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재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민기를 바라보았다.주민기는 그의 반응을 보고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사모님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습니다.”곽승재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확인했다. 검색어 목록에는 GS 그룹 연회에서의 사고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소식 중 하나가 바로 ‘GS 그룹 사모님 만취'였다.곽승재는 그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첫 번째 사진에는 고은서가 드레스를 입고 홀로 무도회장에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두 번째 사진에서는 고은서가 술병을 들고 고개를 뒤로 젖혀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세 번째 사진에서는 빈 병을 손에 쥐고 눈가가 빨개진 채로 얼굴에 눈물이 맺혀 있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이 사진들을 올린 사람은 아래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GS 그룹 연회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곽 대표님은 다친 여인을 안고 급히 떠났고 홀로 남겨진 사모님은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의 관계에 위기가 있는 듯 보인다.]첫 번째 사진에서 고은서는 무도회장에 홀로 서 있었으며 원래 활기차고 촉촉했던 얼굴과 큰 눈동자에는 이제 고독함과 상실감만이 남아 있었다.이 설명과 더불어 ‘관계 위기’라는 소문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다.많은 사람들은 GS 그룹 사모님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댓글을 남겼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곽승재와 고은서의 결혼이 본래 양가의 압력에 의한 계약 결혼일 뿐이며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전혀 없었고 이혼 서류도 이미 작성되었으니 이혼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이 외에도 연회장에서 고은서가 술을 마시는 영상 링크를 올린 사람도 있었다.곽승재는 그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에서 고은서는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말했다. “남자들은 다 쓰레기야!”고은서의 옆에 앉아 있던 도아름도 술을 들고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함께 마셨다.이후 고은서는 도아름의 어깨에 기대었고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코끝은 빨갛게 변해 있었다.눈썹을 찌푸리며 곽승재는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주민기는 죄송한 듯 말했다.“죄송합니다.
이 사건이 단순한 우연이라면 이보다 더 완벽한 우연은 없을 것이다....곽승재가 침실에 들어섰을 때, 고은서는 이미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침대 옆 탁자에는 반쯤 비워진 해장국이 놓여 있었고 베개 옆에는 그녀의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고은서의 얼굴은 술에 취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불안한 듯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깊이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숨결에서는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곽승재는 고은서의 이런 모습과 오늘 밤 그녀의 행동을 보자 가슴 속에 쌓였던 분노가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올랐다.그는 고은서를 침대에서 강하게 끌어 올리며 말했다.“일어나. 자는 척하지 마!”고은서는 흐릿하게 눈을 뜨고 술에 취해 눈이 붉게 물든 채로 곽승재를 바라보았다.커다란 눈동자로 그의 차가운 얼굴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던 고은서는 갑자기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흑, 왜 꿈속에서도 이렇게 나한테 못되게 굴어. 넌 진짜 나쁜 놈이야, 곽승재. 넌 대형 쓰레기야...”그렇게 말하고는 고은서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곽승재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고은서를 들어올려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술에 취한 척하는 거지, 그렇지?”‘짧은 시간 안에 이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취할 리가 없어!’하지만 지금의 고은서는 고개를 든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눈물을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여전히 흐릿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곽승재는 잠시 동안 그녀가 진짜 취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얼마나 마셨어?”물어보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에서 나온 건 중요하지 않은 이 질문이었다.고은서는 눈을 깜빡이며 억울하다는 듯 하얀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했다.“네 병. 아, 네 개는 이렇게...”그녀는 중얼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접고는 다시 손가락을 똑바로 세우며 자랑스러워했다.“이제 됐어!”“...”곽승재는 처음으로
