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4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가 타이어로 애를 먹고 있던 그때, 귓가에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이미 차 옆으로 다가왔다.

비록 그녀는 이 상황이 조금 창피했지만 이런 일로 토라질 만큼 유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고은서는 입을 삐쭉 내민 채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을 내어줬다.

차에 앉은 곽승재는 여유롭게 핸들을 돌리면서 페달을 밟았고 후진하는 동시에 오른쪽 타이어가 흙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이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계속해.”

고은서는 다시 입을 삐죽거리며 운전석에 올라탔고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곽승재가 조수석에 앉았다.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왜 앉아?”

눈살을 찌푸린 채 묻는 고은서의 모습에도 곽승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되레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머리는 이게 뭐야?”

고은서는 어깨까지 오는 길이의 히피펌을 했다.

“내 머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뭔 상관이래.”

순간 곽승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말 있어? 없으면 내려.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명령하듯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곽승재는 꾹 참고 안전벨트를 맸다.

“운전 연습한다며? 멀뚱멀뚱 가만히 뭐 하는 거야?”

고은서는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으니까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

곽승재는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구덩이에 빠져서 혼자 낑낑대냐?”

“날이 어두워서 안 보였던 것뿐이야.”

“밝은 대낮에만 운전할 거야? 나중에 네가 운전하는 곳마다 조명이 비칠 것 같아?”

“그건...”

반박하기도 전에 곽승재는 단칼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네 뒤치다꺼리 하고 싶지 않으니까 얼른 연습해.”

지난번의 일은 확실히 그녀의 잘못이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고은서는 전방을 주시한 채 페달을 밟았다.

비록 수시로 조언하는 그의 모습이 꼴불견이지만 그래도 옆에서 가르쳐 준 덕분에 확실히 전보다 능숙해졌다.

이제 직진과 유턴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익었다.

“힘들어. 다음에 연습하자.”

힘든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어게인, 비긴   제25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벽에 부딪힌 듯한 소리였다.집에 있는 사람은 이미숙과 곽승재뿐인데 주정뱅이가 나타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철컥!방문이 열리자 곽승재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한껏 달아오른 새빨간 얼굴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는 그는 눈마저 빨갛게 충혈되었다.뭔가 위험을 직감한 고은서는 곧바로 노트북을 닫았고 사람을 부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술 마셨어?”그녀는 침착하게 물으며 아무 내색 없이 방문을 열었다.“아줌...”아줌마라는 세글자가 나오기도 전에 입술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곽승재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갑자기...”고은서는 너무 놀라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곽승재는 오히려 그녀를 더 힘껏 끌어안고 키스했다.그의 몸은 매우 뜨거웠고 발버둥 칠 공간마저 주지 않은 채 빈틈없이 고은서를 품에 껴안았다. 곧이어 벽으로 밀어 세우더니 마치 그녀의 모든 숨결을 빼앗아 가듯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고은서는 주먹으로 그를 때리려고 했지만, 두 손 전부 잡힌 탓에 꼼짝달싹 못 했다.늘 그렇듯 남녀의 힘 차이는 현저하다. 고은서는 몸이 완전히 짓눌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고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르러서야 끙끙대며 애원했다.그녀의 간절한 부탁에도 곽승재는 멈출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뭔가 자극을 받은 듯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아!”고은서의 비명에 곽승재는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숨 고를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마치 목을 물려는 듯 다가갔다.“아줌마!”소리를 들은 이미숙이 부랴부랴 위층으로 올라왔다.그러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그들의 애매한 자세를 보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줌마, 도와...”“내려가요.”곽승재는 고은서의 입을 막고선 쉰 목소리로 명령했다.고은서가 많이 걱정되었지만, 일개 도우미가 젊은 부부의 사적인 문제에 개입하는 건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판단되어 재빨리 발걸음을 돌렸다.“이거 놔!”고은서는 그가 한눈판 틈

