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연은 난감했다. "휴… 어쩔 수 없었어. 돈 때문에 새어머니가 나한테 결혼을 강요한 거야. 아직 이혼하지 못했어!""뭐? 그 X년 그러고도 사람이야?! 아연아!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어? 우리 경찰서 가자!"아연은 그녀를 말렸다. "네가 생각하는 거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 그 사람과 나는 하늘과 땅이야.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어."소정은 여전히 매우 흥분했다. "그 사람 누구야? 나한테만 알려줘. 네 남편… 니 서방…아이씨! 왜 이리 어색하지?""많이 어색하지. 이혼하고 나면 누군지 말해줄게.""안 돼! 지금 당장 알려줘! 내가 가서 그 남자랑 말하게!"아연은 소정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에게 말한다면, 진짜로 박시준을 찾아갈 게 뻔했다.아연과 시준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불편한데, 소정이까지 그러면 설상가상으로 더 복잡해진다."자기야~먼저 하준기에 대해 마저 조사해 줘! 그때 가면 내 남편이 누구인지 말해줄게." 아연은 그녀를 설득시켰다."으이구! 아주 자연스럽게 남편이라 부르네. 평소에도 많이 불렀나 봐?" 소정이 놀렸다.아연은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불러도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을 거야. 그도 강요받은 거니까.""그건 좀 불쌍한데? 난 또 어떤 개자식이 널 갖기 위해 벌인 짓인 줄 알았지…""스톱! 너 소설을 너무 많이 봤구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여소정은 고개를 저으며 유감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선배에겐 기회가 없는 거네. 선배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었지?"아연의 표정이 굳어버렸다."됐어!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네가 선배를 좋아하지 않는 건 나도 알아. 나중에 설득해 봐야겠어… 우리 오후에 음악회나 가자! 마스터 클래스 음악회래! 필하모닉 홀에서!" 소정이 화제를 바꿨다.그때 아연의 휴대폰이 울렸다.새로운 문자 메시지가 와있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터치했다.발신자는 낯선 번호였다.하지만 문자를 보니 조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오후
경호원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진아연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여소정이 점심에 얘기한 음악회가 바로 이곳에서 열리는 거였다!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이곳에 온 것이다!다만 박시준과 함께.그러다 홀에서 소정과 마주치면 얼마나 창피할까!그녀의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속으로는 소정과 부딪히지 않기를 기도했다.이렇게 큰 홀에서 둘의 좌석과 가까울 확률은?조지운은 박시준을 위해 한 줄을 통째로 예약했다.그것도 맨 앞줄을.아연은 들어서자마자 박시준을 발견했다.맨 앞줄에는 박시준 한 사람밖에 없었다.도도하고 시크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몸에서는 비범한 아우라가 뿜겨져 나오고 있었다.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 그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아연은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이건 눈에 띄어도 너무 띄잖아!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음악회에 데려온 거지?어젯밤 그가 그녀와 박우진을 뭐라 했는지 잊은 건가?그녀가 예술이 아름답다고 하자 그는 그런 아름다움은 부질없는 것이라 말했다."가만히 서서 뭐 합니까? 안 가고!" 경호원은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화난 표정으로 째려보았다."아저씨, 제가 좀 추워서 그러는데요… 외투 좀 빌려주시지 않을래요?" 아연은 경호원의 검은 외투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물었다.경호원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에게 외투를 열어 보였다.외투안에는 신형 무기들이 여러 개 숨겨져 있었다!헉!아연은 오금이 저리는 듯했고 도망치듯 박시준에게 갔다.그의 곁으로 다가간 그녀는 2초간 머뭇거리다가 그와 좌석 1개를 두고 앉았다.박시준은 둘 사이의 빈 좌석을 보더니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지?자기를 싫어하는건가?"좀 더워서요…" 아연이 해명했다.시준의 다른 한쪽에 앉은 경호원은 언성을 높여 물었다. "또 무슨 꿍꿍이입니까? 방금은 춥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아연은 난감함에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 "무슨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왜 그녀는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걸까?