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00화

Author: 류한나
박지연의 이름을 들어서인지 온 닥터는 고개를 들어 고은서가 아닌 박지연을 한번 쳐다보았다.

박지연의 눈동자는 순간 초롱초롱해지더니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온닥터는 박지연과 인사하지 않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지나쳐 의사들과 앞으로 걸어갔다.

박지연의 미소는 선명하게 사그라들었다.

고은서는 의아해서 물었다.

“네 남편 왜 너와 인사 안 해? 어젯밤에 클럽 간 것 때문에 화났어?”

박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우리 남편 어젯밤에 수술이 잡혀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내가 나간 걸 모를 거야.”

“그럼 왜 너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데?”

박지연이 말했다.

“오늘, 이 병원에 교류하러 온다고 했어. 주변에 그렇게 많은 동료가 있는데 나랑 인사하면 또 한바탕 자기소개해야 할 거 아니야.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나 보지.”

“널 쭉 이렇게 대했던 거야?”

고은서가 묻자 박지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야. 그 사람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고 날 충분히 존중해줘. 난 이 잘생긴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유유상종이라는 건가...’

사랑에 눈이 먼 고은서 옆에 똑같이 사랑에 눈이 먼 박지연이 있었다.

두 사람이 정원에서 한참 산책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와서 고은서에게 재검사받을 시간이 되었다고 귀띔했다.

병실에 돌아가자 고은서를 찾으러 온 육현석은 박지연을 보더니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지연 씨, 안녕하세요.”

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마의 상처는 괜찮으시죠?”

육현석이 대답했다.

“네. 제가 항상 건강한데 어제는 단순한 사고였어요.”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고,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

“지연아, 현석 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 검사받고 올게.”

“형수님, 형이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회사에 갔어요. 좀 있다가 와서 형수님을 데리고 퇴원할 거예요.”

육현석이 대신 전달했다.

“이것 봐. 승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201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어젯밤에 허리를 다친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거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고은서는 이토록 지루한 문제를 상대하기 귀찮아서 곽승재를 무시하고 병실로 들어갔다.곽승재도 뒤늦게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은서가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곽승재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을 줄이야?곽승재는 자신의 이 행위를 어젯밤에 제대로 휴식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병실 안에서, 박지연과 육현석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은서가 병실에 들어갈 때 두 사람은 마침 카톡을 추가하고 있었다.“검사 다 받았어?”고은서를 보자마자 박지연은 부리나케 그녀를 병실 화장실로 끌고 가서 문까지 잠갔다.“왜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해?”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나지막한 소리로 흥분하며 물었다.“현석 씨한테 들었어. 승재 씨 입술의 상처 네가 물어서 생긴 거라며?”박지연이 묻지 않았더라면 고은서는 이 일을 벌써 잊었을 것이었다.오늘 곽승재의 입술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현석 씨도 참 세심해. 그걸 다 발견하다니.’“사실 나도 어젯밤에 승재 씨의 입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깊이 파고들 겨를이 없었어. 근데 현석 씨도 나와 같은 의문이 들어서 어젯밤 병실에서 승재 씨를 떠봤다고 하더라고.”박지연은 말하면서 감탄을 자아냈다.“너의 목 뒤에 승재 씨가 남긴 키스 자국이 있고, 넌 승재 씨의 입술을 깨물었고. 보아하니 두 사람 엄청 치열하게 사네.”치열하기는 개뿔.고은서는 박지연을 반박하려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내 목 뒤에 키스 자국이 있다는 거, 너 설마 현석 씨한테 말했어?”이 말이 육현석의 귀에 들어갔다면 아마 곽승재의 귀에도 곧 전해질 것이었다.만약 그 키스 자국이 곽승재가 남긴 게 아니었다면, 그에게 빌미 잡힐 게 뻔했다.“가십은 다른 사람이랑 공유해야 제맛이지. 아니면 무슨 재미로 그걸 수집해.”박지연은 당당하게 말했다.“두 사람 서로 안 지 몇 시간이나 되었