  • 어게인, 비긴   제26화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내 인생 가장 눈부신 시기를 함께 보낼 그이를 기다리며.]정교한 요리가 담긴 사진은 백유미의 옆모습 셀카와 함께 업데이트 되었다.긍정적인 문구와 사진은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그녀의 셀카를 살펴보면 구석에서 반쯤 드러난 남자의 팔을 확인할 수 있다.셔츠를 입은 남자는 손목에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너무도 익숙했다. 곽승재가 항상 차고 다니는 시계 중의 하나였으니까.역시나 예상대로 그동안 백유미와 함께 있었다.하긴 그날 욕구가 치밀어 오른 상황에서 고은서가 거절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생활이 깔끔한 곽승재는 여태껏 그 어떤 스캔들에도 휘말린 적이 없었다. 그러니 욕구를 주체 못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사친을 찾아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두 사람의 관계가 한층 더 가까워진 건 백유미의 게시물에서도 느껴졌다.고은서는 그저 웃으며 백유미의 인스타를 차단했다.전에는 ‘라이벌’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팔로우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마음이 편할 정도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지하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보니 전생에 가깝게 지냈던 절친 성아연이다.성씨 일가는 최근 2년 동안 금융업에 발을 디뎠고 현재 그룹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그녀가 전생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성씨 일가는 갑자기 GS그룹과 손을 잡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도 상승했다.성아연은 그녀가 정신병원에 갇힌 걸 알고 있었음에도 방문안 온 적이 없었다.이해득실을 따지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했기에 원한을 품은 건 아니었지만, 도저히 전처럼 사이좋게 지내며 마음을 나눌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여 환생한 후에도 지금까지 성아연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내심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지 궁금했던 고은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화면을 터치했다.“은서야, 너 지금 어디야?”전화를 받자마자 성아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잠

  • 어게인, 비긴   제27화

    고은서는 웃으며 답했다.“방금 복싱 클래스 끊었어요.”주인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살다 보니 이런 우연도 있네요. 저 복싱 클래스 코치예요.”참 신기한 인연이다.다음번 만남은 서로 거래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다니.“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고은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볼일 봐요. 전 이만 가볼게요.”“잠깐만요.”주인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하실 말씀이라도?”고은서의 질문에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지난번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이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라도 한 잔 사드리고 싶은데...”고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업무에 방해되면 안 되니까 다음번에 사줘요.”“괜찮아요. 안 그래도 퇴근하려던 참이었어요.”주인혁은 다급하게 말했다.수줍어하며 소년미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풋풋한 대학생 같았다.순간 연하남을 덕질하는 누나 팬들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됐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을게요.”“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올게요. 잠깐만 기다려줘요.”주인혁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었고 고은서가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그가 나왔다.“타요.”그녀의 손짓에 주인혁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운전 실력이 별로니까 마음 준비 단단히 해요.”“괜찮아요. 믿을게요.”진지한 그의 표정과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니 왠지 모를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다.“어디로 갈까요?”주인혁이 답했다.“전 다 괜찮으니까 마음껏 선택해요.”고은서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버블티는 어때요??”버블티를 좋아했던 학창 시절의 고은서는 늘 곽승재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하여 대학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버블티를 사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곽승재는 불량식품에 관심 없다며 매몰차게 내쳤다.“이 버블티에는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첨

  • 어게인, 비긴   제28화

    성아연이 보내온 카톡인데 사진과 동영상, 음성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은서는 사진부터 보았고 그곳은 백유미가 사는 곳의 아래층이었다.동영상을 보고 싶었지만, 길이가 꽤 되어 어쩔 수 없이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은서야, 불여우 혼내주러 왔어. 난 네가 서러움을 받으면서 사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타로 버블티 나왔어요.”“고마워요.”고은서는 음성 메시지를 듣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죄송한데 급한 일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다소 냉랭한 그녀의 모습에 주인혁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예의 바르게 손을 흔들었다.“나중에 복싱장에서 봬요.”“좋아요.”버블티 가게에서 나온 고은서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동영상을 확인했다.영상 속의 성아연은 백유미의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곧이어 곽승재의 모습이 보였고, 분노를 참지 못한 성아연은 남의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는 백유미에게 불륜녀라며 욕설을 퍼부었다.백유미는 당황한 듯 몸 둘 바를 몰랐다.“아연 씨, 저는 승재가 우리 아빠를 도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식사 대접하는 것뿐이에요.”“그 말을 누가 믿죠? 이봐요, 경고하는데 곽승재 씨는 은서 남편이에요. 승재 씨랑 알고 지낸 지 오래되어서 특별한 사이가 된 것마냥 착각하고 있나 본데 정신 차려요. 당신은 도우미의 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승재 씨 만날 자격 없어요.”“아연 씨, 도가 좀 지나치시네요. 이건 주택 침입 아닌가요?”곽승재가 싸늘하게 말했다.“전 은서를 위해서 이 일을 바로잡고 싶은 것뿐이에요.”성아연은 두려움 없이 할말을 이어갔다.“은서는 승재 씨가 집에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요. 바쁜 줄 알았는데 여기서 불륜녀랑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아연 씨,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악!”백유미가 변명하기도 전에 성아연은 힘껏 그녀를 밀쳤다.“역겨우니까 연기 그만하고 저리 꺼져요.”뒤로 밀려난 백유미가 넘어지려던 찰나 때마침 곽승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부축했다.