곽승재의 얼굴이 순간 검게 변했다.“욕심도 크네. 열댓 명이나 찾겠다니!”하지만 고은서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흑흑’ 울기 시작했다.“까먹었네. 난 애초에 그 자식 돈이 필요 없잖아. 곽승재는 진짜 짠돌이야. 나한테 200억도 안 주면서...”곽승재는 더 이상 고은서와 말싸움하는 것을 포기했다.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아무 수건이나 집어 들고 그다지 부드럽지 않은 손길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그런 다음 고은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침대 옆 탁자에 남아있던 반 컵의 해장국을 그녀의 입술 근처에 대며 명령했다.“마셔.”그러자 고은서는 갑자기 순종적이 되어 마치 작은 고양이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그녀는 한 모금을 삼키자마자 갑자기 기침하며 곽승재의 옷에 해장국을 흘렸다.“고은서.”곽승재는 화를 내며 말했다.“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그의 꾸짖음에 고은서는 붉어진 눈을 뜨고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나 약 안 먹어. 나 밀크티 마시고 싶어... 그 밀크티 내가 한 시간 넘게 줄 서서 산 건데 왜 쓰레기통에 버려? 그거 다시 사줘!”보통 큰일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곽승재였지만 지금은 고은서의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안 사준다 이거지? 좋아. 그럼 네 몸으로 갚아!”곽승재가 대답하지 않자 고은서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그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러자 곽승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잘 봐. 내가 누군지 알아?”고은서는 눈물을 머금은 큰 눈을 깜박이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너 정말 잘생겼다. 여자친구 있어? 나 어때?”곽승재는 이를 꽉 깨물었다.“난 네가 남편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쉿. 너한테 비밀 하나 알려줄게.”고은서는 작은 여우처럼 그의 귀에 다가와 속삭였다.“내 남편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곧 이혼할 거야.”고은서는 말을 마치고 나서
‘곽승재, 너 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백유미를 안고 떠났으면서도 거기서 잘 있지 않고 다시 이 침대에 와 자다니...’ “곽승재, 당신 이러고도 안 피곤해?”고은서가 물었다.그러자 곽승재는 고개를 들며 더 깊게 찡그린 미간을 보였다.“아침부터 싸우려고 그러는 거야?”고은서는 그를 무시한 채 침대에서 내려왔다.“오늘부터 이 방에서 자지 마. 나도 더 이상 정상적인 부부처럼 연기하고 싶지 않아.”“내가 여기서 자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곽승재도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어젯밤에 내 옷을 더럽힌 게 누구였지? 또 나한테 몸으로 갚으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안 사준다 이거지? 좋아. 그럼 네 몸으로 갚아!”어젯밤의 그 말이 떠오르자 고은서는 얼굴이 뜨거워졌다.‘최근에 유치한 영상을 너무 많이 봤나? 그런 멍청하고 어리석은 말을 하다니...’“나 술 많이 마셔서 아무것도 기억 안 나.”고은서는 최대한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당신이 밤에 날 깨우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내가 왜 널 깨웠는지 정말 몰라?”곽승재는 차갑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가 어젯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소식들을 보고 나서 자신에게 따지려던 걸 알고 있었다.“결혼 문제를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도 네가 한 짓이겠지? 명운에서 돈 벌려고 네가 아주 못하는 짓이 없구나?”곽승재는 계속해서 비꼬았다.비록 그녀가 직접 소문을 퍼뜨린 건 아니지만 그 소문에 협력한 것은 사실이니 억울할 이유도 없었다.그래서 고은서를 곽승재를 조롱하듯 말했다.“말투를 보니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뭐야, 이혼이 임박했는데 갑자기 떠나기 아쉬워진 거야?”그러자 곽승재도 그녀를 냉랭하게 흘겨보았다.“네가 한 말을 너 스스로 믿고 있는 건 아니지? 난 네가 GS 그룹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이런 식으로 크게 떠들어대는 게 거슬릴 뿐이야.”이렇게 말하고는 곽승재는 냉정한 표정으로 상의를 걸치지 않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그가 이런 대답을 할 거란 걸
‘내가 무슨 손해를 본다는 거지?’다음 순간, 이미숙의 말과 표정에서 고은서는 무슨 일이 오해된 것인지 깨달았다.아마도 어젯밤에 자신이 울고 소란을 피운 탓에 이미숙이 뭔가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아줌마, 저 그런 거 아니에요.”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고은서가 부인했다.“어젯밤에 술에 취해서 조금 소란을 피웠나 봐요.”하지만 이미숙은 그녀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사모님, 이제 대표님과 함께 지내는 게 부부 사이에 좋은 영향을 줄 거예요.”“거기 서서 뭐 하고 있어? 어서 와서 밥 먹어.”고은서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하던 찰나, 곽승재가 무심하게 말했다.“맞아요, 사모님. 빨리 아침 드세요. 저는 이제 주방으로 갈게요.”이미숙이 떠나자마자 고은서는 곽승재를 노려보며 말했다.“왜 한마디도 해명하지 않은 거야?”그러자 곽승재가 그녀를 흘겨보았다.“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무슨 해명을 하겠어?”‘이 개자식, 어젯밤의 취중 진담으로 나를 공격하다니.’어젯밤에 자신이 곽승재의 귀에 대고 한 말을 떠올리며, 고은서는 땅속으로라도 파고들어 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때 그렇게 큰 용기를 낸 거지? 나도 날 모르겠네.’“너 술만 마시면 남자들한테 치근대는 거야?”알 수 없는 곽승재의 말투에 고은서는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난 아무것도 몰라, 기억도 안 나.”곽승재는 냉소를 지으며 무언가 더 말하려 했으나, 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곧 그는 잠금화면을 밀어 열었다.상대방의 말을 듣고 곽승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알았어. 좀 있다가 병원에 갈게.”곽승재가 병원에 누구를 보러 가는지는 고은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갑자기 아침 식사를 할 마음이 사라진 그녀는 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아침도 안 먹고 어디 가려고?”곽승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당신이 신장 문제로 병원 가기 싫어할까 봐 남성 클리닉에 예약해주러 가는 거야.”
