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한 사람이라서 미안해.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너에게 실망을 안겨줘서.” 사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가 방송을 도와준 언니는 오빠의 병실 친구였다. 예전에 그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전화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팔과 손등의 사진을 찍어준 오빠의 친구도 나는 알았다. 그 사람은 오빠가 게임에서 만난 친구였고, 종종 함께 게임을 했던 사람이다. 특히 오빠가 투석할 때는 더욱 자주 함께 했다. 그가 영상통화 할 때 내가 본 적이 있다. 그는 안경을 쓰고 검은색 반팔을 입고 있었으며, 약간 뚱뚱하고, 머리에 초록색으로 염색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병실에서 들었던 녹음도 오빠가 일부러 핸드폰을 두고 녹음한 것이었다. 엄마가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때렸을 때, 나는 옆눈으로 보았다. 베개 아래에서 오빠의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 날 나는 에어컨 외부에서 멀리서 본 그 익숙한 모습은 오빠의 학교 친구였고,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 친구는 오빠가 학교에 빠졌을 때 종종 오빠에게 수업을 보충해주곤 했다. 그리고 학교와 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오빠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그날 갑자기 이모가 온 것도 오빠가 부른 거였다. 이모의 핸드폰을 몰래 보았을 때 오빠는 이모에게 나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모두 다 이해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날 오빠는 내가 자신을 보는 모습이 무서워서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 오빠는 이미 너무 많이 쇠약해져 얼굴이 누렇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몸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이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부를 가르쳐주며, 나에게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오빠였다. 내가 주사 맞고 피 뽑을 때 아프다고 울면 오빠는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달콤한 복
내 부모님은 은 매우 금슬이 좋으셔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결혼 후 바로 임신해서 오빠를 낳았다. 세 식구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오빠가 여섯 살 되던 해 평범한 감기에 열이 좀처럼 낫지 않았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부모님은 믿을 수 없다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오빠는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병이었다.부모님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간절히 부탁해 이식을 위한 검사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의사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일치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원래 오빠 하나만 키울 생각이던 부모님은 다시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엄밀히 말하면 나는 집안의 네 번째 아이였다. 첫째는 오빠였고, 둘째와 셋째는 엄마가 임신 5개월이 됐을 때 HLA가 맞지 않아 중절됐다.그리고 나서야 부모님은 나를 낳았다. 나는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불행한 건지 모르겠다.내가 태어난 날, 대학생이던 이모가 간호사로부터 나를 받아 안았다. 그날, 아빠와 출산을 막 마친 엄마는 병실이 아닌 오빠의 수술실 앞에 있었다.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모두가 오빠가 완치됐다고 믿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우리 가족은 드물게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그런데 오빠가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열이 나고 기침을 반복하며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나는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터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그 이후로 오빠가 입원하면 나도 함께 입원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빠가 주사를 맞으면 나도 같이 주사를 맞았다.처음엔 간호사가 나를 붙잡아야 했고, 나는 울면서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침대에 조용히 누워 주사를 맞았다. 더는 몸부림치지도, 울지도 않았다.간호사는 내가 용감하다고 칭찬했지만 나는 그냥 익숙해진 것뿐이었다.의사는 이 병이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도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오빠는 여섯 살 때 발병해 열세 살 때 재발했고, 올해 열여
“지은의 검사는 내일 바로 진행할 수 있어요. 지은이도 빨리 입원시키세요. 건우의 상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라 학교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음악 선생님이 반 합창에서 내가 리드보컬을 맡으라고 하셨다.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갈 수 없게 됐다. 나는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간호사 언니,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전화 한 통만 하고 싶어요.” “작은 친구, 무서워하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하면 돼.” 눈앞의 언니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암 투병기를 인터넷에 올려 수십만 팔로워를 가진 유명인이었다. 어제 그녀와 통화를 했고, 그녀는 나를 돕겠다고 했다. 검사를 받는 틈을 타 몰래 병원 정원으로 나갔다. 언니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라이브 방송을 켜고 나의 이야기를 팬들에게 전했다. “지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오빠를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해왔어요. 헌혈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긴 주사 바늘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언니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지은이는 이제 겨우 열 살이에요. 오빠가 아픈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은이는 안 불쌍한가요? 평범한 어린 시절도 없었고, 태어난 이유마저 오빠의 약이 되기 위해서였어요. 누구 하나 지은이를 걱정한 적이 있나요?” “이제는 신장까지 기증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누구도 지은이의 의견은 묻지 않아요. 당연히 기증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그런데 지은이의 건강은 누가 책임질 건가요?”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언니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강렬했다. 라이브 방송의 채팅창은 폭주하듯 글이 올라갔다.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찬 눈으로 말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매번 피 뽑을 때 너무 아파요.” “엄마, 아빠, 저도 오빠를 돕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아파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신장을 주면