  • 어게인, 비긴   제29화

    “무슨 말 하려는지 아니까 서재로 가자. 내가 다 설명할게.”곽승재는 그녀를 힐끗 보고선 긴 다리로 서재를 향해 걸어갔고 고은서는 그 뒤를 따랐다.서재 소파에 앉은 그는 넥타이를 풀며 차갑게 물었다.“뭘 어떻게 설명할 건데?”고은서는 방금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두 개를 건네주었다.“두 장 전부 이혼협의서야. 하나는 내가 빈털터리로 집을 나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200억의 위자료는 주는 거야. 사인은 둘 다 했으니까 고민해보고 결정해도 좋아.”곽승재는 고개를 들었다.“200억?”이윤을 따지는 사업가로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200억이라는 금액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응.”고은서는 말을 이었다.“전에 20억 준다고 했지? 생각해 봤는데 너무 적은 것 같아. 정확히 따지자면 잘못은 당신이 했잖아? 그리고 이 결혼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이 그쪽이니까 200억은 줘야 합리적이지.”처음에는 그 어떤 지체없이 속전속결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곽승재에게 돈을 요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하지만 민시후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200억이 필요했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칠 리 없었던 고은서는 위자료를 빌미로 돈을 받아낼 계획이었고 그 돈으로 계약이 성사된다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이 말을 들은 곽승재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이 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고은서가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의 결혼이 내 강요로 이루어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당신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혼소송 하면 위자료가 무조건 200억 넘을 거야.”고은서는 차근차근 모든 말을 내뱉었다.“200억의 위자료를 주는 순간 당신은 자유의 몸이고 당당하게 모든 여자를 만날 수 있어. 그러면 절대 오늘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일석이조지?”곽승재는 비웃으며 말했다.“말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네.”고은서는 시종일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어게인, 비긴   제30화

    고은서는 그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결정했어? 어디에 사인할 거야?”“혼자서 결정하기에는 너무 어려운데?”곽승재는 테이블 위에 놓인 계약서를 손에 들더니 여유롭고 느긋하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조언을 해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이혼협의서를 들고 찾아뵈려고.”“결정 안 해도 돼.”고은서는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한푼도 안 가지고 이 집에서 나갈게.”곽승재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잘못은 내가 했잖아. 이혼소송 하면 200억보다 훨씬 더 많은 위자료를 받을 거야. 할아버지는 네가 손해 보는 걸 안타까워하시겠지?”개자식, 방금 했던 똑같은 말로 그녀의 말문을 막아버렸다.고은서는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곽승재의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하여 울분이 치밀어 올랐던 고은서는 소파 위로 올라서더니 그를 내려다보며 버럭 화를 냈다.“미쳤어? 이혼은 우리 둘 사이의 문제인데 왜 할아버지까지 귀찮게 만들어.”고은서를 올려다보는 처지가 됐음에도 그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네가 정말로 이혼을 원하는 거면 숨길 필요가 없잖아.”“그...”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혈압을 앓고 있는 노인은 큰 자극을 받아서는 안 된다.지난번에 얼핏 이혼 얘기를 꺼냈는데 어찌나 걱정하던지 쓰러지는 건 아닌가 싶었다. 만약 이혼협의서를 가지고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그러니 고은서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 적당한 때를 찾아 할아버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이었고 혼자서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겸허히 잘못을 인정하고 애교부리면 화가 금방 풀리지 않을까?곽성재는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힌 고은서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봤다.“설마 이혼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끌고 싶은 거야? 너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난 이혼하고 싶어.”곽승재는 비웃었다.“결혼에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이 관계를