‘며칠 전만 해도 강제로 초대받아 내가 대신해 방패막이가 되어줬는데... 뭐가 그렇게 오랜만이라는 거야?’고은서는 민시후가 여기 있는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도아름이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은서 씨, 왔구나. 여기 와서 앉아요.”고은서는 도아름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민 대표님께서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그러자 민시후는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웃었다.“조은서 씨가 명운의 명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나와 내기를 했잖아요. 내가 투자하기로 약속했으니 이제 약속을 지키러 왔죠.”도아름은 고은서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은서 씨가 나한테 말했던 조건대로 민 대표님께서 명운에 투자할 거예요.”민시후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명운의 인기가 겨우 어젯밤에 올라갔을 뿐인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투자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 게다가 기회를 악용해 지분을 더 높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민 대표님, 정말 괜찮으세요?”고은서는 다시 한번 물었다.“지금은 명운이 조금 반등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민시후는 그녀를 껄끄럽게 쳐다보며 말했다.“조은서 씨는 자기 자신이나 명운에 대해 자신이 없나요?”그러자 고은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제 자신과 명운 모두에 자신이 있어요!”이 말에 민시후도 씩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내가 뭘 더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명운이 이렇게 빨리 미래 투자은행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회사의 성장과 상장에 매우 유리한 일이다.고은서는 도아름에게 물었다.“언니, 언니 생각은 어때요?”민시후의 투자를 받아들인다면 명운이 더 잘 발전하더라도 다른 투자은행을 선택할 기회를 잃게 된다.도아름은 늘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저는 미래 투자은행의 투자를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 민 대표님께서 이렇게 투자의사를 밝혀주시는 거... 전 당연히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도아름이 동의했으니 고은서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그들은 계약과 관련
이 말을 듣자 백유미의 눈에서 더욱 눈물이 쏟아졌다.“승재야, 내가 그때 찍은 사진 때문에 네가 아직도 마음이 불편해한다는 거 알아.”“인정할게, 그때 사진을 찍을 때 나도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어. 네가 전에 내 면 요리가 어디보다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그걸 찍어서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싶었어.”“하지만 네가 최근 나와 거리를 두려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 사진을 올리면 네가 불편해할까 봐 바로 삭제했어. 근데 은서 씨가 그걸 그렇게 빨리 보고 저장할 줄은 몰랐어.”백유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승재야, 은서 씨의 성격은 나도 잘 알아. 은서 씨가 나를 오해하는 건 상관없지만 너에게 오해받는 건 싫어... 난 어렸을 때의 우리의 정을 지키고 싶어.”백유미의 창백한 얼굴과 슬프게 해명하는 모습을 보며 곽승재는 조금 마음이 움직였다.곧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난 너를 오해한 게 아니니까. 어제 은서가 그 일을 언급했을 때 상황을 잘 몰라서 너에게 물어본 것뿐이야.”“응.”백유미는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으며 조금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날 웃기게 했네. 나도 평소엔 이렇게 감정적이지 않은데 아마 머리를 다쳐서 그런가 봐.”“대표님...”그때 주민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더니 무언가 보고하려다 백유미가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을 멈칫했다.백유미는 차분하게 말했다.“괜찮아요. 하실 말씀 하세요.”보고할 내용이 판주 투자은행 관련이었기 때문에 주민기는 백유미 앞에서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곽승재에게 보고했다.“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미래 투자은행이 명운 기업에 계속 투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이 말을 듣자 곽승재는 즉시 눈썹을 찌푸렸다.“언제 일어난 일인가요?”“오늘 아침 민시후가 직접 명운 기업에 가서 도 대표님과 초보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들었습니다.”백유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민시후가 왜 갑자기 명운에 투자하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어젯밤 그녀는
민시후는 느긋하게 차를 들고 향을 맡은 후 가볍게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내가 은서 씨를 과소평가했었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민시후가 어젯밤 그녀가 술에 취한 척하면서 명운을 화젯거리로 만든 일을 말하는 걸 알고 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도련님과 같은 명문가 자제들이 남을 과소평가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말투가 마치 온갖 고난을 겪은 신데렐라 같네요.”민시후는 혀를 차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주로 은서 씨가 너무 꽃병 같아서... 아름다움이 은서 씨의 머리를 망칠까 봐 걱정됐거든요.”고은서는 할 말이 없었다.“도련님, 칭찬 방식이 참 독특하시네요.”“은서 씨에게 특별할 가치가 있으니까 특별하게 칭찬한 거예요.”민시후는 고은서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못 본 척하며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물었다.“어젯밤 그 일, 진짜로 곽승재에게 버림받은 거예요? 아니면 그 사람을 고발하려고 그런 겁니까?”