백유미가 원지훈한테 문자를 보냈다. 이 사진이 곽승재 손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샅샅이 조사할 것이 분명했기에 원지훈이 찍었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원지훈: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원지훈의 답장을 확인한 백유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 곽승재한테 사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때가 되면 사진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고은서가 아무리 설명해도 곽승재 마음에 단단히 꽂힌 가시가 되어 떠올릴 때마다 아플 것이다.한편, 호텔 로비로 들어간 민시후는 고은서와 같은 층에 있는 방을 잡았다. 민시후는 고은서를 부축한 채로 고은서의 방까지 들어갔고 문을 닫자마자 고은서는 팔을 뿌리쳤다.“당장 방으로 돌아가세요, 지금 기분이 상당히 나쁘거든요.”민시후는 고은서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제가 실수한 것처럼 말하네요. 은서 씨는 유부녀고 저는 솔로거든요? 따지고 보면 제가 더 손해 본 것 같은데요.”고은서를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 민 도련님 말이 다 맞아요. 위대한 솔로 민 도련님, 연기가 끝났으면 당장 나가주세요.”민시후는 소파에 눕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두 시간 뒤에 갈게요.”고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리

  • 어게인, 비긴   제289화

    고은서는 민시후를 흘겨보면서 말했다.“저의 사적인 일보다는 송민아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해하게 생겼는데, 만약 포기하지 않고 저부터 치우려고 하면 어떡하죠?”민시후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은서 씨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죠.”고은서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민시후는 여전히 덤덤했다.“두 시간으로 오늘 밤 혹은 더 많은 날 동안 잠잠해질 텐데, 은서 씨가 조금만 참아요.”고은서가 민시후의 처사 방식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민시후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무서운 남자였다. “그런데 왜 굳이 두 시간 뒤에 나가는 거예요?”고은서는 질문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후회했다. 민시후는 피식 웃더니 물었다.“곽승재가 두 시간도 못 하던가요?”“민 도련님, 선 넘지 마세요!”고은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곽승재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곽승재는 민시후가 겉보기에 단순한 것 같지만 그 모습에 속으면 되레 당할 수 있다면서 경고했었고 고은서는 그 말이 이제야 실감 났다.칵테일을 마셔서인지 술기운이 올라온 고은서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었기에 민시후 말대로 곽승재가 빨리 이혼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은서는 도통 잠에 들지 못해서 인스타를 보다가 곽승재가 올린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게시물을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곽승재가 출장한 곳에서 먹은 점심을 찍어 올렸다.[곽승재: 맛없어.]그 밑에는 육현석이 댓글을 달았다.[육현석: 승재 형, 해외로 간 거야? 그런데 밥이 왜 이래, 좀 좋은 식당에 가서 먹어. 형수님이 보면 마음 아파하실 거란 말이야.]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곽승재가 육현석의 댓글에 대답했다.[곽승재: 그럴 시간 없어.][육현석: 그럼 형수님한테 전화해서 위로해달라고 부탁해 봐. 형한테는 형수님밖에 없잖아.]곽승재라면 육현석의 댓글이 오글거려서 무시할 것이 뻔했기에 고은서는 다른 게시물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그 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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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 어게인, 비긴   제1079화