  • 어게인, 비긴   제31화

    곽승재는 소파에 서 있는 고은서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 이혼을 원한다면 성의를 보여!”그 말과 함께 그는 이혼 서류를 내려놓고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지난번 홧김에 이혼을 강행하지 않은 탓에 곽승재는 그녀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고 일은 점점 더 번거로워졌다.고은서는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내려와 합의서를 들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고은서, 허구한 날 말썽 좀 피우지 마. 매번 응석 받아줄 정도로 내가 인내심이 크지 않아.”곽승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그 말은 백유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를 돌아오게 하려고 자신이 벌인 짓이란 뜻인가?미친!“당신이 인내심이 있든 없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고은서가 도발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전까지 난 하루도 가만있지 않고 당신 후회하게 만들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곽승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든 채 자리를 떠났다!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김이 빠졌다.망할 곽승재, 한 번 더 믿어주면 어디가 덧나나.속에 꽉 찬 불만을 털어놓을 곳이 없던 고은서는 박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니까 곽승재는 양가 어른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혼 서류에 사인하겠단 거야?”불만 가득 털어놓는 그녀의 말에 박지연은 의아했다.“대체 왜? 네 말처럼 그 정도로 널 미워하면 아무리 네가 장난하는 거라도 흔쾌히 사인을 할 텐데?”“내 말이, 머리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고은서가 씩씩거렸다.“은서야, 혹시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 박지연이 은근한 말투로 묻자 고은서가 되물었다.“무슨 가능성?”“곽승재가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 게 아니니까 지금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거지!”“그럴 리가!”고은서는 조금도 믿지 않고 박지연에게 지난번에 곽승재가 화를 내며 자신을 충분히 괴롭히겠다고 한 말을 전했다.“내가 자꾸 이혼 얘기를 꺼내는 게 못마땅해서 괴롭히는 거야. 그래, 그런 거야.”고은서는 문득 곽승재같이 오만하고 건방진

  • 어게인, 비긴   제32화

    L국을 언급하자 시간을 세어보던 고은서는 무언가 떠올랐다.“지연아, 너 휴가 낼 수 있잖아. 왜 온 선생님과 같이 안 갔어?”“나 시간 없어. 시댁 가정부도 일 있다고 휴가 내서 내가 매일 가서 청소하고 밥도 해주고 밤에는 어머님과 같이 운동도 해야 해.”“가정부가 휴가를 냈으면 임시 가정부 구하면 되지. 넌 L국에 가서 온 선생님 만나.”고은서가 말했다.“결혼할 때 신혼여행도 못 갔잖아. 지금이 그걸 만회할 좋은 기회야.”박지연은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역시나 거절했다.“됐어, 비자도 만료됐는데 다음에 가지 뭐.”“비자는 갱신하면 되고 정 안 되면 여행사에 신청해서 투어로 가면 되잖아. 좋은 기회인데, 온 선생님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박지연은 곧바로 마음이 동했다.“그럼 해볼까?”“당장 해!” 고은서가 재촉하자 박지연은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평소에는 나랑 남편에 대해 거의 물어보지 않더니 오늘 갑자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고은서는 차분하게 말했다.“내 결혼생활은 실패했으니까 절친한 친구라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게 잘못됐어?”“...”좀처럼 감정적으로 구는 고은서가 아니었지만 박지연은 그래도 설득당했다.“네 말이 맞아, 비자 갱신해야겠어.”“그래.”전화를 끊으며 고은서는 살짝 안도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전생에 온 의사는 L국에 출장을 갔을 때 첫사랑을 만났고, 이후 그 여자가 온 이사의 병원으로 전근해 오며 박지연과 온 이사의 결혼을 파탄 내는 이유가 되었다.이번에 박지연이 해외로 가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바꾸길 바랐다.알려줄 건 알려주고 욕도 실컷 한 후 고은서는 계속해서 투자계획서를 다듬었다.그녀는 빨리 마무리해서 민시후에게 넘기고 싶었다.데이터 분석은 지루했지만 데이터를 통해 기업의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보람찬 일이었다.또 한 번의 밤샘 작업 끝에 고은서는 마침내 계획서를 완성했다.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하늘은 이미 하얗게 물들어 있었

