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언이 나를 악독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면, 네 몸을 희생하도록 해.”“하지만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짓, 예를 들어 나를 밀어 물에 빠뜨리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마.”“만약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참고만 있진 않을 거야. 이 영상을 바로 공개해서 네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 테니까 두고 보라고.” 나는 소아연이 이혼을 빠르게 성사시키도록 돕게 하고 싶지만, 내 몸을 다쳐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은 지금 너무나도 소중했다. 무엇을 위해서든, 더 이상 상처받아선 안 됐다.이 말을
심사언은 원래 미안함과 부드러움이 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당신, 또 일부러 묻는 거잖아.”‘내가 뭘 일부러 묻는 건데? 알았으면 묻지도 않았겠지?’‘내가 ‘남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얼마나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정말 모르는 거야?’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심사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난 정말로 절벽에서 떨어진 후 일부 기억을 잃었어.”심사언은 비웃듯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젠 기억상실 설정까지?”“다른 건 다 기억하면서 딱 한 가지만 잊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일 때문에 화난 거 아니고... 그저...”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사언은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와의 논쟁에서 밀리거나,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때면 항상 바로 자리를 피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혼자 화를 가라앉히고, 감정을 삭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사그라지길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도 심사언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서러움을 감춘 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더
심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놓인 술잔을 다시 잡고 들어 한 모금 털어넣어 목으로 넘길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형이 형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어.”“진짜 사랑하면, 절대 저렇게 상처 주지 않아. 근데 형이 형수님한테 하는 거, 전부 다 상처 주는 거잖아.” 송주혁이 한숨을 쉬며 잔을 내려놓았다. “근데... 그렇다면, 사랑하는 거 아니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지?” 그리고 심사언의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하기엔 형은 진짜 형수님에게 너무 많
지안이 날 흘겨보더니 비꼬듯 말했다.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어!” “이제 마음 안 바꿔. 이미 다 지난 일이야!” 지안은 내가 예전에 사랑에 미쳐 정신을 놓고 살던 꼴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나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내가 한 짓 알아보고 어이가 없었어.’‘차마 내가 날 용서 못 할 지경이더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대한 귀엽게 굴며 지안에게 바짝 다가갔다. “우리 지안이, 내가 어떻게 해야 날 용서해 줄 거야?” 지안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
지안이는... 진정으로 날 위하는 친구였다. 날 보면 제일 먼저 내 상처부터 걱정하고, 아파하고, 울어주는 사람. 그렇게 울고 있는 지안을 보니, 내 가슴이 미어졌다. ‘아, 나도 정말 실컷 울고 싶은데...’ 병원에서 혼자 버티던 날들도 떠올랐다. 그 끔찍한 밤들. 진통제 없이는 맨정신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고, 수면제가 없으면 잠들 수도 없던 나날들. 다른 사람들은 작은 상처만 나도 온 가족이 달려와서 걱정해 주는데, 나는 병상에서 꼼짝도 못 하는데도, 가족 그 누구도 내 곁을 지키지 않았다. 아무도
호스트바.지안이와 내가 한창 신나게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고이설 씨 맞으시죠? 남편 되시는 심사언 씨가 위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왔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위출혈? 겨우 그 정도로? 만약 죽을 지경이라고 하면 한 번쯤 가볼까?’ ‘어차피 상속 절차만 잘 처리하면 심사언의 유산 전부 다 내가 받을 텐데,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서 시신 정리 정도는 해줘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심드렁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심사언은 마치 맹수처럼 날카롭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내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심사언을 보는 순간,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눈살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뭘 그렇게 소리쳐? 여기가 공공장소인 거 몰라? 당신 지금 정신 나갔어!”심사언은 순간 멍해졌다. 마치 내가 ‘남편’의 위장 출혈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찾아오지도 않고, 오히려 여기서 호스트를 끼고 있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더니 익숙한 말이라는 걸 떠올렸다. 실은 그
세상에는 친딸에게도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도 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감수할 수 있는 엄마도 있었다.나는 박만화처럼 솔직한 엄마가 좋았다. 그리고 박만화 같은 엄마를 둔 딸이 부러웠다.“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여기서 나가든 못 나가든, 언니가 딸과 평생 편하게 살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내 말이 끝나자, 박만화의 눈가가 붉어지며 울컥한 감정을 애써 참는 듯했다.박만화는 정말 좋은 엄마였다. 간신히 지켜낸 딸과 함께 정말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그래서 나에게 한가지 약속했다.“사모님, 여
