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동준은 소남의 말에 대답하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먼저 호텔로 가겠습니다. 차는 D 출구에 있어요.”“네.” 서두인 교수는 동준을 보다가 다시 염초설과 헨리를 바라봤다.아이는 계속 염초설에게 붙어 있었지만, 문소남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D 출구, 롤스로이스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번화한 수도에는 고급차가 많아 그리 특이할 만한 장면은 아니었다. 소남이 다가오자 운전기사들이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었다.원아는 소남이 앞에 있는 차로 향하는 것을 보고 뒤에 있는
소남은 눈썹을 찌푸린 채 아들을 바라봤다. 헨리는 두 손을 허리에 올려 놓고 소남을 바라봤다. “아빠, 다음에는 초설 누나의 방도 우리와 같은 층에 배정해 주세요.”엘리베이터에는 소남 부자 외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어가 달라 두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지 말 조심을 하지 않아도 됐다. “회사 경비에는 제한이 있어.”헨리는 나이가 어려서 정확한 단어의 뜻은 몰랐지만 대충 돈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는 돈이 많잖아요!”헨리가 불만 섞인 얼굴로 말했다.소남은 아
헨리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조급한 마음을 참으며 한참을 기다리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문을 살짝 열고 거실을 내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아빠는 분명 잠들었겠지?’헨리는 씨익 웃었다.‘아빠가 초설 누나랑 같이 못자게 하니까 내가 직접 만나러 갈 수밖에!’‘어차피 같은 호텔 안에 있는 거라 가출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헨리는 문이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껑충껑충 뛰며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한편, 문소남은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헨리는 ‘초설 누나’의 말에 마음이 답답했다. “아빠도 누나랑 똑같은 말을 했어요.”원아는 순간 멍 해졌다.헨리가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부부인데도 같은 방에 있지 않았어요…….”사실 원아는 문소남과 가짜 원아인 로라가 한 방을 쓰지 않고 있다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원아는 헨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그 얘긴 이제 그만 하자. 아무튼 다음부턴 이러면 안 돼. 알겠지? 네가 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아?”“여긴 호텔이잖아요.” 헨리는
원아는 참지 못하고 소남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그리고 가족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3년 전 그날이 또렷이 기억났다. 날씨가 좋고 햇빛이 따뜻한 날이었다. 들꽃이 만발해 향기가 사방에 가득했었다.그날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고 무표정했던 문소남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원아는 그날이 일이 기억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나…….” 헨리의 부름에 회상하던 추억이 끊겼다. 원아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몸을 돌려 자신에게 바짝 붙어 있는 헨리를 바라보았다.“왜 그래?”“안아주세요.” 헨리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졸음
원아는 차마 아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그래, 누나랑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 하지만 다 먹으면 바로 문 대표님께 데려다 줄 거야. 그때 딴 말하기 없기다!”경험상 헨리는 매번 자신과 헤어질 때마다 어떻게 든 안 가려고 떼를 쓰곤 했다. “네, 누나!” 헨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둘은 함께 객실을 나섰다.두 사람이 아래층 식당에 도착했더니 이수혁과 서두인 교수 등은 이미 아침을 먹고 있었다.동준이 예약한 이 호텔 비용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어 다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염 교수님, 좋은 아침이에요
표정없던 문소남의 얼굴이 한없이 어두웠다. 동준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식사를 했다. 하지만, 헨리는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도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소남은 아들을 한번 쳐다보고 식당 문 쪽을 바라봤다. 염초설과 그 일행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시 한번 냅킨으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준도 따라 일어났다.“대표님, 지금 회사로 가시겠습니까?”“그래.” 소남은 헨리의 손을 잡고 나갔다.동준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래층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
서두인 교수는 원아를 보며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염 교수, 정말 대단해요.”하지만, 속으로는 그녀를 경멸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조차도 염초설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다니. 어쩐지 문소남 대표님이 염 교수에게 특별히 대하는 이유가 다 있었던거야!’원아는 아무 말없이 임시 안내판을 따라 걸어갔다.윌리엄은 마음에 든 여자가 훌쩍 떠나버리자 아쉬움이 컸다. ‘언어의 벽은 정말 뛰어넘기 힘들 군.’옆에 있던 친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윌리엄, 왜 그렇게 풀이 죽었어?”“바울,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