최신 챕터

  • 어게인, 비긴   제1039화

    고은서와 곽승재는 동시에 곽승연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주 긴장된 상태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부모님의 싸움 현장을 겪은 곽승연은 아직도 긴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그도 눈치 있게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녀는 곽승연 곁으로 다가가 웃어 보이며 그녀를 위안했다.“승연아, 우린 괜찮아.”“정말이에요?”곽승연이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곽승재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언니한테 장난 좀 친 것뿐이야.”곽승연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고은서 따라 부엌을 나왔다.“언니, 아까 오빠랑 뽀뽀 유희를 한 거예요?”곽승연이 갑자기 천진한 목소리로 물음을 제기했다.“...”고은서는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러니까 아까 곽승재가 나한테 키스하는 모습을 봤단 말이지? 곽승재는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전엔 화내며 가더니만 왜 갑자기 또 나한테 키스하고 난리야.’고은서는 이내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인했다.“승연이가 잘못 본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곽승연은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은서가 부끄러워서 답을 피할 뿐 절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고은서가 곽승연을 욕실로 들여보낸 뒤 곽승재도 부엌에서 나왔다.옷이 덜 마른 탓에 그는 옷소매를 위로 거두면서 굵은 팔뚝을 드러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어. 승연이는 내가 돌볼게.”“승연이 잘 부탁해.”곽승재는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 남기고는 캐리어를 들고 떠났다.고은서는 부엌을 힐끗 들여다보았는데 그릇은 이미 다 씻겨 있었지만 싱크대와 바닥은 물과 거품으로 가득했다.‘아줌마가 보면 곽승재 설거지했다고 감동할지 아니면 이 아수라장이 된 부엌을 보고 환장할지 은근히 기대되네.’...이튿날, 고은서가 눈을 떴을 때 곽승연은 이미 깨어 있었다.어제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했다.“언니,

  • 어게인, 비긴   제1038화

    면을 먹은 후 곽승연은 방금전보다 상태가 훨씬 나아진 듯했다.고은서는 그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보면서 화젯거리를 찾았다.단 한 번도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던 곽승재는 그릇을 거두더니 자연스레 설거지까지 해놓을 생각이었다.쨍그랑!고은서와 곽승연이 한창 재미나게 패드를 보고 있을 때 부엌에서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곽승연한테 소파에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한 뒤 부엌으로 걸어갔다.아니나 다를까, 그릇 조각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데다가 세제 덮개는 열려 있었고 싱크대와 곽승재의 손은 거품투성이였다.“세제를 물로 쓰는 거야?”곽승재는 평소에 당당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던 모습과 달리 약간 주춤하더니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처음 해보는 거라서 많이 따랐나 봐.”“더 따르지 그랬어? 그럼 안에 들어가서 수영해도 될 텐데.”“...”곽승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 작은 구멍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 딱 봐도 세제를 짜는 데 쓰이는 거잖아.”고은서는 덮개를 들고 곽승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부엌에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곽승재는 생활 지식이 결핍했던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땅에 있는 그릇 조각들을 주우려고 할 때 고은서가 황급히 제지했다.“잠시만! 빗자루로 쓸면 돼. 손으로 줍다가 상할 수도 있으니까. 또 손을 다쳤다고 이런저런 요구를 제기하면 그땐 정말 쫓아낼 거야.”곽승재는 반박하지 않고 빗자루를 들고 평소에 사인만 하던 손으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땅을 쓸기 시작했다.“당신이 청소할 줄 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지.”그 모습을 본 고은서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육현석은 각양각색의 음식을 다 할 줄 알던데 당신은 왜 이런 거야? 세제도 쓸 줄 모르고 아무리 집안 배경이 좋고 잘생겼다고 한들 이러고 누가 당신한테 시집을 가겠어.”고은서는 투덜거리면서 곽승재 손에 있는 빗자루를 빼앗으려 했다.그러나 곽승재가 그

