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왜 아직 안 자고 있어?”문소남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침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잠이 안 와요.”가짜 ‘원아’인 로라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소남 씨, 오늘 내가 좀 예민했어요. 사실 다른 뜻은 없어요. 당신이 정말 마음이 있다면, 제 자릴 비워줄 수 있어요. 그러면 그분도 당신도 모두 행복하겠죠.”소남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를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로라는 그가 무엇이라고 말해 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침착한 소남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이
그녀가 보안시스템을 통과하자, 직원 하나가 신입 사원들이 지문인식과 얼굴인식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늘이 회사 첫 출근 날이라 그런지 줄을 선 사람이 많았다. 원아 바로 앞에는 젊고 활발한 젊은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녀는 원아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시예라고 해요. 선생님은요?”“염초설이에요.”원아도 할 수 없이 손을 내밀어 그녀와 악수를 했다 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상대는 열정적으로 나왔지만 원아는 지금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염초설 교수님?”정시예는 깜짝 놀란 얼굴로 원아를 바라보았다. “연구 보조 직원이 아닌 교수였어요?”“네.”원아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젊어 보이는데…….”시예는 속의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서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었는지 입을 가리고 우물쭈물했다.“교수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괜찮아요.”원아는 그녀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정시예처럼 이제 갓 들어온 신입사원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원아는 몇
원아는 심장이 어찌나 요동치며 뛰던지 자신의 귀에까지 그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문소남은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다른 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문소남이 베푼 최대한의 예의였다. 문소남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과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었기에 결코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소남은 미간을 찌푸렸다.‘헨리를 돌봐 준 사실을 알게 되면 사생활에 방해받을 것이라고 알았나?’‘나를 꽤 잘 알고 있는데?’소남은 분명 헨리가 낯선 사람과 함께
이수혁은 붉어진 얼굴로 반박했다.“주지혜 씨, 근거 없는 말 하지 마세요. 염 교수님이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요? 이수혁 씨에게 정말 실망했어요. 회사에서는 실력이 중요하지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주지혜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그녀는 ‘염 교수’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문소남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었다.게다가 나중에 둘이서 따로 나가 대화를 나눈 일은 상상력을 더 자극했다. 이수혁은 그녀와 이 일로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은 이제 그만하죠. 다른
정시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원아는 식판을 퇴식구에 가져다 놓고 식당을 나섰다. 시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교수님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그녀는 ‘염 교수’와 친해지게 되면 다른 부서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그녀와 친해지는 일은 어려울 것 같았다. 개발팀에 들어가려면 아무래도 더 많은 인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원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다닐이 보내준 제약 연구자료를 다시 살펴보았다. 자료는 최신 항생제를 만들 수 있는 내용이
로라의 말에 기자는 비열하게 웃었다. 문씨 집안이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무리한 액수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괜히 문씨 집안의 미움을 사면 안되었기에. 기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많이 바라진 않아요. 이미 메일로 확인하셨잖아요.”로라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그 정도가 많이 바라는 게 아니라고? 돈에 눈이 멀어서!’“당신이 제시한 가격에 이천만원을 더 줄 수 있어요.”그 말에 기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천만원을 더 주신다고요?”“네, 왜요? 필요 없나요?”로라가 미소를
다음날, 문소남의 스캔들은 A시의 주요 신문과 언론을 휩쓸었다.사진이 두 장 밖에 없었음에도 과장·허위 보도로 A시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아침 일찍, 뉴스를 접한 문현만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비록 소남이 사진속의 여자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자가 하도 형편없이 써 놓은 탓에 이미지 훼손이 컸다. “집사!”문현만은 잔뜩 화가 난 채 신문으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네, 어르신, 말씀하십시오.”집사가 공손하게 말했다.“이 기사를 쓴 기자를 찾아내. 그 다음 해야 할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