그와 함께 있는 게 쪽팔리기라도 한 건가?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진아연의 긴장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다행이다! 소정에게 들키지 않았으니.소정이는 어디에 앉았을까?뒤돌아보고 싶었지만 이성이 호기심을 억눌렀다.여소정은 다른 친구와 함께 다섯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첫 줄에 앉은 사람은 누구야? 좌석이 저렇게 많은 데 세 사람만 앉다니. 가관이다 정말!" 소정이 친구에게 속삭이며 불평을 늘여놓았다.친구가 분석했다. "돈이 남아도는 거지! 다섯 번째 줄도 한 좌석에 20만이 넘는데. 첫 줄은 얼마나 비싸겠냐? 딱 봐도 첫 줄을 통째로 예약한 거구만. 가운데 저 남자 뒤통수만 봐도 돈 많게 생겼어. 왼쪽에 저 여잔 딸이거나 애인이겠지. 오른쪽에 저 건장한 남자는 보디가드고."여소정도 친구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왼쪽의 저 여자 내 절친이랑 닮았어!" 소정은 진아연의 뒤통수를 보며 중얼거렸다."뒤통수만 봐도 닮은 거 알아?""그래서 절친인 거지! 내가 걔 뒷모습에 얼마나 익숙한데!" 소정은 보면 볼수록 그 여자의 뒷모습이 아연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폰을 꺼내 첫 줄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찍지 마! 촬영 금지잖아!"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직접 첫 줄에 가서 보든가 하지!""됐어. 공연 곧 시작될 거야." 말하면서 소정은 아연에게 사진을 보냈다.진아연의 휴대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했다.폰을 꺼내자 여소정이 보낸 문자가 보였다. "아연아, 사진 속 이 여자 봐봐. 뒷모습이 너랑 닮지 않았어?아연은 심장이 터질 뻔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그런 모습을 본 박시준은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그의 얼굴을 본 여소정은 너무 흥분해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뭐야! 너무 잘생겼잖아!""뭐야! 저 사람 박시준이잖아?!""저 사람이 박시준이라고?!""응! 내가 경제학과인 거 잊었어? 저 사람에
곰곰히 되새겨보던 진아연은 숨이 가빠졌다.박시준이 진짜 자신을 좋아한다고?그렇지 않고서야 지 입으로 그랬던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을 했을리가.그녀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임신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원래 날씬한 데다 식단 조절을 하다 보니 임신한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5, 6개월이 됐을 때에도 조절된 식단 조절과 헐렁한 옷으로 배를 가릴 수는 있다.하지만 7개월, 8개월, 9개월 때는?임산부가 아무리 날씬해도 임신 3분기에는 반드시 배가 많이 나오게 되어있다.그때도 여전히 박시준 곁에 남아있으면 분명히 발각될게 뻔했다.그녀는 망연히 거리를 걸었다.코트는 손에 들려 있었고, 얇은 티셔츠만 입고 있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박시준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어젯밤 그녀가 그에게 한 대답처럼.감히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의 횡포와 강압적인 태도를 그녀는 매우 혐오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조금이지만 분명히 그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그녀는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인정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뱃속의 아이가 두 사람을 대립하게 만들었다.아이를 지켜내고 싶다면 그녀는 그를 떠나야 했다.하지만 사람은 로봇이 아니라서 뇌가 내리는 지시를 몸이 완전히 따른다는 보장이 없었다.그녀는 대체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그녀도 답을 몰랐다.분명히 낙태를 강요받았을 때, 그녀는 그가 죽도록 미웠는데.그날 저녁.진아연은 박시준의 저택으로 돌아왔다.손에는 작은 선물함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선물함을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이모님, 이건 박시준 씨에게 주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오면 저 대신 얘기해 주세요."이모님은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 대표님을 기쁘게 해드리셔야 이 집에서도 더 편하게 지내실수 있잖아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닌 자신을 위해 대