  • 어게인, 비긴   제1037화

    “오빠요.”곽승연이 답했다.‘아마 어머니한테서 승연이가 내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겠지.’고은서는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얼른 손 씻고 밥 먹자.”“네.”곽승연은 손 씻으러 가고 고은서는 물을 따르러 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고은서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오빠일 거예요. 방금 언니 집에 있다고 했는데 금방 오겠다고 했어요.”손 씻고 나온 곽승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언니, 나 혹시 뭐 잘못했어요?”곽승연은 두 사람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전에 만날 때마다 서로 모순이 생겨 다툰 것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고은서가 자신을 탓하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곽승연의 생각을 알아차린 고은서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아니. 승연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 오빠도 승연이가 걱정되어서 보러 온 걸 거야. 먼저 먹고 있어. 언니가 문 열게.”“네.”곽승연은 이내 식탁 앞에 앉고 고은서는 문을 열어주러 갔다.아니나 다를까 곽승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금방 출장을 마치고 온 그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외투를 팔에 걸치고 있었는데 약간 피곤해 보였다.“승연이 여기 있어?”“응. 들어와.”고은서는 이내 들어오라고 옆으로 비켜주면서 답했다.곽승연은 그를 보자마자 오빠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고은서한테로 돌리면서 기뻐하며 말했다.“언니, 쫄면 너무 맛있어요. 저 이렇게 맛있는 쫄면은 처음이에요.”“언니가 한 게 맛있는 게 아니라 승연이 네가 너무 배고파서 뭐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는 거야.”음식 냄새를 맡은 곽승재도 저도 모르게 배가 고파 났다.그러나 식탁 위에 놓인 면을 보면서 차마 자기도 먹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면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곽승재를 보면서 말했다.“마침 한 그릇 남았는데 배고프면 먹어.”원래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이혼한 이후로 고은서가 해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전미자의 부탁으로 그를 보

  • 어게인, 비긴   제1036화

    호전된 곽승연이 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았던 서연정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알겠어. 울지 마. 그럼 오늘은 돌아가지 말고 언니 집에 있자.”고은서는 곽승연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그녀를 달랬다.“그래그래. 오늘은 언니랑 같이 있자.”곽승연은 그제야 서서히 진정되는 듯했다.“은서야, 그럼 승연이를 부탁할게.”서연정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서연정이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위안이 될 것 같지 않았다.“괜찮아요, 어머니. 승연이는 제가 잘 돌볼게요.”서연정은 곽승연을 안고 한참 동안 달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뒤돌아 떠났다.서연정이 배웅해 준 후 고은서는 곽승연 곁에 다시 앉았다.그녀는 잠이 깼는지 혼자 소파에 앉아 인형을 안고 멍때리고 있었다.“승연아, 배 안 고파? 언니가 밥해줄까?”“배 안 고파요.”곽승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러나 이내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뭐 먹고 싶어? 만두? 면? 아니면 죽?”“다 돼요.”곽승연은 어색한지 얼굴이 빨개졌다.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그럼 언니가 먹을 것 좀 해올게. 언니 집에서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돌아봐.”곽승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서는 냉장고에서 여러 가지 채소와 계란을 꺼내 쫄면과 스크램블을 요리할 생각이었다.전에 곽승재의 관심을 얻기 위해 요리를 배우면서 시간 날 때마다 밥상을 푸짐하게 차리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었다.하지만 곽승재는 무심하게도 거의 집에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가끔 그녀가 해준 밥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칭찬이라곤 해주지 않았다.그러나 예전의 고은서는 그가 자신이 해주는 밥을 먹어주기만 해도 흥분해 하며 좋아했다.‘전에는 정말 왜 그랬지? 곽승재가 없으면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했는지 몰라. 그런