  • 어게인, 비긴   제202화

    곽승재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은서의 커다란 두 눈에서 가십거리에 대한 갈망의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을 보더니,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현석이도 알고 있어. 너무 지나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현석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뿐이야.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걔도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게 될 거야.”이 말을 들은 후, 고은서는 의외로 실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현석 씨더러 며칠 더 견지하라고 하면 안 될까?”곽승재는 수상쩍은 눈으로 고은서를 바라보았다.육현석이 며칠 더 견지하다 보면 박지연의 남편이 이 일을 알아차려 긴장감이 생겨 박지연에게 관심을 더 줄지도 모른다.하지만 고은서는 이 사실을 곽승재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이에 고은서는 말했다.“당신과는 제대로 얘기할 수 없어.”“...”기사는 고은서를 예원 별장에 데려다주었다.고은서가 차에서 내리기 전, 곽승재는 담담하게 얘기했다.“저녁에 내가 돌아와서 당신 어깨에 약 발라줄게. 아주머니한테 부탁드리지 마.”어젯밤에 육현석도 한번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고은서는 여전히 거절하였다.“괜찮아. 아줌마한테 부탁하면 돼.”곽승재는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내 허리도 다쳐서 어혈을 풀어줘야 하잖아. 먼저 당신 갖고 연습 좀 해보려고.”이에 고은서는 대답했다.“차라리 당신 입을 꿰매면 우리 두 사람의 상처가 더 빨리 났는데 도움이 될 거야.”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고개도 안 돌리고 가버렸다.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은서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거랑 다르지?’곽승재는 육현석처럼 불쌍해 보이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이 되는 다른 이유를 둘러댔지만, 고은서는 조금도 고맙게 여기지 않았다.‘여자란 참말로 귀찮고 속을 알기 어려운 존재야.’오후, 고은서가 마침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민시후의 메시지를 받았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어.]고은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낚을 수 있겠어?][조급해하지

  • 어게인, 비긴   제203화

    말을 마친 뒤, 고은서가 떠나려고 할 때, 뒤에서 민시후의 사악한 소리가 울렸다.“미끼는 이미 내다 던졌는데 그물을 걷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민시후, 너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때부터 이미 함정을 파 둔 거지?”민시후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서로 원하는 이득을 취하는 거지.”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송민아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처럼, 일어서서 그들한테 다가왔다.“시후 오빠, 저쪽으로 가서 앉아줄 수 있어요? 저 은서 씨랑 단둘이 얘기 좀 하고 싶어요.”이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물었다.“너 은서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경고하는데 네가 은서를 괴롭히면 아무리 네 오빠가 나선다고 해도 난 절대로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송민아의 정교한 얼굴에는 일말의 슬픔이 서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여기에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은서 씨를 괴롭히겠어요.”“아마 해라고 해도 못 할 거야.”민시후는 콧방귀를 뀌고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다정하게 고은서를 보면서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난 저쪽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날 불러.”고은서는 민시후를 한 눈 노려보고는 상대하기도 귀찮았다.민시후가 연신 뒤돌아보며 자리를 뜬 후, 송민아는 크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말했다.“은서 씨, 또 보네요.”송미아의 눈빛은 전보다 많이 굳건해졌다. 마치 무슨 사실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고은서는 도저히 어린 아가씨가 상심하고 슬퍼하는 꼴을 못 봐주겠기에 직설적으로 얘기했다.“민아 씨, 조금 전 민시후가 헛소리한 거예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리고 지난번에 제가 민아 씨한테 거짓말했어요. 민시후는 저를 하나도 안 좋아해요. 오늘도 저는 저 사람의 협박을 받고 온 거예요. 민아 씨가 민시후를 좋아하는 거면 걱정하지 말고 대담하게 추구하세요. 저는 절대로 두 사람 사랑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민아