민시후가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고은서는 그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다.“미안하지만 사적인 일이라 말할 수 없네요.”그러자 민시후는 화를 내지 않고 느긋하게 몸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판주를 무너뜨리겠다고 했던 은서 씨의 결심을 이제 믿게 되었어요. 앞으로 협력이 잘 되길 바라요.” 이전에 ‘미리 협력의 성공을 기원한다’라고 말한 것과 달리 이제는 협력을 확정 짓는 말이었다.고은서는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이 미래 투자은행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200억을 마련할 수 없다고 말이다.하지만 이에 대해 민시후는 전혀 놀라지 않는 듯했다.“그럼 먼저 빚으로 두고 나중에 은서 씨가 성사시킨 프로젝트와 배당금에서 내요.”“그럼 다음 달에 입사할게요.”몇 주 뒤면 할머니의 생신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이혼 문제를 처리해야 하며 명운의 계약 서명 후에도 처리할 일이 많으니 다음 달에 입사하는 것이 적당했다.“좋아요.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요.”음식이 상에 차려진 후, 고은서
레스토랑을 예약한 후 고은서는 고국성 집에 들렀다.고국성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고은혜는 상을 찌푸리고 폰을 놀고 있었다.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싸했다.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그녀 옆으로 다급히 걸어오며 말했다.“언니, 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계속 나오지 않으면서 아빠랑 이혼한다고 변호사까지 찾았어.”기자 회견 일로 많은 사람들이 고국성이 오미나와 부정당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시에 단은숙은 오미나 배 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아이가 생겼다는 건 두 사람이 정말 관계를 맺었다는 걸 의미했고 이런 일은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고은서는 고은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고국성 앞으로 다가가 일은 자신이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오미나가 아이를 없애겠대?”고국성이 고개를 번쩍 쳐들며 물었다.“동의할 거예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정말이야?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려줘야지.”그녀의 말을 들은 고은혜는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그러나 고국성은 낙관적인 고은혜와 달리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아직 동의하지 않았단 얘기야?”고은서는 고국성 옆에 앉으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삼촌, MQ를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MQ를 더 크게 이끌고 나가려거든 다른 사람한테 너무 의지해서도 안 좋아요. 그러니까 이후부터 곽승재한테 민폐 끼치는 일은 그만 하세요. 이 또한 제가 이번 일을 처리해주는 대신 삼촌이 들어줘야 할 조건이기도 해요.”고은서가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고국성은 약간 어리둥절했다.‘내가 곽승재를 찾아간 건 어떻게 안 거지? 분명히 유승준도 모르게 몰래 찾아갔는데.’그는 결연한 태도의 고은서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업계에서 곽승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를 도와주는 게 도리어 좋은 일이 아니
발신자가 곽승재라는 걸 확인한 고은서는 받을지 말지 약간 망설여졌다.‘전에 다툰데다가 삼촌 일 때문에 연루까지 받았고 심지어 그날 날 구하다가 다치기까지 했는데 하필 난 또 곽현수가 요구한 일을 완성해야 하고. 대체 이후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은서야, 누구 전화야? 왜 안 받는 거야?”옆에 있던 육현석이 말했다.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잠시 나가 전화 받고 올게요.”그녀는 조용한 곳에 가서야 곽승재의 전화를 받았다.“곽승재.”“무슨 일이야?”곽승재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육현석이 며칠 동안 당신한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지금 내가 걱정되어서 날 찾은 거야?”곽승재가 덤덤하게 되물었다.고은서는 멈칫하다가 화제를 바꾸었다.“민기 씨한테 당신이 등을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낫든 안 낫든 넌 아무런 관심이 없잖아.”“...”고은서는 서로 동문서답하는 대화 모드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날 은혜가 당신한테 연락해 도움을 청한 걸 모르고 있었어. 오해하고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미안해. 이후로 당신한테 민페를 끼치는 일은 삼가라고 가족들한테 말해 둘게.”전화너머에서 곽승재가 콧방귀를 끼는 소리가 들려왔다.“할 말 다했어?”고은서는 곽승재가 아직도 그날 일로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소 같으면 화를 내건 말건 전화를 뚝 끊어버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은혜가 그날 일로 자책하면서 삼촌이랑 얘기 해봤는데 당신한테 사과할 겸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하는데 언제 시간 돼?”고은서가 고민끝에 말했다.“또 누가 있는데?”‘누가 더 있겠어. 알면서 묻기는.’“나랑 삼촌 가족만 있어.”곽승재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덤덤하게 답했다.“주민기랑 스케줄 확인해. 시간나는 대로 갈 테니까.”‘이 남자가 정말. 어디서 꼰대 짓이야.’“조금이따 민기 씨한테 얘기해볼게.”고은서가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곽승재가 갑자기 입을