    곽승재의 물음에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갔어. 우연히 마주치기까지 했지.”여시은이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일부러 찾아왔을 것이라는 의심이 확 들었다.곽승재는 여시은이 WOR 게임 회사에 협력 제의를 했으나 주 개발자에게 거절당했다고 알려주었다.여시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유혹을 던지는 걸 보면, 고은서가 이 일을 알게 만들어 화나게 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고은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은서야, 무슨 얘기 하려고 했어?” 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일단 여시은의 이 문제를 접어두고, 오늘 송민준의 사무실에서 그의 컴퓨터에 있는 농장 영상을 발견한 일을 설명했다.곽승재는 표정이 복잡해지며 말했다.“송민준이 그렇게 방심할 사람이야? 아니면... 당신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야?”스스로 질문한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씁쓸하게 물어왔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말뜻을 알면서도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송민아가 비밀번호를 알아낸 과정을 설명했다.그녀와 송민준의 관계가 생각처럼 그리 가깝지 않음을 확인한 곽승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송민준이 어떤 반응을 보였어?”고은서는 들은 대로 전했다.“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고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잘 모르겠어. 만약 그 이유가 아니라면, 송민준이 왜 농장 사건을 조사했을까?”송민준이 C 선생이라 해도 농장과는 무관한 일, 조사 동기가 불분명했다.곽승재는 입술을 깨물며 분석을 이어갔다. “우리가 농장 사건을 파헤친 건 시은 씨가 너를 모함해 여 대표님마저 널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잖아.”“내 사람들이 샅샅이 조사했지만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 전에도 말했지만, 시은 씨가 미리 손쓴 거 같아.”“만약 송민준이 너를 위해 조사한 게 아니라... 이미 그 영상을 확보한 상태였다면?”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고은서가 뭔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설마 민준 오빠가 시은이 혐의를 숨겨준 장본인이라는 뜻이야?”곽승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

  • 어게인, 비긴   제1078화

    고은서는 송민준의 반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민준 오빠가 정말 뒤에서 나를 죽이려는 사람일까?’통화를 마친 송민아가 들어오면서 둘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겼다. 송민아가 애교 부리며 조른 끝에 송민준의 손에서 의향서를 가질 수 있었다.점심이 거의 끝날 무렵, 고은서가 먼저 계산을 했다.송민준이 한 끼 식사값 정도 낸다고 문제 될 건 없겠지만, 의향서까지 받은 마당에 식사까지 대접받는 건 좀 민망했다.송민준은 고은서가 계산을 한 걸 알고도 기분 상해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쳤다. “은서야, 그럼 다음번엔 내가 살 기회를 줘.”...의향서는 손에 넣었다지만 그래도 처리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고은서가 일을 마치고 라이트 문 아파트에 돌아온 건 밤 10시가 다 되어서었다.쑤신 팔을 주무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은서가 집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검은 쓰레기봉투를 든 곽승재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진한 색 셔츠를 입은 곽승재의 옷자락은 허리에 대충 걸쳐져 있었는데 정장 바지와 긴 다리, 쭉 뻗은 체격에서 귀공자의 기품이 풍겨왔다.하지만 그에 비해 낯색은 별로였다. 살짝 찌푸린 미간과 손에 꽉 움켜쥔 검은 쓰레기봉투가 불조화를 이루었다.고은서의 시선을 느낀 곽승재가 고개를 들었다.이 시간에 마주칠 줄 몰랐던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척 지나가기가 더 어색하다고 느낀 고은서가 말을 건넸다.“쓰레기 버리러?”곽승재는 슬그머니 검은 봉투를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청소 아주머니가 교체하는 걸 깜빡해서 직접 내다 버리려고.”순간 송민준에게서 받은 영상이 생각난 고은서가 물었다.“지금 별일 없지? 너랑 할 이야기가 좀 있어.”말을 마친 고은서가 곽승재 방으로 가려 하자 곽승재가 막아서며 말했다.“너한테로 가자. 내 방이 좀 지저분해서 그래.”청소 아주머니가 다녀갔다면서 방이 지저분하다는 말에 고은서는 의문스러웠지만 더 묻지 않았다.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재빨리 쓰레기 버리러 계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

