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건너편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집안일까지 도와 달라고? 대체 여소정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데?"하준기는 박시준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시, 시준이 형...?! 괘... 괜찮은 거예요?!""응. 너희들 일로 아연이를 괴롭히지 마. 여소정 하나도 못 달래서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되려고?"하준기는 그 말을 듣고는 말문이 막혔다."시준이 형, 말이 맞아요... 언제 돌아오세요? 돌아오시면 소정이랑 같이 밥 한 끼 해요.""퇴원한 뒤에.""언제 퇴원하시는 데요?""아직 모르겠어." 박시준은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아직 진아연에게 퇴원 날짜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목발을 짚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병실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병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문이 열렸고 진아연이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다.둘째 형, 산이 형과 넷째 형이 들어왔다.진아연은 저번에도 이들과의 만남 여부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싫다고 했었다.사실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시준 씨, 형님들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다들 오고 싶다고 하시는 바람에 거절할 수 없었어요."박시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지난 며칠 동안 그녀의 휴대폰을 통해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그녀는 그에게 새 휴대폰을 사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곧 퇴원할 예정이었던 데다가 퇴원하면 바로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돌아간 다음, 휴대폰을 사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Y국의 삶을 끝내는 것과 같았다."시준아, 너무 걱정돼서 왔다. 저번에도 왔지만 김형문의 집안사람들이 절대 안 된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단다." 둘째 형은 병원 침대 쪽으로 돌아가 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봉민, 그 녀석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우리가 혼내줄까?""괜찮습니다. 거의 다 회복했어요." 그는 더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김영아는 김형문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대담하지
"이미 그에게 사과했어요." 그녀가 말했다."사과가 무슨 소용이야? 나라면 진작에 용서하지 않았어!""감히 나를 속였다면 죽어서도 나는 저주했을 거야!""됐다, 그만해. 진아연 씨를 무시하면 진아연 씨 역시 너희들을 무시할 거야." 산이 형이 계속 놀리며 말했다. "진아연 씨한테 감사해. 진아연 씨가 아니었다면 Y국에 시준이가 데릴 사위로 남아 골치가 아팠을 테니 말이야."그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그들이 떠난 뒤, 진아연은 박시준이 침대에 눕도록 도왔다."돌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넌?"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돌아갈까요? 전세기까지 빌려준다고 하는데... 다친 곳에도 크게 무리가 오지 않을 테고.""전세기를 타지 않아도 괜찮아.""아니요. 전세기를 타는 게 나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내일 돌아갈까요?""알았어.""정말로?" 그녀는 웃었다.박시준: "기억이 다 돌아왔어."그의 대답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어쩐지 그와 함께 있는 요즘 그녀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예전처럼 차갑고 무뚝뚝하지 않았다.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말투와 시선은 전과 같았다.그녀는 항상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든 말든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도 만족했기 때문이었다."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너무 앞만 본 거 같았어요. 모든 걸 다 가졌다고, 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녀는 실패의 교훈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그는 더 이상 이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감정에 있어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머리에 흉터는 아직도 아파?" 그는 그녀의 머리를 올려다보았다.그녀는 손을 뻗어 흉터를 매만졌다. "아니요. 만지지 않으면 아픈지도 모르겠는 걸요.""너도 이제 푹 쉬어.""저보다 더 푹 쉬어야 할 사람이 누군데요.""돌아가서 푹 쉬자.
"김영아 씨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데요." 진아연은 박시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그녀가 그에게 휴대폰을 건네 이유는 김영아가 완전히 그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박시준은 휴대폰을 받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시준 씨... 제발 가지 말아요! 제발...! 이 아이가 자란 다음, 친자 검사를 하면 알 거예요! 당신의 아이라는 걸!" 김영아는 울부 짖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잔인해요?!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진아연은 엄마로서 김영아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아려왔다.하지만 김영아가 아이를 가진 것은 오직 박시준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김영아와 김영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그래. 난 내 아이를 포기한 거야. A국으로 돌아가서 우리 아이들을 챙겨야 하니까." 김영아의 말을 빌려 그는 차갑게 말했다. "네게 실망을 했다면 아이를 포기해도 좋아."휴대폰 반대편에서 김영아는 몸이 부들 부들 떨리며 흐느끼기만 했다.박시준은 몇 초 가만히 듣고 있다 전화를 끊고 진아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시준 씨, 끝났네요." 