  • 어게인, 비긴   제204화

    다급하면서 애교가 섞인 ‘여보’라는 두 글자가 귀에 전해질 때, 곽승재는 자기가 전화를 잘못 건 줄 알았다.그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 상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는데 고은서가 맞았다.하지만 요새 고은서는 줄곧 그에게 소외와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 이렇게 갑자기 열정적으로 나오는 건 아마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골칫거리에 엮인 것 같았다.“당신 지금 어디야?”곽승재는 바로 확실하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그는 고은서가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지, 왜 그곳에 갔는지는 묻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내가 데리러 갈게.”전화를 끊은 뒤 고은서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송민아는 너무 귀찮게 굴고 민시후는 뒤통수 때리기 전문이었다.고은서는 그들의 사랑싸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바로 그때 곽승재의 전화가 아주 타이밍 좋게 걸려 온 것이었다.“민아 씨, 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줄 수 없어요.”고은서는 정색하며 말했다.“제가 한 말들은 다 사실이에요. 민시후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를 좋아할 리도 없어요. 민아 씨는 아직 어리고 예쁜 데다가 집안도 꽤 좋아 보이는데 민시후라는 나무에 목을 매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환생하고 난 뒤로부터 고은서는 사람들에게 너무 사랑에 목을 매지 말라고 설득했다.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온종일 남자의 주위만 맴도는 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었다.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하지만 고은서가 좋은 마음으로 건넨 충고는 송민아의 고마움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그녀의 얼굴에는 ‘역시’라는 표정이 역력했다.“은서 씨,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제가 당신의 설교를 들을 필요까지는 없어요.”송민아는 조금 화가 났다.“제가 진심으로 은서 씨한테 가르침을 청하는데 은서 씨는 어떻게 빈말로 저를 대충 얼버무릴 수가 있어요? 제가 말했었잖아요. 저는 시후 오빠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요. 이번에 제가 돌아갔을 때, 오빠 아버님도 명

  • 어게인, 비긴   제205화

    아마도 곽승재는 조금 전 민시후가 고은서를 가로막은 장면을 본 것 같았다.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곽승재와 백유미의 관계는 그들보다 더 친했다.‘승재도 설명을 안 하는데 내가 왜 그에게 설명해야 해?’“출발해 주세요.”고은서가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는 고개를 돌려 곽승재를 보면서 그의 뜻을 기다렸다.곽승재는 눈길을 거두고는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눈짓했다.그러고는 고은서에게 물었다.“당신 또 민시후 만나러 왔어?”“왜 말을 그렇게 시큰거리게 해?”고은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신이 민시후랑 사이가 안 좋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나면 안 돼?”곽승재는 한 소리를 먹었다.“고은서, 당신 나랑 좋은 말로 얘기하면 안 돼?”“미안한데 난 뒤끝이 좀 긴 편이라 당신한테 좋은 말로 못 하겠는 걸 어떡해.”역시 전화에서 들은 그런 애교는 다시 나타날 수 없었다.곽승재는 이 일로 더는 고은서와 싸우지 않았다. 그는 말길을 돌려 물었다.“방금 무슨 일이 있었어? 민시후가 당신을 난처하게 했어?”어찌 됐든 방금 곽승재가 때맞춰 고은서를 곤경에서 구해준 건 사실이었다.고은서는 더는 곽승재에게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하지 않았다.“아주 작은 일이야. 난처하게 군 것까지는 아니야.”민시후가 꿍꿍이를 갖고 고의로 고은서를 불러낸 것은 맞았지만, 그의 손에는 아직 고은서가 원하는 물건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 일로 민시후랑 뒤틀어지면 안 되었다.“당신이 나한테 전화한 건 무슨 일이야?”고은서는 이제 생각이 나서 되물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는 고은서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자기가 캐묻는다고 해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곽승재는 마음이 조금 거북한 것을 뒤로하고 고은서에게 물었다.“당신 어깨는 어때? 조금 전에 힘을 세게 쓰지는 않았지?”“괜찮아.”고은서는 차조차도 몰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목숨을 엄청나게 아꼈기에 의사의 말

