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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Author: 류한나
곽승재는 고은서의 찡그린 미간을 보고 바로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주민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변에 약국이 있는지 알아보고 사람을 시켜서 위약과 소화제를 좀 사 오세요.”

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그녀는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가끔 위병을 앓곤 했다.

그날은 곽승재가 집에 있는 저녁이었다. 고은서가 곽승재에게 우유를 가져다줄 때 위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우유도 하마터면 쏟을 뻔했지만, 곽승재는 그녀의 상태를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고 심지어 냉정한 얼굴로 나가라고 했었다.

그러나 방금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곽승재는 이미 자신이 불편해하는 것을 눈치챘고 알아서 사람을 시켜 약을 사 오라 했다.

역시 남자는 세심함을 배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세심하지 못한 것을 핑계로 삼는 것뿐이었다.

고은서도 곽승재의 변화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확실히 전생보다 고은서를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이혼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지만, 곽승재를 집요하게 미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번 생에 곽승재는 백유미가 자신을 함부로 상대하게 놔두지 않았고, 자기 일에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말이 없어? 위가 많이 불편해? 병원 갈까?”

곽승재는 고은서의 곁에 다가가서 물었다.

고은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말을 마치고 고은서는 호텔에서 걸어 나오는 주민기를 보았다. 주민기는 외투를 걸치고 손에 차 키를 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은서를 위해 약 사러 가는 길인 것 같았다.

“실장님.”

고은서는 주민기를 불러 세웠다.

주민기는 고은서를 보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제 아침, 주민기가 곽승재에게 일을 보고할 때, 곽승재는 갑자기 그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이에 놀란 주민기는 자신이 GS 그룹에 입사해서부터의 모든 일을 돌이켜보았지만, 여전히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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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225화

    주민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차 키를 곽승재의 손에 밀어 넣고 부리나케 도망갔다.고은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곽승재에게 물었다.“당신 도대체 실장님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실장님이 날 보기만 하면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도망가?”‘평소에 늘 승재의 주변을 따라다니던 민기 씨가 오늘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 같았어.’이 말을 듣자 곽승재는 기분이 잡쳐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실장님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 약 사겠다며? 가자.”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곽승재가 그 영문을 모른다는 말은 귀신도 안 믿을 소리였다.두 사람은 차를 향했다.고은서가 차에 올라타서 안전 벨트를 매자마자 안색이 창백한 백유미가 같은 주차장에 있는 것을 보았고 백유미도 두 사람을 보았다.“승재야, 은서 씨.”백유미는 머리를 짚고 허약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유미야, 너 어디 가려고?”곽승재가 묻자 백유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마의 상처가 염증 나서 많이 아파. 근데 약을 챙겨오는 걸 깜빡해서 일단 약을 좀 사 오려고 해.”곽승재가 말했다.“마침 우리도 나가려던 참이었어. 필요한 약이 있으면 나에게 보내줘. 내가 같이 사 올게.”백유미는 아픔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게. 나 혼자서도 약 살 수 있어.”백유미가 아픔을 끙끙 참는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유미 씨의 상황이 아주 심각한 것 같은데 승재 씨가 직접 병원에 데려다줘. 난 혼자 택시 잡으면 돼.”이렇게 말하면서 고은서는 안전벨트를 풀었다.곽승재는 손을 내밀어 고은서를 붙잡으며 말했다.“기다려 봐.”백유미도 얼른 사과했다.“은서 씨, 화내지 말아요. 저는...”“불쌍한 척 그만 좀 해요!”고은서는 백유미를 향해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 왜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마침 유미 씨가 있는 거죠?”백유미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가볍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 하고는 재빨리 자기 차에 가서 차

  • 어게인, 비긴   제226화

    “길 안 보고 다닐래?”곽승재가 화를 내며 말했다.방금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한 고은서는 깜짝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나 왜 이래? 왜 갑자기 승재한테 화를 낸 거지? 게다가 그렇게 시큰둥한 말을 하다니...’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에 세뇌당한 것만 같았다. 곽승재가 그녀에게 잘해주고 이혼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또 내심 희망을 품기 시작한 것이었다.고은서는 두려웠다.그녀는 곽승재의 꾸지람을 무시하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쇼핑몰에 안 가고 단팥빵을 파는 가게를 찾아서 빵만 사면 돼.”곽승재는 고은서가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면서 화낼 줄 알았다. 그러나 고은서는 화내지 않았을뿐더러 많이 침착해 보였다.곽승재는 당연히 고은서가 생떼를 부리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바로 얘기하는 지금의 반응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예전의 그녀는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서 있어 전혀 소통할 수 없었다.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탔고 곽승재는 손이 가는 대로 약봉지를 콘솔에 올려놓았다.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단팥빵을 파는 노포를 찾아갔다.가게는 장사가 잘되는지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고은서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를 내리려 할 때 곽승재는 그녀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당신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내려가서 사 올 게.”이 말을 듣고 고은서는 안전벨트를 풀던 동작을 멈추었다. 곽승재가 차에서 내린 후 고은서는 속이 계속 불편해서 약 봉투를 열어 소화제를 찾아 먹었다.그러고 나서 고은서는 목을 축이려고 차 안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마셨다.그러나 물병을 딸 때 힘을 잘 조절하지 못해 안장과 옷에 물을 많이 쏟았다. 고은서는 얼른 휴지를 뽑아 물기를 닦았고 그러다가 실수로 곽승재가 백유미에게 사준 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처방 약은 위생을 고려하여 모두 작은 투명 봉지에 따로 담겨있었고 약품 명칭과 용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고은서는 약 봉투를 들어 대충 물이 젖지 않은