그녀는 휴대폰을 껐다."응." 그는 그녀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Y국의 삶이 끝났다.집으로 돌아간 뒤, 그는 더 이상 김영아와 연락할 일이 없을 것이다.이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김영아는 울다가 실신해버렸다.그녀가 생각한 치밀한 계획은 그녀의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의 목숨까지 앗아갔다.그녀는 너무나도 후회가 됐다!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아가씨, 정말 아이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죠?" 유모 역시 눈가가 빨개졌고 김영아는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김영아는 그저 울부짖는 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가... 절 버렸는데... 아이가 무슨 필요가 있나요...""아가씨, 그럼 병원에 가요...!" 유모는 그녀에게 말했다. "봉민 씨가 당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아시죠?! 이
곧이어 경호원이 그를 밀고 병실로 들어왔다.병동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 떠올랐다."아빠!" 라엘이는 분홍색 카네이션 꽃다발을 손에 들고 빠르게 박시준 앞에 걸어와 꽃을 그에게 건넸다. "다시 돌아오신 걸 축하해요!"박시준은 한 손으로 꽃을 받고 다른 손으로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엘아, 많이 보고 싶었어.""그럼 앞으로 가출하지 마세요! 가출은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아빠는 나이도 많으니까 더는 철없게 행동하면 안 돼요." 라엘이는 어른이라도 된 듯 자신의 아빠를 훈계했다.이때 지성이가 이모의 품에서 벗어나 되똥거리며 달려왔다.아들이 뛰어오는 것을 보니 박시준의 심장도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그는 아들이 그를 그렇게까지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지성아..."'성'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꼬맹이는 바로 옆에 있는 진아연에게 달려가 진아연을 꼭 껴안았다."엄마!"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가 병실 내에 울려 퍼졌다.박시준은 조금 난감했다.진아연은 아들을 안고 박시준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네 아빠야. 빨리 아빠라고 불러 봐."지성은 즉시 작은 머리를 진아연의 목에 묻으며 앞에 있는 낯선 남자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지성이와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에게는 한두 달 동안만 보지 않으면 낯선 사람과 다름없었다."우리 아들 많이 컸네." 박시준은 키가 커진 지성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는데.""매일 본다면 그런 느낌은 안 들 거예요." 이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안심하시고 병원에 계세요. 제가 매일 지성이를 데리고 찾아올게요."박시준은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오지 마세요. 전 일주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병원에는 환자도 많고 바이러스도 많아 그는 아이가 와서 병에 걸릴까 봐 걱정되었다."이모님,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서 쉬세요. 라엘이가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진아연은 지성을 안고 이모와 함께
시은이가 말하려 했던 것은 진아연이 생각했던 것과 동일했다.그녀는 위정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그 말을 들은 박시준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진아연은 그에게 다가갔다. "시은이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조언을 할 수 있지만, 방해는 안 하는 게 좋겠네요.""넌 이 일에 참견하지 마." 박시준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단호하게 바라보았다. "너와 위정과의 관계 때문이라도 넌 이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겠어."진아연은 그가 속고 있던 것에 대해 여전히 화가 나 있음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화제를 바꿨다."배고파요? 이모님이 당신이 좋아하는 국을 끓여왔어요." 그녀가 테이블 위의 도시락을 열자 구수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배에서는 바로 꼬르륵 소리가 났다.박시준은 시은이의 일을 생각하느라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그녀는 시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은아, 이 일은 위정 선배에게 직접 네 오빠랑 얘기하라고 해.""오빠는 위정을 욕할 거야." 시은이는 이제 사리를 분별할 수 있었다."한바탕 욕하고 나면 네 오빠도 속이 후련해져서 너희들의 일을 동의하지 않을까?" 그녀는 박시준 앞에서 대놓고 시은이에게 제안을 했다.시은이는 눈을 크게 뜨며 반신반의했다. "정말?""해보면 알 수 있지!""좋아, 내일 위정을 찾아갈게." 시은이는 돌아서 얼굴이 잿빛이 된 박시준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쉬었다. "오빠 잘 있어, 내일 다시 올게."시은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마친 후 즉시 밖으로 나갔다.시은이가 떠나자 진아연은 손에 국을 들고 박시준 옆으로 걸어갔다. "요 2년 동안 시은이가 점점 정상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정상인이라고? 환자 아니고?" 그는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시은이의 몸은 지금 천천히 회복하고 있어요. 너무 세게 몰아붙이지 마요. 매일 즐겁게 살고 있으면 안 좋나요? 화풀이는 위정 선배를 찾아서 하세요." 그녀는 국을 한 숟가락 떠 그의 입에 넣었다. "맛은 어때요?""지금 입맛이