  • 어게인, 비긴   제206화

    고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일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버님 앞에선 절대 이혼 얘기를 하지 않을 거야. 이혼 증서가 있어도 되도록 남들 모르게 숨기고 있을게.”곽승재는 고은서의 배려에 전혀 기쁘지 않았다.“지금 저택으로 가.”곽승재는 명령하듯이 말했다.“뭐라는 거야? 내가 안 가겠다고 했잖아.”고은서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아직 이혼한 건 아니니까 내 아내의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겠어?”그가 대답했다.고은서가 아무렇지 않게 민시후를 만나러 오면서도 자신과 함께 저택으로 가는 걸 싫다고 하는 점이 정말 그를 빡치게 했다.고은서는 그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더 이상 그와 따지고 싶지 않았다.호원 저택은 이 구역 황금 지대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3층 고딕 스타일의 건물로 무려 앞뒤로 정원과 잔디 마당이 있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곽승재는 대학 졸업 후 이곳을 떠나 자기 집에서 혼자 살았고, 결혼 후에는 예원 별장을 사들여 자기 새 거처로 정했다.지금 그의 부모님도 저택에 계시지 않고 할머니도 본가에 살고 있어 고은서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그의 부모님의 거처가 너무 궁금해 곽승재에게 한번 부탁한 적이 있다.“오빠, 나랑 함께 저택으로 가지 않을래? 오빠의 아내로서 부모님 댁에 한 번쯤은 인사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어?”곽승재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내 부모님은 국내에 안 계셔. 갈 필요 없어.”고은서는 매우 실망했지만 괜히 그를 불쾌하게 한 것 같아 그 후부터 이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이혼을 앞두고 곽승재가 직접 그녀를 데리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운전사가 차를 대자 대문 앞에 있던 하인이 공손하게 마중했다.“오셨습니까, 도련님.”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금시 초면인 고은서를 보고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그러자 곽승재는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고은서야.”이 이름을 듣자 하인은 곧바로 인

  • 어게인, 비긴   제207화

    곽승재는 고은서의 갑자기 변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그녀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차가운 표정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곽승재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고은서, 꼭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야 해?”고은서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피곤하게 구는 사람은 너겠지? 예전에는 내가 부탁해도 저택에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잖아. 이제는 내가 싫다는 데 왜 이렇게 집착해서 나를 데려오려고 해?”“최근 내가 너에게 관심을 덜 가지니까 소유욕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거야?”“내가 너에게 대한 감정이 소유욕뿐이라고 생각해?”곽승재가 되물었다.“그게 아니면 뭔데?”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만약 내가 예전처럼 매일 네 곁에 붙어있고 너밖에 없었으면 너는 꼭 나의 존재와 감정을 전부 무시했을 거야. 그런 네가 나를 이런 데 데려오겠어?”곽승재는 순간 대답을 잃었다.예전의 고은서는 집착이 너무 심했고 언제나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려 했다.그에게 주목받으려는 수단도 다양했다. 예쁜 화장과 섹시한 옷차림으로 그의 회사에 우유를 주러 오는 것 등은 전부 소소한 것들이었다.백유미가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녀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에게 쉼 없이 고자질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백유미를 협박하고 괴롭혔다. 그래서 백유미는 원 없이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 고은서의 끈질긴 고문과 유치한 행동들을 떠올릴 때마다 곽승재는 머리가 아파 났다. 그래서 그녀를 저택으로 데려오는 것은 물론 집에 함께 돌아가는 것조차 꺼려졌다.“절대 안 그럴 거라는 걸 알아.”고은서는 곽승재의 대답을 대신해서 말해주었다.“넌 나를 멀리하고 싶어 하잖아. 하지만 이제 내가 네 바람대로 멀어지니까 또 그 웃긴 자존심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지?”“난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 하지만 난 네가 갖고 노는 부속품이 아니야. 나도 감정이 있고 나도 아프다고!”고은서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계단을 내

  • 어게인, 비긴   제208화

    “그럼 다행이네요.” 고은서는 이미숙이 준 국을 한 입 마셨다. 그러자 이미숙이 그녀에게 물었다.“사모님, 도련님과 싸우셨나요?” 고은서는 국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싸운 게 아니에요.” 그저 그녀가 일방적으로 화풀이했을 뿐 곽승재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모님, 저는 도련님이 지금 사모님에게 신경을 엄청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이 보양국도 도련님께서 특별히 저더러 끓이게 하신 거거든요. 사모님이 오시면 드시라고 하셨어요.”이미숙이 말했다.말을 들은 고은서는 갑자기 입맛이 떨어졌다. 곽승재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분명 속셈이 전부 자신에게 까발렸는데도 왜 이런 일에 신경을 써주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식사 후, 고은서는 방으로 돌아갔고 민시후가 보낸 문자를 읽었다. “은서 씨, 오늘 너무했네요. 아직 저에게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기억하고 있죠?” ‘이 사람, 오히려 탓하고 있네?’“민 도련님, 할 말 다 했어요?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저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면서, 나중에 밥까지 얻어먹으려고요?”민시후가 문자를 읽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왜요? 싸우려고요?”고은서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를 내요? 목소리에 깜짝 놀랐네.”민시후가 귀를 만지면서 말했다.“혹시 평소에 승재 씨 전화를 받을 때도 이러나요? 그래서 버림받은 거 맞죠?” 고은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답장하지 않기로 했다.“민 도련님, 대체 무슨 일인데요? 혹시 저와 승재 씨 사이가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니죠? 만약 진짜라면 그쪽이 승재 씨를 비밀리에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네요.” “우엑!”민시후가 매우 불쾌해하며 말했다.“나는 너처럼 사람 보는 눈이 구리지 않아!” 두 사람은 티격태격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고은서가 짜증에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민시후는 비로소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인의 약품을 홍보하고 싶다면서요, 내가 초기 계획서를 작성해 놨으니 한 번 확인해 보세요.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837화