나는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며 각종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수술은 연기되었다. 언니의 라이브 방송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인터넷에는 내 팔과 손등의 고화질 사진이 미친 듯이 퍼지고 있었다. 사진 속 주사 자국은 선명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실에서 엄마가 나를 때리던 장면과 그녀가 내뱉은 말들이 담긴 녹음 파일도 퍼졌다. 누군가가 그 순간을 녹음하고 공유했던 것이다. 엄마, 아빠는 SNS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오빠의 계정이 네티즌들에게 발견되었다. 댓글 창에는 “동생의 피를 빨아가며 사는 기분이 어떤가요?”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오빠가 중증 환자라는 점 때문인지 댓글들은 비교적 절제된 편이었다. 그러나 병원과 관련된 온라인 댓글들은 훨씬 더 날카로웠다. 사람들은 병원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지, 환자의 이익만을 고려하며 미성년자인 나를 다년간 백혈구, 골수, 그리고 이번에는 신장까지 기증하도록 강요한 점에 대해 비판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수술로 인한 내 건강상의 위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많은 인플루언서들과 마케팅 계정들이 이 사건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경찰, 여성연맹, 적십자사, 그리고 학교를 언급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오빠의 주치의는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만족했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서 예전의 가식적인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넌 정말 냉혈한이야.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문은 쾅 하고 닫혔다. 곧이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방에서 나와 보니 집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나는 집에 갇혔다. 나는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고 침대에 앉았다.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기억을 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그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인데도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정말 냉혈한이야!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결국 나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병원에서 오빠 곁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집 안을 이리저리 뒤지다 거의 유통기한이 다 된 컵라면을 찾아냈다. 뜨거운 물을 끓이는 것도 귀찮아 그냥 면을 부숴서 생으로 씹어 먹었다. 잠들기 전, 병원에 있는 오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문이 잠겨 있는데 내일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했다.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정말 냉정한 사람인가 봐.’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겼지만 문이 잠겨 있어 집을 나갈 수 없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다. 거실 밖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고, 옆으로는 배수관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실외기를 밟은 뒤 배수관을 따라 내려가면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방을 먼저 밖으로 던지고, 조심스럽게 에어컨 실외기로 올라섰다. 그리고 옆 배수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은아, 거기서 움직이지 마!” 아래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몸이 휘청였다. 수많은 탄성과 함께 겨우 균형을 잡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모였다. 내가 태어난 후,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나를 처음으로 안아 준 사람이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이모가 지금 우리 집 아래에 있다니 분명 인터넷에 퍼진 소식을 보고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군중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스쳐 지나갔지만 자세히 확인할 틈도 없이 이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은아, 제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이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모가 왔어. 무서워하지 마. 제발, 절대 어리석은
밥을 먹던 중 이모의 전화가 울렸다. 나는 전화 화면을 힐끗 보았다. 엄마였다. 이모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에서 흘러나왔다. 약간 왜곡된 소리였지만 아주 선명했다. “건우가 방금 의식을 잃었어. 지금 의사들이 응급처치 중이야. 당장 애를 병원으로 데려와!” 오빠가 이번에 쓰러진 건 신장이 아니라 백혈병 문제 때문이었다. 이모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처치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엄마는 간호사와 함께 오빠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는데 옷 곳곳에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나는 병실 문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오빠는 침대에 누워 아무런 의식도 없었다. 키는 컸지만 몸은 너무나도 야위어 있었다. 선명한 붉은 피가 투명한 플라스틱 관을 타고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 피였다. 지난번 채혈할 때 의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피를 많이 뽑아갔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혹시 모를 상황이었다. 채혈 후 나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그만 넘어졌고, 이마를 다쳐 두 바늘을 꿰맸다. 