한 비서는 그제서야 승진하게 된 이유가 자신 능력 덕분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안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그러나 계약까지 체결한 탓에 거액의 보상금을 내지 않고는 사직을 할 수가 없었다.위약금보다 더 중요한 건 이렇게 GS그룹을 떠나게 되면 외부 사람들이 그녀가 곽승재를 건드렸다고 오해하면서 해성에서 일자리 하나도 못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육 도련님, 고은서 씨, 백유미가 현재 매우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저 그곳에 갔다가 죽을지도 몰라요. 다가가는 것조차 두렵다고요.”한 비서가 울부짖었다.육현석은 곽승재 T국에서 있었던 일로 백유미를 샅샅이 조사해보았다는 걸 깨달았다.‘아마 백유미랑 한 비서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걸 발견하고 이런 방식으로 벌을 주려는 거겠지.’“사직하려거든 GS그룹 내부 문제야. 내가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육현석이 단호하게 거절했다.한 비서는 이내 고은서의 다리를 잡고 빌었다.“고은서 씨,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그저 정보를 몇 번 전달했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요. 전에 백유미를 돌보던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저는 죽기 싫어요...”고은서는 덜덜 떨고 한 비서를 보면서 그제야 그녀가 겁에 질려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그러나 그녀는 GS그룹의 일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마침 백유미가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 비서를 보내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이익을 위해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을 돕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비는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저를 해치려한 사람을 쉽게 용서해줄 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저에게 더 절실하게 와닿거든요. 그러니 제 도움을 받으려거든 제 요구부터 들어줘야 해요.”고은서는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비서에게 자신의 부탁을 말했다.육현석도 현장에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피
육현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도 어리둥절해졌다.만약 간단한 스케줄만 알려줬다면 이정도로 겁에 질려 있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더 큰 일과 엮여 있는 건가?’아니나 다를까 육현석의 엄숙한 모습을 본 한 비서는 얼굴이 방금전보다 더 창백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한 번 커피 가져다 드릴 때 곽 대표님한테 고은서 씨 친구분과 백유미 사이의 조사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그걸 백유미한테 알렸어요...”육현석은 그제야 곽승재가 자신더러 성아연과 백유미 사이에 관해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그러나 당시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두 사람은 몇 번 만나고 연락한 것 외에는 경제적 래왕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그 일로 백유미가 산장에서 곽승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약을 잘못 복용한 거라고 의심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로부터 백유미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고은서의 혐의를 씻어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육현석은 백유미가 고은서를 해치려거든 왜 고은서를 대신해 진상을 밝힌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그러니까 백유미가 한 비서를 통해 내가 자신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그런 대책을 세웠다는 거야?’고은서도 문뜩 곽승재가 육현석한테 백유미와 성아연 두 사람 사이에 관해 조사하라고 시켰다면서 자신도 백유미를 찾아가 따졌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그런데 그녀는 당시 곽승재가 이 일을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그를 향해 비아냥거렸었다.‘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나랑 곽승재 사이의 모순이 거의 다 백유미 때문에 생긴 거네.’백유미가 현재 정신병원에 갇혀있다고 한들 고은서는 아직도 생각하면 할 수록 공포감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정말 악독한 여자야.’한 비서는 계속 자신이 했던 행위를 후회한다면서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육현석은 이마가 빨개진 한 비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이익을 탐내는 동시에 그 대가도 따르는 법이야. 백유미한테 몰래 소식을 전달한 건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죽
육현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자가 털썩하고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육 도련님, 저예요. 제발 경호우너을 부르지 말아 주세요.”“한 비서?”고은서가 아직도 겁에 질려 있을 때 육현석은 그 여자를 알아 보았다.삼십 대 좌우로 보였는데 GS그룹의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비서들처럼 자랑스럽고 우월한 면을 뽐내는 대신 공포에 질린 듯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주차장에 숨어 있는 거야?”육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그의 말을 들은 한 비서는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갑자기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육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빌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주차한 곳 뒤에는 나무들이 주지어 있었고 차들이 빼곡히 들어선 탓에 사람이 숨어있는 걸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한 비서는 무릎을 꿇은 채 끊임없이 육현석을 향해 사과했다.그녀는 육현석의 차를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이곳으로 오는 걸 알고 일부러 차 뒤에 숨어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이러지 말고 일어나서 말해.”“아니요. 그냥 꿇고 말하겠습니다.”