    민시후의 의문에 고은서는 솔직하게 답했다.“여시은을 떠볼 기회를 찾고 싶어서.”“뭘 떠보고 싶은데?”고은서가 차분히 설명했다.“예전에 여시은이 나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 해성에 온 지도 꽤 됐는데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보통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예전의 그녀가 곽승재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의 민시후가 그녀에게 그러하듯이 하루라도 빨리 상대를 보고 싶어 했다.하지만 여시은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초조하거나 그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좋아하는 사람에 관하여 얘기할 때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그래서 난 여시은이 곽승재와의 정략 결혼설을 막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일 거로 생각해.”고은서는 차분히 분석했다.“첫째, 여시은이 그 소문을 이용해 좋아하는 남자가 긴장하고 다가오도록 유도하는 것. 둘째는 여시은이 좋아하는 사람이 곽승재일 가능성이야.”처음 서운에서 만났을 때 여시은은 곽승재를 한눈에 알아봤다.여시은이 1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봤다고 했지만 곽승재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그에 반해 여시은은 술자리에서의 일을 너무나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어쩌면 그때부터 곽승재에게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민시후는 고은서의 추측을 부정하는 대신 물었다.“너는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여시은이 처음부터 곽승재를 좋아했다면 나를 경쟁자로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면 여시은이 지금껏 보인 호의도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지. 그리고 어젯밤 일도 여시은이 했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지.”민시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은서야, 너 말이야. 곽승재를 좋아할지도 모르는 여자에 관해 얘기하면서도 무척 덤덤해. 이제 정말 곽승재를 완전히 내려놓은 거야? 그렇다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잖아.”고은서는 민시후를 흘겨보며 말했다.“난 지금 사랑에는 관심이 없어. 돈 버는 데만 집중할

  • 어게인, 비긴   제836화

    민시후는 사무실 문을 닫고 고은서에게 말했다.“어젯밤 우리가 떠난 후 타이어 수리 업체가 현장에 도착했어. 업체 사람들은 예비 타이어로 교체한 후 차를 정비소로 가져갔어. 그런데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네 타이어 단순히 못이나 돌을 밟아서 찢어진 게 아니었어. 누군가 일부러 찔러 손상한 거야. 게다가 꽤 깊이 베였더라.”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어젯밤 그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는 뜻인가?’먼저 그녀의 타이어를 망가뜨리고 두 떠돌이 남성이 꼭 지나칠 쓰레기통에 약을 탄 술과 음식을 배치했다. 고은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약기운이 돌기 시작한 떠돌이들이 딱 맞춰 반응하도록 말이다.‘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해치려고 하는 거지?’“타이어를 망가뜨린 사람 찾을 방법 있을까?”민시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 골목에는 CCTV가 없어. 뒤편은 전부 주택가라서 범인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아.”“여시은 한번 조사해 보는 건 어때?”고은서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비록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어젯밤 여시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민시후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은서야, 우리 정말 통하나 봐. 나도 여시은이 등장이 의심스러워서 사람 시켜 조사하고 있거든.”고은서가 민시후의 말에 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여시은의 이름을 확인한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이게 딱 그런 경우인가?’민시후가 콧방귀를 뀌었다.“대단한 배포네. 밖에서는 곽승재와 곧 정략결혼할 거라는 소문이 퍼졌는데도 너랑은 또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말이야.”사실 고은서도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여시은은 줄곧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해 왔고 심지어 그녀와 곽승재를 이어주려고까지 했다.그러면서 곽승재와의 결혼설은 부정한 적이 없었다.여시은이 정말 원하지 않았다면 소문을 잠재울 방법은 얼마든지