  • 어게인, 비긴   제1035화

    서로 다투던 광경이 떠올랐는지 평소엔 온화하고 담담해 보이던 서연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승연이는 우리가 밥 먹을 때부터 정원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아마 애 아빠가 상을 엎는 소리가 하도 커서 놀랐던 것 같아.”서연정은 말하면서 곽승연을 바라보았다.“내가 정신 차리고 승연을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사라진 후였고.”하인들도 곽승연이 어디 갔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은 탓에 나중에 CCTV 동영상을 돌려보고서야 그녀가 뒷문으로 달려 나간 걸 발견했다고 한다.그리고 하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찾아보았지만 곽승연은 보이지 않았고 고은서가 전화했을 땐 마침 신고하려던 참이었다고 설명을 보탰다.그녀는 서연정이 얼마나 다급해하고 절망스러워했는지 상상이 갔다.“저도 오늘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고 또 마침 도우미 아줌마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집이 비어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승연이를 더 빨리 만나서 어머니한테 연락드릴 수 있었을 텐데.”“아니야,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급한 마음에 승연이 해성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너 아니면 승재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서연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고은서는 피곤해 보이는 서연정을 보며 물었다.“어머니, 곽 회장님과 사이가 그토록 좋지 않은데 왜 이혼하고 승연이를 혼자 데리고 살지 않는 건가요? 아무리 어르신들의 약속을 대신 지켜드리기 위해 이혼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할머니께선 어머니가 행복하게 사는 게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혼하신다고 해도 절대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자기보다 어른인 데다가 예전엔 시어머니였던 사람을 이혼하라고 달래는 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서연정이 이미 벼랑 끝에 맞닿은 결혼생활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서연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혼하든 말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나마 이혼하지 않으면 GS그룹

  • 어게인, 비긴   제1034화

    “몰라요. 엄마 아빠가 싸워서 무서워서 오빠랑 언니 찾으러 온 건데 다 집에 없었어요...”곽승연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고은서는 아무 말도 없이 혼자 달아나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냐고 그녀를 꾸짖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시간은 저녁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서연정은 아마 곽승연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미친 듯이 찾고 있을 것이다.고은서가 전화를 걸자마자 서연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승연이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아. 혹시 너한테 간 거니?”“어머니, 먼저 진정하세요. 승연이는 제가 데리고 있어요.”고은서가 그녀를 위안했다.서연정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고은서는 전화를 끊고 곽승연 곁에 앉아 물었다.“승연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차엔 어떻게 오른 거야?”곽승연은 인형 호주머니에 넣어둔 용돈으로 택시를 타고 온 거라고 사실대로 답했다.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교육했다.“다음부턴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언니한테 전화해. 이렇게 함부로 뛰쳐나왔다가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곽승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혼자 밖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은 탓인지 눈에 띄게 피곤해 보였고 아직 조금 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고은서는 계속해 비난하는 대신 그녀를 꼭 껴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덕분에 긴장이 풀린 곽승연은 스르르 잠에 들었다.반 시간 후, 밖에서 서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눈가가 빨개진 서연정은 소파에 누워 잠든 곽승연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녀가 다친 곳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곽승연이 괜찮다는 걸 확인한 서연정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옆에 있던 고은서는 그녀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어머니, 승연이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서연정은 종이로 눈물을 닦으면서 연시 고맙다고 인사했다.“은서야, 정말 고마워.”고은서는 서연정