한 비서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그녀는 방금전에 머리를 땅에 박으며 절을 한 탓에 이마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공포 질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면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연기하려는 거야?”육현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니요. 저는 그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한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사과하려거든 조용한 곳에 가서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육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한 비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현석 씨, 일 봐요. 저는 혼자 차 불러서 가면 돼요.”“안 돼요. 고은서 씨 용서도 받아야 하니까 같이 가요.”육현석이 말을 꺼내기도
육현석의 관심사는 정말 유별나게 독특했다.고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육현석이 생각하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녀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생각이었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곽승재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해.’“삼촌 일 때문에 영향 받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 곽 회장님께서 곽승재의 꼬투리를 잡을 만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니까요.”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육현석도 고국성의 일에 관해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곽현수 성격에 확실히 그럴만 하지.’“그날 삼촌 일이 승재 형 아버님이랑 연관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확인해 봤어?”육현석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곽현수는 애초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러나 이걸 그대로 육현석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은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부인했다.“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어요.”“그럼 오늘 나랑 승재 형 찾으러 온 것도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야?”육현석이 무언 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그렇죠.”어이가 없었지만 고은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그후로 한참 동안 사무실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곽승재는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는 육현석의 말을 듣고 곽승재한테 연락해 보았으나 여전히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은서는 이내 주민기한테 연락했다.얼마 후, 주민기가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고은서는 주민기의 아주 공식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주민시 씨, 곽승재 혹시 다쳐서 병원에 있는 건 아니죠?”주민기는 멈칫하다가 이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등을 다치긴 했으나 지금은 별다른 문제 없습니다.”‘그날 정말 다친 거였어? 그런데 왜 병원도 가지 않고 나한테 거짓말이라고 한 거지?’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났다.“곽승재 지금 어디 있죠?”주민기는 그녀의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답했다.“지금 GS그룹의 주주분을 만나러 와서
고은서는 육현석을 막았다.“그래도 곽승재 사무실인데 그냥 들어온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물건은 함부로 다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러나 육현석은 괜찮다면서 손짓했다.“괜찮아. 우리가 낯선 사람도 아니고 설마 내가 승재 형 물건을 훔치겠어? 게다가 네 물건을 가지는 건데 뭐가 어때.”“...”고은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육현석은 이미 사무실 책상 옆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캐비닛을 열고 가지런히 접혀있는 회색 담요 하나를 꺼냈다.“계속 여기 있을 줄 알았다니까.”육현석은 이내 담요를 고은서한테 건네주었다.“은서야, 봐봐. 익숙하지 않아?”익숙하다고 느낀 고은서는 문뜩 자신이 예원 별장에 있을 때 귀비 의자에 깔고 발을 덮는데 썼던 담요라는 걸 발견했다.“이 담요가 왜 여기 있는 거죠?”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승재 형이 넣어둔 거겠지.”그러나 육현석은 이내 놀라 하며 물었다.“설마 네가 승재 형한테 준 건 아니지?”‘승재 형이 고은서가 준 담요까지 소장할 정도로 변태적인 사람이었어?’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예원 별장에 있을 때 이미숙이 한 번 소파에 있는 곽승재한테 관심을 표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곽승재의 도움을 받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담요 하나를 이미숙한테 건네주면서 그에게 덮어주라고 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발을 놓는데 쓰던 낡은 담요를 아줌마가 이미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곽승재 사무실에 있는 거야?’“진짜 형이 훔친 거야?”육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서를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고은서는 어색해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부인했다.“그럼 네가 준 거네.”육현석이 이내 흥분해 하며 말했다.“은서야, 형이 이 담요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내가 한 번 우연하게 덮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날 꾸짖기까지 했다니까.