  • 어게인, 비긴   제227화

    곽승재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회사 사람들이 다 우리가 금실인 줄 아는데 각방을 쓴다는 게 말이 돼?”‘이혼하기로 약속한 날짜가 일주일밖에 안 남아 나중에라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다 알게 될 텐데.’고은서는 곽승재가 또 자신이 삐진 거로 생각할까 봐 그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비아냥거렸다.“당신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줄 여자가 필요한 거라면 그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어. 굳이 나에게서 괴로움을 살 필요 없잖아.”말이 너무 날카로워서인지 곽승재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점심때는 네가 발이 미끄러워서 내 품에 안긴 거잖아. 나도 남자고 스님이 아닌 이상 네가 그렇게 적게 입고 나에게 바짝 붙어있는데 어떻게 생리적 반응이 안 일어나겠어?”“...”역시 곽승재다운 대답이었다.점심때는 확실히 고은서가 부주의로 발이 미끄러져서 곽승재의 품속에 안긴 것이었다.고은서는 곽승재와 꼬치꼬치 따지기 귀찮아서, 그가 책상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둔 채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으며 또 스프레이로 자신의 어깨에 약을 뿌렸다.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고은서는 팩을 붙이고 또 케어를 조금 했다. 이 모든 것은 앞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고은서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 곽승재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보고 있었다.곽승재의 사무가 바쁜 것을 보고 고은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적어도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고은서는 바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다시 화장실에 가서 살짝 젖어 있는 머리를 말리려 했다.막 화장실에 들어설 무렵 고은서는 곽승재의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전화를 받고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곽승재의 말투가 갑자기 엄숙해졌다.“어쩌다가 그런 거야? 나 바로 갈게.”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고은서가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곽승재는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곽승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또 무언가 생각났는지 입술을 오므렸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 어게인, 비긴   제228화

    ‘나도 가야 한다고?’그러나 고은서가 몇 마디 더 묻기도 전에 곽승재는 이미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이때 문밖에서 주민기의 의젓한 목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준비 마치고 밑으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저는 먼저 내려가서 차를 찾겠습니다.”곽승재의 일 처리 속도는 워낙 빨랐다. 고은서가 망설이거나 거절한 시간도 없이 주민기는 이미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잠옷을 벗고 아방한 티로 갈아입은 후 작은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밤중에 무슨 일로 나의 금 같은 수면 시간을 방해하는지 거야.’고은서는 조금 툴툴거리며 차 뒷좌석에 앉았다.가는 길에 주민기는 열심히 차만 몰았다.고은서는 주민기가 자신에게 말 걸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승재가 실장님에게 뭐라고 했어요? 왜 이제 저랑 말도 안 해요?”주민기는 이실직고할 리 없었다.“사모님, 별일 없었습니다. 대표님은 그저 저보고 맡은 바 일을 잘 처리하고 사모님을 잘 모시라고 했습니다.”주민기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고은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약 이십 분이 걸려 주민기는 고은서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사모님, 대표님은 응급실에 계십니다. 응급실까지 안내해 드릴까요?”주민기가 물었다.“괜찮아요. 저 혼자 갈게요.”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이상해서 물었다.“누가 응급실에 실려 간 건데요?”주민기가 대답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모님,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네.”‘누가 응급실에 실려 갔길래 날 부른 거지? 설마 지연이는 아니겠지?’고은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그녀는 다급하게 응급실로 올라갔지만, 응급실 밖 복도에서 곽승재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나이가 쉰 남짓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남자는 배가 조금 나와 있었고 얼굴에는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고은서는 머릿속으로 되새겨보았지만, 이 남자에 대한 인상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딴생각을 제쳐두고 핸드폰을 꺼내 곽승재