"회장님, 오늘 휠체어를 안 쓰신 것 같은데 다리는 괜찮으십니까?" 조지운이 걱정하며 물었다.그는 회장이 오늘 진아연과의 데이트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만약 휠체어를 타고 진아연과 데이트 한다면 확실히 진아연에게 안좋은 데이트 경험을 가져다 줄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이렇게 세심한 사람인데. 진아연이 몰라주다니.박시준은 두 사람의 팔을 밀어내며 냉담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박시준, 술 한잔 콜?" 성빈은 다시 그의 팔을 잡았다. "강주승이 여기 있어. 내가 걔를 부를 테니까 같이 마시자."그의 우울한 표정을 보고 성빈은 조금 걱정되었다.강주승은 강진의 오빠이다.강진이 박시준을 화나게 한 후, 성빈은 강주승을 불러왔다.강씨 집안의 회사는 용천시에 있었다.강주승은 강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평소에는 용천시에 있었다.잠시동안 말이 없다가 박시준은 대답했다. "안 가."그는 엘리베이터로 곧장 걸어갔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평온하게 걷고 있었다.데이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다리는 잘 회복된 것 같았다.저녁 7시 반, 박시준이 집에 돌아왔다.이모님은 즉시 진아연이 준비한 선물을 그에게 건넸다."회장님, 이건 사모님이 준비한 선물이에요." 시준은 선물을 받았다. 뭐가 들어 있는지 꽤 무거웠다."지금 집에 없어요?" 그가 물었다."있어요. 사모님은 식사하고 논문 쓴다고 방에 계세요."박시준은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선물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녀가 그에게 선물을 준비했다고? 자기가 오후에 한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은 건가?모든 사람은 용서받을 기회가 한 번쯤은 있어야 한다.주동적으로 선물을 준비한 그녀의 태도에 마음속의 분노가 반으로 줄어들었다.그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선물 상자를 열었다.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한 권의 책이었다.이 책의 제목이 아주 눈에 띄었다.책 제목은 였다.책 표지에는 무성하게 자란 인삼 한 뿌리가 그려있었다.박시준의
그녀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노트북을 닫았다!만약 그녀가 논문을 쓰고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너무 혼란스러워서 새 문서를 생성했다.그리고 계획을 작성했다.제목은 ‘3개월 내의 이혼 계획’이었다.그녀는 임신 7개월이 되기 전에 박시준과 이혼해야 한다.그래야만 임신 3분기를 들키지 않고 두 아이를 맞이할 수 있었다.순조롭게 이혼을 할 수 없다면 최후의 방법으로는 도망가는 것 밖에 없었다.박시준의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이건 최악의 경우다.그녀는 A 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A 국에서 생활하기를 원했기에 아이들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랄 수 있기를 바랐다.방금 그녀의 경계하는 행동은 박시준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그가 그녀의 논문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건가?아니면 논문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건가?그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것을 보자 그녀는 즉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제가 준 책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하며 몸을 돌려 그와 문 사이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이 책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이 책에는 이치를 논하는 거 외에도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 많거든요. 저자는 제 멘토님의 멘토인데 아주 대단한 분이세요."그녀는 말하며 거실로 걸어가 테이블 위에 던져진 책을 집어 들었다.박시준은 그녀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말을 끊는 것을 잊어버렸다."할 일 없을 때 보세요. 어느 챕터부터 읽든 상관없어요." 그녀가 덧붙였다.이모님이 물었다. "그렇게 좋은 책이에요? 사모님 얘기를 들으니 저도 사고 싶어지네요.""그럼 제가 내일 사드릴게요." 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아유, 어떻게 그래요? 그냥 제가 가서 사면 돼요.""사양하지 마세요. 엄청 싼 책이에요. 서점에서 할인하는 중이거든요. 1,500원 밖에 안 해요." 아연이 가격을 말하자 이모의 미소가 조금 굳어졌다.책의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난감했기 때문이다.박시준을 화나게 한 다음 2,000원도