"이렇게 얻어터지고 허세 부리기는.""네 눈에는 내가 병신처럼 보이지?""아니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또다시 아무 말 없이 멀리 떠나서,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면, 그때는 당신이 병신이 아니더라도, 내가 병신으로 만들어 놓을 거예요." 그녀는 그에게 수프를 다 먹여준 뒤 휴지로 입을 닦아주었다.박시준은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의 뺨에 키스를 했다.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찾으러 Y국까지 와서 많이 감동했어.""내가 당신을 찾으러 가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그곳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겠죠." 그녀는 그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내고 사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찾으러 가지 않았으면 당신은 이렇게 빨리 기억을 찾지 못했을 거고, 어쩌면 당신과 김영아는 천천히 사랑에 빠져서 이쁜 아기도 낳았을 수도 있죠. 김형문도 당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죽고 난 뒤 자신의 후계자로 당신을 지목했을 거고. 당신의 재산은 A국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았을 거예요.""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혼자 있어요! 나 잠시 밖에 나가 있을게요." 그녀는 화난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즉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 "농담이야. 가지 마.""당신을 돌봐 줄 남자 간병인을 알아봐야겠어요. 이제 A국에 돌아왔으니, 종일 당신 곁에 붙어있을 수 없잖아요. 집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도 주고 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이유를 밝혔다. "아, 참, 지금 가서 당신 줄 휴대폰도 새로 사야겠네요. 전에 쓰던 휴대폰은 버렸죠?""버리진 않았어. 근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어.""됐어요. 새 폰 하나 사고, 전화번호도 새로 만들죠 뭐!" 그녀는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비록 박시준은 그녀와 함께 A국으로 돌아왔지만, 김영아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정말로 그의 아이일 수도 있었다.그녀는 김영아가 나중에 아이 때문에 그에게 연락을 할까 봐 조금 걱정되었다."내일 가서 해도 돼. 오늘은 피곤해서 휴대폰 만지고 싶지 않아.""그럼 먼저 샤워시켜줄
"성빈 씨 어디로 가나요?" 진아연은 궁금해했다. "휴가 보내러 가나요?"하준기가 웃으며 말했다. “휴가 맞을 거예요. 시준이 형이 없는 사이 회사 일 때문에 신경 많이 썼거든요. 이제 시준이 형이 돌아왔으니 성빈이 형도 좀 쉬고 싶겠죠!”진아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야지! 박시준이 많이 얻어터졌다며? 박시준의 그런 얼굴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여소정은 구경거리라도 난 듯 농담했다."그런 거라면 실망할 거야. 몸은 많이 다쳤는데, 얼굴은 별로 다치지 않았어."여소정: "그래? 그래도 보러 갈 거야!""너 몸 괜찮아? 의사는 뭐래?" 진아연은 그녀와 그녀 배 속의 아이가 매우 걱정되었다.이 아이는 그녀와 하준기의 연결 고리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여소정: "의사 말로는 유산한 뒤 습관성 유산의 우려가 있어서 처음 3개월은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했어! 어떻게 주의를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격렬한 운동을 하지 말고, 남편이랑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했어. 걷는 건 괜찮대. 근데 우리 엄마가 잔뜩 긴장해서 나보고 계속 침대에 누워 있으래.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지겨워 죽겠어. 앞으로 9개월이나 남았잖아!""어머님께서는 널 9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있게 하지는 않으실 거야. 그냥 처음 3개월이 가장 중요할 뿐이지. 처음 3개월만 안정되면 그 뒤로 유산할 가능성이 적어.""나도 알아. 하지만 외출하면 계속 차를 타고 다니니까 몇 걸음 못 걸어." 여소정은 그들과 함께 박시준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소정이가 가고 싶어 하니 같이 가죠! 요즘 너무 심심해해요.""응."잠시 거실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 그들은 병원으로 출발했다.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성빈은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성빈 형, 급하게 공항 가나요?" 하준기가 물었다."오후 비행기야. 지금 집에 가서 짐 싸려고." 다가오는 휴가를 생각하니 성빈의 얼굴에는 빛이 돌았다. "나 두 달이나 휴가를 가지 못했어. 보니까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진아연이 물었다.그녀는 원래 박시준이 퇴원한 뒤 이 일을 시작할 계획이었다.의외로 성빈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다 끝났어." 박시준은 무심코 물었다. "최운석이 지금 우리 집에서 살고 있어? ""네. 시은이랑 같이 당신 집에 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최운석에게 따로 마련해 줄게요." 진아연은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터놓았다. "시은이랑 사이가 좋아서 둘을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았거든요.""난 괜찮아." 박시준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난 너희 집에서 가서 살 수밖에 없겠네."진아연은 눈을 깜박이며 잠시 멍해졌다. "당신은 내 남편이잖아요. 당연히 나랑 같이 살아야죠!""아연아,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며? 내가 보기엔 예전보다 좀 멍청해진 것 같은데?" 여소정은 문서를 대충 훑어본 뒤 내려놓으며 돌아서서 웃었다."여소정, 임신하면 입부터 조심해야 돼." 박시준은 하준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기야, 너희 어머님께서 성빈이에게 부탁하셔서 나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하준기의 입가가 움찔했다.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했어요?"박시준: "어머님께서 그러시는데, 네가 여소정네 집에서 사는 건 상관없지만, 아이의 성은 꼭 하 씨여야 한다고 그러시더라."하준기: "..."여소정은 바로 화가 났다. "저도 원래 이런 일을 따지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시어머니께서 꼭 따지려고 하신다면, 우리 아이는 반드시 제 성을 따르게 해야겠어요."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시어머님께 전해주세요."박시준: "내가 메가폰이냐?"하준기: "소정아, 내가 가서 어머니한테 말할게... 하지만 지금 말고. 어머니가 또 흥분해서 널 찾아오면 안 좋잖아..."여소정: "내가 무서워할 거 같아? 정말 웃기시네! 어머님이 하 씨 성도 아니고 말이야, 내 아이의 성이 뭐든 어머님 성을 따르는 것도 아닌데, 왜 난리시지?""알았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아니, 꼭 말해야겠는데!""그럼 돌아가서 얘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