  • 어게인, 비긴   제229화

    백승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곽승재가 전화를 받으면서 비상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말했다.“승재야, 유미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았는데 네가 꼭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곽승재는 고은서를 바라보았고 고은서는 무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받아드렸다.고은서는 백승엽의 입에서 일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아들었다.산장에서 백유미는 곽승재가 사다 준 약을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 실려 와 위를 씻었고 백승엽은 고은서가 이 일을 저지른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승재가 부랴부랴 나갔던 건 백유미가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날 병원으로 부른 것도 백유미 때문이고.’“아버지, 오해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승재를 난감하게 하지 말아요.”백유미는 또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유미야, 다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해줄 필요 없어!”백승엽은 마음이 아팠다.“예전부터 이 고은서 씨가 몇 번이고 널 해코지해서 다치게 했던 거 기억 안 나? 저번에 너의 외숙모한테서 듣지 않았더라면, 난 네가 그런 억울함을 당했는지도 몰랐어!”백유미는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요. 별일 아니었어요. 그리고 승재도 은서 씨 대신 사과했고요.”“크게 다치지 않았기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네가 머리를 맞아서 피를 흘렸고 목도 졸려서 파랗게 멍들었잖아. 승재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넌 이미 저 여자 손에 죽었을 거야!”백승엽이 말했다.“이번에 어떻게든 죄를 물어야겠어!”말을 마치고 백승엽은 기세등등하게 고은서를 노려보았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곽승재는 담담하게 말했다.“아저씨, 우리 일단 병실에 가서 얘기해요.”“그래. 승재 말대로 하자.”백승엽은 화를 억누르며 백유미의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고 했다.그러나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는 고은서는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곽승재는 놀라지 않고 그녀를 한눈 쳐다보며 말했다.“같이 병실에 가자.”고은서는 냉소하며 말했다.“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고 날 왜 여기로 부른 건데

  • 어게인, 비긴   제230화

    곽승재가 말했다.“그 구석은 사각지대라 CCTV에 찍히지 않았어.”고은서는 참다못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말은 내가 구석에서 약을 몰래 훔쳐다가 차 안에서 백유미 씨의 약과 바꿔치기 했다는 거야?”곽승재의 대답을 듣지 못한 고은서는 퉁명스럽게 했다.“내가 바꿨다 쳐. 근데 난 백유미 씨가 어떤 약을 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미리 상극 약품을 준비해?”“왜 준비 못 해? 유미는 이마의 상처에 염증이 난 거잖아. 당신이 좀만 머리를 쓰면 소염제를 살 거로 생각하겠지!”백승엽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곽승재를 보며 말했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해?”곽승재가 눈썹을 찡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백승엽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고은서! 네가 그렇게 못돼먹은 사람이잖아! 우리 유미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네가 몇 번씩이나 해치는 거야!”말을 마치고 백승엽은 손을 들어 고은서의 뺨을 때리려 했다. 근데 백승엽이 고은서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곽승재는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아저씨, 흥분하지 마세요.”“내가 흥분하지 않게 생겼어! 나에게 딸이라고는 유미밖에 없어. 게다가 우리 유미가 성격이 얼마나 온순하고 여태껏 누구와 얼굴을 붉힌 적도 없는데 너의 아내가 왜 유미를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고 해치려는 거야! 불쌍한 내 딸, 몸이 아파도 널 방해할까 봐 저절로 응급 전화를 걸어서 병원에 실려 왔어! 그러다가 너무 아프니까 하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한 거고...”백승엽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오늘 밤에 유미에게 문제라도 생겼다면 난 죽은 우리 유미 엄마를 볼 낯짝이 없어...”“아버지, 그만 말하세요.”백유미는 흐느끼며 말했다.“저 지금 별일 없잖아요.”“그건 네가 명이 길어서 그렇지! 의사 선생님의 말씀 못 들었어? 네가 응급실에 제때에 실려 와서 다행이지, 아니면 너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백승엽은 말을 할수록 뒤끝이 두려워서 다시 고은서에게 달려들어 책임을 따졌다.

  • 어게인, 비긴   제231화

    간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말했다.“환자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다시 응급실로 보내서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야 합니다.”곽승재는 백유미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백유미의 입술은 백지장처럼 하얘졌으며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괜찮아. 아버지부터...”간호사는 그녀의 병상을 응급실로 밀고 갔다. 곽승재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백승엽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유미야, 유미야. 너 왜 그래? 너 아빠를 놀라게 하지 마!”백승엽은 비틀거리며 백유미의 병상을 쫓아갔다.곽승재는 백승엽이 다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를 부축하여 같이 앞으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제 자리에 선 채, 손바닥의 아픔이 찌릿찌릿 전해져왔다.그녀의 남편인 사람이, 박지연이 아주 확신하며 말한 이혼하기 아쉬워한다는 곽승재가 지금, 아주 조급하게 백유미를 따라갔다. 심지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더구나 고은서가 아픈지 걱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피 한 방울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고은서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상처를 꾹 누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는 주민기가 주차해놓은 방향으로 가지 않고 병원의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고 떠났다.“아가씨, 어디로 가실 건가요? 괜찮으세요?”기사님은 고은서가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재차 물었다.고은서는 피로 붉게 물든 휴지를 보면서 말했다.“아무 진료소나 가주세요.”기사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뻔했다.‘여기가 병원인데 왜 나오자마자 또 진료소를 가려는 거지?’“병원은 접수 절차를 밟을 게 너무 많아요.”고은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진료소가 더 편해요.”기사님은 고은서의 말을 믿었다.“아가씨가 다행히도 저 같은 현지인을 만나서 여기 부근에 24시간여는 진료소가 있다는 것을 알지, 아니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문을 여는 진료소가 어디 있어요?”“감사합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님이 말한 진료소에 도착했다. 고은서는 기사님에게 만 원을