지금도 그 자리에 흉터가 남아 있다. 그때가 기억난다. 엄마는 흘끗 보기만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니?” 그리고는 다시 오빠 곁으로 가서 정성을 다해 간호했다. 결국 나를 치료해 준 건 채혈을 담당했던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내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흉터 치료제까지 챙겨줬다. 오빠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서 엄마가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그때와 똑같았다. “간호사 따라가서 피 뽑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는 물수건을 들고 오빠의 얼굴을 닦았다. 말투는 너무나도 평온했고, 심지어 이모에게 웃으며 인사까지 건넸다. 어제 나를 냉혈한이라고 부르며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던 그 차가운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모의 표정은 심히 안 좋았다. “언니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이모는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 침대 위에 놓인 토끼 인형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것을 품에 안았다.전화는 아빠가 건 것이었다.이모의 대화 내용을 통해 아빠가 돌아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빠는 지난주에 먼 도시로 출장 갔었다.오빠가 발병했을 때 바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돈 때문인지 일을 끝내고 나서야 돌아왔다.사실 나는 아빠와 크게 친하지 않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일만 하던 사람이다.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고,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나가 있었다.가끔 집에서 쉬는 날에는 잠만 자거나 오빠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 아빠는 날 사랑할까?나는 모르겠다.“지은아.”이모는 망설이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오늘은... 네 엄마가 단지 건우 걱정이 너무 돼서 그랬던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오빠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죠?”내가 이모에게 물었다.“제가 신장을 기증해야 하나요? 어차피 이미 여러 번 했으니까, 이번도 별로 다르지 않잖아요.”“지은아, 그런 게 아니야.”이모는 눈이 붉어진 채로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건우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신장을 이식해도...”이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이모, 저 피곤해요. 좀 잘게요.”나는 침대에 누워 벽 쪽을 향해 등을 돌렸다.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 했다.이모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집에만 있었다.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이모는 인터넷에서의 논란이 이제 많이 가라앉았으니 며칠 후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아빠는 두 번 정도 집에 들렀다. 옷을 갈아입으러 온 것뿐이었다.나는 방에 숨어 나오지 않았고, 아빠도 나를 찾지 않았다.그는 이모와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엄마는 계속 병원에 머물렀고, 집에 오지 않았다.나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이달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무릎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눈은 한순간도 오빠에게서 떼지 않았다. 아빠는 창가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상체를 침대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잠든 듯 보였지만 내가 들어오자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지은아, 여기 어떻게 왔니?” 아빠가 찌푸린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혼자 온 거야? 이모는 어디 있니?” 엄마는 오빠의 손을 만지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런데 나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침대 곁으로 다가가 오빠에게 손을 뻗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렸다. 마치 내가 온 것을 느낀 듯 오빠가 눈을 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오빠.” 나는 오빠를 부르며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손은 겨우 몇 센티미터만 올라갔다. 나는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빠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나는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외쳤다. “오빠, 제발 나를 놀라게 하지 마.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의사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할게. 난 괜찮아. 피를 더 많이 뽑아도 상관없고, 신장도 두 개나 있으니까 하나는 오빠한테 줄 수 있어.” 나는 숨이 막힐 듯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오빠, 우리 놀이공원도 못 갔잖아. 우리 약속했잖아. 오빠는 약속 어기면 안 돼!” 오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말하려는 듯 입을 떼더니 기침이 터졌다. 입가에서 피가 스며나왔다. 아빠는 급히 오빠의 입을 닦았고, 엄마는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내가 오빠의 손을 꼭 쥐고 있는 탓에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는 대신 손길을 부드럽게 오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