  • 어게인, 비긴   제835화

    고은서뿐만 아니라 송민아와 송민준도 민시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살짝 놀랐다.민시후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고은서에게 붉은 장미 꽃다발을 내밀었다.화려하고 싱싱한 장미를 보고 고은서는 어리둥절해졌다.“이게 뭐야?”민시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나 결심했어. 다시 은서 씨를 쫓아다닐 거야!”“은서 씨도 말했잖아, 어차피 1년 후에도 우리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그럼 굳이 1년을 헛되이 보낼 필요 없잖아!”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자신의 거절이 오히려 민시후를 더 자극할 줄은 몰랐다.그때, 송민준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민아야, 차에 고객이 선물한 체리가 있던데 가져와서 다 같이 나눠 먹자.”송민아는 오빠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송민준은 동생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할까 봐 배려해 준 것이다. 사실 ZY그룹에 있을 때도 민시후는 고은서에게 꽃다발을 준 적이 있었기에 송민아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시후가 과거에 송민아와 약혼했던 사람이라서, 이 자리가 확실히 어색했다.“알겠어.”송민아는 더 말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여전히 장미를 들고 서 있던 민시후는 송민준을 발견하고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뭐야, 송 가주가 왜 또 여기 있는 거지?”송민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민아를 보러 왔다가 마침 은서 씨랑 밖에서 만났어.”민시후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고은서에게 장미를 내밀었다.“장미가 마음에 안 들면 밑에 다른 꽃들도 준비해 놨으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볼래?”고은서는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됐어.”이 꽃 한 다발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과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아 조용히 꽃을 받아들였다.“고마워.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부담스럽게 하지 마.”민시후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좋아하는 여자한테 꽃 선물하는 건 당연한 거야. 익숙해져야지!”그때 송민준이 의미심장한 미

  • 어게인, 비긴   제834화

    민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또 우리 형 들먹이네? 곽승재, 너도 이 수밖에 안 되냐? 설마 나만 쫓아내면 은서 씨가 널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민시후의 말은 곽승재의 정곡을 찔렀고 그는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고은서는 예전처럼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았다.곽승재는 가슴이 답답해졌고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속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 마침 손을 씻고 다가온 고은서는 싸늘한 분위기를 보고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그저 곽승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여기서 안 먹을 거면 아주머니한테 국만 싸달라고 해서 가져가.”곽승재는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으며 대답했다.“먹고 갈 거야.”고은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미숙은 주방에서 빠져나왔고 남은 세 사람은 어색하지 않지만 편안하지도 않은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식사 후, 피곤한 모습의 고은서를 본 민시후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나가기 전에 곽승재까지 데리고 떠났다.다음 날 오전, 고은서는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다.어젯밤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던 두 노숙자의 혈액 검사 결과, 불법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그 약물은 뇌를 자극해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고은서를 덮치려 한 것이었다.문제는 그 약물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였다. 조사 결과, 노숙자들이 먹은 음식과 술에서 검출되었고 누군가 일부러 약을 탄 술과 음식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했다.고은서가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회의실에는 송민아가 있었고 접견실 소파에는 송민준이 앉아 있었다.그날 개업식 이후, 고은서는 송민준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개업식에서 송민준의 정장을 엉망으로 만든 일이 마음에 걸린 고은서는 송민아에게 그가 입고 있던 정장이 얼마였는지 물어봤었다. 그러나 송민아는 단칼에 보상을 거절했다.“겨우 정장 한 벌일 뿐인데 무슨 보상이야! 그럴 필요 없어. 우리 오빠도