  • 어게인, 비긴   제1077화

    송민아의 말투에 묻어난 야유를 고은서가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송민아는 송민준이 고은서에 대한 호감 때문에 몰래 조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여겼다. 송민준과는 특별한 접점이 없을뿐더러 호감이라 하기엔 애매했다. 게다가 송민준은 묵묵히 베푸는 스타일도 아니었다.‘그렇다면 왜 농장 사건을 조사한 걸까?’“그날 은서가 당한 사고가 항상 마음에 걸렸었어.”송민준이 송민아의 질문에 답했다.“그날 내가 늦지 않고 계속 함께 있었다면 은서가 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게다가 여 대표가 은서가 시은 씨를 밀었다고 의심했다는 말에 내가 더 미안해서...”송민준이 사과의 뜻을 전했다.“다만 몇 분이라도 빨리 도착했더라면, 적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을 텐데 말이야.”이 설명에도 송민아는 만족스럽지 못한 뉘앙스를 풍겼다.“단지 죄책감 때문이야?”고은서는 송민아가 더 엉뚱한 소리를 해댈까 봐 서둘러 말을 끊었다.“민준 오빠, 그날 일은 어떤 각도로 봐도 오빠 잘못이 아니야. 전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어쨌든 진상을 밝혀줘서 고마워. 이 영상 나한테 보내주실 수 있어?”고은서가 조심스레 물었다.“물론이지. 원래도 너 주려고 했었어.”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이걸 바로 여 대표님께 보여줄 거야?”송민아가 물었다.송민준의 의도가 불분명한 시점에 고은서는 완전히 경계심을 풀 수가 없었다.“아마 재훈 씨는 최근 시은이 회사 설립으로 바쁘실 거야. 이 관건적인 시기에 드리면 내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아무래도 개업 축하 파티가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분명 시은 씨가 널 물에 빠뜨리고, 여 대표님의 오해까지 받았는데 넌 뭐 하러 그 사람들을 배려해!”송민아가 화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땐 그냥 영상을 보여주고 너를 오해했다는 걸 인지시켜야 해! 오빠, 어떻게 생각해?”송민준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은서도 자기 생각이 있을 거야. 은서의 판단

  • 어게인, 비긴   제1076화

    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송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민아와 고은서는 깜짝 놀라며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송민준이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은서는 순간 어색함이 밀려왔다. 남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함부로 만진 데다 지어는 내용까지 훔쳐보다가 주인에게 딱 걸렸으니 말이다.얼굴이 확 붉어진 고은서가 입을 열려는 순간, 송민아가 먼저 물었다.“오빠, 오빠 컴퓨터에 왜 지난번 은서와 여시은 씨가 물에 빠진 영상이 있는 거야?”송민준에게 사과하려는 고은서의 말을 끊은 채 송민아는 재차 추궁했다.“누구한테서 받은 거야? 왜 나한테는 말도 안 해줬어?”고은서 역시 궁금했기에 민망함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송민준은 차분히 걸어와 영상을 끈 뒤 담담히 물었다.“민아야, 누가 내 컴퓨터를 함부로 만져도 된다고 허락했어?”송민아도 민망하긴 마찬가지였던지라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그냥 비밀번호가 맞나 확인해보려다가... 미안해. 이 일은 나중에 사과할게. 우선 이 영상 어디서 난 건지부터 말해봐.”송민준은 고은서를 보며 입을 열었다.“은서야, 지난번 곽 대표가 농장 사고를 수사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사람을 시켜 조사해 봤어. 마침 그날 농장에 있던 관광객이 풍경 촬영 중 우연히 사고 장면을 찍어두었더라고.”송민준은 그 관광객이 급한 일로 고향에 내려갔다가 최근에서야 해성시로 돌아와 그날의 사고 수사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설명했다.“그럼 왜 나한테는 안 알려줬어?”송민아가 불만스럽게 묻자, 송민준은 오늘 아침에야 받은 결과라고 답했다.“안 그래도 은서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너희가 먼저 발견해 버렸네.”이 말을 들은 고은서는 이내 사과했다.“정말 미안해. 민준 오빠....”“비밀번호 푼 것도, 영상 연 것도 나야. 뭐라 할 거면 나한테 해.”송민아가 의리 있게 나서자, 송민준은 의자에 앉아있는 여동생을 흘깃 보며 받아쳤다.“요즘 부모님께 칭찬만 듣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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