“내가 약한 사람이라서 미안해.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너에게 실망을 안겨줘서.” 사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가 방송을 도와준 언니는 오빠의 병실 친구였다. 예전에 그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전화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팔과 손등의 사진을 찍어준 오빠의 친구도 나는 알았다. 그 사람은 오빠가 게임에서 만난 친구였고, 종종 함께 게임을 했던 사람이다. 특히 오빠가 투석할 때는 더욱 자주 함께 했다. 그가 영상통화 할 때 내가 본 적이 있다. 그는 안경을 쓰고 검은색 반팔을 입고 있었으며, 약간 뚱뚱하고, 머리에 초록색으로 염색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병실에서 들었던 녹음도 오빠가 일부러 핸드폰을 두고 녹음한 것이었다. 엄마가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때렸을 때, 나는 옆눈으로 보았다. 베개 아래에서 오빠의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 날 나는 에어컨 외부에서 멀리서 본 그 익숙한 모습은 오빠의 학교 친구였고,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 친구는 오빠가 학교에 빠졌을 때 종종 오빠에게 수업을 보충해주곤 했다. 그리고 학교와 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오빠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그날 갑자기 이모가 온 것도 오빠가 부른 거였다. 이모의 핸드폰을 몰래 보았을 때 오빠는 이모에게 나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모두 다 이해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날 오빠는 내가 자신을 보는 모습이 무서워서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 오빠는 이미 너무 많이 쇠약해져 얼굴이 누렇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몸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이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부를 가르쳐주며, 나에게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오빠였다. 내가 주사 맞고 피 뽑을 때 아프다고 울면 오빠는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달콤한 복
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나를 쳐다보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눈빛은 생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구급차는 금방 도착했다. 오빠가 아프고 난 뒤 부모님은 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병원은 집에서 5km도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오늘따라 너무 멀게 느껴졌다. 아무리 가도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구급차에 탄 의사가 우리 집 어른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아빠의 전화번호를 조용히 말했다. 여자 의사는 울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겁에 질린 줄 알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상처는 깊어 보일 뿐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 엄마의 몸은 괜찮겠지만 마음은 병들었다는 것을. 의사는 추가로 수혈이 필요하고 잘 쉬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 덧붙였다. ‘수혈이라니.’오빠도 늘 수혈이 필요했었다. 의사가 말한 대로 엄마의 손목은 국소 마취 후 여섯 바늘을 꿰매고 병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는 익숙한 손길로 혈장을 걸고, 능숙하게 엄마의 손등에 주사를 놓았다. 피가 투명한 관을 따라 엄마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약간 멍해졌다. 오늘은 아빠가 야간 근무였는데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빠는 나를 병실 밖으로 내보낸 뒤 문을 닫고 엄마와 다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을 닫아도 무슨 소용일까? 문 밖에서도 피곤에 찌든 아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다. “건우는 이미 떠났어. 사는 사람을 살아야지.” “나를 위해서라도 생각 좀 해줘. 매일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끝내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직 간호사는 나를 알아보고 놀란 듯했다. 멀리서 의사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나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위로했다. “지은아, 엄마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는 그녀를 바라보
조금 더 자라서야 깨달았다. 아픈 건 오빠였다는 걸. 하지만 매번 주사를 맞고, 피를 뽑을 때마다 나도 아팠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뼛속이 은근히 시린 통증이 남곤 했지만 아빠와 엄마는 오빠만 걱정하며 나에게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넌 건강하잖니.” 이런 내가 정말 건강한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었고, 더는 나에게 피를 자주 뽑으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부모님은 크게 앓아누웠다. 병에서 회복된 후, 아빠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오빠의 치료비 때문에 집에 많은 빚이 생겼다며,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갚겠다고 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오빠 방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 이모는 내가 걱정되어 자신과 함께 지내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회사에서 이모에게 더는 휴가를 줄 수 없다며 재촉했고, 이모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안고 떠났다. 하지만 매일 틈틈이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낮에는 숙제를 끝낸 후 창밖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하늘은 대개 파란색이었고, 때로는 새가 날아가거나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긴 하얀 흔적을 남겼다. 밤에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다가 결국 토끼 인형을 안고 누웠다. 대개 한밤중이 지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이 토끼 인형은 엄마가 준 것이었지만 사실은 오빠가 사준 것이었다. 이 토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었다. 내가 관련 상품을 갖고 싶다고 했을 때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직도 어린애네!” 나는 화가 나서 그를 때리려 했지만 방금 피를 뽑고 나서 힘이 없어서 결국 그에게 눌려 꼼짝 못 했다. 오빠는 내 입가에 복숭아 맛 사탕 하나를 넣어줬다. 아주 달달했다. 나는 그를 쫓아가 더 많은 사탕을 달라고 했지만 오빠는 주지 않았다. “너 충치 생길까 봐 그래.” 하지만 주사를 맞거나 피를 뽑을 때마다 직접 사탕 하나씩 건네주었다. 어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무릎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눈은 한순간도 오빠에게서 떼지 않았다. 아빠는 창가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상체를 침대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잠든 듯 보였지만 내가 들어오자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지은아, 여기 어떻게 왔니?” 아빠가 찌푸린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혼자 온 거야? 이모는 어디 있니?” 엄마는 오빠의 손을 만지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런데 나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침대 곁으로 다가가 오빠에게 손을 뻗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렸다. 