  • 어게인, 비긴   제232화

    고은서는 애써 미소를 짓고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런 놈은 좀 내버려 둬야 해요. 아내가 다쳤는데도 곁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가 있다니!”여의사는 고은서에게 약을 발라주고는 또 붕대로 그녀의 손바닥을 빙 둘러쌌다.“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시고 제때 약을 발라주세요. 안 그러면 흉터가 져서 보기 흉해요.”“고맙습니다. 알겠어요.”고은서가 비용을 지급할 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여전히 전화를 끊어버리고 곽승재의 카톡을 차단하기까지 했다.예전의 그녀라면 절대 곽승재를 차단하기 아쉬워했을 것이었다. 그때는 생각하기만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하지만 지금, 차단하면 차단했지, 아무렇지도 않았다.어떤 일들은 그저 마음먹기 어려울 뿐이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데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진료소에서 나온 고은서는 바로 택시를 불러 예원 별장으로 갔다.곽승재가 박지연에게 연락해 민폐를 끼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 안에서 그녀는 미리 박지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지연아, 나 어깨가 아픈데 약을 안 챙겨서 먼저 들어가 볼게. 너랑 온 닥터 두 사람 오붓한 시간 보내.]메시지를 남긴 뒤, 고은서는 핸드폰에 반짝이는 전화번호를 보며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저녁에는 길에 차가 적었기에 낮에 올 때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다.대략 한 시간 반 뒤에 고은서는 예원 별장에 도착했다.뜻밖에도 이미숙이 아직 안 자고 있었다.“사모님, 도련님과 같이 단체워크숍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 왜 갑자기 돌아오셨습니까? 조금 전 도련님이 전화해서 사모님을 물어보셨습니다.”고은서는 이미숙에게 길게 설명을 늘어놓을 기분이 아니었다.“놀다가 지쳤어요. 밖에서 자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먼저 돌아왔어요. 아줌마, 저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그 누가 전화를 해도 절대 저를 부르지 마세요.”“네.”이미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고은서는 침실로 걸어 들어가 토끼 모양의 무드 등을 보고는 바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방문을 잠근 뒤, 고은서는 침대에 웅크린 채 조

Pinakabagong kabanata

  • 어게인, 비긴   제1088화

    “곽 대표님은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병뚜껑 열어주는 것조차 꺼릴 만큼?”여시은의 말투에는 약간의 유감과 억지로 짜낸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곽승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시은 씨가 원하는 건 물을 마시는 결과가 아닌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되지, 누가 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왜 중요하지 않아요?”여시은은 눈을 깜박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저는 곽 대표님이 열어준 병의 물만 마시고 싶은데요.”노골적인 애정 공세에 곽승재는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여시은은 전혀 민망한 기색이 없이 여전히 공세를 이어갔다.“솔직히 말할게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집안 어른의 뜻대로 조금씩 알아가면 안 될까요?”곽승재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우리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정략결혼을 반대하세요. 아버지의 일방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죠.”“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재혼 계획이 없습니다.”여시은은 여전히 달콤한 미소를 유지했다.“당장 결혼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만나다가 전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잖아요?”“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시은 씨와 맞지 않아요.”곽승재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는 원래 활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와 결혼한 후 시들어버렸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 저한테서 도망쳤어요. 이혼한 후 그 여자는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됐죠. 그러니 저는 남편으로 자격 미달이에요.”“시은 씨는 여 회장님께서 애지중지하는 따님이고 조건이 우월하니 더 나은 남자를 만나셔야죠.”여시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저는 고은서와 달라요. 고은서는 완전한 사랑을 원했지만 저는 조건이 맞는 파트너면 돼요.”“사랑이 있으면 금상첨화이고 없어도 상관없어요.”그녀는 돌직구를 날렸다.“제가 고은서보다 승재 씨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고은서 만큼 똑똑하거나 유능하지는 않지만, 이게 남자들에게는 장

  • 어게인, 비긴   제1087화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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