  • 어게인, 비긴   제833화

    “나 마침 라이트문 아파트에 가려던 참이야.”고은서가 거절할 틈도 없이 곽승재는 낮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주머니가 국을 끓였다고 하더라. 나한테 와서 가져가라고 했어.”원래 기분이 좋지 않던 민시후는 곽승재가 고은서네 가정부를 핑계 삼아 온 것을 보고 더 답답해졌다.“그래도 곽 대표가 데려다줄 필요는 없어!”그리고 이어 고은서를 향해 투정 부렸다.“나도 배고픈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도 뜨끈한 국 한 그릇 먹어도 될까?”민시후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고은서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그렇게 해.”그리하여 곽승재의 복잡한 표정 속에서 고은서는 민시후의 차에 올랐다.민시후의 차가 점점 멀어져갔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주민기는 밤바람 속에서 쓸쓸해 보이는 곽승재를 바라보며 안쓰러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애써 여기까지 찾아왔건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함께 있는 걸 목격하고 말았으니...’곽승재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하아... 대표님의 아내 되찾기 여정은 끝도 없이 험난하구나.’주민기가 속으로 한탄하던 중, 갑자기 곽승재의 시선이 그를 스쳤다.주민기는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대표님, 그래도 가시겠습니까?”곽승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고가 났던 골목에 CCTV 설치해요. 그리고 사모님한테는 실력 좋은 운전사를 붙이도록 하세요.”“네, 대표님.”주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는 그 길로 차를 몰아 고은서의 집에 도착했다.차를 세우고 막 올라가려는데 저쪽에서 막 도착한 곽승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직접 운전해서 온 듯했고, 비서는 곁에 없었다.민시후는 그가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다행히 고은서는 곽승재를 기다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결국 두 사람은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다.집에 들어서자 이미숙은 같이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살짝 놀랐다.“사모님, 곽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셨는데 같이 안 오셨나요?”

  • 어게인, 비긴   제832화

    고은서는 일부러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후 씨,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재벌가 아들이라는 신분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거야?”“시후 씨가 가족 앞에서 나에 대한 감정이 없다고 말하면 아버님과 형도 그냥 이성 친구라 생각하고 괴롭히지 않을 거야.”민시후는 그녀의 농담에 신경 쓰지 않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포기하기를 원하는 거야?”고은서는 다소 수척해진 민시후의 얼굴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사실 시후 씨도 잘 알잖아. 1년이 지나도 가족분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민씨 가문에선 나와 곽 씨 집안의 혼인 관계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만약 고은서가 예전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면 민씨 가문에서도 그걸 덮을 수 있었겠지만 곽승재의 전처라는 신분은 그들에게 너무 민감하고 큰 문제였다.민씨 가문 같은 재벌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면이기에 그녀가 며느리가 되는 걸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고은서는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니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예전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은서 씨, 아직도 내 마음을 믿지 못하는 거야?”민시후의 눈에 어두운 그늘이 깔렸다.“아니, 시후 씨 마음을 알아. 문제는 나야.”고은서가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내가 정말 시후 씨를 사랑했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함께할 수 있었을 거야. 시후 씨 가족의 태도나 외부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말이야. 하지만 내게는 그만큼 시후 씨에 대한 감정이 부족해. 그래서 시후 씨 가족분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다른 외부적인 이유도 나를 주저하게 만들지. 그래서 나는...”민시후가 갑자기 고은서를 끌어안으며 급하게 말했다.“그러지 마, 나에게 기회를 준다고 약속했잖아.”고은서는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살며시 민시후를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는걸 시후 씨도 알 거야. 그러니 그런 고집은 의미가 없어.”민시후는 여전히 고은서를 끌어안고 있었