마치 내가 온 것을 느낀 듯 오빠가 눈을 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오빠.” 나는 오빠를 부르며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손은 겨우 몇 센티미터만 올라갔다. 나는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빠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나는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외쳤다. “오빠, 제발 나를 놀라게 하지 마.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의사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할게. 난 괜찮아. 피를 더 많이 뽑아도 상관없고, 신장도 두 개나 있으니까 하나는 오빠한테 줄 수 있어.” 나는 숨이 막힐 듯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오빠, 우리 놀이공원도 못 갔잖아. 우리 약속했잖아. 오빠는 약속 어기면 안 돼!” 오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말하려는 듯 입을 떼더니 기침이 터졌다. 입가에서 피가 스며나왔다. 아빠는 급히 오빠의 입을 닦았고, 엄마는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내가 오빠의 손을 꼭 쥐고 있는 탓에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는 대신 손길을 부드럽게 오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이모는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 침대 위에 놓인 토끼 인형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것을 품에 안았다.전화는 아빠가 건 것이었다.이모의 대화 내용을 통해 아빠가 돌아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빠는 지난주에 먼 도시로 출장 갔었다.오빠가 발병했을 때 바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돈 때문인지 일을 끝내고 나서야 돌아왔다.사실 나는 아빠와 크게 친하지 않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일만 하던 사람이다.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고,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나가 있었다.가끔 집에서 쉬는 날에는 잠만 자거나 오빠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 아빠는 날 사랑할까?나는 모르겠다.“지은아.”이모는 망설이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오늘은... 네 엄마가 단지 건우 걱정이 너무 돼서 그랬던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오빠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죠?”내가 이모에게 물었다.“제가 신장을 기증해야 하나요? 어차피 이미 여러 번 했으니까, 이번도 별로 다르지 않잖아요.”“지은아, 그런 게 아니야.”이모는 눈이 붉어진 채로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건우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신장을 이식해도...”이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이모, 저 피곤해요. 좀 잘게요.”나는 침대에 누워 벽 쪽을 향해 등을 돌렸다.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 했다.이모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집에만 있었다.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이모는 인터넷에서의 논란이 이제 많이 가라앉았으니 며칠 후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아빠는 두 번 정도 집에 들렀다. 옷을 갈아입으러 온 것뿐이었다.나는 방에 숨어 나오지 않았고, 아빠도 나를 찾지 않았다.그는 이모와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엄마는 계속 병원에 머물렀고, 집에 오지 않았다.나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이달
밥을 먹던 중 이모의 전화가 울렸다. 나는 전화 화면을 힐끗 보았다. 엄마였다. 이모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에서 흘러나왔다. 약간 왜곡된 소리였지만 아주 선명했다. “건우가 방금 의식을 잃었어. 지금 의사들이 응급처치 중이야. 당장 애를 병원으로 데려와!” 오빠가 이번에 쓰러진 건 신장이 아니라 백혈병 문제 때문이었다. 이모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처치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엄마는 간호사와 함께 오빠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는데 옷 곳곳에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나는 병실 문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오빠는 침대에 누워 아무런 의식도 없었다. 키는 컸지만 몸은 너무나도 야위어 있었다. 선명한 붉은 피가 투명한 플라스틱 관을 타고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 피였다. 지난번 채혈할 때 의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피를 많이 뽑아갔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혹시 모를 상황이었다. 채혈 후 나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그만 넘어졌고, 이마를 다쳐 두 바늘을 꿰맸다. 지금도 그 자리에 흉터가 남아 있다. 그때가 기억난다. 엄마는 흘끗 보기만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니?” 그리고는 다시 오빠 곁으로 가서 정성을 다해 간호했다. 결국 나를 치료해 준 건 채혈을 담당했던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내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흉터 치료제까지 챙겨줬다. 오빠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서 엄마가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그때와 똑같았다. “간호사 따라가서 피 뽑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는 물수건을 들고 오빠의 얼굴을 닦았다. 말투는 너무나도 평온했고, 심지어 이모에게 웃으며 인사까지 건넸다. 어제 나를 냉혈한이라고 부르며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던 그 차가운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모의 표정은 심히 안 좋았다. “언니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그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인데도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정말 냉혈한이야!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결국 나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병원에서 오빠 곁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집 안을 이리저리 뒤지다 거의 유통기한이 다 된 컵라면을 찾아냈다. 