진아연은 그의 뜨겁고 진지한 눈빛에 입술이 바짝 말라들었다."먼저 가자고한 일 말인가요?"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해명했다. "제 친구가 문자로 공연이 끝나면 당신과 같이 사진 찍고 싶다고 했어요. 당신은 낯선 사람과 사진 찍는걸 싫어할거라 생각했고. 나도 왜 당신과 함께 있는지 해명하고 싶지 않았어요.""왜?"얼음 같은 한 글자였다."말하자면 너무 길잖아요… 게다가 당신과 저는 차이가 너무 크잖아요. 신분뿐만 아니라… 나이도 그렇고. 제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린 아직 많이 유치한데… 만약 우리 둘의 관계 때문에 친구가 당신을 자주 찾아가면 짜증 날 거잖아요? 시끄러운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다는 거였다. 평생을 맹세한 사이가 아니니까.오늘 친구에게 그들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내일 바로 이혼하게 되면… 얼마나 쪽팔린 일인가.모든 게 끝난 후 말하는 게 나았다.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대답은 그를 많이 진정시켰다.그녀의 생각이 완전히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친구들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녀 외에는 어리고 유치한 사람들을 알고 싶지 않았다."방으로 돌아가!" 그의 얇은 입술이 뻥긋했다. 그녀는 면죄부를 받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집요하게 그에게 건넸다. "제가 산 바나나예요. 바나나 좋아하거든요. 일반 바나나보다 더 맛있어요. 먹어봐요."그녀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바나나 껍질이 조금 검게 변한 것을 본 그는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의 호의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다.껍질을 벗긴 바나나를 받아 자그맣게 한입 물었다.입에 들어왔을 때 약간 신맛이 났다.씹고 나니 조금씩 단맛이 나기 시작했다.전체적으로는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지고 찰기가 있었다. 식감은 확실히 일반 바나나와 달랐다."껍질 쪽이 조금 갈변하긴 했지만 속이 상한 건 아니에요." 그녀의 눈은 밤하늘의 별
제목 아래의 내용은 매우 짧았다.진아연은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도무지 수가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그래서 내용은 단 한 마디로 되어 있었다. "올해 내로 박시준과 이혼하기."그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그는 이미 변했고 그녀를 위해 양보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를 떠나기 위해 밤새 고민하고 있었다.이 '계획' 문서의 생성 시간은 어젯밤이었다.얼마나 가식적인 여자인가!한편으로는 그에게 선물을 주고 고맙다고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방에서 이혼 계획을 짜고 있었다니!그녀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다른 건 그녀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것을.그는 그녀의 노트북을 힘주어 닫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ST그룹.임원진 회의.오늘 박시준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심상치 않았다.그가 회의실에 들어간 이후로 계속 표정이 차가웠고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그의 표정을 본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각 부서를 담당하는 부장들은 꼿꼿이 앉아 숨을 크게 쉬지도 못했다.이상했다.분명히 3/4 분기 회사의 실적은 목표를 초과했는데 회장님은 왜 저렇게 화가 나계시지?회의 내내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냉담하게 각 부장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회의가 끝나자 딱 한 마디 했다. "그럼 이만."그러고는 먼저 회의실을 떠났다.조지운이 따라 나가려고 할 때 한 부장이 그를 불렀다."조 비서님, 회장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저희 3분기 실적이 만족스럽지 않으신 건가요? 회장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셨다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최선을 다해 달성하겠습니다!""회장님은 오늘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참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혹시 회장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나 계획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모두가 조지운을 둘러싸고 그에게서 직접적인 정보를 얻고자 했다.조지운은 안경을 추슬려 올리며 추측했다. "여러분의 3분기 실적은 매우 좋았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매우 만족하셨을 겁니다. 기분이 안 좋으신 건 회사 업무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