육현석은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고은서가 회사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멀리서 그의 차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고은서가 차에 오르자마자 육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은서야, 무슨 일 있었어? 승재 형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고은서는 방금전에 경찰과 했던 통화내용을 육현석한테 다 알려주었다.그도 듣자마자 약간 의아해했다.“갑자기 진짜 정신병 환자가 되었다고? 전에 갔을 땐 다 연기였잖아.”“전에는 연기지만 그사이에 정신병 환자가 될만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잖아요.”고은서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유의 몸도 아닌 사람이 무슨 일을 겪겠어?”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묻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그래서 정신병원에 가서 백유미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경찰 측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 피면하기 위해 특별 병실에 안배해 놓았다고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그 말을 들은 육현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헛된 생각은 그만하고 승재 형 찾으러 가자. 승재 형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백유미가 정말 전문가까지 속일 정도의 정신병을 앓고 있거든 곽승재도 그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곽승재의 생각을 한번 들어봐야겠어.’고은서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GS그룹으로 향했다.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고은서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다가왔다.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약간 불편했던 고은서는 호칭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죄송하지만 현재 저랑 곽승재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 그냥 은서 씨라고 불러주세요.”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뜻대로 고은서 씨라고 불렀다.그리고 이내 공손하게 물었다.“곽 대표님 찾으러 오신 거죠?”“네. 승재 형 찾으러 왔어요. 위에 있죠?”“요즘 바쁘셔서 지금 회사에 안 계세요. 찾으시려거든 직접 전화하시는 게 더 나을 것
유일 투자 은행에 도착한 후, 고은서는 먼저 직원들과 함께 간단한 업무 회의를 열고 곽승재의 스케줄을 알아보기 위해 육현석한테 연락했다.“은서야,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육현석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승재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는데 혹시 승재 형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게 있어?”정보를 캐내려고 전화했는데 도리어 정보를 알려주는 입장이 될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저도 잘 몰라요. 연락이 안 되나요?”고은서가 물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연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주민기도 연락이 안 되어서 비서실에 전화 해보았는데 비서는 그저 곽승재가 바쁘다고만 했다고 말했다.“은서야, 혹시 승재 형이랑 싸웠어?”고은서는 곽승재가 그녀 대신 스테인리스 철봉 공격을 막아준 그 날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은 탓에 그가 약간 기분 나빠했던 일이 떠올랐다.‘내가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건가? 아니면 그날 진짜 다치기라도 한 거야?’고은서는 또 그날 육현석이 곽승재한테 전화했을 때 전화 너머로부터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 게 떠올랐다.‘그럼 그 여자는 곽승재가 다쳐서 마음 아파서 운 거야?’“은서야, 우리 승재 형 찾으러 같이 GS그룹으로 가보지 않으래?”평소 같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지금은 곽현수가 준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곽승재를 어떻게서든 만나야 했다.그러나 육현석의 의심을 받는 걸 피면하기 위해 그녀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유일 투자 은행 근처에 있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고 할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육현석이 까먹은 일이라도 있는가 해서 폰을 들고 확인해 보았는데 낯선 유선전화 번호였다.받아보니 다름 아닌 해성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상대방은 아주 예의 바르게 백유미가 거의 완치 되어서 전에 얘기했던 정신병 위장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