뜨거운 물을 끓이는 것도 귀찮아 그냥 면을 부숴서 생으로 씹어 먹었다. 잠들기 전, 병원에 있는 오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문이 잠겨 있는데 내일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했다.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정말 냉정한 사람인가 봐.’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겼지만 문이 잠겨 있어 집을 나갈 수 없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다. 거실 밖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고, 옆으로는 배수관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실외기를 밟은 뒤 배수관을 따라 내려가면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방을 먼저 밖으로 던지고, 조심스럽게 에어컨 실외기로 올라섰다. 그리고 옆 배수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은아, 거기서 움직이지 마!” 아래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몸이 휘청였다. 수많은 탄성과 함께 겨우 균형을 잡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모였다. 내가 태어난 후,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나를 처음으로 안아 준 사람이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이모가 지금 우리 집 아래에 있다니 분명 인터넷에 퍼진 소식을 보고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군중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스쳐 지나갔지만 자세히 확인할 틈도 없이 이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은아, 제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이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모가 왔어. 무서워하지 마. 제발, 절대 어리석은
나는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며 각종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수술은 연기되었다. 언니의 라이브 방송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인터넷에는 내 팔과 손등의 고화질 사진이 미친 듯이 퍼지고 있었다. 사진 속 주사 자국은 선명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실에서 엄마가 나를 때리던 장면과 그녀가 내뱉은 말들이 담긴 녹음 파일도 퍼졌다. 누군가가 그 순간을 녹음하고 공유했던 것이다. 엄마, 아빠는 SNS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오빠의 계정이 네티즌들에게 발견되었다. 댓글 창에는 “동생의 피를 빨아가며 사는 기분이 어떤가요?”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오빠가 중증 환자라는 점 때문인지 댓글들은 비교적 절제된 편이었다. 그러나 병원과 관련된 온라인 댓글들은 훨씬 더 날카로웠다. 사람들은 병원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지, 환자의 이익만을 고려하며 미성년자인 나를 다년간 백혈구, 골수, 그리고 이번에는 신장까지 기증하도록 강요한 점에 대해 비판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수술로 인한 내 건강상의 위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많은 인플루언서들과 마케팅 계정들이 이 사건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경찰, 여성연맹, 적십자사, 그리고 학교를 언급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오빠의 주치의는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만족했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서 예전의 가식적인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넌 정말 냉혈한이야.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문은 쾅 하고 닫혔다. 곧이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방에서 나와 보니 집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나는 집에 갇혔다. 나는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고 침대에 앉았다.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기억을 더
“지은의 검사는 내일 바로 진행할 수 있어요. 지은이도 빨리 입원시키세요. 건우의 상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라 학교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음악 선생님이 반 합창에서 내가 리드보컬을 맡으라고 하셨다.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갈 수 없게 됐다. 나는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간호사 언니,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전화 한 통만 하고 싶어요.” “작은 친구, 무서워하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하면 돼.” 눈앞의 언니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암 투병기를 인터넷에 올려 수십만 팔로워를 가진 유명인이었다. 어제 그녀와 통화를 했고, 그녀는 나를 돕겠다고 했다. 검사를 받는 틈을 타 몰래 병원 정원으로 나갔다. 언니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라이브 방송을 켜고 나의 이야기를 팬들에게 전했다. “지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오빠를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해왔어요. 헌혈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긴 주사 바늘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언니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지은이는 이제 겨우 열 살이에요. 오빠가 아픈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은이는 안 불쌍한가요? 평범한 어린 시절도 없었고, 태어난 이유마저 오빠의 약이 되기 위해서였어요. 누구 하나 지은이를 걱정한 적이 있나요?” “이제는 신장까지 기증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누구도 지은이의 의견은 묻지 않아요. 당연히 기증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그런데 지은이의 건강은 누가 책임질 건가요?”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언니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강렬했다. 라이브 방송의 채팅창은 폭주하듯 글이 올라갔다.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찬 눈으로 말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매번 피 뽑을 때 너무 아파요.” “엄마, 아빠, 저도 오빠를 돕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아파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신장을 주면