  • 어게인, 비긴   제1033화

    송민준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답했다.“딱히 무서운 건 아니에요. 그저 별로 안 친한 사람이랑 함께 걷는 게 어색해서요.”“은서 씨,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제가 낯설게 느껴지나요?”송민준이 웃으면서 물었다.그는 전에도 비슷한 물음을 제기하면서 고은서를 싫어했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비록 항상 온화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지만 차마 민시후처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죄송해요.”다행히 송민준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사과할 필요 없어요. 따지고 보면 제 탓이죠. 나중에 민아한테 은서 씨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을 잘 물어보고 배워야겠네요.”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다.“그보다 요즘 곽 대표님이 전에 농장에서 은서 씨랑 여시은 씨가 물에 빠진 일에 관해 재조사하고 있다던데요.”‘확실히 재조사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는데 송민준은 또 어떻게 안 거지?’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송민준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저도 현장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알아봤더니 곽 대표님께서 재조사하고 있더군요.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되는데 왜 갑자기 재조사하게 된 거죠? 그 후로 무슨 다른 일이 더 있었나요?”고은서는 부인하지 않았다.“여 대표님께서 제가 여시은 씨를 밀었다고 오해하고 계시잖아요. 곽승재는 그저 제가 아무 죄도 없다는 걸 증명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예요.”“당시 오해라고 현장에서 이미 다 설명하고 끝난 일이 아닌가요?”송민준한테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은서는 자신을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모호한 답을 내뱉었다.“또 새로운 오해가 생겨서야.”송민준도 눈치 있게 더는 묻지 않았다.끝내 고은서는 송민준의 차에 앉아 회사로 돌아갔다.주차장에서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면서 송민준한테 인사하고는

  • 어게인, 비긴   제1032화

    “이런 일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여씨 가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문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 우린 그냥 자기 일에 몰두하면 돼.”고은서가 송민아를 위안했다.“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여시은은 왜 강성에 있는 그 큰 회사를 내버려두고 해성에서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거야? 경쟁자가 하나 더 많아졌잖아.”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고은서도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나를 노리고 이러는 건가? 그런데 곽승재가 아직 나한테 미련이 남았다는 이유로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다고?’“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실력도 만만치 않잖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송민아가 도리어 고은서를 위안했다.고은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서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송민아는 이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고은서는 이 기회에 쇼핑백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이거 네 오빠한테 대신 전해줘. 아줌마가 며칠 전에 세탁소에서 가져왔는데 계속 잊어버리고 미처 가져다주지 못했어.”“우리 오빠 외투가 왜 너한테 있는 거야?”송민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고은서는 이내 그녀의 이마를 콕 찌르면서 답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날 바에서 있었던 일로 경찰서로 갔었잖아. 그런데 나오는 길에 날씨가 하도 추워서 나한테 빌려준 거야.”송민아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두 사람이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지. 옷은 네가 직접 돌려줘. 요즘 들어 바쁜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니까.”“그냥 네가 가지고 있다가 시간 될 때 나 대신 돌려줘.”“고은서, 우리 오빠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거야?”“맞아.”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날 좋아하는 건 둘째 치고 나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거든. 난 상사만 되고 싶을 뿐 네 형수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일도 없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거야.”“...”송민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외투에 관한 소식

  • 어게인, 비긴   제1031화

    박지연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아무리 곽승재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러는 건 무의미한 행위잖아. 널 괴롭혔다고 곽승재가 여시은을 좋아하게 될 것도 아닌데.”고은서도 여시은의 속셈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날 화풀이 상대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약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괴롭힘당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위선적인가 하면 또 진실한 면도 있단 말이지. 이젠 내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차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니까.”“미리 준비해 둔 녹음 필에는 별로 쓸만한 내용이 녹음된 거 없어?”“없어.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나를 경계하더라고.”“듣고 나니까 여시은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운데.”박지연은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어루만졌다.“생긴 건 천진난만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큰 부잣집 아가씨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암흑 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여시은은 처음부터 오냐오냐하게 큰 순진한 여자애의 모습으로 고은서에게 다가갔다.사실 전에 민시후가 여씨 가문과 같은 부잣집에서 자란 아가씨치고는 여시은이 너무 수상할 정도로 천진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주 지당한 말이었다.민시후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고 여시은 또한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은서야, 전에 절에 가서 보살님한테 빌 때 너 다른 생각한 거 아니야? 간절하게 빌었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런 사람들이 계속 네 주변에 꼬이는 거야?”박지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아마 내가 필연코 넘어야 할 고비인가 봐. 넘고 나면 내 인생도 조금이나마 편해지려는지.”고은서도 따라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너 고은서 맞아? 왜 갑자기 인생의 의미를 다 꿰뚫어 보기라도 노인처럼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박지연이 그녀를 힐끔 보면서 장난삼아 물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곽승재는 며칠 동안 라이트문에 나타나지 않았고 고은서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다.반면 마재경과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심지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