엄기준 변호사가 보석 절차를 처리하러 나간 후, 나는 다시 구치소 안의 생활실로 돌아왔다. 챙길 것도 딱히 없었고,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던 터라 그냥 자리에서 눈이라도 붙이려는 순간, 누군가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내 뒤엔 금속으로 된 수납장이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부딪치면 그 충격에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거리. 하물며 온몸에 철심이 박힌 내 몸은, 한 번만 잘못 넘어져도 반신불수는 각오해야 했다.‘이대로 밀리면 끝이야.’나는 전혀 방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나는 생각에 잠겨
심사언은 내가 갑자기 그와 소아연을 이어주려는 듯한 말을 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쾌하게 말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랑 아연이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앞으로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왜 자꾸 나랑 아연이를 엮는 건데?”‘왜냐하면, 당신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애니까.’‘그렇게까지 아끼고 지키는 모습이, 도대체 사랑이 아니면 뭔데?’‘우리 엄마 말대로, 사랑에 ‘과거’가 그렇게 중요하면, 이 세상에 다시 시작할 사랑은 하나도 없지. 옛날 황제도 새어머니랑 결혼했다는데, 너는 왜 못 해?’‘나더러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심사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럴 수밖에 없었다.심사언이 말한 내가 소아연을 해친 ‘그 일’ 말고는, 나는 단 한 번도 누굴 해치거나, 도덕적으로 선을 넘은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내가 계속 물었다. “심사언, 우리는 8년이나 알고 지냈어. 사귄 건 7년이고.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됨됨이를 믿어주지 않았어.” “누가 영상 하나 들이밀자, 아무 확인도 없이,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했지. 그걸 보고 ‘이설이가 그랬을 거야’라고 확신했잖아.”“그렇게 쉽게, 나를 믿는 대신 의심을 택
다음 날 아침, 구치소 직원이 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가 있다는 말에 나는 당연히 엄기준 변호사가 보석 절차를 준비해서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나타난 사람은... 심사언이었다.심사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눈가엔 온통 핏줄이 터져 있었고, 밤새 단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상태는 오히려 구치소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밤을 보낸 나보다도 더 초라해 보였다.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곧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룻밤 지났으니까, 이제 생각 좀 정리됐
엄마의 눈빛은 잠시나마 흔들렸다. 그제야 문득 떠올린 듯했다. 내가 엄마가 열 달 동안 품에 안고 세상에 낳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친딸’이라는 사실을.오빠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지만, 그 복잡함 속에 가장 도드라진 건 묘한 안도감이었다. 내가 구속되어 수년간 살아야 한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그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인생이 된다.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빠는 그 사실에... 속으로 안심하고 있었다.결국, 나를 감옥에 넣은 건 내 친부모, 피 한 방울 다르지 않은 오빠, 그리고... 함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감싸며 ‘공식 사과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심사언조차 더는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지금이 마지막이야. 이 기회마저 놓치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심사언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내가 계속 버티고,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나를 직접 법정에 세울 것이다. 소아연이 심사언의 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한참 아름다워야 할 나이에, 인생이 무너졌다. 그 뒤로도 소아연
“당신, 진짜 감옥 가고 싶어?!”나는 더 또박또박 말했다. “감옥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 나는 법이 가장 공정한 판단을 해줄 거라고 믿어.”심사언은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당신 정말 대단해. 증거가 눈앞에 이렇게 뻔히 있는데도, 아직도 아니라고 잡아떼?” 나는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 혹시... 내가 한 짓이 아닐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 “안 했다고? 그럼 영상 속 여자는 뭐야? 그게 본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영상 속 사람
정말 모두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심사언과 나 사이의 상황이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예전의 심사언은 성공한 뒤 백마 탄 공주 같은 첫사랑에게 잘해주고, 그와 함께 바닥부터 올라온 조강지처인 나를 무시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가진 거 다 내던지며 심사언을 도왔는데, 결국 돌아온 건 냉대와 외면이었다.그런데 지금? 심사언은 나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내가 뭘 하든 무조건 감싸주고, 보호하는 남편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망가뜨린 소꿉친구 여동생을 두고도, 나를 감싸겠다며 날 감옥에 안 보내려고 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