  • 어게인, 비긴   제831화

    고은서가 계속해서 뒤를 보고 있자 민시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매번 여시은이 나타나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고은서가 민시후를 바라봤다. 설마 그렇겠냐고 말하다 곧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여시은을 만난 건 고양이 쿠아를 구할 때였다. 그 후 서운에서 여시은의 방에서 불이 났고, 이사 파티에서는 민시후가 함정에 빠졌다.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페인트가 뿌려졌고 지난번 골프장에서는 곽현수와 골프를 치던 장우현도 다쳤었다.모든 사건이 여시은이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까?’‘하지만 만약 우연이 아니었다면 여시은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고은서는 더 이상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고객을 만나러 간다며? 나를 병원 앞에 내려주면 돼.”민시후는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깟 고객 때문에 다친 너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 같아 보여?”고은서는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말했다.“중요한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민시후가 고은서를 바라보며 감정을 억누른 채 물었다.“왜 혼자 이런 곳에 왔어? 비서도 기사도 없이?”“새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거야. 그 회사의 작업실이 근처에 있거든.”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운전기사 부를 시간이 없었고 송민아는 다른 프로젝트로 바빠서 이번엔 그냥 혼자 왔어.”민시후는 다시 한번 말없이 고은서를 바라보았다. 다만 조금 더 차분해 보였고 무언가 애써 참는 것처럼 보였다.고은서의 요청대로 민시후는 그녀를 근처의 한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동네 병원은 예약이 필요 없었고 진료도 비교적 간편했다.다행히 고은서의 팔에 난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약 10cm 정도 되는 길이의 상처였고 지금은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지만 주변이 이미 검붉게 부어 있어 보기에 꽤 충격적이었다.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 후,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혔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 어게인, 비긴   제830화

    “시은 씨, 전 괜찮아요.”고은서는 팔이 조금 아팠지만 상처를 보니 긁혔을 뿐 살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아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약국에 가서 씻고 약만 바르면 돼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 여시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혹시라도 감염되면 큰일이에요! 제 기사님이 앞에 있어요. 그분이 병원에 데려다 줄 거예요. 저가 대신 여기서 경찰을 기다릴게요!”말을 마친 여시은은 고은서가 거절할 새도 없이 자기 사를 부르러 갔다.“은서 씨?”도로 옆에서 깜짝 놀란 듯 급하게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캐주얼 슈트를 입고 차에서 뛰어 내려오는 민시후의 모습이 보였다.개업식 때 민시후가 고은서를 도와 성동욱 일을 처리해 준 후, 그녀와는 거의 연락 하지 않았다. 그의 비서가 두 번 전화를 걸어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왔으며 민시후가 최근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빠서 살도 빠졌다는 얘기를 했었다.눈앞에서 다가오는 민시후를 보고 고은서는 갑자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왜 여기에 있어? 손은 왜 그래?”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물었다.“별거 아니 야.” 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숙자들과 싸우다 철판에 긁혔어. 다행히 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 같아. 시후 씨는 어떻게 여기 있어?”“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지나가던 길이야!”그때 여시은의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지금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여시은이 웃으며 말했다. “민시후 씨가 계시니 저는 빠져도 될 것 같아요. 빨리 은서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세요!”“시은 씨는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민시후가 물었다.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이 여시은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녀의 가정부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민시후는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차가워졌다.여시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여기 유명한 동물

  • 어게인, 비긴   제829화

    게임 회사의 작업실은 다소 오래된 작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었고 단지에는 경비나 순찰을 하는 경비원도 없었다.골목에는 가로등이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비해 꽤 외진 곳이었다.차는 골목에 주차되어 있었고 고은서는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남자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들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두 남자는 하나는 마르고 키가 컸고 다른 하나는 까무잡잡했다. 그들은 헤진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 든 짐 꾸러미에는 많은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근처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들인 듯했고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났다.고은서는 속으로 구역질을 참으며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그녀는 차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자 차에 기대게 되었다.이제 차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이미 늦었고 두 남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두 남자의 눈가는 이상하리만치 붉었고 고은서를 발견하자 점점 더 흥분된 듯 보였다. 그들은 입에서 지저분한 욕설을 뱉으며 다가왔다.“젠장, 오늘 운이 정말 좋아! 이 근처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울 수 있을 줄 몰랐네. 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도 만날 줄은!”“그렇지, 도시의 여자는 역시 다르네. 이 피부를 보라고. 아주 보드라워! 하하하, 집으로 끌고 가서 잘 놀아보자고!”그때, 악취 나는 마르고 키 큰 남자가 더럽게 손을 뻗으려 했고 고은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의 아랫배를 향해 강하게 발길질했다!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아랫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까무잡잡한 남자는 그제야 반응해 고은서를 잡으려 했고 고은서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틀어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하지만 남자는 상대적으로 더 강한 체격을 가졌고 고은서는 서 있는 자세 때문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어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다.그러자 남자는 화가 난 듯 욕설을 퍼부으며 팔을 휘둘러 고은서를 향해 달려왔다.고은서는 민첩하게 몸을 낮추며 땅에 떨어진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